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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일반/역사
야수
작가 : 유호
작품등록일 : 2016.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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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비상> 등 숱한 화제를 뿌리며 대중문학의 선두 주자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한 유호 작가의 장편소설. 불법 무기 거래, 위조지폐 반입 등 국가 안보를 뿌리째 흔드는 검은 세력과 한국 정계 고위층의 은밀한 커넥션을 파헤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담아내고 있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주인공 차승호와 주변 인물들을 통해 각국 정보기관과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폭력 조직들 간의 대립을 사실적이고도 치밀하게 그려냄으로써 돈과 권력, 정의를 두고 벌어지는 치열한 두뇌싸움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역사와 국제정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정교한 플롯과 박진감 넘치는 빠른 전개, 군더더기 없는 묘사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번 작품 역시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생생한 묘사, 상상을 초월하는 액션, 개성으로 똘똘 뭉쳐 살아 숨 쉬는 캐릭터,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스피디한 전개와 흡인력으로 찾아왔다.

공군 특수부대 출신의 전직 해양경찰, 차가운 이성과 날렵한 몸을 가진 미모의 필드요원, 스마트하면서도 자유분방한 천재 해커, 장기밀매 조직에 납치되었다가 극적으로 구출된 여고생. 이들이 펼치는 보이지 않은 거대 권력과의 싸움. 그 과정에서 러시아와의 불법 무기 거래, 위조지폐 반입, 다국적 로비스트의 존재, 그들과 손잡은 정계 고위층의 비리 등 한국 사회 이면의 충격적인 치부가 드러난다.

 
제 24 화
작성일 : 16-07-18 11:37     조회 : 660     추천 : 0     분량 : 7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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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예인들이 주관하는 공식 행사가 끝나고 사회자가 본격적인 댄스파티의 시작을 알리자 양승욱은 손님들을 앞세우고 곧장 별관으로 건너갔다.

 손님들을 위한 진짜 파티는 이제부터였다. 사실 파티보다는 접대에 더 가깝지만 하룻밤 같이 즐기면 그뿐이었다.

 웨이터 하나가 재빨리 다가와 깊숙이 머리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저쪽입니다.”

 “아, 그래. 가시지요.”

 세 사람은 안내를 따라 홀 가장자리에 있는 칸막이 안으로 들어갔다.

 칸막이는 투명한 강화유리로 만들어졌는데 안은 침대 형태의 대형 소파 세 개와 탁자가 깔끔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세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자 유리 색깔이 갑자기 불투명해지면서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어버렸다. 센서로 투명도를 조종하는 모양이었다.

 낮게 탄성을 토해낸 일행이 소파에 대충 나눠 앉자 기다렸다는 듯 홀 전체에 빠른 템포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웨이터가 과일류의 안주와 최고급 코냑을 가져다 능숙하게 테이블에 깔았다.

 이어 늘씬한 반라의 미인 셋이 들어와 신발을 벗고 침대 위로 올라가 세 사람의 옆으로 달라붙었다.

 비서실에서 제대로 손을 써둔 듯 아이들의 행동은 거침없었다.

 술이 몇 순배 돌아가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그가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 아이들이 끝까지 모실 겁니다. 그리고…… 들어오시기 직전에 클럽 안팎의 모든 CCTV를 껐으니 이제부터는 남의 눈을 의식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아, 그럼요.”

 지점장 두 사람은 헤벌쭉 웃으며 술잔을 비웠다. 이미 술기운이 많이 올라온 것 같았다.

 “오늘은 아무 생각 마시고 그냥 즐기세요. 돈은 내일 은행이 열리는 순간, 송금될 거고 그러면 두 분도 자리를 잡게 되시는 겁니다.”

 “문제 생길 일은 없겠지요? 최근엔 저축은행 이슈가 많이 가라앉았지만 아직 민감합니다.”

 “걱정 붙들어 매세요. 트라제 코즈메틱은 고속으로 성장하는 안전한 회사입니다. 아시다시피 서류상으로도 전혀 문제없는 대출이잖습니까? 그러니 두 분이 걱정하실 일도 없는 사안이죠. 더구나 우린 이번 향수 론칭을 시작으로 12개 아이템을 연속해서 론칭할 예정입니다. 그에 따라 인지도는 획기적으로 개선되겠지요. 무엇보다, 그분께서 매우 기꺼워하셨다는 점, 기억하십시오.”

 “저희 노력을 인정하셨다니 다행입니다. 안부 꼭 전해주십시오.”

 “물론 그래야죠. 자, 이제 취해보십시다. 너희 뭐 해, 제대로 모셔야지. 얼른 잔 채워라.”

 양승욱은 옆에 앉은 모델의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건너편의 모델들에게 술을 따르도록 재촉했다.

 요염한 자세로 누워 있던 모델들이 재빨리 일어나 빈 잔을 채우더니 둘의 가슴에 기대 끈적하게 콧소리를 냈다.

 “드세요, 사장님.”

 스트레이트로 한 잔을 더 마신 지점장 하나가 과감하게 모델의 젖가슴에 손을 집어넣자 나머지 하나도 안겨 있는 여자의 팬티 속으로 엉덩이를 더듬기 시작했다.

 

 새 칵테일 잔들을 셀프 스탠드바에 옮겨놓은 차승호는 칵테일을 살짝 떠서 입에 댔다 떼고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그가 아는 펀치 칵테일 맛이 아니었다. 그는 서둘러 반대쪽 스탠드바에 기대선 오지연을 호출했다.

 “마님, 짜다. 마시지 마라.”

 -무슨 소리야?

 “GHB.”

 -GHB? 물뽕?

 “그래, 들어온 애들 마신 술에 비해 너무 빨리 취한다 싶어서 맛을 봤는데 살짝 짜다. 적정량 이상의 GHB야. 칵테일 몇 잔이면 100밀리그램 정도는 간단히 넘을 거 같다.”

 -별걸 다 아는군. 그런 건 어디서 배웠어?

 “사연이 길어. 어쨌든 100밀리그램이면 거의 인사불성이다. 30분만 더 지나면 난장판 섹스파티 되는 거야. 내일은 기억도 못하겠지. 술이란 술엔 전부 탔어.”

 -젠장, 반 잔 넘게 마셨는데.

 “그만 마셔. 곧 문 잠그고 웨이터들도 드나들지 못하게 할 것 같다.”

 그의 예상대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상황은 점점 더 가관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본격적인 파티를 시작한 지 불과 40여 분이 흘렀을 뿐인데 참석한 열다섯 명 남짓한 남녀 모두가 거의 무방비 상태로 흐느적거렸고 급기야 곳곳에서 남녀가 뒤섞여 엉겨 붙기 시작했다.

 일단 몇 명이 뒤엉키고 나자 상황은 순식간에 급전직하, 더도 덜도 아닌 할렘으로 치달았다.

 몇 겹 안 되는 옷을 벗어 던지는 건 예사였고 한꺼번에 서넛씩 뒤엉켜 곧장 그룹 섹스 상황으로 이어지는 판이었다.

 그는 웨이터 조끼를 벗어 카트에 내려놓고 오지연과 눈을 마주쳤다. 오지연은 수신호로 유리 칸막이 앞을 가로막은 경호원 둘을 가리리키고 있었다.

 수신호 끝에 있는 경호원들은 술을 전혀 입에 대지 않았는지 비교적 멀쩡한 상태였다.

 코앞에서 민망한 자세로 서로를 더듬는 남녀에게 시선을 뺏기고는 있지만 취하질 않았으니 어떤 방식이로든 제압은 해야 할 것 같았다.

 방법을 고민하면서 한 뭉치가 되어버린 남녀들 사이를 통과하려는데 오지연이 갑자기 빈 양주 병 하나를 냅킨에 싸서 들더니 취한 척 비틀거리면서 경호원에게 다가갔다.

 그가 어찌 말리기도 전이었다. 오지연이 다가서자 둘 중 젊은 축에 들어가는 사내가 그녀를 제지했다.

 “저리 가지, 아가씨. 여긴 출입 금지야.”

 “어이…… 이봐요, 아저씨. 한잔하자고, 아냐, 아냐, 우리 함 하까? 나 이쁘지 않아?”

 오지연이 혀 꼬부라진 소리를 내자 사내가 히죽 웃으면서 그녀의 어깨를 잡더니 옆으로 툭 밀쳤다.

 “이거 꼴리는 모양인데? 좀 기다려. 이따 맛있게 먹어주마, 이년아.”

 “어이, 아저씨. 함 하자는데 뭐 불만이야? 아저씨 고자야?”

 오지연은 비틀거리면서 물러섰다가 다시 다가서며 놈의 얼굴에다 손가락질을 했다. 옆에 있던 놈이 킥킥거리며 웃었다.

 “야, 급한 모양인데 걍 벗겨놔라. 거기 구경이나 하자. 크크.”

 “니미, 것도 좋지. 야, 이년아 우선 벗어봐.”

 놈은 낄낄대면서 오지연의 팔을 잡고 한 손으로는 어깨가 다 드러날 때까지 티셔츠를 끌어내렸다. 순간, 오지연이 놈의 낭심을 정통으로 걷어차버렸다.

 “켁!”

 놈은 순간적으로 숨이 멎은 것처럼 심하게 헛바람을 삼키면서 아래를 잡고 웅크렸다.

 “뭐야, 이거!”

 다른 놈이 황당한 표정으로 다가오며 손을 뻗었다. 그러나 오지연은 놈을 아랑곳하지 않고 코앞에 웅크린 놈의 머리에다 그대로 양주병을 내리쳤다.

 퍽!

 양주병이 터져 나가고 놈은 패대기친 개구리처럼 쭉 뻗어버렸다.

 아슬아슬하게 현장에 도착한 차승호는 오지연의 머리채를 향해 뻗은 덩치의 손을 잡아채 꺾으면서 가볍게 벽으로 밀어붙여버렸다.

 “아…… 어!”

 당황한 놈의 입에서 짓눌린 비명이 새 나오고 어깨에서 ‘우드득’ 하고 탈골되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양쪽 무릎관절을 찍어 주저앉히고 머리채를 잡아 뒤로 꺾으면서 목젖을 가볍게 내리쳤다.

 딱 죽지 않을 만큼의 타격, 놈은 무릎을 꿇은 채 뒤로 넘어와 늘어졌다.

 “가자.”

 유리문을 살짝 열고 고개를 내민 그는 인상부터 찌푸렸다.

 ‘제기랄!’

 안경이 전송하는 화면을 한희진이 보고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떠오른 것, 이미 늦었지만 계속 보여줄 수는 없었다.

 “꼬마, 눈 돌려!”

 -제대로 미성년자 관람 불가네. 크크, 진행하세요. 진즉에 눈 감겨놨어요.

 “개자식들.”

 그는 이를 득득 갈며 문을 열었다. 칸막이 안의 상황은 기대치를 훌쩍 넘어서 있었다.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난감한 장면, 남자들은 각자의 침대 헤드에 눕다시피 기대앉아 있었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늘씬한 미녀 셋이 민망한 자세로 남자들의 성기를 격렬하게 애무하고 있었다.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들어섰지만 이쪽에 대해서는 아무도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이민우가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히휴, 질펀하네.

 “시끄러, 인마. 마님, 사진.”

 “응.”

 오지연이 고감도 카메라로 신속하게 증거 사진을 찍는 사이, 그는 쓰러진 놈들을 안으로 끌어다 구석에 처박았다.

 일을 끝낸 그가 손을 털자 오지연이 말했다.

 “끝났어. 뜨자.”

 “잠깐, 저거 데려가자. 또는 기회 잡기 어려울 거야. 카트?”

 새 잔들을 옮길 때 썼던 카트에 테이블보가 덮여 있으니 아래다 구겨 넣고 가져가면 눈치채지 못하게 빼낼 수도 있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오지연은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트 끌고 와.”

 재빨리 카트를 끌어온 그는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는 오지연의 옆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아무리 경험 많은 요원이라도 벌거벗은 채 엉겨 붙은 남녀에게 손을 대는 건 쉽지 않을 것이었다.

 더구나 성교가 한창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형편이어서 눈을 둘 곳도 마땅치가 않았다.

 그는 슬쩍 헛기침을 해서 오지연의 시선을 끈 다음, 양승욱의 바지와 구두를 챙겨 카트 밑에 처박으면서 여자를 떼어내라고 손짓했다.

 “제길.”

 욕설을 입에 담은 오지연이 성큼 침대 위로 올라가 정신없이 탄성을 토해내는 여자의 목을 낚아채 조르기 시작했다.

 차승호도 침대 옆에서 양승욱의 한쪽 손을 무릎으로 누른 채 경동맥을 강하게 압박했다.

 처음엔 둘 다 손발을 허우적거리며 나름 반항을 했지만 몇 초 지나지 않아 사지를 늘어뜨렸다.

 오지연이 여자를 떼어내 침대에 눕히자 그는 드러난 놈의 사타구니에 수건부터 하나 던졌다.

 GHB가 과하게 혈류에 흐르는지 놈의 성기는 아직도 끄덕거리고 있었다.

 곧장 침대 위에 매달린 캐노피 커튼을 뜯어내 놈을 둘둘 말아 카트 밑에다 구겨 넣고 상태를 살폈다. 나름 괜찮아 보였다.

 작은 카트지만 테이블보가 조금 밀려나는 정도여서 크게 시선을 끌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가 카트를 돌리며 말했다.

 “나간다. 조커, 후문에 차 대.”

 -카피.

 두 사람은 카트를 밀고 이미 난장판이 되어버린 홀을 조용히 가로질렀다. 그런데 출구에서 문제가 생겼다.

 밖에서 문을 잠갔는지 열리지를 않았다. 그렇다고 밀고 나갈 수도 없는 노릇, 밖에는 호텔에서 배치한 경비원 둘이 남아 있었다.

 “젠장, 조커 문 잠겼다. 다른 출구가 있는지 확인해.”

 -카피, 대기하세요.

 “서둘러.”

 초조한 몇 초가 흐른 뒤, 한희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3시 방향에 비상구, 비상등 안 보여요?

 “커튼이다. 가보지.”

 오지연이 재빨리 뛰어가 커튼을 열었다. 비상등은 그 안에 있었다. 아래 있는 철문도 마찬가지로 닫혀 있었지만 여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오지연은 그가 카트를 미는 짧은 시간 동안, 간단하게 문을 따고 밖을 내다보았다. 밖은 바로 계단과 직원용 엘리베이터였다.

 오지연이 다시 이민우를 호출했다.

 “조커, 엘리베이터 타야겠다. CCTV 죽여.”

 그냥 둘러메고 올라가는 게 편했지만 그럴 경우 현관 통과가 문제였다.

 시체처럼 보이는 물건을 들고 가면 당장 문제가 터질 터, 카트를 끌고 갈 수 있으면 그게 최선이었다.

 -젠장, 바쁘네. 30초만 기다리세요.

 “10초.”

 -이게 동네 애들 딱지치긴 줄 아세요? 기다리세요.

 카트를 끌어낸 뒤, 엘리베이터 스위치를 누르고 잠시 기다리자 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러나 이민우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초조해진 그가 다시 호출을 하고 나서야 대답이 나왔다.

 “조커, 아직이냐?”

 -5초 전, 4, 3, 2, 1, 오케이, 가세요. 1층에서 내리면 왼쪽 문 열고 나가서 바로 우회전, 동쪽 복도예요. 후문까지 39미터. 동선의 CCTV는 전부 죽입니다.

 “카피.”

 어차피 로비로 나갈 생각은 없었으니 직원용 엘리베이터가 도와준 셈이었다.

 후문을 빠져나오자마자 사설 경비회사 로고를 붙인 밴이 신속하게 다가와 멈춰 섰다.

 뒷자리에 양승욱을 대충 던져놓고 그대로 출발, 차가 대로에 올라선 뒤 이민우가 입을 열었다.

 “어디로?”

 “강북강변 타고 일산 쪽, 아는 데 있다.”

 “오케이, 이번엔 간만에 야외 드라이브로세. 크크.”

 

 오지연이 선택한 장소는 파주에서도 한참 외곽으로 빠져나간 창고 지역이었다.

 샌드위치 패널로 지은 비슷한 형태의 창고들이 줄줄이 들어찬 지역이라 사람의 눈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이민우와 한희진을 밴에 남겨두고 빈 창고를 하나 골라 안에 있는 나무 의자에다 양승욱을 묶어버렸다. 등 뒤에서 오지연이 말했다.

 “옷 좀 입히자, 짜증 난다.”

 늘어진 성기를 고스란히 내놓고 있으니 짜증이 날 만도 했다. 그는 시트커버로 하체를 대충 덮어버리고 놈의 뺨을 두들겼다.

 GHB의 경우 대략 30분마다 절반씩 체내에서 사라지는데 호텔을 나선 지 2시간 가까이 지났으니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올 시점이었다.

 놈은 끙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을 뒤척였다. 안대 때문에 눈을 떴는지 확인은 안 되지만 정신은 차린 것 같았다.

 그가 놈의 정강이를 툭툭 차며 말했다.

 “어이, 거기가 그렇게 좋아? 이만 돌아오지?”

 놈은 고개를 몇 번 흔들어보더니 침을 꿀꺽 삼켰다.

 “어…… 누구야? 여……기 어디야?”

 덜덜 떠는 데다 혀까지 풀려 있어서 발음이 심하게 뭉개졌지만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좀 춥지? 신나게 아랫도리 흔들었으니 지금은 많이 추울 거야. 자, 폐일언하고 신상 조사부터 좀 하자고. 어디 보자…… 양승욱 63세, 직업은 사기꾼. 가족 사항은 마누라와 아들 둘, 며느리 둘에 손자는 다섯, 큰아들 양종석이는 은행에 근무하시는군.”

 “누……구냐? 뭘 원하지?”

 자식들의 이름이 나오자 긴장했는지 발음이 한결 정확해지고 있었다.

 그는 스키 모자를 뒤집어쓰고 놈의 안대를 떼어냈다. 놈의 눈을 마주 보는 편이 심리적인 변화를 감지하기 수월하다는 생각이었다.

 “당신 수완 좋던데? 300억씩이나 되는 거금을 사기로 대출받고 말이야. 뇌물로는 뭘 주시기로 하셨나?”

 오지연이 비추는 랜턴 불빛이 눈을 직격하자 놈은 목을 한쪽으로 빼면서 오만상을 찌푸렸다.

 “무슨 황당한 소리냐? 난 명망 있는 사업가야.”

 “명망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노인네, 잘 들어. 난 ‘네가 오늘 밤에 한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이야. 오입질하는 사진 잔뜩 찍고 동영상도 꼼꼼하게 챙겨뒀어. 여차하면 마누라하고 아들, 손자, 며느리한테 골고루 복사해서 나눠 줄 수도 있거든? 아, 물론 인터넷에 올려서 개망신을 줄 수도 있어. 무슨 소린지 알아듣나?”

 양승욱은 움찔 말을 삼키고 허리를 뒤로 붙이더니 목에 힘을 실었다.

 “보아하니 아직 젊은 거 같은데 이러면 쓰나. 원하는 게 뭔가? 돈이라면 내 넉넉하게 챙겨줌세.”

 “이런, 아직도 당신 형편이 이해되지 않은 거야? 우리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냥 동네 깡패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자네 보스와 이야기하겠다. 누구 밑에서 일하지?”

 “놀고 있네. 이봐, 늙은이. 윗선에서 말이야, 대통령 임기 몇 달 안 남았다고 너무 막 나가는 건 곤란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어. 무슨 소린지 이해가 가나?”

 누구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그냥 높은 분이 뒤에 있다는 식의 뉘앙스만 풍기는 압박, 겁먹은 놈이 알아서 빈칸을 채우라는 뜻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놈의 눈빛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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