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
미궁황제
작가 : 야광흑나비
작품등록일 : 2016.10.1

본문 발췌-


한 나라에 태양이 둘이면 안 된다 하였다.
그러나 한 나라에 황제 된 이가 황제로서의 제 몫을 다하지 아니한다면 그 나라는 어떻게 되겠는가.
또한 그리 된다면 누군가 대신 책임을 질 사람이 나와야 할 터인데, 그 때는 또 어찌한단 말이던가.
나는 그런 연유로 한 나라에 태양이 둘이면 안 된다는 말을 믿지 아니한다.
아니, 한 나라에 태양이 둘이면 또 어떠한가.
각자의 장단점을 나눠 한 나라를 제대로 통치 할 수 있다면 한 나라의 왕이 둘이던 셋이던
그 또한 복이지 않겠는가.
한 나라에 태양이 둘이면 나라가 혼란스럽다 하였다. 그것은 일견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꼭 태양만의 문제인가 하면 그것은 아니라고 하고 싶다.
태양이 태양으로서의 몫을 다하고 태양을 바라는 이들이 태양을 바로 알아보며 그 태양이 가야 할 길을 정확히 이끌어만 준다면 두 개의 태양 역시 기대에 배신치 아니할 것이다.
또한 세상에 이롭지 않은 황제가 난다면 그를 대신할 태양이 하늘을 덮는 것이 오히려 복일 것이란 예지도 가능하다.
그러니 세상에 불필요한 태양이 두 개가 떴다면 그 태양은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쓰임이 다른 것이다.

 
11. 암투, 그리고 밀회.
작성일 : 16-11-09 20:48     조회 : 706     추천 : 1     분량 : 10270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

 그 시각 별궁에서는 어디선가 나타난 실뱀으로 인해 주변이 발칵 뒤집힌 상황이었다.

 “실뱀이 나타나?”

 “지금 실뱀 한 마리가 나타나서 후궁의 마마님들이 혼비백산, 난리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니, 마마께서도 뱀이 잡히기 전까지는 이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마시어요.”

 수발을 돕는 궁녀의 말이 있었지만 의주의 표정은 그리 겁에 질린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 그녀의 표정은 기대에 찬 표정에 가까웠다.

 “그 뱀, 아직도 궁을 돌아다니고 있니?”

 “네. 마마!”

 “가자!”

 “네?”

 “가자니까?”

 “마, 마마…….”

 궁녀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막았다.

 “아니 되옵니다. 위험합니다.”

 “실뱀이라며.”

 “그렇지만…….”

 “실뱀은 독 없어!”

 궁녀의 말에도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즐거움으로 넘실대고 있었다.

 ‘그동안 이놈의 후궁들 때문에 스트레스로 죽을 지경이었는데. 이참에 뱀을 잡아서 방에 풀어 놓으면……. 심심함도 잡고, 후궁들 발길도 뚝 끊기고 일석이조라 이거지!’

 며칠간 별궁은 시끄럽기 짝이 없었다.

 황제가 권능 전에서 신하들과의 악력 싸움으로 점점 피폐해지는 동안, 여기 별궁에서도 아주 불쾌한 일들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황제는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분연히 그녀를 불러들였고, 그 시간동안 후궁 첩지를 받은 이들과 황후는 거의 찬밥 신세나 다름없이 지내 온 듯 했다. 그러다 보니 꼭지가 돌아버린 후궁들이 황후를 위시해 그녀가 기거하는 별궁으로 들이닥쳐 온갖 자잘한 꼬투리를 잡으며 그녀를 괴롭히고 있던 터였다.

 황후가 살집이 많아서 게을러 보이니 살을 빼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며칠 동안은 별궁 전체를 청소하며 황제의 부름이 있을 때마다 권능 전으로 차 심부름을 오가야 했는데, 그럴 때면 청소를 제대로 하지도 않고 일을 늦게 처리한다고 황후에게 또다시 핀잔을 듣곤 했다.

 황후가 한차례 그녀를 닦달하고 난 뒤에는 후궁들이 돌아가며 들이닥쳐서 화장을 꼬투리 삼기도 하고, 언행이 바르지 못하다고 하며 황궁의 법도를 가르친다는 핑계를 들어서 통 안에 가득 채운 쇠구슬 속으로 그녀의 몸을 던져 놓고는 그 위에 커다란 돌을 얹어 놓은 채로 몇 시간이나 일어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덕분에 지금 그녀의 온 몸은 마치 부황을 한 듯이 여기저기 울긋불긋한 울혈이 잡혀 있었다.

 황후는 그래도 몸을 고단하게 만들 뿐이지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는 않아서 그럭저럭 수월하게 넘길 수 있었지만 후궁들은 달랐다.

 ‘역시 첩이 첩 꼴을 못 보는 거지.’

 그렇게 소름 돋는 남자도 황제이고 지아비라고 자기들끼리 싸우며 사랑 받으려 애쓰는 것이 안쓰럽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날이 심해져가는 후궁들의 만행을 고스란히 견디고 싶진 않았다.

 황제에게 후궁들의 일을 말하면 간단히 해결 될 일이지만 그런 식으로 그들을 찍어 누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황제에게 자신을 품을 빌미를 주고 싶지 않았다.

 황제는 지금까지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혀 그녀를 후궁으로 들이지 못하고 있어서 정식으로 그녀와 밤을 보낼 수는 없었다. 더구나 황제의 손길을 교묘하게 거부하며 다음을 기약하고 있는 터라, 점점 더 애가 닳아 가는 것이 그녀 눈에도 도드라지게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황제에게 조금 힘들다고 손을 내민다면, 마음에 들지 않는 황제와의 밤까지도 허락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후궁 첩지를 받지 않은 궁녀는 아무리 황제라 해도 품을 수 없다. 그러나 후궁 첩지를 받지 않은 궁녀를 황제가 크게 돕는 일이 생긴다면, 궁녀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후궁 첩지 유무와 관계없이 황제와 밤을 보낼 수 있다.

 그러니까. 후궁이 아니면서 황제와 밤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뭐 때문에 후궁 첩지를 안 받으려고 이렇게 용을 쓰는데. 그 징그러운 황제랑 억지로 밤을 보내? 그것도 후궁도 뭣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으로?’

 별궁 후미진 곳에는 전대 황제들과 밤을 보낸 궁녀들이 함께 사는 방이 따로 있었다.

 그녀들은 전대 황제와 밤을 보내고 버려진 여인들이었다.

 가장 나이가 어린 여인으로는 그녀가 이곳으로 흘러들어오기 전의 나이와 비슷한 스물 대 여섯 살의 여인도 있었다. 집안의 위기나 자신의 안위가 걸려 있는 부득이한 일이 생겨서 황제에게 도움을 청하고, 하룻밤을 보낸 뒤 버려지는 길을 택해야 했던 여인들은 그렇게 젊은 나이에도 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이 별궁 구석에서 쓸쓸한 생을 살아야 했다.

 그곳은 담장이 정말 높았다.

 겨우 쥐 한 마리가 오고 갈 정도의 작은 구멍이 드문드문 있어서 그 틈으로 마음 좋은 궁녀들이 말을 걸거나 먹을 만한 음식을 조금씩 넣어주곤 했지만, 그 외에는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생을 살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생을 살고 싶지 않다. 후궁이 되는 일은 끔찍하지만 그보다 더 끔찍한 일은 원치 않는 남자와 밤을 보낸 후, 기나긴 삶을 고난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후궁이 되는 게 나을 정도로.

 어쩌면 황제는 그런 선택을 바라며 그녀의 등을 떠미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쯤에서 현명한 선택으로 두 가지의 끔찍한 선택지를 모두 폐기 처분 시켜야만 한다.

 온전히 살아가려면.

 ‘일단 후궁들부터 여기 못 오게 만드는 게 좋겠지? 그 과정에서 황제가 나를 여자답지 않은 괴팍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면 금상첨화일 테고. 이 나라는 남녀 불문하고 뱀을 혐오한다니까. 파충류를 겁내지 않고 덥석 덥석 잡는 나를 끔찍하게 볼지도 몰라. 그럼 섣불리 나를 건드리려는 움직임도 줄어들겠지.’

  ***

 “으아아악~!”

 ‘헉! 뭐야?’

 “거기 막지 않고 뭐해?!”

 “마, 마마님.”

 “몰아, 어서?!”

 “마마님. 고정 하셔요. 저, 저희들이 잡을 테니…….”

 “잡긴 뭘 잡아. 제대로 몰기나 해!”

 별궁 지붕 위를 사뿐사뿐 뛰어넘어오던 청룡은 느닷없는 여의주의 음성에 잠시 발을 삐끗했다.

 고개를 슬쩍 내밀어 보게 된 광경은 의주가 궁녀들과 실뱀을 잡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이었다. 단정한 옷차림은 개나 물어가라는 듯이 실끈으로 허리 부근을 동여매고 머리는 반쯤 산발이 되어서 자신을 말리는 궁녀들을 사정없이 바닥에 메다꽂고 있었다.

 “큭큭큭큭.”

 웃음을 멈추려 해 봐도 자꾸만 웃음이 튀어나온다.

 조용히 그녀가 기거하는 방의 지붕으로 타 넘어가려던 청룡은 멀리서 헐레벌떡 뛰어 오는 황제의 모습을 보며 잠시 몸을 낮추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도 황제를 발견한 듯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숨기며 읍소했다.

 “페하를 뵈옵니다.”

 “일어나라.”

 “네. 페하.”

 “의주. 지금 뭘 하고 있던 것이냐?”

 황제는 직접적으로 현 상황을 묻고 있었다.

 “무엇을 말이옵니까? 페하.”

 의주는 그런 황제를 말똥한 눈으로 쳐다보며 반문했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냔 말이다.”

 약간 노기가 감도는 목소리로 황제가 재차 물어보자 그녀는 눈으로 실뱀을 쫓으며 무성의한 대답을 내놓았다.

 “페, 페하. 소녀. 잠시 저 곳으로 가면 아니될런지요.”

 “뭐라?”

 “배, 뱀이…….”

 “뱀? 배~엠?"”

 황제가 뱀이라는 말에 펄쩍 뛰어 올랐다.

 “배, 뱀이 갑자기 어디서 나온 것이냐. 여봐라. 황군! 황군은 어디 있느냐. 어서, 뱀을 잡아 죽이지 않고 무얼 하는 게야!”

 “페하."

 “그대도 어서 피해 있으라. 뱀이 나왔다지 않아.”

 “페하. 뱀이 나왔다 한 것은 소녀가 한 말이었습니다.”

 황제가 사색이 된 얼굴로 물었다.

 “뭐?”

 “소녀가 잡을 수 있습니다.”

 “배, 뱀을 잡아?”

 “네. 페하.”

 그녀가 생긋 웃자 황제의 퉁퉁한 얼굴이 파들파들 떨려 왔다.

 “그, 그게 무슨 말인가.”

 “소녀가 잡을 수 있습니다. 페하.”

 “…….”

 “그러니 소녀가 뱀을 잡을 수 있도록, 윤허 해 주시어요.”

 “네, 네가?”

 “네. 페하.”

 황제가 어이없는 얼굴로 쳐다봤지만 그녀는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그러자 황제는 어쩔 수 없이 벌레 씹은 얼굴로 그녀를 보내 줄 수밖에 없었다.

 “윤허 하겠느니라.”

 “감사합니다. 페하.”

 황제는 여전히 사색이 된 얼굴로 그녀를 쳐다봤다. 때마침 쩔쩔 매면서도 나풀거리는 비단 천을 바닥에 끌며 뱀을 유인하고 있던 궁녀들 틈에서 뱀을 구석에 몰았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

 “잡았다. 요놈!”

 “배, 뱀!”

 풀썩.

 의주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실뱀을 잡아 올리자마자 황제의 몸이 힘없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페하!!”

 “페하가 쓰러지셨다! 어서 어의를 불러라.”

 “페하! 페하!”

 별궁에서 시작 된 난리 통이 황궁 전체로 번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큭, 흐흐흡.”

 청룡은 숨죽인 웃음을 흘리며 그 광경을 즐겁게 쳐다봤다.

 ‘거, 참. 걸출한 인물이로고!’

 그녀의 생각을 알 것 같았다. 황제를 비롯한 황족들 및 비빈들이 끔찍이 싫어하는 뱀을

 좋아하는 여인이라는 인상을 심어줘서 저들이 그녀를 뱀처럼 끔찍하게 여기도록 만들려는 계략이었다.

 ‘허나, 자칫 독수가 될 수도 있음이야.’

 청룡은 은밀히 그녀에게 대비책을 일러주기로 하였다.

 

  ***

 

 황제의 침전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서로의 눈치만 보았다.

 황비와 후궁들을 비롯한 각개 신료들의 몸은 두려움으로 잔 떨림이 일어나고 있었고 혼절하여 몇시진동안 태의들이 똥개 훈련을 하도록 만들었던 황제도 반쯤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아 실뱀을 보지 않는 척 실눈을 뜨고 노려보는 중이었다.

 “의주. 그건 좀 치우는 게 좋지 않겠는가.”

 “예? 이걸 치우라고요?”

 의주는 실뱀을 자랑스럽게 들어 보이며 물었다.

 “어, 어어…….그렇게 달랑거리지 않아도 뱀인 건 알고 있으니, 내려놓고.”

 “네?”

 “내려놓으라고.”

 황제가 자못 신경질적인 말투로 명령 했지만 의주는 뱀을 내려놓는 대신에 뒷짐을 지며 뱀을 자랑스럽게 황족들과 신료들이 있는 곳을 향해 휘저었다.

 기겁한 황족들의 입에서 정돈 되지 않은 단발마의 비명이 여지없이 들려

 왔다.

 “헉-!”

 “그 뱀은 좀 , 내, 내려놓으시게.”

 “커험험.”

 “뱀을 왜요?”

 그녀는 여전히 모르는 척 하며 싱긋 웃었다.

 “죽은 건데요.”

 뱀은 그녀의 말대로 목이 부러진 듯 달랑거리는 머리와 반쯤 똬리를 틀다가 굳어버린 몸을 하고 있었지만 황족들과 대신들은 여전히 두려움을 가누지 못했다.

 “이 뱀이, 무서우십니까?”

 그러자 의주는 재밌는 듯 뱀을 들어 보이다 말고 뱀의 정수리 부근에

 입술로 뽀뽀 세례를 하기 시작했다.

 “헉-!”

 “의주!”

 “…….”

 “!!”

 모든 이들의 경악한 얼굴에도 의주는 태연한 얼굴로 황제에게 말했다.

 “페하. 이제 소녀는 별궁으로 돌아가 보아도 될는지요.”

 “그, 그러도록 하라.”

 황제는 진땀을 흘리며 허락했다.

 “그럼, 이만.”

 “저, 저, 오만 방자한 것을 봤나!”

 각개 신료들의 입에서 뒤늦은 질타가 흘러나왔지만 의주는 이미 그 자리를떠난 뒤였다.

 

 “아, 후련해!”

 대전에서부터 별궁으로 향하는 지붕을 타넘어 가는 청룡의 입가에 점점 더 깊은 미소가 자리했다.

 “이제 한동안 부르지 않겠지? 안 그래도 격식 차려서 옷 입고 허례허식을 따지느라 진이 쭉, 빠질 지경이었는데……. 잘 됐어. 정말 잘 됐어!”

 의주는 혼잣말을 한다고 하고 있었지만 커다란 목소리에 궁을 오고가는 궁인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것이 빤히 보였다.

 ‘저, 저런.’

 청룡은 그녀의 조심성 없는 행태에 소리 없이 혀를 차기 시작했다.

 잠시 후,

 청룡은 별궁 구석 방 안으로 들어가서도 가장 후미진 곳에 얇은 이불을 깔고 웅크린 그녀를 딱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후련하다 했지만 의주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녀의입에서는 깊은 탄식이 흘러 나왔다.

 “드라마에서 보면 힘든 일들은 빠른 세월 따라 휙휙 흘러가고 겉보기엔 그래도 만만한 날들이 많던데. 다들 왜 그렇게 멍청하게 당하는 건가 싶은 일들이 많은데……. 실제 겪어 보니 그렇지 않구나. 보이지 않는 힘든 일이 너무나 많아서 그렇게 힘들게 핍박 받고 당하는 거구나. 그 여자들이 멍청한 게 아니었어.”

 ‘뭐라는 것이냐.’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는 그녀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지붕에 뚫린 작은 구멍 틈으로 보고 있는 제 처지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청룡은 이 순간 절박하게 그녀를 달래고픈 심정이었다. 동굴 안에서는 태연하게 그녀를 궁 안으로 들여보낼 수 있었건만,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주변과 동떨어진 채 떨고 있는 그 모습을 자꾸만 보게 되면서 저도

 모르게 짠한 마음을 품은 듯 했다.

 ‘지금이라도 달래 줄까?’

 청룡은 그녀가 잠든 틈에 조용히 뱀 허물로 만들어진 독과 비밀 서신을 쥐어주고 사라지려던 종전의 생각을 뒤집고 은밀히 그녀 앞에 나타났다.

 “울고 있는 것이냐?”

 “헉-! 깜짝이야. 여, 여긴 어떻게 들어오신 겁니까?”

 “왜? 내가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면 구멍이라도 막아버릴 테냐?”

 청룡은 마음과 달리 불퉁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그런 것이 아니오라…….”

 당황한 의주의 얼굴을 보며 청룡은 자신이 들고 온 주머니를 무심히 던졌다.

 “가져라.”

 “이것이……. 무엇이옵니까?”

 그는 아주 천천히 그녀를 내려다보다 말고 무심하게 대답했다.

 “독이다!”

 “예? 뭐, 라고요?”

 “독이란 말이다. 아무도 쉬이 알 수 없는 독. 아직은 네가 그리 큰 암투에 휘말리지 않았다만, 앞으로도 그러리란 법은 없으니. 방비 해 두어라.”

 “도, 독으로 말이옵니까?”

 “그래. 내가 알려 준 방법대로만 한다면 아무도 네가 독을 쓰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고, 너는 손쉽게 정적을 제거 할 수 있을 것이니라.”

 청룡은 놀라누 눈을 뜨고 있는 그녀 앞으로 다가가 뱀 껍질 독의 조제법과 주의점을 조곤조곤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뱀 껍질 독은 아주 미량을 꽃차나, 꽃의 기름과 합쳐지면 독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 말은 즉, 그냥 놔두면 하얀 가루에 불과하지만 꽃과 꽃 기름을 아주 많이 사용하는 이들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는 극독이라는 말이다. 이 독은 말이다. 아주 소량을 차에 섞어 마시게 하면 토사곽란과 가려움증을 일으킨다.”

 의주는 살짝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조금 더 많이 집어넣고 걸쭉한 죽처럼 만들어서 사용하게 되면 토사곽란 중에 오장육부가 서서히 녹아 간헐적으로 피를 토하기도 하고, 온 몸에 부스럼이 생기다가 종국엔 괴질로 변화한다.”

 “괴질이요?”

 “그래. 허나, 태의는 알지 못할 것이다. 단순 괴질로 알다가 시일을 놓치며 종국엔 죽음을 초래하게 되겠지.”

 “…….”

 그러면서 청룡은 그녀의 주변을 살피듯 휘돌며 코를 킁킁 거렸다.

 “흐흠. 너는 아직 그리 궁에 찌들지 않았나보구나.”

 “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어리둥절해 하는 그녀에게 청룡은 서늘하게 대답했다.

 “앞으로도 이렇게 지내라.”

 “…….”

 “꽃차와, 꽃 기름을 사용하지 말고 다른 것으로 대체해 사용 한다면 앞으로도 네게 이 독은 아주 안전한 뱀 껍질일 뿐이니.”

 의주가 고개를 주억거리자 그는 안심 한 듯 그녀의 머리를 몇 차례 쓱쓱 매만지며 말했다.

 “궁에서 살아남으려면 심계가 깊어야 할 것이다. 지금도 나쁘지 않으나, 앞으로는 조금 더 조심스럽게 저들의 동태를 살피고 심계를 더욱 더 깊이 품어야 할 것이다.”

 “그럼 소녀가 어찌 하면 좋겠습니까?”

 의주는 약간 두려운 듯 반문했다.

 “네가 은밀히 모으고 있는 사람들처럼, 그런 궁인들을 아주 많이 모아야 할 것이다.”

 그녀가 놀란 듯 작게 소리쳤다.

 “아, 아십니까?”

 “안다.”

 “어찌…….”

 “보았느니.”

 의주가 입을 빠끔거리는 것을 보며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너를 벌하려고 이러는 것이 아니다. 잘 했다는 것이야.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잘 해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의주의 눈이 일순 혼란을 담았다.

  ***

 

 

 한동안 황제와는 가급적 멀리 떨어져 있어라.

 청룡의 말이 아니었더라도 황제와는 철저히 분리 되어 있었다. 이미 뱀을 한 손으로 잡아서 황제를 혼절에 이르게 만들었기 때문인지, 친해졌다고 믿어왔던 주변 궁인들은 물론 황궁 내 후궁들에게도 철저히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황제가 혐오감을 누르고 부득불 나를 찾지도 않겠지만, 황제의 관심이 아직 남아있다 하더라도 후궁의 사람들이 가만 놔둘 리가 없다.

 사람 몇 명은 우습게 죽이는 황궁의 사람들이 뱀 하나를 두려워해서 그 뱀을 죽인 여자를 혐오감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줄은 정말 몰랐지만. 어쨌든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몸은 많이 고되지만.

 “아, 근데…….왜 이렇게 일이 많아? 해도 해도 안 끝나네.”

 한숨이 비어져 나온다. 옷더미가 벌써 두 번이나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것도 매번 다섯

 덩어리씩. 그 중에 두 덩어리는 어마어마하게 두껍고 무거운 솜 이불더미였는데, 찬물에

 방망이로 팡팡 치고 발로 치대어 시커멓게 들어 있는 속 때까지 깨끗하게 빼고 난 뒤에

 보송보송한 냄새가 날 정도로 바짝 말려서 가져 오란다.

 그것도 하루 안에.

 이 무슨 심술인가 싶지만 인간을 죽이는 것보다 뱀을 죽이는 것을 더욱 간악하고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이 궁 안의 사람들 심성을 생각하면, 뭐……. 딱히 이상할 것도 없긴 하다.

 내가 사는 세상기준으로 보자면 너무나 황당한 일이지만.

 거의 세 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빨래를 해치웠더니 허리가 찌뿌둥하다 못해 똑 끊어져

 버릴 것 같다.

 “으으으……. 만세! 다 했다.”

 “다 했느냐?”

 “에, 예? 네…….”

 어디 숨어 있다가 나타났는지, 엄한 표정의 상궁이 이번엔 몇몇 궁인들에게 일러 또 한

 무더기의 옷감을 가져와 빨래터 안쪽에 내려놓는다.

 “이, 이건 또 무슨……. 빨래를 더 하라고요?”

 “아니다.”

 “그러면요?”

 “일각이 될 때까지 이곳에서 이 옷감 모두를 수선해라.”

 “일각 동안, 이 옷을 다…….요?”

 “그래.”

 환장 한다.

 ‘이걸 혼자 어떻게 하라고!!’

 “설마, 이, 이걸 제가 혼자 다 해야 하는 건가요?”

 “그렇다.”

 매정한 대답이 날아왔다.

 “정말 제가요?”

 “그렇대도!”

 이제는 신경질적이기까지 한 상궁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입이 봉해지고 만다.

 ‘하…….이를 어쩐다.’

 그나마 빨래는 이 몸의 주인이 워낙 통통하고 다부진 몸이라 발로 꾹꾹 누르고 억지로 힘을

 내어 치댔으니 어찌 어찌 제 시간에 해결이 났다지만, 바느질은 또 다른 문제다.

 ‘이 몸은 엄청난 곰손이란 말이다!’

 무려 가정 시간에 올 빵을 맞을 정도로 엄청난 둔재였던 몸인데, 아무리 몸의 주인이 월등한

 실력을 갖고 있더라도 영혼이 바뀐 이상, 바느질을 일각 안에 말끔히 해낸다는 것은 다분히

 무리일 듯싶었다. 그런데 이런 나보고 저 많은 옷들을 수선 하라니. 어쩌면 후궁 내의 높은

 분들이 작정하고 괴롭히려 드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심증이 들었다.

 ‘아이 씨! 차라리 이 참에 뱀독을 확, 풀어 버릴까?’

 사악한 마음이 잠시 들었지만 이내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궁 안에서 많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 일이 뭔데요?

 나의 물음에 청룡은 비밀스런 미소를 지으며 내 볼을 톡톡 두드렸다.

 궁금해 하지 말고 뱀독이나 잘 갖고 있어라. 근자에 네게 큰 도움을 줄 터이니.

 옷 속 깊숙이 숨겨진 향낭에는 꽃 대신에 사향노루의 똥 약간과 꽃에 반응하면 독이 되는

 뱀 껍질 가루가 딱 한 덩어리 들어있다.

 처음엔 구린 내 나는 사향노루의 똥을 향낭 속에 넣는다는 말에 기겁 하며 거부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 설득되어 버렸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황제의 관심에 시달리고 싶은 것이냐?

 절대 아니었다. 간절하게 황제의 관심을 피하고 싶었던 나는 크게 도리질을 쳤고, 그는 역시

 비밀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유쾌하게 속삭였다.

 사향이 사내의 마음을 잡는 것은 알고 있느냐?

 그건 당연히 알고 있었다. 사극 드라마를 비롯한 매체에서 기생들이 애용하는 것이 사향이었

 으니. 동시에 실제로 사향이라는 것을 접한 후엔 기겁해 버렸지만, 어쨌든 알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청룡은 그런 내 마음을 안다는 듯이 소리 없이 웃으며 말했다.

 사향은 사내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것이지만, 역시 뱀 허물의 가루와 반응 하면 사내

 의 마음이 멀어지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 그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상극의 독이니까.

 청룡은 그렇게 말하며 거침없이 옷고름을 풀어 그 안에 향낭을 밀어 넣었다. 그것이 바로 이

 틀 전이었는데, 향낭의 효과를 확인 해보기도 전에 황제에게서 이미 이런 반응이 왔다는 것은

 뱀을 죽인 여자라는 타이틀이 보통 정 떨어지는 타이틀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너무 힘들잖아, 이거!’

 끔찍한 일감에 당장이라도 두 손 들고 항복을 하고 싶어졌다.

 ‘눈 딱 감고 저팔계 같은 그 황제의 침전으로 들어가면…….아, 아냐! 그건 안 되지.’

 육체의 피로함과 궁인들의 냉대에 자꾸만 마음이 약해져간다.

 ‘후…….이럴 때 누군가 말동무라도 되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드라마에서는 이쯤에서 도와주는

 인물들도 있던데. 난 어째서 도와주는 인물 하나 없는 것이고. 정말 인생무상이구나. 인생

 무상이야.’

 근처에 있는 길쭉한 나무의 가지에서 튼튼한 줄기를 뜯어내어 수선해야 하는 옷더미를 한 데

 묶고 별궁으로 향했다.

 질질 끌어서 오는데도 워낙 많은 옷감이라 들고 오는 내내 온 몸에서 비지땀이 솟아 올랐다.

 “헉, 헉, 헉, 내가 무슨 영화를 보자고 이런 개고생을 하나. 내가 이러려고 이 세계로 온

 건가. 자괴감이 들고 막 그러네.”

 “큭.”

 ‘아니, 이 목소리는?’

  ***

 

 

 

 

 

 

 

 

 

 
 
자신만의 이미지를 등록해보세요
만우절재방송 17-01-01 18:34
 
* 비밀글 입니다.
     
자신만의 이미지를 등록해보세요
야광흑나비 17-01-03 01:22
 
* 비밀글 입니다.
          
자신만의 이미지를 등록해보세요
야광흑나비 17-01-03 01:25
 
* 비밀글 입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공지 등장인물 소개. 2016 / 10 / 6 1178 0 -
21 20. 위청룡의 심계. 2016 / 12 / 6 463 0 2403   
20 19. 황궁 입성. 2016 / 12 / 4 447 0 3319   
19 18. 황궁 입성. 2016 / 12 / 1 509 0 2331   
18 17. 황태후의 모략. 2016 / 11 / 24 506 0 4995   
17 16. 황태후의 모략. 2016 / 11 / 21 499 0 4216   
16 15. 첫 살인. 2016 / 11 / 20 379 0 2714   
15 14. 첫 살인. 2016 / 11 / 17 428 0 5427   
14 13. 암투, 그리고 밀회. 2016 / 11 / 16 452 0 3381   
13 12. 암투, 그리고 밀회. 2016 / 11 / 9 763 0 11989   
12 11. 암투, 그리고 밀회. (3) 2016 / 11 / 9 707 1 10270   
11 10. 소리 없는 암투의 시작. (2) 2016 / 10 / 14 1418 1 19447   
10 9. 혼인식 패착. (2) 2016 / 10 / 12 725 1 5589   
9 8. 혼인식 패착 (2) 2016 / 10 / 12 627 1 5545   
8 7. 진정한 도움은 상대가 모르게. (6) 2016 / 10 / 10 881 0 5435   
7 6. 진정한 도움은 상대가 모르게. (2) 2016 / 10 / 8 693 2 5177   
6 5. 혐오스러운 황제페하. (2) 2016 / 10 / 7 771 2 5825   
5 4. 혐오스러운 황제 페하. (2) 2016 / 10 / 6 738 2 5084   
4 3. 동굴에서 만난 스님. (2) 2016 / 10 / 5 785 2 8984   
3 2. 여의주. 용의 나라로 소환 되다. (2) 2016 / 10 / 4 714 2 6650   
2 1. 여의주. 용의 나라로 소환 되다. (7) 2016 / 10 / 3 852 2 7174   
1 프롤로그 (6) 2016 / 10 / 1 1200 3 569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남다른 미남 구
야광흑나비
호박 속 미녀
야광흑나비
한없이 부자연스
야광흑나비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