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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일반/역사
나는 김구다! 제2부 - 홍구공원 1932, 백범 김구
작가 : 과하객
작품등록일 : 2017.11.22

'나는 김구다!' 제2부의 연재를 다시 시작합니다. 전날 천붕을 당해 의욕이 꺾였던 글인데 권유가 있어 다시 써보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에 가장 조심스러운 부분이 인물의 명예에 누를 끼치는 일인데, 혹시 아니다 싶은 부분이 보이거든 가차없는 질책을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21. 상해의 김구 2
작성일 : 17-11-23 16:09     조회 : 423     추천 : 1     분량 : 4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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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상해의 김구 2

 

  -백장군 백광운이 암살되었다 합니다.

  -징계가 필요해요. 그는 그렇게 죽어서는 안 될 사람입니다.

 

  본명이 채찬인 백광운은 백마장군의 전설을 만든 장수 중 하나였다. ‘돼지 족발을 뼈째 씹어 먹는 장사’로 백마를 즐겨 탔던 백광운은 참의부의 참의장을 겸한 제1중대장으로 한만국경의 맹장이었다. 성격이 강직하여 적수가 많았지만 애국의식이 투철한 지사로 임시정부의 방침을 충실히 따랐는데 통의부가 분열하여 의군부와 참의부로 개편될 때 통의부 6중대장으로 남은 문창빈(文學彬) 휘하 백병준(白炳俊)과 백세우(白世雨)에 의해 암살된다.

  문창빈은 후에 왜적에게 귀순한 자로 백광운의 암살은 왜적의 사주를 받은 반역이었다. 백장군이 비명에 갔다는 소식을 접한 선생은 수하 김당쇠에게 백의대의 정예를 주어 처리를 명했다.

 

  -백병준과 백세우에게 응분의 값을 치르게 하였습니다.

  -문창빈은?

  -왜적에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현재 통화현에서 농농하농장(濃濃河農場)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직접적인 하수자가 아님으로 살려두었는데, 처치를 명령해 주십시오.

  -그는 통의부의 6중대장으로 공훈을 세운 게 많으니 아직 살려 두세요. 차후 하는 일을 보아 징치하도록 하십시다.

 

  백광운의 죽음은 한만국경 일대 임시정부 무력의 예봉이 꺾인 것과 같았다.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은 백장군의 죽음을 기사로 실어 애도했고, 선생은 사람을 보내 암살범들을 벌해 매국적들의 최후가 어떠한 것인가 증명했다.

 

  -정창화를 잡아 왔습니다. 그는 김가진선생의 사돈인데 어찌 처리할까요?

  -지금은 비상시국입니다. 전시에는 군법이 우선입니다. 군법은 적의 간자는 사형에 처하라 되어 있습니다.

 

  경무국장 시절의 선생을 도운 이로는 안중근의 사촌동생인 안경근(安敬根)과 경호부장을 지낸 여순근(呂淳根)이 있다. 선생이 내무총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 경무국장을 이은 손두환(孫斗煥)은 군법국장으로 선생을 보좌했다.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과 출신인 손두환은 왜적의 간자 노릇을 한 자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건의하곤 하였다.

  동농 김가진(金嘉鎭)은 예조판서 김응균의 아들로 병자호란 때에 강화성에서 순절한 문충공 선원 김상용의 11대손이다. 내무대신, 주일공사 등의 고위직을 역임한 김가진은 합병 후 남작의 작위를 받지만 의친왕 망명사건을 주도하는 등의 독립운동 끝에 상해로 망명하는데, 그의 상징성에 눈독을 들인 총독부는 아들 의한의 처사촌 오빠 정창화를 보내 귀순작전을 벌리다가 임정 경무국의 정보망에 걸려 허사가 된다.

  선생이 내무총장이 된 후 경무국장의 자리는 손두환(孫斗煥) 나창헌(羅昌憲)으로 이어졌다. 임정 경무국은 공식 경무국원들과 비공식 백의대로 이원화되어 선생의 의중에 따라 국내외를 다스리고 왜적의 처단과 밀정의 색출을 담당했다. 선생은 백범일지 하권에 왜적의 사주를 받은 밀정들과 임시정부 경무국의 대결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내가 5년간 경무국장을 하는 동안에 생긴 기이한 일을 일일이 적을 수도 없고 또 이루 다 기억도 못하거니와 그 중에 몇 가지만을 말하련다.

  고등 정탐 선우갑을 잡았을 때에 그는 죽을죄를 깨닫고 사형을 자원하기로, 장공속죄를 할 서약을 받고 살려 주었더니 나흘 만에 도망하여 본국으로 들어갔다.

  강인우는 왜 경부로 상해에 와서 총독부에서 받아 가지고 온 사명을 말하고 내게 거짓 보고 자료를 달라 하기로 그리하였더니 본국에 돌아가서 그 공으로 풍산 군수가 되었다.

  구한국 내무대신 동농 김가진 선생이 3.1 선언 후에 왜에게 받았던 남작을 버리고 대동당을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아들 의한 군을 데리고 상해에 왔을 적 일이다. 왜는 남작이 독립운동에 참가하였다는 것이 수치라 하여 의한의 처의 종형 정필화를 보내어 동농 선생을 귀국케 할 운동을 하고 있음을 탐지하고 정가를 검거하여 심문한즉 낱낱이 자백하므로 처교하였다.

  황학선은 해주 사람으로 3.1 운동 이전에 상해에 온 자인데 가장 우리 운동에 열심이 있는 듯하기로 타처에 오는 지사들을 그 집에 유숙케 하였더니 그 자가 이것을 기화로 하여 일변 왜 영사관과 통하여 거기서 돈을 얻어 쓰고 일변 애국 청년에게 임시정부를 악선전하여 나창헌, 김의한 등 십 수 명이 작당하여 임시정부를 습격하는 일이 있었으나 이것은 곧 진압되고 범인은 전부 경무국의 손에 체포되었다가 그들이 황학선의 모략에 속은 것이 분명하므로 모두 설유하여 방송하고 그때에 중상한 나창헌, 김기제는 입원시켜 치료를 받게 하였다. 이 사건을 조사한 결과 황학선이가 왜 영사관에서 자금과 지령을 받아 우리 정부 각 총장과 경무국장을 살해할 계획으로 나창헌이 경성의전의 학생이던 것을 이용하여 삼 층 양옥을 세 내어 병원 간판을 붙이고, 총장들과 나를 그리로 유인하여 살해할 계획이던 것이 판명되었다.

  나는 이 문초의 기록을 나창헌에게 보였더니 그는 펄펄 뛰며 속은 것을 자백하고 장인 황학선을 사형에 처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때는 벌써 황학선은 처교된 뒤였다. 나는 나창헌 김의한 등이 전연 악의가 없고 황학선의 모략에 속은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위의 기록에 언급된 나창헌은 후에 임시정부 경무국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선생은 이처럼 개과천선한 이에게는 관대하게 대하여 중용했으나 역적질을 한 자에게는 엄격했다.

  홍구(虹口)의 일본총영사관은 프랑스 조계의 임시정부를 목표로 끊임없이 자객을 보내왔다. 임정 경무국은 요인의 보호를 위해 숱한 희생을 치러야 했는데, 선생은 그 와중에 인재를 가려 내 사람으로 만들고 왜적의 심장에 정보원으로 심는 등으로 고초가 컸다.

  당시의 임시정부는 창조파와 개조파, 임정고수파로 갈려 존립여부가 의심되던 때였다. 대통령 이승만이 미국행 이후의 독단적 행동으로 탄핵을 받았는가 하면, 소련을 배경으로 가진 공산주의자들의 반 임시정부 행보와 국민대표회의파의 임시정부 무용론 등으로 혼돈 중에 있었다. 임시정부는 사실상 선생과 경무국의 힘으로 명목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유일한 무력이라 할 수 있는 경무국을 책임지고 있던 선생의 강공은 어쩔 수 없는 방편이었던 것이다.

  이 무렵 국내는 사이토 총독의 문화정치로 인한 민심의 이반이 시작되고 있었다. 임시정부가 국내의 각 지방에 두어 독립자금의 염출에 도움을 받던 군감 등의 세포조직이 왜적에 의해 무너진 것도 이 시기이다. 와해된 임시정부의 국내 행정조직을 재정비하는 것도 선생의 일이었는데, 왜적의 밀정은 이를 탐지하여 참여 인사들의 귀순을 종용했다. 왜적의 설득에는 가족을 볼모로 한 협박이 뒤따랐으므로 국내에 생활 기반을 두고 있던 인사들은 응할 수밖에 없어 임시정부의 국내 조직은 반신불수가 되었다.

  1923년 9월, 임시정부 일본 정보원은 관동대지진으로 인한 동포들의 희생을 보고했다.

 

  -왜적은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약을 풀고 재물을 약탈하고 여인을 겁탈했다고 거짓 정보를 흘려 학살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관동대지진.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에 도쿄만(東京灣)에서 시작된 진도 7.9의 이 지진은 도쿄와 가나자와, 지바 일대를 폐허로 만들고 20만여 명의 인명피해를 낳는데, 특히 조선인들의 학살이 문제가 된다. 일제는 지진의 피해로 인한 민심을 돌리려는 목적으로 조선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던 것이다.

 

  -일본정부는 각 경찰서에 “재난을 틈타 이득을 취하려는 무리들이 있다. 조선인들이 방화와 폭탄에 의한 테러, 강도 등을 획책하고 있으니 주의하라”라고 전문을 보냈고, 일제의 언론이 가세하여 “조선인들이 폭도로 돌변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약탈을 하며 일본인들을 습격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지진 후 각처에서 벌어진 약탈행위를 모두 조선인들의 죄과로 만들어 학살의 명분을 삼고 있습니다.

 

  사건 즉시 특파된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의 사장 김승학(金承學)은 참사의 현장을 취재하여 보고한 후 다음과 같이 조사를 남겼다.

 

  -나는 피가 끓고 살이 뛰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눈물이 앞을 가리어 붓을 들어 이 보고서를 쓰는 것이 괴롭습니다. 이 처참한 이야기를 듣는 우리 동포 그 누구라도 그렇지 않을까마는, 곳곳에 부패된 우리 동포의 시신을 볼 때마다 몸이 떨리어 참을 수가 없나이다. 아아, 천지가 다한 날이 있은들 우리에게 쌓인 원한이 다할 날이 있겠나이까? 슬프도다, 이 원수를 갚을 자 누구이나이까. 공산명월(空山明月) 야삼경(夜三更)에 두견새가 슬피 울거든 7000명의 우리 동포의 억울한 고혼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외다. 궂은비가 시름없이 내리며 번갯불이 번쩍거리고 어둡고 고요한 그믐밤에 멀리 우레 소리가 울리거든 그것은 왜지(倭地)에서 죽어간 7000명, 아니 7000명 보다 더 많은 우리 동포들의 원혼의 부르짖음인가 하소서.

  아! 아! 봄바람 가을비가 이제로부터 몇 번이나 이르려는가? 다만 원하는 것은 우리의 한 조각 붉은 마음뿐이겠나이다.

 

  당시 전해진 소식에는 왜(倭)의 자경단이 조선인들을 죽인 참상을 ‘그들은 조선인들을 묶어 놓고 쇠갈고리로 눈을 뽑고 왜도(倭刀)로 찔러죽이고 엽총으로 쏘아 죽이고 산 채로 불태우고 여인들을 옷 벗겨 배를 가르고 여러 명을 한데 묶어 물로 밀어 넣어 죽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이 동원된 이 참극을 보고받은 임시정부는 긴급 각의를 열고 경무국장 김구에게 훈령을 내렸다.

  “우리가 할 일을 찾아보시오.”

  선생은 이미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동포들의 시신이 수습되고 그나마 살아남은 동포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시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 선생의 휘하 백의대는 왜에게 보낼 복수의 메시지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 일본은 간담이 서늘할 일을 겪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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