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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함을 숨긴 채 바쁜 일상을 보냈다.
그동안 병원 운영진들은 직영으로 하고 있던 식당 체재를 용역으로 맡기고 전체 간호사 수를 60명에서 40명으로 줄여버리는 만행을 저질렀으며 대부분의 의사들은 페이 닥터로 교체 된 지 오래였다.
교체 되지 않은 직원들은 대체가 불가능한 수술방의 담당 과장님 이상의 의사들뿐이었고, 대부분은 영문도 모른 채로 해고 통보를 받아야 했다.
평상시에도 일이 별로 바쁘지 않을 때는 정신없이 일하는 간호사들을 지나칠 수 없어서 손 하나라도 거들자는 마음으로 약봉지를 스템플러로 찍는 일이라던가. 환자복을 나눠주는 일 같은 자잘한 잡무는 돕는 편이었는데, 운영진들이 보기엔 이게 당연한 일로 보이기라도 한 것인지 이번 인사 때는 아예 이 일이 내게로 완전히 떨어져 버렸다.
호의로 도운 것이 힘없는 1~4년차 간호사들과 간호조무사 분들이 직장에 잘리게 하는 결과가 되어버리니 내 기분은 말할 수 없이 착잡했다.
그런데다가 병원 운영진들 중의 누군가는 내가 간호사 교육을 받아왔던 경력이 있는 것을 빌미로 간호사 대신에 그들이 하고 있던 전문 영역의 일을 하도록 당당히 요구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무리 몇 년간 전문 교육을 받았다고 해도 실전 경험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던 학생이었고(교육과 실제 업무는 별개의 문제다.) 실습에서 아무리 높은 점수를 획득했다 하더라도 코앞의 미래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고 대처 부분에서 미흡한 사람에게 환자의 생명을 맡기는 것은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처사가 아니었다.
운영진이 내게 요구한 것은 수술방의 마취 주사를 놓는 일이었는데, 난 그 순간 진심으로
운영진에게 ‘미치셨어요? 환자 죽이려고 작정한 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런 말을 하실 수 있으세요?’ 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 했다.
그러나 만약 내가 그 말을 실제로 내뱉었다면 해고당하진 않더라도 상당한 괴롭힘을 당해야 했을 일이었다.
그런 개떡 같은 말을 듣고도 참아 넘긴 것은 이미 꽤 많은 이들이 대량 해고를 겪은 상태라 나까지 입지가 흔들리면 나중에라도 바로 잡을 기회를 얻기 힘들 거라는 예상에서였다.
그가 여전히 병원에 있었더라면 과장급 이상의 의사들을 모아놓고 항의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인데, 지금 병원에 남아 있는 사람들로는 딱 보기에도 연차가 오래 되어 보이지 않는 젊은 페이 닥터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 운영진들뿐이었다.
그렇다고 저런 뭣 같은 병원 운영에 찬성한 운영진들이 항의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 할 수도 없었다.
며칠 전에는 페이 닥터 중에 한 사람이 독한 마취약을 정해진 양대로 쓰지 않고 과다 투여 한 일로 환자 쇼크가 일어난 일도 있었다.
그 환자는 한 달 후에 겨우 깨어나긴 했지만 수술 후유증으로 다리 한 쪽의 마비가 오고 안면 근육이 영영 돌아오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도 후속 조치라는 것은 돈으로 무마하고 수술방과는 전혀 관련도 없는 간호조무사의 퇴사로 이어졌을 뿐이었다.
사고를 친 의사의 퇴사는 없었다. 그리고 어찌 된 일인지 소문이 나도 진즉에 났어야 했을 의료사고는 조용히 묻혀 버렸다.
누군가 의료사고를 낸 사람을 언급해서 당사자의 퇴사가 이어지진 않더라도 환자들이 해당 의사의 정보를 알고 진료를 거부하거나 항의 하는 일조차 없었다.
보통은 의료사고가 나면 이렇게까지 조용하게 일이 무마되지는 않는데, 아무도 해당 의사에 대한 정보를 아는 이들이 없다고 하니 너무나 이상하고 무서운 일이었다.
누군가 거대한 권력층이 사고를 조용히 무마 시키려는 의지가 없고서는 이게 과연 가당한
일인가 싶었다.
아무리 무마를 하려 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 소문은 감수해야 하는 것이 의료 사고의 무서움인데도 불구하고 지금 병원은 너무나 조용하게 아무 일 없는 듯이 돌아가고 있었다.
병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기껏 해야 식당의 용역 직원들이 수시로 바뀌고 식판의 내용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던가.
본래 병원에서 사용하던 의약품이 아닌 저가의 듣도 보도 못한 의약품으로 대체 되어 환자들의 자잘한 부작용과 항의가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평소에도 일어나는 일들이니만큼 태나게 인식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으니, 특별히 예민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병원의 문제점을 눈치 채기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그가 출장을 가기 전부터 불거졌던 문제가 그의 출장으로 가시화 되자 나는 참을 수 없이 그가 그리워졌다.
‘구덕 씨. 과장님 어서 돌아와요. 여기 지금 너무 무섭단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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