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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일반/역사
나는 김구다! 제2부 - 홍구공원 1932, 백범 김구
작가 : 과하객
작품등록일 : 2017.11.22

'나는 김구다!' 제2부의 연재를 다시 시작합니다. 전날 천붕을 당해 의욕이 꺾였던 글인데 권유가 있어 다시 써보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에 가장 조심스러운 부분이 인물의 명예에 누를 끼치는 일인데, 혹시 아니다 싶은 부분이 보이거든 가차없는 질책을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14. 전설을 만드는 사나이 6 (제자들의 보고문 계속)
작성일 : 17-11-23 14:56     조회 : 406     추천 : 3     분량 : 4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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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전설을 만드는 사나이 6 (제자들의 보고문 계속)

 

  중국과 친하고 왜적을 사갈같이 여긴다는 작전은 지역적 뿌리를 갖지 못한 독립군에게는 궁여지책이었지만 생존을 위한 최선의 방책이기도 하였다. 일예로 연길 주둔 중국군 혼성여단장 맹부덕은 일본군의 채근에 못 이겨 조선토비 토벌작전에 나섰지만 텅 빈 마을만 불사르고 돌아왔고, 그의 휘하 부대 중의 일부는 조선군을 만나 술잔치만 하고 돌아온 경우도 있어서 일본군의 노염을 샀다는 기록이 보여, 한국과 중국의 일본에 대한 증오가 일찍부터 태동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20년 9월 9일, 왕청현 서대파 십리평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대한군정서는 사관양성소 제1회 졸업식을 거행하였다. 이들을 중심으로 한 독립군이 청산리 대첩의 주역이 되는데, 세계저항운동사에 유례가 드문 청산리전투의 승리는 철저한 준비에 정예화 된 병력으로 유격전을 펼친 결과로서, 이후의 독립전쟁의 교범이 될 만한 대첩이었다. 헌데 일제는 이를 반면교사로 삼으니, 훗날 독립군이 자유시 참변 등으로 괴멸적 타격을 입게 되는 계기가 된다.

  앞서의 훈춘사건 이전에 일제는 이미 ‘간도지방 불령선인 초토계획’을 입안해 두고 월경의 명분을 만들고 있었다. 한만국경은 본래 국경이 모호하여 간도지방에 조선인이 들어가 산 역사가 길었고, 실제로 우리 땅이었지만 대국 청나라의 위세에 못 이겨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 곳이었다. 이는 호시탐탐 만주벌을 노리던 왜적에게는 침략의 명분 만들 이유로 작용하였고. 그 과정에 동원된 게 중국인 마적단이었다.

  1920년 9월 12일, 조선총독부 경무국에 매수된 마적 장강호(長江好)는 400여 명의 병력으로 훈춘현성을 포위하여 관은전호, 세연국, 교육국, 전보국 등을 파괴하고 민가 200여 채를 불태운 후 민간인 80여명을 납치해 가는데, 이것이 제1차 훈춘사건이다.

  이어서 9월 30일, 일본군의 사촉을 받은 대마적 손화정(孙花亭)의 부하 왕생동(王胜东)을 우두머리로 한 만순(万顺), 쌍양(双羊), 만천비(灣天飞) 등 마적단이 훈춘현 황구에 주둔해 있는 일본군 공병 제4중대를 습격하고 20여명의 병사들을 포로로 해갔다. 이어서 10월 2일에는 400여명의 마적들이 기관총과 대포를 앞세우고 동서 두 길로 훈춘현성을 습격하는데, 여기까지가 제2차 훈춘사건이다.

  이상의 사건으로 일본영사관이 불타고 일본인 11명과 조선인 6명이 사살되었으며 200여명의 민간인이 납치당해 끌려갔는데, 왜적의 간도출병 명분으로 작용하니 중국인 마적들의 짧은 소견을 탓할 뿐이다.

  훈춘사건은 일제의 술책에 속은 마적단의 난동으로 소위 ‘간도지방 불령선인 초토계획’의 서막이었다. 왜적은 조선인들끼리 서로 적대하게 만드는 이한제한(以韓制韓)의 술책 외에 이화제한(以華制韓)의 술책도 자주 부렸으니, 훈춘사건은 그 대표적인 예였다.

  훈춘사건에 연한 경신토벌은 그 후속작전이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 기술하기로 한다.

  10월 9일, 일본국 육군대신 명의로 조선군사령관에게 출병명령이 하달되어 남으로는 제19사단 전 병력과 20사단의 78연대, 동으로는 우라시오 파견군(浦塩派遣軍) 제11, 13, 14사단의 일부 병력, 북으로는 북만주파견대의 안자이(安西)지대, 서로는 관동군 제19연대와 기병 20연대의, 총세 2만여 명이 네 방향에서 포위망을 만들어 연변지역으로 침입해 들어왔다. 이에 맞서는 독립군은 북로군정서의 병력을 중심으로 한 연합병력 2800여명이었으니, 실로 하나가 열을 당해야 하는 어려운 싸움이었던 것이다.

  청산리 전투의 고비는 어랑촌 싸움이었다. 연변침입군의 주력인 일본 제19사단은 이소바야시지대, 기무라지대, 아즈마지대로 나뉘어 연변 전역을 세 방향에서 포위하고 진입작전을 시작하였는데, 그 중 아즈마 마사히꼬 소장 지휘하의 부대는 이도구 어랑촌 일대에 집결한 홍범도부대와 삼도구 청산리 일대로 이동하고 있는 김좌진부대를 섬멸하라는 명령을 받고 한만국경수비대 소속 무산수비대의 선도로 작전을 펼쳤다.

  1920년 10월 22일 오전 9시, 이도구 어랑촌 서남방 표고 874고지 남측에서 김좌진이 인솔한 북로군정서군은 어랑촌에 있는 아즈마지대의 본부를 노리고 유리한 지점을 장악하기 위해 이동을 시작했다.

  이에 맞선 일본군 역시 고지를 노리고 천수동골짜기로 밀고 들어왔다. 한발 앞서 고지의 서남단 일부를 점령하고 있던 군정서군은 매복 사격으로 300여명의 일본군을 사살하는데, 압도적인 병력의 일본군은 이에 굴하지 않고 그들 특유의 돌격전으로 진공을 계속했다.

  병력과 화력에 열세인 군정서군은 야계골 방향으로 퇴각을 하면서 저항을 계속했다. 싸움은 전장의 중심이 되는 874고지의 중요성이 부각되어 누가 먼저 고지를 점령하는가 경쟁하는 격전이 되었다.

  12시 30분경, 야랑촌 인근 완루구에서 홍범도군과의 소규모 전투로 손해를 입고 추격전 중이던 일본군 이이노부대가 고지쟁탈전에 가세하여 전투는 더욱 가열되어 갔다.

  홍범도부대가 싸움터에 도착한 시각은 15시경이었다. 연락책으로 달려온 중국인 사냥꾼은 제풀에 흥분하여 어랑촌 싸움이 교착상태에 있음을 전했다.

  “백마장군의 전언입니다. 왜병 1200여 명이 조선독립군 북로군정서군 300여명을 포위하고 사방에서 공격하고 있으니 후위를 쳐서 에움을 풀라 하였습니다.”

  백마장군? 홍범도는 최근에 중국인 마적단 사이에 유행하고 있는 이 이름을 되새기며 출동명령을 내렸다.

  “김좌진장군의 북로군정서군이 응원을 청해 왔다. 즉시 달려간다!”

  남의 땅인 만주벌에서 벌이고 있는 왜적과의 싸움에서 현지인의 협력이 필요함은 말할 필요가 없지만, 특히 마적단의 중요성은 더했다. 신해혁명 이후 중앙정부가 사실상 소멸하고 없는 1920년대의 중국에서 만주벌을 장악하고 있는 세력은 마적 출신 군벌 장작림이었고, 각지에 군웅할거하고 있는 소규모 마적들은 표면상 그의 통제를 받고 있었다.

  왜적은 이익에 따라 제멋대로 이합집산 하는 마적의 특성에 착안한 왜적은 무기를 주어 조선인들을 치도록 하였고, 이에 부화뇌동한 마적들이 조선인부락을 습격하여 독립군의 근거지를 빼앗고 있는 게 현실이었다. 때문에 마적들에게 조선인 백마를 탄 상승장군의 전설이 유전되고 있다는 것은 사실성 여부를 떠나서 바람직한 현상일 수 있었다.

  홍범도부대 100여명의 가세는 전국의 형세를 뒤바꾸는 마력을 부렸다. 어랑촌 싸움에 동원된 일본군은 아즈마지대 기병연대, 본대 예비대, 이이노부대 등을 합쳐 1000여 명 이상으로 독립군의 300여 명에 비해 압도적인 병력이었지만, 홍범도부대가 학익진을 펼쳐 포위망을 형성하고 후방으로부터 공격해 들어가자 일대 혼란을 일으켰다.

  저녁 7시 30분까지 계속된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일대 타격을 입힌 독립군은 어둠을 틈타 병력을 물렸다.

  “백야(白冶), 이 싸움, 우리가 연합작전을 펼치도록 유도된 것 같지 않소?”

  전투가 끝난 후 이후의 작전을 논하기 위해 모인 간부회의에서 홍범도는 김좌진에게 그렇게 물었다. 적절한 시간에 싸움에 개입하여 승기를 만든 홍범도장군의 의견이었으므로 김좌진은 신중히 답했다.

  “이범석대장이 어랑촌에 일본군이 집결하고 있다는 문서를 취한 천수동의 전과도 누군가의 도움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일본군 기병 1개 소대가 일시 야영 중인 곳을 정확하게 지적해주었다더군요.”

  어랑촌 싸움 이틀 전, 북로군정서군 연성대장 이범석은 본대와 떨어져서 지대를 이끌고 이동하던 중에 현지 중국인의 긴급 제보를 받았다.

  “백마를 탄 조선인 장군의 전언입니다. 갑산촌 북쪽으로 이동 중인 일본군 기병소대가 오늘밤 천수동에서 야영할 계획이니 적절히 처리하라고 하셨습니다.”

  반신반의한 이범석은 정찰병을 보내 사실을 확인하고 야습전을 감행, 단 4기만을 놓친 대승을 거두는데, 이때에 노획한 일본군 작전계획서 중에 어랑촌의 아즈마지대 본대의 배치도가 있어 847고지 쟁탈전을 벌인 계기가 되었다.

  “백마장군에 대해서는 짐작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의 행색으로 미루어보아 내가 잘 아는 어떤 인물임이 확실합니다. 그가 보내는 정보는 믿어도 좋아요.”

  의문의 인물 백마장군에 대한 홍범도장군의 보증이었고, 연성대장 이범석의 증명이 이어졌다.

  “우리에게 소식을 전한 중국인은 마적단의 일원으로 보였는데 그를 아주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좌중에 감탄사가 발해지는 가운데 북로군정서의 총사령관 김좌진이 결론을 내렸다.

  “그는 확실한 조력자입니다. 대종교의 서일 총재가 전해 오기를, ‘만주벌의 마적단 사이에 조선인과 적대시하는 자에게는 백마장군이 간다하는 통문이 돌았다' 하였습니다. 설마 싶었는데 사실이었군요.”

  백포종사 서일(徐一)의 전령으로 김좌진을 찾은 사람은 전통 한복을 입은 50대의 대종교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부경주로 소개하며 임시정부 경무국장 김구 명의의 서신을 올렸다.

  (…백야 아우의 활약상은 잘 전해 듣고 있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백마장군은 내 사제 김의군일세. 그는 사정이 있어 일단의 왜인들을 쫓고 있는데, 우리 식구가 확실한 사람이니 이 편지를 가지고 가는 부경주동지와 협력하여 대처하도록 하게.)

  상해 임시정부의 무력을 사실상 통솔하고 있는 백범 김구의 편지는 그렇게 전설이 되고 있는 의문의 인물 김의군을 소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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