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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판타지/SF
화이트 뱀파이어, 다크 뱀파이어
작가 : 스누피브라운
작품등록일 : 2022.1.9

인간과 함께 공존하는 화이트 뱀파이어, 그리고 이들을 배신자 취급하는 다크 뱀파이어...
극소수의 화이트 뱀파이어들이 인간 세계에서 행복하게 잘 사는 것과 달리,
대다수 다크 뱀파이어들은 어둠 속에서 쥐처럼 인간의 피를 훔치며 인간들로 포획당하거나 사살당하며 생존한다. 이들이 어떤 이유로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알 수 없는 개체로 진화되고...인류는 이에 위협을 느끼게 되는데..

 
4화 - 벽 뚫고 들어왔어요?
작성일 : 22-01-23 14:35     조회 : 212     추천 : 0     분량 : 5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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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화. 벽 뚫고 들어왔어요?

 

 1.

 “등 뒤에요...”

  소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강천이 시선을 돌렸다. 벽 한 가운데 어른 몸 하나가 오갈 수 있는 구멍이 하나 있었다.

  “벽 뚫고 들어왔어요?”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거기 말고는 강천이 이 밀실 감옥으로 들어올 방법은 없다. 문제는 기억이 전혀 안 난다는 거다. 잠시 화이트 아웃을 겪긴 했지만 그 사이 저런 동굴 같은 구멍을 만들기에는 너무 찰라 같은 순간이었다.

  “모르겠어요. 물론 지금 상황을 보면 그래야 말이 되긴 하는데...”

  “시끄러운 소리가 났잖아요. 그게 아저씨가 벽 뚫는 소리 아니면 뭘까요?”

  소녀가 두 눈을 끔벅거리며 자신을 바라보자 강천은 머리가 아주 혼란스러워졌다. 이쯤 되니 슬슬 두뇌 쪽 관련 질환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갔다.

  “혹시 기억상실증? 잠깐 잠깐 깜빡하는 그런 병 있잖아요.”

  본인의 속내를 대신 말해주는 소녀에게 강천은 주목했다. 분명 침대에 누워있을 때는 절망으로 어쩔 줄 몰라 하던 모습이었는데. 지금 그녀의 태도는 슈퍼 아이돌 스타를 쫓아다니던 철없는 사생 소녀 팬 모습 그대로였다. 뱀파이어가 되면 인간시절 자질이 배로 뛰는 법인데 그럼 혹시???

  “아까 살려달라고 애원한 게 혹시 학생이었어요?”

  그녀가 머리를 끄덕였다.

  “세 시간 동안 애원했는데 아무도 안 도와주더라고요. 왜 내가 여기 끌려왔는지, 어째서 팔에 이런 화상이 생긴 건지 얘기도 안 해주고 여기다 이렇게 가둬두니 무서워 죽겠어요.”

  다시 소녀가 엉엉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당연한 일이다. 본인이 다크 뱀파이어가 되었다는 사실 조차 자각이 안 되어있을 테니.

  “세 시간 내내 살려달라고 애원했다고요?”

  “예...근데 유일하게 온 사람이 바로...”

  소녀가 집게손가락으로 강천을 가리켰다. 상대방 호칭이 참으로 애매할 때 하는 행동 중 하나로 봐도 좋았다.

  “혹시...세 시간 내내 쉬지 않고 살려달라고 했나요?”

  “네! 세 시간 내내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우리 오빠들 이름도 그렇게는 안 불러 봤을 거 같은데. 신기하게도 목은 안 쉬네요.”

  이쯤 되니 강천의 의심은 확신에 가까워졌다. 아주 짧은 화이트 아웃이라고 여겼던 것이 사실은 장장 세 시간의 기억상실이었던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것도 축지법을 쓰는 순간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 800년을 뱀파이어로 살면서 처음으로 능력의 다운 그레이드를 경험해 본 거다.

  혹시 다시 인간으로 되돌아가는 건 아닐까? 그 순간 문 밖에서 들리는 특수 요원들의 목소리에 두 뱀파이어는 바짝 긴장했다. 소녀 쪽이 훨씬 더 공포에 질려서 강천의 팔을 잡고 애원했다.

  “여기서 도망쳐요, 같이. 뭐하는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좌우지간 나 구하려고 온 건 맞잖아요...”

  자신도 왜 여기까지 오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 포악무도한 국정원 특수요원들 손에 소녀를 내버려둘 순 없었다. 과거의 전례를 봐도 참수 아니면 심장을 도려내서 죽일 게 뻔했다.

  소문에 의하면 과거 반정부 인사들을 눈 하나 깜짝 안하고 고문해서 죽이던 악덕 경찰관들을 몰래 빼돌려서 잘 먹고 잘살게 해주며 특수 요원들을 은밀히 교육시켰다고 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적어도 인간 세상의 시민권을 갖고 있는 유강천과는 달리 이 소녀가 어떤 험한 꼴을 당할지 훤히 보였다.

 

  문이 정말로 벌컥 열리며 형형색색의 선글라스와 티셔츠 차림의 요원 두 명이 들이닥쳤다.

 그들 중 한 명은 조용히 안 하면 죽이겠다는 위협적 말을 라임까지 맞춰가며 흥얼대는 중이었다.

  그러다 강천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치자 바짝 긴장했다.

  “쟤는 뭐야? 왜 여기 있어?”

  라임을 맞추던 요원이 어처구니 없어하며 강천과 그의 팔에 매달린 소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자 뒤따라 들어온 요원이 신중하게 벽 쪽을 바라보았다. 구멍 뚫린 그 벽 쪽을.

  “뭐해? 잡아야지!”

  그가 호통을 치자 라임 흥얼이 요원이 강천에게 돌진했다. 아무리 잘 훈련된 국정원 특수 요원이라 할지라도 과거 몽골 병사들을 벌벌 떨게 하던 무인 출신의 뱀파이어 유강천의 무공 앞에서는 그저 부는 바람에도 바스라 질 잎사귀에 불과했다.

  다만 유강천은 인간 세상에 잘 적응해서 살아가는 대한민국 시민권자이다. 결코 힘을 남용해서 사람을 죽이는 법이 없다. 그 덕분에 흥얼이는 진심으로 여섯 살 흥얼이 같은 모양새로 바닥에 쓰러지며 심지어 바지에 쉬까지 해버리고 말았다.

  “야, 화이트! 너 이제 하던 사업 다 말아먹고 도망 다니며 살려고? 지금이라도 마음 고쳐먹고 우리 쪽으로 와서 서. 그럼 방금 전 일 눈감아 줄게.”

  그 말에 응할 유강천이 아니었다. 인간 세상에서 성공과 안락함이 주는 달달함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달콤한 음식도 과하면 병이 되는 법. 지금 이 불쌍한 소녀를 처참한 운명의 손에 떠넘기면서 까지 그리 달달한 인생을 누린다면 필히 마음에 종양이 생기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화이트 뱀파이어 유강천이 있기 전에 고려의 무사 유강천이 먼저 있었다. 명예와 도덕을 늘 소중히 여기던 바로 그 인간 무인. 어쩔 수 없기는 하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누려왔던 안락함을 포기해도 좋을 이유가 생겼다.

  “내 팔 꼭 잡아요.”

  소녀는 방금 꺼낸 찰떡처럼 달라붙는 행동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강천은 다시 한 번 축지법을 시도할 셈이었다. 저 요원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를 것이다. 방금 전 실패했던 시도를 제외하고 그가 마지막으로 축지법을 쓴 것은 전쟁 중 중공군의 느닷없는 도강 소식을 함흥의 어느 주막집에서 듣고 난 뒤였다.

  조금 전 실패는 아마도 너무 오랫동안 써본 적이 없어 살짝 녹이 슨 것이리라. 그래서 화이트 뱀파이어 유강천은 구멍을 노려보며 돌진했다.

 

 2.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이번에는 한 십 초간 지속된 것 같았다. 그래도 정신을 차렸을 때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즉시 판단할 수 있었다. 들판이었다. 그리고 어두운 밤이었다. 놀란 사슴과 들개가 숲 저편으로 달아나기 바쁜 모습이 한 줌의 달 조명에 비쳤다.

  “괜찮아요?”

  여전히 찰떡처럼 강천 팔뚝에 달라붙은 채 소녀가 고개만 끄덕였다. 한동안 둘은 아무 말도 나누지 못했다. 방금 전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 둘 다 어안이 벙벙하기만 했다.

  일단 강천은 소녀와 밀실에 있을 때 시간을 따져보았다. 분명 오후였을 것이다. 넉넉잡아도 17시 이상일 수 없었다. 게다가 해가 짧은 겨울도 아니었다. 분명 19시 이후에도 날이 밝은 초가을이었다.

  “달이 높이 떴어요!”

  소녀가 신기한 것을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외쳤다. 그럴 만도 했다. 그녀가 보기에도 지금이 이렇게 어두운 한밤중일 리가 없었다.

  “저기요...혹시 능력자세요? 시간을 점프하는 그런 거...미드에서 본 적 있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내게 시간을 압축하는 능력이 생겼나 보네요. 원래는 축지법만 쓸 줄 알았는데.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인지.”

  그제야 소녀가 강천에게서 떨어졌다. 마치 절대 범접해서는 안 될 존재를 만나 화들짝 놀라기라도 한 양 그랬다.

  “그럼...뱀파이어?”

  “뱀파이어를 알아요?”

  “소설에 많이 나오잖아요.”

  “아...근데 소설 속 뱀파이어들은 그냥 작가의 뇌피셜일 뿐 실제와는 많이 달라요. 더욱이 인간 여자와 삼각관계 사랑을 한다는 설정 따위는 죄다 엉터리에요.”

  “하긴...뱀파이어가 시간여행을 한다는 얘기도 없긴 하죠. 아, 하나 본 적 있어요. 뱀파이어들이 인간들을 피해 미래로 마구 돌진해 보니 식물밖에 없는 세상이더라는 짧은 소설이요...푸하하하”

  구르는 돌만 봐도 배꼽 쥐고 웃는 여고생 나이라서 그런가? 소녀는 어두운 한밤중 들판 한 가운데라는 위협적이고 중대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뭐가 그리 좋은지 깔깔 웃었다.

  “맞아요. 뱀파이어들 중에 시간을 뛰어넘는 능력을 가진 이는 없어요. 아직까지는. 근데 내가 그 첫 번째 위업을 달성하게 될 거 같아요.”

  그 말에 또 소녀는 허리를 구부리고 웃어 젖혔다. 아무래도 강천의 심각한 말투를 개그처럼 받아들이는 것 같아 심히 당황스러웠다. 지금 웃고 장난하고 그럴 때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소녀의 태도가 강천의 마음에 여유를 일으켜 세웠다.

  생각해 보니 시간은 한 참 지났고 그만큼 이 장소도 국정원 비밀 아지트에서 한 참 떨어진 외진 곳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시간을 뛰어넘어 달이 뜬 한밤중에 도착했다는 것도 행운이 그 소녀의 편이란 뜻 아니겠는가.

  “지금 몇 학년이에요?”

  딱히 할 말이 없을 때 어른이 학생 앞에서 던지는 흔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흔치 않은 대답이 소녀의 해맑은 입에서 나왔다.

  “스무 살 고3이에요. 교복만 벗으면 편의점에서 담배도 살 수 있는 나이. 그래서 Xx 같은 것들한테 담배 사다주는 심부름도 많이 했어요. 억지로. 아파서 일 년 꿀지만 않았어도 그것들 과외 선생 노릇 하고 있을 텐데, Xx."

  소녀의 말투가 스무 살이라는 실제 나이를 잊어버리게 할 만큼 불만만 한 사발 가득한 여고생다웠기에 강천은 마음이 급작스레 무거워졌다. 그녀가 다크 뱀파이어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 하지만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것이 800년 묵은 선배 뱀파이어의 의무라고 강천은 느꼈다.

  “나 목에 구멍 두 개 나있죠? 나도 뱀파이어가 된 거 맞나요?”

  소녀가 갑자기 천진스러운 질문으로 훅 밀고 들어왔다. 강천은 할 말을 잃었다. 이미 다 알고는 있었네.

  “맞아요. 햇빛을 볼 수 없는 다크 뱀파이어가 됐어요. 그래서 감금당한 건데...그 놈들은...”

  “정보국 요원들? CIA나 FBI 비슷한 뭐 그런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들 맞죠? 아까는 아저씨,...흠...아저씨 맞나? 아니다. 얼굴 보니 우리 오빠들 과네. 그런데 초면에 그렇게 부르기가 좀...그냥 오빠님이라고 할 게요. 아까는 누구인지 정체를 몰라서 아무 것도 모른 척 하며 애원했던 거에요.”

  이제보니 순진한 소녀가 아니라 당돌하기 짝이 없는 다 큰 여자였다. 아무래도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앞으로의 난관도 무척이나 잘 헤쳐 나갈 듯싶었다. 하지만 허기를 채우는 문제만큼은 인간 세계 시민권자인 유강천과 대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뱀파이어 선배인 만큼 많은 것을 알려 주어야 할 거 같네요. 근데 여기서 계속 대화를 나누기에는 너무 노출되어 있어요. 잠시 몸을 숨길 곳을 찾아보도록 해요.“

  불행하게도 은밀히 숨을 아지트를 찾기도 전에 요원들의 발소리가 땅을 타고 들려왔다. 최소한 100여 미터 거리였다. 그녀 역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우린 잡히면 죽나요?”

  “걱정 말아요. 우린 저들 보다 열배는 더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말이 끝나자마자 지평선 끝쪽으로 횡렬로 늘어선 수십여 명의 무장한 자들이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가 강천의 팔에 바짝 붙었다.

  이번에는 찰떡이 아니라 겁을 잔뜩 먹은 강아지와 흡사했다.

  밤눈이 아주 밝은 두 뱀파이어 눈에 달려오는 무장 요원들의 모습은 사냥감을 발견한 늑대 무리들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들 손에는 첨단 총신 형으로 개량된 활이 들려있었다. 스나이퍼처럼 정밀 조준하여 쏘는 것이 가능한 그 불화살에 맞으면 그 어떤 뱀파이어도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 다크 뱀파이어들을 사실상 멸종의 위기에 몰아넣은 그 첨단 무기를 든 굶주린 늑대들도 두 뱀파이어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절제된 동작으로 강천과 그녀를 향해 일제히 화살 총구를 겨누었다.

  “뭐해요? 시간 축지법 안 써요?”

  잠시 멍해 있던 강천이 다시 정신을 차렸다. 당연히 이런 위기일발의 순간에 써야할 능력 아니겠는가.

  “알았어요. 내 팔 꼭 붙잡아요...”

  강천은 등을 돌리고 자신들을 겨냥한 화살과 반대 방향으로 좌표를 잡고 앞을 향해 돌진을 시도했다. 또다시 화이트 아웃이 그의 눈을 덮치려는 순간 강천은 그만 두었다.

  “왜 그만 둔 거예요!”

  강천은 그녀를 팔에서 떼어낸 뒤 몸을 앞으로 돌렸다.

  요원들이 일제히 활의 총신을 앞으로 내밀고 그들 대장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왜 그만 둔 거냐면...시간을 뛰어넘는 게 능사는 아니거든.”

  “잉? 무슨 말이에요 그게? 설마...”

  강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이 새까맣게 변했어요. 그건 말이죠. 우린 여기서 죽을 운명이란 뜻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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