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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황녀는 날지 않는다
작가 : 여름별밤
작품등록일 : 2017.11.22

오래 전, 대악마 튀란누스에게 대륙이 짓밟히는 것을 막기 위해 네 명의 영웅들을 필두로 많은 이들이 목숨을 걸고 맞섰다. 이름도 종족도 달랐던 그들이 끝내 대악마를 쓰러트린 후 대륙은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그렇게 꼭 30년이 흘렀다. 대전쟁의 네 영웅 중 하나인 제국의 황제 아르도르의 딸 레아는 자신을 암살하려는 2황후 루마에게 벗어나 제국을 떠돌고 있었다. 그러나 황궁 밖에서도 자신을 향한 암살위협이 점점 거세지던 그 때, 레아는 뜻밖의 만남을 가지게 되고, 30년 전 일어났던 대전쟁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파멸이 다가옴을 알게 되는데......

 
폭풍을 대하는 자세 (2)
작성일 : 17-12-01 13:57     조회 : 302     추천 : 0     분량 : 8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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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래곤 본’이 제국 최대의 여관이라면, 불의 신 아르데오를 섬기는 아르데오 교단의 성당은, 제국 최대의 성당이었다. 30년 전 지독했던 대전쟁의 마지막 전투에서 아르데오교의 한 사제가 황제의 목숨을 구한 후 성녀로 추앙받으며 황후의 자리까지 오른 일은 제국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일화였다. 그리고 그 성당에서, 한때 성녀로 추앙받았고, 이제는 제국의 황후가 된 루마 라크델이 아르데오 교단의 보물이자 영원히 타오른다는, 커다란 그릇 위에서 춤추고 있는 ‘아르데오의 불꽃’ 앞에서 조용히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누군가의 목소리가 던져졌다.

 “오랜만입니다, 황후마마.”

 여전히 두 손을 모은 채, 그리고 뒤돌아보지 않은 채 루마는 대답했다.

 “오랜만입니다, 아버지.”

 “허허. 아무리 성녀로 추앙받았어도 넌 사제였다. 적어도 성당에서는 교주님이라 불러야지.”

 그제야 천천히 몸을 돌린 루마의 눈에 키가 큰, 백발의 노인이 서 있었다. 그는 아르데오의 상징인 불꽃이 새겨진 하얀 로브를 입고 있었다. 루마는 쓰게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 늦은 밤에 주무시지 않고 이곳에 오신 이유가 뭡니까.”

 노인은 잠시 턱을 문지르다가, 이내 잔잔한 미소를 띠었다.

 “집나간 말괄량이 딸이 돌아왔다 해서 와봤다.”

 그 말과 함께 루마의 곁으로 다가온 그는 루마가 기도를 드리고 있던 불꽃을 바라보며 조용히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았다. 그렇게 잠시 침묵이 흐르고, 이내 노인은 눈을 떴다. 그의 시선이 조용히 타오르는 불꽃에 머문 채 입을 열었다.

 “남부군과 용기병들을 출정시켰다고 들었다.”

 “......벌써 소문이 퍼졌습니까.”

 “글쎄. 그런 대규모의 군대가 한꺼번에 움직이는 일은 드무니까. 게다가 남부군과 용기병을 전부 출정시키다니. 불가침조약을 잊은 게냐.”

 차갑고도 날카로워진 노인의 목소리에 루마는 담담히 대꾸했다.

 “제국민을 위해서입니다.”

 “......정말 전쟁을 일으킬 셈이냐.”

 루마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돌려 노인을 바라보았다.

 “이미 엘타는 이곳을 떠났습니다.”

 그 말에 노인은 한숨을 내쉬며 곁에 있던 의자를 끌어와 털썩 주저앉았다.

 “고얀 녀석. 네 아들을 전쟁병기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게냐?”

 루마는 말없이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불씨가 어둠을 밀어내며 이리저리 얽히고 튀어 오르며 춤추고 있었다. 노인은 말을 이어나갔다.

 “루마. 지금이라도 엘타를 돌아오게 해라. 아무리 제국민들을 위해서라고는 해도 이 방법은 아니다.”

 그제야 루마는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아버지에게 방법이 있습니까?”

 의아해하는 노인에게 시선을 돌리며 루마가 말했다.

 “아버지에게 방법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꺼지지 않는 불 앞에서 따뜻함을 느낄 때, 제국 어딘가에서 어린아이가 추위에 떨고 있습니다. 우리가 따뜻한 빵과 고기를 뜯을 때, 누군가는 배고픔에 천천히 죽어가고 있습니다.”

 루마의 목소리가 격앙된 채 덜덜 떨리고 있었다.

 “말이 됩니까? 먹을 게 없어서 죽는다는 게.”

 노인은 그저 조용히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루마는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 제국은 말이 제국이지, 영토 절반이 트리볼타 산맥이 차지하고 있어서 농토로 쓸 수 있는 땅이 시데랄리스 왕국보다 적다는 건 아버지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택한 방법이 전쟁이냐? 꼭 그 방법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느냐?”

 잠자코 듣고 있던 노인의 질문에 루마는 쓰게 웃었다.

 “아까 불가침조약을 말씀하셨죠.”

 루마의 이가 으득 갈리며 불협화음을 만들어냈다.

 “그 망할 놈의 불가침조약 때문에, 우리 제국민들이 굶어 죽어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어야했죠. 자그마치 20여 년 간! 그런데도 평화를 고집하는 남편덕분에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 딸은 아버지를 닮아 평화에 취해있는 상태였죠. 7년 전 남편이 갑작스레 쓰러지지 않았다면 어쩌면 황녀가 황제의 자리에 올랐을지도 모르죠. 그러면 제가 죽어도 제국민들은 가난과 배고픔에서 벗어나지 못할 테고.”

 “네가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

 “이기적? 당연히 이기적이죠.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 방법이 옳지 않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요. 아무리 제국민들을 위해서라지만, 황제를 감금했고, 황녀를 죽이려 했고, 이제는 전쟁까지 일으켰으니까요.”

 노인의 말을 끊어버린 루마의 두 눈은 광기와 슬픔으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언젠가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겠지요.”

 노인은 그 모습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루마는 마지막으로 아르데오의 불꽃을 흘깃 바라보더니, 이내 노인과 불꽃을 뒤로 하고 성당의 입구로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닙니다. 아직은 죽을 수 없습니다. 고통 받는 제국민들이 없어질 때까지는...... 아직은......”

 말끝을 흐린 그녀가 성당의 문고리를 잡는 순간, 노인이 입을 열었다.

 “대가를 치를 날이 언젠간 오겠지......라. 그 날이 두려워서 기도를 한 게냐?”

 문고리를 놓아버리고 천천히 몸을 돌린 그녀는 불꽃을 마주한 채 앉아있는 노인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렇다면 돌아 오거라. 교단으로. 황후의 자리를 내려놓고 엘타를 돌아오게 하고 황제폐하와 황녀님에게 잘못을 빌어라.”

 노인의 제안에 루마는 미소 지었다. 그 슬프고도 자조적인 웃음을 노인은 볼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습니다, 아버지.”

 “......고얀 것. 끝까지 아비 가슴에 못을 박는구나.”

 루마 역시 노인의 뺨에 흐르는 투명한 액체들을 볼 수 없었다.

 “어쩌면 이번이 아버지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모릅니다.”

 그 말에 황급히 몸을 돌린 노인의 눈에는 이미 성당을 빠져나가는 루마의 뒷모습만이 닫히는 문 사이에 놓여있었다.

 “루마!”

 “죄송합니다. 못난 딸이라서.”

 마지막으로 남겨진 말과 동시에 문이 닫혔다. 성당 안에 남겨진 건 빈 의자들과 노인, 그리고 끝이라는 걸 모르는 불꽃이 전부였다. 두 손바닥을 마주하고 아르데오의 불꽃을 보며 기도하던 노인은 이내 그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더욱 짙어지는 어둠 속에서, 불꽃만이 흩날리고 있었다. 그 어둠과 불꽃의 틈을 비집고 흘러나오는 건, 자신이 알고 있던 딸의 모습을 잃어버린 한 남자의 슬픔이었다.

 

 

 

 

 난쟁이들의 왕 브뤤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물건을 찬찬히 뜯어보고 있었다. 넓은 탁상 위에 놓인 것은 다름 아닌 은은한 빛을 뿜어내고 있는 보석이었는데, 보면 볼수록 브뤤의 얼굴은 어두워져만 갔다. 그리고 브뤤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게 아투스의 마력이 담긴 보석이다, 이 말인가?”

 “그렇습니다.”

 간단하게 대꾸한 아테란이 고개를 끄덕이자, 브뤤은 보석을 그의 앞으로 밀며 말했다.

 “혹시 자네가 다른 마도구를 만들 때도 아투스가 이렇게 보석에 마력을 불어넣어주었나? 자네는 그 보석으로 마도구를 제작 한 거고?”

 “그렇습니다만.”

 순순히 대답하는 아테란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브뤤은 처음보다 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투스가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나 보군. 다른 보석에 얼마나 마력을 불어넣어주었는지는 몰라도, 자네가 만든 마도구들은 영구적으로 작동한다고 했지? 그건 그만큼 엄청난 마력이 들어갔다는 말이네.”

 딱딱하게 굳어진 아테란의 얼굴을 보며 브뤤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아무것도 몰랐나보군. 드래곤이 마력을 어딘가로 내보낸다는 것은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야. 자네가 마도구를 만들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됐지?”

 “제가 태어난 지 십여 년이 지난 후니까...... 이십여 년 쯤 된 것 같습니다.”

 “......드래곤이, 그것도 해츨링이 서른 살 밖에 먹지 않았다는 건, 인간이나 난쟁이의 나이로 따지면 이제 겨우 세 살에 불과하네. 하지만 자네는 웬만한 드래곤과 다를 바가 없어. 마법만 쓰지 못한다 뿐이지.”

 “그게 무슨......"

 혼란에 빠진 아테란에게 브뤤이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다른 해츨링에 비해 훨씬 조숙하다, 이 말일세. 아투스가 마력을 보석에 불어넣었고, 그 보석으로 마도구를 만든다고 오랜 시간 보석을 다뤄왔던 자네에게 자연스레 보석의 마력이 흘러들어갔겠지. 그 과정에서 자네의 정신과 육체는 급성장했고.”

 “아버지의 마력이 흘러들어왔다고 제가 이렇게 됐다고요? 말도 안 됩니다. 육체는 그렇다 쳐도 마력을 공급받았다고 여러분들과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요? 이건 그냥 이른 나이부터 대륙을 떠돌아다니며 자연스레 언어들을 익혀서 그런 게 아닐까요?”

 “마력을 뭐로 생각하는 건가? 마력은 말 그대로 힘이다. 단순히 성장촉진제 같은 느낌이 아니란 말일세. 그리고 아투스는 오랜 세월을 살아온 드래곤이다. 물론 드래곤 중에서 가장 강하지도, 오래 살지도 않았지만 그가 터무니없이 강대한 존재인 건 부정할 수 없지. 그런 그의 마력을 간접적으로 받은 자네는 그가 쌓아온 지식과 힘의 일부분을 받은 거나 다름없어.”

 아테란은 잠시 멍하니 브뤤을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저는 말 그대로 마법을 쓰지 못합니다. 아버지의 마력을 간접적으로 받았다면 제가 무슨 마법이라도 쓸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쓰고 있잖나. 폴리모프.”

 그 말에 할 말이 없어진 아테란은 입을 꾹 다물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런 아테란을 뒤로하고 브뤤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정말 걱정이군. 아투스가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많은 마력을 사용했는지는 몰라도, 분명 아투스의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닐 텐데. 게다가 이런 시기에 30년 전과 같은 대전쟁이 다시금 일어난다니......”

 문득 브뤤은 무언가가 생각난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레아, 자네는 아까 왜 아투스에게 악마들에 관해서 말하지 않았나. 한시가 급한 상황이 아닌가.”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을 한 건 레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우선은 난쟁이들을 구출해야 하는 게 우선이다, 아투스와 테사나는 할 일이 있다고 말했으니 괜한 걱정을 끼칠 필요 없다. 우리끼리 구출하고 그들과 합류하자, 라고 말씀하신 분은 브뤤님이십니다만.”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꼬고 있던 아우카의 말에, 브뤤은 머리를 긁적였다.

 “뭐 그건 맞지만...... 역시 한마디 정도는 해 줬으면 어떨까 싶어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네요.”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루넬리아의 말에 브뤤과 아우카는 어이없어하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가 이상하다는 건가?”

 “밑도 끝도 없이 무슨 말이에요, 루넬리아.”

 그들의 핀잔에도 개의치 않고 루넬리아는 꿋꿋이 말을 이어나갔다.

 “난쟁이들의 실종이요.”

 “악마들이 일을 꾸민 거라는 게 밝혀지지 않았나.”

 브뤤이 의아해하자, 루넬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사람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역시 루넬리아씨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황녀님마저......”

 아우카가 옅은 탄식을 내뱉었다.

 “아테란이 악마에게 정보를 얻어냈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음. 대악마 팔시타스가 대륙을 침공하기 위해 난쟁이들의 기술이 필요하니 자신들에게 난쟁이들을 데려오라고 명령을 내렸다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악마가 말했었죠.”

 “그리고 난쟁이들의 기술이 필요한 이유까지는 모르겠다고 했고요.”

 “난쟁이들이 붙잡혀간 위치 역시 모른다고 했고. 이렇게 되짚어보니 알아낸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은 것 같구먼.”

 아우카와 루넬리아, 브뤤이 차례대로 대답하자, 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그게 아닙니다.”

 의아해하는 브뤤과 아우카에게 레아가 말했다.

 “브뤤님. 난쟁이들은 대장장이기도 하지만, 훌륭한 전사이기도 합니다. 맞습니까?”

 그 말에 브뤤은 자랑스러운 듯 미소 지으며 자신의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암. 우리 대장장이들은 훌륭한 전사지. 스스로의 무기를 만들고 손질하니까.”

 “그렇다면 왜 아무런 저항 없이 끌려갔죠? 난쟁이들이 실종된 장소에는 아무런 전투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브뤤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내가 미처 그걸 생각 못했군. 아까 그 악마들 정도라면 우리 형제들이 그리 쉽게 당할 리가 없건만.”

 “좀 더 강한 다른 악마들이 왔다 갔던 게 아닐까요?”

 아우카의 말에 루넬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아우카. 아무리 강한 악마들과 붙었더라도 전투의 흔적이 남기 마련이죠. 그렇지만 브뤤님이 실종된 난쟁이들이 마지막으로 있던 공방들을 돌아다니셨다고 했을 때는 아무 흔적도 없다고 했어요.”

 “그럼 도대체 누가 그런 일을 벌인 거란 말이지? 팔시타스가 명령을 내렸다는 걸 알게 됐지만 그가 직접 움직였을 리가 없고. 아무리 봐도 아까 레아가 쓰러트린 악마들이 난쟁이들을 납치했다고 생각되지도 않고. 다른 강한 악마들을 시켰다 하더라도 반드시 흔적이 남기 마련이건만.”

 브뤤이 말을 끝맺자, 아테란이 입을 열었다.

 “......브뤤님. 아까 그 악마들의 시체는 아직 그곳에 있습니까?”

 “응? 우리 형제들을 보내서 묻어주라고 했다만. 지금쯤이면 도착했겠군.”

 아테란의 얼굴이 굳어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우카님. 루넬리아님. 두 분은 저를 좀 따라 와주시겠습니까.”

 레아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브뤤님과 저는 왜 빠지는 거죠?”

 “제 생각이 들어맞는다면......”

 아테란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직접 나선 겁니다. 그리고 황녀님과 브뤤님은 ‘그녀’를 상대하실 수 없습니다.”

 “......‘그녀’가 누군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마물들 중 제 검을 피해간 이들은 없었습니다. 제 실력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황녀님.”

 아테란의 목소리가 굳다 못해 서늘해졌다.

 “황녀님의 실력은 잘 압니다. 지금까지 쓰러트리신 마물들 중 꽤나 강한 마물들도 있겠지요. 그래도 황녀님은, 이런 말을 드리기 죄송합니다만 마물에 관해서는 아직 우물 안 개구리나 다름없으십니다. 결정적으로 ‘그녀’는 몽마(夢魔)입니다.”

 “몽마......요?”

 레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 역시 그 이름을 얼핏 들어 알고 있었다. 인간들의 꿈에 나타나 정기를 흡수한다는 악마들. 그리고 그 정기를 흡수하는 과정은...... 레아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야릇한 생각을 애써 지우려 고개를 흔들었다.

 “그......그렇지만 그들은 몽마잖아요. 꿈이 아닌 현실인데 그들이 제 상대가 될까요? 게다가 몽마는 악마보다 약하다고 들었는데요. 게다가 아까 상대했던 악마들은......”

 “터무니없이 약했는데, 그보다 약하다고 알려진 몽마들은 보지 않아도 뻔하다 뭐 이런 말씀이십니까?”

 아테란이 말을 잇자, 레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테란은 가볍게 한숨을 내뱉었다.

 “황녀님. 혹시 인간들의 서적에 기술된 몽마들의 특징을 기억하십니까?”

 “특징이요? 마계에 살지만 인간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정기만 흡수하며 살아간다. 그러고 보니 30년 전 대전쟁에 참전하지 않은 몇 안 되는 마족 중 하나가 그들이었죠.”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셨습니다. 그래도 우선 황녀님이 읽으셨던 서적을 이번 상황에 대입해볼까요. 황녀님이 알고 계시는 일반적인 상식을 대입해 봤을 때,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 드십니까?”

 “......그러고 보니 그들이 어째서 대악마를 돕죠? 30년 전에는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으면서? 아니, 잠시만. 그것보다 아테란은 난쟁이들을 납치한 이들이 어째서 몽마라고 확신하고 계시는 거죠? 무엇보다 그들의 특징만 보면 난쟁이들을 납치할 수 있는 힘이 있는지 의심스러운데요. 무엇보다 제가 이길 수 없는 조건도 없고.”

 “그야 인간들에 의해 써진 서적이니까요. 실제로 제가 아는 몽마는 인간에게 해는 끼치지 않아도 강대한 종족들입니다. 황녀님이 읽으셨던 것처럼 꿈에서만 그들의 능력이 발현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꿈과 정신을 지배하는 능력이. 그리고 그 능력이면 많은 난쟁이들도 문제없이, 조용하게 끌고 갈 수 있겠죠.”

 “그렇지만 그들은 전혀 몽마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무엇보다 브뤤님을 무력으로 끌고 가려 했어요. 아테란의 말대로 그들이 몽마라면 다른 방법을 썼겠지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황녀님이 악마들을 베실 때도,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악마에게 정보를 캐낼 때도 정신조종을 당하고 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으니까요. 그러나 ‘그녀’가 그저 중간에서 팔시타스라는 이름을 이용만 했다면? 팔시타스의 명령을 중간에서 전달만 해주는 역할이었다면?”

 “......정신 조종도 하지 않고, 그저 명령만 건넨 셈이 되겠네요. 하지만 어째서 다른 곳에 몽마들을 보내다가 이번에는 악마들을 보낸 걸까요.”

 아테란이 무어라 대답하려는 순간, 둔탁한 소리와 함께 브뤤의 주먹이 탁자 위에서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은 몽마들에게 홀려서 끌려갔다, 이 말인가?”

 브뤤의 말에 아테란은 고개를 끄덕였고, 난쟁이 왕의 주먹이 다시 한 번 탁자를 강타했다.

 “이 망할 놈들이! 고작 몽마에 홀려서 제 발로 잡혀갔다고? 감히 왕을 생고생을 시켰겠다! 돌아오면 맥주 한 방울 조차 금지시켜주지!”

 아우카와 루넬리아는 간신히 웃음을 참고 있었고, 레아는 끅끅대며 조용히 웃고 있었으며, 아테란 역시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브뤤님이라도 매혹에 걸리셨을 겁니다. 애초에 인간과 난쟁이는 마나를 잘 다루지 않는 종족이니 성기사나 마법사를 제외하고는 항마력이 낮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그녀’는 ‘고작’ 몽마 따위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녀‘가 어째서 대악마에게 협력하는 건지......”

 레아는 손을 들어 아테란의 막을 막았다.

 “저, 아테란. 아까부터 그녀 그녀 하는데 도대체 그녀는 누구......”

 아테란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이름은 헤르키나.”

 아테란이 얼굴이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격류에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몽마들 중 여성형 몽마들이라 불리는 서큐버스(Succubus)들의 여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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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국의 황녀 (1) 2017 / 11 / 22 533 2 5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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