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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말해도 돼?
작가 : 슈타인
작품등록일 : 2016.8.25

세상의 빛은 다 가진 듯한 소녀 유나, 그녀에게 남모를 아픔이 있다. 2년 전 골목길에서 한 사내에게 성폭행을 당한 것.
2년이 지나 지금 모든 걸 잊혀진 듯한 찰나, 사건 동영상이 뜻밖에 유투브를 통해 퍼진다. 급기야 언론이 사건을 주목하고, TV와 네티즌 그리고 범인까지 유나 찾기에 돌입한다.

범인과 자신의 과거 그리고 사람들의 무분별한 관심에서 도망가는 유나! 그녀 옆에는 언제나 절친인 강율과 보디가드를 자처하는 구할이 있다. 하지만 유나가 범인과 마주했을 땐 율과 할도 끝까지 그녀를 지켜주지 못하는데... 유나는 다시 한 번의 위기를 겪게 된다. 하지만 두 번 단시 같은 결과를 얻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유나!

소녀의 아픔을 담은 법정 스릴러. 유나는 범인의 죄값을 과연 당당히 받아낼 수 있을까...

 
말해도 돼? 3화> 네가 거기에 있었더라면!
작성일 : 16-08-27 17:49     조회 : 407     추천 : 1     분량 : 5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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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화> 네가 거기에 있었더라면!

 

  동그란 얼굴형에 순하게 생긴 강서 고등학교 3학년 이지혜,

  짙은 눈썹, 이국적인 이목구비가 돋보이는 진명고 1학년 서상희,

  구릿빛 얼굴에 갈색 빛 생머리가 잘 어울리는 서문고 2학년 강율.

 

  사진 한 장만으로도 각자의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었다. 이지혜는 극히 평범한 과, 서상희는 모범생 스타일, 강율은 왠지 익숙한 얼굴이었다.

  ‘어디서 봤더라?’

  할은 눈을 감고 강율의 얼굴을 떠올렸다.

  맞다! 할은 손바닥으로 자신의 이마를 쳤다. 가끔 화실로 놀러오는 유나의 친구였다.

  ‘그럼 유나 사진도?’

  할은 빠른 속도로 화면을 터치했다. 휴. 다행히 유나의 사진은 올라 있지 않았다. 할은 침대에 드러누워 바짝 긴장했던 몸을 축 늘어뜨렸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누가 전화기를 발견한 거야! 아, 왜 올린 거야!’

  할은 사실 떠오르는 질문 중 왜 올렸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이 년 전 자신도 그 영상을 올리려고 했으니까. 그 생각이 나자 할은 더욱 더 영상을 올린 사람에게 저주를 뿜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화기를 잃어버린 자신에게는 더 심한 저주를 내렸다. 동시에 머릿속에서는 이 년 전 사건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그때 할은 고3이었다. 남들은 독서실을 한창 다닐 때지만 할은 그보다 독서실 뒤 놀이터를 즐겨 가곤 했다. 거기에 늦은 시간까지 있다 보면 지나가는 유나를 볼 수 있었다.

 

  할이 유나를 처음 본 것은 넉 달 전,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툴툴거리며 치킨 배달을 갔을 때였다.

  ‘아, 각 안 잡히게! 엄마는 아들이 고3인데도 배달을 시키냐? 그리고 어떤 뚱땡이가 이렇게 밤늦게 치킨을 처먹어?’

  할은 주소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초인종을 거칠게 눌렀다. 현관문이 열림과 동시에 얼핏 샴푸향이 났다. 할이 고개를 들자 하얗고 날씬한 여자애가 자기를 보며(사실은 치킨을 본 거지만) 환히 웃고 있었다. 할은 자기도 모르게 치킨을 내밀며 시켜주셔서 감사하다고 구십 도로 인사를 했다.

  첫사랑의 시작이었다. 이후 할은 유나를 생각하면 발이 꼭 두둥실 떠 있는 것 같았다.

  첫사랑의 마법은 할을 자꾸 유나의 집 근처에 서성이게 만들었다. 할은 유나의 우체통도 훔쳐보고, 어느 학교 다니는지 교복도 눈여겨보고, 유나가 어머니를 닮았는지 아버지를 닮았는지도 멀리서 지켜봤다. 몸서리치며 싫어하던 치킨 배달도 유나네 집이라면 웃으며 가고 안하던 운동도 열심히 하고 부쩍 외모에도 신경을 썼다.

  아직 유나가 자기의 이름도 얼굴도 잘 모르지만 할에게는 그런 건 아무 상관없었다. 할의 머릿속에는 온통 유나에게 어떻게 고백할지가 관심사였다.

  몇 달 만 있으면 할은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유나는 곧 고 3이 될 터였다. 그때가 적기이지 싶었다. 변변치 않아도 자기가 대학생이 되면 유나에게는 왠지 좀 멋져 보일 수 있을 테니까!

 

  그 날도 할은 유나에게 할 고백을 생각하며 습관처럼 독서실 뒤 놀이터를 찾았다. 기말고사가 끝나는 날이라 독서실 앞, 거리는 더없이 휑했다. 12시가 가까운 시간이니 더욱 그랬다. 할도 친구들과 헤어지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온 것뿐이었다. 날씨는 또 왜 이리 흐린지.

  ‘그래, 아무리 모범생 오유나라도 오늘은 놀겠지!’

  할은 발걸음을 돌려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유나는 그때 가로등 빛이 꺼진 골목길 끝에서 몸을 떨고 있었다. 앞에서는 낯선 남자가 주먹을 꼭 쥐고 벌벌 떠는 유나의 팔을 만지작거렸다. 유나의 팔은 부드럽고 매끄러웠다.

  유나는 순식간에 몸이 얼어붙었다. 새끼손가락 하나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머리는 뛰라고 하고 마음은 이미 이곳을 벗어났는데 발이 말을 듣지 않았다.

  “학생?”

  남자 입에서 술 냄새가 훅 풍겼다. 공포가 유나를 집어 삼켰다.

  “가만……. 착하지? 내가 이번 학기에도 점수 잘 줄게.”

  유나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꼬부라진 혀로 말하는 남자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남자가 유나의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유나는 고개를 홱 돌렸다. 일부러 상대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한 것이다. 겁을 잔뜩 먹은 자신의 얼굴을 보여 봤자 무슨 득이 되겠는가.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할래?”

  유나는 더욱 오들오들 떨었다. 목에서는 뭐가 걸린 듯 말이 나오지 않았다. 유나는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자신의 전화기만 쳐다봤다. 가당치않다. 이건 불공평하다.

  유나는 엄동설한에 가로등 밑에 누가 기대어 자고 있기에 단지 그를 흔들어 깨운 죄밖에 없었다. 안개는 짙었고 가로등은 깨져 있었다.

  유나가 남자를 흔들어도 일어나지 않자 112에 전화를 걸려던 찰나 그가 눈 깜짝할 사이에 전화기를 빼앗아 갔다. 그리고 남자가 유나의 전화기로 유나의 얼굴을, 목을, 몸을 쓸어갔다. 전화기가 유나의 몸 굴곡을 따라 흐르는 동안 유나는 두려움에 고개를 숙이고 작은 목소리를 냈다.

  “사.. 살려... 주세요.”

  남자가 한 손으로 유나의 허리를 확 당겼다. 그리고 귀에 대고 속삭였다.

  “하는 거 봐서…….”

  벌레들이 귓가에 날아드는 것 같았다. 유나는 가까스로 고개를 돌려 먼 곳을 봤다. 주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 남자는 유나의 어깨에 손을 뻗었다. 손이 천천히 밑으로 밑으로 내려갔다. 유나의 몸은 점점 더 굳어갔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가 손을 대는 곳 마다 꼭 화상을 입는 것 같다. 유나는 눈을 꼭 감고 한 번 더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사...살려 주세요.”

  그는 유나의 손을 잡았다. 유나의 손이 그의 손과 포개졌다. 그는 억지로 유나의 검지를 펴 입술에 닿게 했다.

  “쉬~. 여기 해바라기도 있는데.”

  남자가 유나의 손을 밑으로 가져갔다. 유나는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단지 손끝으로 단단함을 느꼈다. 그 즉시 유나는 있는 힘껏 손을 뺐다. 그러자 남자가 유나를 돌려 벽에 밀쳤다. 유나는 등뒤에서 남자의 무게를 온 몸으로 느꼈다.

  유나는 다시 주먹을 꼭 쥐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자기가 온 곳을 바라보았다. 자기가 서 있는 곳에는 가로등이 꺼져 있지만 골목 끝에는 빛이 환했다.

  ‘밀치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면…….’

  유나는 있는 힘을 다해 그를 밀어냈다. 한 삼 십 센티미터나 떨어졌을까? 순간 그는 그만큼의 폭으로 주먹을 휘둘러 유나의 복부를 강타했다. 유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제 벽과 남자 사이에 끼어 있는 유나는 더 이상 꼼짝할 수가 없었다. 대신 이번에는 소리를 더 크게 지르려고 했다. 하지만 목에서 으음 하는 소리가 새어나올 뿐이었다. 어서 뒤돌아 달려가고 싶다. 여기를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그러면 더 큰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다시는 엄마 아빠를 못 볼지도 모른다. 그가 마구 때릴지도 모른다. 얼굴을 짓이겨 놓을지 모른다.

  유나가 이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단지 자신의 팔다리를 몸에 딱 붙이는 것뿐이었다.

  “잘하자.”

  남자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할은 골목 끝에서 어렴풋이 한 남자가 여자와 그 짓을 하고 있는 걸 보았다. 유투브에서 보던 19금 동영상이 아니라 실재였다.

  ‘어? 이봐라. 심심했는데 잘됐다!’

  할은 히죽거리며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둘을 화면에 담아 친구들과 돌려 보면 죽이겠지?! 유투브에도 올린다면 자연히 조회 수도 올라갈 것이다. 그건 쏠쏠한 재미였다. 높은 조회 수에 따라 돈이 되고 광고가 붙는 세상이었다. 하지만 어둠이 둘을 가렸다. 할은 깨진 가로등을 바라보며 인상을 팍 썼다. 이러라고 우리 부모가 닭을 팔아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 게 아니다.

  할은 숨을 죽이고 조금씩 앞으로 다가가며 동영상 버튼을 눌렀다.

  남자가 여자를 벽에 밀치고 있는 모습이, 남자 어깨 너머로 여자의 얼굴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너무 어둡다. 할은 화면의 노출값을 올리려고 했다. 그런다는 게 플래시를 잘못 터트렸다. 이런 망할!

  “살려줘.”

  여자의 비명, 사내는 여자의 입을 막고 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할은 휴대 전화를 꼭 쥔 채 바로 뒤돌아 뛰었다. 최대 속력이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다. 그렇게 몇 분쯤 뛰었을까. 목에 비릿한 맛이 올라왔다. 이젠 아무도 쫓아오지 않는 듯하자 할은 가슴을 부여잡으며 아파트 벽에 몸을 기댔다. 다행히 따라오는 사람은 없었다.

  ‘뭐지?’

  할은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다시 잡았다. 그리고 동영상을 재생했다. 팔 초. 딱 팔 초가 녹화되어 있었다. 남자와 여자가 딱 붙어 벽에 기대고 있는 모습. 실루엣뿐이었다. 그마저 빛이 모자라 얼굴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다만 플래시가 켜질 때 화면이 흔들리면서 손으로 빛을 가리는 여자의 옆모습이 살짝 내비쳤다. 남자의 뒷모습과 함께! 그리고 여자의 목소리가 정확히 녹음되었다.

  "살려줘."

  할은 손톱을 물었다. 눈을 감았다 떴다.

  ‘아, 몰라!’

  할은 전화기를 닫았다. 복잡한 건 딱 싫다. 양심? 돈도 안 되는 거 원래 태어날 때부터 키우지도 않았다! 하지만 할의 발은 제자리를 서성였다. 그리고 할의 손은 다시 동영상을 틀었다.

  “살려줘.”

  할은 그 골목을 향해 다시 전속력으로 뛰었다.

 

  칼끝 같던 시간이 지났다. 유나는 어둡고 차디찬 골목길에 그대로 쓰러져 있었다. 다리 사이가 묵직하면서도 쓰렸다. 움직이는 게 쉽지 않다. 아니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땅이 꺼져 버렸으면!

  유나의 눈물이 코와 볼을 타고 땅바닥으로 흘렀다.

  “누구 있어요?”

  아무도 대답이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차가워졌다. 정신도 아득했다. 모든 게 정지된 느낌. 그냥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아니다. 어서 집으로. 엄마 아빠에게로 가고 싶다.

  고개를 들자 거리에 내팽겨진 자신의 휴대전화가 눈에 들어왔다. 유나는 간신히 단축번호 1번을 눌렀다.

 

  “어? 유나니? 아빠 친구들 가셨으니까 그만 독서실에서 와. 유나야? 여보세요?”

  엄마 목소리를 듣자마자 유나의 목이 멨다.

  “어마..”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엄마의 목소리가 꺼져가는 것 같았다. 전화기 너머로 아빠의 목소리도 들렸다. 멀리서 아주 멀리서 들렸다. 유나의 눈이 감겼다.

 

  유나는 희미하게 둔탁한 구두 소리를 들었다. 눈을 떴다. 아직 차디찬 골목 바닥이다. 그런데 성나고 억센 구두가 자기에게 조급하게 달려오는 게 보였다. 꿈인가? 아니다. 그럼 피해야 하나? 움직일 힘이 없다. 어쩌지? 누군가의 두 팔이 단번에 유나의 등을 들어올렸다.

  “아악.”

  유나가 비명을 질렀다. 손과 발을 마구 버둥거렸다. 아니, 그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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