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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경계
작가 : 강이안
작품등록일 : 2023.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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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경계선 안쪽에서 살다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 밖을 넘게 될 상황에 처하면서 경계하고 그 경계하던 태도가 차차 변화하는 모습을 탐구해보려 노력했습니다. 경계선 바깥과 안을 넘나들다 결국엔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입장에 공감해보셨으면 좋겠네요. 그럼 책 재미나게 읽어주세요. 감사합니다.

 
경계 - 36
작성일 : 23-06-08 14:12     조회 : 195     추천 : 0     분량 : 5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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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개나리 - 희망

 

  죽 늘어선 진열대. 물건 하나 사려는데 이렇게 선택의 여지가 많으면 고르기 위해 허비하는 시간이 더 늘어난다. 고르지 못해 주저하는 건 그만큼 선택 결과에 대한 기대가 커서 그렇다는데, 그래도 이왕이면 싼 가격에 더 나은 제품을 사야 기분이 좋다. 동일한 제품을 누군가 나보다 싸게 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언제나 속이 쓰리다. 쇼핑이라는 게 그렇다. 이것도 어찌 보면 경쟁심리인 건가. 어째 당사자인 나보다 옆에 있는 다홈이가 더 신이 났다.

  “이거 속에 덧대서 그거랑 같이 입으면 되겠네. 아무리 여름이라지만 밤에는 추울 수도 있어.”

  “그럴까?”

  “어, 보라색도 괜찮네. 주황이 더 화사하긴 한데.”

  제주도 가서 입을 옷가지도 살 겸 다홈이와 마트에서 만났다. 처음 염두에 둔 건 서너 가지였는데 다홈이가 자꾸 부추기는 바람에 구입 품목이 늘어나고 있다.

  “나 이러다 아주 이사가버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어쩌다 짐이 이렇게 늘었지.”

  “그거 괜찮네. 이참에 시댁 식구들 가까이서 보지 않아도 되고 제주도로 옮기는 건 어때?”

  말문이 막힌다. 시댁 식구들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만 단지 그런 이유로 큰 결정을 내릴 수는 없지.

  “널 못 보잖아. 그러면 상사병에 걸릴 수도 있어서 안 되겠어.”

  “그런가. 나도 함께 이사해버릴까?”

  “택수는?”

  “따라오라고 하지 뭐.”

  “너 말처럼 모든 일이 쉽게 쉽게 이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머리 아플 리 없겠지.”

  싱겁게 픽, 하고 웃음을 터트린다.

  “상상이라도 근사하잖아. 가고 싶을 때 아무데나 가버리고 하고 싶을 때 아무거나 해버리고.”

  “그러니까 상상이지. 현실은 현실이고.”

  “잠깐만. 바지가 하나 더 필요하지 않겠어?”

  “야, 야, 야. 그만하자, 그만해. 이러다 정말 거덜나겠다. 나 배고파. 식당 가서 밥 먹자.”

  지하에 있는 식료품 매장으로 향한다. 다홈이가 우동이 먹고 싶다고 해서 우동 파는 곳으로 골랐다. 어묵 삶는 냄새가 식욕을 더욱 부추긴다.

  “시댁이랑 얘기가 다 된 거야?”

  물컵에 담긴 물이 시원해서 좋다. 목을 축이고 나서 냅킨으로 입술을 훔쳤다.

  “난리가 났지. 시어머니가 가장 방방, 뛰셨어. 이 상황에 일주일이나 어딜 간다니 그게 말이 되냐고, 네가 아주 미쳐 날뛰는구나, 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더라. 내가 보기엔 본인이 날뛰시던데.”

  다홈이가 웃자 나도 함께 웃는다.

  “안 봐도 뻔하다. 그 어른이 널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나셨겠지. 현무 아빠는?”

  “물끄러미 보기만 하더라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궁금해 하는 것처럼. 오히려 시아버님이 편을 들어주셨어.”

  “뭐라고?”

  “어디 가서 머리 식히고 오는 게 나쁘지 않겠다고. 그럼 생각도 정리 될 거고 더 차분히 상황을 정리할 수 있을 거라고. 가족 전체가 반기는 분위기는 절대 아니었는데, 그럴 거라 예상하고 가서 많이 힘들진 않았어.”

  “만약, ……, 정민 씨가 함께 간다는 걸 알았다간 아주 뒤집혔겠다.”

  조금 더 큰 웃음소리가 목에서 튀어나온다. 그게 상상이니까, 웃을 수 있다.

  “당장 머리채부터 잡히지 않았을까. 모르긴 몰라도 현무 아빠도 가만히 있진 않았을걸. 어떻게든 정민 씨 찾아내서 대거리를 했겠지.”

  “어째 상상만으로 속이 시원한대.”

  “속이 시원해?”

  “쌤통이라고. 그렇게 너네 시댁한테 한 방 먹이는 거지.”

  “그런가? 애초에 시댁이랑 싸움을 하겠다는 의도는 없었어. 다 내 잘못이기도 하니까.”

  주문한 우동과 어묵꼬치, 튀김이 나온다. 다홈이가 어묵을 하나 집어든다.

  “언제 출발해?”

  “월요일 떠나서 월요일 돌아와. 급하게 비행기표를 구하려니 그게 쉽지 않더라고. 주말 표는 이미 모두 동났고.”

  “그렇겠지. 주말에는 엄청 붐비는 것 같더라.”

  “차라리 잘됐다 싶어. 사람 적을 때 가고 오고 하니까.”

  “정민 씨는 뭐래?”

  야채튀김을 집어 입에 물었다. 바삭한 튀김옷이 씹히고 이어서 향긋한 야채 내음이 전해진다.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지. 오히려 이 여자가 무슨 생각인가, 염려하는 듯도 하고.”

  “놀랐겠지. 나도 네가 정민 씨랑 함께 가겠다고 했을 때 솔직히 놀랬어.”

  “이 여자가 무슨 생각인가 하고?”

  “그래, 이 여편네가 생각이 있기는 한가 염려됐어.”

  깔깔깔. 동시에 터지는 웃음. 주방에서 요리하던 아주머니가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쳐다본다.

  “너한테 너무 고마워.”

  “고맙기는. 해준 것도 없는데.”

  “다해줬잖아. 제주도도 알려줬고.”

  “그래서 더 걱정이다. 괜히 제주도라는 장소를 꺼내가지고.”

  “아니야. 어쩌면 그게 신호였나봐. 떠나라는. 멀리 가보라는. 그래야 돌아올 거 아니야. 가지도 않았는데 돌아올 수는 없으니까.”

  “돌아오는 거지?”

  그 걱정스러운 눈빛은 뭐냐고.

  “왜, 안 돌아올까 걱정돼? 아예 이사가버리라고 할 땐 언제고.”

  “걱정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이 언니가. 어찌나 마음이 안 놓이는지.”

  이게 가장 가슴이 아프다. 주변 사람들, 걱정시키고 마음 힘들게 하는 거.

  “괜찮아, 다홈아. 나 이제 웬만해선 끄떡없을 정도로 진정이 됐어. 지금 계획하는 일도 충동적으로 진행시키는 거 아니야. 믿어줘. 새로 시작하기 위해서 완전히 깨끗하게 정리하려고 그래.”

  “너, 완전히 깨끗하게 정리하려는 게 사실 좀 불안해.”

  “불안? 극단적인 선택이라도 할까 봐?”

  옅게 미소짓는 내 볼을 톡, 건드린다.

  “굳이 동반자살은 아니더라도 동반도주라도 할 줄 모르지.”

  젓가락에 걸린 우동 면발이 두툼하다. 한 번에 삼키질 못하겠어 이빨로 끊어 넘겼다.

  “도주할 거면 차라리 현무 아빠한테 헤어지자고 할걸. 내가 항상 하는 말이잖아. 마트 절반은 내 거라니까.”

  이번엔 다홈이 혼자 소리내어 웃는다.

  “그러니까. 동반, 이라는 말 들어가는 행동은 하지 않는 거다.”

  동반, 이라. 정민 씨와 동반으로 할 게 있긴 하다.

  “그건 다짐 못하겠어.”

  “네가 꿍꿍이가 있긴 있구나.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동반자살이나 동반도주 말고 또 뭐가 있는 거지?”

  “그리 거창한 건 아니고.”

  어째 그 이야기를 꺼내려니 쑥스럽다.

  “어라, 너 얼굴 붉힌다. 무슨 수상쩍은 짓을 하려고?”

  면을 삼키고 나서 국물을 들이켠다. 시원하게 우려낸 국물에서 감칠맛이 난다. 이건 엠에스지를 쓴 걸까? 난 엠에스지 중독자라서 이런 맛에는 사족을 못 쓴다.

  “있잖아, 만약 너한테 한 번 더 결혼생활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어?”

  “뭐어?”

  “이왕 그런 기회가 주어졌으니 네 기준에 딱 들어맞는 사람과 마음에 드는 곳에서 맘껏 신혼 기분을 내보지 않겠어?”

  “그게 이왕이면 그렇겠지. 결혼이라는 게 일방적인 절차는 아니니 상대방과 마음이 맞아야겠지만.”

  “정민 씨랑…….”

  다홈이가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주저하며 다음 말을 이었다.

  “신혼생활을 해볼까 하고.”

  눈만 끔벅, 거린다.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걸릴 거라 예상했다. 앞에 놓인 그릇을 들어 입으로 가져간다.

  “앗, 뜨거.”

  “어머, 괜찮아?”

  “물 마신다며 내가 그만 우동국물을 마셨다, 얘.”

  황급히 물컵을 들어 그 안에 든 내용물을 완전히 비운다.

  “혀 데었겠다.”

  “네가 사람 얼을 빼놓으니까 그렇지! 신혼생활이라니? 설마, 너 진짜로 제주도에서 따로 살림이라도 내려고?”

  이번엔 나 혼자 소리내어 웃었다. 그게 웃을 일이냐, 며 다홈이가 눈을 흘긴다.

  “부뚜막에 올라간 고양이가 아예 내려올 줄을 모르네. 이것이 하다하다 아주 끝장을 보려고 한다.”

  “아니야, 그런 거 아니고. 내가 두 집 살림할 능력도 안 되고. 딱 일주일만 부탁했어. 나랑 부부처럼 지내보자고.”

  “그랬더니 그 사람이 허락해?”

  “처음엔 너처럼 반응했어. 내 말을 이해를 못하더라고. 그 예리해 보이는 사람이 말을 다 더듬더라.”

  “그게 그 사람 탓할 건 아니지. 너는 애가 평소엔 얌전히 고분하게 지내다 한 번씩 이렇게 속을 뒤집는다. 아주 제대로.”

  다홈이가 두 번째 꼬치를 집으며 갑작스레 웃음을 터트린다.

  “들을 땐 놀랬는데 생각해보니까 아이디어 좋은데.”

  “네가 한 말이 틀리지 않을 수도 있어.”

  “어떤 말?”

  “끝장을 보려고 한다는.”

  “야, 내가 극단적으로 놀지 말랬지!”

  “그런 거 아니라니까. 자꾸 예민하게 반응하니까 뭔 말을 못하겠다.”

  “사람 걱정시키니까 그러지.”

  나도 물잔에 든 물을 주욱, 들이켜 잔을 비운다.

  “미안해. 내가 걱정 많이 시켰지? 믿어줘. 허튼 짓은 절대 하지 않을 테니까.”

  “그 끝장이라는 게 뭔데?”

  “네가 걱정하듯 그런 극단적인 행동은 아니고. 그렇게 정민 씨랑 일주일 보내면서, 부부로 지내보면서, 감정을 저 바닥까지 들춰보려고. 그러면, 그 끄트머리에서 실체가 보이지 않을까 싶어. 내가 살고 싶어 하는 삶의 실체가.”

  다홈이는 꼬치에 끼인 어묵을 끝내고 앞에 놓인 야채튀김을 두 조각으로 잘라 하나를 입으로 가져간다. 천천히 씹는 동안 말이 없다. 어째 우리 입장이 뒤바뀐 듯하다. 이런 사람 놀래키는 행동은 다홈이가 주로 하는 거고, 그런 모험담을 들으며 놀라는 행동은 주로 내가 하는 건데. 살다보면 별일이 다 있다더니, 이렇게 완전히 입장이 뒤바뀌기기도 한다. 누군가 일 년 전에 내가 일 년 후 지금 같은 상황에 처할 거라 예언한다면 코웃음을 치며 들은 척도 하지 않았을 거다. 일 년 전에는 일면식도 없던 남자와 함께 제주도로 향하는 내 모습이라니. 역시 사는 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 그래서 더욱 그와 제주도로 가서 시간을 보내야겠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어디로 향할지 알 수가 없으니 그 순간을 최선을 다해 붙잡는 수밖에. 그럼 후회하더라도 그 후회의 질이 다르겠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손에서 다 놓쳐버리고 후회하는 거랑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다 넘어져서 후회하는 거랑은. 그래, 그러려고 제주도로 향한다. 넘어지지 않고 버티든, 넘어져서 일어나는 법을 배우든. 거기 가서 넘어져보면 최소한 일어나는 법은 배우겠지. 그것만으로 제주도 간 보람은 있을 거다. 그럼, 조금이나마, 현실을 직시할 마음의 준비가 더 돼 있겠지. 아주 많이는 아니라도 손톱만큼이라도. 그 손톱만큼도 지금은 간절하다. 워낙 내 속에 남은 게 없어서. 가서 자라 오는 거다. 키 크기 위해 우유를 마시듯 속을 키우기 위해 제주도 공기 듬뿍, 마시고 올 거다. 열심히, 듬뿍, 듬뿍.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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