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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무쌍무적
작가 : 채화담
작품등록일 : 2016.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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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무쌍의 여자,
절대무적의 소년을 만들다...!

 
12 화
작성일 : 16-07-25 13:22     조회 : 775     추천 : 0     분량 : 1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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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第5章

  중검쾌도(重劍快刀)

 

 

 1

 

 

 

 아복은 미쳐있지 않았다. 대신, 없었다.

 어둠이 내리며 지붕의 검붉은 철기와와 하늘의 빛깔이 같은 빛으로 섞이고 있는 철검산장은 주종이 모두 떠난 폐가와도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 노인네··· 그 길로 가출해 버렸나?”

 철무적은 조심스럽게 찾아보던 아복의 모습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자 일단 안도했다가 곧 걱정스러워졌다.

 각오했던 아복의 무시무시한 원망과 잔소리를 당장은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일단 한숨 놓은 것이고, 실종은 자기만 됐던 게 아니라는 이상한 위화감을 그 다음에 느꼈던 것이다.

 아복도 그 새벽에 나간 이후로 돌아온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산장의 모든 기물들 상태가 그대로였고 우선 청소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복은 음식솜씨는 형편없어도 청소만큼은 잘했다.

 병약한 소주인의 건강을 위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청결유지라고 생각했는지 하루에도 몇번씩 마치 생사의 결투를 치르듯이 비장한 분위기를 팍팍 풍기며 청소를 해대곤 했다.

 아복의 부재가 확실해지자 여기저기 쌓이고 날리는 먼지가 철무적의 눈에 들어왔다.

 아복이 없었다 해도 불과 사흘일텐데 그 동안에 이렇게 집이 폐가처럼 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이 꼴을 뻔히 짐작할 아복이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 불길한 예감을 가져왔다.

 철무적은 예감을 억누르고 다른 가능성을 찾아보았다.

 오자마자 내가 없어진 걸 알고 정신없이 찾아다니고 있는 걸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잠깐씩 돌아와 그가 와있는지 확인만 하고 다시 찾아나서곤 했을 수도. 사람이 실종됐으니 청소 따위를 할 정신도 없을 것이며···

 철무적은 일단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집안을 둘러보다가 팔을 걷어부치고 청소를 시작했다.

 아복이 돌아와서 보면 더 펄펄 뛸 게 뻔했지만 그 동안 자신의 실종으로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갔을 노인네를 생각하니 뭐라도 하나 해주고 싶어진 것이다.

 청소는 근 두 시진이 걸렸다.

 산장으로 돌아왔을 때가 이미 어두워진 유시(酉時) 무렵이어서 나름대로 열심히 한 청소를 마치고 우물가에서 땀을 씻고나니 바람에 휩쓸리는 앙상한 호정수(護井樹) 가지 사이로 한 줄기 유성(流星)이 흐르고 있었다.

 땀이 식어 한기가 느껴지길래 운기를 해보았다.

 한 순간도 포기한 적은 없었지만 언제 다시 할 수 있을지 막연하기만 하던 것.

 비록 역행일망정 진기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오래 전에 잃어버렸던 귀중한 보물을 다시 손에 쥔 것 같은 가슴 벅찬 느낌도 있었다.

 행공(行功)은 거칠었다.

 일반적인 내공심법과 달리 도도하고 무겁게, 몸을 띄워 무존재(無存在)로 가는 것이 아니라 깊게 가라앉혀 존재감을 더욱 무겁게 하는 것이 본연의 철심공이 가진 특징.

 그러나 역행의 철심공은 이도저도 아닌 독특한 것이 됐다.

 오로지 투력(鬪力)을 끌어올려 누구든 건드리기만 해라 하는 것 같은 맹렬한 전의(戰意)를 전신에 불끈거리게 하는 것이다.

 일단 움직이기 시작한 진기는 뚝이 터진 격류와 같이 치달렸고, 그 경로는 운공자의 의지가 아니라 진기 자체의 의지에 의해서 결정되어 단전(丹田)에서 관원(關元)으로 출발하여 해저(海底)로 이르는 임맥(任脈)과 해저에서 척수(脊髓)를 거쳐 백회(百會)를 돌아오는 독맥(督脈)의 의미를 완전히 뒤바꾸어 버리는 역주천(逆周天)을 만들어내고, 올라오려는 화기(火氣)를 내리고 내려가려는 수기(水氣)를 올리는 수승화강(水昇火降)의 일반적 이치가 아니라 올라오려는 화기를 더욱 올리고 내려가려는 수기를 더욱 내리는 화승수강(火昇水降)의 난폭한 이치를 구현했다.

 그것은 또한 안정(安定)이 아니라 격정(激情)을 만들어냈으나, 외부의 자극이 없는 한 자기(自己) 안에서만 그 격정이 도는, 일렁이는 제어막 같은 것도 함께 형성해냈다.

 

 이 거칠고 공격적인 격정 속에서 이성을 잃지 않는 자신이 철무적은 신기했다.

 몸이 곧 터져버릴 것 같고 정신이 곧 미쳐버릴 것 같은데, 주된 의식 한복판은 제대로 생각이란 것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자신과 외부를 다 보고 있기까지 했다.

 그 신기한 여자의 작품···이라는 생각도 할 수 있었고, 인체의 혈(穴)과 맥(脈)은 참으로 다양하고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는 것이어서 찾아보면 반드시 어딘가에 길이 있다던 여자의 말도 생각났다.

  그 신기한 여자에 대해 신기함을 넘어 경의까지 일어났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것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일까.

 그러다 철무적은 다른 생각 하나를 해냈다.

 

 --철검십이식은 어쩌면 이 진기(眞氣)에서 더 위력적일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그를 지배하고 있는 곧 폭발할듯 거칠고 공격적인 기운 때문일 것이다.

 지금 상태에서 철검십이식의 기세를 더욱 강력하게 발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이 일자 충동적으로 주먹이 쥐어졌다.

 쥐어지는 주먹과 함께 기억에 남아있는 권식(拳式)들이 떠올랐다. 첫번째로 철정천심(鐵情穿心)!

 신주철가의 공부는 철심공과 철검십이식, 단 두 종이 있는 걸로 천하에 유명했다.

 하지만 외인이 보기에 기세 외엔 단조롭기 짝이 없어 보이는 철검십이식도 깊게 들어가면 수없이 파생되는 변화가 있었고, 그 중에서 몇 가지는 권식(拳式)과 장법(掌法)으로도 구현이 가능했다.

 그것들을 <철정구권(鐵情九拳)>, <삼재삼철장(三才三鐵掌)>이라 했다.

 지금 철무적이 내지르는 것은, 아니 내지르려 하는 것은 그 철정구권 중의 제일식(第一式).

 그러나 그것은 철정천심이 아니라 철정후격(鐵情後擊)이라 할만한 게 돼버렸다.

 당연했다.

 역행운기, 이름하여 무적역건곤이 만들어내는 작품!

 앞이 아니라 뒤로 주먹을 내지르는 철무적의 팔뚝 관절과 어깨 관절에서 무리하게 꺾이는 우두둑! 소리가 났고 철무적은 여지없이 신음을 토해냈다.

 “으윽!”

 그 충격으로 텅!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기까지 했다.

 그로선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역행에 대해선 충분히 얘기를 들었고 그 파생효과를 두어번 어이없이 경험하긴 했지만 아직은 제대로 실감이 나지 않는 상태였다.

 생각과 반대로 움직인다는 것이 어떻게 당장 실감이 나고 단기간에 익숙해지겠는가?

 “흐허허···”

 고통으로 일그러졌어야 할 철무적의 얼굴에서 멍청한 웃음이 일어났다.

 통증이 있는 오른쪽 어깨를 주무르려던 왼쪽 손이 반대쪽 허공을 주무르고 있는 것을 보고 난 뒤였다.

 할 수 없이 운기를 푼 뒤에야 왼손은 제대로 동작해서 오른쪽 어깨를 주물렀고, 다행히 관절이 그리 심하게 상한 상태는 아니어서 몇번 관절을 움직여본 후에 철무적은 일어섰다.

 그리고 누군가를 노려보듯이 어두운 허공을 잠시 노려보고 있다가, 고집이 담긴 목소리로 불쑥 중얼거렸다.

 “우선··· 실감이 나게 하는 게 급선무겠다··· 생각만으론 안되고 몸이 기억하게 만들어야겠지?”

 그의 계획은 간단했다.

 정상적으로 하면 안된다는 것을 몸이 깨닫게 한다는 것이다.

 그 방법은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 오류를 반복한다는 무식한, 그러나 무식하기 때문에 더욱 효과적일 수 있는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약 반 시진 후, 철무적은 전신의 관절이 따로따로 노는 연체동물과 같은 형상의 녹초가 되어 널브러졌다.

 철정구권의 구식십팔초(九式十八招)를 삼회, 삼재삼철장의 육초삼식(六招三式)을 이회 시전한 후였다.

 보통 그 정도 무리한 역관절을 반복했을 경우 관절이 절단이 나도 수십 번이 났어야 정상일테지만, 세상의 이치는 항상 정(正)과 반(反)이 있는 법이어서 문제의 역행진기가 어느 정도의 역관절은 가능하게 해주는 일종의 완충작용을 해주고 있었다는 것이 일면 다행, 그 덕분에 진작 쓰러질 걸 녹초가 된 다음에 널브러지게 했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리 고맙지 않은 일 쪽에 속했다.

 철무적은 근 반각(半刻) 동안이나 드러누워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은 통증과 싸운 후에야 일어났다.

 일어나는 그의 얼굴은 내친 김이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물 앞 마당을 떠난 철무적이 도달한 곳은 병고(兵庫)였다.

 병고라고 해봐야 철검산장의 병고는 오로지 철검들만 있는 병고다.

 십여평 정도로 그리 넓지 않은 사방 벽을 둘러 크기와 형태가 각기 다른 수십 자루의 철검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크기나 형태가 다르다고 해도 별반 큰 차이는 없었고 무게도 모두 비슷해 보였다.

 신주철가의 철검을 철검이라고 하는 것은 장식이라곤 없는 그 투박한 모양과 거무튀튀한 색깔, 그리고 보통의 검보다도 몇 배나 무거운 그 무게에 있다.

 그 때문에 달리 중검(重劍)이라고도 하는데, 한때 신주철검과 쌍벽의 명성을 날리던 유주(幽州) 쾌의당(快意堂)의 반도(半刀)와 함께 묶여 <중검쾌도(重劍快刀)>라 불리운 적도 있었다.

 철무적은 병고의 가장 안쪽에 놓여있는 한 자루를 집어들었다.

 춘추전국시대의 고검(古劍)을 연상케 하는 넓고 두터운 검신(劍身)과 둥그런 강철 손잡이에 고리 하나만 달린 형태였다.

 검갑은 없었고, 검신에 쌓인 먼지 사이로 ‘無敵’이라 새겨진 글씨가 희미하게 보였다.

 검을 들어 살펴보는 철무적의 얼굴에 소년답지 않은 감회가 어렸다.

 그의 검인 것이다.

 여덟 살 무렵에 손에서 놓고 칠년만에 다시 손을 잡아보는 친구였다.

 잘 있었어?

 혼자 외로웠겠다.

 철무적은 몹시 미안한 일을 한 친구를 보듯이 한참이나 검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소매자락으로 정성스럽게 검신의 먼지를 닦기 시작했다.

 흑갈색의 윤기가 흐르는 검신이 제 모습을 찾아가고, 새겨져 있는 ‘無敵’의 글씨가 선명해졌다.

 철무적은 손잡이까지 정성껏 닦은 후에 다시 겨누듯이 자세를 갖추어 검을 들었다.

 그러다 중얼거렸다.

 “그런데 무겁다. 널 다루려면 근력부터 키워야겠어.”

 신주철가는 소년용이나 연습용이라는 게 없이 입문(入門) 당시부터 제 무게의 정검(正劍)을 쓰게 한다.

 철가의 후예들은 대부분 강한 완력과 근골을 혈통으로 타고나서 웬만큼 어린 시절부터 그것이 가능했고, 철무적은 역대 후예들 중에서도 특히 힘이 강했다.

 소위 천생신력(天生神力)이라는 것을 타고났다고 그의 아버지가 세가(世家)의 친구들에게 장담한 바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봐야 여덟 살 시절인데 그때보다 지금이 더 검을 무겁게 느낀다는 것은 그 동안 운동이 전무했던 탓일 것이다.

 무공은 내공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내공을 펼칠 외공(外功)도 못지않게 중요하고 내공을 담을 그릇, 즉 강건하고 질긴 신체도 필수가 된다.

 어쩔 수 없잖아. 지금부터라도 따라잡아야지.

 철무적은 검의 무게를 못이겨 부들부들 떨리는 팔을 한심하게 쳐다보다가 검을 향해 미안하게 웃었다.

 이어 심호흡을 하면서 검을 내리고, 저린 팔뚝을 주무르며 몸을 돌렸다.

 

 철검십이식은 철검개산(鐵劍開山) 철검망월(鐵劍望月) 철검기혜(鐵劍起兮)의 전삼식(前三式)과 철검대연(鐵劍大衍) 철검천파(鐵劍踐波) 철검광도(鐵劍狂濤) 철검화망(鐵劍化網) 철검인혼(鐵劍引魂) 철검진천(鐵劍震天)의 중육식(中六式), 그리고 오시(傲視) 구패(求敗) 귀토(歸土)라는 간단한 명칭의 후삼식(後三式)이 있었다.

 가조(家祖) 철검무적 철개산 시절엔 거기에 최후일식(最後一式)이 더 있어 철검십삼식이라 했다는 얘기가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그가 사용하던 철검십이식이 후손들의 그것과는 천양지차로 달라서 혹시 일식(一式)이 더 있었던 게 아닐까 라는 억측을 누군가 했고, 그것이 퍼져 소문이 되었다는 분석이 더 신빙성이 있었다.

 우선 철가에 전해지는 철검십이식에 전혀 그런 징후가 없는 것이다.

 몇 식(式), 혹은 몇 초(招)의 검법이라는 것은 그 초수 자체로 완성의 의미를 지닌다.

 급조된 검법이나 세간의 전시용 검법 따위라면 몰라도 오랜 세월 전통을 가지고 내려온 명문의 검법은 위력 여하에 상관없이 그 자체가 이미 완성된 작품인 것이다.

 거기에 하나를 더해봐야 사족(蛇足)이 될 뿐이고 격(格)을 떨어뜨릴 뿐이며, 완성된 명가의 그림에 괜한 붓질 하나를 해놓은 것과 같다.

 또한 도합 십이식이라면 제일식의 시작에서 제십이식의 종결까지 면면히 이어지는 흐름이라는 것이 있다.

 각기 일식씩 따로 사용할 수도 있고 순서에 관계없이 섞어서 사용하는 조합도 가능하지만, 전체적으론 큰 흐름이 있고 마지막 십이식은 그 흐름을 종결짓는 의미를 가진다.

 철검십이식의 최종식 <귀토(歸土)>는 분명히 검식의 흐름을 종결짓고 있었다.

 철검무적 철개산 이후 삼백년을 내려온 철가의 후예들이 필사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해 왔지만 그것이 <종결>이 아니라는 어떤 징후도 발견하지 못했다.

 귀토는 완벽한 종결이었다.

 철검무적 철개산에겐 검식이 하나 더 있었던 게 아니라 검식의 위력을 극대화시키는 초인의 능력이 있었을 뿐이라는 결론이 내려질 수 밖에 없었다.

 그 결론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 철무적의 아버지 철정행(鐵正行)이다.

 그가 어디에서 십삼식(十三式)의 징후를 발견했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단지 염원이나 희망에 불과했을지 모르지만 철정행은 십삼식의 존재를 절대적으로 믿었다.

 장남의 이름을 자식이 많은 집안의 열세번째 아이에게나 붙여주는 <십삼(十三)>으로 지어줄 정도였다.

 차남의 이름엔 가조의 별호를 과감히 떼어다 붙였다.

 그래서 철무적의 형은 철십삼(鐵十三)이 되었고, 철무적은 철무적이 되었다.

 철무적은 아버지의 그 믿음과 염원을 잘 알고 있었다.

 언젠가 아버지가 먼산을 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모용무쌍을 한 번 만나봤으면 좋겠다···

 

 그때 아버지의 얼굴은 아주 드물게 절망에 잠겨 있었다.

 도저히 뚫을 수 없는 절벽 앞에서 막연한 도움의 손길 하나를 떠올린 것이다.

 모용무쌍이라면 철검십삼식의 의미를 이해할지 모른다, 최후일식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였지만 그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모용무쌍이 아무리 강하고 아무리 위대해도 모용무쌍은 철무쌍이 아닌 것이다. 철가 성을 가지지 않은 것이다.

 그 말을 들으며 철무적은 나는 장가를 가서 아이를 낳으면 이름을 철무쌍으로 지어줘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어린 마음에 철무적보다는 좀더 멋있게 느껴졌던 것이다.

 물론 그때는 <모용무쌍>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의미가 얼마나 막대한지를 모르던 때였다.

 그 후 모용무쌍의 의미를 조금씩 알게 되고 아버지의 집념과 염원이 이어지면서 철무적도 소년의 꿈을 가슴에 품었다.

 

 --아버지가 못하면, 또 형이 못하면, 언젠간 내가 철검십삼식으로 모용무쌍을 이겨보겠다.

 

 너무나도 빨리 겨우 여덟살 무렵에 쓰러져 보류되었던 그 꿈을 이제 다시 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병고 앞 마당에서 철검을 내려뜨리고 선 철무적의 가슴에 뭉클거리는 것이 바로 그런 희망. 철무적은 느릿느릿 검을 들어올렸다.

 흑갈색 윤기가 흐르는 검신에서 미세한 진기의 흐름이 보였다.

 이미 운기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생각은 검을 앞으로 들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뒤로 들어올리고 있는 상태였다.

 뒤로 들어올린다는 생각과 동작을 하자 과연 앞으로 들어올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 상태에서 철무적은 진지하게 중얼거렸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천천히 검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검십이식의 기수식(起手式)을 겸하는 제일식 철검개산이 느릿느릿 펼쳐져 갔다.

 물론 철무적 자신은 철검개산의 움직임을 반대로 진행시키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모든 것이 반대로 된다면 반대로 움직이면 될 거 아니냐 라는 생각이었고, 그는 생각이 들면 반드시 실험을 해보는 성질을 가졌다.

 그것도 되든 안되든 해보는 게 아니라 될 때까지 해보는 성질이었다.

 그러나 이번 일은 그렇게 안됐다.

 도저히 될 때까지 해볼 수 없었다.

 처음 조심스럽게 느릿느릿 펼쳐갈 때는 그럭저럭 되는 것 같았다.

 거기에 속도가 조금 더해지면서 엉망이 되기 시작하다가, 동작이 어려워지면서 엉망진창이 되고, 마침내 오히려 자기 목을 쳐오는 검에 기겁했다가, 그 순간에 거의 기적적으로 ‘그래! 잘한다! 내 목을 날려라!’ 라는 사즉생(死卽生)의 역념(逆念)을 뿜을 수 있어서 간신히 살아난 다음에, 온몸이 식은땀에 흠뻑 젖어버렸다.

 물론 그렇다고 그 한 번으로 포기한 건 아니어서 가히 생사(生死)의 곡예를 하는 사투를, 누가 보면 웃어야 될지 울어야 될지 모르는 위험무쌍 처절무비한 광경으로 근 한 시진여에 걸쳐 계속하긴 했다.

 그 결과는 방금 물에 빤 걸레짝이 된 것 같은 옷, 전신에 무수히 입은 자상(刺傷)과 찰과상, 심장까지 토해질 듯한 거친 숨, 그리고 완전히 탈진해서 땅바닥에 큰 대자로 누워버린 자세로 나타났다.

 안되는 것이다.

 아무리 고집을 부리고 노력을 해도 세상엔 되는 게 있고 안되는 게 있는 것이다.

 “철검십이식이 아니라 자살십이식이다···”

 어느 정도 숨이 가라앉은 다음에 공포를 담아 흘려낸 중얼거림이었다.

 어쩌면 수십년 이상 노력을 하면 모든 걸 반대로 생각하고 반대로 움직일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고 자유자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철무적에겐 우선 그만한 시간이 없었다.

 무적역건곤이라는 역행진기가 이만큼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주고 어느 정도 생명도 연장시키고 있는 것 같긴 했다.

 하지만 근본의 병인(病因)을 치유하지 않는 한 철무적에게 그리 많은 시간은 없었다.

 철무적은 자신이 그리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운기는 되지만 그 진기는 사용할 수도 없고 그러니 검도 사용할 수가 없다.

 언젠가는···이라는 꿈을 품은 신주철검의 후예로서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 것이다.

 무적역건곤이라고?

 철무적은 피식 웃어버렸다.

 한 동안 맥풀린 얼굴로 누워있던 끝이었다.

 무용역건곤(無用逆乾坤)이 더 올바른 이름이겠다.

 아무 소용없는···

 화는 나지 않았다.

 화를 내는 건 어떻든 애써 만들어준 사람에게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땀이 식어가는 몸에 선뜩한 땅의 한기가 스며들어왔다.

 새벽이 가까워오며 더욱 깊어진 밤하늘에선 볓빛이 쏟아졌다.

 철무적은 불쑥 투덜거렸다.

 “쳇··· 그리고 또 말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건 뭐냐고···”

 무적역건곤인지 아무 쓸모없는 역건곤인지를 만들어준 장본인이 생각난 것이다.

 아복이 걱정돼서 정신없이 걷다보니 여자가 없었다.

 홀연히 나타나고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 특기인 여자는 한번 더 그 특기를 발휘해서 홀연히 사라지고 없었다.

 그 특기는 머지않아 또 발휘될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목소리든 사람이든 불쑥 들려오고 나타나겠지.

 철무적은 그래서 여자가 사라지고 나타나는 것에 더 이상 놀라지 않기로 해버렸었다.

 그래도 지금은 생각이 났다.

 조금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럴 때 불쑥 나타나 “왜 그러고 있니? 뭐가 문제야?” 라고 말해주면 줗을 것 같았다.

 하지만 철무적은 이내 생각을 지웠다.

 모용무쌍이 철무쌍이 아닌 것처럼 그 여자 막심용도 철심용이 아닌 것이다.

 스스로의 문제는 스스로 풀어가야 하는 것이다.

 어쨌든 덕분에 충분히 활력있게 움직일 수 있고 얼마간의 생명을 더 얻었다.

 이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내가 움직여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거다.

 철무적은 잠시 더 누운 채로 등으로 스미는 한기를 견뎠다.

 별빛은 더욱 낮게 낮게 쏟아졌다.

 

 아복은 돌아오지 않았다.

 

  * * *

 

 아침이 돼도 아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제 철무적이 아복을 찾을 차례였다.

 

 산장을 떠나는 건 근 오년만이었다.

 그 전엔 외출도 간혹 했으나 오래 걷기가 어려워지면서부터는 산장을 떠난 적이 없었다.

 동관(憧關)으로 가서 아복이 단골로 다니던 잡화전이나 시전(市廛)에서부터 탐문해볼 계획이었다.

 기억을 더듬으면 단골 몇 집은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장문(莊門)을 나서고 몇 걸음 걷다가 철무적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산장을 돌아보았다.

 가을아침의 투명한 햇살을 받는 검붉은 철기와 지붕들이 어제와 다른 윤기를 뿜고 있었다.

 마치 인사를 해주는 느낌···

 철무적은 지금 산장을 떠나면 아주 오래도록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이상한 예감을 느꼈다.

 철무적은 들고 있던 철검 <무적>을 힘주어 쥐었다.

 쓰지도 못할 물건이라 잠깐 망설이다 들고 나온 검이지만 강철의 차갑고 단단한 감촉에서 준 만큼의 힘이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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