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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로맨스
먼 곳의 도련님께
작가 : 재희
작품등록일 : 2017.2.17

시간여행시리즈, 첫 번째!


대감댁의 천방지축 하인 <단이>. 혼인을 앞두고 도망치지만 일이 마냥 잘 풀릴 리가 없다!

죽을 위기에서 눈 떠보니 현대.
돌아가지도 못하고 아는 사람도 없는 낯선 곳에서, 단이는 다정했던 비움골 도련님을 발견하는데...
과거와 달리 까칠한 도련님과 단이의 아웅다웅 전쟁 같은 사랑 줄다리기.

표지 감사합니다^^

***


“아니에요!”

조곤조곤 달래는 정후의 말을 막아선 단이.
레니에게 들었던 조언을 기어이 입 밖으로 내뱉는다.

“그러니까 연애를 해요!”

꿀꺽.
당황함에 말도 침도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내가요, 도련님만 보면 기분이 싱숭생숭한 것이 참말로 이상하지마는 아마도 이런 게 연모라는 것이 아닌가 해요. 그렇다고 덥석 혼인할 수는 없으니 연애를 해요. 이곳 사람들처럼 만나면서 앞으로의 일을 논의해요.”

단이에게 정후는 언제나 오락가락한 사람이었다.
행동과 말이 달라 그 속을 도무지 알 수 없으니, 종국에는 스스로의 생각으로 선택할 수밖에.

 
8. 엄청난 고백 4 (1부 완료)
작성일 : 17-08-10 15:21     조회 : 546     추천 : 1     분량 : 7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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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오자마자, 엘리베이터 앞에 수오가 등을 기대고 서있다.(전편)

 

 

 

 

 

 “잔소리?”

 

 “그렇지 뭐.”

 

 둘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진짜야?”

 

 “뭐라고 들었는데.”

 

 교직원 휴게실에 있던 그 짧은 15분 동안 어떤 소문이 났는지 모른다. 예상만 할 뿐.

 

 “원생이 선생님 좋아해서 따라다닌다고.”

 

 “…….”

 

 부정도 긍정도 없었다. 수오가 어깨를 으쓱였다.

 

 “단이지? 걔는 그런 줄은 알았는데. 너도 그런 거야?”

 

 이번에는 정후가 되물었다.

 

 “……걔가?”

 

 “응. 몰랐어?”

 

 알 리가 있나. 그동안 정후는 제 고민에 빠져 주변을 못 보았다. 좋아한다면서도 그 상대방의 마음조차 알아채지 못한 채 혼자 전전긍긍하고.

 

 “걔가 너한테는 스스럼없이 대하잖아.”

 

 “그거야, 내가 친하니까. 만만했나보지…….”

 

 “걔가 친하게 구는 얘가 너 하나냐. 나나 정협형한테는 깍듯하기만 한걸. 그리고 최근에는 너만 보던데, 진짜 몰랐어?”

 

 그랬나? 생각해보지만 역시 정후 기억 속 단이는 고향의 도련님을 떠올리며 얼굴을 붉히는 그 얼굴뿐이다. 정협도, 수오도, 정은도 좋아한다며 방실방실 웃는 모습도. 그럼에도 저만 보면 콧방귀를 끼며 대들던 모습도. 그러나 또 동시에, 겨자색 목도리에 묻던 얼굴과 산 꼭대기에서 뚫어져라 바라보던 눈빛과 제 손등을 덮는 자그마한 손가락이 떠올랐다.

 

 “……단이는? 갔어?”

 

 정후가 물었다. 꽤나 다급해진 목소리로.

 수오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나 먼저 간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멈추자마자 정후가 달려 나갔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친구의 뒷모습에 수오는 피식 웃으며 지하 주차장 버튼을 다시 누른다.

 

 “이젠 누구 놀리는 재미로 사나.”

 

 문은 천천히 닫혔다.

 

 

 

 

 

 ***

 

 “쌤! 연애해요?”

 

 “아니야.”

 

 “쌤 고백했다면서요?”

 

 “아니야.”

 

 “쌤…….”

 

 “아니야.”

 

 그날 이후로 반복되는 상황이다. 정작 단이는 보지도 못하고서, 그 이후로는 얘기도 못 한 채 이틀이 지났다.

 한편 단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학원에 도착하자마자 술렁거리는 목소리들이 있었다. 강의실에 들어오니 더욱 난리라 레니가 가장 먼저 달려와서 상황을 따지고 물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레니에 말에 의하면 그날 상민이 오지 않았고 그래서 다들 차였나보다 생각했다고 했다. 단이는 그제야 까맣게 또 잊고 있던 상민을 기억하고 입꼬리가 축 쳐졌다. 미안하다고 더 말했어야 했나. 그러나 안 좋아하는 걸 안 좋아한다고 말하지 뭐라 말해야 하나. 좋아한다는 게 사내로서, 신랑감으로서 좋아하는 게 아닌데도 억지로 꾸며내어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다면 다른 핑계를 대었어야 하나.

 레니의 말을 들은 짧은 순간에도 무수한 생각들이 지나갔다. 어쨌든 이미 늦은 일이다.

 

 “에휴. 괜히 내가 바람 넣었나보다. 아니, 근데 걔 그러는 거 보는 것도 답답해서. 아니, 그리고 다니는 보기보다 눈치가 없어! 거기서 그런 걸 묻고 앉아있음 어떻게 해!”

 

 “궁금했는걸…….”

 

 이어지는 구박에 어깨까지 내려간다. 푹푹 혼자서 한숨을 내쉬던 레니가 한 마디 더 내뱉었다.

 

 “정후 쌤한테 고백한 거, 너지?”

 

 실낱같이 뜬 바늘 눈초리는 찔릴 듯 예리하다. 단이가 움찔 거북목이 되었다.

 

 “아아니! 걔 차자마자 정후 쌤한테 고백하면! 어? 근데 둘이 친척 아니었어?”

 

 “아니야.”

 

 “내가 그럴 줄 알았어!”

 

 하고 방방 뛰던 레니는 한참 후에야 침착해졌다.

 

 “그래서 상민이는 그렇다 치고. 쌤은 어떻게 된 거야?”

 

 “……있지.”

 

 구석진 곳으로 가서 단이는 속삭였다. 휴게실 안에서의 이야기를 다 한 것은 아니었다. 상민이랑 정후의 태도가 비슷해서 궁금했다, 묻고 싶어서 물었는데, 그렇다고 하더라, 근데 그게 끝이다. 짧은 이야기 내내 몇 번이나 레니가 소리를 질렀다. 답답함으로 가득했던 표정에는 어느새 감격과 설렘으로 가득했다. 오히려 단이 표정이 무덤덤해졌다.

 

 “그래서, 다니 넌 어떤데?”

 

 “난 모르겠어. 도련, 아니 선생님 생각을.”

 

 “뭐가 또 몰라? 너 좋다고 했다며!”

 

 “아니 근데 표정이…….”

 

 그것만은 상민과 달랐다. 단이의 예상도, 상대방의 입에서 흘러나온 대답도 같았지만 표정만은 확연히 달랐다. 단이가 대답하는 순간, 정후 눈가의 근심은 더욱 깊어졌고 이빨은 입술을 질끈 물었으며 꽉 쥔 두 주먹에는 힘이 들어갔다. 그래서 단이는 입술을 내밀었다. 확연한 부정을 거부라도 하려는 듯이 혹은 그 마음을 확인이라도 받으려는 듯이.

 그 마음조차도 금세 사그라졌지만.

 

 “나이 때문에 그런가? 근데 뭐, 어때! 다니는 그래도 올해 민증도 나오고 내년이면 성인이잖아. 좋겠다.”

 

 “민증?”

 

 “나는 아직 삼 년이나 남았는걸……. 그 사이에 수오 쌤한테 여친 생기면 어쩌나, 결혼이라도 해 버리면 어쩌나 걱정돼.”

 

 저보다도 두 살은 어린 레니인데, 일순 연상의 여자처럼 느껴졌다. 눈가에 그늘이 꼭 정후의 것과 비슷했다.

 

 “나는 정말 다니가 부러워.”

 

 쓴 웃음도.

 

 “왜? 지금은 좋아하면 안 돼?”

 

 그제야 단이는 레니의 고민과 정후의 고뇌의 공통점을 깨닫는다.

 

 “좋아하면 그만 아니야?”

 

 “쌤들은 성인이잖아. 우린 아니고.”

 

 이 세상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어느 세상에도 마음을 가두는 것들이 있었다. 옭아매고 붙잡는 것들, 조금씩 다르지만 분명하게 존재하는 세상의 규칙들.

 단이는 슬픔을 호소하는 레니의 뒤편을, 창문 밖으로 보이는 겨울의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철새들이 열을 맞춰 지나간다. 그 새들 중에 열을 빠져나온 한 마리가 보였다. 단이 귀에서 울적한 레니의 목소리는 희미해지고 그 새만이 눈에 들어온다.

 

 ‘저 자유로운 하늘에서도 열을 맞추어 가고, 또 거기에서도 벗어나는구나.’

 

 이 세상에 왔으니 이 세상의 법도에 따라야 하거늘.

 그러나 단이는 그러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정은처럼 순응하거나 레니처럼 슬퍼하고만 있기 싫었다. 오히려 저 새의 마음이 되어서, 오늘은 반드시 정후를 찾아서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정후 선생님!”

 

 수업이 끝나자마자 단이가 고등부 교무실 문을 또 벌컥 열어젖힌다.

 

 “없다.”

 

 말하며 영어 선생이 단이 머리를 톡톡 친다.

 

 “너가 걔구나. 네가 자꾸 따라다니니까 정후쌤 도망가잖니. 그만 따라다니고 공부나 해.”

 

 나무라는 소리에도 단이는 굽히지 않는다.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요! 정후쌤 오늘은 어디서 수업하시나요? 또 거기서 해요?”

 

 그러나 영어 선생은 말해주지 않고 오히려 쫓아냈다. 찾아가면 혼난다는 으름장까지 놓았다. 그러나 거기에 굴할 단이가 아니다. 전에 그 강의실로 찾아가니 역시나 창문 너머로 정후가 보였다. 전에 그 소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이번에는 목도리로 얼굴을 가리고 문 옆에 숨어 있었다.

 

 조금 늦게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거의 다 빠져나간 후에야 정후가 나왔다. 나오자마자 단이가 앞을 가로막는다. 놀란 정후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그 손목을 잡아서 끌어당겼다.

 졸졸졸, 비상계단을 올라가는데 영문도 모르고 정후는 이끌렸다. 나무람이나 꾸중이나 다정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신 제가 단이를 끌고 강의실을 나가던 때를 떠올렸다. 휴게실에서, 대중없이 내뱉었던 말. 그 이후로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했고 대답도 듣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렀던 날들처럼 정후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단이가 무대의 주인공이었다.

 옥상까지 올라와서 문을 벌컥 열어젖힌 후 정후를 문밖으로 밀어 넣었다. 휘청거리며 큰 키가 흔들린다.

 

 “너 무슨!”

 

 단이가 옥상문을 닫았다. 끼익 하고 녹슨 쇳소리를 내며 굵은 문이 닫혔다.

 옥상엔 아무도 없다. 크고 작은 건물이 주변에 솟아있지만 그곳들을 포함하여 사람은 둘 뿐이라는 걸 단이는 빠르게 확인하였다.

 

 “도련님! 저는…….”

 

 “잠깐! 무슨 말 하려는 건지는 몰라도 여기선…….”

 

 단이의 말이 더 빨랐다.

 

 “저는요! 시간을 넘어 왔어요!”

 

 큰 결심이었다. 일생일대의 비밀. 결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정후에게만은 모든 걸 다 털어놔야 했다. 거짓 하나 없이 고하고, 그 뒤로 이어질 제 마음까지 확실하게 끄집어내야 했으니까. 단이로서는 그야말로 엄청난 고백인 셈이다.

 

 “……뭐?”

 

 “정협 오라버님의 말씀에 따르면 거의 500년 전이라고 하는데요. 소녀 살던 곳은 한양 바깥에, 뒤로는 갈뫼가 있고 앞으로는 강물이 흐르는 오목한 반평지예요. 한적엔 판사 영감께서 나오셨던 고을이고 근방 장터가 있는 목거리에서 자라났어요. 저희 부모님은 주인 나리께서 혼인시키셔서 외거로 내보내 땅까지 주셨지마는, 어머님께서 사라지시고 아버님께서도 팔리신 후에는 혈혈단신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주인 나리께서 어린 저를 거두어 평안히 살아왔지만요.”

 

 장황한 자기소개에 넋이 나간 정후는 입만 뻐끔거린다.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이며, 또 무슨 장난을 치려는 건가. 헌데도 단이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도 심각하여 딴죽 걸 생각도 하지 못 했다.

 

 “그래도 소녀 일신은 아셔야 하지 않겠어요. 비록 사대 조상님들까지 아뢰지는 못 하더라도요.”

 

 “그, 그게 도대체……무슨 말이야?”

 

 “제 모든 걸 다 아뢰었으니 이젠 말씀드리겠습니다. 소녀, 역시 도련님과 혼인까지는 못 치르겠습니다. 생각해보았는데요. 제가 안 그래도 혼인 싫어 도망쳤는데 여기까정, 혼수 하나 없이 어찌 또, 무슨 낯으로 시집을 가겠어요.”

 

 “…….”

 

 “물론 도련님께서는 혼인하실 생각이 없다 하였으나 남녀가 만나면 응당 부부의 연을 맺게 되는 게 자연의 이치이니, 저도 음양조화를 부정할 생각은 아니옵거니와, 다만 제 각오를 알아주십사 말씀 올립니다.”

 

 꼭 사고를 치고 뻔뻔하게 변명을 하던 말솜씨만큼은 일품이다. 또래보다도 윗사람들과 부대꼈던 단이인지라, 또 나름 양반가에 일생을 바친 몸이 아니었나. 줄줄 흘러나오지는 않더라도 주어들은 문자도 몇 내뱉곤 했다.

 어쨌든 그리 진지한 눈빛을 한 단이가 마무리로 큰절까지 올리고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정후 입에서 웃음이 터졌다. 배가 찢어져라 붙잡고 웃는데, 그 소리가 빌딩 사이로 흘러갔다. 옆 건물 옥상에서 담배를 피던 사람이 힐끗거렸으나 무슨 상관이랴.

 한참을 웃고 나서야 정후는 단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 그러지 마.”

 

 “네?”

 

 “결혼이니 뭐니, 그런 말 하지 말라고. 넌 아직 어리니까. 하고 싶은 거 실컷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 실컷 만나고 그래도 돼.”

 

 미소 지은 표정 그대로, 정후는 나름대로 내린 결론을 입 밖으로 꺼낸다.

 

 “나중에 너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간 후에 소개팅도 하고, 그때에도 그 마음이 그대로면…….”

 

 “아니요!”

 

 조곤조곤 달래는 정후의 말을 단이가 끊었다. 레니에게 들었던 조언을 기어이 입 밖으로 내뱉는다.

 

 “그러니까 혼인 말고 연애만 해요!”

 

 꿀꺽. 당황함에 말도 침도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내가요, 한동안 도련님만 보면 기분이 싱숭생숭한 것이 참말로 이상했지마는 아마도 이런 게 연모라는 것이 아닌가, 이제야 알겠어요. 그렇다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덥석 혼인할 수야 없으니 연애를 하자 이 말이죠. 이곳 사람들처럼 만나면서 앞으로의 일을 논의해요.”

 

 그 동안 단이에게 정후는 오락가락한 사람이었다. 행동과 말이 달라 그 속을 도무지 알 수 없으니, 종국에는 스스로의 생각으로 선택할 수밖에.

 아니다. 과거에서나 지금에서나 단이는 마찬가지였다. 신분으로 묶인 망정 선택만은 자신이 해왔다. 그것은 아마도 ‘대감마님 댁에 머물 것인가, 아버지를 따라갈 것인가’를 선택한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단이는 머물기를 선택했고 혼인하지 않기를 선택했고 이곳으로 오기를 선택했다. 이번에도 다를 건 없었다.

 

 “혼인 말고 연애해요. 이곳 사람들처럼요.”

 

 정후의 망설임에 방점을 찍은 이는 과거에서 온 열아홉 소녀였다.

 

 

 

 

 

 학원에 소문이 퍼지기야 했지만 다행히도 그리 심각한 건 아니었다. 학생 한 명이 선생을 졸졸 따라다닌다는. 틀린 말도 아니었다. 정후는 학원에서는 여전히 단이를 피했고 단이만 끈덕졌기 때문이다.

 단이를 알던 이라면 우스웠을 거다. 그리 티격태격하더니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단이가, 그 정후를 쫓아다닐 줄이야. 속내를 알면 더 웃었겠지만 그것까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아직은 안 돼.”

 

 그 날, 옥상에서 오랜 고심 끝에 나온 정후의 대답은 여전히 단호했다.

 

 “왜요! 아니 설마 제가 과거 사람이라서요?”

 

 “…아까부터 이상했는데 그건 도대체 무슨 콘셉트야? 과거니 뭐니 형까지 들먹이면서 그런 말 안 해도 돼. 내 문제니까.”

 

 “콘셉트라뇨? 그건 또 무슨 말인지 몰라도 제 말은 참말이에요! 나요, 과거에서 왔다니까요!”

 

 “…아니, 요새 그런 드라마들이 많이 나온다는 건 아는데.”

 

 “참말로요. 정협 오라버니 주위로 바람이 슈웅하고 부니까 세상에 천치가 바뀌는 모양인데, 저도 그렇게 여기에 온 거예요.”

 

 “아니, 아니. 형이 무슨 타임머신도 아니고. 여하튼 이건 내 문제고, 네 잘못이 아니라….”

 

 “아이 참! 맞다니까요! 오라버니한테 물어봐요! 아, 그건 안 되는데. 오라버니한텐 절대 말하지 말아요. 비밀로 하기로 해서. 그래도 거짓말은 하기 싫어서 다 말한 건데. 약속해요. 절대로, 절대로 오라버니껜 말씀드리지 않기로요.”

 

 그렇게 엉겁결에 새끼손가락 걸고 도장까지 찍고 난 후에도 단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괜히 얘기했네, 마네, 혼잣말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도련님 말 하면 안 돼요! 약속했어요.”

 

 “알았다니까. 근데 단이야.”

 

 “네?”

 

 “고마워, 그렇게 대답해 준 거. 하지만 그래도 안 돼.”

 

 “왜요?”

 

 “왜냐하면 난 선생이고……하, 진짜 내가 이런 대사를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난 선생이고, 넌 학생이니까.”

 

 “그래서요?”

 

 혼자 숨겨두려던 마음이었다. 고백 같은 건 생각도 안 하고 그저 놔두면 스스로 꺼지겠거니 하고.

 

 “다른 사람들 눈치 본다고, 세상 사람들 신경 쓴다고 욕해도 할 수 없어. 그러니까.”

 

 입술을 깨문다.

 

 “미안하다. 네가 한 고백은 잊어줘. 아까 말한 것처럼 나중에, 아니 내년이라도 내가 다시 고백할 테니까. 그러니까…….”

 

 그제야 단이는 고개를 든다. 방긋 웃으면서 “싫어요.” 대답한다.

 

 “너 정말…….”

 

 “그때도 내가 할 거예요. 물론 그때까지 계속 마음이 이러면요.”

 

 제 할 말을 끝내자마자 단이는 돌아섰다. 자그마한 등짝 위로 겨울 햇볕이 처연히 비추었다. 단이는 잠시 그 자세 그대로 서있었다. 정후도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천천히 손을 뻗는데, 그제야 단이는 문을 열고 총총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혼자 옥상에 선 정후는 담배 피듯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단이가 서있던 콘크리트 바닥 위로 진 얼룩이 보였다. 하늘에는 비도 오지 않는데.

 

 무언가를 깨달은 듯 정후가 벌떡 일어섰다.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갔으나 이미 단이는 없었다. 교실의 자리에도, 옆구리에 소중하게 매고 다니던 가방과 돌돌 말고 왔던 목도리는 없었다. 뒤늦게 창문 밖을 확인했지만 어수선한 도로와 사람들의 머리 꼭대기뿐 어디에도 단이는 보이지 않았다.

 

 

 

 1부 완료

 
 
자신만의 이미지를 등록해보세요
류시아 17-08-18 13:16
 
무얼 깨달은거죠?
2부 나오려면 먼거 같은데 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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