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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로맨스
먼 곳의 도련님께
작가 : 재희
작품등록일 : 2017.2.17

시간여행시리즈, 첫 번째!


대감댁의 천방지축 하인 <단이>. 혼인을 앞두고 도망치지만 일이 마냥 잘 풀릴 리가 없다!

죽을 위기에서 눈 떠보니 현대.
돌아가지도 못하고 아는 사람도 없는 낯선 곳에서, 단이는 다정했던 비움골 도련님을 발견하는데...
과거와 달리 까칠한 도련님과 단이의 아웅다웅 전쟁 같은 사랑 줄다리기.

표지 감사합니다^^

***


“아니에요!”

조곤조곤 달래는 정후의 말을 막아선 단이.
레니에게 들었던 조언을 기어이 입 밖으로 내뱉는다.

“그러니까 연애를 해요!”

꿀꺽.
당황함에 말도 침도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내가요, 도련님만 보면 기분이 싱숭생숭한 것이 참말로 이상하지마는 아마도 이런 게 연모라는 것이 아닌가 해요. 그렇다고 덥석 혼인할 수는 없으니 연애를 해요. 이곳 사람들처럼 만나면서 앞으로의 일을 논의해요.”

단이에게 정후는 언제나 오락가락한 사람이었다.
행동과 말이 달라 그 속을 도무지 알 수 없으니, 종국에는 스스로의 생각으로 선택할 수밖에.

 
8. 엄청난 고백 3
작성일 : 17-08-10 01:38     조회 : 529     추천 : 1     분량 : 6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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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좋아하니까.”(전편)

 

 

 

 

 

 “나를? 정말로? 근데 나를 괴롭혔잖아.”

 

 “괴롭히다니! 내가? 아, 아니 그거야, 좀 놀리긴 했지만…….”

 

 “나보고 못났다 하고, 공부도 못 한다고 놀리고…….”

 

 놀리기야 했지. 못 생겼다고도 했고. 근데 어디 그게 그런 뜻인가. 그런 걸 다 말로 해줘야 아나. 온갖 불만이 다 나오지 못하고 말끝이 흐려졌다. 상민이 고개를 가로 돌렸다.

 갖은 불만이 가득한 상민의 옆얼굴, 그 위로 누군가가 겹쳐진다.

 

 “나 참. 정말 도련님은 이해할 수가 없네요. 왜 그렇게 저를 싫어해요?” 하고 단이가 남산에서 정후에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몇 주도 채 전이었다. 매번 저를 피했었던 정후여서, 단이 마음에는 의문으로 가득했었다. 불만에서 시작된 궁금증을, 정후를 붙잡고 간신히 던졌을 때 그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답은 반 박자 후에 흘러나왔다.

 

 “내가 널 싫어한다고?”

 

 “그래서 막 막 저한테 그러는 거 아니에요? 고향에 가지 말라느니!”

 

 “그게 싫어서겠어?”

 

 “그럼요?”

 

 “…….”

 

 이번에도 정후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힐끔 단이가 옆을 보았을 때 정후의 눈은 곧게 앞을 향하고, 어두워진 하늘이 이마 아래로 깔려 있었다. ‘좋아하기라도 하나요?’라고 더 따져 물었어야 했나. 그러나 단이는 그럴 수가 없었다. 종알거리던 입이 요상하게 딱 다물려 묻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여전히 궁금했지만 그 표정, 그 얼굴, 그 알 수 없는 걱정이 가득한 상에 염치없이 고민을 더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너 싫어하는 거 아니야.”

 

 대답은 정협의 집 앞에 멈추었을 때 비로소 들을 수 있었다. ‘그러면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런담.’ 하고 생각하고 말았던 기억도 났다. 그 후로도 오락가락했던 정후의 말과 행동들도 떠올랐다.

 그러나 여전히, 고개를 여전히 옆으로 돌린 상민의 얼굴에 겹쳐지는 건 남산에서의 정후였다. 대답을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나를 싫어했던 게 아니었구나.”

 

 그 얼굴을 향해 새삼스럽게 단이는 되뇌었다.

 

 “다, 당연하지! 씨, 창피하니까…….”

 

 터질 것처럼 새빨개진 상민 대신에 레니가 보다 못해 끼어들었다.

 

 “그러게 넌 초딩처럼 마음도 표현도 못 하냐! 어휴, 다니도 답답하고, 너도 답답하고….”

 

 그 순간 상민이 욕을 내뱉으며 단이를 밀치고 교실을 뛰쳐나간다. 이번에는 단이도 붙잡지 못했다. 그래서 단이는 상민을 쫓아나갔다. 뒷이야기가 궁금한 같은 반 학생들 몇 명이 따라 나갔으나 이미 두 사람은 복도에서 홀연히 사라진 뒤였다.

 

 “상민아!”

 

 복도를 한 번 꺾어서, 상민은 화장실 앞에서 단이에게 붙들렸다. 단이는 상민을 돌아 세우고 양 어깨를 붙잡았다. 상민이 짜증 가득한 얼굴로 단이를 노려보았다. 창피함으로 얼굴이 울긋불긋하여, 그제야 단이도 미안하여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화…났어? 미안해. 나 정말 놀라서.”

 

 “…….”

 

 “나 원래 그런 거 잘 몰라. 칠석이 마음도 몰랐고……. 워낙에 구박덩이로 커서…….”

 

 “됐어.”

 

 시큰둥한 대답과 달리 마음은 한결 풀어진 상민이 핑크빛 기대를 할 찰나였다.

 

 “근데 나 아직 시집갈 생각은 없어. 혼인 싫다고 도망친 지 해도 바뀌지 않았는걸.”

 

 뭔가 많은 부분이 건너뛴 대답에, 상민이 제가 오해될 말이라도 했나 되짚어보는데,

 

 “그리고 나는 너 안 좋아해. 아니, 좋아하지만, 그런 좋아하는 건 아니고. 그리고…….”

 

 평소에는 술술 흘러나오던 말이 어째 지금은 콱 막힌 듯 하다. 했던 말이 입안에서 맴돌면서 반복된다.

 

 “어, 어…그리고…난…….”

 

 이유는 금방 알았다. 마음에 걸린 무언가 때문이었다.

 

 “나…잠깐, 미안해, 상민아. 나 가봐야 될 거 같아!”

 

 눈동자를 번뜩이며 단이는 순식간에 비상구 계단으로 튀어나갔다. 당황한 상민이 쫓아가기도 전에 다시 조르르 돌아와서 상민의 양 손을 꼭 붙잡더니.

 

 “참, 미안해. 우린 친구로 지내자.”

 

 확인 사살까지 한 후에야 다시 비상구로 달려갔다. 혼자 남은 상민은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씨, 괜히 고백했어!”

 

 투덜거리는 말과 달리 목구멍은 탁 막힌 듯, 이내 화장실 앞바닥에는 점점이 물방울이 번졌다.

 

 한편 단이는 헐레벌떡 순식간에 이 층을 올라 고등부 교무실로 향했다. 교무실 앞에서 숨을 잠시 고른 후에야 문을 벌컥 연다.

 

 “정후 선생님!”

 

 때마침 교실을 나가려던 수오와 바로 마주쳤다. 수오가 놀라 옆으로 살짝 비켜서서 부딪치지는 않았지만 놀라기는 단이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 도련, 아니 정후 선생님은요?”

 

 “정후는 이제 수업 시작해서 강의실 갔는데. 왜?”

 

 “뭐 물어보려고요.”

 

 “간단한 거면 지금 나한테 물어봐도 돼. 수업 시작하기 전까지 잠깐 시간 되니까.”

 

 “아니요. 정후 선생님만 아는 거예요. 강의실 어디에요?”

 

 “흠. 00호에서 하는데 중간엔 들어가면 안 된다. 알지?”

 

 “네. 수업 끝나면 들어갈게요.”

 

 단이는 강의실로 또 뛰었다.

 00호는 가까웠지만 이미 수업은 시작했다. 단이는 창문에 매달려 수업을 하는 정후를 바라보았다. 저도 수업하러 돌아가야 하는데 갈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주 잠깐 상민이 생각도 났고, 답답이라고 소리치던 레니 생각도 났다.

 

 ‘맞아. 난 답답이야.’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마음이 급했다. 빨리 확인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마음에 가득하여, 무엇도 제대로 손에 쥐어지지 않았다. 이제껏 몰라 지나쳤던 그 마음, 이번에는 확실히 알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도.

 단이는 창문에 찰싹 달라붙어 반투명한 유리 사이를 내다보았다. 작은 투명 유리 틈으로 빼곡이 앉은 학생들과 정후가 보였다. 수업을 하는 정후는 오랜만이다. 여전히 수업 중에는 웃음기 한 번 없이 딱딱하다.

 

 ‘좀 웃지.’

 

 그러나 이제는 도련님의 얼굴을 떠올리면 비움골 도련님의 상냥한 웃음보다도 저 약간 찌푸린 표정이 먼저 생각났다. 그 정도로, 뇌에 박혀버렸는지도 모른다. 무심한 표정, 저를 향할 때는 약간 일그러지기도 하고 또 환히 웃기도 하는 옅은 간격을.

 

 문 앞에 쪼그려 앉아 있다가, 창문에 매달려서 구경하거나 혹은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며 단이는 40분을 그냥 보냈다. 교실 앞을 떠나면 금방이라도 쉬는 시간이 될 것 같아서 떠날 수가 없었다. 운이 좋았던 건지, 2시간 수업 중 중간 쉬는 시간은 일찍 찾아왔다. 문이 열리고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단이가 얼른 앞문으로,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갔다.

 정후 근처에는 한산했다. 모자를 푹 눌러쓴 한 학생만이 문제를 물어보고 있었다. 단이는 그 뒤에 조용히 섰다. 이상하게 심장이 쿵쿵 뛰었다.

 

 “선생님!”

 

 앞 사람이 질문을 마치고, 제 순서가 되자 단이가 불쑥 그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정후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이단이?”

 

 “저 궁금한 거 있어서 왔어요!”

 

 “너……너 왜 여기 있어? 물어볼 게 있으면 너희 선생님한테 물어봐야지. 아니면 교무실에서 기다리던가.”

 

 “급한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왜 여기까지…….”

 

 정후의 나무람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다짜고짜 단이가 물었다.

 

 “선생님은 참말 저 안 싫어하는 거죠?”

 

 “뭐?”

 

 “참말이죠?”

 

 주변에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누구냐고 묻거나, 무슨 일이냐는 말들이 간간이 들렸다. 단이만 그 소리들이 들리지 않는 듯이 오로지 정후를 바라보았다.

 물론 가장 당혹스러운 이는 단상 위의 정후였다.

 

 “맨날 시비 걸고 화내고 그런 거요. 참말 제가 싫어서 그런 거 아니지요?”

 

 간절하기까지 한 물음이다.

 

 “이번에는 빨리 대답해주……!”

 

 “잠깐! 너 일단 나가봐. 나중에 얘기해.”

 

 당혹이 가시자 난감함이 밀려온다. 정후는 급히 단상 아래로 내려와 단이를 붙잡고 문밖으로 나선다. 질질 따라가면서도 단이 입은 쉴 줄을 몰랐다.

 

 “그때 싫어하는 거 아니랬잖아요! 참말 그래요? 그러면요…….”

 

 문밖을 나가기 전, 기어이 한 마디를 더 내뱉는다.

 

 “저 사랑해요?”

 

 기묘한 정적이 흘렀다.

 

 “저요. 사실은 칠석이가 저 좋아한다는 것도 나중에 찔레한테 들었어요. 혼례하고 칠석이가 더 이상 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때 알았지, 첨에는 저는 몰랐어요. 말을 안 하니까요.”

 

 “너……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상민이도 그랬어요. 저는 정말 눈치가 없나봐요. 그토록 못되게 굴었으면서 저를 좋아한데요. 걔요. 아시죠? 만날 저보고 못 생겼다고 했던 얘요.”

 

 상민이가 누군지 정후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단이 입을 막는 것이 더 급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일기장을 들킨 듯, 그러고도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고 간신히 표정을 굳히는 게 다였다.

 

 “근데 갑자기 선생님 생각이 났어요. 선생님도 혹시 상민이처럼, 그런 게 아닐까 하고요. 전에요, 그랬잖아요. 저 싫어하는 거 아니라고. 그럼 사랑하는…….”

 

 그제야 정후는 단이와 간신히, 완전히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문을 쾅 닫았다. 여전히 교실 안과 밖에는 학생들이 있었다. 둘이 나가자마자 강의실 안팍이 술렁거렸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는 강의실 바로 앞 복도도 마찬가지였다.

 호기심과 놀라움과 또는 기묘한 눈빛들을 받으며 정후는 비상구 계단으로 가려다가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람들을 피해, 선생 전용 휴게실로 들어갔다. 급하게, 단이도 물론 따라왔다. 다행히 아무도 없어서 정후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고 눈을 감았다. 단이가 냉큼 들어와 문을 등지고 섰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너.”

 

 나무라는 소리는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왔다.

 

 “대답해줘요.”

 

 “그게 이 상황에서 중요해?”

 

 단이는 꿈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굽히고 눈을 마주친다. 또렷한 눈동자를 정후는 더 이상 피하기가 힘들었다.

 

 “이 상황이 어떤데요?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잖아요.”

 

 이런 얘였다. 남의 눈치 따위는 전혀 보지 않는.

 정후는 고개를 푹 숙이고 양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도련님.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거예요? 아니면 아니라고 말해주세요. 상민이처럼 도련님은…….”

 

 “상민이가 누군데!”

 

 “저한테 고백한 얘요.”

 

 “!”

 

 숨이 턱 막힌다.

 

 “그래서……?”

 

 “저는 걔 안 좋아해요. 아예 생각도 해 본 적 없으니까요.”

 

 “근데 왜 나한테 와서 그런 걸 묻는데.”

 

 “……모르겠어요. 그냥 도련님도 그런 게 아닐까 싶었어요.”

 

 그것은 단이도 모르는 일이다. 상민이에게는 그리 딱 잘라 말했으면서 왜 정후에게는, 왜 이렇게 찾아와서 그리고 기다리면서까지 대답을 재촉하는지. 무슨 대답이 듣고 싶은지, 여전히 제 마음을 모르고서 따지고 묻기만 할 뿐이었다. 대답을 기다리며 단이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참말로 무엇이 그리 급했을까.’

 

 정후가 입술을 깨물었다. 벽에 걸린 시계는 쉬는 시간 10분을 지나고 있었다. 돌아가야 하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라고 하면 돼.’

 

 상민인지 뭔지랑 다르다고. 자신은 너한테 아무런 마음이 없다고. 그냥, 별 생각 없이 한 말이라고 대답하면 단이는 수긍할 것이다. 단순한 아이니 납득하고 또 헤실헤실 웃으면서, 수업 방해해서 미안하다고 말할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또 예전처럼 돌아갈 테고 모든 것은 해결된다. 그런데도 입은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면?”

 

 “네?”

 

 아니, 차라리 거절당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대차게 까이고 술 좀 먹고, 서로 얼굴을 안 보더라도. 그러면 이 마음도 미련 없이 완전히 끝날 것이다. 원래 마음은 확실한 거절로 끝나는 법이니까.

 

 “만약 그렇다고 하면?”

 

 “어……그러면…….”

 

 그런데 왜 너의 얼굴은 붉어지나.

 

 “그러면 전…….”

 

 왜 너는 망설이나. 왜 거절하지 않고, 무엇을 생각하기에.

 

 “생…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맥이 풀렸다. 오랜 긴장감의 끈이 막 떨어진 듯이. 정후는 눈을 질끈 감았다. 최악이다. 냉랭한 거절보다도 더욱 울적하고 끈적이는, 미련만 남는 기분. 그러나 단이의 대답은 끝이 아니었다.

 

 “저 가진 거라곤 이 한 몸뿐인 데다가요,”

 

 “…뭐?”

 

 “사고무친하여 외딴 곳에서 면포 하나 가진 것 없이 정협 오라버니에게 얹혀사는 처지에 혼인이라니, 참으로 남사스럽기도 하고.”

 

 “혼인이라니!”

 

 “혼인하자는 거 아니에요?”

 

 “아니거든!”

 

 “사랑한다면서요? 제가……나이는 찼어도 영 손방이기도 한데.”

 

 “아니! 아니야. 네가 생각하는……그런 게 아니야.”

 

 정후의 강력한 부정에 그제야 손가락을 꼽던 단이가 되묻는다.

 

 “혼인하자는 게 아니에요?”

 

 발그스레한 얼굴로. 정후는 단이의 그 홍시 같은 얼굴을 제 앞으로 똑바로 붙잡는다.

 

 “네가 좋아. 그 뿐이야.”

 

 그 순간 스르르, 단이가 정후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가까이 얼굴이 다가왔다. 연분홍 입술은 동글게 모아져, 정후의 뺨에 가스라질 듯 닿았다. 소리도 없이.

 단이가 훽 돌아섰다.

 

 “뭐예요. 몰라요. 나 갈래요.”

 

 그리고 단이는 휴게실을 빠져나갔다. 혼자 남은 정후는 멍하게 서서 온기 남은 뺨을 가만히 왼손으로 감쌌다. 다리가 풀려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정후가 강의실에 들어온 건 쉬는 시간이 끝나고도 15분이나 지나서다. 강의실에 발을 들이자마자 수군거리던 학생들이 물먹은 듯 조용해졌다.

 

 “선생님, 걔 여기 학생 맞죠?”

 

 “일반반 고딩 아니에요?”

 

 “사귀는 거예요?”

 

 장난스러운 몇 명이 농담하다가 정후의 노려보는 눈빛에 슬그머니 움츠렸다.

 

 “쓸 데 없는 소리 말고 집중!”

 

 수업은 평상시대로 이어졌다. 늦은 15분을 제외하고 정후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어서, 학생들도 김이 빠졌다.

 문제는 이후에 있었다. 원장의 호출이 이어졌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정후는 원장실로 올라갔다.

 

 “한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좋게 보는 걸 알고 있겠지요?”

 

 “네.”

 

 “아까 이상한 말을 들려와서……. 아니죠?”

 

 “네.”

 

 정후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소문이란, 특히 이런 소문이란 빠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결코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뉴스에 나오면 모를까. 단단히 마음을 붙잡는다.

 

 “뭐, 아닐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아시잖아요, 한 선생님도. 학부모님들한테 그런 소문이 들어가기라도 하면요. 얼마나 예민한 문제인지. K학원에서 성추행이다 뭐다 해서 원생 확 줄고, 지금까지 고생인 거 알지요?”

 

 “물론입니다.”

 

 정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정후는 어른이고, 업무 중 표정 정도는 얼마든지 가릴 수 있었다.

 

 “원장님도 제 성격 아시잖아요. 제 먼 사촌 동생이라 형 집에 머무는 얘에요. 한창 그런 거에 호기심 많은 나이기도 하고. 요번에 동갑내기에게 고백 받았다고 저한테 상의한 거였는데, 말이 좀 와전됐네요.”

 

 “알지, 내 알지요. 내가 진짜 한 선생 의심하는 게 아니라. 뭐 학생들 말 좀 나오긴 할 텐데. 행동거지 조심해줘요.”

 

 “네.”

 

 그 후로도 삼십 분 넘게 요즘 학생들의 태도에 대해 논의를 한 후에야 정후는 원장실을 나올 수 있었다. 나오자마자, 엘리베이터 앞에 수오가 등을 기대고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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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아 17-08-18 13:07
 
오버랩되는 옛날 생각에 글이 안 읽혀서 한참 걸렸네요
그나저나 제 로맨스에도 여주가 서브남에게 고백 받고 바로 달려가서 남주에게 고백하는 장면이 있는데 조금 비슷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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