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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개를 족쳐라
작가 : 날씨가덥네요
작품등록일 : 2021.12.29

조선 제일의 투견 판매처 경산.
노비 개똥은 오늘 이 지옥을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개만도 못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쫓고 쫓기는 숨막히는 추격극이 시작된다.

 
9. 종이배.
작성일 : 22-01-19 20:17     조회 : 176     추천 : 0     분량 : 4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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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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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산의 일꾼들 사이에 벌어진 갈등은 장날의 바쁜 일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어이, 개똥아! 이쪽으로 와서 개새끼들 관리 좀 하거라!”

 

  유독 방문객이 많은 날이었다.

 

  마귀는 방문객들을 상대로 자신이 직접 훈련시킨 투견의 재주를 과시하고 있었고, 잡다한 일거리의 처리를 위해 일꾼들의 이름을 시시각각 불렀다.

 

  평소라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달려와 일을 시작할 아이들이었지만, 어젯밤에 갈등 때문에 잠을 설쳐서 그럴까 온종일 행동이 굼떴다.

 

  “이런 썩을 것들! 오늘 저녁은 절반 어치만 있을 게다!”

 

  참다 못한 마귀가 불호령을 내렸고, 남은 절반의 저녁마저 거둬질까 무서워 아이들은 최선을 다해 바삐 움직였다.

 

  “젠장, 힘들어 미치겠네! 그러게 형은 그걸 왜 말해? 이렇게 뻔히 될 줄 몰랐어? 송이랑 철수는 지금 자기들끼리 탈출하겠다고 짐을 싸고 있더라. 미칠 노릇이야.”

 

  온갖 짐을 수레에 싣고 나르는 일을 하던 개똥의 근처로 방석이 다가와 원망 담긴 목소리를 냈다.

 

  “미안해.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그보다, 선아는. 선아는 아무 말 없었어?”

 

  개똥은 고개를 푹 숙이며 방석에게 사과했다.

 

  개똥이 바랐던 결말은 이런 게 아니었다.

 

  서로가 힘을 합쳐 난관을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이런 분열을 야기할 것이라고는, 차마 상상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 개똥의 마음에 걸리는 건, 어젯밤 다툼을 묵묵히 지켜보며 말 한 마디 없었던 막내 선아였다.

 

  가장 어리지만, 활력소 역할을 해주던 똑 부러진 그 아이가 언니 오빠들의 다툼에 얼마나 마음이 상했을지 가늠할 수 없었다.

 

  어쩌면 지금 가장 불안한 녀석은 선아가 아닐까?

 

  “선아? 그러고보니, 그 녀석… 어제 아무 말도 없었네. 나도 흥분해서 미처 신경을 못 썼어. 선아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선아까지 챙길 여유가 없어.”

 

  방석의 결단은 냉혹했다.

 

  여유가 없다라는 말은, 곧 선아는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단 뜻이었다.

 

  철수와 송이도 선아를 챙길 생각은 못하는 듯했다.

 

  “우리 다섯이서 함께, 여길 떠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괴로운 마음에 개똥은 답도 없는 질문을 던졌다.

 

  “아, 제발 개똥이 형! 내가 분명 말하지 않았어? 이건 무조건 성공하는 계획도 아닐 뿐더러, 애초에 우리 둘이 안전하게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한 계획이야. 물론, 처음부터 형까지 생각했던 건 아니야… 하지만, 어쨌든 이렇게 됐잖아.”

 

  방석은 두 손을 펼쳐 보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형의 책임도 어느 정도 있는 것 알겠지? 괜히 그런 소리만 안 했더라도, 우리가 철수 녀석과 경쟁해야 하는 일은 없을 거야.”

 

  “철수랑 우리가 경쟁? 그게 무슨 뜻이야?”

 

  개똥은 깜짝 놀라 목소리를 높였고, 방석은 황급히 개똥의 입을 막았다.

 

  흙 묻은 방석의 손에서 개밥 냄새가 났다.

 

  “당연한 거 아냐? 철수 녀석 오늘 무슨 꿍꿍이인지는 몰라도 우리랑 눈 마주치는 것조차 피하고 있어. 그리고, 이리저리 분주하게 돌아다니면서 오히려 일을 사고 있지. 지건 필히 탈출을 계획하는 거라고.”

 

  “철, 철수가 탈출을? 설마! 그렇게 되면 선, 선아는? 선아는 어떡하고?”

 

  철수는 송이를 위해 탈출을 결심한 것이었다.

 

  개똥과 방석이 손을 잡았고, 철수와 송이가 손을 잡았다면, 남는 건 가장 어린 선아 뿐이었다.

 

  막내만 남겨두고 경산을 떠날 수는 없었다.

 

  “하, 정말… 형은 이 사단에도 남 걱정이야? 엄밀히 말해서, 선아는 탈출에 있어서 제일 먼저 번외로 생각했어. 아무리 체력 좋고 씩씩한 아이라고는 해도, 선아는 겨우 아홉 살이야. 그 어린 것이 쫓아오는 개들을 피해 달아날 수 있겠어?”

 

  너무도 냉정한 방석의 말에 개똥은 손을 부르르 떨었지만, 그것에 반박할 근거가 부족했다.

 

  “하지만… 선아는 우리 가족이잖아.”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끈끈한 가족이자 동지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 중 한 명은 이미 오래 전부터 홀로 탈출을 마음 먹었고, 다른 둘은 하룻밤 만에 탈출을 두고 경쟁하는 적이 되어 버렸다.

 

  이것이 정녕 가족인가?

 

  개똥은 자신이 말하면서도 스스로 의심을 굽힐 수 없었다.

 

  “형의 그런 점을 싫어하지는 않아. 형은 그런 말을 쉽게 할 만큼 솔직한 사람이니까. 하지만, 현실적으로 탈출을 마음 속에 두고 있다면, 그런 결정은 권하지 않겠어. 막말로, 마귀가 불개들을 푼다면 제일 먼저 당할 녀석이 누구 같아? 형이 개를 족쳐줄 거냐고?”

 

  개를 족쳐라?

 

  개똥은 그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노쇠한 개새끼 한 마리 결딴내지 못하는 개똥이었다.

 

  그 미약한 마음과 뭔지 모를 저주 때문에, 개똥은 개를 족칠 수 없었다.

 

  그 상대가 마귀의 불개라면, 전력을 다해도 승산은 희박했다.

 

  “그리고, 선아는 분명 송이가 챙겨줄 거야. 송이 녀석도 형에 못지 않게 정에 휘둘리는 녀석이거든. 앞날은 생각조차 안하고 선아를 챙길 게 뻔해. 철수는 안 봐도 뻔하지, 이성적으로는 아닌 줄 알면서도 송아가 고집하면 그 고집에 승복할 거야. 여자한테 빠진 남자는 그렇게 돼있어.”

 

  개똥은 방석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송이가 선아를 챙긴다는 점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잘 들어, 형. 철수 녀석도 이 경산을 빠져나갈 때는 내일 외엔 없단 것을 알아. 즉, 내일 우리는 같은 날 같은 시각 경산을 뜬다는 뜻이야. 우리가 낼 수 있는 최선의 작전은, 녀석들이 탈출하는 방향과 정반대로 도망치는 거야.”

 

  방석의 작전은 너무나도 잔인했다.

 

  그 뜻을 순식간에 알아챈 개똥은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선아가 있으니까, 그쪽으로 불개들이 먼저 몰릴 거란 뜻이지?”

 

  개똥은 착잡한 심정으로 말을 꺼냈다.

 

  “정확해. 불개들은 투견으로써나 사냥개로써나 최강의 개들이야. 마귀의 훈련을 받은 사냥개들의 그 사냥 방식에 특별한 법칙이 있어. 그건 형도 잘 알 거야. 바로…”

 

  “가장 뒤쳐지는 사냥감부터 차근차근.”

 

  개똥은 기억에서 굳이 끄집어낼 필요도 없는 사냥의 법칙을 읊었다.

 

  “맞아. 놈들은 아주 영리해. 차근차근 절차를 밟을 거야. 적어도 우리는 그 순위에서 가장 멀리 벗어나는 게 맞아.”

  방석의 눈이 반짝였다.

 

  “넌 정말, 잔인하구나.”

 

  그런 방석을 보고 개똥이 감탄했다.

 

  “잔인해도, 어쩔 수 없어. 우린 지금 개새끼나 다름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이곳을 벗어나 인간이 되면 그때는 알게 될 거야. 아름

 다운 선택이었다는 것을.”

 

  방석이 그렇게 말을 남기고 먼저 발걸음을 돌렸다.

 

  개똥은 방석을 붙잡고 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장날이라 그런지 개똥이 필요한 잡무가 너무나 많았다.

 

  개똥은 땡볕 아래서 한 번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일하고, 일했다.

 

  송이와 선아가 함께 물을 기르는 것이 눈에 밟혔다.

 

  송이가 선아를 챙겨준다는 것이 고마우면서도, 다행이었다.

 

  그 고맙고 다행스러운 감정이 어디부터 비롯되는 것인지 알 수 없어, 또 다시 개똥은 스르로에게 혐오감을 느꼈다.

 

  정말로 이게 맞는 걸까?

 

  의구심만 가득한 하루였다.

 

  온종일 쉬지 못한 육체보다, 정신이 갑절은 더 피곤했다.

 

  해가 저물고 숙소로 돌아왔을 때, 당연스럽게 모두는 서로의 눈을 피한 채 침묵하고 있었다.

 

  개똥은 딱딱한 표정으로 벽에 등을 마주대고 앉았다.

 

  내일이면, 모두가 뿔뿔이 헤어지는 건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갑자기? 이렇게? 그냥 이렇게?

 

  급류에 내몰린 종이배처럼, 급작스러운 게 인생이라는 건 뼈저리게 배웠지만, 익숙할 수는 없었다.

 

  “우리들 꼭, 젖은 종이배 위에 올라탄 개미 같네.”

 

  어색한 침묵을 깬 고요한 목소리의 주인은 선아였다.

 

  “바로 이틀 전만 하더라도, 같이 웃고 떠들던 사이였는데. 왜 그렇게 된 거야? 개똥 오빠, 정말로 우리를 두고 갈 생각이었어? 방

 석 오빠는?”

 

  선아가 울먹이는 눈으로 개똥과 방석을 번갈아 봤다.

 

  “사실, 다들 여기가 싫었던 거지? 나도 할 말이 없어. 나도 여기가 많이 싫으니까. 한 평생 여기서 흉포한 개들을 돌보며 살아야

 한다는 건, 끔찍해. 너무 무서워!”

 

  선아의 눈망울에서 작은 물방울 하나가 떨어졌다.

 

  “그래도, 여기가 그렇게 싫어도… 우리들은 서로를 의지하는 좋은 관계인 줄 알았어. 나는 의젓한 방석 오빠가 좋고, 이야기를 재밌게 하는 철수 오빠가 좋아, 기억도 안 나는 엄마보다 난 송아 언니가 더 좋아. 그리고, 개똥 오빠는 착해. 정말 착해서 좋아!”

 

  선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철수는 머리를 긁적였고, 송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다들 이 곳이 싫은 건 알겠어. 하지만, 험난한 공간이 싫다고 그곳에서 함께 추위를 이겨낸 가족을 미워하지는 마. 다들 그냥 추운 것 뿐이야. 추워서 싫은 소리를 내뱉은 것 가지고, 관계가 틀어져서는 안 돼.”

 

  선아가 코를 훌쩍이며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개똥으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던 무거운 말을 입밖에 담았다.

 

  “나는 탈출 안 할 거야. 나 혼자 여기 남을게.”

 

  탈출을 위해 가장 필요한 누군가의 희생.

 

  개똥은 알고 있었다.

 

  누군가가 경산에 남는다면, 다른 모두의 탈출을 보다 쉽게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을.

 

  사실 자신에게 당장 탈출이라는 것이 절실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절실함이 방석이나 철수, 송이 보다 훨씬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쉽사리 희생할 수는 없는 어중간한 결심이었다.

 

  개똥은 이번에도 스스로에게 혐오감을 느꼈다.

 

  막내의 용기를 낸 결심에, 만류보다는 감사를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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