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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개를 족쳐라
작가 : 날씨가덥네요
작품등록일 : 2021.12.29

조선 제일의 투견 판매처 경산.
노비 개똥은 오늘 이 지옥을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개만도 못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쫓고 쫓기는 숨막히는 추격극이 시작된다.

 
12. 뒷일.
작성일 : 22-01-29 01:55     조회 : 177     추천 : 0     분량 : 3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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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멀리 사라져가는 언니 오빠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선아는 애써 감췄던 눈물을 소매로 닦아냈다.

 

  ‘이제 내 차례야.’하고 스스로 속삭이며, 나이답지 않은 의젓한 모습으로 선아가 소매를 걷었다.

 

  방석이 부탁했던 내용이 선아의 머릿속에 연기처럼 나타났다.

 

  “우리가 떠나고 완벽하게 경산의 뒷정리를 해줘야 해.”

 

  늦은 저녁 경산에 돌아온 마귀가 다른 아이들의 부재를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완벽한 뒷정리가 요구됐다.

 

  마귀는 일꾼들의 출석 여부를 따지는 인간이 아니었다.

 

 

  늦게 돌아온 마귀를 한 명이 맞이하든, 모두가 맞이하든 그녀는 그것에 큰 신경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일꾼들이 본인들의 업무를 끝내지 못한 것에는 어림도 없었다.

 

  그녀는 늘 본분에 맞는 책임을 강조하는 우두머리였다.

 

  “혼자서 힘들겠지만, 우리가 행렬이 떠나기 전에 최대한 힘겨운 일들은 끝낼게. 너는 배설물이나 잡다한 쓰레기들을 청소해주면 될 거야. 물론, 이것도 많이 힘들겠지만, 부탁한다.”

 

  자신을 믿음직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방석의 얼굴이 생생했다.

 

  그 믿음을 벌써 져버릴 수는 없었다.

 

  선아는 빳빳한 비를 들고 닥치는 대로 청소를 시작했다.

 

  흩뿌려진 건초, 딱딱하게 굳은 배설물, 역겨운 냄새가 진동하는 음식물 쓰레기들까지.

 

  평소라면 한숨 몇 번 내쉬며 쉬엄쉬엄 할 일이었지만, 오늘 만큼은 조금의 휴식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훌쩍 지났고, 다리가 후들거리다 못해 부러질 것 같은 통증이 밀려오던 순간.

 

  선아는 마귀가 다시 돌아오고 있음을 눈치챘다.

 

  경산의 입구 부근에 묶어둔 어린 개들이 본인들이 늑대라도 된 것 마냥 울부짖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아직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미숙한 개들은 마귀의 냄새를 맡기만 해도 다음과 같이 울음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았다.

 

  아우우. 아우우.

 

  하는 길고 뾰족한 소리 사이에서 저벅저벅 마귀가 걸어 나왔다.

 

  “오, 오셨습니까!”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선아가 마귀를 맞이했다.

 

  마귀는 선아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더니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바꿨다.

 

  “오냐. 끌끌, 이번엔 워낙 개새끼들이 잘 팔려서 정리할 건 별로 없었겠구나.”

 

  휑한 경산의 모습을 훑어보며 마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 그렇습니다!”

 

  평소보다 조금 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다행히 이런 미묘한 음정을 눈치 챌 만큼 마귀는 섬세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늘은 피곤하구나, 먼저 올라가겠다. 너도 얼른 들어가라.”

 

  역시 마귀는 선아 홀로 마귀를 맞이했다는 것에 별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은 먼저 숙소에 들어가 뻗어 있겠거니, 싶을 테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선아는 꾸벅 머리를 숙였고, 등을 돌렸다.

 

  당장 숙소로 돌아가 눈이라도 붙이지 않는다면 혼절이라도 할 것 같았다.

 

  “아 참, 아가야. 너는 잠시 나를 따라와라.”

 

  그런데,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장날이 끝나고 돌아온 마귀가 일꾼을 지명한 일은 단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하필 오늘에서야 이런 이례적인 경우가 생기다니.

 

  선아는 불안했다.

 

  “무, 무슨 일인지 여쭤보아도 되겠습니까?”

 

  성큼성큼 걸어가는 마귀의 뒤를 부랴부랴 따라가며 선아가 정중하게 질문하자, 마귀는 머리를 긁적이며 하품했다.

 

  “너 말이다. 몰래 개새끼 값어치를 불려 팔았더구나.”

 

  “네?”

 

  순간 선아는 몸이 굳었다.

 

  여태껏 몰래 개들의 몸값을 올려 팔았던 건 사실이었다.

 

  그것을 조금씩 모아 금화 하나를 마련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던가.

 

  “죄를 묻지는 않을 터이니, 두려워 말고 따라오기나 해라.”

 

  당장 몽둥이로 찜질을 당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의외로 마귀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선아는 걱정으로 더부룩한 배를 안고 그 뒤를 따랐고, 마귀의 숙소까지 발을 움직였다.

 

  마귀의 체격처럼 모든 것이 큼직하게 설계된 마귀의 숙소는 솜씨 없은 화백의 그림 같았다.

 

  “거기 앉아라.”

 

  마귀는 마당에 넓게 펼쳐진 평상을 가리켰고, 본인이 먼저 다리를 쭉 펴고 그 위에 앉았다.

 

  “네, 알겠습니다.”

 

  선아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하고 엉덩이를 붙였다.

 

  어떤 불호령을 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네가 가격을 부풀린 줄 내가 몰랐을 것 같으냐? 끌끌, 하기야 네 눈에는 내가 돈이나 셈하는 인간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다 벌어먹자고 하는 건데 내 수중에서 돈이 얼마나 놀아나는지는 생각해야 하지 않겠느냐.”

 

  마귀는 평소처럼 기분 나쁜 웃음을 내비치며 허리춤에 걸쳤던 주머니를 풀었다.

 

  주머니에서 은화, 금화 등이 우수수 쏟아졌고, 마귀는 그 중 금화 한 개를 들어 보이며 선아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이게, 그리고 가지고 싶더냐? 그런데, 어째서 이번에는 값을 부풀려 파는 짓을 하지 않은 것이냐? 응?”

 

  “그, 그것은…”

 

  마귀의 질문에 곧이곧대로 답할 수 없었다.

 

  이번 장날이 유독 정신이 없었던 이유에 대해 어떻게 입에 올릴 수 있겠는가.

 

  “죄송합니다. 사, 사죄하겠습니다.”

 

  사실을 고하는 대신, 선아는 사죄를 고했다.

 

  “끌끌, 아가야. 나는 너를 벌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 생각이 궁금했을 뿐이다. 도대체 너에게 이 금화가 어떤 쓸모가 있었길래 탐했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응? 그렇지 않느냐? 너는 내 소유의 강아지 아니더냐? 이 경산이 너의 세상이고 너의 모든 것인데. 어째서 이 따위 금전에 욕심이 솟았느냐 이거다.”

 

  마귀는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눈초리였다.

 

  전래동화를 듣는 소녀처럼 낭만에 젖은 눈빛이었다.

 

  “이, 이곳에서 나가고자 그랬습니다. 제, 제 몸값을 벌면 이곳에서 나갈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두렵지만, 더 말을 아꼈다는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마음에 선아가 속마음을 고백했다.

 

  그리고, 그 반응은 실로 놀라웠다.

 

  “흐하하하! 그래! 정말 그럴 줄 알았더냐! 하하하!”

 

  적장의 목을 딴 대장군마냥 호쾌하게 웃으며 마귀가 평상을 쾅쾅 쳤다.

 

  쇠붙이로 만든 평상이 살짝 찌그러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과격했다.

 

  “나는 말이다, 아가야. 자유를 얻고 싶어 내 주인을 죽였다.”

 

  “네?”

 

  그것은 난데없는 이야기였다.

 

  마귀가 본인의 과거에 대해 입에 담은 적이 있던가?

 

  선아의 기억에선 전무했다.

 

  “나는 도공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도공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더구나. 그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는 난 아니 되었어. 난 천한 것이었고, 여자였으니 말이다.”

 

  마귀는 옛 기억을 떠올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내 그릇을 만지는 게 소원이었다만, 그것을 이룰 수 없으니 개를 만지게 되더구나. 개라는 것은 천한 것이 다뤄도 손색 없는 재료였지. 내 주인을 죽여 자유를 얻었으나, 또 누군가를 죽여 꿈을 얻기에는 이 세상이 너무 억센 것이야. 그냥 개나 족치고 사는 수밖에.”

 

  마귀는 잠시 하늘을 바라보고 말을 이었다.

 

  “요는 말이다, 아가야. 네가 아무리 발악을 한들 되지 않는 것은 되지 않는 법이야. 하지만, 지랄 한 번 하지 않고 살면 조그만 자유라도 얻을 수 없는 법이지. 지랄을 하고 살아야, 아가야. 대신에 그 지랄의 값을 치르면 그만이다.”

 

  선아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만 끄덕였다.

 

  마귀의 눈빛이 ‘봐주는 건 이번이 끝이다.’ 라고 똑똑히 말하고 있었다.

 

  “네 꿈이 야무져 그냥 넘어가마. 어디 한 번 내가 만족스러울 만한 값어치를 내놓는다면 자유를 선사해줄 지도 모르는 일이야. 하지만, 이런 어줍잖은 요행은 더 이상 용납 하지는 않겠다. 그럼 이만, 들어가 보거라.”

 

  “감, 감사합니다.”

 

  어벙벙한 표정으로 선아가 인사를 마치고 평상에서 내려와 숙소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숙소까지 쭉 이어지는 내리막길이 썩 편하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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