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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황녀는 날지 않는다
작가 : 여름별밤
작품등록일 : 2017.11.22

오래 전, 대악마 튀란누스에게 대륙이 짓밟히는 것을 막기 위해 네 명의 영웅들을 필두로 많은 이들이 목숨을 걸고 맞섰다. 이름도 종족도 달랐던 그들이 끝내 대악마를 쓰러트린 후 대륙은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그렇게 꼭 30년이 흘렀다. 대전쟁의 네 영웅 중 하나인 제국의 황제 아르도르의 딸 레아는 자신을 암살하려는 2황후 루마에게 벗어나 제국을 떠돌고 있었다. 그러나 황궁 밖에서도 자신을 향한 암살위협이 점점 거세지던 그 때, 레아는 뜻밖의 만남을 가지게 되고, 30년 전 일어났던 대전쟁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파멸이 다가옴을 알게 되는데......

 
난쟁이들의 왕 (1)
작성일 : 17-11-26 19:58     조회 : 307     추천 : 0     분량 : 7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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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원의 아침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바람만이 불고 있었다. 그 고원에서 제국군이 대열을 맞춰 질서정연하게 서 있었다. 창끝에 햇빛이 반사되며 부서졌다. 그 앞에 서 있던 카탄은 그 광경을 잠시 지켜보다가 뒤로 돌아섰다. 몇 명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카탄은 그 중 검은 단발머리의 여성의 두 손을 꼭 잡았다.

 “몸조심하십시오, 황녀님. 다른 분들도요.”

 “카탄이야말로. 빠른 시일 내에 돌아올게요. 그때까지......”

 “걱정 마십시오. 언제든지 수도로 진군할 수 있도록 준비해놓겠습니다.”

 레아를 잠시 바라보던 카탄은 이내 곁에 있던 말에 훌쩍 올라타고는, 그대로 달려 나갔다. 그 뒤를 제국군은 일사불란하게 쫓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레아는 입을 열었다.

 “테사나님과 아투스님과도 여기서 헤어져야 하네요. 아쉽군요.”

 “어차피 다시 만날 건데 무슨 걱정인가. 뭐, 이런 말하기도 뭐하다만.”

 잠시 머리를 긁적이던 아투스가 레아에게 말했다.

 “내 아들을 잘 부탁하네.”

 “......한 사람 몫은 합니다, 아버지.”

 “일행에게 짐이나 되지 마라.”

 옥신각신거리는 두 사람에게 테사나가 핀잔을 주었다.

 “시간이 없어, 아투스. 한시가 급해.”

 그 말에 아투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허공에 손을 그었다. 공간이 출렁이며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레아와 아테란, 아우카와 루넬리아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인 아투스는 공간 안으로 사라졌다. 테사나는 울상을 지으며 아우카와 루넬리아를 끌어안았다.

 “너희도 같이 가면 좋겠지만......”

 그런 테사나를 마주 안으며 아우카와 루넬리아가 대답했다.

 “시간이 없다고 하셨잖아요. 빨리 가 보셔야죠.”

 “맞아요. 우리 걱정은 하지 말고 조심히 다녀오세요.”

 테사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곁에 있던 거대한 흰 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돌아가렴, 눈송이. 고생 많았어.”

 눈송이는 헤어지기 아쉽다는 듯 몇 번 낮은 목소리로 울다가, 이내 하늘로 솟구쳐 오르며 하늘 저편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런 눈송이를 잠시 바라보던 테사나는 네 명의 남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당신들에게 포레스티스의 축복이 있기를.”

 그 말과 함께 그녀의 모습도 사라졌다. 원래부터 네 명의 남녀만 있었던 것처럼 고원은 조용한 바람만이 불어오고 있었다. 잠시간 흐르던 적막함을 걷고 레아가 입을 열었다.

 “가 볼까요.”

 그 말에 아테란은 세 명의 여성에게서 떨어져 어디론가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들 사이가 꽤 멀어졌을 때 즈음, 아테란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그러자 아테란의 얼굴과 몸이 꿈틀거리는 듯 싶더니, 어느새 레아와 아우카, 루넬리아의 앞에는 거대한 블랙 드래곤 한 마리가 대지 위에 네 다리를 딛고 서 있었다.

 “잠시 실례.”

 웅장하게 고원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와 함께 아테란의 긴 꼬리가 휙 하고 움직이더니 아우카를 휘감았다.

 “꺅!”

 짧은 비명과 함께 아우카는 허공으로 들어 올려졌다. 아테란은 그녀를 자신의 등 위로 조심히 내려놓았다. 차례로 루넬리아와 레아 역시 그의 등 위로 옮겨졌다. 등에 옮겨진 직후 루넬리아는 양 손을 들어 무어라 중얼거렸고, 이내 세 사람 주위로 무언가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투명하고 아름다운 작은 소녀의 모습들이 까르륵거리며 그들을 감쌌다.

 “루넬리아씨......이건?”

 “실프들입니다. 우리가 아테란님의 등 위에서 바람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보호해 줄 겁니다.”

 “출발합니다.”

 그 말과 함께 블랙 드래곤은 창공을 향해 날아올랐다. 흡사 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는 모습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지상의 풍경이 아테란의 등 위에 있던 세 사람의 눈에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루넬리아가 불러낸 실프들로 인해 그들의 주위에는 정령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잔잔한 바람이 세 사람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정말 일곱 주인이 강림하는 것일까요.”

 아우카가 담담하게 물음을 던지자, 루넬리아가 핀잔을 주었다.

 “저보고는 여왕님을 못 믿겠냐고 물으셨던 분이 걱정이 생기셨나요?”

 그 말에 아우카는 쓰게 웃었다.

 “그렇긴 하네요. 하지만 마나가 뒤틀린다니. 그리고 여왕님과 드래곤 로드께서 30년간 마나의 뒤틀림을 막으러 돌아다니셨다면 우리가 왜 그걸 눈치 채지 못했죠? 마나의 흐름이 뒤틀렸다면 이상한 점이 있었을 텐데.”

 “여기 마법을 쓰지 못 하는 용이 있지 않습니까.”

 레아의 조용한 대답에 두 엘프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러나 이내 아우카가 반박에 나섰다.

 “그렇지만 아테란님만 가지고 마나의 흐름이 뒤틀렸다고 하기에는 너무 증거가 적지 않습니까.”

 이번에는 레아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루넬리아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황녀님을 너무 몰아붙이지 마세요, 아우카. 확실히 마나가 뒤틀려있다고 하기에는 30년 동안 이 세계는 너무나도 평온했어요. 이상 징후 역시 보이지 않았고. 하지만 드래곤 로드 정도 되는 존재조차 그 원인을 알지 못했어요. 그리고 그가 마나의 흐름을 바로 잡아갔기에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 못 했던 거고. 그러나 드래곤 로드라도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러기에 아테란님같은......”

 루넬리아는 머뭇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돌연변이가 태어난 거죠.”

 아테란의 목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루넬리아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무례함을 범했군요. 죄송합니다.”

 그 말에 아테란은 담담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닙니다. 사실인데요 뭐. 그나저나 제 등을 꽉 붙잡으세요. 거의 다 왔습니다.”

 그 순간 아테란의 등 위에 타고 있던 세 사람은 아테란의 급격한 하강에 비명을 지르며 중심을 잃었지만, 실프들의 도움으로 수십 미터의 창공에서 추락하는 불상사는 겪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공포에 질려 눈을 꼭 감고 있는 셋에게 아테란이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세 사람이 눈을 뜨자 거대한 나무들 사이로 곳곳에 무너져있는 돌덩이들이 보였다. 아테란의 등에서 제일 먼저 내린 아우카가 근처에 있던 돌덩이를 유심히 보았다. 뒤이어 내린 레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아우카씨, 뭘 관찰하시고 계신 거죠?”

 “......이건 난쟁이들의 습작이군요.”

 “습작이요?”

 “이걸 보세요.”

 아우카가 가리킨 돌덩이는 놀랍게도 정교하게 새겨진 사람의 얼굴이었다. 부리부리한 눈과 덥수룩한 수염이 인상적인 조각이었다.

 “이게 습작이라니. 난쟁이들의 손재주는 정말 대단하군요.”

 루넬리아가 감탄하며 그것을 들여다보자, 어느새 소년의 모습으로 돌아온 아테란 역시 그것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뭔가 이상한데.”

 “뭐가요?”

 의아해하는 레아에게 아테란은 조각에 눈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보통 난쟁이들이 습작을 만들 때는 사람의 모습을 새겨 넣지 않습니다. 습작이란 것은 만들고 부수어질 운명이니 자신들의 모습을 새겨 넣는 것을 꺼려하죠. 보통 동식물들의 모습을 새겨넣기 마련인데. 게다가 이건 습작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정교합니다.”

 “......그런 건 어디서 배우신 거죠?”

 루넬리아의 감탄이 섞인 물음에 아테란은 하하 웃었다.

 “평소에 대륙을 돌아다녔던 경험에서라고 해둘까요? 어쨌건.”

 아테란의 표정이 굳어졌다.

 “뭔가 예감이 좋지는 않네요. 여러분, 혹시 주위에도 이런 모양의 조각이 부서져 있는지 확인해 주실 수 있나요?”

 그 말에 세 명의 여자는 주위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 외에 사람의 얼굴이 새겨져있는 돌덩이는 보이지 않았다. 아테란은 손가락으로 볼을 톡톡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그냥 착각인가.”

 그 순간, 아우카가 레아를, 루넬리아가 아테란을 잡고 옆으로 몸을 굴렸다. 그들이 서 있던 자리로 거대한 불꽃이 떨어지며 나뭇잎들과 가지들이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타들어갔다.

 “이게 무슨......!”

 레아가 재빨리 검을 빼들었고, 아우카는 화살을 메겼으며 루넬리아는 양 손을 들었다. 그들의 주위로 실프들이 몰려들었다. 아테란은 그 가운데에서 머쓱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거 참. 제가 공주라도 된 기분이군요.”

 레아는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고, 아우카는 활을 놓칠 뻔 했으며 루넬리아는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간신히 중심을 잡은 그녀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다짜고짜 공격을 퍼붓는 무례한 분은 누구시죠?”

 그 말에 어디선가 낮고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쟁이들의 영토에 허락 없이 발을 들인 이들에게 답해주고 싶지는 않군.”

 “우리는 드래곤 로드와 엘프퀸의 명을 받고 브뤤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레아가 항의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네 사람의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뭐? 드래곤 로드? 그 도마뱀들의 왕이랍시고 깝죽대는 녀석을 말하는 건가?”

 그 말에 아테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간도 크군. 드래곤이 어떤 존재인지는 잘 알 텐데. 하물며 드래곤들의 왕의 이름을 모욕하는 건가.”

 “그건 붙어봐야 아는 거고, 보아하니 아직 백 살도 먹지 않은 해츨링으로 보이는데, 너 정도는 가뿐하다, 이놈아.”

 “쥐새끼마냥 숨어있지 말고 나온 뒤에 말씀하시지?”

 아우카가 참지 못하고 으르렁거리자, 알 수 없는 목소리는 껄껄대며 대꾸했다.

 “으하하하하! 화끈한 아가씨로군!”

 그와 함께 나무 뒤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네 일행 중 가장 키가 작은 레아와 비교해도 그녀의 허리 절반을 간신히 넘는 신장에, 활동하기 편한 가죽옷을 입고 있었고 덥수룩한 붉은 수염과 쾌활함이 묻어나는 검은 눈동자가 인상적인 작은 남자였다. 한 손에는 나무를 잘 깎아 만든 지팡이를 들고 있었는데, 그 지팡이의 끝에는 붉게 빛나는 보석이 박혀있었다.

 “그래, 난쟁이들의 공방에 온 자네들은 누구인가? 손님이 온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만.”

 “여기가 역시 공방이었군? 아니 그보다 손님인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무지막지한 공격을 날렸단 말이야?”

 아우카가 화를 내자 그는 껄껄 웃으며 대꾸했다.

 “그렇게 화를 내면 예쁜 얼굴이 망가진다네, 엘프 아가씨. 그리고 내가 날린 불덩이가 신경 쓰였다면 미안하네. 요즘 공방에서 난쟁이들이 실종되고 있어서 말이야.”

 “......우리가 난쟁이들을 납치하러 왔다면 어떻게 하실 거죠?”

 루넬리아가 조용히 묻자 남자는 지팡이를 들지 않은 손으로 턱을 문지르며 대꾸했다.

 “미안하지만 내가 들은 납치범들이 엘프라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네.”

 “그럼 왜 우리를 공격한 거죠? 우리가 납치범이 아니라는 건 진즉에 알고 있던 모양인데.”

 레아의 물음에 남자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몸이 근질근질해서라고...... 말해두지.”

 그 대답에 레아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고, 아우카는 말없이 활을 들어 쏘려 했으며, 루넬리아는 그런 그녀의 팔을 황급히 붙잡았다. 아테란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짓더니, 으르렁거리며 남자의 멱살을 붙잡았다.

 “살다 살다 이런 미친 난쟁이는 처음 보는 군. 난쟁이들은 고집이 세고 오만한 면이 있기는 해도 너 같이 심심하다고 아무에게나 불덩이를 날리는 난쟁이는 없어!”

 남자는 당황하지 않고 여전히 웃으며,

 “호, 해츨링 주제에 우리 종족에 대해 잘 아는 군?”

 이라고 대답하자 아테란은 기어이 화를 내고 말았다.

 “아까부터 계속 해츨링 해츨링 거리는데......!”

 그런 아테란을 무시하며 남자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럼 해츨링이 아닌가? 아까 날아오는 것을 보니 제법 크긴 했다만 아무리 봐도 성체는 아닌......어이쿠!”

 화가 머리끝까지 난 아테란이 잡고 있던 남자를 번쩍 들어 집어 던지려는 순간, 레아와 아루넬리아가 재빨리 그의 허리를 잡았다.

 “참아요, 아테란!”

 “여기서 소란을 벌이시면 안 됩니다!”

 아우카는 짧게 혀를 차며 한 마디를 던졌다.

 “그냥 집어던져버려요.”

 그녀를 째려보는 루넬리아를 뒤로 하고 레아가 아테란의 손에서 내려온 남자에게 말했다.

 “초면부터 너무 무례하시군요. 아까 말했다시피 우리는 당신들의 왕을 만나러 왔습니다. 난쟁이들이 납치되었다는 건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지금 우리는 한시가 급합니다. 당신과 장난할 시간도 없고요. 우리를 왕께 안내해주시지요.”

 옷을 툭툭 털고 있던 남자가 레아를 바라보았다. 검은 두 눈동자는 여전히 장난기로 가득 차 있었다.

 “왜 왕을 만나려는 거지?”

 “......왕만이 알고 계셔야 하는 일입니다. 함부로 떠벌릴 수는 없습니다.”

 “허허 이것 참. 단호한 아가씨로군.”

 입맛을 다시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왕께 안내해주지.”

 그 말과 함께 남자는 몸을 돌려 앞장섰고, 레아는 일행에게 눈짓을 보냈다. 여전히 씩씩거리던 아테란과 그를 다독이고 있는 두 엘프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지만, 어쩔 수 없이 레아를 따라나섰다. 그 순간이었다. 그들의 주위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공간 자체가 생명을 지닌 채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그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공간 이동?”

 “로드와 여왕님이 벌써 오신 걸까요?”

 아우카와 루넬리아가 의아하게 그 광경을 보고 있자, 아테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버지의 공간 이동 마법진은 이렇게 크지 않은......”

 아테란은 말을 잇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일그러진 공간에서 날카로운 창이 불쑥 솟아오르더니, 이내 검은 갑옷이 그의 앞에 서 있었다. 그러나 투구는 없었다. 평범한 인간 남성처럼 보였으나, 이글거리는 붉은 눈과, 머리에 솟은 두 뿔이 인상적이었다.

 “악마......”

 레아가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30년 전 대전쟁이 끝나고 비유처럼 쓰이게 된 용어였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니었다. 어느새 일행 주위를 몇 명의 악마가 둘러싸고 있었고, 맨 처음 아테란의 앞을 막아선 붉은 눈의 악마가 입을 열었다.

 “네놈들은 난쟁이가 아닌데.”

 “......뭐냐 네놈은.”

 아테란의 물음에 악마는 들고 있던 창을 그에게 겨누었다.

 “질문은 내가 한다. 네 놈이야말로 누구지? 이곳은 난쟁이들의 왕국인데. 뭐, 상관없나. 난쟁이가 아닌 놈들은 전부 죽여 버리면 그만이니.”

 “그게 무슨 소리......”

 아테란이 눈썹을 찌푸리며 되묻는 순간, 어디선가 낮고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놈들이었군. 우리 종족들이 하나 둘 사라지던 이유가.”

 아테란과 악마가 눈을 돌리자, 그 곳에는 지팡이를 든 난쟁이가 서 있었다. 그의 두 눈이 분노에 휩싸인 채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우리 종족들을 어디로 데려갔지?”

 악마가 귀찮다는 듯 그를 창끝으로 가리키자, 일행을 둘러싸고 있던 악마들 중 몇이 난쟁이에게 다가갔다.

 “역시 그 전에 데려간 곳에는 잘 오지 않는군. 없는 대로 저놈만이라도 데려가라.”

 악마가 그렇게 말하던 순간, 난쟁이가 들고 있던 지팡이의 끝에서 불꽃이 일어났다. 불꽃은 이내 급격하게 몸을 불리며 커지더니 순식간에 그의 주변에 있던 악마들을 집어삼켰다. 그 모습을 본 남은 악마들이 난쟁이들의 주위를 둘러쌌고, 붉은 눈의 악마 역시 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샐러맨더(Salamander)......? 정령사였나? 비켜라. 내가 직접 상대한다.”

 막 걸음을 옮기던 악마에게 누군가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이봐.”

 악마가 고개를 돌리자, 레아가 두 손으로 검을 짚은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선택지를 두 가지 주겠다. 첫 번째는 얌전히 너희가 온 목적을 밝히고 편안하게 죽는 것. 두 번째는 말하지 않고 버티다가 죽을 만큼 두드려 맞고 목적을 밝히는 것. 어떤 걸 택하겠어?”

 잠시 할 말을 잃은 채 그녀를 바라보던 악마는 이내 으르렁거리며 그녀에게로 발을 내딛었다.

 “겁도 없이 감히 누구에게......!”

 순간, 악마는 순백의 섬광이 자신의 눈앞에 번쩍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다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짙고 공허한 어둠이었다. 머리를 잃은 갑옷은 휘청거리다가 이내 피를 뿜으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남은 악마들은 당황하며 그녀에게 창끝을 겨누었다. 검에 묻은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악마들을 마주 보며 레아가 말했다.

 “지난 5년간.”

 그녀의 검신에 서서히 붉은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검으로 누군가를 죽인 적이 없었어. 심지어 나를 죽이러 온 암살자들조차 살려 보냈지.”

 그리고 레아가 방긋 웃었다. 아테란과 아우카, 루넬리아는 온 몸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악마들조차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건 미소가 아니었다. 사냥감을 눈앞에 둔 맹수가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난 '악마'들에게까지 관대했던 적은 없어.”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붉은 섬광이 악마들을 향해 쏘아져나갔다. 섬광의 주위로 피가 흩뿌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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