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보니 하얀 천정이 보인다.
깨어보니 무섭게 내려다보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노기충천한 그의 목소리.
“안 되겠어. 한동안 입원 해 있도록 하지.”
“예? 내가 왜 입원을 해요. 그리고 지금이 어느 땐데 입원을…….”
“당신 없어도 병원 안 무너져.”
“그래도…….”
‘내가 그렇게 도움이 안 된다는 거야, 뭐야.’
걱정해주는 모습에 좋다가도 괜히 또 기분이 상한다. 그냥 좀 걱정만 해 주면 어디 덧나나? 꼭 말을 해도 저렇게 사람 기분을 상하게 한다.
“한 명이라도 더 일을 도와야 병원 정상화 시키죠.”
“병원 정상화 시키자고 멀쩡한 사람 환자 만들만큼 무능력한 사람 아니야, 나.”
‘아니, 누가 자기보고 무능력 하다고 했나?’
“제가 아직 도울 수 있다고요.”
고집스럽게 그를 올려다보자 그가 엄하게 눈을 내리깔고 말한다.
“당신 아버지한테 내가 얼마나 미안하게 만들려고 이러지? 이렇게 몸 사리지 않고 병원을 위해 애쓴다고 누가 그 공을 알아주기라도 할 것 같아?”
욱씬.
또 마음이 상한다.
‘처음엔 안 그러더니 이 남자 왜 자꾸 사람을 속상하게 만들지?’
나는 그의 걱정하는 모습보다 그 뒤에 이어진 말이 더 가슴에 와 박히고 있었다. 내가 아무 힘도 되지 못하는 여자라서.
내 힘이 미약해서 태도 안 난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그런 힘은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괜스레 사람을 주눅 들고 작아진다.
“왜 말을 그렇게 해요?”
“내가 뭘…….”
“오랜만에 만나서 말을 왜 그렇게 해요?”
“아니, 난! 몸 아파가면서 일에 치이지 말라고 하는 거잖나.”
“내가 할 수 있다는데 왜 자꾸 무시해요.”
“아니…….무시가 아니라.”
‘당신이 준 것들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나지만 그래도 도울 수 있는데. 어떻게든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선 도울 수가 있는데, 내가 그렇게 하찮아? 어떻게 지금 같은 이때에 너 없어도 병원 굴러가는 덴 아무 지장 없다는 뉘앙스의 말을 할 수가 있어.’
자격지심의 발로였을까? 그의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내게는 그런 식의 말로 들려왔다.
네가 아니라도 널 대체할 사람은 아주 많다. 지금 여기에 없더라도 다른 곳에서 끌어 올 능력이 있다. 그러니 넌 괜한 노력 하지 말고 몸이나 추슬러라.
딱 그런 말처럼 여겨져서 눈물이 왈칵 흘러나올 것 같았다.
“내가 괜찮다고. 내가 할 수 있다는데…….병원에나 입원해 있으라고 하고. 누가 나 부족한 걸 몰라요? 당신보다 부족한건 내가 더 잘 알아. 근데 당신보다 부족한 건 당연한 거잖아. 출발 선상이 다른데. 그래도, 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열심히 하고 싶은 것뿐이라고. 그런데 왜 날 이렇게 밀어내요?”
“그런 의미 아닌 거 알잖아. 아니, 아니다. 내가 미안해.”
“겨우 체한 것 같고 환자 취급 말라고요.”
쓰러지기 전에는 서류더미에 치이도록 만든 그를 원망한 주제에 그가 날 필요로 하지 않는 듯 보이니 이제는 그것에 더 마음이 상한다.
이런 변덕쟁이.
왜 자꾸 이러니.
그가 안쓰러운 듯 가만가만 귓불을 쓰다듬으며 말한다.
“정말 단순히 걱정이 되어서 그러는 거 알잖아.”
“…….”
“병원 정상화 하는 것도 이젠 거의 막바지 단계고, 서류도 그동안 열심히 준비해서 올려 준 덕분에 내 결제만 끝나면 되는 거잖아. 그래서 그랬지. 절대로 무시한다거나 그런 마음으로 말 한 게 아니야.”
‘그런 건가?’
그를 올려다보자 그가 확인사살을 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강하게 손을 꼭 부여잡는다.
“까칠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믿어, 좀! 내가 당신 걱정할 이유 충분하잖아. 응?”
“정말…….거의 막바지라서 그런 거예요? 다른 이유 없이?”
“응. 한동안 계속 바빴잖아. 이제 병원에 자잘한 체계만 다시 잡아놓고 병원 홍보만 제대로 하면 돼. 그 이후의 일들은 직원들이 잘 해 나갈 거고, 회사 일도 이젠 조카가 다 알아서 할 거야. 난 더 이상 할 일도 없고, 할 필요도 없어졌어. 물론 아직 회사 주주들과 악력 싸움이 남아있긴 하지만,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그렇게 큰 무리가 따르지 않아.”
“그럼 난…….”
“앞으로 나와 함께 오랫동안 싸워주려면 아프지 않아야 하니까. 그래서 한 달 정도 미리 쉬어주라는 건데, 내가 너무 무리한 부탁을 하는 건가?”
“필요 없는 게 아니라?”
“절대 아냐. 당신이 나한테 얼마나 많이 필요한 사람인데.”
“주식 없는 온전한 내 능력만으로도 괜찮다고요?”
“물론.”
“그럼 됐고요.”
픽 토라졌다가 그의 말에 또다시 이렇게 안심한다.
“여기서 딱 한 달 동안만 쉬어. 간간이 올라올 테니까. 딴 생각 하지 말고.”
“네.”
“응. 착하다.”
토닥토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