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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셀프인생2022
작가 : 행복한라니
작품등록일 : 2022.1.12

셀 프 인 생
태어나 부모님 사랑을 받으며.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내고, 대학까지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자식을 낳고. 자식을 다키운 후에야 내 인생을 찾으려 하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이 주시는 사랑이 당연하지 않다면. 철 없어서 뭘 몰라서 아무것도 안한채 지나버린 시간들. 성인이 되어서 셀프로 살아가는 빛나 얘기를 하고 싶었다. 오늘을 열심히 살다보면 꿈은 이룰수 있다는 희망을 얘기하고 싶었다.

 
6. 미운오리는 백조였다.
작성일 : 22-01-12 20:40     조회 : 164     추천 : 0     분량 : 16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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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미운오리는 백조였다.

 

  요즘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그럴 때 마다 사람이 없는척 숨죽이며 있었다. 집에 찾아올 사람도 없고, 택배는 집 앞에 두고 가기에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상대 하고 싶지 않았다. 퇴근후 집으로 들어 가자 낯 익은 얼굴 아빠와 아줌마가 앉아 있었다.

  “언니, 이 분들 아는 사람이야? 계속 문 두들겨서 열어 줬더니 언니를 만나고 돌아 가야 되겠다고 막무가내로 들어와서…….”

 영희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줌마는 이산가족이라도 만난 것처럼 나를 껴 안으며 말했다.

  “그동안 대체 어디 있었던 거야? 엄마가 얼마나 찾아 다녔는지 알어?”

  “왜 이러세요? 치매예요?”

  “미안해……. 엄마가 너무 미안해…….”

 절대 엄마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던 사람이 엄마라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어떤 리액션을 취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이 상황 자체가 싫어서 자리를 피하고만 싶은데, 아빠가 말을 이었다.

  “빛나야! 내가 니 친 아빠야! 그리고 여기는 니 친 엄마야!”

 아빠는 친자 확인서를 내 밀었다. 빨강 글씨로 친자 관계가 형성 된다는 종이를 던지며 말했다.

  “그래서 찾아 오셨군요. 친딸이 아니었으면 찾지도 않았을텐데…….”

 내가 친딸이든 아니든 내 알바 아니고.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달라지는건 아무것도 없다고 제발 나가달란 말에 아줌마가 물었다.

  “근데, 쟤는 누구니?”

 아줌마가 영희를 보며 누구냐고 묻자 영희는 어쩔줄 몰라하며 어색하게 꾸벅 인사는 했지만 자기 소개를 하지 못하자 내가 대답했다.

  “제 딸이예요. 아니, 놀라실테니 그냥 제 동생이라고 하죠!”

  “딸. 딸은 뭐고 동생은 뭐야?”

 아빠와 아줌마는 영희가 내 딸인줄 알고 기막힌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현관문을 열며 말했다.

  “제 딸이든 동생이든 아줌마랑 상관없는 일이니 그만 나가 주세요. 이산 가족 코스프레는 그만 하고 당장 나가시라구요. 제가 아줌마 친 딸이면, 이젠 제가 버릴 차례니까 제발 나가 주세요!”

 미친년처럼 나가라고 소리를 지르자 아빠가 나를 달래듯 말했다.

  “니가 친딸이든 아니든 니가 태어 났을 때부터 난 니 아빠였어. 지금은 엄마가 밉겠지만 사연을 알게 된다면 너도 이해할거다.”

  “이해요? 그래요. 이해해요. 그러니까 지금 제가 이러는건 아줌마랑 아빠가 이해하시고 나가시라구요! 이해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용서는 못하니까!”

 아줌마는 불쑥 내 출생의 비밀에 대해 읋었다. 어렸을 때 나를 키워 줬던 희자 엄마가 바로 아줌마 친구 였다고, 아빠와 엄마는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외할머니가 반대 하셨다고 말했다. 임신을 했단 말에 마지못해 결혼 승낙을 했지만 희자 엄마가 중간에서 이간질을 했다고 말했다. 아빠는 엄마가 아이를 지우고 다른 남자와 결혼 한다는 말을 믿고 떠났고, 엄마는 아빠가 딴 여자와 결혼했다는 말을 믿고 아빠를 원망하는 사이 내가 태어 났지만 버릴 생각은 없었다고 말했다. 외할머니가 여자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건 힘들다며 외할머니가 나를 고아원에 보내 버렸다고 말했다. 다음날, 나를 찾으러 갔지만 나를 찾을수 없었다고 말했다. 희자가 나를 키우고 있을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모든게 오해에서 비롯되었단 말에 막장 드라마를 상상했다. 내가 엄마라고 불렀던 사람이 ‘아줌마’고, ‘아줌마’라 불렀던 사람이 친엄마라니…….

  “친딸도 못 알아보고 구박할땐 언제고, 핏줄이라 찾아와 이러는거 염치 없다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누구 딸이든 달라지는건 없어요. 전 지금처럼 앞으로도 아빠. 엄마를 모르고 살고 싶어요.”

  “어떻게 모르고 살아? 엄마는 죽은 자식이 살아 돌아온것만 같은데. 부모가 자식을 잃고 어떻게 살아? 어떻게 안보고 살아?”

  “여태 잘 살아 오셨잖아요. 내가 친딸이라고 하니 짠해요? 미안해요? 그럼 그렇게 평생 사세요. 그게 아줌마가 받아야 할 벌이니까. 아줌마가 나랑 영미랑 어떻게 키웠는데. 친딸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의 아픔을 뼈져리게 느끼게 해 주고선……. 제가 지금 몇 살 인줄은 아세요?”

 아줌마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늘 내 생각을 하면서도 찾을 용기는 없었다고 말했다. 아빠에겐 유산되어 없는 아이인데. 버렸다고 말하면 아빠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 못했다며 내 나이는 정확히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세요? 그래요. 제 나이 서른하나예요. 엄마가 필요한 나이가 아니라고요. 그러니 돌아 가세요.”

 계속 나를 설득 하려 하자 물었다.

  “혹시 어디 아파요? 간 이라도 필요해서 오신거예요?”

  “뭐? 그게 무슨 말이야?”

  “간이든 뭐든 필요해서 찾아 온거라도 그냥 가세요. 죽어도 미련 없는 몸이라도 당신한테 줄 장기는 없으니까요.”

  “그런거 아니야! 그랬다면 널 찾아 오지도 않았어. 내가 무슨 염치로……. 널 사랑하지 않은건 아니었어. 니가 내 친딸인줄 몰랐을 때도……. 엄만, 널 찾으려 다녔었어. 이렇게 넓고 복잡한 서울에 꽁꽁 숨어 있는데 엄마가 어떻게 찾아?”

  “햐! 아줌마가 아빠랑 싸우면서 했던 말 기억 해요? 영미를 키우기 위해 어쩔수 없이 나를 키우고 아니 봐주고 있다고 했던말……. 아줌마가 날 얼마나 끔찍하게 생각하는지 아는데, 그래도 사랑했다고 말하면 너무 가식 아닌가요?”

 그건 홧김에 한 말이라고 말했다. 내게 관심은 있었지만 표현을 못한 것 뿐이라고. 내가 요리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요리학원도 보내주고 요리를 할수 있게 도와 줬다는 말엔 실소가 터져 나왔다. 좋아서 한거라니. 남은 음식을 먹는게 싫어서. 나도 밥상에 앉아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싶어서 요리를 했을 뿐인데 내가 좋아한 일이라니. 생각해보면 아줌마가 내게 강요한적은 없었다. 나 스스로 밥값은 해야 된다고 생각했기에. 사랑받아 보려 관심 받아 보려 했던 일들이 가정부가 되어 버렸다.

 아줌마 입장에선 직접적으로 나를 괴롭힌 기억이 없으니 억울하다는 걸까. 나는 눈에 띄지 않으려 숨죽이며 지냈고, 아줌마는 내게 무관심하려 애썼던 걸까. 나에게 아줌마 진심 따윈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오랫동안 묻어 두었던 상자 속에서 녹음기를 꺼내 들려 주었다. 집에서 나눴던 대화들, 학교에서 나를 괴롭히던 친구들 목소리까지……. 오늘을 위해 이런걸 모아둔건 아니었다. 녹음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건 친구들이 괴롭히면서 늘 했던 말이 있었다. ‘내가 언제 그랬어? 증거있어?’ 물건을 가져 가고도, 나를 때리고도 선생님 앞에서 오리발 내밀며 증거를 대라는 말에 그때부터 나는 녹음을 하고 증거를 찾아 모아 두는게 습관이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내가 하는 말을 믿지 않으니까. 그렇게 모은 증거는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판도라 상자에 넣어 두었다. 내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 줬더라면 나는 이렇게 살지 않았을 텐데.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늘 혼자 였던 나를 아냐며 울부 짖다 다신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자 아줌마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래요. 아줌마는 내게 언제나 안돼. 하지마. 그말만 했었죠.”

  “빛나야!”

 아빠가 내 이름을 부르자 마음이 약해졌다. 아빠는 내가 처음으로 따뜻함을 느낀 사람이니까. 그래도 약해지고 싶지 않아 대답했다.

  “미안하지만 아빠도 보고 싶지 않아요. 친아빠라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어요. 그냥……. 혼자이고 싶어요.”

 아빠는 앨범 하나를 보여줬다. 갓난 아이때부터 아빠가 모아온 나의 사진이었다.

 사진속의 나는 웃고 있었다. 해맑은 표정이 낯설었다. 사진을 보니 어렴풋이 추억이 떠올랐다. 일하느라 늘 바쁜 아빠였지만 틈틈이 놀아주려 애썼던 아빠 모습이. 무뚝뚝한 성격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나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건 감동이었다. 바닷가에서 튜브를 타고 웃고 있는 사진을 보며 그날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왜 좋았던 날은 기억나지 않는걸까? 사진을 보니 참 좋았던 날들이 많았다. 아줌마도 나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줌마는 내 생각처럼 나를 미워하지 않았지만 사소하게 받은 나의 상처는 컸다. 생각해 보면 좋았던 날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서운한 일들만 곱씹으며 말하자 아줌마가 말했다.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해? 듣고 보니 별 일도 아니구만!”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일 들이 어린 나에겐 얼마나 상처 였는지 모르죠? 사랑 받아도 그게 사랑인줄 모르고 자라서 제가 이모양 이꼴인가봐요. 저, 집 나와서 힘들었지만 제 생각대로 살면서 얼마나 행복 했는지 아세요? 나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잖아요. 내가 당신들 친자식 이라는 이유로 나를 마음대로 할수 있는 권리는 없다구요.”

 아줌마는 눈물을 흘리며 체념하듯 말했다.

  “넌 그래서 편했구나. 서운한 기억들만 꼽씹으며 엄마를 미워하며 잊고 지냈구나. 엄마는 착하고 예뻤던 너를 생각하면 죄책감에 눈물로 하루하루 보내면서 지옥이나 다름 없었는데, 넌 잘 살았구나.”

  “엄마. 엄마. 엄마 소리 좀 그만해요.”

  “엄마니까 엄마라고 하지! 그러는 넌 엄마한테 관심 있었어? 내가 무슨 생각하면서 사는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넌 알아? 넌, 친엄마가 누군지 궁금 했니? 찾으려고 하지도 않았잖아.”

 말문이 막혔다. 살기 위해 눈치만 봤을뿐, 아줌마에겐 관심이 없었다. 친엄마를 생각하면 날 버린 원망을 쏟아내느라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몰라요. 서로 아는것도 없고. 관심도 없으니까 지금처럼 남남으로 살아요.”

 더 이상 대화는 의미 없었다. 아줌마와 난 서로 자기 할 말만 하고, 같은 말만 되풀이 하자 아빠가 같이 사는건 천천히 생각해 보자며 일단 돌아 가겠다고 말했다. 대신 도망만 가지 말아 달라는 말에 대답했다.

  “도망을 왜 가요? 여기가 제 집인데. 다음엔 연락 하고 오세요.”

 친 부모라는걸 알게 된 이후 더 심난해졌다. 모른척 신경쓰지 않으려 해도 자꾸 생각 나는건 어쩔수 없었다. 정화에게 고민을 말하자 대답했다.

  “안보고 살수 있으면 안보고 살지만, 그럴수 없다면 받아 들여야지. 어쩌겠어? 가족인데. 핏줄이고. 천륜인데 어떻게 끊어?”

 너무 쉽게 말하는 것 같아 조금 흥분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족은 무슨, 생각만 해도 피가 거꾸로 솟는데. 끊어 버리면 그만이지. 1분 1초도 마주하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가족이 될수 있어? 지금도 봐. 생각만으로 이렇게 혈압이 오르는데.”

  “그래도 부모님을 이해해 보는건 어때? 부모님이 태어난 년도를 생각하면……. 아니 이해도, 용서도 안되면 이용 하는것도 괜찮잖아?”

  “뭐? 이용?”

 정화는 현실적으로 생각하라고 말했다. 부모 없이 잘 살아 왔지만, 그래도 부모님이 계신다면 앞으로 편하게 살수 있지 않겠냐며 손해 보는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정화는 뜬금없이 물었다.

  “만약에 니 앞으로 거액의 사망 보험금이 있다고 가정하고, 니가 죽으면그 보험금 누가 받을거 같애?”

  “갑자기 보험 얘기는 왜 하는건데?”

  “너 죽으면 사망 보험금 너네 부모님이 가져 간다고! 낳고 버려도. 키운적 없는 엄마라도 니 몸에 대한 권리는 부모에게 있다는 거지. 그럼 더 억울할거 같지 않아?”

  “억울하지. 억울해서 못죽지!”

  “그러니까……. 니가 이용하라고. 평생 안보고 살 자신 없다면 아빠. 엄마 곁에서 그동안 받지 못한 사랑도 받고. 분풀이 하면서 복수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지 않아?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재산도 니꺼 되는데. 모르고 살면 모를까. 이미 친부모라는걸 알았고. 지금 니 마음도 괴롭다면 집으로 돌아가는게 답이지!”

  “근데, 너는 왜 집으로 안가?”

  “너는 ‘사연’이라는게 있고, 엄마가 찾아 왔잖아. 나는 이용당하고 싶지 않아서 도망 친거고……. 엄마도 날 찾지도 않고…….”

 영희도 부모님 집으로 들어 가는게 맞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씁쓸한 표정을 짓자 영희를 안으며 말했다.

  “생각해볼게. 돌아간다고 해도 언니 혼자는 안가! 내 가족은 너니까!”

 

  부산 집으로 들어 가기로 했다. 정화 말대로 엄마가 있는 삶은 얼마나 다른지 경험 해보고 싶었다. 아줌마를 ‘엄마’라 부르는 것이 아직은 어색하고 불편하지만 ‘엄마’라고 불렀다. 의미를 두지 않는다면 그냥 호칭일뿐었다.

 부모님은 내가 집으로 돌아 올까봐 이사도 못가고 오래된 집을 리모델링 해서 살고 있었다. 세련된 내부로 바뀌었지만 외관과 구조는 그대로라 옛 생각에 잠기자 그냥 화가 났다. 엄마가 신경써서 내 방을 꾸몄다. 활짝 웃는 얼굴로. ‘우와! 정말 좋다.’라는 리액션이 보고 싶은지 엄마는 어떠냐고 마음에 드냐고 물었다. 전문가에게 맡긴 인테리어에 고급진 가구들 이라 트집 잡을건 없지만 싫은 표정으로 말했다.

  “영미가 없으니 이젠 내 방이 되었네.”

 영희 방도 비슷하게 꾸며 놓았다. 영희는 엄마가 원하는 리액션으로 부잣집 딸 이 된 것 같다며 이게 정말 내 방이냐고 묻자 엄마가 말했다.

  “그래.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 오늘부터 아줌마 딸 이라 생각하고 편하게 지내!”

 영희에게 다정한 엄마를 보며 기분이 이상했다. 영희를 질투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처음 이 집에 들어 왔을때도 저렇게 따뜻하게 대해줬더라면……. 내면 아이가 불쑥 튀어나와 영희를 질투하고 있는데, 엄마가 영미 얘기를 꺼냈다.

  “부산 오기전에 영미 만나고 오지 그랬어? 너 많이 보고 싶어 했는데.”

 영미를 생각하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에게 영미는 남 보다 못한 사이. 부담스러운 아이였다. 부모는 그렇다 쳐도, 영미는 굳이 만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동생인데 안보고 살거냐며, 만남을 재촉하는 엄마 말에 마지못해 알겠다고 말했다.

 

 옥탑방 집을 정리하는겸 서울에 가야 할 것 같았다. 가는겸 영미를 만나기로 했다. 저녁에 보기로 했는데, 영미가 약속을 바꿨다. 서울역에 도착하자마자 만나자는 말에 알겠다고 말했다. 영미는 IT회사에 다니면서 직책은 과장이라고 말했다. 10월 달에 변호사 남자친구랑 결혼한다는 얘긴 엄마한테 들어서 영미를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고민 이었다. 서울역에서 한 눈에 나를 알아 봤는지 영미가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했다.

  “미안. 서울 오자 마자 피곤한데, 만나자고 해서……. 너무 보고 싶기도 했고. 지금 아니면 시간이 안될 것 같아서. 언니 진짜 많이 이뻐졌다.”

 ‘언니’라는 호칭도. 다정한 말투도. 친한척 말을 하는 영미를 보며 어색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대답했다.

  “어. 그래……. 너도 참 이뻐졌네. 아니, 여전히 이쁘네.”

  “그래? 언니 밥 안먹었지? 근처에 먹을때가……. 쇼핑몰 안에서 먹을까?”

  “아. 아니……. 괜찮아. 커피숍은 어때?”

 배는 고팠지만 불편하게 밥을 먹으면 체할 것 같아 커피숍으로 들어가자 영미는 마음대로 아메리카노를 주문 했다.

  “나, 아메리카노 안먹는데.”

  “어? 그래? 미안……. 아메리카노 안먹는사람 처음봤네. 여기 커피 맛있는데……. 한번 먹어 볼래? 아니다. 다른거 주문 해줄까?”

  “아. 아니……, 그냥 마실께. 얘기나 하자!”

  “뭐야? 거래처 사람 만나? 비즈니스야? 너무 딱딱하게 구는거 아냐? 그래. 우리 할 얘기가 많지? 언니는 그동안 잘 지냈어?”

  “응. 근데 넌 내가 언니로 보이니?”

  “뭐? 언니를 언니라고 부르지 뭐라 불러? 실은 나도 언니 만큼이나 많이 어색하고 민망해.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고민 많이 했었는데. 괜히 어색해 할 필요 없잖아. 우린 가족이니까!”

  “가족?”

 되묻는 내 말에 영미는 불편한 기세를 그대로 내 비치며 말했다.

  “그래. 뭐 우리가 편한 사이는 아니지. 그래도 싸우려고 만난건 아니잖아. 너무 정색 하지마. 언니가 왜 집을 나갔는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언니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궁금한것도 많고 할 말도 많은데. 서로 불편한 말일 것 같아 꺼내지 않으려 했는데, 짚고 넘어가고 싶은거야? 언니도 참 많이 변했다. 예전엔 말 한마디 못하더니 아니 안하더니……. 지금은 딴 사람 같애.”

  “그건 부모 사랑 받으며 잘 자라온 니가 이해해주라. 난 부모없이 살다 보니 꼬였어. 변호사 남친이랑 결혼한다는 얘기는 들었어. 그 사람에게 내 소개하기 부끄럽겠다. 언니라는 사람이 뭐 하나 잘난게 없어서.”

 영미는 기 막힌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지금 뭐라고 말 한 걸까? 뇌를 거치지 않고 튀어 나온 말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내게 영미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진짜 꼬였네. 내가 지금 31살 언니를 만나고 있는지……. 13살의 언니를 만나고 있는건지…….”

 영미는 한숨을 내쉬며 지난 얘기를 시작했다.

  “언니만 힘들었다고 생각해? 나도 힘들었어. 난 뭐, 엄마 손에서 마냥 사랑만 받으면서 컸는줄 알아? 친아빠랑 살땐 늘 불안 했었어. 두 분 다 바쁘셔서 나는 여기 저기를 떠돌며 살았고, 어쩌다 가족이 모여 살땐 두분의 싸움 소리에 내 마음은 늘 지옥이었어. 아빠가 엄마에게 손지검을 하기 시작하면서 엄마랑 나는 아빠를 피해 도망 다녔고……. 그러다 아빠랑 엄마가 이혼했어. 엄마는 밤 늦도록 일을 해야 했고, 난 늘 집 안에 갇혀 지냈어. 집 밖은 위험하다고 나오지 말라고 했거든. 그러던 어느날 엄마가 새 아빠라며 아저씨를 데려왔어. 조금 무뚝뚝했지만 날 보는 눈빛이 따뜻한 아저씨가 좋았어. 날 예뻐 해주는 이 아저씨가 내 아빠가 될거라는 말에 남 부럽지 않은 가족의 모습을 상상하며 화목하게 지낼수 있어 좋았는데, 언니가 들어 온거야. 내 입장에선 언니를 좋아할 수가 없잖아. 아빠를 나누고 싶지 않아서 언니를 미워하고 괴롭혔나봐. 철이 없었지. 미안하게 생각해! 하지만 그땐 어렸으니까 이젠 웃으며 말할수 있는거 아냐? 솔직히 언니가 집 나갔을 때 기뻤어. 그런데 언니를 찾아 헤매는 아빠랑 엄마를 보면서 내 행복도 오래 가지 못했어. 언니가 아빠. 엄마의 친자식인걸 알았을 때 내 기분이 어땠을 것 같아? 언니 때문에 힘들어 하는 아빠. 엄마를 보는 내 마음은 어땠을 것 같아? 나도 외로웠어.”

 영미의 친아빠가 찾아와 난리도 아니었고, 삼촌들이 찾아와 재산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는 통에 영미가 할수 있는 일은 공부 밖에 없었다고 했다. 공부만이 살길이었다는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만큼이나 힘들었다는 영미말에 위로가 되는 걸까. 내 기억속에 영미는 모든걸 다 가진 공주 였는데. 생각해보니 엄마가 특별히 영미를 챙긴 적은 없는 것 같았다. 울고불고 난리쳐서 갖고 싶은걸 가질 때 까지 물고 늘어 지는 통에 마지못해 사줬을뿐. 나도 끝까지 내 요구사항을 말했더라면 가질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흔한 학원을 다닌적이 없다고 생각 했었는데. 문득 떠올랐다. 좁은 교실 안에 빼곡한 책상. 아이들 뒷통수를 보는 것 조차 숨막히던 그때.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적응하지 못해 학원을 그만둔건 내 선택이었다. 가기 싫다고 했기에 엄마는 굳이 억지로 보내지 않았던 것을 난 학원도 보내주지 않았다며 원망했다. 엄마는 자식 교육에 무심한 성격이었고, 아빠는 낭비를 싫어하는 성격 탓에 구두쇠로 살아 왔고. 영미는 욕심이 많고 똑 부러지는 아이라 스스로 하려고 했던 방면, 나는 나 스스로 투명인간처럼 살려고 노력 했다. 그저 먹여주고 재워주는것에 만족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성인이 되면 다 해결되는 것처럼 마냥 스물살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할 말이 없어진 나는 영미에게 사과를 했다.

  “미안해……. 난 나만 힘든줄 알았어. 나만 없어지면 되는줄 알았어. 나 때문에 니가 힘들었을거란 생각은 못했어.”

  “아냐! 다 지난 일인걸 뭐!”

 터 놓고 얘기하다 보니 오해가 풀리고 마음도 편해졌지만 언니 답지 못하고. 쿨하지 못한 모습을 보인건 챙피했다. 자주 연락하자는 형식적인 인사로 헤어졌지만 영미가 불편한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었다. 아무래도 친해지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 할 것 같았다.

 

 옥탑방 정리하고 받은 보증금은 영희 통장을 만들어 넣어 줬다. 영희는 받지 않겠다며 거절 했지만 밀어 넣어 주며 말했다.

  “넣어둬. 지금 쓰라고 주는거 아니고 대학 갈 때 쓰라고……. 할머니랑 약속 했잖아. 힘들 때 통장에 기대 쓰기도 하고……. 너도 알잖아. 힘들 때 힘이 되어 주는건 돈 이라는거……. 이 돈은 내 피땀으로 모은 돈도 아니고……. 내 돈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너에게 주는거 하나도 아깝지 않아. 그냥 주는거 아니고 갚아야 되는거야! 나에게 갚아도 되고, 다른 누군가를 도와 줘도 되고…….”

 

 영희는 집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정말 가족이 생긴 것처럼 따뜻하고 아늑하다고 말하는데, 나는 영희 가족 사이에 끼어 있는 기분이랄까. 하루 하루가 전쟁이었다.

 엄마가 말하는 모든 말에는 삐딱선을 타자 엄마도 말을 아끼는 눈치 였는데. 오늘은 참지 못했는지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마음의 소리를 내 뱉었다.

  “넌 누굴 닮아서 그 모양이야? 언제까지 그렇게 뒹굴 거야?”

  “날 못알아 본거 보면 아빠. 엄마는 안 닮았겠지. 누군 뒹굴고 싶어서 이래?”

 또 전투 자세를 취했다.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면 늘 피했던 엄마였는데, 이번엔 엄마도 참을수 없었는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이럴려고 들어왔니? 나 피말려 죽이려고 아주 작정을 했구나. 언제까지 그렇게 삐딱선 탈 거야? 사춘기도 아니고. 언제까지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들어줘야 해? 내가 니 눈치 보며 살아야 되? 못배운 사람처럼 엄마한테 말하는 꼴이 그게 뭐야?”

  “사춘기가 이제 왔나보지. 사춘기가 뭐야?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이잖아. 그럼 내가 지금 딱 사춘기네. 내가 눈치 줬어? 왜 눈치 보고 살아? 나도 참고 살았는데. ‘엄마’라고 부르지 말라고 해서 불러 보지 못한 이름을 지금 부르는것도 오글 거리는데. 내 말투 잡고 늘어 지지마. 다 엄마한테 배운 말투니까.”

 한바탕 전쟁을 시작하려는데 영희가 들어왔다. 전투력을 상실한 나는 방으로 들어가자 영희가 따라 들어와 물었다.

  “난 엄마가 있는 언니가 부러운데. 언니는 왜 그렇게 화만 내?”

  “모르면 가만 있어. 내 일엔 신경꺼!”

 다음날, 엄마 친구 분이 놀러와 인사를 하고 방으로 가려는데 물었다.

  “니가 빛나구나. 어릴때랑 똑같네. 그래, 몇 살이야?”

  “서른한 살 입니다.”

  “그래? 하는일은? 남자친구는 있어? 동생은 결혼 한다고 하던데, 너도 어서 결혼 해야지! 계획은 있고?”

  “하는일 없는데요. 남자친구도. 결혼 생각도 없어요.”

  “넌 그게 자랑이니. 뭐가 그렇게 당당해…….”

  “자랑 아니고 물어보셨잖아요. 나이 많은게 죄도 아니고. 말 못할 얘기도 아닌데 대답은 해 드려야죠. 더 궁금한거 있으세요? 예의상 묻는 질문이라면 딴데 가서는 하지 마세요. 유쾌한 질문은 아니니까요.”

 이건 엄마에 대한 반항이 아니었다. 언제 부턴가 나는 속으로 삼켰던 말들을 담아두지 않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불편한 말들이 선을 넘으면 앞으로 다가가 얼굴 보고 기분 나쁘다는 표시를 했다. 그럴 때 마다 또라이 취급 받았지만 상관 없었다. 적어도 나 스스로 바보 같다는 자책감은 들지 않으니까. 친구분이 돌아가자 엄마는 화난 얼굴로 들어와 말했다.

  “넌 좋겠다.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살아서. 상대방 기분은 생각 안해? 굳이 안해도 되는 말을 대체 왜 하는거야?”

  “상대방도 내 기분따윈 생각하지 않고 말하는데, 나는 듣는사람 기분 생각 하면서 대답해야 해? 물어보니까 대답 하는 거잖아. 상처주는 질문인지 모르고 물어 보는 것 같아서 상처되는 말이라고 알려 줬을 뿐이야. 관심도 없으면서 물어보니까 딴데 가서는 그러지 말라고 말해 준게 뭐가 잘못됐어?”

  “그래서 니가 잘했다는 거야?”

  “잘한것도 없지만 잘못 한것도 없단 말이야. 할말 없게 만들어서 버릇 없다고 말하고 싶은 모양인데, 부모 없이 자란 애가 버릇이 있겠어?”

  “집에서 하는일 없이 빈둥대는 주제에 입만 살았지? 차라리 시집을 가! 선이라도 볼래?”

  “그냥 다시 나가라고 해. 남자한테 팔아 넘기려고 하지말고!”

  “뭐? 너 무슨 말을 그렇게……. 영미 반만이라도 닮았으면…….”

 영미랑 비교하는건 참을수 없었다. 또 흥분하며 말이 나왔다.

  “내가 왜 이모양인데? 태어나자 마자 버려진 나랑, 애지중지 키운 영미랑 같아? 반의 반도 닮을수 없지. 부모도 학벌도 쥐뿔도 없이 살아온 내가 무슨 수로 영미를 따라가? 비교할걸 비교해!”

  “그러니까 대학 가라고 했잖아. 대학 가라고 했지. 누가 집 나가래?”

  “준비물 값도 주지 않으면서 대학에 가라고 했을 때 얼마나 황당 했는지 알아? 대학에 보내줄 생각이었으면 여상을 간다고 했을 때 말렸어야지. 내 성적에 관심을 가져 주던가. 그랬으면 혹시나 하는 기대라도 하지. 이집에서 내가 할수 있는 일이 뭐였는데? 내 물건도, 내 편도 없이 청소부처럼 살던 내가 무슨 꿈을 꾼다고, 대학을 생각이나 했겠어? 오직 이곳에서 벗어날 궁리만 하던 나였는데. 나 좀 내버려둬. 나도 생각이 있고. 계획도 있고. 이렇게 살고 싶지 않으니까 제발 내버려 둬.”

  “무슨 생각? 무슨 계획이 있는지 들어나 보자. 맨날 방안에 틀어 박혀서 되지도 않는 글 쓴다고 난리면서. 라디오 사연이라도 당첨되면 내가 말도 안해.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야? 다 때려 치우고. 아빠 밑에서 기술이나 배워. 기술 있으면 밥은 안 굶고 사니까!”

 내가 좋아하는 일, 작가가 되어 보려 준비중이었던 꿈이 또 무시 당했다. 늘 이런식이라 새삼스럽게 상처는 받지 않았다. 나도 할수 있다고. 꼭 보여 주겠다는 오기도 내겐 없는 걸까. 어쩌면 작가가 꿈이 아닐지도 모른다. 마음이 좁아서 담아 두지 못해서 글로 다 쏟아 내는 건지도 모른다. 엄마랑 무슨 얘기를 해도 늘 같은 말만 되풀이 하다 싸움이 끝났다. 아무리 내 뱉어도 속은 시원해지지 않았다.

 

  멍하니 TV를 보다 홈쇼핑에서 보라카이 여행 상품을 판매 하고 있었다. 그림같은 바다. 요트를 즐기며. 여유로워 보이는 화면을 보면서 충동적으로 결제 해 버렸다. 그리고 일주일 전에 여행을 가겠다고 통보를 하고 보라카이로 떠났다.

 4시간 비행 끝에 보라카이 깔리보 공항에 도착했다. 후덥지근한 공기와 함께 펼쳐진 주변 환경이 당황스러웠다. ‘무슨 공항이 시골 터미널 같애?’ 기대했던 휴양지가 아닌 시골 촌동네 풍경이 전부였다. 가이드가 안내하는 45인승 버스에 올라타자 버스는 출발 했다. 한시간을 달려 도착한 선착장 에서 가이드는 우리팀만 따로 불러 모았다. 모두 11명이었다. 한명만 아이를 데려온 가족 이었고, 모두 커플이었다.

 가이드는 혼자 여행온 나를 챙겨주며 친절 했지만 나는 귀찮은 듯 대답만 했다.

 배를 타고 15분만 가면 보라카이 섬이지만 배 한 대가 고장나서 한 대로 운행하다 보니 두시간 넘게 기다려 겨우 섬에 도착했다. 여기서 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트라이시클이라는 택시를 타고 10분을 더 달려 호텔 앞에 도착했다. 로비는 그럴듯해 보이는 호텔이었지만 방안은 홀애비 냄새가 나는 듯한 허름한 모텔 방 이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침대에 누웠다. ‘내일은 어떻게든 되겠지.’ 또 버릇처럼 중얼 거리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오늘 일정은 오전엔 스쿠버다이빙을 한후 점심을 먹고 쇼핑센터를 둘러본 후 요트를 타고 선셋을 즐기다 저녁을 먹는 일정이었다. 스쿠버 다이빙은 맛보기로 잠시 즐기다 곧바로 점심으로 나온 카레를 먹고 가이드가 안내하는 쇼핑몰로 갔다. 나는 쇼핑 대신 그림 같은 해변에 앉아 넋을 놓고 풍경을 감상하고 있을 때 한 여인이 젖먹이 아기를 안고 다가와 구걸 했다. 주머니 속에서 1달러를 내밀자 꾸벅 인사를 하고 멀어져 가는 엄마와 아기를 한참동안 바라보며 생각했다. ‘키울 능력도 없으면서 애는 왜 낳아서……. 죽지 못해 사는 인생 같아. 그래도 살겠다고 구걸하는 모습이란……. 그래봤자 희망은 보이지 않는데 저렇게 살고 싶을까? 하긴 내 처지도 별반 다르지 않지. 그냥 죽어 버릴까. 내가 없어져도 아무도 모를거야. 슬퍼하는 사람도 없을테고. 결국 어둠속이 묻혀버릴 인생이라면 이제 그만 살고 싶었다. 그러기엔 바다가 너무 아름답잖아. 별 볼일 없는 곳이라 생각 했던 이 곳도 이렇게 멋진 휴양지가 있는 것처럼 나에게도 뭔가는 있지 않을까. 구걸을 해서 살아도 웃음을 잃지 않고, 1달러에도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아이 엄마를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세상을 원망하며 사느라 사소한 일에 감사한 마음을 느끼지 못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면 달라질까? 그림같은 풍경을 그리고 싶지만,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해 카메라를 꺼내 들면서도 엄마를 원망했다. ‘미술 학원을 다니고 싶었는데…….’ 그림을 못 그리는 것 까지 엄마탓을 하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가이드가 다가와 말했다.

  “사진도 좋지만 눈에 담아 가는 것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아요.”

  “네. 전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찍어 둬야해요.”

 가이드는 머쓱한지 대답 대신 시익 웃어 보이며 이제 배 타러 갈 시간이라고 말했다. 살랑이는 바람이 뺨과 머리카락을 스치자 기분이 좋아졌다. 나눠준 맥주와 마른안주를 먹으며 경치를 감상하며 여유를 즐기자 우울한 생각은 들지 않았다. 혼자라 허전하긴 했지만 외롭진 않았다. 한참 달리던 배가 멈춰 서자 사람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선셋을 향해 자리를 옮겼다. 모두 말없이 선셋을 보며 감탄에 젖어 있었다. ‘지는해도 이렇게 아름다울수가 있구나!’ 노을을 보며 내 인생의 끝자락엔 아름다웠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다 풉 웃음이 나왔다. 시작도 하기 전에 끝을 생각 하다니. 31살 많다고 느껴졌던 내 나이가 100을 본다면. 아니 70을 끝으로 본다 해도 살아온 날 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기에 이제 시작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았다. 남들에 비해 뒤처지긴 했지만 남들과 같은 속도로 살 필요는 없잖아. 떠오르는 해도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듯이 나역시 구름에 가려 해가 보이지 않는것뿐, 빛이 없는건 아니라고. 구름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오듯 구름이 지나가면 내 인생도 찬란하게 빛날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지금은 먹구름이 비가 되어 내리고 있지만 이 비가 영원하지 않다는 걸. 선셋을 보며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여자가 남자를 보며 물었다.

  “자기 무슨 생각 해?”

  “생각은 무슨, 아무 생각도 안하는데. 자기랑 같은 곳을 바라보며 행복 느끼기에도 바쁜데. 무슨 생각을 해? 난 이대로가 참 좋다.”

 남자의 대답에서 답을 찾았다. 나는 매 순간 생각하고, 뭔가를 해야 된다는 조바심으로 살아 왔다. 정화도 내게 말 했었다. 내일을 생각하지 말고 오늘을 즐기라고. 먼 산을 바라보며 산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버리고, 나무 한그루 한그루를 심어 산을 이루겠다는 마음으로 살아 보는거야! 집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지난 기억들은 모두 묻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잘 도착 했다고. 이제 집에 들어 간다고 말하자 어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그래 조심히 와라!”

 여행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티격태격하다 떠났는데,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상냥하게 말하자 영희가 물었다.

  “언니 좀 이상해. 갑자기 왜 그래? 여행가서 저승사자라도 본거야?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바뀌면 안된다고 했는데…….”

  “안되긴 뭐가 안돼? 고인물은 섞어. 사는곳이 달라졌으니 변해야지!”

 엄마를 보며 물었다.

  “저녁 준비 안했지? 오늘은 아니, 오늘부터 내가 할까?”

  “갑자기 왜 그러니? 무섭게! 할 얘기 있으면 그냥 해!”

 나는 안방으로 들어가 지난 일은 다 잊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나를 찾아 헤매게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고생했다고. 날 찾아 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영희도 받아 줘서 고맙단 말엔 엄마는 눈물을 삼키려는 듯 말없이 나를 끌어 안았다. 엄마의 품에 안기자 따스한 온기가 그동안의 서운함을 모두 녹여 버렸다. 엄마는 장롱에서 노트 한 권을 꺼내 주며 말했다.

  “이건 엄마 사용법이야! 엄마를 이용하는데 도움이 될꺼야! 서로 부딪히며 알아가는것도 좋지만 지금 우린 충분히 상처가 많은데 부딪히면 많이 아프지 않을까? 엄마가 아빠랑 싸우면서 깨달은게 하나 있어. 싸움의 이유는 늘 ‘돈’ 이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서로 사랑하지만 서로를 몰랐기에 싸웠던 것 같아.”

  “지금은? 이젠 안싸워? 서로 잘 알아서?”

  “그렇겠지. 싸운다고 해결 될 일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에이, 그건 포기지.”

  “어째든 ‘아내 사용법’을 만들어서 아빠한테 줬더니 효과가 있었어. 너도 읽어 보면 엄마를 이용하는데 도움이 될꺼야!”

 노트엔 엄마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고민이 뭔지. 사람들에게 받았던 상처와 사소한 고마움까지 적혀 있었다. 나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도 편지 형식으로 적혀 있었다. 엄마의 우정과 사랑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아빠가 첫 사랑이라고 말했지만 그건 아니라고 말했다. 그래도 마지막 사랑임에는 분명 하다고 말했다.

 아빠가 술과 여자. 도박과 보증 문제만 아니면 엄마는 아빠랑 이혼하지 않고 잘 살수 있다고 말했다. 서로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싸울일도 없고, 좋아하는걸 해주면 행복도 줄수 있다는 말이 와 닿았다. 엄마 사용 설명서를 읽으면서 내가 글 쓰는 취미가 있는건 엄마를 닮은 듯 했다.

 부모님과 화해 아닌 화해를 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아빠 카센터 일을 도와주면서. 엄마랑 함께 저녁 준비를 하면서. 책도 보고, 글도 쓰고, 영희도 보면서……. 집이라는 곳이 이런 곳일까.

 

  영미의 결혼식날 영희만 빼고 친척들이 다 모였다. 말이 친척이지. 남보다 못한 사이로 지냈어도 이런 날에는 아무렇지 않게 차려 입고 나와서 축하 해준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지만 괜한 표정으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아서 애써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예의상 묻는 질문에도 예의상 대답하며. 곤란한 질문에는 바쁜척 자리를 피했다. 결혼식 끝나고 집으로 들어오자 영희의 표정이 좋지 않아 물었지만 영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 말하기 싫으면 하지마. 나중에 기분 풀리면 얘기해줘!”

 

  연말이 되면 연중 행사처럼 감기를 앓거나.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올해도 이룬 것 없이 정리할 것도 없이 내년이면 숫자만 바뀌겠지. 만사가 귀찮은데 영미와 제부가 내 생일이라며 집으로 왔다. 내 생일을 위해 굳이 서울에서 왔다는 말에 고마움 보단 부담감이 앞섰다. 엄마는 처음으로 차려주는 내 생일상에 정성을 들였고. 내가 주인공인 이 식사 자리가 불편하기만 했다. 생일 따윈 잊고 지냈었다. 태어나 처음 받아 보는 축하에도 감흥이 없었다. 그냥 생일 핑계로 얼굴 한번 더 보는 거라 생각 했다. 그리고 충동적으로 독립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뜬금없이 말했지만 늘 생각은 하고 있었다. 서울에 간다고 해서 일이 생기는건 아니지만 여기서도 일이 생길 것 같지가 않았다. 집콕 생활이 전부지만 그래도 서울에서 살고 싶었다. 반대 할것 같았던 엄마는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말했고, 아빠는 통장 하나를 내밀었다.

  “이걸로 반듯한 전세라도 구해서 살다가 시집갈 때 써.”

 그리고 조건을 붙었다. 2년 뒤에도 하는일 없이 지낸다면 부산으로 내려와 아빠 일을 배우면서 살라는 말에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2년뒤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2년이라는 시간은 자유니까. 영희는 부산집에 두고 갈 생각이었지만 영희도 나를 따라서 서울로 가겠다고 말했다.

  “언니는 할 일을 찾아야 하지만, 너는 여기서 학교 다니면서 공부 하는게 더 낫지 않아? 언니보다 엄마가 더 잘 챙겨 줄테고…….”

  “내 엄마도 아니잖아. 나도 서울이 더 좋단 말이야!”

 할수 없이 영희도 데리고 서울로 갔다.

 
작가의 말
 

 아빠는 친아빠였다... 엄마도 친 엄마였다...

 잃어버린 유년기를 용서할수 없지만

 다신 보고 싶지 않지만

 용서할수 없다면 이용이라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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