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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해경 특공대
작가 : 심삼일
작품등록일 : 2017.6.1

고교 시절 좀 놀았던 코모도섬의 왕도마뱀.
세월호 시신인양 임무에 환멸을 느껴 퇴역했다.
밀수꾼?... 간첩?... 조폭?
뭍으로 올라온 해경특공대의 맹활약이 전개된다.

 
금관 가야
작성일 : 17-10-11 15:33     조회 : 187     추천 : 2     분량 : 5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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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관가야

 

 

 강원도 태백시에서 발원하여 장장 510Km를 구비 돌아 밀양 동쪽 양산시 옆 물금 취수장에서 남쪽으로 꺾어 남해바다로 곧장 내려가던 낙동강이, 구포 낙동강교 북쪽 2Km 지점에서 서쪽으로 샛강을 만들어 흐른다.

 

 샛강인 서낙동강은 5Km쯤 서진하다가 방향을 남서쪽으로 바꿔 5Km를 더 흐르다 다시 정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10Km를 남진하며 낙동강과 서낙동강 사이에 김해국제공항이 들어서있는 길쭉한 모양의 비옥한 ‘낙동강 삼각주’를 만든다.

 

 이 서낙동강 주변이 바로 금관가야국이 있던 자리이며 김해시 한 복판에 금관가야의 시조 김 수로왕의 무덤인 ‘수로왕릉’이 보존되어 있다.

 

 가야는 고구려, 신라, 백제처럼 통일된 집권국가가 아니고 낙동강 하류지역에서 성장한 여러 부족국가들의 연맹 왕국이다.

 

 기원 전후부터 서기 562년까지 지속된 가야는 동으로는 황산강(낙동강 하류), 남으로는 남해안, 서로는 지리산, 북으로는 가야산의 남쪽을 경계로 융성했고, 때에 따라 5가야, 6가야 혹은 가야7국등의 연맹체를 이루었다.

 

 대표적인 6가야는 김해의 금관가야와 고성의 소가야, 함안의 아라가야, 진주의 고령가야, 고령의 대가야, 성주의 성산가야가 그 연맹국가이다.

 

 초기에는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외국과의 교역을 통해 강력한 국가로 발전했지만, 고구려와 신라가 낙동강 하류 지역으로 진출하면서 금관가야는 약화되었다.

 전쟁의 피해가 덜했던 내륙에 위치한 대가야를 중심으로 가야는 발전을 지속했지만, 대가야도 결국 서기 562년에 신라(진흥왕23)의 이사부와 사다함의 정벌로 병합되어 소멸하고 말았다.

 

 김 아무개 청년이 여자친구의 아버지를 뵙고 청혼하는 자리다.

 “자네 성이 김씨라고 했는데, 본관이 어디인가?”

 “예. 제 본관은 김해 김가이고, 파는 금녕군파입니다.”

 “그래? 뼈대 있는 집안에서 본데 있게 자랐구먼. 음, 흠.”

 

 본관은 어느 한 시대에 정착하였던 조상의 거주지를 말한다.

 그런데 자기의 본관을 상대방에게 말할 때 ‘김씨(氏)’라고 하면 안되고 ‘김가’라고 집 가(家) 자를 사용해서 스스로를 낮추어 말해야 한다.

 

 아마 친구 다섯 명 중 한 명은 김씨일 정도로 많은 성씨가 김씨다. 그 중 본관이 ‘김해’인 사람은 약 500만명에 이른다.

 

 김해 김씨 성은 바로 금관가야인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에서 나왔다.

 김해박물관에서 수로왕비릉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가면 구릉이 나타나는데, 바로 김수로왕의 탄생 설화를 품고 있는 ‘구지봉’이다.

 

 설화에 나오는 실제 구지봉(龜旨峯)으로 김해시 중심부에서 북쪽으로 2Km 정도 떨어진 구산동에 있다. 봉(峰)이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낮은 동산인데, 마치 거북이가 엎드린 형상과 같다.

 

 전해지는 설화는 이렇다.

 

 서기 42년 3월에 가야 지역 아홉 부족의 추장과 수백 명이 구지봉에 모였는데, 모습은 보이지 않으나 사람의 목소리가 구지봉에서 들려왔다.

 

 “여기에 사람이 있는가?”

 “예, 저희들이 있습니다.”

 

 “그럼 내가 있는 곳은 어디인가?”

 “구지봉입니다.”

 

 “황천(皇天)이 나에게 이곳에 가서 유신하여 임금이 되라고 명하셔서 강림하였다. 그러니 너희들은 봉우리 정상의 흙을 파면서 내가 시키는 대로 노래를 불러라. 그러면서 땅을 다지고 춤을 추면 이것이 대왕을 맞이하면서 기뻐 뛰는 것이 되느니라!”

 

 그래서 사람들은 기뻐하며 시키는 대로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그러지 아니하면 구워서 먹으리라”

 라고 ‘구지가’를 부르며 춤을 췄다.

 

 그러자 하늘에서 자주색 줄이 내려오고 줄 끝에는 금색 상자가 달려있었는데, 그 상자 안에 여섯 개의 황금색 알이 들어있었다.

 그 상자를 귀하게 여겨 아홉 추장인 9간 중 '아도간'의 집에 놔두었더니 12일 후에 알에서 6명의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다시 10일이 지나자 사내아이 중 키가 9자, 얼굴은 전한의 고조, 눈썹은 요 임금, 눈동자는 순 임금 같은 출중하게 잘 생긴 동자가 있었다.

 그 동자는 그 달 보름달에 왕위에 올랐고 처음 나타났다는 뜻으로 ‘수로(首露)’ 혹은 ‘수릉(首陵)’ 이라고 불렀으며 나라 이름을 대가락국 또는 가야국이라고 일컬었다.

 

 그가 바로 금관가야인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이고 나머지 다섯 개 알에서 나온 인물들은 흩어져 각각 5가야의 왕이 되었다.

 가락국은 산과 들에 모여 우물을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 농사를 지어 먹는 백성이 1만호에 7만 5천명쯤 되는 제법 큰 부족국가였다.

 

 수로왕은 나라를 세우고 난 뒤에도 왕비를 들이지 않고 있었다. 대신들이 양가의 규수 가운데에서 왕비를 간택하라고 재촉했지만 수로왕은 번번이 거절하면서 때를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서기 48년에 이국의 한 처녀가 많은 신하와 보물을 싣고 남쪽의 뱃길을 따라 가락국의, 지금은 창원시인 부인당으로 들어와 정박했다.

 

 “나는 아유타국의 공주이며 성은 허가요, 이름은 황옥이라 합니다. 부왕의 지시에 따라 동해 천도골에 있는 나라의 왕비가 되고자 왔습니다.”

 

 소식을 전해들은 김수로왕은 궁궐을 나가 이국의 공주를 정중히 맞이했고, 16살인 신부는 대등한 관계 속에서 혼례를 치렀다.

 

 아유타국은 인도 갠지스강 중류에 있는 아요디아라는 고을로 추정되며 아요디아는 인도 옛 태양왕조의 도읍지이며 이들 왕가는 허황옥 공주가 김해로 오기 28년 전에 다른 왕조에 점령당해 도읍지를 잃고 어디론가 떠나갔다는 인도 쪽의 기록이 전해진다.

 

 공주 일행이 예물로 가져온 물건은 비단이나 능라 같은 옷감과 금은보옥과 같은 보배였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공주는 파선의 노여움을 잠재우기 위해 파사(婆娑) 석탑을 배에 싣고 왔다고 한다.

 이 돌은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약돌이며 인도와 중국의 남해 연안에서 산출된다. 이 탑은 지금도 구지봉의 허황후릉 옆에 잘 보존되어 있다.

 

 허황후(서기33년~189년)는 156세로 죽을 때까지 140년간 황후로 지내면서 김수로왕의 아들 10명을 낳았다.

 맏아들 거등(居登)은 김씨로 왕통을 잇게 하고, 둘째와 셋째는 허황후의 뜻을 살려 허씨(許氏)로 사성(賜姓)했으며, 나머지 일곱 아들은 불가에 귀의하여 하동칠불로 성불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래서 허황후는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된 셈인데, 실제로 김해 허씨는 김해 김씨와 같은 조상인 김수로왕의 후손이 되는 것이다.

 

 김수로왕은 서기 42년에 알에서 태어나 즉위하여 서기 199년까지 157년간 재임하였고, 장남 거등이 2대 왕위를 이어받았는데, 금관가야는 서기 532년에 10대 구형왕인 김구해가 신라에 항복할 때까지 490년간을 모두 왕위가 부자에게 정통적으로 세습되었다.

 그래서 금관가야는 한국사에서 정통세습의 유일한 국가이다.

 

 이러한 금관가야국의 건국설화가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들릴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가 잘 아는 신라의 제4대 임금인 석탈해도 먼 곳에서 흘러온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다소 수긍이 될 것이다.

 

 신라 제2대 임금 남해왕 때였다.

 가야국 해안에 낯선 배가 한 척 멈춰 섰다. 가야를 세운 수로왕은 백성과 함께 해안가로 나가서 북을 두드리며 환영했다.

 하지만 배는 바닷가에 멈추는 듯 하더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숨바꼭질하듯 보이지 않던 배가 다시 나타난 곳은 신라 땅 아진포 앞바다였다.

 

 “자네는 어디서 온 사람인가?”

 아진포에 사는 아진의선이라는 노파가 신기해서 물었다.

 그러나 미남자는 어떤 질문을 해도 답을 주지 않았다. 호기심에 노파는 7일동안 배를 들락거리며 물과 밥을 가져다 주자 그제야 사내가 입을 열었다.

 

 “나는 용성국의 왕자요. 자식 얻기를 간절히 바라던 내 아버지가 7년만에 큰 알을 하나 낳았소. 사람이 알을 낳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다는 신하들의 의견을 따라, 인연 있는 땅에 가서 나라를 세우고 집안을 이루어 살라며, 나를 배에 태워 바다에 띄웠소. 붉은 용이 배를 보호하여 여기까지 오게 되었소.”

 

 본인이 신라까지 온 연유를 자세히 밝힌 사내 탈해는, 두 종을 거느리고 경주의 명산 토함산에 올라가 자기가 살 땅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초승달처럼 생긴 좋은 집터를 발견했는데, 그곳에는 ‘호공’이라는 사람이 이미 번듯하게 지어 놓은 집에서 잘 살고 있었다.

 

 탈해는 주인 몰래 집 주변에 숫돌과 숯을 묻어 놓고 다음 날 아침 일찍 호공의 집을 찾아가 시치미를 뚝 떼고 우기기 시작했다.

 

 “주인장! 얼른 나와보시오. 우리 조상님이 살던 땅을 내가 다시 찾으러 왔소이다!”

 

  생전 처음 보는 놈이 가타부타 말도 없이 자기 집을 제 집이라고 우기니까 어이가 없어진 호공은 탈해를 관청에 고발했다.

 

 “너는 무슨 증거로 이 집 자리가 너의 조상이 살던 곳이라 우기느냐?”

 사실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호공의 집을 방문한 관리가 탈해에게 물었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대장장이 집안이었소. 집 주변을 파 보면 무언가 증거가 될만한 물건이 나올 것이오.”

 

 사내의 말대로 관리가 부하를 시켜 집 주변을 파헤치게 했고, 당연히 탈해가 묻어둔 숫돌과 숯 부스러기가 쏟아져 나왔다.

 관리는 탈해의 손을 높이 쳐들어 주고 집터 주인으로 인정했다.

 

 이 얘기를 전해들은 남해왕은 탈해가 지혜로운 사람임을 곧바로 눈치채고 첫째 딸을 탈해에게 시집 보내 사위로 삼았다.

 요즘으로 치면 남의 땅을 서류 조작으로 거저 먹어 치운 사기꾼에 해당되겠지만, 남해왕의 눈에 탈해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신라를 잘 다스릴 큰 재목으로 판단되었던 것이다.

 

 남해왕이 죽자, 남해의 아들인 유리와 사위인 탈해가 왕위계승 물망에 올랐다.

 그런데 두 사람은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며 계속 서로 양보하는 바람에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두 사람은 결국 떡을 입에 물어 잇금이 많은 자가 먼저 왕이 되기로 결정했다. 당시 신라 사회에서는 이빨이 많은 자가 덕망이 높다고 믿었다.

 

 그 결과 이빨 자국이 많은 유리가 먼저 왕위를 계승하여 제3대 유리왕이 되었다. 이때부터 신라를 다스리는 지배자의 칭호를 ‘이사금’이라고 했다. 이사금은 이빨자국을 의미하는 ‘잇금’에서 나온 말이다.

 

 유리왕은 죽으면서 유언을 남겼다.

 “내 부친께서 승하하실 때 나이 많고 어진 자로 뒤를 이으라 하셨소. 내 두 아들의 자질이 탈해에 비해 크게 떨어지니, 내가 죽거든 탈해를 왕으로 섬기시오.”

 

 신하들은 유리왕의 유언대로 석탈해를 왕으로 추대했는데, 그때 그의 나이가 62세였다. 이주민 탈해가 능력을 인정받아 신라 제4대 임금으로 등극하게 된 것이다.

 

 석탈해 뿐만 아니라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도 알에서 깨어났고 가락국 김수로왕도 그러하니, 그 당시 왕이 될 재목은 알에서 나오는 것이 대세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신라에 항복한 금관가야 왕실의 후손은 신라의 진골귀족으로 편입되어 신김씨계(新金氏系)를 형성했다.

 즉 수로왕의 9대손인 금관가야 제10대 구형왕인 김구해는 왕비와 세 아들을 데리고 신라에 항복했는데, 구해왕의 아들 ‘무력’은 백제와의 싸움에 큰 공을 세워 벼슬이 신라시대 17관등 가운데 최고 관직인 ‘각간’까지 올랐다.

 

 이 ‘무력’이 바로 그 유명한 김유신의 할아버지이다.

 김유신은 서기 660년(무열왕 7년)에 대각간으로 임명되었고, 서기 668년(문무왕 8년)에는 삼국통일의 공을 세워 다시 태대각간으로 임명되었다.

 

 어찌 보면 김수로왕의 후손이 삼국을 통일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수로왕이 세운 금관가야의 본거지인 김해야 말로 한반도에서 무력(武力)의 발생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싶다.

 

 금관가야인 가야국의 국력은 철갑옷과 덩이쇠로 상징되는 제철능력에서 나왔다. 고대국가에서 제철은 오늘날의 핵무기에 비견될 수 있는 위협수단이었다. 가야는 한반도 최초로 제철소를 세운 나라이다.

 

 덩이쇠는 10~50cm 크기의 철판이다. 이를 열 개씩 끈으로 묶어 화폐로 사용했다. 덩이쇠는 가야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유물로, 중국과 일본, 고구려, 신라, 백제에 수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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