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동원은 늦은 밤, 아저씨들이 잔뜩 있는 돼지국밥 맛집에 와 있었다.
둘은 예전의 몸매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불어 있었다.
시인은 의사선생님의 다이어트 권고에도 이미 20kg이 넘어 있었고, 임신과 아무 상관없는 동원도 운동선수처럼 몸집이 커져 있었다.
“우동이는 또 돼지국밥 먹고 싶대요?”
“네. 여기 돼지국밥이 너무 맛있어요.”
“우동아, 많이 먹어.”
“호호호, 우리 진짜 둘 다 거대해요.”
“뭐.. 어때요? 우리가 행복한데..”
“우리 그 때 같이 입덧한 거 생각나요?”
“진짜 신기해요. 내가 왜 입덧을..”
임신 3개월이 되자 본격적으로 시인의 입덧이 시작되었다.
드라마처럼 냄새만 맡아도 괴로워하진 않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잘 먹다가 토하기도 했고, 먹기도 전에 화장실로 뛰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놀라운 건 그 옆에서 시인이 그럴 때마다 동원도 같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다들 놀랬지만 동원은 혼자 밖에서 식사를 할 때도 이유도 없이 뜬금없이 헛구역질이 났고 그게 말로만 듣던 남편의 입덧이라고 들은 뒤 정말 신기해했다.
내가 이렇게 시인씨를 사랑하는 구나.. 하며 약간의 우월감도 들었다.
예쁜 태명을 짓고 싶었지만 아빠 제사를 마치고 오는 날 선수가 ‘우동아, 잘 가.’ 하는 바람에 우동이가 되어 버렸다.
시인이 예쁜 이름 지으려고 했는데 다 날아갔다며 울고불고 했지만 이미 ‘우동이’가 된 이후 어떤 새로운 이름을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게 아기는 우동이가 되었다.
“좀 더 먹어요. 이제 산달인가?”
국밥집 아주머니가 시인에게 수육을 더 갖다 주며 물었다.
“네. 이번 달에 낳는대요.”
“추울 때 오히려 몸조리하기 좋아요. 예쁜 녀석이 어찌 그래 임신 내내 국밥을 찾누. 아들이지?”
“확실치는 않지만.. 호호호. 음.. 음?”
아주머니가 다른 자리로 가자 시인이 갑자기 배를 쓸어내렸다.
“왜요? 왜?”
“너무 많이 먹었나? 왜 배가 아픈 거 같지?”
“많이.. 많이 아파요? 119 불러요?”
“아니 아니, 안 아파요. 그냥 살짝 싸르르 했어요. 호호호. 얼른 먹고 가요.”
집으로 돌아 온 시인은 샤워를 하고 나와서는 또 배를 만졌다.
생리통 같기도 하고 약간 긴장되는 아픔이 느껴졌다.
급하게 폰을 들어 검색을 시작했다.
검색하다 보니 또 아무렇지도 않아 아무것도 아닌가 하다가 화장실에 가니 팬티에 피가 살짝 묻어 있었다.
‘아.. 아기가.. 우동아, 나올 거야?’
갑자기 마음이 차분해진 시인은 말없이 나와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샤워 후 상쾌해진 얼굴로 나오던 동원이 옷을 입고 있는 시인을 보며 한가하게 물었다.
“이미 다 잘 싸 놓은 짐을 또 보고 있어요? 얼른 잠옷 안 입고 뭐해요? 자.. 시인씨?”
“자.. 일단 앉아요. 동원씨, 긴장하지 말고. 자..”
시인은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동원을 ‘동원씨’라고 불렀다.
동원도 그런 호칭은 전혀 들리지 않는 패닉상태에 빠져 들었다.
“택.. 택시 타고 가요? 내.. 내가 운전하면 안 될 것 같은데? 119?”
“자, 여보. 우리 병원은 걸어가는 거리에 있어요. 그렇죠? 자 정신 차리고 이 가방을 들어요. 아.. 좀 더 아픈 거 같은데? 아아악! 어쩌지? 아기 나오려나봐요. 빨리 뛰어요.”
둘은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아직 멀었다며 간호사에게 잔뜩 잔소리를 듣고 둘은 다시 집에 돌아왔다.
“이제 가진통 시작되는 거구요. 가진통만 3일 오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니까 집에 있다가 진짜 아프기 시작하면 와요. 여기 있는 거 보다 집도 가까운데 집에 있는 게 더 나아요.”
병원과 5분 거리에 있는 집이 이럴 땐 참 좋았다.
시인은 영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영현아, 진짜 진통은 어떤거야? 얼마나 아파?”
“왜? 진통와?”
“응. 이슬도 보였고. 계속 아팠다 안 아팠다 해.”
“어느 정도?”
“생리통?”
“훗.. 아직 멀었군. 진짜 진통은 말야..”
꿀꺽
시인이 침을 삼켰다.
“이게 진짠가 아닌가 헷갈리지 않아. 그냥 오면 알아. 아.. 이게 진짜구나..”
“어떻게?”
“크크크. 상상으로는 안 돼. 그냥 알 수 있어. 그러니 맘 편히 한 숨 주무셔. 니도 이제 좋은 세상 끝났다. 배 속에 있을 때가 제일 좋은 것을. 크크크.”
“응, 고마워.”
시인은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늦게 갈 것 같아 억지로 잠을 청했다.
동원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인만 졸졸 따라 다녔다.
혹시나 옷도 벗지 않고 계속 나갈 준비한 채로 침대에 누워 시인의 배만 쓰다듬었다.
“우동아, 곧 보자. 조심히 나와.”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배가 조금씩 더 아픈 것 같았다.
동원은 옆에서 가방끈을 꼭 쥐고 잠들어 있었다.
집도 가까운데 그냥 갔다가 다시 오면 되는데..
어지간히 긴장이 됐나 보다.
잠시 잤더니 시인은 기장이 풀렸다.
읍..
아.. 이제 많이 아픈 건가?
시인은 거실로 내려가 소파를 잡고 허리를 돌리며 심호흡을 했다.
배를 안고 TV를 틀었다.
예능을 보며 웃으려는데..
아악!
아주 잠시였던 것 같은데.. 갑자기 앞이 안 보였다.
식은땀이 났다.
시간.. 그래 시간을 재야 해.
이미 TV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10분쯤 지났을까?
아.. 읍.. 익..
거짓말처럼 또 아픔이 찾아왔다.
병원에! 병원에 가야 한다.
시인은 소리를 질렀다.
“이동원! 남편아! 여보! 자기야! 나와!”
쿵쿵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동원이 가방을 꼭 쥔 채로 뛰어 내려왔다.
둘은 손을 꼭 잡고 병원을 향해 걸었다.
뛰고 싶은데 뛸 수 없어 더 느리게 그렇게 식은땀을 흘리며 병원에 도착했다.
5시간 후
아기 귀에 시끄러울까봐 소리 한 번 안 지른 시인에게 너무나 이쁘..지 않은 쭈글쭈글한 아기가 안겨 있었다.
동원과 시인은 아무 말도 없이 아기를 계속 보고 있었다.
“엄청 못생겼어요. 아무리 봐도.. 근데.. 진짜 너무 이쁜 거 같아요.”
동원은 퉁퉁 부은 눈으로 횡설수설 혼잣말을 했다.
아기를 낳자마자 둘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대성통곡을 했고 의사와 간호사들은 둘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많은 부부를 봐 왔지만 이렇게 둘 다 긴장하며, 감동하고, 기뻐하는 부부는 오랜만이었다.
유난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는 보기가 좋았다.
곧 달려온 이회장과 고여사, 지원과 수원은 들어오지도 않고 문 밖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고여사가 아기에게 안 좋다고 절대 못 만지게 했기 때문이다.
곧 아기는 잠깐 신생아실에 갔고 다들 몰려가서 큰 창 너머 아기를 뚫어져라 봤다.
어쩔 수 없었다.
모두 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었다.
**
“빨리 기저귀, 오빠, 빨리 기저귀.”
“여기 여기!”
요즘 시인은 급할 때마다 동원을 다르게 불렀다.
실수 투성이였지만.. 너무 너무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시인은 누구보다 행복했다.
젖을 먹으며 잠든 아기를 침대에 내려놓고 시인은 잠시 소파에 앉았다.
“휴.. 자기, 나 물 한 잔만 갖다 줘요.”
“고생했어. 이제 깨면 내가 안을게. 좀 쉬어요.”
들어만 봤던 등센서는 준이에게도 거짓말처럼 있었다.
길게 자면 30분이었다.
이 준.
아버지가 어떤 유명한 분께 받아왔다는 이름이었다.
시인도 마음에 들었다.
동원이 시인의 어깨에 팔을 둘러 감쌌다.
“고생 많아요. 요즘 너무 힘들죠?”
“네.. 근데..”
“......?”
“너무 행복해요. 어제 준이가 하품하는 데.. 그렇게 예쁜 아기는 처음 봤어. 너무 예뻐서 계속 아기 생각만 봐요. 이렇게 못자고, 못쉬고 힘든데.. 근데도 예뻐.”
“나도 아기 키우는 게 이렇게 힘든지 몰랐어요. 근데.. 진짜 예뻐. 보면 힘든 게 사라져. 물론 다시 바로 힘들지만.. 하하.”
“작가님, 우리 지금처럼, 지금 여기서, 지금 이 마음처럼 계속 행복할 수 있을까요?”
“계속 행복하기만 하면 인생이겠어요? 그래도.. 나는 불행해져도 우리 준이랑, 시인씨랑 이렇게 같이 있을래요.”
“나도요. 작가님이랑 준이랑 함께 있는 지금 너무 행복해요. 나중은 나중에... 작가님, 사랑해요.”
“내가 더 사랑해.”
오랜만에 입맞춤을 하는 둘이었다.
으아앙!
화들짝 놀라 입술을 뗀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기에게로 달려갔다.
둘이 앉아 있던 온기가, 방금 입 맞췄던 열기가 집 안 가득 퍼져나갔다.
**
오랜만에 해랑도에 온 시인은 거실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준이 돌이 지나고 부모님은 시인에게 휴가를 주었다.
이제 모유도 끊었고 그 동안의 육아에서 벗어나는 꿈 같은 시간이었다.
그 황금 같은 시간에 왜 해랑도에 오고 싶었을까?
좀 더 좋은 호텔, 해외 여행 다 생각했지만 시인은 탁 트인 해랑도 바다가 유난히 그리웠었다.
"나도 진짜 오랜만에 오네요. 시인씨랑 결혼하고 나서는 이상하게 해랑도에 올 일이 없네."
"그러게 이제 여기 와서 글도 좀 쓰고 그래요. 요즘 들어 작가님 글 잘 못 쓰는 거 같아요. 재미없어 지려고 그래."
"우와.. 진짜 억울하다. 요즘 작가 공부 좀 한다고 벌써 이 선배님을 그렇게 대하고! 진짜 시인씨 하극상이예요."
"크크크크. 작가님, 오늘 날씨도 좋은데 우리 텐트 들고 어디라도 갈까요?"
"근데.. 그거 지난 번에 시인씨랑 비올 때 폈다가 접은 이후로 한 번도 안 펴 봤어요. 곰팡이에 엉망일거예요."
"그러면.. 일단 옥상에서 좀 씻어 놔요. 내일이라도 가고 싶을지.. 오늘 햇빛도 유난히 좋아서 금방 마를 거예요."
"그럴까요?"
시인은 먼저 옥상에 올라가서 물을 틀고 정리했다.
곧 동원이 텐트를 가져 와서 펴기 시작했다.
탁!
텐트를 폄과 동시에 반짝반짝 빛나는 물체가 바닥에 떨어졌다.
"뭐지?"
동원과 시인이 가까이 다가갔다.
"어머.."
동원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시인이 손으로 소중하게 받아 들었다.
"우리는.. 처음부터 이뤄질 사이였나봐요."
동원이 말 없이 시인의 어깨를 감쌌다.
큐빅이 잔뜩 박힌..
녹이 쓸어버린..
시인의 핀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