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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로맨스
블랙 스완
작가 : 최극
작품등록일 : 201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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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얼음같이 차갑고, 때론 불같이 뜨거워지는 인간 양면의 극단을 오가는 준혁. 불과 12세에 천애고아가 된 그는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의 집에서 구박덩이로 자란다. 준혁은 부모의 죽음에 음모가 도사리고 있음을 알게된다. 그리고 원수들의 가족에게 잔혹한 복수를 시작한다. 제주호텔의 말단 메이드인 매려적인 여자 수완. 재기발랄하고 통통튀는 장난꾸러기 그녀지만 마음속에는 오직 준혁뿐! 준혁을 향한 수완의 사랑은 빛이요 구원이 된다.

 
[4화] 스노우 볼
작성일 : 17-06-11 01:36     조회 : 562     추천 : 1     분량 : 8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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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혁이 저 놈이 빅토르의 양아들!!’

 

 오회택의 얼굴에 낭패와 당혹감이 스쳤다.

 10년 전 기막힌 타이밍에 제주도를 탈출했던 준혁!

 

 오회택은 준혁이 수완에게 보낸 엽서를 빼앗아 준혁의 근거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부산 부둣가에서 하역 날품팔이를 하는 준혁을 발견했다.

 회택은 자신과 거래하던 빅토르의 하수인인 강실장에게 준혁을 죽여달라는 청부살인을 의뢰했다.

 그들이 준혁을 기습했다.그런데 제법 주먹이 굵어진 준혁의 반격이 만만치 않았다.

 다행히 그 와중에 부둣가에서 격렬한 싸움을 벌이던 중, 준혁이 바닷가로 추락했다.

 

 1월 한 겨울 눈바람이 몰아치던 바다속으로 떨어진 준혁은 영영 떠오르지 않았다.

 회택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수영을 못하는 준혁이 죽었을 거라고 확신했다.

 마침내 지난 10년 동안 준혁의 아버지가 구축한 호텔체인사업을 하나씩 둘씩 완성하고 그리고 이제 오회장의 왕국을 건설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오회장의 손에 들어오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죽었던 그놈 강준혁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사업을 지지해주는 가장 큰 자본가 빅토르의 양아들로서!

 

 

 “오호! 안드레이- 왈츠구나. 아들아, 어서 가서 네 실력발휘를 해봐.”

 

 

 왈츠음악이 연주되기 시작하자, 빅토르가 준혁의 등을 밀어주며 러시아어로 말했다.

 

 준혁은 빅토르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내빈객을 여유있게 둘러본다.

 그러자 내빈으로 참석한 임원들의 딸들이 준혁을 향해 선망의 시선을 던진다.

 깔끔한 가지색 슈트에 훤칠한 키, 강렬한 눈빛, 야성미와 세련미를 동시에 겸비한 역설적인 마력을 풍기는 준혁에게 너도 나도 간택이라도 당하고 싶은 눈빛들이다.

 그 중에 오선화가 서있다. 도도하고 새침한 표정으로 한껏 기대에 부푼 채.

 선화는 자신했다.

 

 '강준혁, 모스크바의 날들을 기억해봐. 넌 날 절대로 지나칠 수 없을걸?'

 

 준혁은 차례차례 여자들을 둘러보며 하나씩 둘씩 지나쳐 오선화에게 점점 다가오기 시작했다.

 선화는 도도하게 고개를 들고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다.

 

 ‘그럼 그렇지. 내가 누구 때문에 모스크바에서 날아왔는데.’

 

 그렇다. 오선화는 강준혁 때문에 모스크바에서 급거 귀국했다.

 

 오선화가 준혁을 10년 만에 처음 만난 것은 지난달 모스크바 카지노에서였다.

 유학생활의 실패를 절감하며 학교에도 불출석 한 채 매일 매일을 카지노에서 도박과 술로 탕진하던 어느 밤.

 

 백인 남자 둘이 다가와 선화를 희롱하기 시작했다.

 선화는 감히 어디서 수작이냐, 며 앙탈을 부리다가 놈들에게 뺨을 얻어맞고 말았다.

 그 충격으로 정신이 혼미해진 사이, 두 놈들은 선화를 부축하는 척하며 끌고 나가려 했다.

 그 순간 나타난 것이 바로 준혁이었다.

 

 준혁은 선화를 위해 놈들과 맨주먹으로 맞섰고, 놈들이 던진 의자를 막아주며 선화를 보호해줬다.

 낯선 곳에서 황당한 일을 당한 선화는 준혁의 품에 와락 안겨 한참을 울었었다.

 그리고 제풀에 지쳐 쓰러지고 말았다.

 

 다음 날 선화가 눈을 뜬 곳은 카지노의 Vip객실이었다.

 알고 보니 마굿간 지기 강준혁이가 모스크바 카지노의 부사장으로 변신해 있었다.

 

 선화는 기함을 토했다.

 부산 바닷가에서 죽었다던 그 강준혁이 살아난 것도 놀라웠지만 10년 동안 그가 이룬 깜짝 변신은 대단했다.

 모스크바에서 안드레이 강을 모르면 간첩이었다.

 러시아 상류층 모임에서는 안드레이 강이 선망의 대상이었다.

 

 처음에 선화는 그 사실을 철저히 무시한 채 도도하게 굴었다.

 지깟게 그래봤자 제주도 마굿간에서 빌붙어 살던 우리 집 더부살이 신세였잖아, 이런 생각이었다.

 하지만 웬걸. 선화를 무시하고 모른 척 하는 건 오히려 준혁이었다.

 

 그날 이후, 선화는 몇 번이나 준혁을 만나려고 찾아갔다.

 하지만 준혁은 늘 모임에 참석하느라 부재중이었다.

 

 급기야 선화는 몸이 달아올라 준혁이 참석할 모든 사교모임에 알짱거렸다.

 하지만 준혁은 선화를 철저히 개무시하고 모른 척 했다.

 결국 참다 못한 선화는 카지노의 준혁의 사무실로 쳐들어갔다.

 불같은 성미에 이 답답한 상황을 결판내고 싶었다. 그런데!

 준혁이 한국으로, 그것도 제주도로 귀국했다는 것이다.

 그 순간 선화는 곧바로 기숙사로 달려와 짐을 쌓다.

 그리고 모스크바를 향해 욕을 날리며 영원히 안녕을 고하고 귀국했던 것이다.

 

 

 준혁의 구두가 한 명 한 명을 스치고 지나온다.

 선화의 얼굴에 점점 미소가 피어 오른다.

 그렇지. 그렇게 와. 강준혁. 어서.

 

 준혁의 구둣발이 드디어 선화 앞에 멈췄다.

 선화가 픽 웃으며 우아하게 한 손을 들어올린다.

 준혁이 싱긋 미소를 짓는다.

 선화는 한발을 앞으로 가볍게 내민다.

 

 

 “실례지만 잠깐만 비켜주시죠.”

 “뭐!”

 

 

 선화가 두 눈을 치뜨고 준혁을 쳐다본다.

 하지만 준혁은 어느 새 선화를 스쳐가고 있었다.

 선화가 도끼눈이 돼어 준혁의 등을 사납게 쏘아본다.

 당장이라도 물어뜯을 기세다.

 

 

 “강준혁 저걸!”

 “핫. 오선화 완전 김치국 됐네.”

 

 

 어느 새 나타난 선규가 선화의 팔을 살짝 잡았다.

 선화가 선규의 팔을 뿌리쳐 본다.

 하지만 선규는 더 단단히 잡는다.

 

 

 “이거 놔. 오선규”

 “오빠라고 해”

 “몇 초 차이에 무슨 놈의 오빠야. 비켜.”

 “오선화, 가만 있어봐, 재미난 구경거리가 생길 거야.”

 “뭐? 무슨 구경?”

 “저기 봐봐. 강준혁이 누구한테 가는지.”

 

 

 선규가 턱짓으로 준혁쪽을 가리켰다.

 선화도 그쪽을 보고 기함을 토한다.

 준혁이 보드카를 나르고 있는 수완 앞에 서있다!

 

 내빈들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되고 있었다.

 보드카 쟁반을 들고 서있던 수완은 목이 ‘컥’ 막힌 채 준혁을 보고 있었다.

 지금 내 눈앞에 강준혁이 서있다니!

 

 사실 수안은 내빈들에게 보드카를 돌리면서도 준혁이 선화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준혁이 점점 다가오더니 선화앞에서 갑자기 방향을 휙 틀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그대로 수완의 앞으로 직진해 왔다.

 오늘 하루 종일 눈길 한번 안주던 그 준혁이, 수완을 기억하지 못한다던 그 준혁이가!

 지금 나한테 춤을... 청하는 건가?

 

 수완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입가 꼬리가 하늘로 올라간다.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나오려 한다. 이러다 광대까지 승천할 판국이다.

 그럼 그렇지. 준혁오빠가 어떻게 이 윤수완을 잊어.

 

 수완이 가슴을 쫙 펴고 준혁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준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오빠. 만인 앞에서 이렇게 공개사과를 하겠다는데 봐줄게.

 어서 말해봐, 춤을 추시겠습니까, 이렇게~

 

 

 “보드카”

 “에?”

 “바이찌 보드킵”

 

 

 어느 새 준혁의 뒤에 나타난 소피가 수완에게 차갑게 말했다.

 보드카를 달라는 말에 수완이 잠시 멍하다.

 그러자 소피가 수완의 쟁반에서 보드카를 가져간다.

 그리고 자신이 한 모금을 마신 후 준혁에게 내민다.

 준혁이 단숨에 그 잔을 털어 마시더니 소피의 허리에 격렬하게 팔을 휘감고 그림처럼 플로어로 미끌어진다.

 잠시 고요했던 왈츠 음악이 격렬하게 울려퍼지고.

 준혁과 소피의 아름다운 왈츠가 플로어를 후끈 달구기 시작한다.

 

 [컥]

 

 수완은 단발마 같은 단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다리가 휘청거렸다.

 이게 뭐야 윤 수완. 강준혁이 정말 너한테 춤을 청할 거라고 생각한 거야! 이 바보 멍청이! 대 망신...

 

 

 “윤수완 꼬라지 보기 좋네.”

 

 

 선화였다.

 그 옆에는 선규가 비실비실 비웃고 있다.

 그리고는 수완의 쟁반에서 보드카를 들어 마시며 캬- 오바감탄을 내뿜는다.

 

 

 "하 참, 아니 설마 네가 강준혁이 춤상대가 될거라고 생각한 거야?? 히야 윤수완 너무 오버했다. 그건 진짜 아니지. 호텔 이사씩이나 되는 사람이 미쳤다고 그런 짓을 하겠어. 머리가 돌지 않고서야 노노노. 아마도 널 기억하지도 못한다고 발뺌 할걸?"

 

 

 선규의 깐죽거림에 수완은 상처받은 표정이 된다.

 

 

 "흥. 그러게나 말이야. 웃겨 메이드 주제에. 어떻게 그런 끔찍한 상상을 할 수 있을까. 이 꼬라지에."

 “오선화, 네 꼴도 만만치 않거든.”

 

 

 수완이 선화에게 맞받아친다.

 킥, 오선규가 웃음을 터뜨렸다.

 선화의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해진다.

 어느새 수완은 휙 뒤 돌아서서 가버렸다.

 

 

 “윤수완 쟤 돈 거 아냐? 감히 나한테 지금 뭐라는 거야!”

 “큭. 못난 기집애들 집합소같네.”

 “야, 오선규! 너 자꾸 염장 지를래!”

 “강준혁이 뭐가 좋다고 저렇게 다들 침을 흘리는 거야.”

 “뭐가 좋은지 넌 백년이 지나도 몰라 오선규. 맨날 2등만 하는 너니까. 그게 너의 가장 큰 단점이지. 흥!”

 “오선화 저게!”

 

 

 음악이 무르익고 농익은 농담들이 오가는 가운데, 선화는 연거푸 보드카를 들이키며 준혁의 근방을 알짱거리고 있었다.

 빅토르 옆에서 심질긴 바비큐를 뜯던 오회장은 아까부터 선화의 행동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선화와 준혁이 어떻게 된거지. 설마 모스크바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그래서 선화가?

 오회장은 촉이 좋았다.

 그가 아는 선화는 모스크바에서 이유없이 귀국할 스타일이 아니다.

 

 

 이제 왈츠음악은 연이어 경쾌한 댄스음악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런데 준혁과 소피는 쉬지 않고 춤을 춘다.

 두 커플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능숙하게 플로어를 휩쓸고 있었다.

 

 선화는 점점 몸이 달아올랐다.

 분통이 터져서 숨이 막힐 지경이다.

 더 미치겠는 건 소피와 춤을 추면서도 간간히 선화에게 씽긋 미소를 날리는 준혁 때문이었다.

 마치 한 마리 새를 조롱하는 핸들러처럼 준혁은 선화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조롱하고 있었다.

 울화통이 치민 선화는 연회장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씩씩 대며 분수대 앞을 가로질러가던 선화가 그만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선화의 힐 뒷굽이 대리석 틈에 꽉 틀어박혔다.

 

 

 “아으 증말! 이게 뭐야!”

 

 

 선화는 힘껏 구두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웬걸. 구두가 발랑 벗겨지고 그 바람에 선화가 앞으로 나동그라진다.

 그리고 선화의 드레스가 쭉 찢어져버렸다.

 놀란 선화가 얼결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윽!

 

 

 “괜찮아?”

 

 

 준혁이다.

 어느 새 나타났는지 처참하게 넘어진 선화에게 준혁은 손을 내밀고 있었다.

 

 

 “필요없어!”

 

 

 준혁의 손을 선화가 탁 쳐낸다.

 

 

 “아닐텐데.”

 

 

 준혁은 순식간에 선화의 한 팔을 잡고 다른 손으로 허리를 잡아 일으켰다.

 그 바람에 선화는 준혁의 품에 폭 안기고 말았다.

 

 

 “비켜! 동정은 필요 없어.”

 

 

 선화가 다시 준혁을 밀어냈다.

 그러나 준혁은 꿈쩍하지 않는다.

 선화는 씩씩대며 준혁을 사납게 쏘아보았다.

 

 

 “피가 나는군.”

 

 

 어느 새 준혁이 손수건으로 선화의 입술을 지그시 눌러준다.

 그러자 선화가 감전된 듯 흠칫 몸을 떨었다.

 

 

 “자. 마저 누르고 있어.”

 

 

 준혁이 선화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선화는 이제 더 이상 반항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분고분 수건을 받아들었다.

 준혁에게서 풍겨나오는 알지못할 위압감과 카리스마.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이 느낌.

 

 준혁은 대리석 틈에 박힌 선화의 구두를 가져왔다.

 그리고 양복을 벗어서 선화의 허리에 묶어준다.

 

 

 "뭐하는 거야!"

 “다른 놈이 널 보면 내가 안될 것 같다.”

 “뭐?”

 “데려다 줄게.”

 

 

 준혁이 선화를 가볍게 안아 올렸다.

 그리고 vip객실로 향했다.

 

 

 보드카를 나르던 수완이 잠시 휘청였다.

 차창 밖으로 준혁이 선화를 안고가는 모습을 목격하고 만 것이었다.

 

 

 “윤수완씨, 이제 그만 쉬어요.”

 “고맙습니다. 태현 선배님.”

 

 

 수완은 태현에게 쟁반을 맡기고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수완은 바깥에 주저앉아 심호흡을 했다.

 한기가 가슴 속을 파고든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10월의 밤바람은 제법 차가웠다.

 아니, 밤바람 탓만은 아닐 거다.

 내 마음 속에 부는 이 서늘한 바람이 더 문제겠지.

 

 

 “윤수완. 그만 가라. 너 그렇게 휘청거리다 술이라도 쏟으면 개망신이야.”

 

 

 어느 새 선규가 비실비실 웃으며 서있다.

 수완은 다시 일어났다.

 

 “부지배인님, 나 일하러 왔어요.”

 “네가 뭐 중요인물인줄 아나본데, 너 하나 없다고 파티가 엉망되지는 않아.”

 “.. 그렇겠죠..”

 

 

 수완이 힘없이 일어섰다.

 오선규의 놀림에 비난할 기운도 없었다.

 

 

 “야 윤수완. 난, 그런 뜻이 아니라..”

 

 

 어느 새 수완은 선규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오선규! 이 숫기 없는 멍청이!’

 

 선규는 발바닥으로 바닥을 힘껏 걷어찼다.

 하지만 엄한 발바닥만 고통스럽다.

 선규는 발목을 부여잡고 껑충껑충 뛰며 고통스러워했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던 수완은 멍하니 상자 하나를 바라본다.

 오랫동안 사물함 구석에 박아두었던 상자.

 손바닥보다 좀 작은 상자 위에는 먼지가 약간 끼어있었다.

 

 수완은 오랜만에 상자를 열어본다.

 손가락만한 백마가 유리공 안에 들어있는 스노우볼이었다.

 

 수완은 스노우볼을 힘껏 흔들었다.

 그러자 유리공 안에 하얀 눈이 내린다.

 수완의 얼굴에 애잔한 미소가 번진다.

 

 [오빠, 이게 뭐야?]

 [스노우 볼. 그거 1000번 흔들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더라.]

 [진짜루?]

 [윤수완 이 바보야. 그런 말을 믿냐 넌?]

 [응, 난 믿어. 오빠가 하는 말은 뭐든지 다 믿어.]

 [넌 왜 그렇게 멍청하냐.]

 [맨날 멍청하대]

 

 열일곱의 수완이 열아홉의 준혁을 빤히 쳐다보았다.

 순간 준혁이 수완의 볼에 입을 쪽 맞춘다. 수완의 눈이 동그래졌다.

 

 [윤수완, 생일 축하해.]

 

 첫 뽀뽀. 그리고 생일축하 선물 스노우볼.

 그 작은 유리구 안에 들어있는 백마 너의 이름은 렉시였지.

 준혁의 엄마 해심이 사랑하던 애마 렉시.

 

 한때는 그 렉시를 오회택의 부인인 소영이 차지하려 들었다.

 하지만 렉시는 절대로 굴복하지 않았다.

 렉시는 준혁 외에는 아무한테도 길들여지지 않았다.

 

 지금도 렉시는 아무한테도 길들여지지 않은 채 고고하게 마구간을 지키고 있었다.

 오회장 일가는 렉시를 길들이지는 못했지만 팔지도 않았다.

 영국최고의 종마에게서 태어난 렉시는 오리지널 순종이었으며 가치와 희귀성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수완은 스노우 볼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동안 잊었던 소원을 오늘 밤은 간절히 빌어보고 싶었다.

 돌아와 달라고.

 

 

 준혁이 선화의 방에 키를 꽂고 문을 열어준다.

 그리고 선화를 조심스레 내려놓는다.

 

 선화는 들어가려다 뒤를 돌아 준혁을 잠시 보았다.

 준혁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 돌아섰다.

 

 

 “같이 있어줘.”

 

 

 다급한 선화의 목소리가 준혁의 뒤를 찌른다.

 준혁이 등을 돌려 선화를 보았다. 준혁이 씽긋 미소를 짓는다.

 선화가 상기된 표정으로 준혁을 본다.

 하지만 준혁은 다시 등을 돌려 성큼 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선화는 모멸감에 젖은 채 소리 나게 문을 닫아버렸다.

 

 

 바람은 아까보다 더 차고 사나워지고 있었다.

 간간히 가랑비까지 흩뿌리기 시작하자 수완은 양팔로 몸을 감쌌다.

 제주도의 날씨는 하루에도 수십 번 변한다.

 그런데 그만 그걸 깜박하고 우산을 두고 나와 버렸다.

 

 연회가 늦게 끝나는 바람에 버스도 끊겨버렸다.

 택시를 잡으려 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수완은 택시 잡는 것을 포기하고 묵묵히 걷기 시작했다.

 그래 윤수완. 제주도의 비바람이 어디 한두 번이야. 이깟 거 그냥 맞고 가지 뭐.

 

 수완이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이, 저 멀리서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빛이 깜박거렸다.

 수완은 반가웠다. 수안은 얼른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리고 힘차게 팔을 흔들었다.

 제주도에서는 섬 사람들끼리 서로 태워주는 히치하이킹이 흔했다.

 마침내 수완의 앞에 차가 멈춰 섰다.

 

 

 “아 너무 추워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는데 정말 다행이네요. 비가 와서... ”

 

 

 차안을 들여다보던 수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운전석에 준혁이 앉아 있었다.

 

 

 “타지.”

 “... 왜요?”

 “태워달라고 히치 하이킹 했잖아. 그쪽이.”

 “당신인줄 알았으면 안했어요. 그냥 가요.”

 “타.”

 “내가 알아서 갈게요. 그냥 가던 길 쭈욱 가세요.”

 “윤수완씨 이건 명령이야. 그러니까 타라구.”

 “댁이 뭔데 나한테 명령해요!”

 “오늘부터 난 우리호텔 직원 책임질 의무가 있어. 호텔 이사니까.”

 “허! 웃기시네. 됐거든요!”

 

 

 비바람이 제법 거세지고 있었다.

 하지만 수완은 준혁의 차를 무시하고 걷기 시작했다.

 그 순간 준혁의 차가 따라오는가 싶더니, 쌩 소리를 내며 칠 듯이 가버린다.

 

 “그래 가라 가, 강준혁! 이 나쁜 자식아! 이사로 둔갑했다고 나 따위는 꼴도 보기 싫다 이거지! 아주 내 인생에서 영영 사라져버려!”

 

 끼익-

 갑자기 어둠 속에서 준혁의 차가 맹렬하게 후진하더니 놀라 굳은 수완의 앞에 탁 선다.

 

 어느 새 준혁이 차문을 열고 거칠게 나왔다.

 그리고 수완의 팔을 잡고 억지로 조수석에 태우려 한다.

 

 

 “이거 놔요!!”

 “차에 타라니까!”

 “싫어!”

 “윤수완!!

 “강준혁. 당신 정말 나 몰라? 거짓말이지! 날 기억못한다는 거, 다 거짓말이지!”

 “이봐요 윤수완씨! 분명히 말했잖아! 난 당신을 몰라!”

 “이 거짓말쟁이! 이래도 몰라? 이래도 윤수완일 모른다고 할거냐구!”

 

 

 수완은 주머니에서 스노우볼을 꺼내 준혁 앞에 내밀었다.

 

 

 “오빠와 나의 렉시야. 기억 안나? 나한테 생일선물 주고 오빠가 처음으로 뽀뽀한 날 말했잖아. 이게 렉시라구!”

 “난 모르는 일이야.”

 

 

 준혁이 싸늘하게 외면했다.

 

 

 “그으래? 정말 날 기억 못한단 말이지?”

 “그래!!”

 “좋아. 그렇다면 이거 받아.”

 

 

 수완이 준혁의 손에 스노우 볼을 쥐어준다.

 

 

 “그거 직접 내 눈앞에서 깨트려봐. 그럼 기억 안난다는 당신의 그 그지같은 말, 내가 믿어줄게.”

 

 

 

 4화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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