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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경계
작가 : 강이안
작품등록일 : 2023.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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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경계선 안쪽에서 살다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 밖을 넘게 될 상황에 처하면서 경계하고 그 경계하던 태도가 차차 변화하는 모습을 탐구해보려 노력했습니다. 경계선 바깥과 안을 넘나들다 결국엔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입장에 공감해보셨으면 좋겠네요. 그럼 책 재미나게 읽어주세요. 감사합니다.

 
경계 - 10
작성일 : 23-04-21 08:14     조회 : 75     추천 : 0     분량 : 19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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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달맞이꽃 – 밤의 요정

 

  분위기라는 게 참 묘하다. 사람이 휩쓸린다는 표현이 어울릴 때가 있다. 분명 조금 전까지 기분이 가라앉은 상태였다가 주위에서 들뜨기 시작하면 어느새 그에 맞춰 달아오른다. 그건 통제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영역이다. 아무리 반대 방향을 향해 헤엄쳐도 그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 버린다. 준비한 가면과 옷을 가지고 정해진 장소를 향하는 발걸음 속에서 어째 영, 떨떠름했는데, 그곳으로 밀집하는 일행이 하나, 둘씩 시야에 들어오고, 흥분해서 떠들어대는 그들의 모습을 보자니 어느새 나도 가슴이 뛰고 있었다. 아, 이래서 공연이나 운동경기는 꼭 직접 가서 실황을 보라고 한다. 무리에 휩쓸려 함께 몰입하고 열광하면 그 감동이 배가 된다. 잘 왔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많이 오는데.”

  “그러게. 어머, 저 사람들은 아예 저걸 입고 활보한다.”

  우린 차마 미리 입고 갈 용기는 내지 못하고 무도회가 열리는 장소 근처에서 갈아입기로 했다. 남편은 어색해서 그러는지 아님 나처럼 가슴이 뛰는지, 붉게 상기된 얼굴로 땀을 흘린다. 내가 알기로 그가 이런 행사에 참석하는 건 아주 오랜만이다. 어디 가고 싶어도 마트 때문에 그런 여유를 내기 좀체 힘들었다. 그에게도 간만에 가져보는 휴식시간이 될 터였다.

  “저건 좀 심하다. 문어 머리라니. 그걸 가면이라고 썼네.”

  “세상엔 어디든 튀고 싶어 하는 자가 있으니까. 웃기긴 하네.”

  그가 싱긋, 웃는다. 그래, 당신, 오늘 마음껏 웃고 즐기라고. 자주 있는 일도 아니고 이렇게 바람 쐬는 거지.

  “예슬 씨랑 다홈 씨가 온다고?”

  “어. 택수 알지? 다홈이랑 짝 맞춰서 올 거야. 예슬이는 누구 데려오는지 모르겠고.”

  “택, 수?”

  그럴 줄 알았다. 그의 떨떠름한 반응.

  “응. 다홈이가 여길 혼자 오고 싶겠어? 가장 만만한 게 택수지.”

  그는 짐짓, 아무렇지 않게 말하려고 노력하지만 표가 다 난다.

  “음, 당신은 언제부터 택수, 라고 편하게 불렀어?”

  “에?”

  “방금도 그냥 택수라고 불렀잖아. 스스럼없는 친구처럼.”

  “아, 택수가 우리 모임에 끼었잖아. 자주 어울리다 보니 그렇게 됐네. 서로 동갑이기도 하고 말 편하게 하면 좋지, 뭐.”

  “우리 모임? 당신이랑 다홈 씨가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거?”

  “내가 얘기 안 했나? 그 정기 모임 멤버가 이제 세 명이야.”

  “당신, 얘기 안 했어.”

  툭, 던지듯 건네는 그 말투가 건조하다. 무도회 시작하기 전부터 이런 식으로 기분 잡치긴 싫은데.

  “내가 했다고 여기고 있었네. 얼마 전부터 같이 만나왔어. 다홈이가 초대했는데 어울리기 어색하지 않고 좋더라고.”

  “다홈 씨가, 초대했어? 당신은 중간에서 어색하지 않았고?”

  “어색하긴 왜? 동갑끼리 동창회 하듯 만나는데.”

  “다홈 씨도 참. 아직 정식 이혼 판결이 난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속으로 주저했다. 여기서 내가 다홈이 편을 들면 결국 서로 듣기 싫은 소리를 하게 될 거고 말싸움이 시작된다.

  “여은이 언니!”

  다행이다. 예슬이 목소리. 날 먼저 알아보고 다가온다.

  “우와, 너 공주님 같아.”

  나 보라고 앞에서 일부러 한 바퀴 돈다. 함께 갔던 곳에서 구입했던 오렌지색 드레스. 그때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렇게 보니 디즈니 공주님 저리 가라다. 누가 데려갈지 정말 복 받았다.

  “에이, 언니, 나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죠? 그래도 그리 얘기해주니 기분 좋네요. 안녕하세요.”

  남편을 향해 건네는 인사에 그가 고개 숙여 답한다.

  “안녕하세요, 예슬 씨. 오늘 너무 예쁘시네요.”

  이 사람은 누구에게나 말을 쉽게 놓질 못한다. 한참을 보며 얼굴이 익숙해지고 나서야 겨우 이름을 편히 부른다.

  “아이, 말 편하게 하시라니까요. 그냥, 예슬아, 그러세요. 저도 운도 오빠 그럴 테니까.”

  운도 오빠. 그래, 이 사람 이름이 홍, 운, 도였지. 항상 남편이나 현무 아빠라고 불러서 그런지 이제 그의 이름이 낯설다. 앞으로 이름을 더 자주 부르도록 해야겠다. 그렇긴 한데 운도 씨, 라고 하기도 그렇고 운도야, 라고 막 대놓고 부르기도 어색하다. 좀 우습다. 택수는 택수라고 함부로 부르는데 왜 남편 이름은 그게 잘 안 되지? 택수는 동갑이지만 남편은 나보다 나이가 더 많아서 그런가?

  “아, 예, 예. 차차 그러지요. 옷 색깔 참 곱네요.”

  나한테는 그런 칭찬이 인색하더니. 어쨌든 오늘은 봐준다. 이런 날은 무조건 즐겁게 보내야지 않겠어.

  “근처에서 갈아입으시게요?”

  “그러려고. 미리 입고 오려니 어째 용기가 안 나더라.”

  “언니는 별 걱정 다 한다. 지난 번에 보니까 예쁘기만 하던데.”

  “고마워. 그런 말 해주는 사람 너밖에 없다.”

  새초롬하게 남편을 보지만 그는 내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주위 사람들 복장 구경하느라 바쁘다.

  “언니, 가까워질수록 화장실 더 붐비지 않겠어요? 이쯤에서 갈아입으시는 게 나을 텐데요.”

  “그럴까? 당신도 갈아입고 올래?”

  “그러던가.”

  예슬이가 우릴 기다려 주기로 하고 주위 가장 가까운 화장실을 찾아봤다.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 공용 화장실이 있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남자 화장실은 기다리는 줄이 짧은데 여자 쪽은 항상 길다. 공무원들은 뭐하나. 그런 걸 예상해서 여자 화장실 변기를 더 마련해야지. 그 정도는 상식이라고. 화장실 한쪽에서 드레스를 꺼내 입는데 이게 영, 어색하다. 이런 것도 자주 해보는 사람이 잘 한다고 나처럼 안 해본 사람은 하나부터 열까지 몸에 맞지 않아 어딘가 툭, 튀어나오거나 푹, 꺼진 듯하다. 가면을 맞춰 쓰면서도 한숨이 난다. 멋있는 게 아니라 우스꽝스러워 보일까 걱정이다. 화장실을 나와 남자 쪽을 본다. 남편은 빠릿빠릿한 데다 남자 화장실 줄도 짧아서 나보다 훨씬 먼저 나왔을 거지만 혹시나 싶어 살폈다. 이미 갔겠지. 툭, 내 어깨를 치며 지나가는 황금색 드레스를 입은 여자. 죄송합니다. 내게 사과를 건네지만 미안해하는 티는 별로 나지 않는다. 황금색이 불빛을 받아 번쩍, 번쩍, 사방으로 번진다. 참, 화려하다. 난 도저히 저렇게 화려한 색상을 감당할 수 없다. 저런 옷은 당당한 가슴을 가진 사람이 입어야 제대로 어울리지, 나처럼 어수룩한 사람이 서투르게 입으면 옷이 입은 사람을 먹어버린다. 그녀가 가면을 벗어서 고쳐 쓴다. 어라, 그 보라색 원피스? 3층 카페에서 내려다본 여자. 이 근처 사는 동네 사람들 전부 초대를 받았으니 그녀라고 예외는 아니겠지. 자연스레 그를 찾게 된다. 함께 왔을까? 그녀는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 가운데쯤 무리를 지어있는 일행에게 다가간다. 이미 다들 가면을 쓰고 있어 누가 누군지 분별하기 어려웠다. 그만 돌아서려는데 눈에 들어오는 남색 정장. 옷 브랜드를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몸 골격은 그 거리에서도 알아챌 수 있었다. 어깨와 허벅지 근처, 딱 달라붙게 입는 그의 버릇. 그래, 나도 가면을 쓰고 드레스를 입었지. 그도 날 알아볼 수 없다. 슬며시, 느린 속도로 걸었다. 그 일행을 스쳐 지나가듯이. 시야가 가까워지자 그 브랜드를 바로 알아챘다. 이번엔 남색인가? 하필 같은 파란색 계통이네. 검은색이나 회색 같이 어두운 색감은 누가 입어도 만만한데 남색은 아무래도 입기 만만하지 않다. 그게 어울리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는데 그는 남색이 어울린다. 그한테 어울리지 않는 색상은 뭐지? 사자 갈기처럼 털이 비죽, 솟아 눈가를 뒤덮은 그의 가면. 본인을 정글의 왕처럼 보이고 싶은 걸까? 내 물음에 헛웃음이 나온다. 그래도 그녀와 그, 단 둘이서 온 것이 아니라 무리에 섞여 왔다는 사실에 이상하게 안도감이 든다. 도대체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데? 그 일행을 지나친 후 천천히 방향을 틀었다. 어색하지 않게. 예슬이를 찾는데 저 건너에서 미리 되돌아온 남편이 예슬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둘이서 한참 기다리고 있었을까?

  “이제 와?”

  “여자 화장실 줄이 워낙 길어야지.”

  “그러게요. 여자 화장실 변기 더 만들어줘야 한다니까요.”

  “여자들은 화장실에서 왜 그렇게 오래 시간을 보내는데?”

  “그게 아니야. 남자들은 소변기가 따로 있잖아. 그러니 빠르지.”

  배시시, 웃는 예슬이. 오늘따라 상당히 기분 좋아 보인다.

  “하긴 여자들이 화장실에서 화장도 고치고 대화도 나누고 오래 있긴 하죠.”

  “참, 넌 혼자 온 거야?”

  “아뇨. 동행 기다리고 있어요.”

  “그으래? 누구우?”

  일부러 말을 늘였다. 예슬이가 내 질문에 수줍게 웃는다.

  “오면 인사 시켜 드릴게요.”

  “기집애. 능구렁이처럼 속에 숨기고만 있었네.”

  “언니, 그런 거 아니에요. 만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어요.”

  “여은아!”

  반가운 목소리. 다홈이가 다가왔다. 옆에 택수를 대동하고. 우, 와! 속으로 감탄했다. 저 불타는 빨간색. 다홈이에게 제대로 어울리는 색상이긴 한데 눈에 시리도록 튀어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저런 붉음을 다홈이처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또 누가 있으랴. 택수는 하얀 셔츠 위, 아주 까만, 까만색을 구분할 수 있다면, 정도가 아주 짙은 까만 색으로 타이와 정장을 맞췄다. 남편도 가장 무난하게 검은 색 계열로 골랐는데, 남편이 경증 까만색이라면 그는 중증 까만색을 골랐다. 이러면서 의도치 않게 깨닫게 된다. 같은 색이라도 구분이 된다는 걸.

  “어, 왔어? 택수랑 같이 온 거야?”

  “아니, 함께 온 건 아니고 이 근처에서 만났어. 운도 씨 오랜만이에요.”

  그가 보일 듯 말 듯 살짝, 웃으며 목례를 건넨다. 다홈이가 저리 밝게 웃어주는데 그도 활짝 웃어주면 얼마나 좋아.

  “택, 수, 는 알죠?”

  “예전에 뵀었죠?”

  택수가 내미는 손을 어색한 동작으로 쓱, 잡았다 놓는다. 아, 이럼 안 되는데 자꾸 더 그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오늘 같은 날은 분위기에 맞춰주면 안 돼?

  “두 분 다 오늘 너무 멋지네. 여기는 나랑 함께 일하는 예슬이.”

  “아, 여은이 고참이시구나. 반갑습니다. 여은이 잘 부탁드릴게요. 너무 고생시키지 말아주세요.”

  다홈이가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뜨며 사람 좋은 얼굴로 인사를 건넨다.

  “아이, 고참은요. 그저 같은 급 점원이에요. 언니는 관련 전공자라 저보다 훨씬 일 잘하세요. 제가 오히려 배워야죠.”

  “네가 나한테 배울 게 뭐가 있다고. 그래도 고참은 고참이야. 내가 얼마나 무서워하는데.”

  “언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돼요.”

  예슬이가 흔들어대는 손사래에 다같이 웃음이 터진다. 다행히 함께 웃으니 분위기가 누그러진다. 택수가 마지막으로 예슬이와 인사를 나누고 나서 예슬이가 휴대폰을 확인한다.

  “이 근처 교통이 많이 막히나 봐요. 제 동행이 근처까진 왔는데 더 이상 진전을 못하고 있다네요.”

  “오늘 행사 때문에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릴 거야. 이런 날엔 저만치 떨어져서 차를 대거나 아예 차를 두고 오는 게 상책이지.”

  “저 때문에 다들 기다리게 하긴 그렇네요. 도착하는 대로 금방 따라갈 테니 먼저 가세요.”

  “사람들로 붐벼서 헤어지면 다시 찾을 수 있으려나.”

  다홈이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른다.

  “얘, 눈치는. 젊은 사람들, 자기들끼리 있고 싶지 늙다리들이랑 어울리길 원하겠어?”

  “에이, 그런 건 아니에요.”

  예슬이가 발그레, 상기된 얼굴로 웃는다. 하긴 그 말도 맞다. 둘이서 오붓하게 보내고 싶겠지. 굳이 우리랑 어울릴 필요는 없다.

  “그럼, 우리 먼저 움직인다. 있다가 봐.”

  “네, 어서 가세요.”

  남편이 가장 오른쪽, 내가 그 옆, 내 팔에 자기 팔을 걸친 다홈이, 그리고 가장 왼쪽에 택수. 그렇게 넷이 걸었다. 잠깐, 정적이 흐른다. 아, 미처 깨닫지 못했는데 예슬이가 있어서 분위기가 한결 편했었나 보다. 우리 넷만 있으니 그 사이 기류가 건조해진다.

  “광휘, 씨는 잘 지내나요?”

  이 사람, 정말. 아무리 공통 관심사가 한정됐다고 하지만 오늘 일부러 그 이름을 꺼내야겠어? 짐짓, 아무렇지 않게 다홈이가 답한다.

  “저랑 떨어져 지내면서 얼굴이 더 좋아졌던데요. 나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고 살았었던지 이제야 인상이 펴지더군요. 2주 후면 이혼 확정이에요. 아, 홀가분해.”

  갑자기 택수를 살폈다. 이 상황에서 왜 택수 눈치를 보게 되는지 모르겠다. 어둠을 배경으로 하고 보자니 어떤 감정이 실렸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그는 말이 없다. 남편도 기껏 그 이름을 들먹여놓고 잠잠히 있다. 내가 무슨 말이라도 꺼내야겠다.

  “택수, 너 벌여놓은 일은 잘 돼가고 있어? 다소 큰 프로젝트라며?”

  “프로젝트라고 할 만한 건 아니고 이번에 재무설계 프로그램을 새로 론칭하거든.”

  “어머, 그거 결국 그렇게 결정 난 거야?”

  택수와 다홈, 두 사람은 대학에서 서로 알게 된 동기다. 전공이 같으니 그쪽과 관련된 일엔 서로 죽이 척, 척, 맞아 이야기를 이어간다. 사실, 모임에서 그런 대화가 이어지면 어쩔 땐 내심 민망하기도 하다. 둘 사이 오고 가는 내용이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어 난 그저 꿔다 논 보릿자루처럼 가만히 있게 된다. 그렇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렇게 이야기를 이어가게 하는 게 낫다. 방금 전처럼 냉랭한 침묵이 퍼지는 것보단 훨씬.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나와 남편은 가만히 듣고만 있다. 아니 머릿속에 내용은 들어오지 않고 그 상태로 발걸음만 계속 이어간다. 얼마쯤 지났을까, 정말 동화 속 궁전처럼 꾸며놓은 휘황찬란한 무대가 눈에 들어온다. 알록달록, 세상에 저 많은 색이 존재하나 감탄하게 될 정도로, 다양한 파스텔톤 색으로 칠해진 기둥이 무대 뒤를 조밀하게 채운다. 기둥 맨 위에는 동그랗게 말려 올라간 나선형 굴곡이 자리하고, 기둥 맨 아래는 황금색으로 칠해진 피라미드 계단이 바닥과 이어진다. 최대한 많은 사람이 올라설 수 있게 무대를 널찍하게 지었다. 저 위에서 가면을 쓰고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이 동시에 춤을 추겠지. 가만 춤이라고? 춤을 춘다면 무슨 춤? 남편 손을 잡고 우아하게 몸을 움직이는 상상은 할 수도 없다. 이 사람은 그 아저씨 춤밖에 출 줄 모른다고.

  “대단하다. 완전 눈부시게 꾸며놨네.”

  “이거 너무 얼룩덜룩한데.”

  남편은 꾸며놓은 장식이 별로 마음에 차지 않는 목소리다. 내가 봐도 조금 지나친 감이 없진 않다. 다홈이 귓속에 살짝, 속삭였다.

  “저기, 다홈아, 있잖아.”

  “어?”

  “가면이랑 옷이랑 심사를 한다고 했잖아.”

  “그래야겠지. 그래야 그 해외여행이랑 다른 상품들이랑 누구 줄지 결정할 수 있을 거 아냐?”

  “그럼 심사할 때 어떻게 하지? 심사위원들 앞에서 행진이라도 하나?”

  크큭. 얘가 왜 웃어?

  “설마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한 사람씩 행진을 시키겠어? 너도 참.”

  “그럼 어떻게?”

  “다들 이렇게 꾸미고 온 걸 무도회가 진행되는 사이 점수를 매기겠지.”

  “무, 도, 회, 라는 의미는 그럼······.”

  “가면무도회잖아. 가면이라는 단어가 붙어서, 전부 이렇게 가면을 쓰고 온 거고. 무도회라고 했으니······.”

  “무도회라는 건?”

  “너 나한테 지금 무도회 뜻 묻는 거니?”

  “그게 아니잖아.”

  짓궂게 올라오는 다홈이 미소.

  “왜 벌써부터 걱정 돼?”

  “저 사람 평생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춤이라곤 나이트클럽 한두 번 가봤을까 싶어. 그게 전부야. 그런 사람이 스텝 밟을 줄이나 알겠냐고?”

  “에이, 무슨 전문 댄스 대회도 아니고 그냥 팔 잡고 함께 흔들면 되는 거지.”

  “그게 그냥 팔 잡고 흔드는 것도 전혀 감당이 안 되는 완전, 무지랭이, 얼푼이, 박치라니까, 박치.”

  “아무것도 모르면 그냥 왔다, 갔다, 발만 움직이면 되는 거잖아. 자, 자, 그런 걱정은 미리 하지 말고 신나게 즐기라고. 이런 날 자주 있는 거 아니잖아. 난 좋기만 하네. 진짜 디즈니 영화 속에 들어온 기분이라니까.”

  다홈이는 아주 신났다. 만약 내 파트너가 택수 정도만 돼도 걱정을 안 한다. 그게 남편이라니까 문제가 되는 거다. 차라리 풍악을 울려주면 아무렇게나 어깨춤을 추지. 이런 무도회라면 두 사람이 동시에 호흡을 맞춰야 하는데 저 사람과 함께라면 그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내 속을 알기나 하는지 그는 무대 구경을 하느라 정신없다. 아주 속 편해서 좋겠다, 좋아.

  우리가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사회자가 진행을 시작한다. 유명한 개그맨이라도 와서 진행할 줄 기대했는데 처음 보는 얼굴이다. 말솜씨가 유려하다. 시에서 신경 써서 선정했겠지. 인사말을 끝내고 협찬한 기관과 기업 이름을 줄줄이 읊어댄다. 그렇지. 이런 행사가 그냥 이루어졌겠어. 수많은 업체의 자의 반, 타의 반 조공이 있었겠지. 소개 듣기가 살짝 지루해질 때쯤, 다시 한 번 오늘 밤 이 즐거움을 흠뻑, 만끽하라는 격려의 메시지가 이어지고 행사 시작을 알리는 외침이 울린다.

  “자, 지금부터, 생애 절대 잊히지 않을 지상 최대 가장무도회가 펼쳐집니다! 모두, 어서, 어서, 무대 위로 올라와 주세요!”

  처음엔 다들 멈칫, 멈칫, 주저한다. 서로 눈치만 살피는 듯하더니, 두 사람, 네 사람, 여섯이 여덟이 되고, 어느 순간, 한 무더기가 올라서자 바로 물밀듯이 사람의 파도가 밀어닥친다. 아무리 크게 지어놨다고 하지만, 이 많은 인파가 함께 몰리니 사람 사이 간격이 촘촘해질 수밖에 없다. 이어서 무대 뒤에 세워진 기둥 사이 공간에 자리한 관현악단이 귀에 많이 익숙한 음악을 현악 연주로 시작해서 풀어낸다. 짝을 이뤄 무대 위로 올라선 사람들이 조금씩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기 시작하고, 음악 소리가 서서히 커져간다. 다홈이는 어느새 택수를 이끌고 주저없이 무대 가운데로 향한다. 저 비좁은 사이를 어찌 저리 자연스레 지나치는지 보는 내가 감탄이 절로 난다. 남편과 같이 무대 위로 올라서긴 했는데 한쪽 끄트머리에서 어찌어찌, 균형만 겨우 잡고 있었다. 그는 뒤에서 밀어대는 힘에 넘어지지 않도록 양다리에 힘을 준 자세로,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오른쪽을 봤다, 왼쪽을 봤다, 그렇게 양옆으로 고개를 돌려댄다. 당신 파트너는 안중에도 없어? 눈을 어디다 두는데? 날 봐야지. 내가 손을 내밀자 멀뚱하게 날 쳐다본다. 꼭 그렇게 묻는 듯하다. 어쩌라고?

  “춤 안 출 거야?”

  “춤?”

  “무도회잖아?”

  “그냥 구경하는 거 아니었어?”

  “그냥 구경만 할 거면 이 많은 사람들이 가면이랑 옷은 왜 준비해서 왔는데?”

  “그거야, 그, 그러니까, 기분 내려고 그러는 거지. 난 공연하는 사람은 따로 있을 거라 예상했는데.”

  “그럼 심사는 어떻게 하고? 걸어논 상품은 줘야 하잖아.”

  한순간 그의 눈에 당혹스런 빛이 떠오른다.

  “꼭, 춤을 춰야 하는 거야?”

  “전문적으로 잘 출 필요는 없잖아. 손만 잡고 흔들기만 하면 되는 거지.”

  다홈이가 말했던 대로 전했다. 일그러지는 그의 얼굴을 보자니 내심 속으로 고소했다. 다홈이 기분을 잡칠 뻔 했으니 지금 벌 받는 거야. 그렇지만 그가 벌 받는다면 그 파트너인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엉거주춤, 그가 내 손을 잡는다. 오른팔이 위로 올라가던가? 아님 왼팔? 그냥 두 팔 모두? 주변을 보니 남들은 자연스레 팔과 팔을 붙잡고 물 흐르듯이 움직이는데, 우리는 어째 팔이 이상하게 위로 올라가 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보통 춤출 때, 한 팔이 올라가면 다른 팔은 내려가야 정상인데, 우린 양쪽이 비슷한 높이에 있다. 이, 이게, 이래도 되나? 하기야 전문적으로 잘 출 필요는 없잖아. 그냥 흔들기만 하면 된다니까. 그래도 춤을 추면서 불편하진 않아야지 싶은데, 이건 정말, 불편하다!

  “아얏!”

  남편이 내 오른발을 밟았다. 미안함과 난감함이 교차하는 얼굴. 관현악단은 디즈니 궁전처럼 꾸며놓은 무대에 일부러 맞추려는지 귀에 익숙한 디즈니 만화 주제가를 연주한다. 제목은 생각나지 않는 느린 곡이다. 그 곡에 따라 주위 인파가 물결을 이루듯 일렁인다. 다행히 곡이 빠르지 않아 어떻게든 춤추는 흉내라도 내게 된다. 흉내라니 우습다. 역시 사람은 자기 노는 데서 놀아야 즐거운 법이다. 이런 데 와서 제대로 즐길 줄 모르니 이건 흡사 노동이다. 땀만 비오듯이 흐르고 무슨 사서 고생인지 모르겠다. 그만 내려가자고 꺼내려던 말이, 열심히 리듬을 타려고 노력하는 남편의 모습에 튀어나오지 못하고 안에서 멈춘다. 그래도 이 사람, 오늘을 즐기려 노력하고 있다. 그래, 나도 좀 더 즐기려 해보자. 이런, 이번엔 그와 반대로 움직였다. 그가 비틀거리는 내 허리를 잡아준다. 동시에 터지는 어색한 웃음.

  이렇게 보내는 시간도 나쁘지 않겠다, 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면서 방심했다. 마음을 놓으면 안 됐었다. 관현악단 옆에 자리한 브라스 밴드가 갑자기 귀를 울리는 곡조를 불어댄다. 어, 이것도 익숙한 멜로디인데. 어디서 들었더라? 분명 극장에서 영화 관람할 때 울려 퍼지던 걸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시퍼런 거인이 어깨를 들썩거리며 춤추던 장면이었지, 아마? 그게 신호라도 된 듯, 빠른 리듬이 연주되고, 한 목소리로 탄성이 터져 나오더니, 무대 위 모든 커플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발의 움직임을 가속시킨다. 신나게 바닥을 두드리는 스텝, 흔들거리는 허리, 그 위로 왔다갔다 반복되는 머리와 손동작. 남편과 나도 그에 맞추려 열심히 흔들어댔지만, 이 사람은 어째 내가 왼쪽으로 가면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뒤로 빠지면 같이 뒤로 빠져, 자꾸 따로 놀게 된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그리 여기려 했지만, 슬슬, 불안해지는 기분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무대에 처음 올랐을 때부터, 다홈이처럼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서고 싶었다. 우린 동작도 굼뜨고 춤추는 게 낯설기도 해서 그런지, 오히려 생각과 달리 바깥으로 밀리고 있었다. 그게 느린 곡이 흐를 땐 별로 대수롭지 않았다면, 지금 빠른 곡이 흐르니 밀려나는 데 더욱 가속이 붙는다. 점점, 더 무대 끝자락에 가까워지는 기분. 어느 순간 음악을 타며 춤을 즐기는 게 아니라 아래로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무대가 그리 높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떨어질까 불안한 마음이 수그러들진 않았다. 만약 밀려서 떨어진다면 아픈 게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창피할까? 어떻게든 안으로 들어서려 남편을 밀어보지만, 둔한 이 사람은 나에게 맞춰 들어가진 못하고 오히려 밀리고 있었다.

  “내 동작 나쁘지 않지?”

  잘하지 못하는 과목에서 어떻게든 인정받으려 노력하는 아이처럼 궁색하게 묻는 그를 안심시키려 최대한 긍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저 최선을 다해 춤을 추려 집중하는 그에게 내 위치는 보이지 않는다. 무대 안으로 스며들려 계속 시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조금씩, 서서히, 끝자락을 향해 밀리고 있었다. 아, 어쩌지? 그만 내려갈까? 이 사람 들뜨는 기분 지금 멈추게 하고 싶진 않은데. 저기 너머에 무대로 올라오는 계단이 보인다. 저기까지만 가면 계단을 밟고 내려설 수 있다. 차라리 안으로 들어서지 못할 바엔 그리로 가서 안전하게 내려서는 게 나을 듯했다. 조금씩 그리로 남편을 이끌었다. 그는 이제 리듬을 조금씩 타기 시작했는지 목을 끄덕이며 나와 간격을 좁히려 다리 보폭에 변화를 준다. 거의 다 왔다고 안심이 되는 찰나, 브라스 밴드가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달으며 아주 높은 톤을 뽑아낸다. 소리가 움직임을 이끄니, 다들 마지막 남은 힘을 쏟아 흔들어댄다. 삐끗. 아차, 상황이 먼저 벌어지고, 머리가 인지하는 게 그 다음이다. 한쪽 발이 허공에 머무른다. 균형을 잡기 위해 무대 위 남은 발에 힘이 들어가고 남편을 잡아보려 팔을 뻗지만, 그는 손에 닿지 않는다. 아래로 떨어진다는 확신이 들고서도 그걸 현실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목에서는 아무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나를 보고 남편이 소리를 낸다.

  “어, 어, 어!”

  어, 어, 어? 그게 다야? 내 이름이라도 부르던가. 쿵. 턱이 별로 높지 않은데도 떨어지는 순간이 길게 느껴졌다. 그리 아프지도 않았다. 등과 다리가 먼저 바닥에 닿아 머리에 전해지는 충격도 덜했다. 내 눈에 수많은 다리가 보인다. 하필 타이밍 하곤, 신나게 흘러나오던 음악이 끝이 난다. 한순간 모든 동작이 멈춘다.

  “어머, 누군가 떨어졌어!”

  아, 짜증나. 그걸 그렇게 소리쳐야겠냐고. 그렇게 걱정해주는 건 이 상황에서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일어나서 물러나면 그만이었는데. 다들 무대 끝으로 몰려와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렇게 쳐다보니 더 못 일어나겠다. 후다닥. 남편이 계단을 타고 내려온다.

  “괜찮아, 당신?”

  나를 내려다보는 그. 그의 머리 뒤로 나를 내려다보는 수많은 눈동자. 몸이 아픈 게 문제가 아니다. 빨리 일어나야겠는데 그 시선이 더욱 눌러댄다.

  “어디 안 다쳤어?”

  “아무렇지 않아. 유난 떨 것 없어.”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각종 가면이 흔들거린다. 삐죽하게 솟은 갈기를 본 것도 같은데. 어쨌든 지금은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게 상책이다. 아, 안 돼! 하필, 이 상황에서, 일어서는데 그만 가면이 흘러내린다. 이거 아주 제대로다. 이런 모습으로 얼굴을 팔아버린다. 반사적인 동작으로, 얼른 가면을 주워 얼굴 위로 덮었다. 그대로 남편을 끌고 앞으로 나아갔다. 어디에든 그저 숨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자, 그럼 잠시 휴식을 가졌다 다시 이어가겠습니다.”

  발을 쉬지 않고 움직이는데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 그저 가능한 멀리 가자는 생각만 머릿속에 자리했다.

  “현무 엄마.”

  내 팔목을 잡는 그의 손아귀 힘이 느껴져, 겨우 멈췄다. 뒤를 돌아보니 그가 가면을 벗어 손에 들고 나를 걱정스레 쳐다보고 있다. 그의 얼굴이 처음엔 흐리게 시선에 들어왔는데 조금씩 제대로 초점이 맞아간다.

  “떨어지면서 안 다쳤어?”

  “으, 응, 다치긴 뭘. 거기 별로 높지도 않았어.”

  “어쩌다 떨어진 거야?”

  당신이 계속 밀어냈잖아. 그렇게 말하려다 그 말엔 그도 억울할 거라 말을 바꿨다.

  “무대 위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춤을 추니 그 바람에 바깥쪽에 있던 내가 자꾸 밀리더라고. 설마, 했는데 그렇게 됐네. 괜찮아. 어디 안 다쳤어.”

  솔직히 등이 약간 쑤시긴 하는데 그건 별 문제가 아니었다. 이번엔 남편이 앞장서고 내가 그 뒤를 따랐다. 그가 벤치를 발견하더니 나보고 앉으라고 손짓을 한다.

  “쉬고 있어. 음료수라도 사올게. 정말 괜찮은 거지?”

  응. 괜찮다고 하는데도 그다지 내 대답이 믿음이 가지 않는지 연신 위아래를 훑는다. 괜찮다니까. 당신 그렇게 보는 게 더 신경 쓰여. 그가 눈에 보이지 않게 멀어지자 방금 전 일어났던 상황이 현실로 다가온다.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다니. 더 이상 가면무도회고 뭐고 여기 있고 싶지 않았다. 그만 가자고 할까 하다 다홈이와 예슬이 얼굴이 떠올라 주저했다. 이렇게 가버리면 남은 일행은 어쩌고. 그래, 그건 예의가 아니지. 아, 겨우 즐길 만해지고 있었는데.

  “언니, 여기 있었구나.”

  예슬이다. 그 옆에 선 건장한 청년. 동행이 도착했네. 어, 사장님 아들이잖아. 예슬이는 더운 열기를 느끼는지 가면을 들어 부채질을 해댄다.

  “사람들 완전 열심히 추지 않아요? 나도 그 분위기 휩쓸려 막 춤춰댔지 뭐예요. 춤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는데.”

  자기 옆에 선 남자를 보는 내 시선에 예슬이가 느린 속도로 소개를 한다. 쑥스러운 기색이 얼굴에 묻어난다.

  “여기는, 오늘 내 파트너, 영식 씨.”

  소개할 필요가 없다. 서로 아는 얼굴인데. 내가 겸연쩍어 하는 걸 아는지 그도 멋쩍게 고개를 숙인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지는, 않네요.”

  보통은 처음 뵙겠습니다, 라고 해야겠지만 그게 아니니까.

  “둘이서, 언제부터, 가깝게 지냈어요?”

  “에이, 언니, 가깝게 지낸다는 건 그렇고 내가 오늘 가장무도회 동행 필요하다니까 영식 씨가 나서준 거예요. 혼자 오면 서글플 테니까 날 구해준 거죠.”

  내 눈엔 그리 보이지 않는데. 이렇게 보니 둘이 어울리긴 한데 사장님이 알고 있을까? 자기 아들이랑 직원이랑 어울리는 걸 좋아하시려나?

  “이렇게 왔으니 좋은 시간 보내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잠시 멈췄던 음악이 다시 시작된다.

  “오늘 귀중한 손님을 모셨습니다. 국내 권위 있는 볼륨댄스 대회 수상팀입니다. 민정욱, 최정아 댄스 커플을 우렁찬 박수로 맞아주세요!”

  이번엔 공연팀이 나온다. 소개된 커플이 나와서 무대 한가운데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역시 전문적인 댄스 커플이다. 유려한 발동작으로 리듬을 타며 서로 손을 맞잡은 채로 우아하게 무대를 휘젓는다. 춤 잘 추는 게 이렇게 부러운 적이 없었다. 저들도 저렇게 잘 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겠지. 세 곡에 맞춰 공연을 보인 그들의 차례가 끝난다. 남편은 음료수 사러 얼마나 멀리 갔는지 그들이 무대를 내려갈 때까지 돌아오지 않는다.

  “자, 함께 대동한 동행과 춤을 추셨으니 이번엔 파트너를 바꿔 춰볼까요? 어서 무대로 올라오세요. 이번엔 낯선 사람과 짝짓기입니다.”

  “와, 재미나겠다. 모르는 사람과 짝을 맞춰 춤추는 거네요.”

  그게 재미있을까? 오히려 어색하고 떨떠름하지 않나. 모르는 사람과 손을 맞잡고 춤춘다는 게. 언니, 어서 올라가요. 예슬이가 가면을 고쳐 쓰더니 내 팔을 잡고 당긴다. 영식 씨가 옆에서 같이 움직이자 나도 덩달아 가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된다. 별로 내키지 않지만 예슬이 팔을 빼내기도 미안했다.

  “자, 왼쪽엔 여자분들, 오른쪽엔 남자분들. 서로 인사를 나누시죠.”

  사회자 지도로 성별에 맞춰 양쪽으로 갈라진다. 과장되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네는 무리에 섞여 나도 어색하게 절을 했다.

  “자기 앞에 선 상대방 파트너가 되는 겁니다. 거절하실 수는 없고 곡이 끝날 때까지 춤을 추셔야 합니다.”

  까만색으로 칠해진 단조로운 가면을 걸친 남자가 앞에 선다. 나랑 키가 비슷해서 춤추긴 나쁘지 않겠다, 그랬는데, 맙소사, 남편이랑 막상막하다. 이제 더 이상 디즈니 음악은 나오지 않았다. 느린 왈츠 곡이 흘러나왔는데, 그와 내가 추는 건 왈츠가 아니라 관광버스 막춤이다. 내 양손을 잡고 어깨를 흔들흔들, 거리며 파도 춤을 춘다. 나도 평이하게 진행되는 왈츠 정도는 리듬을 맞출 수 있을 듯했는데, 그렇게 왈츠 곡을 흘려보냈다. 두 번째는 탱고였다. 이번 파트너는 세로로 절반만 얼굴을 감췄다. 춤에 상당히 자신이 있는 듯했다. 그렇지만 이번엔 내가 문제였다. 상대방이 잘 추니 오히려 주눅이 들었다. 곡이 끝날 때 즈음엔 나와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그의 마음이 전해질 정도였다. 나도 미안했다. 예슬이는 어디 있지? 이제 그만 내려갈까? 아, 저 사자 갈기 가면. 그의 남색 정장이 눈에 들어온다. 이거 기분이 묘하다. 나는 그가 누군지 알지만 그는 내가 누군지 모른다. 조금 더 가까이서 볼까?

  곡이 마무리 되고 사회자가 다음 곡이 나오기 전 무리를 나눠 정리를 한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그가 서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 정도면 그 앞이 아닐까 하는 위치에서 머물렀다. 세 번째 음악이 흘러나온다. 매우 느린 진행이다. 짝을 짓기 위해 앞으로 나아간다. 이런, 그가 살짝 비켜있다. 커플이 되진 않을 듯했다. 속으로 작게 웃었다. 그냥 남들 모르게 해본 조그마한 장난. 그와 눈이 마주쳤다. 한동안 시선이 공중에 걸쳤다 떨어진다. 좋은 시간 보내세요. 그렇게 마음 속으로 건네고 내 앞에 선 남자를 봤다. 기린 가면? 아무래도 이번만 추고 내려가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기린 가면과 거의 손이 닿을 뻔 할 때, 그가 불쑥, 앞으로 나선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그 자리에 멈춰버렸다. 가면에 가렸지만 미소 짓기 위해 얼굴 근육이 움직이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가 과장된 자세로 인사를 건네고 손을 내민다. 이걸 어찌 거절하겠어. 그 손을 맞잡았다. 겸연쩍은 듯 기린 가면이 내 옆사람과 인사를 나눈다. 금세 기린 가면은 내 시야에서 멀어진다. 진행되는 곡에 맞춰 그가 이끄는 대로 따랐다. 음, 그를 전문적인 춤꾼이라고 하긴 그랬다. 단조롭게 발을 놀리며 내 팔을 감싸주는데, 남편과 함께 할 때처럼 불편하지 않았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그가 나를 위해 배려해준다는 기분. 그렇다고 남편이 나를 함부로 대했다는 말은 아니다. 남을 위한 배려도 내가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남편은 어떻게든 음악에 맞춰 춤추기 위해 자기 한몸 건사하기도 바쁘다 보니 나를 챙길 여유가 없었다. 지금 내 앞의 그는 춤추는 사이 나를 챙길 만큼 충분히 여유로웠다. 그가 이끄는 대로, 속도를 맞춰가며, 리듬을 탔다. 조금 전까지는, 춤추는 게 노동이었다면, 이게 놀랍게도 지금은 놀이가 된다. 그런가. 같은 일도 어떻게 다루는가에 따라 그게 힘들기도 하고 즐거워지기도 한다.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살짝, 들었지만 오늘만은 다 용서가 되겠지, 그렇게 그 죄책감을 달랬다.

  “어디 안 다쳤어요?”

  “네?”

  그가 묻는 말이 이해되기까지 한참이 걸린다. 그는 입술에 미소를 걸친 채로 말을 꺼낸다.

  “콰당.”

  봤어? 봤구나! 그가 바닥으로 떨어진 내 모습을 본 거다. 이제야 그가 내 앞으로 다가온 상황이 제대로 받아들여진다. 가면이 얼굴에서 떨어졌을 때, 내가 누군지 알아챘겠지. 이제 나도 그가 누군지 알고, 그도 내 가면 아래 누가 있는지 안다. 이럼 서로 동등한 거네. 불쑥, 얼굴 위로 피가 쏠리는 게 느껴진다. 넘어진 모습을 보인 게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지.

  “넘어졌던 숙녀를 걱정하는 말투가 아닌데요.”

  “죄송합니다. 짓궂은 의도는 아니고 염려해서 물어봤어요.”

  “별로 높지 않은 곳에서 떨어져서 괜찮아요. 원체 튼튼하게 태어나기도 했고요. 전혀 아무렇지 않아요.”

  “그러신 듯했습니다.”

  “뭐가요?”

  “튼튼하신 거요.”

  튼튼한지 어떻게 아냐고 물으려 했었다. 그 말을 꺼내기 전 그의 손이 내 팔꿈치를 지나쳐 그 위를 타고 어깨를 향해 올라온다.

  “팔에 근육이 제대로 잡히셨네요.”

  이미 한 번 피가 몰려왔던 얼굴 위로 두 번째 피의 파도가 덮친다.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해 입만 벌리고 어어, 소리만 낸다.

  “다리도 팔처럼 튼튼할까요?”

  그가 내 팔에 했던 대로 다리에 손을 얹기라도 할 것처럼, 그걸 피하려는 반사적인 동작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의 입술이 양옆으로 벌어진다.

  “숙녀분께서 제가 함부로 대할까 걱정되시나 보군요.”

  제대로 한 소리 해주고 싶은데 왜 아무런 말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 거지? 이런 내가 너무 한심하다, 한심해.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하시나요?”

  “흠, 으흠. 직업병이에요. 병이라고 하긴 그런가? 들고 나르는 일을 많이 해서요.”

  “실례가 안 된다면 무슨 일 하시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꽃과 나무를 다루는 일을 해요.”

  “아, 플로리스트시군요.”

  “그렇게 부르긴 너무 거창하고, 그냥 화원에서 일하는 점원이라 생각하시면 돼요.”

  “몸을 많이 움직이는 일이군요.”

  “꽃과 나무를 제대로 키워내려면 한시라도 가만히 있으면 안 돼요. 내 팔과 다리를 바쁘게 움직여줘야 걔들이 사는 거죠.”

  “다리도 팔처럼 근육이 잘 잡혔을지 궁금하네요.”

  지금 내 얼굴에 손을 댄다면 분명 화끈거려 데일 듯할 거다. 이 정도면 성희롱 아니야? 근육이 궁금하다는 말을 희롱으로 볼 수 있나?

  “팔과 다리뿐이겠어요. 온몸이 근육질이에요.”

  그 말을 꺼내놓고 보니 어째 후회가 된다. 지금 이 사람에게 내 몸 전체를 궁금해 하라는 뜻인 거잖아?

  “그럼 달리 운동하실 필요가 없겠네요.”

  “안 그래요. 그렇게 부지런히 움직여도 몸에 꾸준히 살이 붙는 걸 막을 수가 없네요. 애 낳고 나니 그게 부쩍 심해지구요.”

  바보. 굳이 애 얘기를 여기서 왜 꺼내나? 아니, 애 있다는 사실을 숨기려는 의도는 아니고.

  “아, 애가 있으시군요. 남자, 여자? 몇 살이에요?”

  “남자애요. 이제 8개월 다 돼가요.”

  그가 슬쩍, 가까이 당긴 느낌이 든다. 그냥 느낌인가?

  “요즘 아이 어머니들은 참 관리를 잘 하시네요. 전혀 8개월 전 출산하신 분 같지 않은데요. 말 안 하셨으면 처녀로 봤을 겁니다.”

  원래 립 서비스가 좋은 사람인가? 가면을 쓴 게 이렇게 다행스러울 수가 없다. 얼굴이 온통 붉으락푸르락 벌겋게 변했을 테니까. 음악이 끝이 난다. 이제 파트너를 바꿔야 한다. 아쉽다. 조금 더 곡이 길었다면 좋았을 텐데. 별다른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다. 오늘밤 그와 춤추는 호흡이 가장 잘 맞았다. 그보다 더 좋은 파트너를 만나기 힘들 거다. 남편이 날 찾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그만 내려가야지.

  어? 양방향으로 무리가 나눠지고 그 사이 무대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가 내가 움직이는 방향을 좇아 미끄러진다. 그가 나아가는 대로 시선을 따라가는 중에, 다음 곡이 시작됐다. 더 나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췄다. 그가 바로 내 건너편에 서서 서서히 다가온다. 이럼 반칙인데. 곡이 바뀔 때마다 파트너를 바꿔야 하잖아. 아니, 뭐, 이런 날, 누가 일일이 그걸 체크하진 않겠지만.

  “다시 만났네요.”

  거기서 날 따라왔잖아요. 물론 그 말을 꺼내진 않았다. 그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조금 빨라진 곡에 맞춰 발에 속도를 줬다. 그가 나에 맞춰 따른다. 누군가 배려해준다는 기분, 그건 무척 달콤하고 안락하다. 이번엔 그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은근히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 잠시 눈길을 내렸다 올리니 그 시선은 그대로 있다.

  “아니, 음, 뭘 그리 쳐다봐요.”

  “춤출 때 상대방에 집중하는 건 기본이거든요.”

  “아, 네.”

  상대방에 집중한다지만 너무 쳐다보는 것 같은데.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그의 목, 어깨, 가슴으로 옮겼다 귀로 넘어갔다.

  “원래 시선을 잘 못 맞추세요?”

  “아니, 그렇지 않은데요.”

  뭐지? 나를 성격 이상한 사람이라 하는 건가? 그리 보이기 싫어 일부러 눈에 힘을 주고 시선을 맞췄다. 이번엔 날 보고 웃잖아.

  “왜 웃으세요?”

  “아무리 가면을 썼다지만 눈에 힘주고 집중하는 게 빤히 보여서요.”

  그냥 포기했다. 얼굴이 뜨겁다 못해 펄펄, 끓어 넘칠 지경이다.

  “편하게 추세요. 물거나 하지 않을 테니까.”

  이번엔 확실하다. 그가 가까이 끌어당긴다. 춤추는 자세를 편하게 하려는 거겠지.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라고. 가까워지니 내 목에 닿는 그의 숨결이 느껴진다. 혹시, 내 숨결도 가빠졌으려나? 춤추는 것도 운동이니 숨이 빨리지는 게 당연할 텐데 그래도 그걸 들키고 싶지 않다. 그냥, 어째, 창피하잖아. 그의 관자놀이 근처에 시선을 뒀다. 그게 가장 편하다. 적당히 고개가 흔들리며 그의 시선이 눈에 들어왔다 놓여난다. 한결 숨이 고르게 바뀐다. 이제 더 이상 주위로 시선이 분산되지 않는다. 오직 그와 나만이 이 공간 안에 놓여있다. 운동선수들이 한창 경기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 순간, 시간이 서서히 흐르고 오직 자신과 상대방의 움직임만 보인다고 하던데, 딱 그런 순간이다. 우리 사이를 지나가던 시간이 서서히 흐르기 시작하더니, 주변엔 그와 나밖에 존재하지 않고, 춤곡이 귀에 더욱 선명하고 또박또박하게 울린다. 이제 그의 시선을 받는 게 어색하지 않다. 눈을 맞추고 한참을 그렇게 있었을까, 전기에 감전된 듯이, 저릿한 기운이 몸 전체에 퍼진다. 그 기운을 받자, 그에 반응해서 배꼽 아래 가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설명하기 힘든 뭔가가 솟아 올라온다. 도대체 이 반응들은 뭐지?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곡이 서서히 끝을 향한다. 아, 아쉽다. 아쉽긴 하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지속되기를. 음악소리가 멈추고 그가 내게서 물러나더니 아주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절을 한다. 나도 그에 맞춰 허리를 숙였다. 내 오른손을 모아 쥐더니 손등 위로 그가 입을 맞춘다. 이런 입맞춤은 인사의 요령으로 아주 잠깐 해야지 않나? 그가 입을 맞추는 동작이 한참 걸린다. 어느새 주변 사람들이 물밀듯이 흩어지고 우리 둘만 그 가운데 남아, 화들짝 놀란 동작으로 그가 붙잡은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났다.

  “자, 휴식시간을 갖고 다시 진행하겠습니다. 한 번 맞춰보세요. 다음 축하공연은 누가 할까요? 기대되시나요? 그 기대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을 따라 인파가 한꺼번에 무대 아래로 향한다. 그 무리를 따라 가다 슬쩍, 뒤를 보니 그가 아직 나를 바라보는 눈길이 느껴진다. 그걸 무시한 채로, 아래로 향했다. 누군가 나를 쳐다보는 느낌, 그게 나쁘지 않다. 그렇게 보면, 스토커가 되는가 아닌가는 그 상대에 따라 결정된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나를 계속 쳐다보면 그건 스토커가 되는 거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계속 쳐다보면 그건 애정이 되는 거다. 잠깐, 애정이라고?

  남편이 내가 앉아있었던 벤치에 앉아서 나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다. 그 옆에 가지런히 놓인 음료수 두 캔. 그 사람을 향해 다가가자 그가 나를 알아보고 손을 들어 흔든다. 그 옆에 앉으니, 춤추느라 가빠졌던 숨이 아직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걸 제대로 인지하게 된다. 남편이 들어올리는 음료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내 앞으로 그걸 내민다.

  “목이 많이 마른가봐. 뭘 그리 노려보는데. 어차피 당신 주려고 산 거야. 자, 여기.”

  내 손에 음료수를 쥐어주는 그에게 당부하듯 물었다.

  “우리 두 번째와 세 번째 무도회도 오는 거지? 마트 광고 해야 하잖아. 계속 와야겠지?”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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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경계 - 37 2023 / 6 / 9 192 0 16148   
36 경계 - 36 2023 / 6 / 8 194 0 5102   
35 경계 - 35 2023 / 6 / 7 187 0 4370   
34 경계 - 34 2023 / 6 / 6 189 0 4784   
33 경계 - 33 2023 / 6 / 1 191 0 6025   
32 경계 - 32 2023 / 5 / 31 186 0 5490   
31 경계 - 31 2023 / 5 / 30 202 0 12659   
30 경계 - 30 2023 / 5 / 29 212 0 11634   
29 경계 - 29 2023 / 5 / 26 202 0 12867   
28 경계 - 28 2023 / 5 / 25 194 0 12047   
27 경계 - 27 2023 / 5 / 24 198 0 13068   
26 경계 - 26 2023 / 5 / 23 203 0 8947   
25 경계 - 25 2023 / 5 / 18 203 0 13933   
24 경계 - 24 2023 / 5 / 16 205 0 7552   
23 경계 - 23 2023 / 5 / 15 210 0 17591   
22 경계 - 22 2023 / 5 / 11 215 0 24941   
21 경계 - 21 2023 / 5 / 10 207 0 6708   
20 경계 - 20 2023 / 5 / 9 219 0 14673   
19 경계 - 19 2023 / 5 / 4 211 0 8725   
18 경계 - 18 2023 / 5 / 3 210 0 10760   
17 경계 - 17 2023 / 5 / 1 210 0 6719   
16 경계 - 16 2023 / 4 / 28 211 0 5667   
15 경계 - 15 2023 / 4 / 27 213 0 6666   
14 경계 - 14 2023 / 4 / 26 225 0 5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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