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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나쁜심장
작가 : 송강
작품등록일 : 2022.1.27

차지할 수 있는 자리는 단 하나.
“내놔! 그건 원래 내 자리야.”
“무슨 소리? 원래란 건 없어. 먼저 차지하면 그만 인거지.”

 
제8화
작성일 : 22-02-04 14:19     조회 : 193     추천 : 0     분량 : 4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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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그때를 떠올리는 레오는 아득한 눈빛으로 웅얼거렸다.

 “그때만 해도 엄마와 나는 이를 데 없는 둘도 없는 사랑하는 모자관계였는데.......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하아.......후우.”

 스치는 지난날의 행복에 가슴이 저려왔다.

 찡 코끝까지 시큰해지자 레오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러자 빌리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쟁쟁하게 울리는 것 같았다.

 “이봐 레오. 제발 허튼 생각 좀 하지 마! 이젠 넌 어린에가 아니야. 눈앞의 현실을 직시하라고.”

 레오와 빌리의 불가역적 관계.

 상상의 허용마저 브레이크를 거는 빌리는 레오의 과거와 현재에 철저히 스며든듯했다.

 이내 눈을 뜬 레오는 예상외로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빌리는 내게 또 이렇게 말할 테지.”

 너와엄마와의 관계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라고.

 그랬다.

 엄마와는 제대로 뒤엉켜버린 헝클어진 실타래가 맞았다.

 그러나 이렇게 지난일이나 부여잡고 회상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하는 데까지는 해보아야했다.

 포기는 금물이었다.

 “나도 이대로 가만있지만은 않을 거야.”

 번쩍 눈을 뜬 레오는 작은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한편 그 시각.

 빌리는 까딱까딱 발끝을 흔들며 초록색 미끄럼틀 위에 오뚝 앉아 있었다.

 넓은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온통 놀이기구였다.

 실내놀이터 인가 보았다.

 빌리가 앉은 미끄럼틀에서 에어매트로 연결되는 이중구조를 비롯하여 규모가 제법 큰 정글짐.

 에어바운스로 지어진 궁전모양의 개선문을 필두로 양쪽에 세워진 인기캐릭터들.

 그 안쪽으로는 놀이동산을 방불케 하는 형형색색의 신기한 모형들이 즐비했다.

 실내놀이터치고는 상당히 고급스럽고 종류 또한 다양했다.

 한눈에 보아도 주최자의 세심함뿐 아니라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을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

 흥미나 짜릿한 스릴보다는 철저히 안전을 위주로 형성된 조합이었으니까.

 두 아이들만의 특화된 놀이터 인듯했다.

 레오와 빌리 둘의 나이를 감안하자면 턱 없이 수준 낮은 구성이었지만 없을 것은 없었다.

 유일하게 집안에서 CCTV가 작동되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

 놀 때만큼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신나게 놀라는 윤선의 배려였다.

 까닭에 빌리는 이곳을 자주 찾는 편이었다.

 꾹 다문 입술에 쭉 당겨 올라간 눈썹이 팽팽해있는 빌리의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하긴 잠깐이긴 했지만 좀 전 레오와의 대치상황 뒤였다.

 제 아무리 굳건한 빌리일지라도 아무렇지도 않다면 이상할 테지.

 그것은 분명히 레오식의 도발이었으니까.

 “레오 녀석. 변했어. 변해도 아주 더럽게 많이 변했어. 흥! 시도 때도 없이 징징대던 코찔찔이 녀석 주제에.”

 빌리는 입가를 비틀었다.

 “쳇, 그러기만 했을까? 툭하면 내 바짓가랑이 잡고 울며불며 살려 달라 메달리더니 뭐야? 이제 대놓고 나한테 덤비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건방진 놈!”

 분을 이기지 못한 빌리는 자신의 오른팔을 휙 아래로 흩뿌렸다.

 “윽! 아야.......아파.”

 플라스틱 미끄럼틀을 스친 손가락 끝이 욱신거렸다.

 “에이 씨. 하여튼 저 새끼랑 엮여서 나한테 좋을 게 없어. 하등 남는 게 없다니까?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야. 아오, 세게 부딪혔네.”

 빌리는 자신의 오른팔을 공중에 대고 펄럭펄럭 털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빌리는 레오가 저런 식으로 나올 때면 적잖이 불안했다.

 차라리 양 볼을 파르르 떨면서 꽥꽥 소리 치고 흥분할 때면 의연할 수 있었다.

 그런데 모든 걸 내려놓은 듯 고개 숙이고 처연히 앉아있을 때.

 수긍하는 자세 뒤에는 늘 문제가 있었다.

 처음에는 레오의 말없는 물러섬이 현실을 직시한 포기인줄 알았다.

 ‘당연하지. 지 까짓게 더 이상 어쩌겠다고? 그래도 생각은 있네 하긴, 레오가 머리는 좋고 똑똑하긴 하지. 그래 그 점은 나도 인정해.’

 빌리는 의심 없이 고개를 주억였었다.

 그러나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느닷없이 레오는 뒤통수를 치고는 했다.

 너무나 뜬금없는 레오의 반격.

 ‘아니! 이게 무슨 일? 대체 무슨 꿍꿍이란 말인가?’

 빌리는 의아했지만 그것은 일종의 레오의 성향이었다.

 정작 중요하지 않은 일에는 잘도 발끈하지만 자신이 비중 있다 여기는 부분에 대해서는 찬찬하고 꼼꼼히 심사숙고했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더라도 개의치 않고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성향이 있었다.

 그럴 때 보면 영락없는 엄마 윤선의 모습이었다.

 빌리는 중얼거렸다.

 “쪼꼬만게 보기보다 당찬 구석이 확실히 있어.”

 만약에 레오가 조금만 더 태생적으로 신체적인 상황만 받쳐줬더라면?

 빌리는 자신이 레오를 감당하기에 힘들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도 여러 번 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레오의 타고난 육체적인 제반 상황은 너무나 열악했다.

 “아아!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저 자식을 어떻게 납작 눌러주지? 코도 홀짝 못하게 작신 밟아주고 싶은데 말이야.”

 순간적으로 희번덕이는 칙칙한 빛을 발하던 빌리는 새삼 헛웃음이 났다.

 이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빌리는 고개를 외로 꼬았다.

 “레오 저 자식. 이제 와서 번번이 개 목줄로 사람 심장을 뒤엎잖아? 아! 그놈의 징그러운 개 목줄 진짜 없애버리던지 해야지.”

 빌리는 아랫입술을 앙다물었다.

 아무리 떨치려 해도 이럴 때면 어김없이 출현하는 그날.

 지우고 싶은 그날의 기억이 빌리는 죽도록 싫었다.

 하지만 스멀스멀 피를 빠는 거머리처럼 어느새 흡착해 있었다.

 “흥! 이리되면 결국 레오. 너의 계획이 성공한 셈 인가? 아.......짜증나!”

 버럭 소리치는 빌리는 급격하게 무기력해졌다.

 

 불쑥 나타났다 명함을 챙기고 황급하게 제혁이 사라지고 다시 둘만 남은 공간.

 윤선은 이미 무릎을 세워 쪼그린 자세로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

 그 장소 그 자리에서 윤선은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스산한 표정으로 자신만의 울타리로 들어선 듯했다.

 레오가 먼저 말했다.

 “슬픈 소식이지만 나에게 빌리의 안부를 전해줘서 고마워. 무척 감사하게 생각해. 하늘나라로 간 빌리를 위해 지금이라도 기도할 수 있게 되어서 정말 다행스러워.”

 돌연 레오는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감사의 인사인 듯했다.

 “아, 아니야. 나는 단지 빌리의 심부름........으로.......”

 생각지 못한 레오의 진지한 태도에 말끝을 흐렸던 빌리.

 그 순간 빌리는 저도 모르게 찔끔했었다.

 여전히 레오는 말간 눈으로 마음을 담은 진심어린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너무나도 예의바르고 심성이 착한 아이였다.

 어찌 보면 순수함의 극치였다.

 자신의 움찔함에 빌리는 난처함을 가장한 불만의 인상을 썼다.

 “그만해.......레오. 왜 그래? 부담스럽게.”

 빌리가 낮게 웅얼거렸다.

 젠장, 코딱지만 한 이런 어린놈을 상대로 대체 뭐하고 있는 짓이야?

 빌리는 저도 모르게 뚱해졌다.

 그러기를 얼마 후 레오가 물었다.

 “너의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

 입술을 쭉 내민 빌리는 대답대신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면? 갈 곳은.......있어?”

 역시 빌리는 한쪽으로 고개를 까딱하며 기울어진 어깨로 으쓱했다.

 “아, 그렇구나.”

 가녀린 목 고개를 끄덕이는 레오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너는 버려졌구나. 맞지?”

 낮은 음성으로 묻는 형형했던 레오의 표정. 비수처럼 꽂히던 거침없는 질문이었다.

 “.......”

 멀뚱히 레오를 바라보던 자신이 어떤 답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수십 번을 재생반복해도 이상하게 그 부분만큼은 하얗게 지워져있었다.

 “그렇구나. 그런 것 같아.”

 지금 생각해보면 묻는 레오의 표정은 애초부터 확신에 차있었다.

 자신과 마주앉은 이 아이를 찾으러 올 부모는 이미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여전히 말이 없는 빌리를 향해 어리고도어린 레오는 말했다.

 “그렇다면 나랑 함께 갈래? 우리 집으로?”

 눈빛을 빛내며 묻는 레오의 질문에 빌리는 화들짝 놀랐다.

 “......!”

 빌리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멀뚱멀뚱 레오만 바라보았다.

 레오는 바짝 다가와 빌리의 두 손을 잡았다.

 “너는 지금부터 빌리가 되는 거야. 우리의 사랑스러웠던 빌리. 가족이 되는 거지. 어때?”

 “헉!”

 빌리는 휘청했다.

 옳아! 이거였던 거야.

 가뭄의 단비라는 말의 의미가 이런 것일까.

 빌리는 사실 그 순간 자신이 나아갈 목적지를 잃고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레오에게 자신의 목에 건 목걸이를 은밀하게 보여주는 것.

 자신이 알고 있는 매뉴얼은 딱 거기까지였으니까.

 

 피 묻은 개 목줄을 설렁설렁 흐르는 물에 씻어 자신에게 건네던 여자.

 “잘 가지고 있어. 이 개 목줄이 너의 생명 줄이 될지도 모르니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던 그 여자는 빌리의 손에 억지로 그것을 쥐어주었다.

 뚝뚝 옅은 핏물이 떨어지는 개 목줄을 들고 빌리는 굳어있었다.

 훅 끼치는 비릿한 비린내와 끈적끈적 손에 감기는 질척한 감촉.

 오싹할 정도로 기뿐 나쁜 이질감에 빌리는 온 몸이 떨려왔다.

 그러나 어린 빌리는 애써 꾹 참고 있었다.

 “내말 명심해. 길가에 내버려져 처참하게 짧은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다면.”

 빌리의 귓전에 대고 그녀는 동굴 속 울림처럼 음침한 저음을 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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