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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천명
작가 : 임준후
작품등록일 : 2016.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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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기…, 그대는 중원에 들어섰으면서도 아무 일에도 개입하지 않으려 하는가.
하지만 가지 많은 나무는 바람이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 법.
중원의 풍파는 그대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대를 휩쓸 것이다.
당세의 국면은 은인자중하려는 자들을 용납하지 않으니까.]

 
12 화
작성일 : 16-07-14 13:59     조회 : 601     추천 : 0     분량 : 8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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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흐린 달빛 아래 크고 작은 두 사람의 신형이 바람처럼 골목과 골목을 돌며 길을 빠져나갔다.

 한 사람은 고대(高大)한 체구의 중년인이었고, 한 사람은 바람이 불면 금방이라도 허리가 부러질 듯 가냘픈 미녀였다.

 용화객잔을 빠져나온 위지룡과 운지란이다.

 그들은 몸을 날리며 백여 장 간격으로 신형을 멈추고는 벽의 한 부분을 확인하고 있었다.

 벽에 무언가 적혀 있는 듯했다.

 그렇게 위지룡의 옆에 바짝 붙어 몸을 날리던 운지란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못 참겠다는 듯 말문을 열었다.

 “사숙, 궁금한 게 있어요.”

 “뭐가?”

 두 사람은 한 걸음에 일장 여를 쭉쭉 나아가는 중이었다.

 속도가 빠르고 움직임이 표홀해서 마치 신선이 구름속에서 노니는 듯했는데 화산비전(華山秘傳)의 신법(身法) 선운비(仙雲飛)였다.

 통상적으로 신법을 전개할 때는 말을 하지 않는다.

 진기운용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인데 이들은 그런 것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그들의 내공이 정순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선운비라는 신법의 덕이 컸다.

 선운비(仙雲飛)는 화산에 전승되는 십여 가지의 운신법(運身法)들 중 원거리를 이동하는데 첫손 꼽히는 것으로 내공소모를 최소화하는 묘용이 있었다.

 위지룡을 바라보는 운지란의 눈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 남정기라는 사내를 그렇게 대접하신 이유가 뭐예요? 제가 볼 때는 배짱은 있어 보였지만 그 외에는 별 볼일 없는 촌뜨기던데....?”

 “강호엔 기이한 사람들이 많다. 외모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후일 뒤통수를 맞기 쉽지. 남정기라는 자의 나이는 많지 않지만 강호경험이 풍부한 자다. 모현과 청해쌍검객이 박투를 할 때부터 내가 그에게 말을 걸 때까지 그의 눈에 두려움이나 당황의 빛이 떠오르는 것을 나는 보지 못했다. 언제 피를 뿌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런 침착함을 보이는 자를 평범하다고 볼 수는 없지.”

 “저도 그가 무공을 익힌 흔적을 발견하긴 했지만 어느 모로 보아도 고수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던 걸요?”

 무공을 익힌 사람의 눈썰미는 일반인과 다르다.

 남정기의 어깨는 넓고 탄탄한데다가 허리는 가늘고 팔다리는 길었다. 그리고 그의 움직임은 유연하고 활달한 가운데 어느 한 순간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안정된 중심과 균형이 잡혀 있었던 것이다.

 운지란은 단순한 육체단련만으로 그런 몸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운지란의 질문을 받은 위지룡의 입가에 담담한 미소가 그어졌다. 그녀는 아직 강호경험이 적고 일신의 무예가 상승지경(上乘之境)에 도달하지 못해 사람을 볼 줄 몰랐다.

 후원에서 남정기를 본 다른 사람들도 몇을 제외하면 위지란과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몸을 날리며 위지룡은 운지란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 젊은 친구의 눈을 보며 느낀 것이 없느냐?”

 “그의 눈에서요? 무엇을요?”

 운지란의 고운 눈매에 주름이 잡혔다. 위지룡이 무엇을 묻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젊은이의 눈동자처럼 흔들림이 없는 눈동자는 살아오는 동안 단 두 번 보았다. 그렇게 정지된 눈동자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화산은 무당파와 더불어 검의 양대 조종(祖宗)으로 불리는 문파다. 그곳에서 평생을 수련한 위지룡의 안목은 남다른 바가 있었다.

 검(劒)을 수련해 절정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

 운지란은 위지룡의 말이 뜻하는 의미를 바로 이해했다. 그녀의 얼굴에 완연한 놀람의 기색이 떠올랐다.

 “절대부동심(絶對不動心)! 설마...?”

 “물론 내가 잘못 보았을 수도 있다. 나도 사실은 반신반의하는 중이기도 하다. 그 나이에 그런 경지에 오른다는 것은 어미 배속에서부터 무예를 수련한다해도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강호에는 드물긴 해도 왕왕 무예의 천재들이 등장하곤 한다. 만일 그 젊은이가 진정 절대부동심의 경지에 도달한 고수라면 그런 자와 쓸데없이 은원을 만들 필요는 없다. 그것이 내가 그를 대접한 이유다.”

 위지룡의 설명을 들으며 운지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용화객잔에서의 위지룡이 했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위지룡의 성격이 불같은 바가 있다고 그의 사고방식마저 단순할 것이라고 판단하면 위험천만하다.

 화산의 매화검(梅花劒)은 변화가 변화를 낳는 산검(散劒)의 최고봉이다. 머리가 나쁘면 평생을 수련해도 소성(小成)은커녕 일초반식조차 연성하기 어렵다.

 위지룡은 그런 매화검으로 화산 일대제자 중 오대검객의 일익을 당당히 차지하는 사람이다. 머리가 나쁠 수가 없는 사람인 것이다.

 절대부동심은 주로 검과 도를 비롯한 무기술을 수련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정신의 한 경지를 뜻하는 용어였다.

 검도를 비롯한 제반 병기로 목표물을 베기 위해서는 손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단순한 짚단베기도 손이 흔들리면 성공하지 못한다. 손이 흔들리면 검이 흔들리고 그것은 짚단에 결을 만든다. 그 결이 검의 진행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손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어깨가 흔들리지 않아야 하고 어깨가 흔들리지 않으려면 허리와 다리가 안정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허리와 다리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마음이 흔들리지 말아야한다.

 그것이 무림에서 말하는 부동심(不動心)의 의미다.

 부동심의 경지가 깊어지면 바로 옆에서 벼락이 쳐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가 된다.

 그러한 부동심의 궁극은 오욕칠정에 좌우되지 않는 절대부동의 경지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무림의 인물 중 절대부동(絶對不動)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또한 절대부동심(絶對不動心)은 내력운용에 막힘이 없는 경지와 함께 찾아온다고 전해진다. 그것은 임독이맥(任督二脈)이 타통(打通)된 것을 의미한다.

 임독이맥은 흔히 생사현관(生死玄關)이라고도 불리는 경맥이다.

 이 경맥은 두정부 백회혈에서 사타구니에 있는 회음혈까지 상체의 앞뒤로 원을 그리며 흐른다.

 임독이맥이 생사를 가르는 현묘한 관문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만큼 타통하기 어렵고 타통하면 타통전과는 다른 차원의 무도(武道)에 접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임독이맥이 타통된 절대부동심의 소유자라면 그 무예의 수준이 완숙한 절정(絶頂)의 경지라고 보아야했다.

 그것은 위지룡과 같이 절정의 문턱에 한 발을 내딛고 있는 고수에게도 쉽사리 바라보기 어려운 경지였다.

 무공에 있어 각 단계간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무인(武人)은 그 종이 한 장 차이를 넘지 못한 채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촌뜨기가....! 믿기 어려워요, 사숙.”

 운지란이 예쁜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나도 그렇다.”

 위지룡도 웃으며 운지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잘못 보았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얻은 사자철검이라는 외호는 마작판에서 얻은 것이 아니다.

 그들의 신형이 십여 장을 전진하다가 멈추었다.

 골목길의 한 쪽이었는데 위지룡은 허리를 숙이고 잠시 담벼락의 밑부분을 뚫어져라 응시하다가 허리를 펴며 입을 열었다.

 “사형이 이곳을 지나간지 일각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곧 뵐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바라보는 담벽에는 어린아이가 낙서를 한 듯한 무늬가 하나 그려져 있었다.

 눈매가 날카로운 사람이라면 그것이 꽃잎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고, 화산문하 이대제자 이상의 인물이라면 누구나 그 뜻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것은 화산의 비문(秘文:암호)으로 사용하는 매화문양(梅花文樣)이었다.

 암호는 비문을 남긴 사람이 일각전(一刻前)에 동남방향으로 갔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위지룡이 다시 몸을 날리자 운지란이 따라 붙으며 말문을 열었다.

 “사숙, 그런데 마지막에 그 촌뜨기에게 하신 말씀은 무슨 뜻이에요?”

 전면을 향한 위지룡의 이마에 굵은 주름이 두어 개 잡혔다.

 그는 속으로 이를 갈고 있었다.

 애물단지는 애물단지였다.

 그는 저 입을 어떻게든 틀어막고 싶었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납득할만한 대답을 듣지 못한다면 운지란은 입을 닫지 않을 것이다.

 위지룡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조금전과는 달리 무척 빨랐다.

 “용화객잔은 난주에서도 가장 큰 객잔이다. 당연히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모현처럼 기보를 갖고 몸을 숨기려는 자가 찾아들 곳이 아니지. 당장이라도 난주를 벗어나야 할 자가 그런 곳을 찾았다면 잠을 자기 위해서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해.”

 위지룡은 갑자기 불어닥친 바람으로 피어오른 먼지를 피하기 위해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렇지만 그는 곧 다시 입을 열어야 했다.

 “어떤 이유요?”

 운지란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그의 입에 고정되어 있었다.

 “모현의 활동 근거지는 사천이다. 그는 감숙의 지리에 어두워. 게다가 많은 사람들에게 쫓기고 있는 상황이다. 지리에 어두운 자가 잘 알려진 장소를 찾는 이유는 대부분 하나밖에 없다.”

 운지란도 어리석은 여인은 아니다. 그녀의 입에서 나직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모늙은이가 누굴 만나려고 했군요.”

 “그렇지. 그가 처한 상황은 아주 다급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남정기라는 젊은이에게 준 가짜 개문령을 가지고 있었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모현이 용화객잔에서 누군가를 만나려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청해의 정씨 형제들 때문에 무산되긴 했지만.”

 말을 하던 위지룡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으며 그의 신형이 두 배는 빨라졌다.

 운지란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선운비가 적은 내공만을 필요로 하는 신법이라고 해도 그녀와 위지룡의 수준은 너무 차이가 났다.

 위지룡을 따라붙기 벅찬 것이다.

 “사...숙...왜...?”

 가쁜 숨을 내쉬며 묻는 그녀를 향해 위지룡은 눈을 부라렸다.

 그 눈에 드리워진 짙은 긴장감을 느낀 운지란도 가슴이 써늘하게 식어갔다.

 “미처 생각지 못했다. 모현이 만나려한 자는 한 명이 아닐 것이다. 한 명이라면 절세의 고수일 것이고. 어지간한 능력을 갖고는 현재의 모현이 처한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 그런 장소에서 자신이 노출된다면 피하기 어렵다는 것을 모현 정도의 자가 염두에 두지 않을 리는 없어. 모현은 자신과 만날 자들의 능력을 믿은 것이다. 그리고 모현이 객잔을 떠났는데 그가 만나려했던 자가 모현을 따라가지 않았을 리도 없다. 한 손이 열 손을 당하기는 어려운 법. 사형도 도움이 필요할지 모른다.”

 위지룡은 입을 다물었다.

 그의 신형이 점점 빨라지자 운지란은 더 이상 입을 열 수 없게 되었다.

 위지룡을 쫓아가기 위해선 전력을 다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신형이 무서운 속도로 난주성의 인적없는 골목길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괴괴한 어둠속에서 절벽처럼 보이는 난주성의 남쪽 성벽을 단 두 걸음으로 바람처럼 타넘은 그림자는 일직선으로 쭉 나 있는 관도를 무시하고 관도 왼편의 숲으로 뛰어들었다.

 언뜻 구름속에서 빠져나온 달빛아래 무서운 속도로 달리고 있는 인영의 얼굴이 드러났다.

 용화객잔을 탈출한 모현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다급한 기색이 가득했다.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뒤쪽에서 따라붙고 있는 사람들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탓이다.

 그의 신법이 탁월하긴 하지만 그를 뒤쫓는 자들 중 평범하다고 불리는 자가 없는 것이 지금 그가 처해 있는 상황이었다. 한시도 안심할 수 없는 것이다.

 숲속으로 뛰어들어 이십여 장을 전진하던 그의 걸음이 무엇에 부딪치기라도 한 사람처럼 갑작스럽게 멈췄다.

 그가 전진하려고 하는 방향에 어둠과 동화된 것처럼 서 있는 장신의 흑의 복면인이 서 있었다.

 느닷없이 나무그늘에서 튀어나온 복면인 때문에 돌덩이처럼 굳어졌던 모현의 안색이 곧 풀렸다.

 그의 눈빛엔 안도감이 깃들어 있었다. 둘은 서로에게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왜 이리 늦게 온 거요? 종적이 노출되어 군웅들에게 추적당하고 있소!"

 복면인을 향해 말문을 여는 그의 음성엔 역정이 가득했다.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오. 미안하외다."

 모현과 달리 복면인의 음성에는 다급함이 없었다. 모현의 뒤를 쫓는 군웅들에 대해 무신경한 건지 아니면 그들을 안중에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인지 모호한 태도였다.

 "이 일보다 더 급한 일이 있다는 거요? 내 목이 떨어졌다 붙었다하는 상황이란 말이요!"

 모현은 나직하지만 화가 난 음성으로 복면인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복면속에서 흑의인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이 이상 더 얘기를 한다면 군웅들이 들이닥칠 거요. 가시오. 내가 시간을 벌어주겠소. 위기를 벗어나면 두 번째 약속장소에서 만납시다.“

 복면인의 말에 모현은 정신이 번쩍 든 얼굴이 되었다.

 복면인의 말이 맞았다.

 지금은 불만을 토해낼 시간이 아니었다.

 모현의 날카로운 눈이 복면인을 뚫어질 듯 응시했다.

 “가기 전에 당신들의 약속을 다시 한 번 다짐을 받고 싶소.”

 말을 하는 모현의 음성은 절실했다.

 모현의 말에 복면인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어 냉정해 보였지만 사람을 믿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당신의 아들이 앓고 있는 병을 완치시켜주겠다는 약속은 반드시 이행될 거요. 그것은 내 목숨을 걸고 지킬 약속이외다.”

 복면인의 대답에 모현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을 믿겠소.”

 말을 마친 모현의 신형이 숲의 남쪽을 향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복면인과 모현의 대화는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가 하나의 조직에 속한 관계가 아닌 것처럼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에는 단지 계약을 맺고 거래를 하는 사람들 특유의 울림이 들어있을 뿐이었다.

 모현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던 흑의인이 한 손을 슬쩍 흔들었다.

 그의 앞 다섯 자 정도의 공간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처럼 일그러지더니 환상처럼 세 사람의 복면인이 나타났다.

 모현의 경공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신법이었다.

 나타난 복면인들의 체구는 왜소했는데 그 체형은 방금 사라진 모현과 비슷했다.

 복면인의 눈빛이 강렬해졌다.

 동시에 그의 전신에서 잘 벼린 칼날처럼 삼엄한 기세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벗어라.”

 짤막한 그의 지시에 복면인들은 일제히 손을 들어 쓰고 있던 복면을 벗어들었다.

 복면을 벗은 그들의 모습은 세 쌍둥이처럼 똑같은 모습이었다. 자리를 떠난 모현이 그들을 보았다면 크게 경악했을 것이다. 그들은 모현의 얼굴을 판박이한 듯 비슷했다.

 모현은 쌍둥이 형제가 없다. 답은 하나였다.

 복면인들은 역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역용은 모현이 이 자리에 있어서 복면인들과 모현을 같이 비교한다면 차이점이 드러날 정도여서 그렇게 정교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어둠속에서 본다면 실제 모현과 구분을 하기 곤란한 정도는 충분히 되었다.

 세 사람을 바라보는 복면인의 시선이 깊게 가라앉았다.

 “모현을 통한 혼란은 당분간 필요하다.”

 복면인의 말이 빨라졌다. 시간은 쉼없이 흐르고 군웅들의 추적은 지척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대업(大業)을 위한 일이다. 너희들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되기 바란다.”

 복면인의 말은 짤막했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열기는 짧은 시간에 사라지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모현으로 역용한 사내들의 눈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복면인에게 허리를 깊게 숙이고 머리를 드는 사내들의 신형이 아지랑이처럼 흐려지더니 환영처럼 사라졌다.

 홀로 남은 복면인의 눈이 어두운 하늘로 향했다.

 ‘남정기. 그대를 용화객잔에서 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대는 중원에 들어섰으면서도 아무 일에도 개입하지 않으려 하는가. 하지만 가지많은 나무는 바람이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 법. 중원의 풍파는 그대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대를 휩쓸 것이다. 당세의 국면은 은인자중하려는 자들을 용납하지 않으니까. 그대도 곧 그것을 알게 되겠지.’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던 복면인의 두 눈에 강렬한 빛이 일어났다.

 ‘후후후. 그런 상황에서 참다니.... 고집이 세다고 하신 그분의 말씀에 웃고 지나갔었는데 정말이었어. 아무튼 그대가 중원에 발을 들여놓고도 움직이려하지 않으려 한다는 소식을 들으시면 그분께서 실망하시겠군. 그러나 일은 끝까지 진행된다. 이 일은 대업의 일환이니까. 그리고 남정기! 그대도 결국 우리와 함께 하게 될 것이다.’

 모현이 있던 용화객잔에 복면인도 있었다. 그곳이 모현과 만날 장소였으니까. 그러나 복면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곳에서 복면인은 예상치 못했던 인물을 보았기 때문이다.

 남정기.

 그는 복면인에게 있어 모현과 비교할 수조차 없는 무게를 갖고 있는 인물이었다. 곤란한 상황에서 그가 어떻게 행동하는 지 복면인은 확인해야 했던 것이다.

 복면인이 사라진 직후 숲속이 모현의 뒤를 쫓는 수십 명의 무림인들로 메워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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