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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판타지/SF
일곱 번째 기사
작가 : 프로즌
작품등록일 : 2016.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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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시작된 연극(8)
작성일 : 16-04-24 20:36     조회 : 601     추천 : 0     분량 : 15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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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6 - 타산지석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게다가 다리는 무릎이 빠진 것처럼 끊임없이 후들거린다.

 “후우……! 후우……! 읍!”

 지운은 이를 악물고 한발 한발 걸음을 옮겼다.

 고지가 바로 앞이다. 여기서 쓰러진다면 지는 것이다.

 믿고 격려하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당당하게 걸어야 한다.

 “갈 수 있을까?”

 “글쎄에? 걷는 모습을 보아하니 힘드실 거 같은데.”

 비틀!

 “어머! 쓰러질 것 같아.”

 “그렇게 걱정 되면 부축해 드리지 그러니, 윈디?”

 “얘는 참 못하는 소리가 없어! 너야 말로 당장 뛰어 갈 기세인데?”

 “호호!”

 ‘제, 제기랄…….’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웃는 것으로 보아 자신을 비웃는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하며 지운은 벌벌 떨리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었다.

 그러나 이미 풀려버린 다리는 의지를 배신하고 술 취한 사람마냥 이리저리 꼬이기만 했다.

 ‘제, 제기랄…….’

 내성 깊숙한 곳에 위치한 탓에 번잡하지 않고 조용해서 좋기는 했지만, 이럴 때만큼은 멀기만 한 자신의 거처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여기서 쓰러지면 망신도 그런 개망신이 없을 것이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다시 한 번 힘을 준 지운은 멀찍하니 떨어진 곳에서 자신을 흘끔거리며 쑥덕대는 성내 메이드들을 향해 어색하나마 미소를 지어보였다.

 일단 성의 최고 윗선이라 할 수 있는 프레드릭 남작과 스웬딕 주교에게는 점수를 많이 따 놓은 상태다. 그러니 이제는 아랫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어야 할 것이다.

 조직이라는 곳은 윗사람에게 손바닥 비비며 백날 잘 보여 봤자 아랫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지 못하면 바로 도태되어 버린다. 흔히 왕따라는 것이다.

 게다가 지운은 지금 ‘낙하산 인사’라고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닌가?

 낙하산일수록 아랫사람을 잘 챙겨야 잡음 없이 조직에 편입할 수 있다는 것은 직장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어머머! 여길 보고 웃으셨어!”

 “엄마 어떡해! 날 보고 웃은 게 분명해.”

 “호호! 요년 너 오늘 반년 만에 목간 가는 거 아니니? 그래봤자 소용없어. 저분은 분명 날 보고 웃은 거야.”

 “요년들이 청포도 보고 와인 마실 생각부터 하네? 날 보고 그러신 거야.”

 메이드들은 꺄르륵 웃으며 쑥덕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두 달 전, 성으로 검은 머리의 외국인 잡혀 왔을 때 그 정체에 관한 이야기는 메이드들 사이에서도 꽤 이슈가 됐었다.

 주로 사악한 마법사라느니, 주인을 죽이고 도망친 동방 출신의 노예라느니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금방 심드렁해졌다. 그 누구도 그 외국인이 살아남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며칠 후면 죽을 사람 이야기를 해봤자 뭐하겠는가?

 하지만 예상을 깨고 그 검은 머리의 외국인이 멀리 떨어진 ‘꼬레아’라는 나라의 명망 깊은 백작가의 귀족나리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메이드들의 태도는 급변했다.

 얼굴이 특출 나게 잘 생긴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는 묘하게 신비한 구석이 있었다.

 또한 일단 외모가 어찌됐건 간에 그가 고국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없는 젊은 외국인 귀족이라는 사실, 그중에서도 ‘돌아 갈 가능성이 없는 귀족’이라는 게 중요했다.

 아무 귀족에게나 치마를 쉽게 들만큼 메이드들은 어리석지 않았다. 혹여 사고라도 쳐서 아버지 없는 사생아를 낳기라도 하면 그나마 먹고 살만한 성내 메이드자리에서 내쫓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하지만 저 젊은 외국인 귀족나리는 돌아 갈 곳이 없다. 나중에는 어찌 되던 간에 당분간은 이곳에서 머물러야 한다는 말이다. 유혹해서 아이라도 가지게 되면 절대 발뺌하지 못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팔자를 고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신분의 차이가 있으니 정식 부인이 될 가능성은 극히 낮았지만 그녀들에게 그런 것은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귀족의 정부나 첩이 지금보다 대접이 나을 것은 확실했다.

 게다가 스웬딕 주교가 공대를 하며 특별한 존중을 보이는 것이 신분이 높은 귀족 사제라는 말도 있었고, 그녀들의 주인인 프레드릭 남작이 그를 귀하게 여겨 전 영주가 말년을 보냈던 방에 기거케 했다는 사실은, 그녀들로 하여금 지운을 잡으면 무조건 팔자를 고칠 수 있는 ‘봉’으로 결론 내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 ‘봉’은 거의 두 달 동안 두문불출하며 방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들끓었던 소문도 점차 수그러들며 메이드들의 관심도 점점 멀어지려는 찰나, 기다렸다는 듯 ‘봉’이 다시 등장했다.

 그것도 정식으로 작위를 인정받기 위해 검술을 배운다는 이유로.

 메이드들의 목욕횟수와 화장이 짙어지고 지운의 거처로 이어진 길목에서 서성거리는 경우가 늘어났다.

 심지어 은근슬쩍 치마를 높이 걷어 탐스러운 허벅지를 내보이는 처녀까지 생겨나는 판이다. 잘만하면 팔자를 고칠 수 있는 데 더 심한 짓도 마다할 리가 없었다.

 한데, 메이드들의 이런 속사정을 전혀 짐작하지 못한 지운이 미소까지 지어보이며 그들을 향해 목례를 했다?

 그것은 지운에게 있어서는 단순히 자신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어필하며 앞으로 잘 봐달라는 우호증진을 목표로 한 호의였지만, 그를 ‘봉’으로 여기는 메이드들에게는 신분상승을 항한 욕망이라는 이름의 활화산에 ‘봉’이 짚단을 들고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의 행동이었다.

 하지만 마른 짚단에 불이 옮겨 붙기 바로 직전, 다행스럽게도(?) 메이드들에게 있어 강한 빗줄기를 동반한 폭풍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등장했다.

 “훈련이 힘드셨나보군요, 지운 경.”

 프레드릭 남작의 부인 엘리사 프레드릭이 세상을 떠난 후 이 성의 실질적인 안주인이랄 수 있는 로젤리아 프레드릭. 그녀가 기척도 없이 통로 한쪽에 모습을 드러냈다.

 “너희들은 할 일이 별로 없는 모양이구나?”

 “아, 아닙니다, 아가씨.”

 지운에게 말을 건 낸 로젤리아가 메이드들을 향해 서늘하기 짝이 없는 눈빛을 던지자 메이드들은 사자를 만난 양떼처럼 이리저리 흩어졌다.

 다른 귀족가의 아가씨들처럼 자신들을 괴롭힌다거나 때리는 경우는 절대 없었지만, 항상 무심한 표정에 말수까지 적은 로젤리아는 굉장히 대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게다가 냉정한 눈빛만으로는 로젤리아보다 한수 위인 로렌스마저 그녀를 대할 때는 주군의 딸이라는 위치 이상으로 대접을 해줬기 때문에 메이드들은 더더욱 로젤리아 앞에서는 주눅이 들었다.

 하지만 큰 잘못이 아니면 벌을 주는 경우도 없었고 열여섯이라는 어린 나이임에도 메이드들이 몸이 아프거나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는 안주인으로서의 덕까지 갖춘 그녀였기에, 메이드들은 로젤리아를 어렵게 대하기는 했지만 굉장히 존경했다.

 “죄송합니다. 메이드들이 지운 경을 불편하게 만든 것 같군요.”

 “아, 아닙니다. 불편하긴요. 오히려 젊은 아가씨들이 관심을 가져주니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는걸요? 하핫!”

 “지운 경은…… 좋나보군요.”

 머쓱하게 웃는 지운을 바라보는 로젤리아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하핫! 네?”

 그러나 자신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웃으며 반문하는 지운의 반응에 로젤리아는 조금 뜨거워지려는 얼굴을 슬쩍 돌리며 부인했다.

 “아,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아, 네 그러죠. 그런데 좀 전에 뭐라고…….”

 “그럼.”

 지운의 말도 듣지 않고 로젤리아는 고개를 숙여 보인 후 급히 걸음을 옮겼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로젤리아의 행동에 지운은 적잖게 의아했으나 별 일 아니겠거니 생각하며 다시금 거처로 발걸음을 돌렸다.

 여전히 후들거리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면서…….

 

 ‘내가 왜 그랬지?’

 로젤리아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자책했다.

 농담 삼아 한 말임이 분명한데다 설사 농담이 아니라고 해도 자신이 신경 쓸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화가 치밀어 올라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이 그렇게 신경 쓰일 수 없었다.

 메이드들이 지운을 향해서 수군거리는 것을 들었을 때부터 왠지 모르게 짜증이 났다.

 지운이 메이드들을 향해 미소 지으며 인사를 하자 몇몇 계집애들이 자지러졌고, 그 모습을 본 후 자신도 모르게 지운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대로 놔두면 뭔가 보기 싫은 장면이 나올 것 같았다.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그렇다. 지운이 메이드들을 잡아먹든 구워먹든 그것은 그가 알아서 할 일이다.

 게다가 로젤리아는 어쩐지 지운이 그런 일(?)을 벌일 것 같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그의 가슴 속에는 ‘에너벨 리’라는 레이디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왠지 그것은 그것대로 신경이 쓰이는 로젤리아였다.

 

 ******

 

 “허리가 너무 뻣뻣합니다. 조금만 힘을 빼세요.”

 “아, 네.”

 “여기서는 허리를 가볍게 쓸어주며 상대방의 몸을 살짝 돌리는 겁니다.”

 “이, 이렇게요?”

 “음! 너무 세게 잡아당기면 굉장한 실례이니 주의하세요.”

 “헉! 시, 실례했습니다.”

 손에 땀이 찬 것에 신경이 쓰여 자신도 모르게 확 잡아당긴 모양이다. 지운은 자신의 품에 안긴 로젤리아의 말에 기겁을 하며 떨어졌다.

 사교춤은 굉장히 배우기 어렵다.

 오랜 기간 동안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는 이상 두 달 배워서 제대로 추기는 상당히 힘들다.

 게다가 이 세계의 사교춤은 굉장히 우아하고 아름다운 동작을 요구하기 때문에 몸치에 뼈마디가 굳다 못해 썩어가는 폐인 지운이 쉽게 배울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이 세계에서 세습귀족이 춤을 못 춘다는 것은 기사가 말을 못 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진짜 귀족이자 교양인이라 함은 글을 읽고 쓸 줄 알고 사교춤도 능숙하게 추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외국의 귀족이건 자국인이건 상관은 없었다. 무조건 출 수 있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프림왕국이 다른 나라 보다 문 보다는 무를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춤을 그다지 잘 못 추어도 크게 흉으로 보지 않았다.

 실지로 프림왕국에서 무도회를 통한 사교춤이 귀족의 한 덕목으로 인식된 것은 10여 년도 되지 않았고, ‘춤 따위는 계집애들이나 추라고 해!’라고 대놓고 외치는 괄괄한 노기사들도 많았기에 대충 모양새만 잡는 것이 지운의 목표였다.

 시와 문학에 조예가 깊은 지운이 사교춤을 못 춘다는 이야기를 로젤리아는 굉장히 놀랍게 받아 드렸다.

 다행히 꼬레아는 남녀가 유별해서 일곱이 넘으면 손도 감히 못 잡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긍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 했다.

 그렇다면 꼬레아의 귀족들은 전혀 춤을 추지 않느냐는 로젤리아의 물음이 이어지자, 한동안 망설이던 지운은 대학시절 어설프게 배운 굿거리 춤을 췄다가 망신만 당할 뻔 했다.

 로젤리아가 지운에게 굉장히 우호적인지라 고개를 갸웃거리며……

 “음. 부드러운 가운데 강렬한 힘이 느껴지는 것이 굉장히 토속적이군요.”

 하고 말았지, 다른 사람 같으면 그냥 ‘괴이하다’ 또는 ‘웃기다’란 말로 정의 내렸을 것이다.

 실제로 지금 옆에서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악사는 지운의 춤을 보고 무엄하게도 얼굴을 붉힌 채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기도 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춤에는 영 익숙지 못 해서 고국에서도 꽤 고생했었지요.”

 로젤리아에게 한 이야기 중 유일한 진실이다. 노래는 남들만큼은 곧 잘했지만 춤은 그야말로 젬병이라 남들 앞에서 추기라도 하면 시각공해 취급까지 받았으니.

 “아니요. 키가 크고 몸매가 호리호리 하시니 자세만 제대로 잡으시면 아주 멋지실 겁니다.”

 로젤리아는 확신한다는 듯 말했다.

 ‘이럴 때는 정말 죄를 짓는 기분이야. 너무 미안하잖아.’

 로젤리아의 칭찬에 지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얼굴만 붉혔다. 정말 죄를 짓는 기분이다.

 ‘에너벨 리’를 읊어 준 이후로 로젤리아는 정말 보기 민망할 정도로 자신을 높게 평가했다.

 마치 어린 제자가 동경하는 선생님을 대하는 느낌이랄까,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해도 이 어린 아가씨는 자신을 옹호해 줄 것 같았다.

 이 영지의 실세에게 점수를 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던 거짓말이었지만, 이럴 때는 정말 양심이란 놈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울려왔다.

 -철없는 소녀를 속여 이용하는 사기꾼 녀석!

 하지만 어찌하랴. 이미 시위는 당겨졌다.

 이제 2막이 오른 사기극을 지금 내린다는 것은, 재수가 좋으면 이곳에서 쫓겨나는 정도로 그칠 것이고 십중팔구는 목이 잘릴 것임을 의미했다.

 ‘그건 안 될 말이지.’

 잘려진 자신의 목을 들고 껄껄 대소하는 헬포드의 모습을 상상하자 목덜미를 타고 땀이 흘러내렸다. 한 발짝만 잘 못 내딛어도 극락에서 지옥으로 떨어진다.

 이미 버린 몸, 기왕지사 끝까지 달려 보기로 한 이상 자기암시라도 걸어야 한다.

 지운은 마음속으로 조용히 되뇌었다.

 ‘자기가 민중을 설득한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할 때, 웅변가는 민중에게 혁명가로 인식되는 것이다.’

 지금 자신의 상황에 끼워 맞추기에는 조금 괴리감이 느껴지는 말이었지만 그 의미는 일맥상통할 것이다.

 지운은 열심히 노력해 보리라 다짐하며 의지를 불태웠다.

 “딴 생각을 하시면 스텝이 망가집니다. 주의하십시오.”

 “어엇! 예에…….”

 물론 그런 불타는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두 다리는 꼬여만 갔다.

 세상에는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 일도 있는 법이다.

 

 ******

 

 헬포드가 지휘하는 돌격대는 영지 유일의 중장보병이다. 비록 구성원은 50여명의 소부대지만, 일단은 전투력과 방어력이 뛰어난 중장보병이라는 사실이 중요했다.

 에인세가 이끄는 수비대는 성 아래의 영지 직속마을 청년으로 구성된 자경단까지 합치면 1백 명이라는 비교적 많은 숫자로 구성되었지만, 전투력 측면에서는 중장보병인 돌격대와 비교할 수는 없었다.

 처음 지운은 중장보병이 돌격대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중세의 중장보병은 기사단의 강력한 돌격(Charging)을 막아 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병과로서, 무거운 중갑과 많은 장비로 인해 굉장히 기동력이 떨어졌다. 게다가 많은 숫자가 밀집되어 있지 않으면 기사단의 돌격을 막는데 큰 효과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런 중장보병이 전투의 최전방에 서는 돌격대라는 것을 지운이 이해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며칠간 돌격대와 함께 체력훈련을 하며 지운은 어째서 그들이 중장보병임에도 불구하고 돌격을 감행 할 수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호버크와 커이프를 착용한 상태에서 모래시계가 두 번 뒤집어 질 때까지, 그러니까 약 30분 정도를 달린다.

 그 후 10분 정도를 쉬고 나서 등에는 방패를 짊어지고 검과 창으로 무장한 후 또 달린다.

 20여 분을 그렇게 더 달린 후, 이번에는 휴식 없이 또 달리는데 이게 가장 지독했다. 바로 전면에 방패를 세우고 창을 꼬나 쥔 채 달리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지운은 입을 딱 벌렸다.

 어림잡아도 20킬로그램은 가뿐히 넘어가는 중무장을 하고 그냥 뛰는 거다. 그것도 유월의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물론 낙오자가 나오기는 했다. 가장 최근 돌격대에 선발된 몇 명의 청년들이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 것이다.

 그러나 동료가 쓰러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맨 처음 한 대원이 쓰러지자 돌격대에 비해 무장상태가 가벼운 지운은 그를 도우려고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운의 행동은 헬포드의 강력히 저지에 가로막혔다.

 “그 새끼는 이제 시체요! 전투 중에 시체 수습하는 것 봤소? 그냥 냅두시오, 지운 경! 이 말대가리새끼! 벌떡 일어나지 못해? 우리 돌격대는 죽어도 일어나야 한다. 일어나 이 새끼야!”

 말도 안 되는 그 말에 ‘시체’가 꿈틀거렸다.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느리게 움직이던 시체는 결국 일어나는데 성공하고 비틀거리며 다시 연병장을 돌았다.

 시간이 흐르며 그런 시체가 몇 명 더 생겼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들이 쓰러지건 말건 신경 쓰지 않았다. 단지 헬포드의 욕설만이 난무할 따름이었다.

 체력훈련을 마친 대원들이 나무 그늘 아래서 희희낙락하며 쉴 때, 그들은 두 눈을 부릅뜬 헬포드의 감시 아래에서 계속 달렸다. 아니, 그냥 비틀대며 걸었다. 그래도 그들은 방패와 창을 놓치지 않았다.

 결국 모레시계가 한 번 더 뒤집어지고서야 시체들의 훈련이 종료 되었다.

 그제야 지운은 왜 그들이 ‘돌격’을 할 수 있는 중장보병인지 이해가 되었다.

 중무장을 한 상태에서 한 시간여를 행군이 아닌 ‘구보’를 하는 것이다.

 그것도 매일.

 “저기, 혹시 훈련 중에 사망하는 병사는 없습니까?”

 “아직까지는 없었소이다.”

 선임병사들은 모두 헬포드가 데려온 용병대 출신이고, 신입이라 할 수 있는 병사들은 수비대와 각 마을 자경단에서 체격이 좋은 병사들을 추려냈다고 했다.

 그러나 지운의 의문은 가시질 않았다.

 이건 체격의 문제가 아니었다.

 몸집이 큰 미군들이 대한민국 육군의 일개 수색대대나 수색중대의 훈련만 보고도 혀를 내두르며 대단하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지 않는가?

 용병출신 병사들이야 원래 이런 훈련을 받아왔다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병사들은 어떻게 이런 훈련을 받고도 무사할 수 있을까?

 의문은 곧 풀어졌다.

 헬포드의 설명에 의하면 자경단이나 수비대에서 추려낸 병사들은 맨 처음 한 달간은 따로 가벼운 훈련만 받으면서 엄청나게 잘 먹인다고 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후부터는 서서히 먹을 것을 줄이며 훈련의 강도를 조금씩 높여간다고 했다.

 식사량을 아주 조금씩 줄이기 때문에 병사들은 양이 주는 것인지 거의 인지하지 못했다.

 조금씩 힘들어지는 훈련에 다소간의 불만이 있었지만 여전히 먹을 것은 잘 나오는데다 ‘봉급’까지 주어졌다.

 먹여주고 재워주는데다 몇 푼 안 되는 돈이긴 하지만 봉급이란 걸 받은 병사들이 불평을 할 리가 없었다. 열심히 훈련에 참가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두어 달이 더 지나면 일반병사들과 똑같은 식사량을 유지하면서도 이정도 훈련을 받게 된다. 한마디로 ‘길들이기’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낙오하는 병사는 왜 나오는 것일까?

 헬포드는 단지 그들이 빠졌기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조금 생각해보니 지운은 그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

 ‘시체’가 나오는 이유는 바로 유월의 햇볕과 그 어떤 조직에서도 두세 달 후에 찾아오는 정신적인 결핍이 그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향수병이었다. 마치 신병 훈련소를 퇴소하고 자대에서 한두 달을 버틴 이등병이 겪는 상황과 비슷한 것이다.

 지운 역시 입대하고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일병을 달기 전 한달 정도 전 시기였다.

 정신과 육체가 군대라는 곳에 막 익숙해질 무렵, 하지만 자유로웠던 생활에 대한 향한 그리움과 향수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던 그 시기가 가장 힘들었다.

 지운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물었다.

 “아까 쓰러진 병사들 말입니다. 며칠 정도 지나면 괜찮아 질 것 같은데. 그럼 그 후에 그냥 내버려 둡니까?”

 헬포드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대부분 적응합디다. 물론 도망가는 놈도 몇 놈 있었긴 했지만 그런 놈들이야 피곤죽이 되도록 패 버리면 어쩔 수 없이 적응하는 거고! 지가 안 하면 어쩔 거야? 크핫핫하!”

 지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병사들을 천천히 길들이며 훈련시키는 것까지야 아주 효과적으로 시행되었지만 그 후에 필히 따라와야 하는 정책이 결여되어있다.

 ‘말 해볼까?’

 지운은 내심 갈등했다.

 자신이 비록 프레드릭 남작과 스웬딕 주교의 신임을 얻고 있는 외국인 귀족으로 인정을 받았지만, 남의 영지의 일까지 감 놔라, 배 놔라 할 위치는 아니었다. 아직까지는 ‘손님’의 입장이었다.

 게다가 성질 급한 헬포드에게 말해 봤자 그리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기에 지운은 말 해주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헬포드는 지운을 자신의 로드인 프레드릭 남작이 인정한 ‘귀족’으로 대할 뿐이지 자신과 동등한 ‘기사’로서 그를 대하지는 않는다. 절대 통하지 않을 것이다.

 훈련이 종료된 후 지운은 헬포드에게 목례를 했다.

 “오늘도 고마웠습니다. 헬포드 경 그럼 내일 또 뵙지요.”

 “으하핫! 뭘 그런 거 가지고! 수고하셨소이다. 내일 봅시다!”

 헬포드는 호탕하게 웃으며 지운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딴에는 친근감의 표시였는지는 몰라도 지운은 묵직한 바위 덩어리가 등을 강타하는 듯한 아픔이 느껴졌다.

 ‘저런 손에 정통으로 맞으면……. 휴! 말 안하길 잘했군.’

 헬포드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거다.

 그가 눈치를 보는 사람은 프레드릭 남작과 로젤리아, 스웬딕 주교뿐이었으니까.

 

 방으로 돌아가며 지운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돌격대의 훈련과 군기를 유지하는 방법은 꽤 훌륭했다. 하지만 강훈련과 군기만으로 유지되는 부대는 결국 그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는 법이다.

 물론 전시에는 엄정한 군기만이 최상의 전투력을 유지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평시에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매를 들면 당근도 주어야 한다.

 중세라는 특성 상, 풍부한 식량과 봉급이 그 당근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미진하다.

 인간은 무엇인가가 꾸준히 지급되면 결국 그게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으로 착각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그것들을 넘어선 다른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봉급을 더 높여준다?

 당장 시행하기도 어려운데다 한계가 있는 방법일 것이다.

 그렇다면…….

 “로렌스에게 말해봐야겠군.”

 지운은 마음을 굳혔다.

 시대도 세상도 다르지만, 그들도 군인이다. 분명히 효과가 있을 것이다.

 

 ******

 

 “흐음.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만?”

 “제 영지에서 평시에 병사들의 사기를 유지하기 위해 실행했던 방법입니다. 물론 맨 처음 제가 주장을 했을 때만 해도 대부분의 가신들이 로렌스 경과 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실행한 후에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흐음…….”

 지운의 이야기에 로렌스의 표정에 호기심이 어렸다.

 지운은 이때다 싶어 빨리 말을 이었다.

 “그전까지 심심찮게 일어나던 병사들의 탈영이 단 한건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이 방법의 효과에 대해서는 제가 보증합니다. 뭐 이 나라의 특성도 있으니 몇 가지 보완책을 추가하여 실행해야겠지만, 근본적인 효과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호오? 정말 탈영하는 자가 한 명도 없었습니까? 그리고 혹시 복귀하지 않은 병사들은 없었습니까?”

 “네. 휴가를 내보냈던 병사 서른 명이 전원 복귀했습니다. 그 이후로 병사들은 더욱 더 훈련에 매진했고 그 어떤 병사도 탈영하지 않았지요.”

 지운이 로렌스에게 건의하는 것은 바로 ‘휴가’였다.

 물론 21세기 군대에서 휴가 중 미복귀하는 병사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지운이 복무했던 부대에서도 미복귀 병사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독이 될 수도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지운은 적어도 여기에서는 미복귀가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확신의 이유는 간단했다.

 대한민국 군대에서 병사들이 휴가가 끝난 후 부대에 복귀하지 않거나 탈영하는 원인은 대부분 사회에 대한 향수와 힘든 군대 생활에 대한 회의감이 가장 큰 이유였다.

 즉, 모병제가 아닌 징병제라는 제도적 특성과, 고도로 발달된 물질사회에서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다 군대라는 경직된 조직에 들어와 적응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회의와 절망 때문에 탈영과 미복귀가 발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의 경우는 달랐다.

 일단 병사들은 자경단이나 수비대 출신이다. 징병이 됐다기보다는 원래 군생활을 하던 중에 차출된 모병의 성격이 강한 병사들이다.

 또한 중세 사회는 현대의 물질 사회와는 크게 달랐다.

 어느 정도 먹고 살만은 했었지만 절대 영지에서 병사들에게 대해주는 정도는 아니었다.

 쉽게 말하자면 병사가 되는 쪽이 고향 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쪽보다 훨씬 나았던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병사들이 이 좋은 자리를 박차고 탈영을 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들의 훈련 받는 장면을 목격한 지운으로서는 탈영을 감행하는 병사들의 심정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게다가 그들의 지휘관은 다름 아닌 헬포드다. 영지에서 가장 무식하고 성질 급한 기사가 바로 그다.

 기사로서의 기본 소양은 갖추고 있지만, 며칠 간 지운이 지켜 본 헬포드는 가르칠 때보다 싸울 때 훨씬 장점을 발휘하는 기사였다. 장비는 될 수 있어도 관운장은 되지 못하는 그런 장수였던 것이다.

 또한 알고 보니 병사를 천천히 길들이는 과정도 바로 로렌스가 만든 방법이었다.

 하긴 그 정도로 효과적인 정책을 로렌스가 아니면 누가 생각하겠느냐만.

 그래서 지운은 이 모든 것을 관장하는 로렌스에게 병사들에게 휴가를 보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건의하기로 결심했다.

 “영지의 젊은 병사들은 무척 가난하게 살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 좋은 병사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 않을 겁니다. 로렌스 경도 그런 생각으로 그들의 대우를 이 정도까지 좋게 해주시는 것 아닙니까?”

 “예. 말씀하신대로 영지민의 생활은 빤하지요. 병사들로서는 우리 영지의 대우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돌격대에서는 몇 명의 탈영병이 생겼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흐음. 확실히 그렇습니다. 게다가 에인세 경이 힘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수비대원들도 최근 기강이 헤이 해졌지요. 저는 단순히 실전부족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로렌스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기에 지운은 그의 말에 수긍하며 말을 이었다.

 “맞습니다. 로렌스 경의 말씀대로 실전이 없으면 긴장이 풀어지죠. 오랜 기간 동안 전투를 경험하지 못하면 군기가 빠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평시에 그것을 오로지 훈련으로만 채우려고 하는 것은 편협하고 위험합니다. 게다가 탈영을 하다 잡힌 병사들은 거의 반병신이 된다고 하더군요.”

 “으음.”

 로렌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탈영병은 붙잡는 즉시 죽도록 두드려 팬 다음 모든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두 다리를 부러트린다.

 본보기를 보이는 측면에서야 나쁘지 않았지만, 확실히 그 방법은 탈영을 완전히 막지도 못했을 뿐더러 괜한 공포감만 조성했기에 병사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불만이 쌓이고 있음을 로렌스는 알고 있었다.

 “공포로 유지되는 부대는 한계가 있습니다. 적절한 훈련과 공포가 부대를 유지하는 근간의 9할이라고 한다면 1할은 따로 있습니다. 저는 그 1할을 채워주지 못 해 부대유지에 실패한 영지를 많이 보아왔습니다.”

 “확실히…….”

 로렌스는 프레드릭 영지에 몸담기 전의 경험을 떠올렸다.

 지운의 말대로 자유기사 시절 잠깐씩 몸담았던 귀족 부대의 사병들도 애초에 영주와 지휘관인 기사에 대한 충성심이 높지 않은데다 군기와 공포로 유지시켰기 때문에 정작 실전에서는 훈련의 성과가 그리 잘 나타나지 않았다.

 “맞는 말씀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휴가를 보내 보십시오. 병사들도 가족이 있는 자들입니다. 성 안에만 가두어 놓고 훈련을 시키면 전투력은 유지될지 몰라도 그 전투력의 근간이 되는 직업의식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단순히 병사일이 고향에서 농사짓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그들이 고향에 가서 그것을 직접 느끼게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게다가 봉급을 쓸 일이 없으니 그것을 모아둔 병사들이 많더군요. 그들이 그 돈을 가족들에게 전하면 어떻겠습니까? 직업의식의 시작이 바로 자신이 번 돈을 가족들에게 전하는 것이지요.”

 “흐음. 휴가라…….”

 로렌스는 고개를 주억였다.

 몇 가지만 보완한다면 확실히 지금보다는 좋은 방법일 듯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돈 들어가는 일도 아니지 않는가?’

 로렌스는 결심을 굳혔다.

 “확실히 그럴 듯합니다. 영주님께 한 번 건의를 드려봐야겠군요.”

 “예, 그리고 고향이 먼 용병출신 병사들에게는 가까운 마을에서라도 며칠간 쉴 수 있게끔 조취를 취해줘야 합니다. 수비대원과는 다르게 돌격대의 병사들은 주일 외에는 마을에 나갈 기회가 거의 없더군요.”

 “알겠습니다. 일단 영주님께 건의를 하고 허락이 떨어지는 즉시 좀 더 연구를 한 다음 시행토록 하겠습니다.”

 

 며칠 후, 프레드릭 남작의 허락을 받은 로렌스는 지운과 함께 영지의 현실이 맞게끔 휴가 제도를 손보았다.

 탈영의 위험을 막기 위해서 병사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자들은 석 달 치 봉급을 미리 지급하여 고향이 멀어서 가지 못하는 용병출신 병사와 함께 자신의 마을로 가게끔 했다.

 헬포드에 대한 충성심이 커서 탈영의 위험이 전혀 없는 용병출신의 병사들을 신병과 보내는 것은, 신병의 탈영도 막았지만 함께 휴가를 다녀오는 동안 좀 더 친해져 신구의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또한 병사의 가족들이 아들과 함께 생활하는 선임병사를 소홀히 대하지 않을 것이 빤하였음으로, 선임병사로서도 자신의 고향에서 받을 환대에는 미치지 않겠지만 사람들과의 정이란 것을 오랜만에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맨 처음 휴가를 간 병사들은 바로 돌격대의 막내 랄프와 돌격대에 가장 오랫동안 몸담았던 피레였다.

 성에서 30마일 떨어진 랄프의 고향마을에 같이 다녀온 피레는, 랄프 가족의 환대를 받고 돌아온 후 휴가의 좋은 점에 대해서 침을 튀기며 역설했다.

 그 후로 모든 병사들이 휴가를 기대하게 되었다.

 휴가를 다녀온 병사들은 모두 얼굴빛이 좋아지며 훈련을 비롯한 매사의 일에 훨씬 더 적극성을 가지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고향에 보내준 프레드릭 남작에 대한 충성심이 더욱 올라갔으며, 고향으로 가는 병사들에게 자신의 봉급을 조금씩 떼어준 지휘관 헬포드와 에인세에게도 고마워했다.

 또한 병사들이 무사히 복귀하자 그제까지만 해도 한줄기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던, 지휘관 헬포드와 에인세가 병사들에게 더욱 큰 믿음을 가지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병사들은 휴가 제도를 처음 생각했던 지운을 단순히 ‘갈 곳 없는 불쌍한 외국인 귀족나리’에서 자신들 같은 평민병사를 생각하는 고마운 귀족으로 여기게 되었으며, 이전까지만 해도 지운의 진면목을 잘 모르던 헬포드와 에인세마저도 지운을 인정하게 되었다.

 

 “으하하! 이거 지운 경 때문에 훈련을 받는 녀석들의 태도가 무진장 달라졌지 뭐요! 처음엔 몇 놈이 빠져서 이 새끼들이 안돌아오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도 했었는데. 으하하하! 이거야 원 그런 생각을 했던 게 다 미안해질 지경이오! 사실 그놈들이 안 돌아 왔으면 내 지운 경의 목을 따 버릴까 하고도 생각했다오. 뭐 이젠 그럴 염려는 없지만! 으핫하!”

 ‘트, 틀림없이 그랬을 거야, 이 인간이라면…….’

 “하, 하하……. 이거 헬포드 경께 잘 못 보일 뻔 했군요.”

 지운은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한줄기 땀을 닦으며 억지로 웃어 보였다.

 “자! 그런 의미에서 내 오늘 체력훈련은 특별히 준비했소이다. 이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야 지운 경이 좀 더 빨리 검술을 익힐 수 있게 몸을 만들어 주는 것 밖에 없지 않겠소?”

 “예? 그…… 말씀은?”

 씨익.

 느낌이 좋지 않다.

 “애들 건의도 있고 해서 오늘부터는 커이프도 제대로 쓰고 토시랑 각반도 차고 훈련하는 게 어떻소이까? 뭐 보름 정도 지났으니 슬슬 강도를 높일 때도 됐고 말이오. 자자 우리 가열 차게 해 봅시다! 내 성의를 봐서라도 말이오.”

 ‘그런 성의 따위는 전혀 고맙지 않단 말이다! 이 악마 같은 양반아!’

 그날, 지운은 결국 혼자 힘으로 방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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