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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경계
작가 : 강이안
작품등록일 : 2023.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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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경계선 안쪽에서 살다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 밖을 넘게 될 상황에 처하면서 경계하고 그 경계하던 태도가 차차 변화하는 모습을 탐구해보려 노력했습니다. 경계선 바깥과 안을 넘나들다 결국엔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입장에 공감해보셨으면 좋겠네요. 그럼 책 재미나게 읽어주세요. 감사합니다.

 
경계 - 14
작성일 : 23-04-26 06:49     조회 : 237     추천 : 0     분량 : 5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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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로즈베리 – 당신은 나를 일깨운다

 

  봄이 왔다. 이제 완연한 봄이다. 봄은 오감을 두드리며 자신이 도착했다는 걸 알린다.

  촉각. 공기 속에 스며든 따스한 기운이 피부를 간지럽힌다. 가끔은 그 기운이 너무 짙어 코밑에 땀을 맺히게 할 정도다.

  시각. 겨우내 시든 상태로 있던 풀과 나무에 초록색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여름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진해지겠지.

  청각. 귀를 울리는 새소리가 청명하다. 겨울방학 동안 잠잠했던 학교가 학생들이 떠드는 소리와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로 다시 눈을 뜬다.

  후각. 겨울엔 마른 냄새가 풍긴다면 봄엔 풀 냄새가 진동한다.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따라 그 향이 퍼져나가고,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그 위로 꽃향기까지 겹친다.

  미각. 지난 겨울엔 이한치한이라는 말처럼 추운 날씨에도 찬 음식을 많이 먹었다. 차가운 동치미 국물과 식혜가 입에 잘 맞았다. 봄이 오니 쌉싸름한 음식이 끌린다. 쑥국과 파전을 해봐야겠다. 봄에는 봄 음식을 먹어줘야지.

  낮이 길어진다. 며칠 전만 해도 일을 마치고 남편 마트로 향하는 길이 어둑했는데, 오늘은 아직 빛이 남아있다. 길가 가로등엔 이미 불이 켜졌지만 그 빛이 없어도 어둡지 않겠다. 소이가 가게 앞 남는 공간을 상자에 담긴 물건으로 채우는 중이다. 열심히 손을 놀리는 그 아이의 등이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는 리듬에 맞춰 올랐다 내려가기를 반복한다.

  “수고하네.”

  “안녕하세요, 언니.”

  “오늘 바빴어?”

  “저 조금 전에 나왔어요. 지금은 손님이 뜸하네요.”

  “넌 봄인데 어디 놀러 안 가니? 날씨가 풀렸으니 다니기 좋잖아?”

  “노는 것도 돈이 있고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영, 마땅치 않네요. 함께 갈 사람도 없고.”

  “아직 한창 나이인 애가 어째 그러냐? 꼭 다 늙은 노인네처럼 말하네.”

  “제가 어릴 때부터 애늙은이란 얘기 많이 들으며 자랐어요.”

  씩, 멋쩍게 웃는 소이. 소이는 연배가 예슬이랑 비슷하지만 둘은 많이 다르다. 예슬이가 자기 나이에 비해 아직 덜 자랐다면, 소이는 그에 비해 더 빨리 익었다. 시퍼런 자국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 예슬 수박과 곯아서 물컹한 소이 수박이라고 하면 좀 심한 비유려나. 통, 통, 튀는 발걸음으로 걸으며 알록달록한 옷과 화장품 모으기가 취미고 연예인 얘기로 하루를 시작하는 예슬이. 그와 달리 소이는 수수한 옷차림이 편하고 통잔 잔고 챙기는 게 물건 모으기보다 우선이며 날씨를 주로 화젯거리로 삼는다. 나이만 비슷하지 참 다른 두 사람. 솔직히, 이 얘긴 다홈이에게도 꺼낸 적 없지만, 일터에서 하루 중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을 남편과 함께 보내는 소이가 신경이 쓰이긴 한다. 남편 마트에서 일하는 유일한 여직원이 한창 파릇파릇한 시기를 지나는 연하녀다. 이게 성차별인 건 인정하지만, 그래도 신경 쓰이는 걸 어쩌지 못하겠다.

  “사장님, 지금 안에서 잔돈 맞추고 계세요.”

  “그래, 오늘 하루도 잘 부탁해.”

  그 사람 앞 수북이 쌓인 동전들. 오백 원짜리가 가장 눈에 띈다. 십 원짜리? 저건 이제 거의 쓰지 않잖아? 옛날엔 오 원, 일 원 동전도 쓴 기억이 있다. 요즘엔 자취를 감췄지. 다들 카드 아니면 휴대폰으로 결제를 많이 해서 실제 현금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점점 드물다. 언젠간 현금 자체가 쓰이지 않는 날이 오려나. 그게 상상이 잘 가지 않지만, 살면서 상상이 가지 않던 일이 곧잘 벌어지는 걸 많이 겪다 보니, 살면서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 한 구석에 자리 잡았다. 세상이 하루 사이에도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지 그에 뒤쳐지기만 하는 거 같아 가슴이 뜨끔, 할 때가 여러 번이기도 하고.

  “은행 다녀왔어?”

  “지금 시간이 몇 신데. 다녀오긴 한참 전에 다녀왔는데 이제 겨우 정리하려고 풀었어.”

  “오늘 저녁에 특별히 먹고 싶은 거 없어? 당신 원하는 거 맞춰 재료 챙겨서 현무 데리러 가게.”

  “딱히 떠오르는 건 없는데.”

  “봄이잖아. 전 부치고 쑥으로 국 끓일까?”

  “당신, 쑥국 만들 줄 알아?”

  “자주 해본 건 아닌데 그리 어렵지 않아. 된장 넣고 쑥 넣고 끓이는 거지.”

  어머님 음식 솜씨가 좋은 편이라 남편이 요리에 대해 질문하면, 굳이 그가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아니라도 나와 어머님 솜씨를 비교하는 거 같아 은근히 의식하게 된다. 내가 아무리 날고 기려고 노력해봤자 몇 십 년 쌓인 내공을 가진 어머님 손맛을 이겨내기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그게 아쉬워 침울해진다. 그런 게 있지 않나. 맨날 이등만 하는 아이가 일등하는 아이에 대해 가지는 자격지심. 그이에게 오늘 하루에 대해 물으니 동전을 세며 건성으로 대답한다. 내가 마트 운영에 관해 관심이 많은 편도 아니고, 잘 알지도 못하는 나와 마트 일로 대화를 나누는 게 그에게도 시답지 않겠지.

  “당신, 두 번째 가면무도회 가기 전에 춤 연습이라도 하고 가지 그래?”

  “춤 연습하라고?”

  “이전엔, ······, 좀 그렇지 않았어?”

  “내가?”

  “거, 왜, 힘들어 보였달까?”

  “뭘 돌려서 말해. 마음에 차지 않았다고 대놓고 말해.”

  “그런 게 아니라 그래도 즐기러 온 건데 스텝 밟기 급급해서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는 듯해서.”

  “이번엔 그런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그날 나는 못 가.”

  “어, 어? 왜에?”

  “상가조합 모임 날이야.”

  “하필 왜 그날 한대? 이 가면무도회 시에서 주최하는 큰 행사인데 겹치게 날짜를 잡았네.”

  “날짜는 조합 모임이 먼저 잡혔어. 가면무도회가 겹친 거지. 자기, 어차피 춤 잘 못 추는 나보다 춤 잘 추는 사람이랑 추면 더 좋잖아.”

  내심 떠보는 질문인가? 함께 가지 못하다고 하니 의아하긴 한데 아쉽지는 않다. 그이 말처럼, 춤 못 추는 사람이랑 스트레스 받아가며 억지로 추는 것도 고역이니까. 그렇더라도 대놓고 티를 내면 안 되겠지.

  “아쉽네. 이런 기회 자주 오는 게 아니잖아.”

  “그리 아쉬운 표정이 아닌데. 사실 나, 별로 재밌지 않더라고. 이건 무슨 시험 보러 힘들게 나온 수험생 같은 기분이 들었어. 춤 좋아하는 당신이나 재미나게 즐기다 와.”

  남편은 아무렇지 않게 동전을 세는 일에 몰입한다. 그이 뒤통수가 눈에 들어온다. 흰 머리가 드문하게 자리 잡기 시작하는 양쪽 관자놀이. 춤에 관심 없는 남편이긴 하더라도 어째 그가 갈 수 없다고 하니 혼자 간다는 것만으로 괜한 죄책감이 든다. 나만 어디 몰래 좋은 데 다녀오는 기분이랄까.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게 아니라 상황이 의도치 않게 이렇게 흘렀으니 나는 죄가 없다. 이 이유없는 죄책감, 그만 스며 나오면 좋으련만.

  가게 밖을 나섰다. 이제 더욱 어둑해지는 바깥 풍경. 파 한 단과 계란 한 줄이 손에 들렸다. 쑥은 가는 길에 따로 사야겠다. 가면무도회 가는 길. 혼자 걷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게 아쉽지 않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가기 싫은 사람 억지로 데리고 가는 것보단 낫잖아. 이건 남편에게도 내게도 서로 좋은 거다. 문득, 시선이 돌아간다. 항상 저 위치. 그가 조망하는 자리. 나도 거기 한 번 서볼까? 뭘 보는 거지? 그가 서 있던 자리로 가서 눈을 드니, 남편 마트가 자리한 건물이 제대로 보인다. 흠, 이것도 풍경이라고 할 수 있나? 혹시 그가 건축 관련 일을 하나?

  “이런, 오늘은 제가 졌군요. 저보다 빨랐어요.”

  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는 목소리. 하필 이런 때 파랑 계란을 들고 있다. 애꿎게도 그런 내 손이 미웠다.

  “그날, 즐거웠습니다. 춤 잘 추시던데요.”

  “그건 제가 할 말이에요. 어디서 제대로 배우셨나요? 아님 전문 춤꾼이세요? 스텝 밟는 게 예사 수준이 아니었어요.”

  “과찬이십니다. 현재도 배우는 중이긴 합니다.”

  “아, 춤을 배우세요?”

  “취미로 배우러 다니지요.”

  그의 말을 들으며 떠오르는 생각. 우리가 이렇게 자주 마주치는 이유가 뭘까? 이것도 인연인가? 혹시, 전생에 그와 내가 원수지간으로 싸우던 적장이었을까. 별 시답잖은 생각. 나를 보는 그의 눈길. 그 시선이 언뜻, 서늘하게 다가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춤을 취미로 배운다니 이상한가요?”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닌데, 왜, 그, 있잖아요.”

  “이상하다고 생각하시나 보군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시네요.”

  “그게, 그, 그렇잖아요. 아직까지 춤을 배운다고 하면 사람들 시선이 곱지 않지요.”

  얼굴이 화끈거린다. 바보 같아, 이런 내 자신.

  “그게 언제 적 얘기죠. 요즘엔 스포츠 댄스다 룸바다 춤 배우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 됐죠. 어디 가서 춤 못 추면 무시당할 때도 많고요. 춤에 대한 이상한 시선은 아주 구시대적 유물입니다.”

  “제가 이상하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리 고깝지 않게 보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그런 얘기에요. 저도 춤추는 거 좋아해요. 어떤 춤 배우시는데요?”

  “이것저것 다 배워요. 라틴댄스부터 고전 무도댄스까지. 춤은 딱, 잘라서 이거는 이거고 저거는 저거다가 아니라 다들 연결이 되더군요. 이 춤은 동작이 이렇게 전래되었고, 그게 이런 식으로 발전해서 저 춤에 영향을 줬다, 그런 과정으로요. 혹시 춤 관심 있으세요? 원하시면 제가 다니는 곳 소개시켜 드릴 수도 있습니다.”

  “아니, 뭐, 그렇게 열정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건 아니에요.”

  아래로 내린 내 시야 속으로 그의 구두가 들어온다. 뾰족하게 튀어나온 끝자락.

  “다음 무도회 때도 같이 출 기회가 있길 바랍니다. 저랑 호흡이 잘 맞더군요. 둘이서 출 땐, 누가 잘 추고 못 추고를 떠나 호흡이 어떻게 맞는가가 정말 중요하거든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들다 그와 시선이 마주쳐 다시 내렸다. 나도 좋았어요. 그 말을 차마 꺼내진 못했다.

  “그때, 뵙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목례를 건네고,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 오늘도 같은 브랜드의 정장. 짙은 감색. 넥타이와 안에 받쳐 입은 셔츠까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상상이 간다. 겉옷이 감색이니까 넥타이는 조금 더 짙은 바다색에 셔츠는 연한 아이보리 쯤? 그가 그때, 뵙겠습니다, 라고 했으니 온다는 거네. 콩, 콩, 콩. 이 진동은? 어디서 공사를 하나? 아니다. 그러지 말라고 하는데도 주책없이 뛰는 가슴에서 전해지는 거다. 그래, 이건 매일 똑같이 무미건조했던 생활에 활력소 같은 거다. 별로 대단한 건 아니야. 조금은 다른 변화가 생겼고 그 때문에 흥분하는 것뿐이다. 감사하자. 이런 기회가 흔치 않으니까. 즐기자. 그럼 되는 거다. 그쪽도 좋은 시간 가지길 바랄게요. 그때, 봐요.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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