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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여전히, 푸른 봄
작가 : 박양지양
작품등록일 : 2017.7.20

존경하다가,
동경하다가,
닮고 싶어 바라보다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가,
자각해버리고.
사랑해버리고
추억 할 수 밖에 없었던.
그런 이야기.

서툰 유지애의 서툰 이야기.
#여주성장물 #짝사랑주의



 
변화하는 일상
작성일 : 17-08-29 13:13     조회 : 48     추천 : 0     분량 : 7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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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

 

  한가했던 9월이 지나고 벌써 10월, 완연한 가을이 되었다.

  체육관은 또다시 대회 모드로 바뀌어 끝나는 시간이 불규칙하게 돼버렸다.

  강민이 역시 중간고사와 추석이 지나자마자 유도부에서 새벽 훈련과 더불어 오후 훈련까지 하느냐 데이트는 꿈도 못 꾸고 둘이 얼굴 볼 시간도 많이 줄어버렸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붙어있다가 이제는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밖에 함께 할 수 없으니 많이 허전해졌다.

  1달 조금 지난 기간 동안 함께 계속 있었던 것이 너무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오늘도 연습이야?"

 

  점심시간.

  강민이는 자기 무릎에 나를 앉히고선 뒤에서 살며시 껴안고는 물었다.

  요즘 들어 이런 식으로 접촉해 올 때마다 자꾸만 두근거렸다.

 

  "응 이제 이틀 남았잖아. 분위기도 살벌해지고 있어. 오늘도 새벽에 끝날 거 같아."

 

  "오늘도 보긴 글렀네."

 

  강민이는 아쉽다는 듯 허리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미안. 강민이 너도 요즘 힘들지."

 

  "응. 제대로 훈련 들어가니까 확실히 힘들긴 해."

 

  "아 우리도. 얼른 대회 끝났으면 좋겠다. 이번에 출전 종목이 많아서 너무 힘들어."

 

  "뭐 나가는데?"

 

  "연무랑 발차기랑 대련. 아 그리고 토요일도 체육관 가야 해."

 

  "일요일이 대회랬지?"

 

  "응."

 

  "이번 주도 데이트 못 하겠네."

 

  "지금 하고 있잖아. 이 화상들아."

 

  양치질을 하고 온 해미가 짜증을 냈다.

 

  "이것들 요즘 자꾸 붙어있어. 풍기문란. 훠이훠이."

 

  해미가 내 손을 잡고 일으키려하자, 강민이가 허리를 안은 팔에 더 힘을 주었다.

 

  "안돼. 나 충전 중이야. 요즘 통 같이 못 있었단 말이야."

 

  "지랄한다. 서강민. 곰 나도 안아줘. 요즘 훈련 너무 힘들어."

 

  "지애 내 거야. 저리 가 이해미."

 

  강민이는 긴 다리로 해미를 툭툭 치며 경계하자, 해미가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강민이를 쳐다보았다.

 

  "다 비켜. 곰은 내 것이다."

 

  나나는 의기양양하게 나에게 폭삭 안겨 왔다.

 

  "아오, 은나나 진짜 쥐방울만한게."

 

  "뭐 뭐? 등치만 커다란 시끼가."

 

  강민이는 투덜대며 허리를 감싸 안은 팔을 푸르고 일어섰다.

 

  "유지애. 쟤들이랑 친구 하지마. 아오 씨."

 

  "네가 뭔데 우리 곰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삐친 듯 입을 나온 채로 자리로 돌아가는 강민이를 보면서 나나는 한마디 쏘았다.

  강민이가 교실 뒷문을 열고 나가자, 뒤에서 목을 껴안으며 다가온 해미는 이야기를 꺼냈다.

 

  "아! 곰. 오늘 우리 연습하는 거 보러 올래?"

 

  "엥? 보러 가도 돼? 연습 방해 안 돼?"

 

  "응 어차피 5시까지는 자유 수련시간이야. 서강민이 좀 와달라고 안 하든?"

 

  "응 딱히. 난 연습 방해될까 봐 안 갔지."

 

  "여자친구인 곰 너 빼고 다른 과 여자들이 와서 강민이 구경와."

 

  "강민이 여자친구 있는 거 다들 알지 않나?"

 

  "그냥 아 쟤 여자친구 있는 데라고 상상하는 거랑 눈앞에 딱 나타나서 강민이가 좋아죽겠다고 안아대는 걸 보는 거랑 차원이 다르지."

 

  "하하하."

 

  "웃을 때가 아니라니까."

 

  "가라 보여줘라. 곰 남친 눈독 들이는 애들에게 저 지랄 맞은 서강민의 본모습을 보여줘."

 

  "진짜 한번 와. 과 여자애들도 여자애들이만, 서강민 저 시끼가 맨날 지애는 어떻게 한 번을 구경을 안오냐. 나 운동하는거 안 궁금한가 하면서 꿍얼거리는 것도 못 들어주겠다."

 

  "강민이가 그래?"

 

  "어, 서강민 안 그럴 거 같으면서 은근히 신경 쓰고 있어. 다른 애들 막 구경 오는데 곰 네가 안 오니까 서운한가 봐."

 

  "애야 애. 쯧쯧. 우리 곰 갈 거야?"

 

  "응."

 

  "흠. 그럼 그냥 오늘은 인성이랑 가야겠다. 너 거기 갔다가 우리랑 지하철역까지 가면 체육관 지각이다."

 

  "그래그래."

 

  "가서 도장 딱 찍어놓고 와. 거봐 저런 놈 사귀지 말라니까 피곤하잖아. 주변도 귀찮아. 정작 저 시끼도 애야. 피곤해."

 

  투덜거리는 나나의 말에 그냥 웃었다.

 

  *

 

  "아씨 연습 가기 싫다."

 

  종례가 끝나자마자 잽싸게 내 책상 위에 앉아서는 강민이는 지옥에 끌려들어 가는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가야지. 얼른 가."

 

  "넌 안 아쉽냐. 지금가면 토요일까지 얼굴도 못보는데?"

 

  "잘 다녀오시죠? 난 내 남자친구가 땀 흘리면서 운동하는 게 좋더라."

 

  "한 번도 보러 온 적도 없으면서 말은."

 

  강민이는 삐죽거리며 내 코를 살짝 잡아당겼다.

 

  "아파. 하지마."

 

  코를 만지며 곱게 흘기자, 강민이는 충전, 이러면서 살짝 이마에 뽀뽀를 하고는 웃었다.

  아니 멋지고 설렌 거 아니까 이왕이면 둘만 있었을 때 그랬으면, 주변의 눈초리가 심상치가 않잖아.

 

  "지랄을 해라 지랄을. 곰 얘 데리고 간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 해미는 강민이 목덜미를 잡아끌고 유도부실로 향했다.

  불평하며 끌려가는 강민이 뒤에선 해미는 나에게 살짝 윙크했다.

  알았어 간다고 가.

 

  "쟤는 어떻게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냐. 그냥 저 모습 보면 다른 과애들도 정떨어지지 않을까?"

 

  나나는 혀를 차면서 끌려가는 강민이를 바라보았다.

 

  "의외긴 하지? 나도 가끔 놀래."

 

  "어 무뚝뚝하게 굴어서 너 맘고생 시킬 줄 알았더니만, 거침없이 표현하네. 가끔 당황스럽다 얘. 인성이랑 나는 보이지도 않나 봐."

 

  쿡쿡 웃으며 인성이와 나나에게 천천히 인사를 하고는 가방을 메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체육관을 향했다.

  3층짜리 삐까번쩍한 체육관 건물에는 큰 강당과 유도부실 겸 숙소가 있었다.

  농구부를 위한 농구 코트도 있었고. 어쨌든 이상하게 학교가 체육 쪽 투자를 많이 했다.

  교실 본관보다 깨끗한 체육관 1층 문을 열고 들어갔다.

  유도부실이 2층이었던가?

  중앙의 넓은 계단을 반 층쯤 올랐을 때 다른 과 여학생들이 모여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민이가 멋있다는 둥, 여자친구 아직 안 헤어졌냐는 둥 해미가 우려했던 것이 무엇인지 조금 알 거 같았다.

  활짝 개방된 유도부실 문에 들어서자, 저 구석에서 파란 도복을 입은 강민이가 긴 끈을 가지고 연습을 하는 것이 보였다.

  가기 싫다고 한 거 치고는 주변도 보지 않고 열중해서 수련중이었다.

  역시 남자는 도복이야.

  멋있는거 알았지만 확실히 운동에 집중할 때의 모습은 취향 저격이랄까?

 

  "오! 왔네?"

 

  이제 막 옷을 갈아입었는지 탈의실에서 나온 해미가 뒤에서 어깨를 둘렀다.

 

  "강민이 되게 열심히 하네?"

 

  "응 엄청 성실함. 그래서 저기서 짹짹대는 여자애들이 뻑가잖아. 올라와."

 

  하하, 웃으면서 신발을 벗고 매트를 밟았다.

 

  "근데 들어가도 돼?"

 

  "응응, 괜찮아. 아직 부담임도 안 왔고. 들어와서 구경해. 5시까진 딱히 터치 안 해 선배들도."

 

  "그래."

 

  해미가 이끄는 데로 들어와 서니 뒤쪽 벽을 빼곡히 채운 대회 사진들과 트로피들이 보였다.

  관심 있게 쳐다보고 있자 해미는 자랑스럽다는 걸 감추지 않고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우리 학교 원래 전통적으로 남자 유도부가 엄청 세. 근데 아무래도 체고에 수적으로 밀리니까 여자 유도부가 나중에 생기고, 부담임이 맨날 눈에 불을 켜고 운동할만한 애들 찾아내고 있어. 너 운동하는 거 알면 아마 가입하라고 귀찮게 할 거다."

 

  그리고 보니 사범님들과 흰둥이 오빠가 윤경아 선생님은 꼭 피해서 운동하는 거 티 내지 말고 다니라고 했지.

  하하, 어색하게 웃었다.

  해미는 저 구석에서 연습하는 강민이를 바라보면서 혀를 찼다.

 

  "강민이 불러올게. 곰 너 온 지도 모르고 완전 연습 삼매경이다. 쯧쯧."

 

  강민이를 향해 멀어지는 해미에게 웃어 보이고는 사진들이 잔뜩 붙어있는 벽으로 시선을 옮겼다.

  십몇 년 전부터 출전한 대회장에서 찍은 단체 사진들이 주르륵 나무 액자에 걸려있었고 그 아래로 그 해당연도의 사람들의 일상적인 사진들이 무질서하게 전시되어있었다.

  과거의 사진부터 죽 살피며 지나가다 98년도 대회 출전 사진 앞에서 멈추었다.

  푸른 도복을 입고 내 기억 속에 존재하던 박 사범님보다도 어린 모습으로 메달을 목에 걸고 맨 앞줄에 앉아 있는 사진이었다.

  98년도면 사범님이 고1, 딱 지금 내 나이였다.

  앳된 과거의 박 사범님은 소년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옆에는 흰둥이 오빠와 한 사범님도 있었다. 모두 지금의 내 나이다. 기분이 새로웠다.

  늘 먼 거리에 있는 듯한 사범님이 나와 같은 고1의 모습이라니.

  대회 사진 밑으로 줄을 잡고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 다른 오빠들과 장난치는 모습, 그리고 여은이 언니와 함께 웃고 있는 사진도 있었다.

  지금도 워낙 동안이긴 하시지만 고1 때는 완전 소년과 남자를 뒤섞은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랬는데 인기가 없을 리가 없지.

  소년처럼 웃는 모습이 낯설고도 설렜다.

  어? 설레? 왜? 이상한 감정이다.

 

  "올 거면 이야기하지."

 

  갑자기 뒤에서 껴안은 강민이가 속삭였다.

  운동하던 도중이라 그런지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목에 두른 강민이의 양팔을 손으로 감쌌다.

 

  "서프라이즈? 나 온 지도 모르고 연습 엄청 열심히 하던데?"

 

  쿡쿡 웃는 내 어깨에 강민이는 고개를 파묻었다.

  살짝 젖은 머리카락이 내 볼을 간지럽게 했다.

 

  "근데 뭐 보고 있었어?"

 

  "사진. 여기 우리 체육관 사범님들 있더라고. 나랑 같은 나이 때라니 뭔가 느낌이 이상해."

 

  "뭐?"

 

  어깨에 파묻은 고개를 들며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사진을 한참 지켜보던 강민이는 증명사진이랑 느낌이 다르잖아, 라며 중얼거렸다.

  하나하나 사진을 보던 강민이는 여은이 언니와 함께 웃고 있는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사람, 여자친구인가?"

 

  "여은이 언니?"

 

  "아는 사이야? 둘이 아직도 사귀나?"

 

  강민이의 목소리가 왠지 기쁜듯했다..

 

  "글쎄? 사귀었다고 듣기만 한 거라 잘 몰라. 그래도 계속 연락은 하는 거 같긴 하던데."

 

  "그래?"

 

  "응."

 

  대답은 했지만 사진에서 이상하게 눈을 뗄 수 없었다.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온 기분이었다.

  모르는 모습은 익숙한 듯 낯설었다.

  아니 뭐라고 표현하지 못할 기분이 저 밑에서부터 올라왔다.

  알면 안 될 거 같은 그런 느낌.

 

  -쪽.

 

  예민한 목덜미에 따뜻한 숨결이 느껴졌다.

  꺅! 나도 모르게 내 목을 감싸고 있는 팔을 그대로 잡아 강민이를 내다 꽂았다.

  강민이는 얼떨결에 낙법을 뜨며 떨어졌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잠깐 체육관에 정적이 흘렀다.

  숨결이 닿았던 목덜미가 뜨거웠다.

  한 손으로 그곳을 숨긴 채, 미안함 부끄러움 이상한 기분이 한데 섞인채 순간 일어난 상황에 어이없어하는 강민이의 눈과 마주쳤다.

 

  "너... 지금 나 던졌냐?"

 

  황당해하는 음색이 역력했다.

  정적이 깨지고 수군거림이 들리자, 어이없음에서 얼굴이 시뻘게진 강민이가 벌떡 일어섰다.

  표정이 굳은 걸 보니 화났다. 200% 화났다.

  아, 그러게 왜 목에다 입을 대 입을 대긴! 여기 둘만 있냐고!

  집중돼는 시선에 뭐라고 말도 못하고 작게 미안, 이라고 속삭였다.

  잠깐 노려보던 강민이도 쏟아지는 시선을 느꼈는지 그대로 내 어깨를 잡고 체육관 문으로 향했다.

 

  "일단, 가. 다른 애들 보니까."

 

  강민이가 미는 대로 신발을 신고 유도부실 밖으로 나왔다.

  다른 여자애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수군거림도.

 

  "강민아 화났어?"

 

  한쪽 팔로 문에 기대서서 쳐다보고 있는 강민이를 올려다보며 눈치를 살폈다.

  강민이는 자기 머리를 거칠게 헝클며 말했다.

 

  "나한테 화났어. 아무리 내가 방심했다고 해도 그렇게 당한 게 창피해서 어쨌든 나 연습할 거니까 오늘은 그만 가. 아오. 아무리 순간적이었다고 해도 휴..."

 

  "미안."

 

  화를 참는 듯한 강민이의 모습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아마 사람들 앞에서 그런 일을 당해서 더 그런 듯했다.

 

  "화 안 낼 거니까 어서가. 나 지금 엄청 쪽팔려서 네 얼굴 보기 창피해."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보던 강민이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돌아서는 내 뒤로 체육관 문이 작은 소리를 내며 닫혔다.

  아, 바보 거기서 던져버리면 어떡하냐고.

  그냥 꺅 소리 내고 말았어야 했는데..

  후회가 밀려들었지만 일은 이미 벌어졌다.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낸 채 체육관을 향했다.

 

  *

 

  연무 시범을 마치고 관람석에 앉아 김밥을 입에 넣었다.

  내 대련은 점심시간 이후인지라 부담 없이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바로 대련 대회에 참여해야 하는 세환이와 한성이는 물만 조금 마시고는 코트로 내려갔다.

  사범님들도 김밥 몇 개 입에 대충 쑤셔놓고는 초등부 애들을 이끌고 기록경기가 한창인 코트로 향했다.

  고생이시네, 라고 생각하며 김밥 하나를 더 입에 넣을 때, 도복 위에 걸친 가디건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뭐지? 휴대폰을 꺼내보니 알림창에 내남친♡이란 글자가 반짝이고 있었다.

 

  - 여보세요?

 

  - 유지애. 무섭던데?

 

  - 응? 갑자기 무슨 소리야?

 

  - 너 대회 구경 왔다는 소리.

 

  - 뭐?

 

  - 뒤쪽.

 

  뒤를 돌아보니 검은 청바지에 품이 큰 검은색 후드티를 입고 입구에 기대서 있는 강민이가 보였다.

 

  - 이리와.

 

  - 응.

 

  옆에 앉아있던 윤호가 어디 가느냐고 묻길래, 그냥 화장실이라고 대충 둘러대고 들고 있던 김밥을 맡기며 일어났다.

  강민이에게 다가가자 안기라는 듯 손을 벌렸지만 우리 체육관 뿐 아니라 다른 체육관 사람들 눈에 걸려봐야 좋을 것이 없어서 강민이의 등을 밀며 바깥으로 나갔다.

  경기장 밖으로 나오니 쨍한 햇빛에 눈이 부셨다.

  강민이의 손을 잡고 조금 외진 곳에 있는 커다란 나무 그늘에 섰다.

  도복 입은, 아니 정확히는 체육관에서의 내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이상했다.

 

  "도복이 왜 이렇게 커?"

 

  강민이는 도복 옷깃을 살짝 만지며 물었다.

 

  "관장님이 큰 거 주셨어."

 

  "안 그래도 작은데 이러니까 진짜...."

 

  "진짜?"

 

  "...콩알만하네."

 

  뭐야, 라고 말하며 살짝 투닥거렸다.

  강민이는 작게 웃으면서 계속 애 취급했다.

  작게 삐죽거리자 강민이는 나를 꼭 안으며 말했다.

 

  "대회 언제 끝나?"

 

  "오후 6시는 지나야 결과 나와."

 

  "기다릴까?"

 

  "아니, 그러지 마. 대회 시작하면 나 정신도 없고 바로 뒤풀이 가거든."

 

  "뒤풀이? 그래? 아, 그나저나 왜 너네 체육관에 여자들이 없어? 완전 남자들한테만 둘러싸여 있더라."

 

  "있어. 여진이. 이번 대회 출전을 안 해서 그렇지. 초등부에 몇 명 있는데 못 봤어?"

 

  "장난하지 말고."

 

  "장난 아닌데..."

 

  강민이의 가슴을 살짝 밀어내어 쳐다보았다.

  살짝 찡그린 눈썹에 굳게 다문 입매가 뭔가 마음에 안 들어 하는 분위기였다.

 

  "너무 남자애들이랑 친하게 있지마. 나 솔직히 질투 엄청 하거든?"

 

  까만 눈이 지긋이 쳐다보며 장난기 없는 말투로 이야기하는 강민이를 쳐다보며 작게 웃었다.

 

  "웃어? 나 진심인데?"

 

  "아니, 서강민 네가 질투하니까 좀 기분이 좋아서. 그리고 뭐 다들 동생들이야."

 

  대답이 맘에 안 들었는지 뚱한 표정을 짓고는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재잘거리며 연무가 이랬고 저랬고 이야기를 하는 내내 강민이는 말이 없었다.

  평소와 조금 다른 분위기가 흘렀다.

 

  "...강민아?"

 

  묘한 분위기에 이상한 위험이 감지되었다.

  내가 아무리 연애를 안 해봤다지만 다년간 만화와 소설들을 다독한 경험상 이건 아마 그 타이밍임이 분명했다.

  문제는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였다.

  혹시나 주변에 아는 사람이 없는지 슬쩍 쳐다보았다.

  다행히 이른 오전 중이라 따로 나오는 경기장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없었다.

  양 볼에 손을 가져다 댄 강민이는 내 얼굴을 살짝 들어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무리 어려도..."

 

  강민이는 무슨 말을 더하려는 듯 입을 뗐다가 다물었다.

  짧은 순간 강민이의 표정이 미묘하고 빠르게 변화했다.

 

  "유지애. 체육관에서 너무 무방비하네."

 

  눈을 고정한채 나지막이 속삭이듯, 그렇지만 화를 참는 듯 단호하게 말하는 강민이의 시선이 평소와 조금 달랐다.

  어? 어떡하지? 바라보는 눈빛에 설레는 마음과 두려운 마음이 혼합되어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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