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의 품에 안겨서 말하기 시작했다.
“아주머니랑 비슷한 상황에 처한 적이 있었어요. 지금은 그때랑 처지가 달라져 있지만 그때의 기억은 여전히 날 아프게 하는 상처예요. 내가 아버지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효도만으로 만족해야 했던 시기에 벌어진 일들은 기억에서 끄집어 낼 때마다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일이라, 일부러 그 일들을 꺼내서 생각하려 들진 않아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머릴 쓰다듬었다.
“그 일이 있었을 때, 차라리 혼자 아프고 말 일이었다면 별로 큰 상처가 되진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제겐 절대 잃고 싶지 않은 아버지가 있었고……. 그 일을 수습하던 도중에 속수무책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걸 지켜봐야 했어요. 내 일이 중요하다고 아버질 등한시 한 거죠.”
“자책 하지 마.”
“자책이 아니라 이건 제가 처해 있었던 현실이에요. 그렇게 힘들지 않았더라면 아버진 아직 살아 계셨을지도 모르는데……. 결국 전 제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효도도 하지 못했다고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에 남기신 유언이 뭔지 아세요? 닭볶음탕이 먹고 싶다는 거였어요. 몸이 아프다는 말도 아니었고, 누가 보고 싶다거나 하고 싶은 일이 많았는데 원통하다는 말도 하지 않으셨어요. 그냥, 그냥, 그거였어요. 내가 만들어 준 닭볶음탕이 드시고 싶다는 거 하나요. 얼마나 딸이 변변치 않았으면 딸이 해드리는 최소한의 효도에 맞춰서 아버지도 익숙해지셨을까.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미어져요. 아버질 그렇게 만들어놓고도 그 최소한의 효도 한 번 하지 못하고 돌아가시게 만들었다는 게……. 누군가는요. 너무 힘든 삶 때문에 가족에게 아주 최소한의 행복밖에 주지 못하고요. 그 최소한의 행복밖에 바라지 못해요.
그래서 그걸 박탈당하면 두고두고 한이 될 수밖에 없는 거라고요.”
“미안. 내가 경솔했다. 정말 미안…….미안하다.”
나의 이런 두서없는 말과 눈물에 그는 고개를 떨어트리며 미안해했다.
나는 미안해하는 그의 힘없는 목소리에 더욱 더 눈물을 주체 할 수 없었다.
“어쨌든 당신이 직접적으로 잘못 한 건 아닌데…….슬프지만 내 마음이 그랬어요. 당신을 지금 당장 보게 되면 마음을 주체 할 수 없을 만큼. 아세요? 당신에게 그런 행동 하고 싶지 않았다는 걸.”
“응. 알 것 같아.”
그의 눈도 조금씩 촉촉해져 갔다.
“좋아하는 사람에겐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은데…….”
속상해 하는 내게 그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연애가 항상 좋은 모습만 보일 수 있는 건 아닌데, 왜 그렇게 처음부터 힘든 일을 자처하지?”
“보기 좋지 않잖아요.”
“그건 내가 생각 하는 게 아니잖나. 난, 당신의 이런 모습이 보기 좋지 않은 모습이라고 여기지 않아.”
“정말…….요?”
“응. 정말로.”
그의 표정이 또다시 한없이 따스해진다.
“정말?”
“그래.”
‘아, 이 남자. 진짜…….너무 잔망스러워.’
다시 이 사람이 좋아질 것 같다. 전처럼. 아니, 전보다 더.
***
쓰는 내내 괜히 눈물 나고 또 눈물 나던 챕터가 끝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