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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경계
작가 : 강이안
작품등록일 : 2023.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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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경계선 안쪽에서 살다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 밖을 넘게 될 상황에 처하면서 경계하고 그 경계하던 태도가 차차 변화하는 모습을 탐구해보려 노력했습니다. 경계선 바깥과 안을 넘나들다 결국엔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입장에 공감해보셨으면 좋겠네요. 그럼 책 재미나게 읽어주세요. 감사합니다.

 
경계 - 34
작성일 : 23-06-06 14:37     조회 : 201     추천 : 0     분량 : 4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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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대나무 – 인내

 

  익숙했던 내 집이 어째 낯설다. 항상 지나치던 거실 문이 어쩐지 생소하고 욕실 서랍장 위치가 바뀐 듯 다가온다. 그새 남편이 집 구조를 바꿨을 리도 없는데 그렇다. 쉬러 가야겠다, 라고 마음은 정했는데 쉬는 것조차 그냥 허투루 할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온 날엔 당장이라도 짐을 싸서 나갈 마음이었지만 챙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거기다 목적지를 정해야 하고 짐을 싸야 하고 주변에 알려야 했다. 남편은 집에 돌아온 나를 발견하고 놀란 얼굴을 했지만 딱히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평소대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내가 차려놓은 음식을 먹었다. 잠만 옆방에서 자는 걸 빼곤 달리 행동하지 않았다. 현무는 보이지 않는다. 아예 며칠간 시댁에 맡겨놓은 모양이다.

  나도 평소처럼 행동하려 하는데 자꾸 뭔가를 빠뜨리거나 놓친다. 쉬러 간다, 는 결심이 머리 한켠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다른 생각이 들어올 자리를 내주지 않아서 그런지 할 일을 깜빡하게 되고 손이 제멋대로 놀아난다. 벌써 그릇을 몇 개째 깨뜨렸는지. 초조해지려는 가슴을 열심히 누르고 있다. 서두르면 안 된다.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시간관념도 흐릿해진다. 얼마 걸리지 않았다 생각했는데 서너 시간은 이미 지났고, 날짜가 헷갈려 달력을 확인하니 그 날짜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렇게 지나갔어? 내 허둥거리는 모습을 남편이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다. 그냥 모른 척하는 것뿐. 그러다 더 이상 참지 못하겠는지 싫은 소리를 건넨다. 그게 듣기 상당히 수치스러운 말이었다.

  “당신, 샤워 언제 했어?”

  “왜?”

  “몸에서 냄새 나.”

  멈칫, 하며 머리를 매만졌다. 옷자락을 끌어당겨 냄새를 맡았다. 그저 익숙한 체취인데. 그렇다고 그를 비난할 수 없었다. 나조차도 내가 언제 마지막으로 샤워를 했는지 기억이 가물하다. 내가 이런 단계까지 하락했구나, 자조하며 서둘러 욕실로 향한다. 이러다 얼마나 더 망가질런지. 어서 수를 내야겠다.

  남편이 밖으로 나서는 기척에 눈을 떴다. 일하러 간다고 알리는 인사는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따뜻한 음성을 들은 적이 언제였더라. 요즘엔 아침 시간이 순식간에 흐른다. 조금 허둥대면 금세 정오고, 그러다 보면 저녁 준비할 시간이 다가온다. 화원에 전화를 했다. 예슬이가 받는다. 안부를 묻자 내가 괜찮은지 안쓰럽게 되물어온다. 일은 어떠냐며 묻는 말에, 주저하며 웅얼거린다.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고, 임시직원이라고 강조한다. 그렇게 미안해 할 필요 없는데. 당연하다. 비는 자리는 얼른 채워야지 안 그러면 남은 사람이 두 배로 고생한다. 얼른 쾌차해서 나오라고 거듭, 반복하길래 고맙다며 통화를 마쳤다. 예슬이가 달리 뭐라 하겠는가. 오히려 미안했다. 내 전화를 받기 어색할 텐데.

  별안간 울리는 초인종. 이 시간에 찾아올 방문객이 없는데. 순간, 가슴이 서늘하다. 설마 시댁에게 누가 온 건가. 가장 무서운 얼굴을 할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다. 시어머님, 아님 시누이? 달리 숨을 자리는 없다. 주저하며 문을 열자, 다홈이가 서 있다.

  “여은아!”

  별다른 말을 하기 전에 우선 나를 꽉, 끌어당겨 안는다. 신이 주신 선물이지.

  “너 괜찮아, 괜찮아? 에휴, 얼굴 봐라. 완전 팍, 상했네. 어쩌면 좋아, 얘.”

  양손에 불룩한 보따리. 무얼 그리 가져왔는지. 여기까지 오면서 날 먹이겠다고 저리 준비했다.

  “미안해, 여은아. 그날, 너 나한테 수차례 전화했었지. 택수가, 교통사고가 났었어.”

  “교통사고?”

  “응.”

  눈가가 젖는다. 나 때문인지, 아님 택수 때문인지.

  “걔가 사고가 난 후에 날 찾았어. 내가 이제 가족보다 더 편한가봐.”

  웃기는. 그 미소가 보기 좋다. 다홈이가 웃는 걸 보는 것만으로 좋았다. 내가 웃은 적은 얼마나 됐는지 가물거린다. 현무 아빠도 더 이상 웃어주지 않아 웃음이 그리웠다. 간절히.

  “가벼운 뇌진탕이라 들어서 안심하고 병원에 도착했는데 그만 의식을 잃어버렸다는 거야. 얼마나 놀랬던지. 정신 차리고 보니까 네 번호가 부재중 통화로 수십 번 떠 있더라. 미안해, 여은아. 내가 간절히 필요했을 텐데.”

  “택수는 괜찮아?”

  “별 거 아니라며 금방 퇴원하려다 그렇게 혼절해버리니까 병원측에서 더 두고 보자고 붙잡아두더라고. 며칠 입원해 있다 퇴원했지. 이제 괜찮아 보이긴 한데 당분간 조심하라네. 혹시 모른다고.”

  “너 나하고 있을게 아니라 택수한테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혹시 몰라 그러는 거지 딱히 아픈 곳은 없어. 내가 보기엔 네가 더 힘들어 보여. 너, ……, 심하게 당했니?”

  경찰서까지 갔다는 말은 꺼내기 그랬다.

  “오늘 처음 찾아온 거 아니야. 이전에도 너 보러 왔더니…….”

  “왔었어?”

  “네 남편이 네가 누굴 만날 상태가 아니라고 하더라고.”

  “여기까지 왔는데 널 돌려보냈어?”

  그렇게 모진 사람이 아닌데 마음이 단단히 상하긴 상했나 보다.

  “다홈아, 내가 미안해. 나 때문에 너까지 미움받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무슨. 나야 미움받아도 안 보면 그만인데 너는 그렇지 않잖아. 너 정말 괜찮아?”

  날 보는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린다. 괜찮다, 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거짓말을 해서라도 안심시켜주고 싶었다.

  “뭘 이렇게 잔뜩 가져왔어? 집에 있는 냉장고 싹, 비웠냐?”

  “제대로 챙겨 먹지도 못하고 지낼 거 같아서. 내 예상이 틀리진 않은 듯하네. 그런데 현무는?”

  솔직히 나도 모른다. 현무 아빠에게 물어볼 엄두를 내지도 못했다. 그도 난 알 자격도 없다는 듯 말해주지 않고. 슬쩍, 고개를 저었다. 아무렇지 않게 다홈이가 가져온 짐꾸러미를 풀고 그 내용물을 부엌으로 가져간다.

  “냉면 재료네. 마침 잘 됐다. 시원한 거 먹고 싶었는데.”

  “여은아.”

  “동치미 국물이구나. 냉동실에 넣어놨다 꺼내야겠네.”

  “여은아아.”

  “열무김치가 남아있던가. 그거 함께 넣어 먹으면 진짜 맛나는데.”

  “넌 현무 엄마잖아.”

  손이 멈춘다. 차마 눈은 마주치지 못하겠다. 불안하게 흔들리며 날 보던 눈빛이 너무 처연했다. 마주보면 날 아예 통째로 휘감아 버릴지도.

  “엄마가 애가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는 있어야지. 난 애 안 키워봐서 확실치는 않지만 엄마 마음이, 타들어 가겠지.”

  “내가 감히 마음 챙길 자격이나 있겠어.”

  다홈이가 일어나서 내 곁으로 다가온다. 파를 썰던 내 손을 잡아 올린다.

  “나랑 현무 데리러 갈래?”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려 했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다. 손이 떨리는 걸 어쩔 수가 없다. 다홈이가 그걸 가슴 한가운데로 모은다.

  “괜찮아, 여은아. 떨리면 떨어도 되고 슬프면 울어도 돼. 참는다고 다 능사가 아니야.”

  “현무는, 당장은 보기 힘들 듯해. 일단 나부터 챙기고 그래야 애도 제대로 챙길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너부터 챙긴다고?”

  “있잖아. 세상엔 좋은 사람도 참 많은 것 같아. 나 처음 보는 분한테서 되게 좋은 말 들었다. 나락에 떨어진 기분이었는데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크게 위로가 됐어.”

  “어, 어떤 말이었는데?”

  “몸과 마음을 따로 보지 말고 함께 돌봐야 한대. 몸을 함부로 대하면서 마음이 건강하길 바라는 건 잘못이래. 내가 몸 상태가 엉망이잖아. 몸부터 회복시켜야 마음이 진정되고 머리가 정상적으로 돌아간다고.”

  “몸을 어떻게 회복시키려고?”

  “지칠대로 지쳤잖아. 피곤한 몸을 회복시키려면 쉬어야지.”

  “쉰다고?”

  “쉬었으면 해. 얼마간 아무것도 고민하지 말고 그저 쉬다 오려고 해. 사실 너한테 의견을 물어보려고 했어. 쉬러 가기 좋은 곳이 어디일까? 난 제대로 쉬어본 적도 없어 떠오르는 곳이 없네.”

  내 말에 황당, 하고 난감, 하고 고민, 하는 표정이 차례로 떠올랐다 사라진다.

  “음, 쉬러 가는 곳이 보통 휴양지잖아. 우리나라 대표 휴양지가 어디려나. 제주도쯤 되려나.”

  “제주도?”

  “아니 말이 그렇다고. 제주도를 가라는 건 아니고.”

  제주도. 가본 적 없고 가볼 생각도 못해본 곳이다.

  “안될 것도 없지.”

  “뭐어?”

  “그럴까? 제주도?”

  “정말?”

  그렇게 정해버렸다. 나에겐 어디든 큰 차이는 없었다. 이왕 떠나버릴 거면 아주 멀리 가봐도 좋겠지.

  “한 가지만 더 물어볼게. 이게 더 중요한 거야.”

  “나 이제 슬슬, 두려워진다. 얼마나 중요한 걸 물어보려고.”

  “쉬면서 아주 매듭을 지어버리려고 해.”

  “뭘?”

  “정민 씨랑.”

  갑자기 다홈이가 무척 귀여워 보인다. 눈과 입이 동시에 동그랗게 변한다. 놀라서 그런 거겠지.

  “이 상황에 그 인간은 왜?”

  “완전히 끝을 보려고.”

  “확실해? 진짜로 괜찮겠어?”

  “그래서 물어보는 거야. 네 의견은 어떨까 해서. 그 사람에게, ……, 함께 가자고 제안하려고.”

  이제 황당한 표정만 다홈이 얼굴 위에 남아있다. 그게 사라지질 않는다. 나도 무척 황당했다. 그 생각을 떠올렸을 때. 다홈이는 오죽할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또렷해졌다. 마음이 진정되고 머리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길 기대하며 몸을 쉬어주는 거니, 진정된 마음과 정상적인 머리로 결론을 내리는 게 최선일 듯했다. 도 아니면 모였다. 질질, 끌려다니는 것도, 주저하는 것도, 겁에 질려 어쩔 줄 모르는 것도, 더 이상은 싫었다. 내 선택에 후회할 수도 있겠지만 그 선택이 지금 상황에서는 최선일 거다. 다홈이에게 묻고 나서 미안해졌다. 어차피 결심이 섰다.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다. 그렇지만 묻고 나니 가슴이 더 확고해진 건 사실이다. 제주도로 가야겠다. 그와 함께 가야겠다. 그곳에서 다 드러내서 결판을 지어야겠다. 그럼 최소한, 한 가지는 확실해지겠지.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그게 옳든 그르든 우선은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가고 푹, 꺼져버릴까 무섭다. 가자. 가서 쉬고 오자. 쉬면서 포기할 건 포기하고, 움켜질 건 움켜쥐고 돌아와야겠다. 가자. 제, 주, 도.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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