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마더의 설명을 들으면서, 소유는 머릿속에서 대기 중인 다음 영상을 재생시켰다.
두 번째 영상도 첫 번째 영상의 사제와 마찬가지로 별 다를 건 없었다. 그저 검문소의 허술해 보이는 돌담 형태의 성벽와, 국경선을 통과하는 사람들을 검사해야 하는 검문관이 첫 번째 영상에서도 나왔듯, 창백한 얼굴로 덜덜 떨고 있는 모습만 주구장창 재생되는 것이 두 번째 영상의 전부였다.
간간이 자신의 얼굴 가죽을 매만지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 유일하게 검문관, 소년이 보여주는 무이한 행동이었고, 약간의 반응이었다.
검문소의 역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한 어마어마한 인파의 욕지거리를 고스란히 들으면서도, 얼굴을 쓰다듬는 것 외에 소년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질 않았던 것이었다. 그건 흡사 깊은 트라우마에 빠진 사람이 보여주는, 흔히들 전쟁 경험자가 겪는 PTSD와도 같은 증상이었다.
-보시는 바와 같이 기억을 지운 흔적은 없습니다. 이미 저 인간 소년의 뇟속엔 죽음에 대한 공포심과,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 소년의 기억을 지우지 않았는진 모르겠으나, 저희들을 감시하라는 명에 따랐던 사제의 말을 고려해 보면, 신은 저 소년이 이룰 미지수의 결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들의 존재를 각인시켰다는 것 자체가 다시 말해 신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니, 이 소년 역시 사제 못지 않은 주의를 기울이시는 편이 좋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주의를 기울이라는 마더의 경고 아닌 경고가 푸른빛을 뿜어내는 구슬을 통해 흘러나왔다.
확실히, 마더의 설명도 설명이지만, 소유가 생각하기에도 신이 사제가 아닌 소년의 기억을 그대로 남긴 것은 조금 의아하다라 할 만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런 능력도, 그렇다고 테론의 전 대륙에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도 아닌 평범한 소년의 기억을, 신이 직접 보살필 명목은 그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었다.
그나마의 공통점이라봐야 사제와 같이 동행을 하고, 같이 죽었다는 점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기억이 사라지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정말로 마더의 추측처럼 신이 소년에게 뭔가를 기대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소년의 기억은 차라리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편이 더 나았다.
여기까지의 생각을 단 1초도 걸리지 않아 마무리 지은 소유가 말했다.
"그럼 감시기라도 붙여 놓는 게 어떨까? 정 불안하면 직접 기억을 조작해 봐도 되고."
-그 말씀은, 다시 테론에 내려가신다고 봐도 되겠습니까?
"응. 그래도 테론엔 아직 흥미가 있거든."
소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달그락.
때마침 청소를 마친 알파가 다시 의자에 앉아 찻잔을 드는 사이, 빈 찻잔을 어딘지 안도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베타는 잇따라 차오르는 자신의 찻잔, 그러니까 비어 있는 한 손으로 조신하게 차를 따르는 알파와 잠시 허공 중에 시선을 맞물리다, 이내 다시금 그 어색한 손길로 찻잔을 쥐어 들었다.
이어 소유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