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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일반/역사
나는 김구다! 제2부 - 홍구공원 1932, 백범 김구
작가 : 과하객
작품등록일 : 2017.11.22

'나는 김구다!' 제2부의 연재를 다시 시작합니다. 전날 천붕을 당해 의욕이 꺾였던 글인데 권유가 있어 다시 써보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에 가장 조심스러운 부분이 인물의 명예에 누를 끼치는 일인데, 혹시 아니다 싶은 부분이 보이거든 가차없는 질책을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15. 전설을 만드는 사나이 7
작성일 : 17-11-23 15:14     조회 : 395     추천 : 2     분량 : 4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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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전설을 만드는 사나이 7

 

  백마장군. 이 별명으로 불리는 독립군 대장은 홍범도 김좌진과 함께 1920년대 초기 대일전쟁에서 활략하여 전설로 회자되었을 뿐 성이 김이라는 사실 외에 실명은 알려진 바가 없다. 일본 육사 출신으로 백마를 타고 만주 벌판을 주름잡으며 일본군을 무찌르던 김경천이라는 전설적 명장이 있었는데, 일성(一星), 혹은 일성(日成)이라는 이름이 붙기는 하였지만 혜성같이 나타난 장군이라 하여 전설이 문자화된 것일 뿐 실제 행적이 기록에 남은 바는 없다.

  이른바 백마장군은 김경천 외에도 여럿이 발견되고, 1924년 5월 19일 압록강 일대를 순시하던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총독을 저격한 사건이 김일성 장군이 한 일로 소문이 나돌기도 하였다. 그 무렵 한만 국경 일대에서는, 1921년 9월 23일의 함남 갑산군(甲山郡) 동인면(同仁面) 함정포(含井浦)의 일본경관주재소 공격 사건 등 국경 근처에서 일어나는 어지간한 사건은 으레 김일성 장군의 행적과 연관시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고 한다.

  당시에 유전된 전설 중에는 백마장군이 백두산 포수 출신으로 홍범도장군과 동년배로 알려져 있는 경우도 있어 이 이야기에서 차용한 김의군은 그 경우이다. 실명이 알려지지 않은 백두산 포수 출신 독립군 대장이 왜적의 간도대출병 때에 이미 눈처럼 하얀 말을 타고 다니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왜적을 소탕했다 하여 백마장군으로 불리고 있었다는 기록을 가정하여 김의군의 이름을 붙여 소설화하고 있으니, 북한이 내세우는 전 수상 김일성과 혼동이 없기를 바란다.

  실제로 북한의 김일성은 1912년 4월 15일생이므로 1920년대 초에 전설이 시작된 인 백마장군 김일성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북한의 김일성의 경우 저들이 내세우는 대일독립전쟁의 최대 공로인 1937년의 보천보 전투마저 관련되지 않았다는 증거도 곳곳에 보이는데, 보천보 사건의 실제 주역인 동북항일연구 제2군 6사장 김일성의 전공을 훔쳤다는 주장이 그 하나이다. 1936년 11월 27일자 매일신보는 김일성의 나이가 37~8세 가량이며, 함경남도 혜산진 출신 공산주의자로 해삼위(海蔘威, 블라디보스톡)에서 공산당의 지령을 받아 만주로 왔다고 했고, 만주국군 기관지 월간 ‘철심(鐵心)’ 1937년 5월호에는 김일성이 30세 가량의 모스크바 공산대학 출신이라 하였다.

  아래는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자료인 1937년 11월 18일자 경성일보(京城日報)의 김일성(金日成) 사살 기사이다.

 

 鮮滿國境住民の 苦惱 今ゃ 解消

 共産匪 金日成の 死

 朝鮮軍當局談

 父子二代の 不逞

 普天堡 襲擊の 張本

 

  선만국경 주민의 고뇌가 금일에야 해소되었다.

  공산비적 김일성의 죽음이 보고되었는데, 조선군 당국자의 말에 의하면 부자 2대의 불령선인으로 보천보 습격의 장본인이라 한다.

 

  이외에도 보천보 사건을 일으킨 진짜 김일성은 1937년 11월 13일 만주국군 제7사단과의 전투에서 사살되었고 북한의 김일성은 동명이인, 혹은 도용한 이름이라는 기록과 신문 기사는 많다.

  조선일보 1937년 4월 28일자 2면에도 ‘金日成 援助혐의로 400 여명을 검거, 長白縣이래 21개 촌락에서 공산군 외곽단체 박멸’의 기사가 보이는데, 당시의 기사들은 일관되게 김일성의 나이가 36세가량이며, 함경남도 태생으로 모스크바 공산대학을 나왔다고 하는 등 북한 김일성과 전혀 다르다.

  1932년 7월 중순의 일본 영사관 경찰기록(日本領事館警察記錄)에 의해 밝혀진 바에 의하면 보천보 사건을 일으킨 동북항일연군 2군 6사는 연길현 의란구구 유격대(延吉縣 依蘭溝區 遊擊隊)와 노두구 구유격대(老頭溝 區遊擊隊)가 연길현 유격대로 되었다가 항일연군 2군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 문서에는 연길현 유격대의 대원으로 30세인 김일선(金一善)과 왕덕태(王德泰,1907~1936)가 나온다.

  이 두 곳 유격대들의 통합으로 개칭된 동북항일연군 제2군은 조중연합군으로 특히 6사의 경우 대원 대부분이 조선인이었다고 한다. 왕덕대가 2군의 군장을 맡는 등 간부급으로 활략하는데, 2군 3사장(후에 6사장으로 개칭) 김일선(金一善)이 김일성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김일선의 경우 1932년에 30세이면 1937년에 35세가 되므로 당시 언론에 보도된 보천보 김일성의 나이와 거의 같고, 북한 김일성과는 다른 사람인 것이 분명하다.

  북한의 주장하는 김일성의 생년월일을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1912년생인 북한 김일성은 1937년의 보천보 사건 당시는 25세로 1920년대 초부터 세간에 회자된 백마장군 김일성과는 10년 이상의 차이가 난다. 이 정도의 나이차라면 외모로도 확연히 구분되므로 이상의 기록들이 허위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추측하건대 백마장군 김일성은 신원이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순국을 하였으므로 많은 후배가 그 이름을 도용했고, 북한의 전 수상 김일성은 그 하나였을 것이다.

  이외에도 수많은 기록이 1920년 초부터 만주벌을 누비고 다녔던 백마장군 김일성과 북한의 전 수상 김일성이 다름을 증명하고 있지만 이만 생략하고 본 이야기로 돌아간다.

 

  만주벌의 겨울은 빠르다. 한 해의 소득을 나누어 갖고 가족을 찾는 것은 겨울 마적들의 행사였다. 1920년 11월, 만주 훈춘현의 중국인 마적들은 액신(厄神)을 맞고 있었다. 11월 28일 새벽, 눈에 덮인 정가장(鄭家莊)의 요새화한 목책이 무너지고 액신이 떼로 몰려들어 사신(死神)노릇을 하였다.

  우르릉 쾅쾅! 눈보라 속에 천둥치는 소리가 들리고 천지가 번쩍 하더니 정가장 뒤편의 흔들바위가 무너져 내리고 그 서슬에 눈사태가 밀어 닥쳤다. 산을 등지고 세운 정가장의 목책이 눈사태로 허물어지는 속에 홀연 말발굽소리가 요란하더니 태풍처럼 몰려든 것은 경계를 이웃하고 있는 쌍양(双羊)의 마적단이었다. 때마침 장주 정여상의 사위로 정가장에 머물고 있던 람빠 만천비(灣天飞)를 비롯한 마적단들은 돌연한 소동에 껴안고 자던 여인들을 밀치고 일어나서 무기를 잡았지만 때늦은 처방이라 총구의 위협을 피할 수 없었다.

  “길림성장 서정림(徐鼎林)과 백마장군 김의군의 명을 받들어 간적 만천비를 친다! 왜적과 타협하여 동족을 판 국적 만천비는 목을 내놓아라!”

  장강호(長江好) 패거리의 소두목 대엄귀(戴嚴鬼)가 선두에 서서 엄포를 놓고 있었다. 쌍양은 만천비와 함께 손화정의 부하다. 때문에 대엄귀와 손잡은 쌍양의 습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장강호는 길림성장 서정림을 통해 동삼성 마적단의 총수 장작림에 통해 있는 마적 두목이었고, 손화정은 마점산(馬占山) 계열의 재야 마적이었다. 때문에 손화정의 부하인 만천비에게 장강호 패거리가 관명을 칭해 습격해 왔다면 마적 생활을 끝낼 수밖에 없는 위기에 몰렸다고 할 수 있었다. 더구나 매국적의 낙인을 찍어 몰아대고 있다면…… 백마장군 김의군의 출동까지…… 만천비는 최근에 생을 마감했다는 각처의 마적단을 연상하고 몸서리를 쳤다.

  제1차 훈춘사건을 일으켰던 마적 장강호가 조선인 백마장군에게 굴복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 2차 훈춘사건의 주역인 왕생동(王胜东), 만순(万顺), 쌍양(双羊), 만천비(灣天飞) 등은 호위역을 늘리는 등으로 미리 몸을 사려 조심을 기했다. 허나 왕생동이 저격을 당해 죽고 만순이 관군의 기습으로 체포당하는 등의 봉변을 피할 수는 없었다. 만천비가 근거지로 돌아가지 않고 정가장에 머물러 겨울을 나고 있었던 이유도 요새화한 정가장의 방어력을 믿은 것인데 이제 쌍양을 앞세워 장강호와 백마장군의 세력이 침입해 왔던 것이다.

  “당신이 가장 악질이었다더군. 몸값을 내지 못한 조선인들을 팔아넘겼다는 소문이던데, 어디의 누구에게 얼마를 받고 팔았는지 순순히 불기만 하면 아프지 않게 죽여주겠네.”

  어깨에 호랑이 가죽을 걸쳐 맨 30대 후반의 조선인이 눈처럼 하얀 말을 타고 내려다보며 하는 말이었다. 엊그제까지의 동료였던 쌍양이 곁에서 응원을 하고 있었는데, 깊숙이 눌러쓴 털모자 사이로 보이는 얼굴에 멍 자국이 선명하여 닦달을 당한 결과임을 알 수 있었다.

  “제가 악질이었다고요? 천만의 말씀입죠. 저 놈 쌍양이 제일 못된 짓을 하였습죠. 조선인 부녀자를 범한 놈도 저놈입지요.”

  백마 위의 조선인은 말없이 총을 들어 쌍양의 머리통을 겨누었다. 목숨이 위험하다고 느낀 쌍양이 털썩 땅에 엎드려 훈춘현 습격 때의 동료 마적이었던 만천비의 죄상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포로로 잡은 조선인 400여 명 중의 삼분의 이를 저놈이 데려갔습니다. 현장에서 조선인 민간인들을 죽인 놈도 저 녀석의 부하들이었고요.”

  백마 위 조선인의 표정이 슬프게 변했다. 이 따위 삼류 되놈에게 내 동포가 죽임을 당하고 포로가 되어 팔려가다니…… 나라 잃은 백성으로 외국에 곁방살이하는 것도 서러운데 마적단에 붙잡혀 팔려갔으니 필시 중국인 농장주들의 반노예로 살고 있을 터, 일시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눈빛을 흐리던 사나이가 갑자기 총을 들어 두 마적 두목을 겨누었다.

  “그만. 꼴도 보기 싫으니, 저승에 가서 싸움을 계속해라. 개싸움 보는 것도 질렸다.”

  방아쇠가 당겨지고 마적단의 소두목 쌍양과 만천비는 머리통에 구멍이 뚫려 죽었다. 어차피 다른 부하 마적들이 주절주절 불어댈 테니 그들의 개싸움 따위 더 볼 필요 없다고 내린 결정이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경신참변의 원인을 만든 주역들이 당한 최후였다.

  경신참변이란 왜적의 경신대토벌을 재만 조선인들이 피해자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었다.

  앞서 이야기한 훈춘사건을 빌미로 간도출병을 강행한 왜적은 북로군정서군 등의 반격을 받아 작전이 여의치 앉자 재만불령선인대토벌을 표방하고 조선인 마을들을 불사르기 시작했다. 소위 초토작전으로 공식적인 기록이 여럿 남아있는데, 박은식선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는 조선족 피살 3106명, 체포 238명, 민가 소각 2500채를 기록하고 있고, 또 다른 기록인 독립신문 92호에는 피살 3664명, 체포 155명에 학교 59개소와 교회당 19개소, 민가 3520채, 곡물 피해 59970섬의 피해가 보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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