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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판타지/SF
일곱 번째 기사
작가 : 프로즌
작품등록일 : 2016.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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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시작된 연극(7)
작성일 : 16-04-24 20:35     조회 : 696     추천 : 0     분량 : 12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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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5 - 진실의 그림자

 

 

 

 

 

 “그러니까 신학을 가르치는 대학(College)이란 게 있어서 거기서 수학해야지 사제가 될 수 있다는 겁니까?”

 “예. 대학을 졸업해야 말씀을 전파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습니다. 왕법으로 정해 놓았기 때문에 예외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호오……. 그것 참.”

 두 달 동안, 지운은 정말 미친 듯이 영어를 공부했다.

 언어에 관심도 있었고 의외로 꽤 소질이 있어 영어와 일본어를 공부한 적은 있었다. 그렇지만 정말 이렇게 ‘죽도록 열심히’ 언어를 배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스웬딕 주교가 없을 때는 쓰고 외우며 중얼 거리기를 반복했고, 지금처럼 그가 있는 자리에서는 끊임없이 말하고 들으면서 발음과 표현에 대해서 교정을 받았다.

 맹세컨대, 머리털 난 후 이렇게 열심히 무엇인가에 몰두한 적이 없었다.

 얼마나 집중을 했냐면, 자기만 보면 수군수군 대는 하인들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인데, 이곳에 처음 왔을 때는 알 수 없는 언어, 아마 한국말로 잠꼬대를 하던 지운이 어느 때부터인가 그들의 언어로 잠꼬대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지운은 허허 웃고 말았다.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그것도 아직 안심 할 수 없다는 현재 상황이 만들어낸 필사적인 노력이라면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두 달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공부한 지운은, 지금 노력의 대가를 누리고 있었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 수준의 대화가 아닌 이상 지운은 충분히 알아듣고 말 할 수 있었다.

 물론 완전한 것은 아니다. 발음도 어색한 부분이 많았고 모르는 단어도 많았다.

 지운은 대체 언제쯤이면 말이 완벽하게 뚫릴까, 고심하고 노력했다.

 그렇게 고민하던 지운에게 던진 스웬딕 주교의 한마디는 커다란 자신감과 안도를 가져다주었다.

 -그 미묘한 발음과 어색한 표현이 오히려 이국적인 맛을 풍기니 귀족들이 좋아할 거다.

 생각해보니 그럴 듯 했다.

 자신들의 모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외국인도 괜찮지만 살짝 미진한 부분을 보여주는 것은 의외의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완벽한 사람보다는 약간 부족한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완전히 채워진 사람에게서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을지언정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고 싶다는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낼 수는 없다.

 즉, 자신들의 언어에 있어 완벽한 화술을 구사하는 외국인보다는 조금 미진한 모습을 비추는 쪽이 이쪽 귀족들에게는 훨씬 좋은 쪽으로 어필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너무 미진하면 비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일 것이다.

 지운은 자신감을 가지고 천천히 노력하기로 했다.

 어차피 의사소통에 대해서는 이제 별다른 문제가 없으니까.

 “그래, 아무리 믿음이 깊어도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면 사제가 될 수 없나요? 대주교가 인정한 자라고 해도 말입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물론 신학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 가장 우선시 되는 사제의 조건입니다. 하지만 간혹 그분의 기적을 몸소 보여 주는 믿음이 돈독한 성자가 출현하면 대학 졸업의 여부와 관계없이 인정을 합니다.”

 “오오……! 꼬레아에도 기적을 보여주는 성자가 나타난단 말입니까? 알레! 알레, 홀리 레예스!”

 “알레, 레예스.”

 스웬딕 주교의 외침에 지운은 서둘러 같이 성호를 긋고 기도했다.

 지구와 조금 달랐지만 이곳에서도 성호를 긋는 법이 있었다.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모아서 머리를 먼저 짚고 왼쪽 어깨, 오른쪽 어깨를 차례로 짚은 다음 양 손바닥을 모아 기도를 하는 형식이었다.

 머리는 바로 이들의 신 레예스를 뜻했고, 양쪽 어깨는 레예스가 인간들에게 내린 두 대천사 훼리암과 아트람을 기리는 것이라고 했다.

 신을 대신해 인계에 최초에 강림한 대천사 훼리암은 인간의 모습으로 신의 말씀을 설파했고, 이 대륙의 중심에 서 있는 프락세리우 산 정상에 대성당을 지을 것을 명했다.

 그러나 자신을 신의 사자로 인정치 않은 당시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세 군주는 그 명을 거역했다. 아니 콧방귀를 뀌며 무시했다.

 그러자 그로부터 한 달 후, 거대한 황금십자가를 홀로 짊어지고 수천 명의 인파를 이끌고 산 정상까지 오른 훼리암은 십자가를 산 정상에 박은 후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나의 말이 곧 그분의 전언이고 나의 능력이 곧 그분의 은총이로다! 만물은 두 눈으로 그분의 은총을 확인하고 두 귀로는 그분의 전언을 들으라!”

 그러자 십자가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며 그 빛은 그대로 세 방향으로 쏘아져 들어갔고, 그 외침은 프락세리우 산을 휘감고 있던 바람을 타고 세 군주의 성 위에 빛과 함께 도달했다고 한다.

 이에 크게 놀란 군주들이 그제 서야 하늘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기도를 올렸다.

 그 후 50년의 대공사가 시작되었고 그 기간 동안 훼리암의 ‘말씀’은 대륙 전체로 퍼졌다.

 그리고 대성당이 완공되던 날, 훼리암은 자신의 발밑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용서를 비는 세 군주들에게 친히 축복을 내리고 그대로 하늘로 올라갔다고 했다.

 그렇게 훼리암이 신의 품으로 돌아간 후 5백년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프락세리우 성당의 대주교는 훼리암이 산 정상에 박은 거대한 황금십자가 위에서 한 남자가 낮잠을 자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대는 누구요? 어찌하여 우리의 신께서 내리신 성스러운 십자가 위에서 자고 있는 것이오?”

 대주교의 물음에 십자가 위에서 자고 있던 남자가 잠에서 깨더니 하늘을 향해 대소하며 말했다.

 “나는 아트람이라고 한다. 나의 잠이 곧 그분의 안식일진데, 그대는 어찌하여 그분의 안식을 방해하느뇨?”

 그의 말에 크게 놀란 대주교, 최초의 교황이 된 로데온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자, 두 번째 대천사로 기록된 아트람은 그에게 축복을 내리며 이제까지 아무도 보지 못한 자세로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그것이 바로 지운이 그은 최초의 성호였다.

 “그 신학대학이라는 것은 정말 큰 은총이군요. 신의 말씀과 그 뜻을 배우며 명상에 잠기고 많은 사람을 돕기까지 한다니……. 생각해보니 불경스럽게도 그분의 이름을 감히 그 더러운 입에 담고 민생을 현혹하는 사이비 탁발승들을 구분하는데도 좋은 방법이겠군요. 기회가 된다면 저도 한 번 방문하고 싶습니다.”

 ‘방문하고 싶다‘라는 스웬딕 주교의 말에 지운은 뜨끔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짐짓 슬픈 표정으로 대답했다.

 “휴우, 저도 스웬딕 주교님 같이 훌륭하신 분을 꼭 신학대학의 강단에 모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저 드래곤의 산맥을 넘어 배를 타고 몇 달을 항해해야 도착할 수 있으니…… 게다가 그곳까지 가는 항로를 아는 이가 아무도 없기까지 하니……. 후우!”

 힘없는 지운의 대답에 스웬딕 주교의 얼굴에 미안함이 가득해졌다.

 “이런, 이런! 죄송합니다. 저의 과한 욕심이 지운 경께 슬픔을 안겨주는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지운은 여전히 슬퍼 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아닙니다. 어찌 그게 주교님의 탓이겠습니까. 이것도 다 주님께서 저를 어여삐 보아 내리신 시련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오! 그 깊은 믿음에 꼭 그분께서 답하실 겁니다. 꼭 고국으로 돌아가실 수 있을 겁니다. 알레, 레예스.”

 “알레, 레예스.”

 스웬딕 주교와 지운은 다시 한 번 성호를 긋고 기도를 올렸다.

 그렇게 잠시 기도를 올렸던 스웬딕 주교가 고개를 들며 빙그레 웃었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지요. 이거 지운 경과 대화를 나누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말까지 이제 잘 통하니 더욱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어지는군요.”

 “하하! 저도 그렇습니다. 오늘도 감사했습니다, 주교님.”

 “아닙니다. 지운 경처럼 신실한 마음으로 그분의 뜻을 받드는 귀족 분께 말과 글을 가르치는 것은 당연히 이 곳의 주교인 제가 해야 할 일이지요.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예 주교님. 살펴 가십시오.”

 

 ******

 

 스웬딕 주교가 방에서 나가자 지운은 혀를 빼물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흐어! 정말 힘드네. 이것도 못 해먹을 짓이군.”

 말과 글을 가르치며 간혹 자신을 향해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묻는 스웬딕 주교의 질문은 정말 큰 고역이었다.

 비록 지운이 글발과 말발로 먹고 사는 소설가였지만, 그때그때 적당히 양념을 치며 그럴 듯하게 포장해서 대답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것도 주교의 호감을 계속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최대한 친 종교적인 입장에서 설명을 해줘야 했다.

 자칫 실수하면 이교도로 몰릴 수 있으니 지운은 그 어떤 질문에도 소홀히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일례로 자신의 나라에 지저스 크라이스트라는 성자가 출현했다고 말했다가 혹시 그는 그분의 종들을 미혹하는 사기꾼이 아니냐며 그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묻는 주교를 설득하느라 지운은 평생 흘릴 땀을 30분 동안 다 뺐다.

 그 과정에서 지저스 크라이스트의 신분과 그가 행한 수많은 이적도 대폭 축소시켰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신 야훼의 아들이자, 석가모니, 공자와 더불어 3대 성인으로 칭송되는 예수 그리스도는 지운의 나라에서 출현한 가장 위대했던 그냥 ‘성자’가 되었다.

 또한 그의 출현을 중심으로 나눈 신약과 구약도 ‘없던 일’이 되었다.

 성경의 내용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하기도 했지만 자칫 성경의 존재에 대해서 언급하면 분명히 대천사인 아트람이 내렸다는 성전의 말이 나올 것이다.

 이곳의 성전과 지구의 성경이 그 내용이 다를 것은 뻔한 일이고 그렇다면 이제까지 했던 지운의 거짓말도 바로 들통 난다.

 지저스 크라이스트의 교훈은 커서 지운은 그 이후로 굉장히 조심했다.

 찰칵.

 “후우……”

 긴장이 풀린 지운은 담배를 한 대 피웠다.

 최대한 아끼려 노력했으나 벌써 한 보루가 없어졌다.

 하지만 글을 쓰며 하루에 두 갑을 피웠던 지운이 두 달 동안 한 보루로 버틴 것은 정말로 칭찬 받아야 마땅한 일일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애연가인 남작에게 선물한 세 갑을 제외한 일곱 갑만 남은 상태다.

 “하루에 한 개비다. 절대 그 이상은 피우지 말아야지.”

 필터가 타들어 갈 때까지 빡빡 피운 담배를 비벼 끄며 지운은 중얼거렸다.

 이 세계에서도 담배는 존재했다.

 게다가 지구의 역사와는 다르게 이곳은 중세임에도 불구하고 말아서 피우는 궐련이 벌써 보급되어 있었다.

 궐련담배는 이 세계에서 이제 극소수만 살아남은 드워프(주 : 특별한 손재주를 가진 난쟁이 종족)의 기술이 낳은 상품이었기에 대단히 비쌌다.

 그렇기에 당연히 소수의 고위 귀족들만 궐련담배를 피울 수 있었고, 세습작위인 남작의 작위를 가지고는 있었지만 지독시리 가난한 영지의 주인인 프레드릭 남작이 그 비싼 궐련을 마음대로 피울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매년 웨이크필드 후작이 봉후들에게 신년 선물로 내리는 소량의 궐련담배를 손을 벌벌 떨며 피우는 남작의 모습을 본 지운이 이때다 싶어 디스를 한 갑 선물했었다.

 품질상의 문제로 21세기에서는 돈 없는 애연가들만이 선호하는 군 보급 디스지만, 제아무리 드워프의 기술이 뛰어나다고는 해도 그들의 궐련과는 비교를 할 수 없는 부드럽고 순한 맛을 지니고 있다.

 지운에게 받은 디스를 피운 프레드릭 남작은 그 맛에 홀딱 반해서 일주일 만에 한 갑을 다 피우고 미안한 표정으로 지운에게 더 없냐고 넌지시 물어봤고, 지운은 정말 큰 선심을 쓰는 양 선물을 해 준 것이 벌써 세 갑 째였다.

 한 갑 한 갑 건넬 때 마다 남작이 피우는 속도가 조금씩 더 길어지기는 했지만 이 속도라면 1년 안에 두 보루가 다 작살 날듯 싶었다.

 ‘나중에 정식 작위를 인정받을 때 잘 보이려면 후작에게도 몇 갑 선물해야겠고…… 정말 아껴 피워야겠군.’

 골초 지운에게 디스는 가장 중요한 품목이겠지만 담배 몇 갑으로 이 시대의 고위층에게 잘 보일 수 있다면 한 보루라도 바칠 수 있다.

 ‘그나저나 두 달 후랬지?’

 ‘고위층’을 생각하니 문득 지운의 머릿속에 자신의 신분이 결정되는 가장 중요한 행사 일정이 떠올랐다.

 두 달 후, 지운은 꼬레아라는 바다 건너 먼 외국 땅에서 온 고위귀족의 신분으로, 프레드릭 남작가문을 포함한 네 봉신가문을 포괄하는 거대한 지방을 다스리는 웨이크필드 후작을 만나게 되어 있었다.

 물론 후작이 지운을 알고 직접 부를 리는 만무했다.

 영지의 중간결산이라고 할 수 있는 ‘데릭폰 절’을 맞아 후작령에 속해 있는 귀족 가문의 수장과 중요인사들이 후작에게 인사를 하러 갈 때 지운도 프레드릭 남작가문의 손님 자격으로 끼어서 함께 가는 것이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지운은 깜짝 놀랐다.

 자신을 외국의 유서 깊은 백작가문의 장자로 소개하긴 했지만, 후작영지를 방문하여 정식으로 작위를 인정받다니?

 하지만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지운은 외국인이 그 작위를 인정받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조건을 이미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세습작위인 남작 이상의 귀족이 작위 인정을 받을 대상자가 귀족이라는 사실을 왕이나 봉주에게 증언하는 것과 한 교구의 책임자인 주교 급의 사제가 같은 내용을 레예스에게 맹세하는 것, 두 가지 조건이었다.

 프레드릭 남작과 스웬딕 주교, 지운은 지방의 고급인사인 이 두 사람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로젤리아와 에인세의 말을 들은 이후로 프레드릭 남작은 깊은 학식과 뛰어난 능력을 가진 것으로 예상되는 외국의 정치가를 영지로 끌어드리려 결심을 굳혔고, 스웬딕 주교 역시 믿음이 깊은데다 겸손하기 짝이 없는 지운을 마음에 들어 했다.

 그런 두 사람이 지운의 작위 인정에 발 벗고 나서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할 일이었다.

 프레드릭 남작으로서는 외국의 명망 깊은 가문의 귀족이 자신의 영지에 머물며 자신을 돕고 있다는 선전과 함께 지운의 능력을 이용할 꿈에 부풀어 오른 상태다.

 또한, 스웬딕 주교는 그 대로 외국에서 수준 높아 보이는 종교교육을 받은 지운을 오랫동안 만나며 궁핍한 영지에서 헐벗고 굶주린 영지주민들에게 신의 자애를 좀 더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방법으로 실행하기를 원했다.

 그렇게 하려면 반드시 지운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운의 신분은 현재로서는 자신들만 알고 있었다.

 만약 지운이 지금처럼 조용히 방에 틀어박혀 있는 것을 중단하고 프레드릭 남작을 보좌하여 대놓고 영지에서 활동하게 되면 금방 소문이 날 것이다.

 아무리 조심스레 활동을 한다고 해도 그 지운의 정체가 언젠가는 이웃 영지를 거쳐 웨이크필드 후작에게까지 흘러들어 간다는 말이다.

 출신과 계급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후작이 신원불명의 외국인 지운을 그대로 용납할리는 만무한 일.

 당장 후작가로 끌고 와 고문을 한 후, 무슨 이유라도 만들어 목을 칠 것은 불을 보듯 빤했다.

 그러니 프레드릭 남작과 스웬딕 주교, 두 사람으로서는 그런 최악의 상황이 오기 전에 지운의 신원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었다.

 뭐 그때 가서 어떻게 잘 설명을 해도 되겠지만, ‘괘씸죄’라는 게 있다. 이미 진노한 후작이 마음을 풀고 지운을 외국의 귀족으로 인정해줄 리가 없을 터다. 살려두는 것만 해도 고맙게 여겨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곧 다가올 ‘데릭폰 절’에 지운을 후작가로 데려가 작위를 받게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백작가문의 장자인 지운에게 있어 지금 당장 현실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작위가 바로 남작(Baron)이었다.

 세습귀족 중 가장 낮았지만, 일단 남작이라 함은 1차적인 면책의 특권이 있다. 조금 잔인한 말이긴 했지만 이유 없이 평민을 죽여도 국가에서 그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 돈만 있으면 국가나 다른 귀족들로부터 땅을 사서 자신의 영지를 만들 수도 있었다. 물론 외국인 귀족인 지운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이렇듯 남작이라는 작위는 누가 뭐라고 해도 당당한 ‘지배계층’이었다. 오죽하면 영국에서 남작은 모두 지배자를 뜻하는 ‘Lord’라는 말로 불릴 정도였으니까.

 지운이 이런 ‘남작‘으로 인정받으면 비록 외국인이긴 했지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프레드릭 남작가문에 머물 수가 있었다.

 프레드릭 남작과는 서로 공대할 것이고 식객의 신분인 지운이 프레드릭 남작에게 이런 저런 조언과 현실적인 힘, 심지어 돈을 싸준다고 해도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물론 작위가 같아지긴 하지만 영지도 없는 외국인 남작인 지운은 프레드릭 남작과 현실적인 지위 상으로는 반 단계 정도 낮은 대접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영지의 기사들과 많은 가솔들은 절대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될 것은 누가 뭐래도 확실했고, 그것은 곧 지운이 이 세계에서 어느 정도 위치를 확고히 하게 된다는 뜻이었다.

 결국 그것은, 지운이 그토록 오매불망토록 원하던 ‘생존을 보장해 줄 수 있는 확실한 자리’가 생긴다는 뜻이기도 했다.

 “정말 꿈만 같다…….”

 지운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한국의 폐인 글쟁이가 이세계의 남작이 된다니!

 꿈같은 이야기가 현실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꿈에 부풀어 헤벌쭉 웃던 지운의 표정이 급속히 나빠져 갔다.

 “빌어먹을! 뭔 놈의 증명이 그렇게 빡쎈 거야?”

 그랬다. 프레드릭 남작과 스웬딕 주교가 증언한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귀족으로서 의당 가지고 있어야 할 예의범절도 익혀야 했고 최대한 점수를 따기 위해서 사교춤도 배워둬야 했다.

 게다가 지운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좋아지긴 했지만, 데릭폰 절까지 완벽하게 말도 마스터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야 두 달 동안 뼈를 깎는 노력을 한다면 어떻게든지 가능 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지운이 고민할까?

 “무슨 검술시범까지 보여야 하냐고…….”

 프림왕국에서 작위를 수여 받을 때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검술 시범이었다.

 프림왕국은 주변국가에 비해서 학문적으로는 굉장히 낙후 되었지만 기사의 나라라는 별명답게 무예를 굉장히 중시했다.

 세습귀족이라도 작위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검술시범을 보여야 했다.

 그것은 건국왕인 ‘헨리 페어란트 드 프림’이 당대 최고의 기사였고, 나라가 만들어질 때 지대한 공헌을 한 가신들 역시 대부분이 기사 출신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하나의 전통이었다.

 이 나라가 얼마나 무예를 중요하게 여겼냐면, 자신과는 달리 기사로서 자질이 부족했는지 검에 대한 흥미가 없었던 왕세자를 향해, ‘검을 다루지 못하는 자는 왕가의 명예를 더럽히는 밥벌레다!’라고 외쳤던 헨리 1세의 호통이 후대부터는 고착화 된 하나의 격언이 되어 버릴 정도였다.

 물론 건국 후 400년이란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상황이 많이 유연해진 것은 사실이다.

 원래 마상창시합(주 : Joust, 완전무장한 기사 둘이 말을 탄 상태에서 돌격하여 무용을 겨루었던 창술 시합)까지 하는 바람에 재수 없으면 작위도 못 받고 죽을 수도 있었던 것이, 단순한 검술시범으로 바뀐 것으로만 봐도 확실히 많이 편해진 거다.

 다른 국가에서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야만인들의 관습‘이라고 했지만, 이곳은 건국왕의 추상과도 같은 호령을 여전히 기억하는 프림왕국이었다.

 작위를 받는 귀족이 검술시범을 보여야 하는 것은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는 ‘자랑스러운 전통‘이었다.

 ‘검을 쥐어 본적이 있어야 시범을 보이든 말든 하지!’

 학창시절 검도를 배워 보자는 친구들의 말을 거절한 것이 이렇게 후회가 될지 몰랐다.

 칼이라고는 군대에서 군용대검을 가지고 장난 친 것과 자취방에서 요리 할 때 부엌칼을 쥐어 본 게 다인 지운이다.

 그런 그에게 검술 시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은 이제 막 마우스 더블 클릭이 익숙해진 어르신에게 윈도우를 깔아보라는 것과 마찬가지 일인 것이다.

 물론 프레드릭 남작에게 고국에서는 검술 시범 같은 것을 하지 않고도 작위를 받았다고 말해 보긴 했으나 남작은 곤란하다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했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어휴…….”

 지운은 검술 시범 이야기를 듣고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어제 벌어진 일을 떠올렸다.

 

 “지금부터 배우도록 하지요. 시간이 많이 남은 것은 아니지만 두 달 정도면 아마 충분 할 겁니다.”

 로렌스의 말이었다.

 “호오, 그거 좋군. 그래 지운 경 생각은 어떻소?”

 ‘배워 볼 생각이 없냐?’도 아니고 ‘배워 보도록 해라’였다.

 하지만 뭐라고 할 것도 없다. 검술 시범을 보이지 않으면 작위고 나발이고 다 허공에 붕 뜰 테니까.

 “배우겠습니다.”

 지운의 대답에 프레드릭 남작은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좋소이다. 그런데 누가 가르치지? 로렌스 경이 직접 가르치겠소?”

 지운과 남작의 시선이 동시에 로렌스에게 향했다.

 로렌스는 한동안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안될 것 같습니다.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는 하지만 두 달입니다. 두 달 동안 검술을 가르쳐서 시범까지 보이게 하려면 하루 중 반나절은 가르쳐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저는 업무가 많아서요.”

 “흐음, 그것도 그렇군. 그렇다면……?”

 남작의 시선이 천천히 반대쪽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영지에서 가장 강하고 무식한데다 성격까지 급한 헬포드가 헤벌쭉 웃고 있었다.

 “아무래도 헬포드 경이 가장 강하니 좋을 수도 있겠군.”

 주군의 칭찬에 가뜩이나 큰 헬포드의 입이 큼지막하게 벌어졌다.

 “크하하핫! 물론입니다! 제 입으로 말하긴 좀 거시기 하지만, 저야 말로 기사 중의 기사요. 땅위에 존재하는 전사 중 최강이지요! 으핫핫핫! 저에게 지운 경을 맡겨 주신다면 두 달 안에 최고의 기사로 만들어 주겠습니다!”

 콧김을 팍팍 뿜어내며 가슴을 치는 헬포드의 모습을 본 지운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갔다.

 지운은 살고 싶다는 염원을 담은 절실한 눈빛으로 로렌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를 죽일 작정이십니까, 로렌스 경!’

 말은 하지 않았지만 로렌스를 향한 지운의 눈빛은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지운의 구조신호를 어렵지 않게 눈치 챈 로렌스는 지운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프레드릭 남작에게 말했다.

 “헬포드 경이 뛰어난 기사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지운 경이 배우기는 조금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헬포드 경이 사용하는 중검(주 : 크고 무거운 검)과 모닝스타(주 : 뾰족한 대못이 박혀 있는 철퇴)는 지운경이 소화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어 보이니까요. 게다가 헬포드 경은 가르치는 것 보다 직접 싸우는 데 있어 그 능력이 출중한 기사입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요! 나 기사 중의 기사 헬포드는 그 어떤 약골도 나처럼 강하고 멋진 기사로 만들 수 있는…….”

 “조용조용! 흐음,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군.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좋겠소? 에인세 경은 어떨까? 아마도 수비대장일로 바쁠 거 같지만.”

 흥분한 헬포드가 날뛸 기미를 보이자 프레드릭 남작이 그를 제지했다.

 아무리 무식하고 성격 급한 기사 헬포드지만 주군의 제지까지 무시하며 날 뛸 정도로 막되 먹지는 않았기에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저와 헬포드 경을 제외하고 지금 성안에 남아 있는 기사는 에인세 경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말씀대로 에인세 경은 성 수비대장이기도 하니 저와 마찬가지로 짬을 내기가 굉장히 힘들 겁니다. 그래서 생각난 것인데…….”

 지운은 로렌스의 말에 집중했다.

 잘못하면 신병교육대 교육은 저리 가라 할 정도의 가혹한 교육이 그를 기다릴 수도 있다.

 목구멍으로 침이 꿀꺽 넘어갔다.

 “지운 경의 체격이 좋기는 하지만 제대로 검을 배우기 위해서는 기초체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체력을 먼저 기르는 게 선행되어야 하겠지요. 일단 헬포드 경에게 기초체력을 위한 훈련을 받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헬포드 경의 돌격대의 오전 일과는 체력단련이니 함께 훈련을 받는 것도 좋을 것 같군요.”

 “호오, 괜찮은 생각이군.”

 “으핫핫핫핫! 좋은 생각이외다! 크핫핫핫하! 우리 돌격대의 체력훈련을 받으면 지운경도 금방 근육이 붙을 거요, 내 장담하지. 이렇게 말이오!”

 자랑스럽게 고개를 들이미는 울퉁불퉁한 헬포드의 알통을 바라보며 지운은 입을 벌렸다.

 ‘체, 체력단련이라니…….’

 지운의 머릿속으로 유격훈련 때 겪었던 지옥 같은 목봉 들기와 PT체조가 스쳐지나갔다.

 그런 지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로렌스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조만간에 로딕 경이 복귀합니다. 또 알폰소 경이 돌아가신 트리체 라울 데 알폰소 자작의 부음소식을 듣고 떠난 지가 벌써 석 달 째니, 특별한 일이 없다면 곧 복귀 할 겁니다.”

 “흐음! 로딕 경은…….”

 로딕이란 기사를 언급할 때 남작의 표정이 조금 흐려졌다.

 로딕이란 기사는 다름 아닌 지방유지인 가문의 명예를 건 결투를 위해 잠시 영지를 비웠던 것이다.

 “돌아옵니다. 로딕 경의 검을 꺾을 만한 기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내 실언했소. 나의 충직하고 용맹한 기사의 검을 믿지 못하다니. 면목이 없구려.”

 로렌스의 말이 다소 강경하게 들린 것인지 프레드릭 남작은 미안한 표정으로 자신의 기사에게 사과했다.

 “아닙니다. 다 영주님께서 로딕 경을 걱정하시기에 그런 것이지요. 로딕 경도 기뻐할 겁니다.”

 하지만 로렌스는 그 냉정한 눈매를 풀고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프레드릭 남작의 저런 면 때문에 자신이 그를 주군으로 모시지 않는가?

 “지운 경은 로딕 경에게 검을 배우는 것이 좋겠습니다. 지운 경이 로딕 경보다 약간 키가 크기는 하나 전체적인 골격은 비슷합니다. 게다가 로딕 경은 짧긴 하지만 왕립 아카데미에서 검을 가르친 경력도 있으니까요.”

 “하하, 그랬지. 내 로딕 경이 한동안 보이지 않다보니 깜빡 잊었소이다. 그렇다면 일단은 돌격대와 함께 헬포드 경에게 체력단련을 하는 것으로 하고 로딕 경이 오면 그에게 검술을 지도 받는 것으로 하는 게 좋겠소. 응? 지운 경 표정이 좋지 않게 보이는데……?

 프레드릭 남작의 말에 지운은 화들짝 놀라며 저도 모르게 일그러진 표정을 풀었다.

 “아, 아닙니다. 이렇게 신경을 써 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하하하! 신경이랄 것까지야 있겠소? 다 지운 경의 복이지. 내일은 주일이니…… 모레부터 체력단련을 시작하는 것으로 결정 내립시다.”

 “영주님의 뜻대로 하소서.”

 지운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허리를 굽혔다.

 그렇게 결정이 난 것이다.

 

 “휴우……. 어쩔 수 없지 뭐.”

 지운은 바닥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 누웠다.

 체력단련은 내일부터 시작이다. 뭘 어떤 식으로 단련 할지는 모르겠지만 잠이라도 푹 자둬야 할 것 같았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에라,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

 하지만 그 날 밤 이후, 지운은 절대 지금과 같이 편한 모습으로 잠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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