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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경계
작가 : 강이안
작품등록일 : 2023.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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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경계선 안쪽에서 살다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 밖을 넘게 될 상황에 처하면서 경계하고 그 경계하던 태도가 차차 변화하는 모습을 탐구해보려 노력했습니다. 경계선 바깥과 안을 넘나들다 결국엔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입장에 공감해보셨으면 좋겠네요. 그럼 책 재미나게 읽어주세요. 감사합니다.

 
경계 - 25
작성일 : 23-05-18 13:59     조회 : 218     추천 : 0     분량 : 13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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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사루비아 - 정열

 

  “미안해. 갑작스럽긴 한데 잠깐 얼굴 볼 수 있을까?”

  아직까지 인천에 있었다면 볼 수 없었을 뻔했다. 해가 뉘엿하게 기우는 하늘을 배경 삼아 돌아오는 길 위에서 다홈이 전화를 받았다.

  “너 목소리 안 좋다. 무슨 일 있어?”

  다홈이 답지 않은 가라앉은 목소리. 웬만하면 다홈이가 이런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어떤 심각한 일이지?

  “그게, 택수랑 문제가 생겼어.”

  “택수?”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하자. 어디서 만나면 좋을까?”

  만날 장소와 시각을 정하고 통화를 마쳤다. 택수랑 왜? 요즘 택수가 자기를 피한다고 했던 게 기억이 난다. 혹시 택수한테 돈이라도 빌려준 걸까?

  “나쁜 소식이에요? 얼굴이 자못 굳어졌어요.”

  “가장 친한 친구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나봐요.”

  다홈이의 어두운 표정이 잠시 떠올랐다 사라지더니 뒤이어 월미도 놀이공원에서 보냈던 순간이 순차적으로 되새겨진다.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질질, 끌다시피 하며 놀이기구 안으로 들어섰다. 혼자가 아니라 그가 옆에 있으니 다소 안심이 되긴 해도 쿵쿵, 울리는 심장을 가라앉히긴 역부족이었다. 내 얼굴을 보며 미소 짓는 그.

  “왜 웃어요?”

  “꼭 전쟁에 나가기 전 단단히 결의를 하는 장수를 보는 듯해서요. 이거 완전 인천 월미도 잔다르크인데요.”

  “아주 여유가 넘쳐서 좋겠어요. 누군 심장이 하도 뛰어서 머리가 다 어질한데.”

  “여은 씨가 오자고 했어요.”

  “그랬죠. 제가 아주 큰 실수를 했네요.”

  자꾸 상기시켜 주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구요. 내가 여기 오자고 했던 거. 그렇지만 막상 여기 도착해서 이렇게 떨릴 줄 몰랐다. 텔레비전에서 볼 때만 해도 조금 많이 무섭겠다 정도로 예상했다. 차라리 떨릴 거면 미리 떨려서 올 생각마저 들지 못하게 하지 이미 와놓고선 이러고 있다. 조금씩 미동이 느껴진다. 이제 시작되는 건가? 처음엔 짧게 앞으로 갔다 뒤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그 간격이 조금씩 길어진다. 어느새 그의 손을 잡고 있다. 내 손에서 땀이 묻어나 그의 손을 축축하게 적시는 게 민망했지만 그 손을 놓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아직 괜찮죠?”

  무슨 대답을 해주길 원하는 거야? 나중엔 안 괜찮을 거란 말인가? 어, 어, 어. 속도가 빨라지고 올라가는 각도가 깊어진다. 한 뼘씩 더욱 높이 올라갈 때마다 머리 꼭대기부터 발끝까지 찌릿, 하는 소름이 전해진다. 이건 고통스럽기 보단 어딘가 근질근질, 간질거리는 감각이다.

  “지금은 어때요?”

  “아직 참을 만해요.”

  “토하더라도 나한테 토하면 안 됩니다.”

  그 말에 불쑥, 내 토사물을 뒤집어쓴 그의 모습을 상상한다. 크큭. 이 와중에 웃음이 나오다니. 같이 웃어주던 그가 맞잡은 손을 들어올려 내 손등 위로 살며시 입을 맞춘다. 나를 보며 미소 짓자 가지런한 치아가 드러난다.

  “긴장하지 말고 즐겨요.”

  터져버린 웃음 때문인지, 손에 닿았던 그의 입맞춤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이제 적응이 된 건지 떨림의 강도가 덜해진다. 심장 소리도 잦아든다. 뒤로 쑥, 올라갔다 그 반동으로 빠르게 전진하는 바이킹. 온몸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전해지는 압력을 받아들인다. 가장 꼭대기 높은 곳에 도달할 때 뒷목 주위로 저릿, 한 감각이 모여들며 꼿꼿하게 머리칼이 솟는 걸 느낀다. 이게 무서운데도 그걸 은근히 즐기고 있다. 매운 음식을 먹으며 입 안이 매워 땀을 흘리고 힘들어하면서도 그 매운 걸 계속 입에 넣고 있는 상황과 유사하달까. 공포감에 치여 몸의 근육이 바짝 긴장한 상태로 눈을 질끈, 감아도 어딘가 몸 한 구석에서 묘한 희열이 솟아오른다. 고등학교 동창이 그랬다. 매워서 콧잔등에 땀이 맺히고 눈에서 눈물이 나도 자꾸 그 매운 음식을 입에 집어넣는 건 엔돌핀 때문이라고.

  “엔돌핀? 그거 사람 기분 좋게 하는 호르몬 아니야? 그게 매운 음식이랑 상관이 있어?” “아니, 매운 음식이 엔돌핀을 만든다는 게 아니라, 엔돌핀은 원래 우리 몸에서 분비되는 진통효과 있는 호르몬이거든. 맵든 뜨겁든 몸을 힘들게 하는 고통을 감지하면 우리 몸이 자연스럽게 이 호르몬을 분비해서 그 고통을 감쇄시키도록 해.”

  “그러니까 엔돌핀이 분비되도록 일부러 고통에 처한다는 거야?”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그 친구. 그럴까? 그 엔돌핀을 위해 이리 극단적으로 몰아가는 거란 말이지. 그렇지만 은근히 재밌기도 한데. 고통스럽기만 한 건 아니다. 지금 내 근처엔 오르락내리락하는 상황이 너무 즐거워 양팔을 번쩍 들어올리고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도 있다. 저건 분명 엔돌핀을 기다리며 고통을 참고 있는 모습은 아니다.

  “이야아.”

  옆에서 들리는 소리. 어라? 정민 씨가 방금 소리 질렀어? 놀이기구가 아래로 내려갔다 쏜살같이 뒤로 올라간다.

  “이야아아아.”

  가장 높은 지점에서 멈추는 사이, 일부러 더 길게 늘여 소리를 내는 그. 그런 그의 행동이 낯설어 호기심 어리게 쳐다보자 눈웃음을 짓는다. 이제 앞으로 떨어진다. 저기 꼭대기에서 또 그가 소리를 낼 거라 직감한다. 무심코 따라하고 싶어졌다.

  “이야아아.”

  “아아아야.”

  내가 함께 소리 지르자 그가 웃는 얼굴로 더 크게 소리를 낸다. 나도 질세라 마구 질러댔다. 그렇게 앞으로 뒤로 올라갔다 내려오기를 반복하다 서서히 그 속도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아, 끝났구나. 이제 내려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고, 무서워 가슴 졸일 땐 언제고 내려야 한다니 아쉽다. 그의 손을 붙잡고 있던 손바닥이 땀으로 흥건했다. 땀에 젖어 미끌거리는 감각에 덧대어 전해오는 손의 악력. 그게 기대기 충분하게 단단해서 안도감을 주는 버팀목처럼 느껴졌다. 그가 내리기 위해 손을 놓자 얼른 옷 위로 손바닥을 닦아냈다. 순서를 기다려 바깥으로 나서자 바람이 불어 얼굴과 가슴을 쓸어댄다. 그 바람에 곁들여 휴, 하고 숨을 내쉬니 뭔가 가슴이 뻥, 뚫리는 후련함이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와 흘러넘친다.

  “그리 나쁘지 않았죠?”

  “나쁘지 않았냐구요?”

  “여은 씨 표정을 보니 만족한 듯해서요.”

  “최고였어요.”

  살짝, 웃음을 머금는 그.

  “그래요?”

  “처음에 겁이 나긴 했는데 이게 적응이 되니까 아주 신나던데요. 끝나고 나서 내리기 아쉬울 정도로. 정민 씨, 소리는 왜 질렀어요?”

  앞을 보며 이번엔 입꼬리를 약간 올린다.

  “원래 그런 성격은 아닌데 오늘따라 충동적인 기분이 들더군요. 뭔가 속에서 욱, 하고 치고 올라오듯이. 옆에 동행한 사람 때문인가?”

  “제가 뭘요? 툭하면 제 탓인가요?”

  그를 향해 눈을 흘겼다.

  “탓, 이 아니라 덕, 이라고 해두죠.”

  “덕이요?”

  “덕분에 마음껏 즐겼어요. 여은 씨 없었다면, ······, 그렇지 않았겠죠.”

  이 사람의 주된 특징 중 하나. 사람을 자꾸 헷갈리게 한다. 그래서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거 칭찬 맞죠? 내 존재가 도움이 됐다는 거. 으쓱, 하고 자랑스러워해도 되는 거네요.”

  “그렇네요. 누군가는 존재만으로 도움이 될 만큼 특별하군요.”

  “······.”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존재만으로 도움이 될 수 있기는커녕 존재해서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 이불 속에서 뒤척이고 있으면 꼭 떠오르는 건 좋은 기억이 아니라 좋지 않았던 것들. 그 중에 떠오를 때마다 가슴 선뜩, 하게 만드는 악몽 같은 게 있다. 날 버, 러, 지, 라고 불렀던 친구. 걔가 왜 그랬는지 안다. 본인도 많이 힘들어서 가슴에 쌓인 걸 어떻게든 덜어내고 싶었는데 하필 내가 그 사정권 안에 있었다.

  고등학생 때 고아가 돼버렸다. 부모 없다는 게 죄도 아니고 굳이 숨길 일은 아니었지만 내세울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맞았다고 깨닫게 된 건 주변에 내 사정이 퍼지고 나서였다. 문득, 피부 속으로 파고드는 기묘한 위화감. 어떻게 사람의 시선이라는 게 달라질 수 있는지 신기했다. 분명 동일한 인물인데 뿜어져 나오는 시선의 결이 달라져 있었다. 위로를 건네고 싶어 한다는 건 알겠는데 그 위로 동정이 덧씌워져 있었고, 날 위해 조심스러워 한다는 것도 알겠는데 그러다 보니 내가 다른 계층에 속한 것처럼 대했다. 그건 분명 하위 계층이지 상위 계층은 아니었다. 상위 계층에겐 부러움과 질투를 내보이지 위로와 동정을 건네진 않을 테니까.

  난 위로와 동정을 받았는데 그 친구는 따돌림을 당했다. 자기가 잘못한 게 없는데도. 엄마가 바람을 피웠고 집을 나가버렸다. 비슷한 시기에 부모와 헤어지게 됐지만, 돌아가신 것과 외도로 인한 가정파탄은 주변 대우가 확연히 달랐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애 집안 비극과 우리집 비극이 겹치면서 비교마저 당했다. 그애의 분노가 내게로 향한 건 당연지사였는지도. 아니, 버러지보다 못하다고 했던가. 그렇다, 버러지마저도 되지 못했다. 그보다 못한 존재였다. 자기는 그나마 양친이 다 살아있다고. 언제든 보고 싶으면 볼 수 있다고. 그 아이가 뿜어대던 독기와 날선 독설보다 한때 서로 잘 알던 사이가 그렇게 틀어지는 게 더욱 가슴 아팠다. 아예 전혀 모르던 사이었으면 그리 생채기가 깊게 나지도 않았으리라.

  “내 말에 무척 감동받았나 봐요. 조용해졌어요.”

  “아, 음, 그, 그게, 그러니까요······.”

  그가 말 더듬는 나를 흉내낸다.

  “아, 으음, 그그그, 그게, 그그그러니까······.”

  “아이, 진짜!”

  터져나오는 웃음, 짓궂은 눈동자.

  “미안, 미안요. 당황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그만.”

  “나이 삼십 넘은 아줌마가 귀엽긴 뭐가 귀여워요!”

  “내 눈엔 귀엽기만 한데요.”

  “칭찬이 지나치면 아부가 된다죠.”

  “제가 아부할 정도면 여은 씨 존재가 그만큼 대단하다는 의미 아닐까요?”

  이걸 그냥 받아들여, 아님 되받아쳐?

  “뭐, 제가, 이 정도면 나쁘지 않잖아요?”

  “준수하십니다.”

  “아, 짜증나. 안 되겠어요. 차라리 욕을 해요. 지나친 칭찬은 짜증을 동반하는군요.”

  “아니, 칭찬하면 칭찬한다고 짜증나고, 나쁜 말 하면 나쁜 말 한다고 화낼 거잖아요.”

  “그나마 나쁜 말은 듣기 익숙해서요. 짜증은 안 날 거 같네요.”

  “나쁜 말 많이 듣고 자랐어요?”

  “곱게 크지만은 않았어요.”

  “부모님이 강하게 키우셨군요.”

  “차라리 강하게 키워주기라도 했으면 하고 바라죠. 놔두고 멀리 가버렸어요.”

  “멀리요? 어디 이민이라도?”

  “저기 하늘나라요.”

  잠시 할 말을 고른다. 보통 사람들 반응이 이런 식이라서 익숙하다.

  “위로할 말 찾지 않으셔도 돼요. 이제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그게 고등학생 때였어요. 한참 전이죠.”

  약간 낮아진 목소리 톤.

  “그게 시간이 흘러도 쉽게 나을 상처가 아니죠. 아마 죽을 때까지요.”

  “그거 알아요? 피부에 얕게 나는 상처는 오히려 더 아프대요. 신경이 온통 바깥 피부쪽에 몰려 있어서. 대신 깊게 나면 통각이 덜 몰려 있어 덜 아파요. 이게 쉬운 상처가 아니어서 그런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냥 무덤덤해졌어요.”

  “그렇지만 깊은 상처는 피가 많이 넘쳐나서 죽을 지경으로 몰아갈 위험이 크지 않을까요?”

  갑자기 그 질문에 대답하기 싫어졌다. 나보고 일찍 죽을 거라는 얘기야? 물론 그런 뜻으로 한 얘기가 아니겠지만 이상하게 심사가 꼬인다. 나이만 먹을 대로 먹어놓고 정신적으론 제대로 성숙하지 못했다는 증거겠지. 내가 말이 없자 그가 턱을 쓰다듬으며 넌지시 백미러를 통해 나를 넘겨본다.

  “이제 뭘 할까요? 스케줄 확인해주시죠.”

  “아니, 왜 저만 확인해야 되는 거죠? 여기 월미도 바이킹 타러 오자고 한 것도 저였으니까 이제 정민 씨 의견도 내보시죠.”

  “오늘 어렵사리 시간이 나서 모처럼 바깥나들이 하시는데 여은 씨 하고 싶은 거 해야죠.”

  “그럼 제가 뭘 고르든 이견 내놓지 마세요. 비웃거나 조롱하는 건 더더욱 안 되고요.”

  “저를 어떻게 보시는 겁니까? 비웃거나 조롱이요? 그렇게 무례한 사람 아닙니다.”

  “지금 무례에 대해 얘기하자는 거예요? 그거 시작하면 오늘 하루 종일 해도 끝이 없을 걸요?”

  “제가 여은 씨한테 그렇게 무례하고 굴었나요? 별로 그런 기억 없는데요.”

  “그게 당하는 사람은 알아도 학대하는 사람은 모른다고 아주 편한 쪽으로만 기억하시나 보네요.”

  “이제부터 조심하겠습니다.”

  “두고 볼게요.”

  갑자기 시계를 찬 손목을 내 얼굴 앞으로 들이댄다.

  “뭐하시는 거예요?”

  “시간 계속 흘러갑니다. 빨리 정하시죠.”

  “이거 봐. 이건 무례한 거 아닌가요?”

  “자꾸 미적대니까 서두르자고 재촉한 것뿐입니다.”

  “남자들 다 그렇죠? 여자들 여유롭게 움직이는 걸 참고 봐주질 못한다니까. 세상이 그렇게 빨리빨리, 서두른다고 다 좋은 쪽으로 흐르진 않아요.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행동할 때 오히려 좋은 결과가 나올 경우가 많다고요.”

  “여유도 좋지만 그러다 하루 다 가겠습니다.”

  “이렇잖아요. 내가 말했죠? 이견 내놓지 말고 조롱하지 말고 비웃지도 말라고.”

  “제가 이견을 내좋지 않는 건 좋은데 여은 씨까지 의견이 없으니까 좀 답답하네요. 누구 한 사람이라도 의견은 내놓아야지 않겠어요?”

  “그럼 정민 씨 의견 내보라고 할 때 내셨어야죠.”

  “오늘 그래도 여은 씨를 위한 날인데······.”

  이러다 끝이 없을 듯했다. 손을 들어 손바닥으로 그의 입을 막았다. 눈이 반쯤 더 커진다.

  “잠깐만 있어 봐요. 생각해볼 테니까.”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볼이 실룩거리더니 결국 웃음이 입술 사이로 삐져나온다. 내가 이마를 찌푸리자 이제 막 대놓고 웃는다.

  “뭐가 그렇게 우스워요?”

  “항상 그렇게 심각해요?”

  “심각하긴 뭘요?”

  “다음 일정 정하라니까 전쟁 나가기 전 전술 짜듯이 골똘히 생각에 잠겼네요.”

  “어렵사리 시간이 나서 모처럼 바깥나들이 하잖아요. 잘 보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구요.”

  “그래도 나들이인데 여유롭게 즐겨야죠.”

  “내가 즐기지 못하는 것처럼 보여요?”

  “이게 어렵사리 기회를 얻은 거라 그런지 너무 잘 보내고 싶은 마음이 넘쳐 나들이가 아니라 일하러 온 사람 같아요.”

  “이런 기회가 흔치 않아서 그래요. 게다가 자꾸 재촉한 건 정민 씨잖아요.”

  “흔치 않아요? 잠시 인천 앞바다 나들이 온 게 그리 대단한 건 아닌데. 어디 해외여행 나가는 것도 아니고.”

  “특히나 어린 애 딸린 아줌마한테 이런 호사는 매우 드물죠. 누군가에겐 그리 대단하지 않아도 어떤 이에겐 일 년에 한 번 오는 명절 같을 수도 있어요.”

  “애 키우는 엄마로 사는 삶 정말 녹록치 않군요.”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겠어.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안 됐다, 해줄 수 있는 일 없냐, 그렇게 위로의 말을 전해줄 순 있어도 이해한다고 하면 안 되는 거다. 그 입장에 처해보지 않으면 함부로 말을 말아야 한다. 곁에서 보는 거랑 직접 당하는 건 천지차이니까. 결국 마음을 정했다. 인천 앞바다까지 왔는데 해산물을 먹어야지.

  “조개구이 먹으러 가요.”

  “조개구이요? 좋죠. 해산물 좋아하세요?”

  “없어서 못 먹어요.”

  “하, 네, 저는 조금만 먹을 테니 여은 씨 다 먹어요.”

  “정말이죠? 한 번 뱉은 말 도로 주워담기 없어요. 내가 다 먹어버릴 테니까. 미운 스타일이, 라면 끓일 땐 안 먹는다고 해놓고 끓여놓으면 뺏어먹는 사람이니까.”

  “너무 야박한 거 아닙니까?”

  “안 준다는 게 아니잖아요. 미리 안 먹겠다고 하지 말란 뜻이에요.”

  차가 느린 속도로 해변에 인접한 도로를 가로지른다. 들어갈 곳을 찾기 위해 서행을 한다. 그가 빨리 골라보라고 재촉한다.

  “내가 메뉴 정했잖아요. 장소는 정민 씨가 골라도 괜찮은데.”

  “운전 중인 사람 집중 못하게 하면 곤란하죠. 여은 씨가 메뉴 정한 김에 가장 맛나게 요리할 만한 곳 골라 봐요.”

  “가게 잘못 골랐다고 나중에 나무라면 안 돼요.”

  “그런 말 이전에도 했던 거 같은데. 자신이 한 선택이 좋지 못한 결과를 낳을까 걱정돼요?”

  그가 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머릿속을 헤집는다. 선택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너무 걱정해서 주저한다지. 살아오며 옳은 선택만 하는 사람은 없다. 잘못된 선택을 할 때마다 거기에 상처를 받고 그러면서 다음 선택을 할 땐 더욱 신중해지는 게 당연하잖아. 그 횟수가 늘어날 때마다 신중해지는 무게도 함께 증가하고.

  “그게 세상 이치가 그렇잖아요. 일이 틀어지면 사람들은 비난할 대상을 찾고 가장 찾기 쉬운 희생양이 결정을 내린 자죠.”

  “어쨌든 누군가는 결정을 내려야 하죠. 결정하게 권한을 줬다면 그걸 준 사람도 동시에 비난을 받아야지 않겠어요.”

  “세상이 그렇게 호락하지 않아요. 다들 어떻게든 비난을 피하려고만 하죠.”

  “비난 받는 게 두려워요? 한쪽 귀로 흘려들어도 될 텐데. 아님 내가 두려운가?”

  코웃음을 쳤다.

  “아야.”

  뒤이어 그의 오른쪽 팔꿈치 언저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네, 아주 무서워 죽겠어요. 그래서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질 않네요.”

  “지금 여은 씨와 나 둘밖에 없잖아요. 그래도 선택하기 많이 주저돼요? 어쩌면 내가 아니라 본인이 가장 두려운지도 모르죠.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게 가장 힘들 수도 있어요.”

  나 자신? 잘못될 결과와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 바보 같은 기분이 들어 자책한 적은 수도 없이 많다. 그걸 헤아려 보라면 끝이 없을 테다. 그걸 다 용서하고 살았나? 그냥 아무렇지 않게 의식 뒤로 넘겨버린 적이 더 흔했겠지.

  “저기로 하죠.”

  문득 보이는 허름한 식당 한 곳을 골라 가리켰다.

  “의왼데요. 화사하고 깔끔한 곳을 고를 거라 예상했는데. 이런 분위기 좋아해요?”

  “원래 이렇게 허름한 곳이 음식은 제대로 한대요. 숨어있는 맛집을 이유도 없이 찾아다니지 않겠죠. 세상 이치가 그래요.”

  “그럼 그 안목 믿어보겠습니다.”

  그가 주차를 하기 위해 안쪽 도로로 접어든다.

  “너무 큰 기대는 말고요.”

  “이왕이면 기대는 크게 걸어야죠.”

  “그럼 장소 바꿀까요?”

  “이제 와서요?”

  “기대가 크니까 그렇죠.”

  “높이 나는 새가 추락도 크게 하는 법이죠.”

  “꼭 실패할 거란 듯이 말하시네요.”

  “성공하면 그 보람도 클 겁니다.”

  나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 거리더니 핸들을 돌려 차를 주차시킨다. 바로 눈앞에서 ‘월미도 조개구이’라는 낡은 간판을 보고 있으니 주저하게 된다. 너무 허름한 곳을 골랐나? 다시 돌아서 나가자고 하긴 글렀다. 그래, 칼을 맞아야 한다면 떳떳하게 맞아주겠어. 선택을 잘못할 수도 있는 거지. 어떻게 항상 성공만 하면서 살겠어.

  창 너머로 바다가 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굴 모듬과 조개구이를 시키고 나서 다른 걸 더 주문하려는 그를 말렸다.

  “얼마나 많이 먹으려고 그래요? 조금만 먹는다면서요.”

  “여은 씨 해산물 고팠다면서요. 이런 기회가 자주 오는 게 아니니 먹을 수 있을 때 실컷 먹어요.”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먹을 수 있는 한계가 있어요. 난 못 먹을 만큼 엄청 시키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차라리 먹고 또 시키면 모를까.”

  “음식 남기는 거 안 좋아하시죠. 그것도 아줌마 특성 아닌가요.”

  “생각해 보세요. 요리하고 남은 음식 누가 뒤처리 하겠어요.”

  파도가 올랐다 내려가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창가를 통해 보고 있자니 그 출렁거림이 리듬을 타듯 전해진다. 그게 지속되자 서서히 기분이 차분해지면서 머릿속이 텅 비어간다. 이윽고 뭔가에 홀린 듯이 그 파도의 출렁임이 주변을 꽉 채운다. 그가 내 시선이 꽂혀진 방향을 따라 살핀다.

  “저기 바다 안에 뭔가 봤어요? 아님 기대하는 게 있나요?”

  “그저 보는 것만으로 좋아서요.”

  그가 냅킨을 깔고 수저를 그 위에 놓아준다. 나는 그에 답하듯 컵에 물을 따라 그와 내 앞에 놓는다.

  “바이킹 타면서 소리 지르던 사람이 나뿐은 아니더군요. 여은 씨도 제대로 지르던데요.”

  그걸 떠올리니 수줍은 기분이 든다.

  “그건 정민 씨 탓이에요.”

  “또 내 탓입니까?”

  “정민 씨가 먼저 시작했잖아요. 그걸 보고 있으니 나도 문득, 따라해보고 싶었어요.”

  “애 앞에선 숭늉도 못 마신다고 자꾸 따라할까 무서워 아무것도 못 하겠네요.”

  피식, 웃음이 나오고 뒤이어 무안해진 기분을 달래려 컵을 들어 물을 한 모금 들이켠다.

  “제가 애는 아니죠.”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여은 씨가 애처럼 순수하다는 칭찬이 될 수도 있겠네요.”

  “그거 칭찬 맞아죠? 어째 그렇게 안 들려요.”

  “여은 씨 심사가 꼬여서 그래요. 칭찬도 욕하듯 들리나 보죠.”

  이번엔 날아오는 내 손을 그가 먼저 피한다.

  “점점, 폭력적으로 변하시는군요.”

  “말이 통하지 않으면 다른 방법도 있어요.”

  “그래도 폭력은 아니죠.”

  종업원이 다양한 종류의 조개가 가득 담긴 커다란 쟁반을 들고 다가온다.

  “주문하신 조개구이 나왔습니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화로에 불을 붙이고 그 위로 조개를 구울 수 있게 불판을 얹는다. 불판 위 가득 조개가 놓이고 타닥타닥, 조개가 구워지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온다.

  “냄새 좋은데요. 이거 아직 먹는 건 시작도 안 했는데 입 안에 침이 고이네요. 여은 씨, 조개구이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선택 잘못했다고 욕먹을 걱정은 안 해도 되겠는데요.”

  “감사하네요. 어머, 저 굴 좀 봐.”

  이번엔 굴이 담긴 쟁반을 내온다. 이미 조개와 잔 반찬으로 절반 이상 차버린 공간 나머지를 굴로 가득 채운다. 이렇게 꽉 찬 광경을 보고 있으니 이건, 뭐, 음식을 먹어보기도 전에 배부르다.

  “여기요.”

  그가 적당히 구워진 조개를 접시 위에 얹어 내게 건넨다. 나는 접시 위에 굴을 집어 올리고 미나리 무침을 함께 곁들여 그 앞에 놓아둔다. 제대로 무쳐진 미나리 냄새가 알싸하다. 어째 구워진 조개보다 그 냄새가 더욱 입맛을 돋운다. 어쩔 수 없는 싼 입맛인 건가? 기껏 자주 먹어보지 못하는 조개 먹으러 와서 입에 더 당기는 건 흔한 미나리다. 제 버릇 개 못 준다더니.

  “야아, 이 굴 완전 신선한데요. 갓 잡아서 그런가?”

  짭조름하게 양념된 굴을 입 안에 넣고 씹던 그가 감탄사를 내뱉는다. 굴이 신선한 향내를 퍼뜨려 코에 알싸한 느낌이 들게 만든다면 조개는 알맞게 구워져 노릇노릇한 풍미로 입 안에 군침이 돌게 한다. 저절로 젓가락이 향한다. 그가 바삭하게 구워진 조갯살을 맛보는 나를 보다 앞에 놓인 그릇에 담긴 미나리를 가리킨다.

  “미나리 좋아하세요?”

  “특히 제철에 난 미나리는 제대로 무치면 정말 맛나요.”

  “그래서 웃겨보라고 했을 때도 미나리 유머를 하셨군요.”

  실소가 터진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거든요. 여기 들어와서 미나리 무침 보니까 확 당겼을 뿐이에요.”

  “더 달라고 할까요?”

  “일단 앞에 있는 것부터 먹어보고요.”

  녹아들 듯 목을 타고 넘어가는 굴과 조개에 가득 취해 즐기다 문득, 묻고 싶어졌다.

  “정민 씨는, ······, 가정을 꾸리거나 애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 없어요?”

  “가정이요?”

  그가 그릇에 담긴 미나리를 집어 입에 넣는다.

  “이거 향내가 좋긴 하네요.”

  “그렇죠? 제대로 무치면 그것만으로 밥 한 공기 뚝딱이라니까요.”

  “아이는, 아직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 없네요. 그게 그렇지 않나요. 아이가 있어 행복한 만큼이나 그 책임감도 크겠죠. 오히려 제가 물어야겠네요. 여은 씨는 아이가 있어 행복했다 불행하기를 반복하겠죠?”

  “아무래도 항상 좋지만은 않죠.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좋을 때가 더 많아요. 워낙 예측불가다 보니 예상치 않은 기쁨을 줄 때가 종종, 있어요.”

  “옛날 어르신들은 자식에게 모든 걸 쏟곤 하셨죠. 요즘은 그렇지 않잖아요. 자녀가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하긴 하지만 요즘 부모들은 본인의 삶도 중요하게 여기더군요.”

  “현무한테 모든 걸 쏟은 채 잘 자라주기만을 바라고 산다면, 그럼 현무가 다 크고 나면 그 다음은 뭐죠?”

  “제가 물어야 할 말인데요. 자식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나면 얼른 사라져야 하는 게 도리일까요? 안 그래도 요새 인구과잉이 큰 문제잖아요.”

  풋, 입 안에 들어있던 조갯살이 그만 튀어나오고 말았다. 그가 냅킨을 건넨다.

  “정민 씨 탓이에요. 하필 먹는 중에 사람 웃기고 그래요.”

  “다 제 탓이네요. 그래도 웃긴다고 하니 기분은 나쁘지 않은데요. 아직 제 유머감각이 먹히는군요.”

  “어이없어서 웃었어요. 그럼 정민 씨가 한 말의 의미는 자식 크고 나서 방해 말고 얼른 죽어라, 잖아요.”

  “그렇게 결론이 나나요?”

  나도 나이 들어서 현무한테 짐이 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게다가 자식이 부모 모시지 않는 경향이 더욱 뚜렷해지는 세상이니까. 그럼 빨리 키워주고 자식 앞에서 사라져주는 게 이치에 맞는 것 같기도 하네.

  “전 운전해야 하지만 여은 씨는 원하시면 술 한잔 하셔도 될 텐데요. 이렇게 안주도 좋은데.”

  “어휴, 아니에요. 이렇게 밖으로 나온 것만도 어딘데요. 그에 더해서 술주정까지 하다간 욕을 두 배로 먹을 거예요. 사람이 분수를 지켜야죠.”

  그렇게 굴과 조개를 곁들인 식사를 마치고 남은 시간을 월미도 주위를 둘러보며 보냈다. 아무래도 월미도는 유흥시설과 식당이 밀집한 도심지역이 유명해서 조금만 거길 벗어나면 딱히 눈여겨 볼 곳은 없다. 그치만 도로를 지나치며 곁에 펼쳐진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 좋았다. 바다도 그렇고 산도 그렇고 어떻게 보는 것만으로 좋을까.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면 좋겠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 좋은 존재.

  그가 내 손을 향해 팔을 뻗는다.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로 모아 쥔다. 피부에 전해지는 온기. 희미하게 전해지는 심장박동. 살아있는 사람이란 걸 알 수 있도록 전해진다. 내 심장박동도 그에게 전해지겠지. 피부와 피부가 맞닿는다는 게 이런 의미일까. 서로의 체온을 나누고 심장이 뛰는 느낌을 전달하고. 살이 주는 위로, 라고 했다. 부대끼고 부딪치고. 접촉, 이라는 게 너무 지나쳐도 싫증나겠지만 그게 그리울 때가 있다. 그저 건드려 보고 건드려지길 바라는 거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창밖이 조금씩 어두워지고 노을빛이 하늘 너머에서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가 핸들을 돌리기 위해 손을 떼자 가슴 앞으로 손을 그러모으며 밖을 두리번거렸다. 그런 나를 향해 슬슬, 돌아가야 하지 않겠냐고 묻는다.

  “그래야겠어요.”

  돌아가는 길 위에서 다홈이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집 근처에 내려드릴까요?”

  “저기, 괜찮으면 버스정류장에 세워주실래요?”

  “거기서 친구분 만나시게요?”

  “네, 친구가 차를 몰고 올 텐데 정류장 근처에서 저를 태울 거예요.”

  “큰 일이 아니길 바랄게요.”

  “저도 그랬으면 해요. 워낙 목소리가 좋지 않게 들려서······.”

  정민 씨와 보낸 시간이 꿈을 꾸는 듯한 판타지였다면 내려야 할 정류장은 현실로 돌아가는 입구처럼 다가온다. 길 위에서 북적이는 사람들. 시퍼런 바다와 숲만 실컷 보다 다양한 색깔로 채워진 사람들을 가득 접하니 완전 다른 세상이다. 내가 터를 잡은 곳이기도 하고. 여기서 살아야 하는 거지. 바다와 숲은 보기만 하고.

  “오늘 즐거웠습니다.”

  “덕분에 제가 제대로 즐겼네요. 맛있는 것도 먹고.”

  “바이킹 어땠어요? 또 타러 오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모르겠어요. 그게 웃기죠. 타보지 않고 보기만 했을 땐 너무 무섭게 다가오면서도 엄청 궁금했는데, 막상 타보니까 더 이상 무섭지 않고 탈 만해지면서 그만큼 시들해져버렸어요.”

  “금방 싫증내는 스타일?”

  “뭐야,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함부로 이랬다저랬다 하는 투정꾼 같잖아요.”

  “바이킹 한 번 타보고 바로 시들해졌다고 하시길래.”

  “그냥 기분이 그렇다고 표현한 거예요.”

  저 짓궂어 보이는 눈웃음은 언제 봐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죄송한데 여기 붐비는 장소라서 차가 서면 바로 내리셔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멀어져가는 그의 차 뒤편을 보는데 어째 그 모습에 현실감이 없다. 그와 하루를 꽉 차게 보냈는데도 지나고 나니 정말 그렇게 보내긴 했나 의심이 든다. 마치 모든 게 내 머릿속에서 그려진 상상인 것처럼. 다홈이를 만나면, 정민 씨와 보낸 하루를 아주 세세하게 묘사해주고 싶은데, 그러진 못할 거다. 다홈이 문제가 훨씬 다급해 보이니까. 내 입보다 귀를 열어주어야겠지. 다홈이에게 미안하게도, 친구를 염려하는 마음보다 하루를 곱씹는 마음이 아직은 더 크게 자리한다. 다홈이를 마주하면 그게 역전되겠지. 너무 좋았던 시간은 지나고 난 뒤에도 자꾸 되짚어보게 된다. 이성적으로 멈출 수가 없다. 뒷머리에서부터 스물스물, 기어나와 그걸 밀어내도 어느샌가 되돌아와 있다. 이게 실제로 겪을 때도 좋았지만 되짚을 때도 엄청 달콤하다. 바닷바람, 가장 높은 곳에서 멈췄을 때 전해지던 짜릿함, 입 안에서 퍼지던 굴과 조개향, 단단히 모아 쥔 손에서 전해지던 손의 압력. 머리 꼭대기에서 발끝까지 저릿, 해지는 감각이 퍼져나간다. 사람 몸은 이리 연결이 잘 되어있다는 거지. 다홈이가 운전하는 차가 서서히 다가온다. 이제 그 만큼을 밀쳐내고 다홈이를 위한 공간을 마련해야지. 친구 얼굴이 뚜렷해진다. 다홈아, 무슨 일 있었던 거니? 괜찮아?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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