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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여전히, 푸른 봄
작가 : 박양지양
작품등록일 : 2017.7.20

존경하다가,
동경하다가,
닮고 싶어 바라보다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가,
자각해버리고.
사랑해버리고
추억 할 수 밖에 없었던.
그런 이야기.

서툰 유지애의 서툰 이야기.
#여주성장물 #짝사랑주의



 
근데 왜 혼자야?
작성일 : 17-09-05 02:57     조회 : 46     추천 : 0     분량 : 7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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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 원래 이렇게 힘들었었나?

  선경이가 나가고 나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5시 50분, 이제 3부 운동이 시작된다.

  이것만 버티면, 원래 내가 운동하는 시간이 돌아온다.

  하하. 버틴다니... 지난 1년 동안은 한 번도 느끼지 못한 낯선 감정이었다.

  늘어지듯 탈의실 벽에 기대섰다.

  작은 한숨을 쉬며 생각해보니 운동 중간 시간에 이렇게 탈의실에 들어온 것도 처음이었다.

  강민이한테 문자 보내볼까? 보고 싶다고?

  가방을 뒤적거려 폰을 찾아 쥐고는 망설이다 폴더를 열었다.

  문자를 보내려고 하는데 오늘 아침에 받았던 사범님의 문자를 눈에 띄었다.

 

  - 유지애. 2년 동안 체육관 잘 지키고 있어. 간다.

 

  그리고 보니 사범님은 잘 도착하셨으려나? 사범님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그동안 일찍 와서 운동하는 시간 내내 너무 사범님한테 기댄 모양이었다.

  혼자 운동하는 거에 힘들어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자꾸 들 때였다.

 

  '아오. 진짜. 이런 쓸데없는 없는 생각 따윈 떠오르지도 못하게 아주 굴려야겠다. 오늘 운동 기대해라.'

 

  불현듯 귓가에 울리는 듯한 사범님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머리가 복잡하면 몸이 힘들면 된다고. 그날 엄청 굴려졌었지.

  숨을 크게 내쉬었다. 운동해야지. 또 혼자 삽질하지 말고.

  3부 아이들이 도착했는지 밖에서 북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탈의실 문을 열고는 소란스럽고 밝은 체육관으로 당당하게 발을 내디뎠다.

 

  *

 

  "제제 누나 나 오늘 술 마시고 학교 갔다가 선생님들한테 혼났어."

 

  운동을 마치고 나른해진 몸을 길게 쭉 뻗으며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데 한성이 녀석이 옆으로 와서는 당연한 소리를 하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중3에 올라가서도 점점 불량스러워지는 모습을 보니 서글펐다.

  분명 굉장히 순하고 여린 아이였는데...

 

  "한성아 너 중3이잖아. 당연히 혼나지."

 

  "아니. 어제 여자친구가 갑자기 헤어지자고 하잖아. 나쁜 년. 그래서 먹었지."

 

  그놈의 여자친구 이야기는 작년부터 들었던 거 같다.

  처음에는 며칠에 한 번씩 바꿔 가며 여자 친구를 사귀더니 어느 날인가 갑자기 순정파로 돌변해서는 진짜 너무 좋아한다는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이야기 하기 시작했었다. 그 후로는 맨날 싸웠다느니, 화해했다느니 다사다난하게 연애 중이던 여자친구와 오늘은 또 헤어진 모양이었다.

 

  "세환이는 하루가 다르게 모범생적인 분위기를 풍기는데 왜 우리 한성이는 나날이 불량스러워질까."

 

  찢었던 다리를 앞으로 펴고 그대로 몸을 숙이며 한탄스럽게 말을 했다.

 

  "씁, 누나 속지마. 세환이 저 녀석이 나보다 더 양아치 짓하고 돌아다녀. 여자도 울리고 술도 마시고. 난 내 여자는 안 울려. 내가 울고 말지."

 

  헐. 내 여자라니. 순간 내가 인터넷 소설을 읽는 중이 아니었을까 하는 착각이 들었다.

  숙였던 몸을 펴고 일어나 멀끔하고 누가 봐도 모범생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세환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보니 좀 나이를 먹어서인지 형소리도 많이 하지 않고 의젓해졌달까? 많이 변했다. 그러다보니 한성이와 함께 아까 선경이같은 초, 중딩 여자애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저 녀석 자기 멋있다고 추종자들을 의식하고 있나?

 

  "하여튼. 누나 나 너무 힘들다."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한성이의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그랬어? 그래도 한성아 술은 마시지 말자. 마시려면 적어도 주말에 마셔. 새 학기부터 선생들 눈 밖에 나면 학교생활 피곤해져."

 

  인터넷 소설의 영향인 건지, 술 마시면서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일을 왜 중학생이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 그 전에 술은 대체 어디서 구하는거야?

 

  "마음이 아파."

 

  얼씨구? 불량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보이는 순한 눈빛에 아직도 (내 눈에만) 어린 아이 같은 한성이를 바라보았다.

  비 맞은 강아지처럼 낑낑거리고 있었다.

  에휴. 한쪽 어깨를 토닥이면서 늘 같은 패턴으로 했던 식상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

  처음에는 진짜 영혼까지 담아 위로했었지만, 이제는 어차피 며칠 지나면 또 여자친구랑 화해할 것이 뻔했기에 의례적인 위로를 건넸다.

 

  "그런 이유로 누나 나 좀 위로해줘."

 

  "해주고 있잖아."

 

  "아니 이거 말고. 누나 이번 주말에 세환이네서 한잔하자. 부모님들 여행가신다고 했단 말이야."

 

  "누나 그런 불순한 무리랑 안 놀아."

 

  "응? 누나아아."

 

  내가 한 번 속지 두 번은 안 속는다.

  예전에야 진짜 위로해주려고 그랬지만 이제는 안 넘어갈 거다.

 

  "술은 우리가 조달할게."

 

  당당하게 말하는 한성이의 말에 뭔가 자존심이 상했다.

  2살이나 많은 내가 왜 대체 중학생 무리가 조달해온 술을 마셔야 할까?

  어이없이 쳐다보자 한성이가 방긋 웃었다.

 

  "누난 평생 가야 술 사 오긴 글렀어. 가끔 누나 보고 있으면 나보다 어린 거 같다니까."

 

  키가 문제인가? 분위기의 문제인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자꾸 보채는 한성이의 말을 흘려들으면서 무리지어 한 명씩 기계체조를 하는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어? 어? 세환이가 멋지게 옆 돌고 쭈가리를 성공시켰다.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자, 체조를 마친 세환이는 쳐다보더니 씩 웃었다.

  봤냐? 라고 이야기하는 듯한 저 의기양양함.

 

  "아오. 세환이 저 시끼 성공했네. 나도 연습할래."

 

  분했는지 한성이도 체조를 연습하는 무리에 섰다.

  이제 겨우 옆돌고 백핸드 성공한 나는 언제 쭈가리를 할 수 있으려나? 연습하고 있는 무리가 살짝 부러워졌다.

  한 해가 더 지나면서 이제 다들 나보다 키도 커지고 제법 남자티들이 나기 시작했다.

  체격들도 다들 좋아지고 이제는 체력으로도 밀리게 되어 이제는 선착순 달리기 순위권에 들기도 힘이 들었다. 남자애들은 체격이 달라지는 만큼 운동신경도 함께 발달하는지 정말이지 매일매일 실력이 늘어가는 게 눈에 보였다.

  착실히 성장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진짜 이러다가 뒤쳐지겠네.

  어차피 체조로 이기긴 글러 먹은 것 같아 무기가 정리된 곳에서 죽도를 꺼내 들었다.

  거울 앞에서 양손으로 죽도를 쥐어 잡자 거울 속의 나도 크게 심호흡을 했다.

  일단, 내려치기 백 번. 팔 힘부터 길러야겠다.

 

  *

 

  "그래서 다음 주부터 바로 야자를 시작한다."

 

  종례 후 담임의 통보에 반 전체에서 우-하는 긍정적이지 않은 반응들이 가득 찼다.

 

  "다른 반 아이들은 자율 참여고 우리 진학반은 강제참여다. 혹시 다른 학원 일정이 있거나 동아리 활동의 경우는 빼주니까 다음 주 되기 전 빠지고 싶은 사람은 이야기하도록."

 

  음, 합기도 가는 것도 빼주시려나?

  종례를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가는 담임의 뒤를 따라나섰다.

 

  "쌔앰~."

 

  앞서가시는 담임선생님을 불렀다.

 

  "안돼. 합기도는. 하고 싶으면 야자 끝나고 가."

 

  그저 부르기만 했을 뿐인데 담임은 돌아서자마자 먼저 철벽을 쳤다.

  바늘도 들어갈 틈도 없이 단호박인 담임의 태도에 더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교실로 돌아갔다.

 

  "담임이 뭐래?"

 

  인성이의 질문에 안된데, 라고 시무룩하게 대답을 했다.

  그럴 줄 알았어, 라고 말하며 인성이도 가방을 챙겼다.

 

  "인성아 너는 야자 할 거야?"

 

  "응 하긴 할 거야. 근데 화, 목은 영어학원 가니까 그날은 빠질 듯?"

 

  "나도 빠져. 유도부 연습 있어."

 

  어느새 다가온 강민이가 대화에 참여했다.

  뭐야, 결국은 나 혼자 하게 생겼구나.

 

  "그래도 체육관 갈 때는 같이 가자. 야자 끝날 때쯤 연습 끝나니까."

 

  강민이는 시무룩해져 있는 내 어깨에 살짝 두드리며 팔을 둘렀다.

 

  "곰! 탕수육 먹으러 가자."

 

  교실 뒷문을 열리며 나나와 해미가 들어왔다.

  다른 반이어도 이렇게 수업이 끝난 후에 모이니까 1학년 때로 돌아간 거 같았다.

 

  "넌 무슨 맨날 먹을 생각밖에 없어? 크긴 글렀으니 옆으로 뒤룩뒤룩 찌겠구나."

 

  "조리과에 와서 음식을 먹는 기쁨을 모를 거면 왜 왔냐? 넌 연습이나 가."

 

  "다섯 시에 맞춰서 들어가면 되거든?"

 

  나나는 강민이의 대답에 코웃음을 치면서 강민이 품에 안긴 나를 빼내며 말했다.

 

  "곰! 이번에 신장개업한 곳 짜장이 1500원! 탕수육이 3000원! 이건 먹어줘야 한다고."

 

  인성이도 웃으면서 따라나섰다.

  나와 함께 가는 나나에게 짜증을 내는 강민이와 그런 우리가 재미있는지 웃는 해미도 뒤따랐다.

  교정 여기저기 파릇한 새순 가득했다.

  이렇게 5명이 함께 그 길을 걷고 있으니, 어제 들었던 교실 안의 이야기도, 사범님이 없이 유달리 힘들었던 아이들 지도도 바람결에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직은 싸늘한 3월의 봄바람은 운동장을 지나는 우리를 감싸 안듯 불어왔다.

 

  *

 

  4월도 어느새 중반을 넘어섰다.

 여전히 사적으로 연락할 만큼 친한 친구는 더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다들 이야기는 하는 정도로 그럭저럭 학교생활을 보냈다.

  그리고 어제 체육관 카페 공지에 올라온 입대한 사범님과 흰둥이 오빠가 자대배치 소식에 아침부터 짬짬이 편지를 쓰는 중이었다.

  신체 계측날이라 교실을 옮겨 다니는 통에 학교 전체가 어수선했지만 여유 시간이 많아 편지 쓰기 딱 좋았다.

  렌즈를 오래 껴서 그런지 시력은 좀 더 나빠지진 것을 빼고는 신체적인 변화는 거의 없었다.

  사실 이제 성장기도 지났으니 크게 달라질 만한 사항이 있을 리가 없었다.

  반 애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편지를 이어 써 내려갔다.

 

  [... 오늘은 신체 계측한다고 수업 안 해요. 히힛. 그래서 이렇게 편지 쓴답니다. 한 사범님하고 현성이 오빠한테도 벌써 다 썼어요. 사범님꺼 마지막으로 썼다고 화 안 내실 거죠?

  아까 몸무게 재봤는데 작년보다 살이 더 빠진 거 같아요. 요즘 실습으로 빵도 만들고 중식도 하고 양식도 배우면서 다 먹는데 왜 살이 더 빠지고 있는 걸까요? 공부하느냐 힘들어서 그런가? 그래도 잘 새 학기 잘 적응하고 있어요.

  사범님은 어떠세요? 훈련은 힘들지 않아요? 너무 고생해서 휴가 해골이 되어서 나타나는 건 아니죠? 꼭 건강한 모습으로 오세요. 안 그러면 슬플 거 같아요.

  아 맞다. 그리고 며칠 전에 버디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범님 아이디에 불이 들어와서 사범님 탈영한 줄 알고 깜짝 놀랐어요. (사범님 동생이 몰래 들어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체육관에 문성동이라는 사람이 본관에서 왔어요. 이쪽 동네로 이사 왔다고 하더라고요.

 하여튼 그래서 이제 우리 체육관에서 운동한대요. 사범님은 누군지 아세요? 그리고 강진수라는 애도 본관에서 왔어요. 관장님 친척이래요. 이제 체육관에 파란색 도복이랑 유단자들만 바글바글해요. 그래서인지 관장님이 운동 되게 빡쎄게 시켜요. 엉엉.

 시간이 참 빨라요. 벌써, 4월 중순 벚꽃이 폈어요. 따뜻해져서 이제 정말 봄 같아요. 사범님 체육관은 잘 지키고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이만. 2004. 4. 17]

 

  마지막 날 자를 다 쓰고 펜을 내려놓았다.

  연속으로 세 통을 쓰려니까 생각보다 더 힘이 들었다.

  미리 주소를 적어온 편지봉투에 하나씩 접어 넣고 있을 때, 이제 막 신체 계측을 끝낸 남학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소매를 걷어 올리고 교복 셔츠만을 입은 강민이가 눈에 보였다.

  요즘 운동량이 많아서인가 사귀기 시작할 때보다 몸이 더 좋아졌는지 셔츠가 팽팽해졌다.

  짝인 인성이도 의자를 빼내며 앉았다. 그리고 보니 인성이도 더 통통해졌다. 좀 더 맛있는 호빵의 느낌이랄까. 여전히 포근포근한 분위기를 풍기며 인성이가 물었다.

 

  "웬 편지들이야?"

 

  "체육관 사범님들하고 오빠들 자대배치 받았다고 해서 쓰는 중."

 

  인성이는 아아 그렇구나, 라며 웃으면서 책상 서랍 속의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무슨 책이지 싶어 제목을 보려는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뭔가 싶어 돌아보니 꽁꽁 언 페트병을 한 손에 쥐고 내 책상 위에 걸터앉은 강민이가 편지봉투의 편지를 꺼내고 있었다.

  빈 편지 봉투에는 박 사범님에게라고 적혀있었다.

  대충 훑어보던 강민이는 편지를 도로 접어 넣고는 들고 있는 페트병을 그대로 입에 댄 채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어? 왜?"

 

  "그냥."

 

  의아한 표정으로 강민이를 쳐다보고 있는데, 도도와 나나가 자리로 와 소란을 떨었다.

 

  "으앙. 지애야. 믿어지니? 내가 졌어."

 

  도도는 생뚱맞게 내뱉는 소리에 승자의 미소를 짓고 있는 나나를 쳐다보았다.

  뭐지?

 

  "뭐가 졌다는 거야?"

 

  억울해하는 도도를 바라보며 물었다.

 

  "가슴. 내가 나나보다 작대."

 

  책상에 앉아있던 강민이는 갑자기 사레가 들린 듯 쿨럭거리며 자리를 옮겼다.

  그 자리에 나나가 대신 앉더니 승자의 여유를 만끽하며 입을 열었다.

 

  "내가 키는 너보다 좀 작아도 가슴은 B컵이 꽉찬다고."

 

  "악! 내가 지다니! 나도 B컵이란 말이야."

 

  나나의 말에 대답하는 도도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번엔 옆에 앉아있던 인성이가 조용히 자리를 옮겼다.

  나도 모르게 두 사람의 가슴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평상시 관심이 없어서 유심히 쳐다보지 않았던 터라 둘의 가슴이 크다는 걸 몰랐다.

  내 앞에서 가슴 크기 부심을 부리는 애들을 보니 갑자기 눈물 한 방울을 또르르 흘려야 될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너희. 내 앞에서 무슨 짓이야. 난 간신히 A컵 채우는데!"

 

  "넌 말랐잖아."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나나와 도도의 모습에 배신감이 들었다.

  자기들도 말랐으면서 어째서 너희는 B컵인 거지.

  몸무게가 덜 나가는 만큼이 가슴 무게인건가.

  서글픈 마음에 엎드려버리자 나나가 토닥여줬다.

  나쁜 기집애들. 배신자들.

 

  *

 

  소름이 돋을 정도로 조용한 교실에 혼자 남아있으니 조금 무서워졌다.

  재깍거리는 시계 소리와 사각거리며 문제 푸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리는 교실 안은 환했지만, 어둑어둑해진 복도와 창밖의 풍경에 신경이 예민해져 가고 있었다.

  목요일. 강민이도 인성이도 모두 야자를 하지 않는 오늘. 하필이면 오늘이 신체 계측 날이였던 터라 일찌감치 야자를 몰래 빼고 도망가버린 아이들이 수두룩했다.

  도망갈 타이밍을 못 잡은 나는 어쩌다 보니 이렇게 혼자 남아버렸다.

  교실에는 가방 몇 개만이 사람들 대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위장용 가방들과 따로 실습을 하고 있는 친구들의 가방이었다.

  인성이 자리에도 강민이의 책가방이 놓여있었다.

  그래도 미용과가 아닌 게 어디야. 가끔 하교하는 길에 창가에 놓여진 마네킹 머리들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로 했다.

  8시. 아직도 한 시간이 남았다.

  스멀스멀 몰려오는 공포심에 문제집을 풀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그래, 정석을 풀자.

  자주 꺼내지 않아 깨끗한 수학의 정석을 펼쳐 놓고 공책에 풀기 시작했다.

  문제에 집중을 하고 있어도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 조용한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착각에 들었다.

  아, 왜 하필 어렸을 때 들었던 학교 괴담이 지금 떠오르냐고.

  쿵쿵 - 드르륵 - 어 여기도 없네.

  쿵쿵 - 드르륵 - 어 여기도 없네.

  뇌리에서 재생되는 듯한 영상에 오싹한 기분이 들고 있는 찰나, 갑자기 드르륵-하고 교실 문이 열렸다.

 

  "엄마야!"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리고 싶은 마음으로 뒷문을 쳐다보았다.

  내 비명에 함께 놀란 강민이는 순간 멈칫하더니 성큼성큼 다가와 날 품에 꼭 안고는 다독여주었다.

  아기를 어르듯 다독거리는 손짓에 공포심은 서서히 사그라들고 있었다.

 

  "괜찮아? 많이 놀랐어?"

 

  강민이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도복을 입고 있는 강민이에게 안긴 터라 살짝 맨살이 얼굴에 닿았다.

  이제는 공포가 아닌 다른 것으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근데 왜 혼자야? 애들은 다 어디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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