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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판타지/SF
일곱 번째 기사
작가 : 프로즌
작품등록일 : 2016.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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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시작된 연극(2)
작성일 : 16-04-24 20:31     조회 : 543     추천 : 0     분량 : 10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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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굳이 현역시절 군대에서 했던 생존훈련을 떠올리지 않아도 현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식량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지운이 가지고 있는 먹을 것이라고는 컵라면 두 개와 이온음료 하나 그리고 캔 커피 세 개다.

 “부족해. 너무 부족해.”

 어쩌면 식량이라고 부르기에도 미안한 이것들 밖에 없는 현실이 못내 불안해서 이곳이 한국 땅이라고 애써 여겼을 런지도 모른다.

 배고픔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는 군대생활을 하면서 뼈저리게 느꼈으니까.

 하지만…….

 -이곳은 다른 세상이다.

 대전제가 정해지자, 지운의 판단력과 행동은 스스로도 놀랄 만큼 냉철하고 시의적절 하게 이루어졌다.

 그는, 어른이었으니까.

 “아 배고픈데…….”

 깨어난 이후로 캔 커피 밖에 마시지 못 한 지운이었다. 아깝긴 했지만 컵라면을 생으로 씹어 먹으며 지운은 생각했다.

 ‘식물은 위험할까……?’

 지운은 이내 피식 웃었다.

 위험하고 안 위험하고 판단을 내릴 것도 없었다.

 수상한 기운을 잔뜩 내뿜는 키가 큰 나무들은 열매가 있었지만 너무 높아 따기는 불가능한데다, 어쩌다 땅에 떨어진 정체불명의 과실을 발견해도 다 썩어 들어가는 통에 먹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3, 4미터 정도의 관목에 달린 것들?

 어림도 없었다.

 불그죽죽하고 거무스름한 새끼손톱만한 열매는, 먹을 수 있는지 의심이 가는 것은 둘째 치고, 수십 개를 따 먹어도 배가 부를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반쯤 썩어 벌레들이 달라붙은 죽은 나무가 대부분이었다.

 역시 그렇다면 사냥뿐이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가 않았다.

 걸을 동안 가끔씩 울리는 정체불명의 새소리를 생각하자면 과연 내가 저놈을 먹을 수 있을까 아니면 저놈이 나를 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으니까.

 그리고 정작 소리만 들었지 그 새의 모습은 보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토끼나 쥐 같은 작은 동물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그런 동물은 단 한 마리도 볼 수 없었다.

 ‘아냐. 이제까지 길 찾는 데만 신경을 써서 동물의 발자국이나 흔적을 못 찾았을 거야. 사람이 살기엔 힘들어도 이정도 숲이면 분명히 동물은 있다고 봐야지.’

 이 정도 규모의 인간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숲에 작은 초식 동물부터 시작하는 먹이사슬이 형성되지 않을 이유는 확실히 없다.

 ‘아 자, 잠깐…… 먹이사슬이라고?’

 지운은 내심 두려워졌다.

 먹이사슬이라 함은 꼭 작은 동물만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지운이 사냥하려하는 작은 동물이 아닌 반대로 지운이 사냥 당할 수도 있는 큰 육식동물도 있다는 뜻.

 “으음…….”

 지운은 저도 모르게 주위를 슬그머니 둘러 봤다.

 기우였는지 다행히 아무런 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그래도 그대로 가만히 있기도 뭐해서 지운은 장작으로 쓰려고 모아둔 나뭇가지 중에서 쓸 만한 것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쓸 만한 놈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불 피우려고 쓸어 모은 잔가지라 다 거기서 거기였으니까.

 당장 먹을 것을 확보하지는 못해도 오늘 밤의 안전은 반드시 지켜야 했기에 지운은 손전등을 들었다.

 지독한 숲이다.

 해가 떠 있을 때도 어두컴컴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밝은 모닥불 앞에서 생각을 정리하느라 주위가 어두워진지 눈치를 채지 못한 탓이었다.

 손전등을 상하로 30초 정도 강하게 흔들자 세 개의 LED전구에서 밝은 빛이 나왔다.

 “확실히 중국제가 아니라 좋구나.”

 자칭 서바이벌 전문가인 친구가 생일선물로 준 것이라 그런지 성능은 확실한 듯싶었다.

 터져 나온 빛은 7, 8미터는 확실히 비출 만큼 밝았다.

 “오! 있다.”

 손전등으로 여기저기를 비추던 지운은 곧 자신이 원하던 모양의 나무를 찾을 수 있었다.

 성인남성의 팔목 정도 되는 둘레에 1미터 정도 곧게 뻗은 나무를 발견한 지운은 냉큼 그것을 주워들었다.

 “땔감도 모자랄 거 같은데, 좀 더 주워가야지.”

 지운은 손전등을 좀 더 강하게 흔들고 아래를 살폈다.

 일단 불을 붙였으니까 조금 젖은 나무래도 잘 탈 것이기에 지운은 덩굴과 나뭇가지를 열심히 모았다.

 양팔에 한 아름 땔감거리가 채워지자 지운은 입으로 손전등을 물고 불가로 되돌아 왔다.

 “이거야 원 15소년 표류기도 아니고. 아니지, 나이가 있으니 로빈슨 크루소가 더 어울릴라나…….”

 지운은 장작을 던져두고 구해온 길고 단단한 나뭇가지를 주워들었다. 어차피 오늘 밤은 여기서 보내야 하는데 무기로 쓸 만한 것을 만들어둔다 해도 나쁠 건 없다.

 지운은 스위스아미 나이프를 꺼내 나무를 열심히 다듬기 시작했다.

 현역 시절, 말년병장이 되어 부대 뒷산에 도라지를 캔다 칡을 캔다 하며 등산용으로 지팡이를 몇 번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지라 생각한 물건을 만드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나이프가 좀 작은 것이 흠이긴 했지만 이것마저 없었으면 돌멩이로 해야 할 판국이다.

 지운은 툴툴거리는 대신 나이프를 선물해준 창환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하며 열심히 손질을 했다.

 이윽고 지운의 무기가 완성이 되었다.

 기다란 몽둥이 모양이었지만 끝을 바위에 뾰족하게 갈아 비상시엔 찌르기 용으로도 쓸 수 있는 나무 창.

 생각보다 나무가 단단하고 결이 좋아 잘 부러지지도 않게 보였다.

 현역시절 정성을 다해 만들고 니스칠까지 한 박달나무지팡이 보다야 훨씬 못하지만, 이정도면 시골동네를 어슬렁거리는 들개 정도는 상대할 만했다.

 쓸 만한 호신무기까지 만들자 지운은 이내 할일이 없어졌다.

 장작도 충분한 듯 했고, 배는 좀 고프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책이라도 읽을까 하던 지운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이 어떤 상황인데 한가롭게 책을 읽는단 말인가.

 “담배 하나 피고 잠이나 자자.”

 손전등과 스위스아미 나이프를 꺼내기 쉬운 곳에 넣어둔 지운은 길게 기지개를 켜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시계를 보니 밤 9시가 넘었다.

 해떨어지는 시각과 시계가 얼추 맞는 것을 보니 시간을 바꿀 필요는 없어 보였다.

 지운은 슬슬 졸리는 것을 느꼈다. 종일 숲을 헤매고 이제 조금 긴장이 풀어지니 수마가 엄습해 왔다.

 장작을 좀 더 밀어 넣은 지운은 불가에 누워 새우잠을 청했다.

 

 ******

 

 지운은 잠귀가 아주 밝았다.

 금방 잠이 들고 짧은 시간 자도 숙면을 취할 수 있었지만, 잠귀가 밝아 책상위에 놓아둔 핸드폰의 진동에도 눈을 뜨곤 했다.

 그런 지운이 적막한 숲 속에서 울리는 짐승의 살기어린 으르렁거림을 들을 수 없을 리가 만무했다.

 크르르!

 “뭐, 뭐지?”

 거의 반사적으로 눈을 뜬 지운은 오른 손으로는 옆에 놔둔 몽둥이 겸 창을 집어 들고 왼손으로는 손전등을 꺼내며 벌떡 일어났다.

 소리가 들린 쪽은 짙은 음영이 깔린 전방이었다.

 모닥불은 탁탁거리며 거의 꺼져가고 있었다.

 지운은 급히 손전등의 전원을 켰다. 이런 상황에 자가발전을 위해 아래위로 흔들 틈이 없었다.

 소리가 났던 쪽으로 급히 손전등을 비출 때, 지운은 어둠 속에서 붉게 번쩍이다 사라지는 한 쌍의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지운은 침을 꿀꺽 삼켰다.

 손전등을 든 손이 떨려왔지만 지운은 애써 침착하게 움직였다.

 자다 깨어나 원근감이 느껴지지도 않았고 숲 사이사이에 위치한 관목들이며 넝쿨 덕에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히 무언가 위협적인 녀석이 숲 저편에 있었다.

 지운은 나무창으로 불씨가 남아있는 모닥불을 헤저었다. 그리고 한 쪽 발로 마른 풀을 밀어 넣었다.

 짐승이라면 온당 불을 무서워 할 거다.

 생각은 그리 했지만 등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다리는 덜덜 떨렸다.

 손전등이 있지만 주위가 너무 어두웠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발로 밀어 넣은 풀에 금세 불이 붙었다.

 “후우! 후우!”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지운은 시선을 전방에 고정 시킨 채 연신 나뭇가지며 풀을 발로 밀어 넣으며 창으로 헤집었다.

 짐승이 있던 쪽에서는 아직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하지만 다시 나타나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붉은 눈동자는 오히려 움직임이 있는 것 보다 더 큰 위압감을 주었다.

 “침착하자 한지운. 침착해야해.”

 지운은 중얼거리며 오른 손에 쥔 창을 바르게 잡았다.

 창술을 배운 적이 있을 리가 만무한 지운으로서는 때릴 수도 있고 횡으로 찌를 수도 있는 자세가 편했다. 그것은 머리가 시킨 것이 아니라 몸이 반응한 행동이었다.

 손이 축축해지자 지운은 잽싸게 나무창을 옆구리에 끼우고 바지춤에 손을 닦았다.

 그때였다.

 화악!

 붉은 눈동자가 나무를 헤치고 믿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지운을 향해 쏘아져 들어왔다.

 “헉!”

 놀란 지운은 반사적으로 창을 힘껏 휘둘렀다.

 쉬익!

 눈을 감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머릿속에 스쳐갔지만 너무나도 빠르게 다가온, 아니 날아오다시피 한 붉은 눈동자가 주는 공포가 그의 눈을 감게 만들었다.

 퍽!

 하늘이 도왔는지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눈을 감는 순간 소리가 울렸고, 지운은 나무창을 쥔 손에서 나는 느낌보다 그 소리에 놀란 나머지 급히 눈을 떴다. 아니, 떠졌다.

 크허엉!

 창에 한대 얻어맞은 즉시 몇 미터 뒤로 떨어진 짐승이 시야에 들어왔다.

 ‘늑대인가!’

 아니, 늑대는 아니었다.

 늑대라고 하기에는 몸집이 작다. 큰 개정도는 됐지만 확실히 동물원에서 본 늑대보다는 작았다.

 크르르르……!

 개과 특유의 모습을 한 짐승은 지운이 한 번도 보지 못 한 놈이었다.

 위아래로 삐죽 솟은 이빨 사이에서는 침이 고여 있었고 특이하게도 새까만 갈기가 온몸을 가득 뒤덮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힘이 좋을 것 같은 두터운 뒷다리에 비해 앞다리는 상대적으로 약간 빈약했다.

 하지만 놈은 짧은 앞다리를 든 채 붉은 눈동자를 좁히며 그르렁거리고 있었다.

 지운은 생전 처음 보는 짐승의 모습에 놀랍기도 했지만 짐승의 그런 모습에서 문득 캥거루가 연상되기도 했다.

 지구상에 저런 짐승이 있다는 것은 들어 본 적도 없었다. 있다면 동물도감을 다시 써야 할 것이다.

 크르르……. 크어엉!

 짐승은 앞다리를 한 번 할퀴는 듯한 행동을 취하고 지운을 향해 위협적인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순간, 지운은 손전등을 짐승의 머리 쪽으로 향했다.

 크엉!

 강렬한 빛에 놀랐는지 짐승은 튼튼한 뒷다리로 펄쩍 뒤로 뛰었다.

 먼 거리면 몰라도 4, 5미터 거리에서 손전등 빛이 정확하게 안구에 쏘아져 들어오면 누구나 다 순간 눈을 감게 된다.

 낮에도 어두컴컴한 숲에서 평생 살던 짐승이 평생 볼일도 없을 손전등의 빛에 놀라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짐승의 행동에 지운은 조금 침착해질 수가 있었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은 여전했지만, 놈이 처음 달려들었을 때와 비교해 보자면 한층 안정을 찾은 모습이었다.

 “와봐! 이 자식아!”

 지운은 일부러 최대한 카랑카랑 거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짐승과의 싸움은 울음소리로도 승패가 결정 나기도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지운은 크엑! 크엑! 하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짐승을 위협했다. 손전등으로 짐승을 휙휙 비추는 것도 잊지 않았다.

 크르르!

 하지만 지운의 그런 행동이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았는지, 짐승은 여전히 으르렁거리며 지운과의 거리를 조금씩 좁히면서 주위를 맴돌았다.

 짧지만 동시에 헤어진 예전 여자 친구에게 고백을 하고 답을 기다린 시간만큼이나 길게 느껴진 대치가 깨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짐승의 도약력은 정말 놀라워서 3미터나 되는 거리를 단숨에 박차고 지운에게로 뛰어 들었다.

 크허엉!

 “훅!”

 이번에는 눈을 감지 않았다.

 처음 공격당했을 때보다 훨씬 더 안정을 되찾기도 했지만 눈을 감으면 당한다는 생각에 지운은 눈을 부릅뜨며 반사적으로 바르게 쥔 창을 횡으로 찔렀다.

 쉬익!

 허무한 궤적을 그리며 창은 허공을 지나쳤다.

 공격이 실패하자 지운의 왼팔이 반사적으로 얼굴 쪽으로 휘둘러졌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지운은 짐승과 한 몸이 된 채 바닥을 굴렀다.

 운이 좋았던 것일까?

 창이 빗나가자 방어적으로 휘두른 왼팔에 지운의 안면을 노리던 짐승의 머리가 그대로 맞은 것이다.

 그 바람에 허공에서 중심을 잃은 짐승은 그대로 지운의 품안으로 뛰어든 꼴이 되었고, 지운 역시 왼팔을 휘두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몸이 반쯤 뒤틀어져 짐승을 안은 채로 넘어졌다.

 크아앙!

 “크흐!”

 사람과 짐승은 그렇게 바닥으로 동시에 쓰러졌다.

 하지만 짐승의 운동능력을 사람이 따를 수는 없었다.

 바닥에 쓰러짐과 동시에 짐승의 앞발이 거칠게 지운의 가슴을 짓이겨왔다.

 “큭!”

 하지만 거리가 너무 가까웠던 나머지 그 공격은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지운은 한 손으로는 짐승의 목을 움켜쥐고 다른 손으로는 긴 갈기를 뽑아 버릴 듯 잡아당기며 자신의 몸 위에 올라탄 짐승을 떨쳐내려 노력했다.

 크워어엉!

 생털이 뽑히자 분노에 찬 울음소리와 함께 짐승이 펄쩍 뛰며 지운의 품을 벗어났다.

 옆에 떨어져 있던 창을 허겁지겁 쥔 지운이 자세를 잡으며 일어섰다.

 크르르……!

 극도로 화가 난 짐승이 이빨을 드러내며 지운을 압박했다.

 “허억……! 허억……!”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지운은 짐승의 공격에 대비했다.

 놈은 빠르다. 한순간이라도 집중을 잃어버리면 그 때는 이미 늦을 것이다.

 지운은 숨을 고르며 짐승의 동작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화악!

 “헉!”

 영악하게도 짐승은 예비동작도 없이 바로 지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두 번의 공격이 모두 한 동안의 시간을 두었지만 지금의 공격은 아무런 사전 동작 없이 급속하게 이루어졌다.

 거의 동시에 지운의 창이 허공을 갈랐다.

 케엥!

 짐승의 비명소리가 적막한 숲에 울려 퍼졌다.

 창에 뱃가죽이 그대로 꿰뚫린 짐승은 끔찍한 비명소리를 내며 지운의 어깨를 스쳐 뒤쪽으로 떨어졌다.

 “큭!”

 하지만 지운도 무사하지 못했다.

 왼쪽 어깨가 화끈했다. 짐승의 앞다리가 지운의 어깨를 할퀴고 지나간 것이다.

 케엑! 케르륵!

 짐승은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았는지 연신 헐떡거리며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숨이 다했다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왼쪽 어깨가 불에 지져진 듯 고통스러웠지만 지운은 짐승에게 다가가 창을 뽑았다.

 지운이 거칠게 숨을 내쉬며 다가갈 때 짐승은 지운을 향해 날카로운 발톱을 세운 앞다리를 휘둘렀지만 소용없었다.

 퍼억!

 지운이 전투화 발로 머리를 강하게 가격하자 짐승은 더 이상의 반항을 하지 못했다.

 “죽어! 이 개새끼야! 뒈져!”

 지운은 이성을 잃고 짐승을 내리쳤다.

 어깨의 고통도 잊고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창으로 짐승을 밟고 내리쳤다.

 끼엑! 끼에엑!

 괴상한 울음소리와 함께 피가 터졌다.

 지운의 얼굴과 전투복에도 피가 튀었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짐승을 내려치는데 열중할 뿐이었다.

 “이 개새끼! 이 좆만 한 개새끼야! 죽어! 뒈져!”

 퍽! 퍼퍽!

 짐승의 비명소리가 언젠가부터 사라졌다. 숲 속에는 구멍이 뚫린 가죽 북을 내려치는 것 같은 듣기 거북한 소음과 한 인간의 악에 바친 고함만이 울렸다.

 죽어버린 짐승을 정신없이 내려치던 지운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

 지운은 창을 내던졌다.

 “흐으…… 흐윽!”

 잔뜩 열기가 피어오른 뺨 위로 차가운 것이 흘러내렸다. 눈물이었다.

 “젠장……. 이게 뭐야. 씨발…….”

 이제는 짐승인지 그냥 짐승의 모습을 한 고기 덩어리인지도 모를 물체를 보며 지운은 눈물을 닦았다.

 한참을 내려다보던 지운이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흐흣…….”

 여전히 눈물이 흘렀지만 지운은 웃음을 흘렸다.

 기침이 뒤섞인, 웃음이라고 부르기엔 기괴한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흐하학! 쿨룩쿨룩! 키이힛히!”

 눈물 섞인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한참을 그러는 동안 지운은 깨달았다.

 자신은 아직 살아있었다.

 

 ******

 

 피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수건으로 대충 슥 닦은 지운은 팩소주를 꺼냈다.

 “으윽!”

 전투복상의를 벗자 방금 전까지 잊고 있었던 고통이 확하고 느껴졌다.

 티셔츠까지 벗은 지운은 왼쪽어깨를 내려다보았다.

 자전거를 타다 제방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뒤통수가 깨졌던 이후에 이렇게 고통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고통 보다는 무서움에 울었지 이건 너무나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다.

 팩소주의 마개를 딴 지운은 조심스럽게 소주를 부었다.

 “악!”

 차가운 소주가 상처에 스며들자 고통은 두 배가 되었다. 그 바람에 하마터면 팩을 떨어트릴 뻔 했다.

 지운은 이를 악물고 깨끗이 빤 속옷을 꺼내었다.

 서바이벌 전문가는 아니지만 야생동물의 몸에 얼마나 많은 기생충이 우글거리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철저하게 소독을 해줘야 했다.

 소주를 반 정도 붓고 난후 지운은 속옷으로 상처가 난 부위를 깨끗이 닦았다.

 “으윽! 빌어먹을 개놈의 새끼!”

 욕이 절로 튀어나왔다.

 말이야 말로 그 사람의 인격을 가장 잘 나타내는 거울이라고 생각했기에 평소 욕을 자제했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공자님이라도 욕이 나올 것이다.

 다행히 상처는 그리 깊지 않았다.

 살점이 조금 찢겨나가 완전히 낫고 난 후에도 보기 흉한 흉터가 남을 테지만 이만한 게 다행이었다.

 “아야야! 휴우…….”

 지운은 응급처치가 끝나자 바위에 등을 댔다.

 시계를 보니 이제 새벽 다섯 시 정도였다.

 다른 곳이었다면 지금쯤 조금씩 어둠이 슬그머니 밀려 날 때였지만 숲은 전혀 그럴 기운이 보이지 않았다.

 지운은 연신 욕을 중얼거리며 담배를 꺼내어 물었다.

 불을 붙이려 살짝 움직이자 어깨에서 다시 고통이 느껴졌다.

 한동안 모닥불을 바라보던 지운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고기 덩어리로 변한 짐승의 사체로 옮겨갔다.

 어린 시절, 동네 꼬맹이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던 개를 몽둥이로 팬 적도 있고, 군대시절 뱀이나 토끼, 꿩 같은 것들을 잡아서 먹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조금 미진한 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방금 전의 일은 목숨을 건 사투였다. 나무창에 조금만 힘이 덜 실렸으면, 혹시라도 빗나갔으면 자신은 지금 쯤 저기 죽어 나자빠진 짐승의 식사거리가 되었을 런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싹했다.

 한낮 개새끼의 밥이 될 뻔했었다니…….

 새삼스레 소름이 돋는다.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은 지운은 짐승을 향해 퉤-하고 침을 내 뱉었다.

 “개새끼 주제에 사람을 먹으려고 해? 잘 뒈졌다, 이 개새끼야.”

 마지막으로 욕설을 내뱉은 지운은 담배를 비벼 끄고 손전등과 모닥불에서 대충 쑤시개로 적합한 것을 들고 짐승의 사체 쪽으로 다가갔다.

 짐승의 앞에 쭈그려 앉은 지운은 고약한 피비린내가 났지만 개의치 않고 짐승의 몸을 이리저리 뒤집어 보았다.

 어두운 곳에서 공포에 질려 보았을 때는 그리 크게 보이던 놈이 축 늘어진 지금 모습을 보자니 조금 크다 싶은 개와 다를 바 없었다. 피와 살점이 엉겨 붙긴 했지만 갈기도 제법 부드러워 보였다.

 “이런 젠장…….”

 갈기를 뒤적이던 지운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벌레들이 잔뜩 있었다. 가죽을 벗겨야 해야겠지만 역겨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해야지. 젠장!”

 사실 야생동물을 사냥해서 먹을 때는 대단히 신중해야했다. 적당히 껍질을 벗겨 굽기만 한다고 해서 다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마당에서 키우는 개에게도 균이 우글거리는데 한 평생 야생에서 굴러먹은 동물들은 그 수십 배가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에이…….”

 지운의 인상이 더욱 찌푸려졌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먹을 수 있게 만들어야 했다.

 지운은 불가로 짐승을 질질 끌고 갔다.

 남은 나뭇가지와 풀등을 몽땅 모닥불에 집어넣자 불길이 제법 커졌다.

 지운은 주저하지 않고 짐승을 불가로 밀어 넣었다.

 털과 고기가 타는 노릿한 냄새가 났다.

 털이 대충 다 타자 지운은 나무창으로 짐승을 다시 꺼냈다.

 드문드문 그을린 털이 붙어 있을 뿐, 대부분 다 사라졌다. 물론 그 털에서 기생하던 해충들도 다 타버렸을 터다.

 지운은 스위스아미 나이프를 꺼내어 아직 열기가 후끈 느껴지는 짐승의 배를 갈라 장기를 해체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짐승의 몸을 채우고 있던 내용물을 다 비워낼 수 있었다. 냇가였으면 좀 더 확실하게 해결 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이게 최선이다.

 지운은 세면세트에서 면도칼을 꺼내어 짐승을 손질했다. 스위스아미 나이프와 번갈아 사용하니 작업은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게 끝낼 수 있었다.

 지운은 가른 배를 뒤집어 짐승을 다시 모닥불로 밀어 넣었다.

 이름 모를 짐승의 고기는 노릿한 냄새를 풍기면서 서서히 구워졌다.

 

 ******

 

 여전히 어두웠지만 손전등의 빛이 없으면 한치 앞도 분간 못할 정도로 어두웠던 간밤에 비하면 숲은 근처까지 시야가 대충 잡힐 정도로 환해져 있었다.

 지운은 캔 커피를 하나 마신 후 어제 마신 캔도 꺼내서 스위스아미 나이프를 이용해 두 캔의 위쪽을 땄다.

 짐승의 고기는 많지만 어차피 다 가져 가지도 못할뿐더러 이런 습한 숲에서는 금방 썩을 것이기에 지운은 최대한 많이 먹은 후 가장 잘 익은 부분을 잘 도려냈다.

 도려낸 고기들도 꽤 양이 많았다.

 지운은 입구를 딴 커피 캔에 고기를 꽉꽉 눌러 넣었다. 그리고 다시 딴 부분으로 덮었다. 지금으로서 고기를 상하지 않고 보관하기엔 캔 만 한 것이 없었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은 지운은 작은 나뭇가지를 꺾어 껍질을 나이프로 벗긴 후 꼬지를 몇 개 만들어 세면 백에 넣었다. 세면 백에 넣은 것만으로도 하루하고 반나절은 충분할 듯 했다.

 “깜빡할 뻔 했네.”

 지운은 어제 앉았던 바위 근처에 놓아둔 소주 팩을 주워들었다. 아직 반 정도 남았다.

 한 모금을 머금고 가르륵 뱉어낸 지운은 다시 한 모금을 꿀꺽 마셨다. 그리고 나뭇잎으로 팩의 입구를 단단히 봉했다.

 어차피 앞으로 마실 용도는 아니기에 이정도로도 충분 할 듯 했다.

 걷다보면 조금씩 셀지도 몰랐지만 앞으로 두 번 정도만 더 소독을 해주면 된다. 어차피 오늘 내일이면 소주의 용도도 다 끝날 것이다.

 “후우…….”

 짐을 다 꾸린 지운은 빠트린 것이 없나 다시 한 번 점검을 한 후 나침반을 꺼내어 남서쪽을 확인했다.

 나무창을 지팡이 삼아 집어 들자 이제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

 지운은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사투를 벌였던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잠깐 그곳을 바라본 지운은 굳은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거울로 봤다면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만큼 차갑고 단호한 표정을 한 채 걸으며 지운은 생각했다.

 어쩌면 지금부터가 생존의 시작일지도 모른다고…….

 숲은 아직 너무나도 깊고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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