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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판타지/SF
일곱 번째 기사
작가 : 프로즌
작품등록일 : 2016.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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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시작된 연극(9)
작성일 : 16-04-24 20:37     조회 : 669     추천 : 0     분량 : 12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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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알폰소는 그다지 명망이 깊지는 않지만 꽤 부유한 신흥 자작가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뛰어난 기사였던 부친으로부터는 기사로서의 소질을, 유명한 미인이었던 모친에게는 그 화려한 외모를 물려받았다.

 잘생긴데다 검술까지 대단한 부잣집 도련님.

 하지만 그렇게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었던 알폰소였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작위를 잇지 못하는 차남의 신분이었다.

 그래서 열여섯이 되던 해, 알폰소는 부모를 설득하여 집을 나섰다.

 물론 가주였던 그의 부친은 스무 살이 되면 기사 서임을 받게 해줄 터이니 영지에 남아 있으라고 했지만 그는 말을 듣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제법 많은 재물과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수발을 거들었던 시종 마르쵸만을 대동한 채 무단으로 가출을 감행한 알폰소는 퀘른 왕국연합의 유명한 아카데미로 갔던 것이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검으로는 적수를 찾아보기 힘들었던 알폰소가 선택한 과목은 바로 문학이었다.

 너무나도 완벽한 자신에게 부족한 것은 단 하나 밖에 없다는 판단이 그로 하여금 시와 문학에 관심을 두게 한 것이다.

 알폰소의 꿈은 검으로서 성공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인정하는 훌륭한 시인이 되는 것이었다.

 아카데미에서 알폰소는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자신의 시를 자랑스럽게 발표했다.

 화려한 미모를 가진 돈 많은 귀족 집안의 젊은이가 발표한 시는 곧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지독한 악평이 쏟아졌다. 보통 사람 같으면 눈물을 쏙 뽑으며 더 이상 시단에 발도 못 붙일 정도로.

 그러나 알폰소는 ‘보통 사람’ 아니었다. 그는 언제까지나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왕자병 말기 환자다.

 그런 그가 자신의 예술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자들의 시기어린 질투를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알폰소는 어리석은 자들을 향해 장탄식을 내 뱉으며 아카데미를 떠났다.

 “저 빛나는 위대한 시인 로메로스의 심정을 내 알 것 같구나! 하아! 천재를 인정치 못한 시대에 태어난 나의 잘못이로고! 잘 있거나 범인들이여! 나 체스테인 알폰소는 바람과 이슬을 벗 삼아 나만의 노래를 부르리라!”

 로메로스는 ‘바람의 노래’라는 유명한 시를 발표했지만 그의 뛰어난 시재를 시기한 자들에 의해서 추방당해 비참한 말년을 보내게 된 천재시인이다. 물론 알폰소와는 경우가 완전히 다른 ‘진짜 시인’임은 말할 것도 없다.

 어쨌든 아카데미를 떠난 알폰소는 충실한 시종 마르쵸와 함께 3년 간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집을 나올 때 가져온 재물도 점점 바닥을 보였고, 수많은 기사의 도전을 받아 하루가 멀다 하고 결투를 했다.

 주로 각 지방의 미모가 반반한 레이디에게 되도 안 되는 시로 작업을 걸다가 그녀의 기사와 말다툼 끝에 발생한 결투였다.

 떠돌아다닐수록 얼굴이 반반한 레이디를 만나게 되는 횟수는 많아졌고 그에 정비례해 결투 역시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는 계속 이겼다.

 28전 27승 1무승부.

 물론 알폰소는 스물일곱 명의 레이디를 만났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을 뿐이고, 저 기록은 그의 충실한 시종 마르쵸가 결투가 벌어질 때마다 일일이 적어둔 기록이었다.

 언제까지나 고고한 한 마리 학이 되고픈 그가 지저분하게도 자신의 검에 피를 묻히게 한 사내 녀석들을 물리친 회수를 기억할 리가 없었다.

 단, 유일한 무승부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 무승부는 레이디 때문에 벌어진 것도 아니었고, 상대가 바로 헬포드였기 때문이었다.

 발걸음 닫는 데로 떠돌아다닌 알폰소는 결국 국경을 넘어 프레드릭 영지까지 오게 되었다.

 마을로 찾아온 알폰소를 본 자경단은 긴장했다.

 돈이 다 떨어져 며칠을 굶은 데다 행색은 초라하기 그지없었지만(그때까지 버틴 것도 사실 시종 마르쵸가 결투에서 진 기사의 품을 몰래 뒤져서 훔친 돈 덕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화려한 외모가 가려지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의 곁에는 이 오만하기 짝이 없는 기사를 정성으로 모시는 시종 마르쵸가 있었다.

 분명히 귀족 집안의 자제로 보였다. 함부로 움직여서는 큰 사단이 날 수도 있었기에 자경단은 목책 바깥에서 계속 헛소리를 외치는 알폰소를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자경단도 사람이었다.

 그 자신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사람의 비위를 박박 긁는 알폰소의 말에 몇몇 젊은이들이 견디지 못한 나머지 창칼을 들고 알폰소를 향해 뛰쳐나가고 만 것이다.

 세 명의 젊은이가 쓰러졌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다. 알폰소가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싫어한 덕분에 생명에 지장이 없는 부상만을 당한 것이다.

 레이피어는 아예 뽑지도 않고 작은 맹고슈(주 : 단검의 한 종류)하나만을 사용해 전광석화와도 같은 칼솜씨로 세 젊은이를 물리치는 모습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그렇게 세 명의 자경단원이 쓰러지자 수비대가 출동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수비대장 에인세와 보이지도 않는 빠른 단검술을 지닌 건방진 기사가 시비를 건다는 말에 불끈한 헬포드가 목책 바깥으로 나왔다.

 두 기사와 대면한 알폰소는 특유의 장광설로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귀족으로서의 예법은 확실히 담겨있었다.

 무슨 일이든 기사도에 입각해 판단하는 에인세는 사람이 조금 이상해 보이긴 했지만 생각보다 예의바르고 공손한 태도를 보이는 알폰소를 그리 나쁘게 보지 않았다.

 둔감한 것인지 아니면 너무 고지식한 것인지, 그 어떤 말을 듣건 그것이 기사도에만 어긋나지 않으면 별상관하지 않은 에인세는 한눈에도 귀족으로 보이는 알폰소를 성으로 데려갈 것을 뒤늦게 나온 로렌스에게 건의했다.

 하지만 단순, 무식, 과격에 더해 불타는 호승심까지 갖춘 헬포드는 거지꼴을 하고 있는 주제에 건방지고 허세를 부리는 알폰소가 전혀, 절대로, 완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계집애 같은 외모가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헬포드는 알폰소를 자극하는 말을 했고, 그걸 그냥 가만히 듣고 있을 리가 없는 알폰소는 이후로 헬포드의 별명으로 굳어질 ‘멧돼지’라는 말로 헬포드를 불렀다.

 그리하여 결투는 이루어졌다.

 자신의 검을 꺾으면 성안으로 직접 업어서 데려다 준다는 헬포드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알폰소가 낮은 휘파람소리를 내며 달려든 것이다.

 로렌스와 에인세가 말리고 자시고 할 틈이 없었다.

 얇고 가는 레이피어와 맹고슈가 폭풍을 일으키는 듯 휘둘러지는 거대한 양손검과 맞부딪쳤다.

 상식을 벗어난 놀라운 속도와 곡예와도 같은 몸놀림으로 두 기사는 격돌의 격돌을 거듭했고, 근 십여 분 동안 강철과 강철이 부딪치는 소리가 쉬지 않고 울렸다.

 로렌스와 에인세는 같은 기사임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전투력을 지닌 두 기사의 격돌을 멍하게 볼 수밖에 없었다.

 냉철한 로렌스였지만 그도 기사다.

 이런 대단한 기사들의 격돌은 그 역시 오랜만에 봤다. 이성은 말려야 한다고 외쳤지만 기사로서의 끓는 피는 그 대결을 더 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둘 중 하나는 분명히 죽거나 중상을 면치 못할 것이었다.

 무조건 말려야 했다.

 손을 높게 쳐든 로렌스가 막 그만두라고 외치려는 찰나.

 핑!

 알폰소를 향해 화살이 하나 날아갔다.

 쇼트보우(주 : 짧은 화살을 쓰는 활) 겨누고 있던 병사 중 하나가 긴장에 그만 시위를 놓아 버린 것이다.

 로렌스는 눈을 치떴다.

 알폰소는 얇은 가죽갑옷을, 헬포드는 사슬갑옷을 착용하고 있지만 이 거리에서는 백이면 백 관통 당한다.

 파악!

 그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것을 제대로 본 자는 로렌스와 에인세뿐이었다.

 나머지 병사들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왜 화살이 저기에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소리만 남긴 채 공기를 가르고 날아간 화살이 알폰소의 맹고슈에 의해 두 동강난 채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모든 움직임이 멈췄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 침묵 속에서 로렌스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설마……. 환상기사(Fantasy Knight)?”

 기사들 사이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세상에는 상식으로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반사 신경을 가지고 찰나 앞에 펼쳐질 장면을 단지 기세만으로 알아차리는 기사가 있다고.

 인세에 처음 내려온 대천사 훼리암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영혼들 중 몇몇의 어깨에 가볍게 검을 대는데, 그 아이가 태어나 검의 길을 걸어가게 되면 얻는 이름이 바로 ‘환상기사’라고…….

 로렌스는 롯산드리아 대공 휘하에 있을 때 그런 기사를 멀리서 한 번 본적이 있다.

 롯시의 환상기사 빌헬름 보로사스. 그가 30야드 떨어진 곳에서 연속해서 날아오는 화살 세 대를 쳐냈었다.

 로렌스는 저도 모르게 침이 꿀꺽 넘어갔다.

 비록 빌헬름 보로사스처럼 네 대는 아니지만 20야드에서 날린 쇼트보우를 쳐냈다.

 틀림없다. 화려한 외모에 레이피어와 맹고슈를 기가 막히게 다루는 저 기사는 틀림없이 환상기사였다.

 만에 하나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다.

 저런 뛰어난 기사는 쉽게 볼 수 없었기에 로렌스가 내릴 결론은 간단했다.

 ‘끌어들이자!’

 처음 로렌스로부터 영지기사의 제의를 받은 알폰소는 완강하게 거절했다.

 자신은 기사가 아닌 시인이 되고 싶다며, 자신의 꿈은 시를 읊고 바람을 벗 삼아 유랑을 하는 것이지 누군가에게 묶여 검을 휘두르는 것은 질색이라고 했다.

 그를 호적수로 인정한 헬포드가 자신과 승부를 내자며 영지에 머물라는 반 협박을 했음에도 절대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힘만 넘치는 멧돼지 같은 당신 정도의 기사는 지천으로 깔렸다며 거절하자 분노한 헬포드와 또 한바탕 벌일 뻔했다. 그것도 프레드릭 남작의 면전에서.

 에인세와 로렌스가 날뛰는 헬포드를 간신히 뜯어 말렸기 망정이지 정말 사생결단이 날 뻔 했었다.

 정 그렇다면 며칠이라도 여장을 풀라는 프레드릭 남작의 말에 알폰소는 알았다며 그냥 식객으로 성안에 얼마간 머물렀다.

 그 사이사이 로렌스가 끈질기게 설득했으나 알폰소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리하여 질기기로 소문난 로렌스마저 두 손 들고 거의 포기할 무렵, 무표정한 얼굴을 가진 기사의 행색을 한 남자를 대동하고 로젤리아가 돌아왔다.

 그 무표정한 기사는 뜻밖에도 식객 알폰소를 보자마자 결투를 신청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단 한 번도 접하지 못한 종류의 기사라는 느낌이 들어서라고 했다.

 물론 아무 의미도 없는 싸움은 일단 피하고보자 주의인 알폰소가 승낙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무표정한 기사는 막무가내였다. 일단 달려들고 보았다.

 수십 수를 나눈 끝에 무표정한 기사가 패했다. 허벅지에 긴 검상만을 남긴 채.

 그는 만약 이대로 떠난다면 지옥 끝까지 쫓아가 알폰소를 꺾을 때까지 결투를 신청할 것이라고 했다.

 알폰소는 싱글거리며 마음대로 하라고했다.

 무표정한 기사의 상처는 생각보다 가볍지 않아서 최소한 보름 정도는 치료에 전념해야 했으니까 그 사이 얼마든지 성을 떠날 수 있었다.

 그러나 알폰소는 성을 떠나지 못했다.

 바로 프레드릭 남작의 딸, 레이디 로젤리아 프레드릭이 그의 시를 품평해주었다. 그것도 퀘른의 아카데미에서 들었던 악의만 가득 찬 비난이 아니라, 조목조목 시를 해석하며 얼마간의 칭찬까지 해주었던 것이다.

 너무 자의식이 만연해 있어 타인들이 이 시를 제대로 읽기도 전에 비난을 할 것이라고, 하지만 제법 정밀한 운율로 이루어진 괜찮은 시라고 했다.

 알폰소는 크게 감동했다. 로젤리아처럼 자신의 시를 알아주는 사람을 그는 그전까지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모두들 그의 천재성을 시기했고 그의 시에 악담을 퍼부었다.

 절대 남에게 내비치지는 않았지만 계속된 비난에 그는 내심 정말 자기가 시에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닌가, 하고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그럴 때 그의 시를 알아주는 사람, 그것도 어리긴 했지만 어여쁜 레이디가 나타났으니 그가 기쁨에 겨워 로젤리아에게 매달린 것은 뻔했다.

 알폰소는 2,3일에 몇 번씩 시를 써서 로젤리아에게 품평을 부탁했고 로젤리아는 단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그의 시를 봐주었다.

 회가 거듭될수록 알폰소는 감동과 고마움을 느꼈다.

 그리고 이 어여쁜 어린 레이디가 없으면 자신의 천재적인 시재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게다가 알고 봤더니 이곳의 영주 프레드릭 남작도 로젤리아만큼은 아니지만 시골영주치고는 꽤 문학에 관심이 깊었다.

 그리던 어느 날, 프레드릭 남작이 결정타를 날렸다.

 “시만 써도 좋으니 영지에 남아서 나의 기사가 되어 주시오.”

 두 말할 것도 없었다.

 그날부로 당장 프레드릭 남작의 충실한 검이 될 것을 맹세한 알폰소는, 입이 봉해지고 손이 잘려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더라도 절대 되지 않으리라 결심한 ‘정식 서임기사’가 되었다.

 그 이후, 그는 넘쳐나는 시상을 읊고 적느라 행복해 미칠 지경이었다.

 가끔 무표정한 기사의 도전을 받거나 자신만 보면 눈을 부라리며 칼 먼저 뽑고 보는 헬포드와 놀아주는 것이 조금 귀찮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그는 영지기사 일이 점점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프레드릭 남작가의 네 번째 기사가 된 것이다.

 

 ******

 

 “그러니까, 그게 모두 로렌스 경이 꾸민 일이다 이겁니까?”

 “예, 로젤리아 아가씨께 그의 시를 품평해 달라고 한 것도 저고 그가 귀찮게 하더라도 절대 싫은 내색을 보이지 말고 시를 봐달라고 한 것도 접니다. 또한 어느 정도 분위기기 무르익었을 때 영주님께 그를 끌어들이라고 전언을 드렸죠.”

 역시 로렌스는 머리가 좋았다. 상대가 가장 원하는 미끼를 던지고 그를 낚는데 성공한 것이다.

 “아아, 그렇게 된 것이군요.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로젤리아와 프레드릭 남작에게 고향에 다녀오며 겪었던 일에 대해 신나게 떠들고 있는 알폰소 쪽으로 눈길을 한 번 돌린 로렌스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미 잘 알고계시겠지만, 영지의 전반적인 운영은 저와 영주님이 보고 있고 에인세 경은 수비대원들과 영지직속 마을에 거주하는 자경대원들의 전술적인 훈련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또 헬포드 경은 돌격대를 맞고 계시는데다 가끔 다른 영지의 사소한 분쟁과 마상창 시합에 참가하기도 해서 꽤 바쁩니다. 대외적으로 우리 영지의 기사가 가진 힘을 과시하기에 가장 좋은 기사가 바로 헬포드 경이니까요.”

 “그렇지요.”

 “그리고 로딕 경은 병사들의 검술을 지도합니다. 이렇듯이 모두가 할 일이 있고 바쁩니다. 그런데…… 알폰소 경은 아무 일도 하지 않습니다. 알폰소 경이 하는 일이라고는 개인수련을 하거나 시를 써서 로젤리아 아가씨께 품평을 부탁하는 일, 그리고 이미 보셨다시피 실없는 말로 병사들의 심기를 긁어대는…… 그리 기사답지 못한 행동들로 1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로렌스가 슬쩍 시선을 돌렸다.

 알폰소는 여전히 열심히 떠들어대고 있었다.

 “아핫핫! 그래서 말이죠, 영주님. 제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관 앞에서 시를 읊었는데요. 이제 가주로 인정받으신 형님께서 얼마나 감동을 하셨는지 그만! 이렇게 아버지의 검과 돈까지 주시면서 배웅을 하지 뭡니까? 아 어찌나 시가 슬펐으면 글쎄, 이런 슬픔은 이제 두 번 다시 맛보기 싫으니 절대 집으로 돌아오지 말라는 말까지 하고 말이죠. 하아! 역시 저 같은 천재의 시는 사람들에게 그 감정을 절절히 전하나 봅니다. 아, 레이디 프레드릭! 제가 아버지께 읊은 시 한 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이게 사실…….”

 “헐…….”

 “후우…….”

 지운과 로렌스는 거의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지운은 단 몇 시간의 경험으로도 저 알폰소라는 기사가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었다.

 매일 놀고먹고 말까지 많은데다 왕자 병이기까지 했다. 아무리 환상기산지 뭔지 해도 조금, 아니 너무 심한 듯 했다.

 한마디로 칼 쓰는데 조금 천재성이 있는 백수가 아닌가?

 “그럼 앞으로도 계속 저 상태로 놔두실 생각입니까? 제가 볼 때도 조금 심한 것 같은데요.”

 “그럴 수는 없지요. 사실 우리 병사들 중에 제법 검술에 재능이 있는 자들이 몇몇 있습니다. 다듬기만 하면 향사 자리를 줘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재능이 넘치는 친구들이지요. 그런 친구들을 알폰소 경이 지도를 해줬으면 하는데 도무지 따르질 않는군요.”

 로렌스의 말에 지운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요. 일단은 프레드릭 남작님께 충성을 맹세한 기사 아닙니까? 영주인 남작께서 한마디 해주시면 될 텐데요?”

 로렌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게 좀 문젭니다. 애초에 알폰소 경을 영지기사로 임명할 때 조건이 바로 시만 써도 좋다는 것이라. 지금 와서 말을 뒤집을 수도 없는데다 알폰소 경이 스스로 눈치를 봐서 행동하는 기사는 더더욱 아니니까요.”

 “으음. 그것 참 머리 아픈 일이군요.”

 그제야 지운은 왜 로렌스가 처음 알폰소 이야기를 꺼낼 때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한마디로 계륵이었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뛰어난 기사지만 끌어안을 때 살짝 포인트가 어긋난 데다 성격마저 저러니 평시에는 전혀 쓸모 짝이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로렌스로서는 순간 그 재능에 반해 영지로 섭외를 했었지만 그게 그의 발목을 잡고 만 것이다.

 허나 그렇다고 기사서임을 무를 수도 없는 노릇.

 기사의 서약은 죽음이 그것을 가를 때까지 결코 바꿀 수가 없는 고귀한 맹세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네?”

 로렌스의 은근한 목소리에 지운은 흠칫했다.

 알폰소가 검의 천재라고 한다면 로렌스는 사람을 다루는데 굉장히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기사다.

 그런 그가 이렇듯 은근한 어조로 말을 꺼내는 것은 혹시 지금 지운이 막 생각하던…….

 “……해주시면 어떻겠냐는 것입니다.”

 역시나…….

 “으음!”

 지운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제가 봤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 분은 지운 경뿐입니다. 부탁드립니다. 우리로서는 알폰소 경을 제대로 써 먹는 것이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지운은 로렌스의 눈을 바라보았다.

 마치 ‘네가 헬포드에게 검술을 배울 뻔 했을 때 구해준 것이 누구냐?’라고 묻는 듯한 시선…….

 지운은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저와 에인세 경 그리고 헬포드 경과는 이제 격의가 없으시지만 저 두 기사는 아직이잖습니까. 물론 로딕 경이야 지운 경께 검을 가르치게 될 거니 아마 충분히 친해질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알폰소 경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운 경을 귀찮게 하겠지요. 어차피 그렇게 될 거, 미리 선수를 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부탁드립니다.”

 맞는 말이다. 도저히 거절할 구실이 없었다.

 무표정한 얼굴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어차피 로딕이야 한 달 동안 지운에게 검술을 가르치게 될 것이니 친해질 기회가 충분할 것이다.

 그런데 알폰소, 저 왕자병은 지운이 싫다고 해도 졸졸 따라다닐 것이 뻔했다.

 로젤리아가 인정한 시인, 그런 시인이 눈앞에 있는데 그가 가만히 있을 리가 만무했다.

 무엇보다 지금 당장에도 지운이 들으라는 듯 일부로 큰 소리로 시를 읊는 게 뻔히 보인다.

 그것도 지운 쪽으로 웃음을 슬쩍슬쩍 던지기도 하면서…….

 절대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인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더 점수를 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설혹 그것이 울며 겨자 먹기라도 말이다.

 “맡겨만 주십시오. 제 성심성의껏 지도해 보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내일부터 오전에는 로딕 경에게 검술을 지도 받으시고 오후에는 알폰소 경을 좀 다독거려 주십시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순수한 기사입니다. 지운 경께 절대 해가 되는 일은 아닐 겁니다.”

 끝까지 그다지 위로가 되는 말은 아니었다.

 

 ******

 

 로딕은 키가 컸다.

 영지의 기사들이 보통 170센티미터 내외인 것을 감안할 때 178센티미터인 지운보다 아주 조금 작은 로딕은 이 세계의 관점에서 보자면 아주 키가 큰 축이었다.

 대략적으로 살펴본 바로는 이 세계 성인 남성의 평균 신장은 160센티미터 안팍일 듯싶었다. 21세기의 대한민국보다 약 10여 센티미터 정도가 작았다.

 178센티미터인 지운의 키는 이곳에서 한국으로 치자면 거의 190센티미터에 가까운 대단한 장신이었다.

 고로, 175센티미터는 되 보이는 로딕의 키는 거의 185이상의 취급을 받을 거였다.

 그러나 지운과 마찬가지로 로딕 역시 호리호리했다. 결코 마른 것은 아니었으나, 거칠고 강인한 이미지의 기사보다는 탄탄하고 잘 빠진 남자 무용수를 보는 듯했다.

 짙은 갈색 머리에 얼음처럼 차가운 푸른 눈동자가 잘 어울리는 얼굴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무표정했지만, 자세히 보면 왠지 진중하면서도 고독해 보이는 면이 있었다. 알폰소만큼은 아니지만 로딕 역시 상당한 미남이었던 것이다.

 ‘휴우…….’

 지운은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프레드릭 영지의 기사들은 대부분 다 잘생겼다.

 에인세는 고집스러워 보이는 턱 선에 우뚝한 콧날, 짧은 금발 머리가 잘 어울리는 게 용감하고 혈기 넘치는 젊은 미군 장교를 연상시켰다.

 또 로렌스는 정장을 입히고 안경을 씌워 21세기 지구에 데려다 놓으면 세련된 로펌 변호사라고 여길 만큼 지적이고 엘리트 같은 외모의 소유자였다.

 알폰소야 그 방정맞은 입만 다물어 준다면 할리우드에서 온 배우라고 해도 누구나 다 믿을만한 보기 드문 꽃미남이었고.

 한데, 이런 와중에 로딕까지 고독한 한 마리 늑대를 연상시키는 외모를 가지고 있으니, 지운이 괜스레 울적해진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내 한사람의 얼굴이 떠오르자 지운은 내심 안도감이 들었다.

 ‘헬포드 덕분에 그래도 꼴찌는 면 했구나…….’

 물론 지운이 외모에 신경을 쓰거나 그것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종류의 인간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확실히 자신보다 잘생긴 남자들 틈에 섞여 있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 하겠습니다.”

 “예, 예?”

 “마스터께서는 시작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딴 생각에 빠져 있던 차에 로딕이 하는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반문하자 열 서넛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재빨리 대답했다.

 ‘이름이 페이지였지?’

 페이지(주 : Page, 기사의 시종)의 이름이 페이지라니, 조금 재미있었다.

 “호버크…… 시오.”

 “네?”

 “마스터께서는 호버크를 벗으시라고 하셨습니다.”

 지운이 못들은 것이 아니었다. 낮은 목소리였지만 알아듣기 힘들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로딕의 말에 반문한 것은 바로 호버크를 벗으라는 말에 있었다. 이제까지 헬포드에게 받아왔던 훈련에서는 한 번도 호버크를 벗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새로운 선생님의 지시였으니 지운은 일단 호버크를 벗었다.

 “검을…….”

 로딕의 지시에 페이지가 재빨리 검을 하나 들고 왔다.

 그것은 평범한 롱소드(주 : 길이 90cm 가량의 기사들이 주로 쓰는 검)였다.

 중세기사의 가장 기본적인 무기.

 박물관에서도 영화에서도 몇 번이나 본 롱소드였지만 실제로 손에 들고 보니 긴장이 되는 와중에도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검 양쪽으로 날카롭게 선 날이 서늘한 느낌을 주었고 몇 번 휘둘러보자 그리 만만치 않은 무게감이 느껴졌다.

 ‘K1 보다는 좀 가벼운 거 같은데…….’

 현역 시절 군대에서 사용했던 K1 소총의 무게가 2.5킬로그램 정도였으니 그것보다는 약간 가벼운 느낌이 드는 것으로 보아 2킬로그램 안팎일 것이다.

 지운은 기분이 묘했다.

 처음 소총을 수여받았을 때는 훈련병 시절이라 엄청난 긴장감에 이게 사람을 죽이는 무기인지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했다. 단지 이게 진짜 총이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그리고 총은 보통 멀리 떨어져 있는 표적을 쏘아 살상하는 무기다.

 실제로 사람을 쏴본 적은 없었지만, 총을 쏜다는 것은 내가 그 사람을 죽인다는 생각보다는 이 총이 저 사람을 죽였구나하는 생각이 들 만한, 어떻게 보면 살인에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것으로도 느껴질 행동일 것이다.

 하지만 검으로 상대를 공격한다는 것은 그것을 휘둘러 바로 눈앞에 있는 상대를 쓰러트리는 것을 의미했다.

 상대의 뱃가죽을 뚫거나 목을 쳐내야하는, 검을 이용한 공격은 당사자의 면전에서 사람이 피 보라를 뿌리며 쓰러지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아야만 한다.

 즉, 먼 거리에서 방아쇠만 당겨 사람을 죽이는 총보다는 지극히 직접적으로 ‘사람을 죽였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게 만드는 살상무기가 바로 도검인 것이다.

 ‘이걸로 사람을 죽이는 일이 생길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지금은 안전한 성안에서 자신에게 호의적인 사람들과 지내고 있지만, 이곳은 지구의 중세와 여러 가지 면에서 흡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세계다.

 이른바 야만의 시대.

 영지 밖을 벗어나는 순간 도처에 깔린 위험에 노출이 될 것이다.

 실제로 숲 속을 헤맬 당시 오크들에게 죽을 뻔도 하지 않았는가?

 “시작해 보지요.”

 “아, 예!”

 지운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물론 이 검으로 사람을 헤치는 경우가 생기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생긴다면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배워둬 자신을 보호해야 할 것이다.

 살인자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생사가 오가는, 칼을 휘두르면 살아남을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온다면 기꺼이 살인자가 될 수 있었다. 아니 살기 위해서는 되어야만 한다.

 자신은 악독한 살인자도, 생판 모르는 남을 위해 살신성인하는 성자도 아닌, 자신의 목숨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보통 인간일 뿐이니까.

 “머리 높이로 검을 들어 올리십시오.”

 지운은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마침내 훈련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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