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기타
셀프인생2022
작가 : 행복한라니
작품등록일 : 2022.1.12

셀 프 인 생
태어나 부모님 사랑을 받으며.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내고, 대학까지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자식을 낳고. 자식을 다키운 후에야 내 인생을 찾으려 하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이 주시는 사랑이 당연하지 않다면. 철 없어서 뭘 몰라서 아무것도 안한채 지나버린 시간들. 성인이 되어서 셀프로 살아가는 빛나 얘기를 하고 싶었다. 오늘을 열심히 살다보면 꿈은 이룰수 있다는 희망을 얘기하고 싶었다.

 
5. 리플리 증후군
작성일 : 22-01-12 20:36     조회 : 169     추천 : 0     분량 : 11866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5. 리플리 증후군.

 

  이력서를 낼 회사도 없고. 예전처럼 식당일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모아둔 돈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어느날, 할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영희는 할머니 영정사진 앞에서 한참을 원망을 쏟아 내며 울부 짖었다.

  “내가 오늘은 집에 있으라고 했잖아. 아픈 몸을 이끌고 폐지는 왜 주워! 졸업식에 온다고 말했잖아. 내가 시집갈 때 까지 내 손잡아 줄거라며!”

 할머니는 폐지를 주우려다 음주운전 뺑소니로 그 자리에서 사망 했다고 말했다. 영희에게 할머니는 이 세상 전부였다. 내가 모르는 슬픔에 대해 함부로 위로할수 없어서 아무말도 못하고 영희를 끌어 안으며 말했다.

  “이제 그만. 그만울자. 응? 너가 이러면 할머니가 먼 길을 어떻게 떠나……. 넌 혼자가 아니야! 이젠 내가 니 옆에 있어줄거니까.”

  “언니가 있으면 뭐! 진짜 언니도 아니잖아. 나도 죽을래. 할머니 없는 세상 살아서 뭐해. 어차피 나같은건 태어나지 말아야 했어. 나 때문에 엄마도 집 나가고. 아빠도 떠나고. 할머니까지 불행해졌어!”

  “그런 바보 같은 말이 어딨어? 세상에 이유없이 태어나는 사람은 없어.”

 영희는 할머니 죽음보다 더 슬픈건 고아원에 가야 한다는 사실에 차라리 죽어 버리고 싶다며 울음을 멈추지 않자 말했다.

  “니가 고아원에 왜 가? 이 언니가 있는데……. 내가 니 엄마라는거 잊었어? 성인이 될 때까지 이 언니만 믿고 따라와!”

 어쩌자고 그런 말을 해 버린걸까? 위로도 동정도 아닌 필터링 없이 내 뱉은 말에 책임을 져야 했다. 내가 살던 지하 방을 정리하고 옥탑방으로 돌아왔다. 할머니 짐을 정리하면서 영희는 또다시 깊은 슬픔에 잠겼다. 내 눈치를 보며 눈물을 닦는 영희를 보며 말했다.

  “눈치 보지 말고 맘껏 울어. 오늘은 우리 감정에 솔직해 지자!”

 나도 울어 버렸다.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 자신이 싫어서. 미워서. 영희와 함께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서 울었다.

 다음날, 영희와 맛있는 음식도 먹고. 쇼핑도 하고. 노래방도 갔다. 처음이었다. 친구와 노는 기분. 영희 기분을 풀어 주려 나왔는데 내가 더 신이 났다. 한참을 즐겁게 웃다가 갑자기 표정이 굳어 지더니 영희가 물었다.

  “할머니는 돌아가셨는데, 우리 이렇게 즐거워도 되는거야?”

  “응. 할머니는 더 좋은 곳으로 가셨으니까. 우리는 우리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야 되지 않겠어? 슬픔이 찾아오면 가끔은 울더라도 오늘은 웃자. 매일 울순 없잖아.”

 명동을 지나다 화장품 매장 앞에 매니저를 구한다는 팻말이 보였다. 순간 뭔가에 홀린 듯 영희를 보며 말했다.

  “잠시만. 어디가지 말고 여기서 기다려!”

 화장품 매장으로 들어가 면접을 보고 내일부터 바로 출근 하기로 했다. 근무 조건은 한달 4회 휴무에 월급은 180만 원. 그러나 조건이 있었다. 사장님은 나의 호언장담으로 채용 했기에 매출이 나오지 않거나. 일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바로 그만둬야 된다는 말에 자신감을 보이며 알겠다고 말했다.

 다음날, 아침 7시에 일어나 영희 아침 밥을 챙겨 학교에 보내고 출근을 했다. 영희는 돌봄 교실을 하고. 5시에 집에 들어와 빌려온 책을 읽고,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저녁밥을 챙겨 먹고 문제집을 풀었다. 일 끝나고 밤 11시에 집으로 돌아오면 영희는 자고 있었다. 나는 영희가 푼 문제집을 채점하고 잠이 들었다. 틀린 문제는 모았다가 쉬는날 함께 밀린 공부를 하고, 영희와 함께 마트에서 장 보고. 요리도 알려 주면서 물었다.

  “집에 혼자 있으면 심심하지 않아? 친구랑 놀러도 가고 그래!”

  “친구? 그딴거 없어도 돼. 재미도 없고. 감정소모에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

 나도 그렇게 생각 했었다. 그렇지만 친구는 필요하다고. 지금 너 나이땐, 공부보다 친구랑 노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영희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만 봤다. 영희는 진심으로 친구가 없어도 행복해 보였다. 시간을 떼우기 위해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영희가 좋아하는 책을 보고 글을 썼다. 주저리 주저리 늘어 놓은 잡다한 얘기를 쓰는 나와 달리 영희는 책 줄거리와 함께 느낀점을 적으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하고 싶은게 많은 영희에게 내가 해 줄수 있는 게 없다며 미안해 하자 영희가 말했다.

  “나를 고아원에 보내지 않은것만으로도 언니는 최고의 엄마야! 뭘 해주려고 하지 말고 그냥 내 옆에 있어줘. 결혼한다고 나 버리기만 해봐!”

 영희는 좋고, 싫음이 분명한 아이었다. 나처럼 할말은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은 나와 닮은 듯 했지만 달랐다. 나는 백번을 참다가 마지막에 할말을 하고 끝내 버리는 성격이지만, 영희는 오래 참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기분 나쁜 얘기를 기분 상하지 않게 말하는 재주가 있었다. 영희가 뭔가를 적고 있어서 슬쩍 보면서 물었다.

  “뭘 그렇게 적어? 문제 풀어?”

 영희는 자신에 대한 100문 100답을 매년 쓴다고 말했다. 답이 달라질 때 마다 성장하는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문제의 답이 늘 똑같은건 취향이라고 말했다. 나는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름과 나이가 전부였다. 나에게도 취향이란게 있을까? 좋아하는 물건을 사는 것 보다 돈에 맞춰 산 물건도 내 취향일까? 바보같은 질문을 해 버렸다.

  “넌, 니가 사는 물건이 다 니 취향이니?”

  “돈에 맞춰 사는 물건은 내 취향이 아니라 그냥 내 수준 이지 뭐.”

 덤덤하게 말하는 ‘수준’이라는 단어에 나는 몇 번이고 곱 씹어 보았다.

 그래. 이게 나의 수준이지. 거지 같은 물건이라도 싸니까. 없는 것 보다 나으니까. 뭐든 싸게 사면 합리적인 소비인거지. 나에겐 좋은것도, 싫은것도 없었다. 나에게 좋은건 나쁘지 않은 것이었고, 싫으면 조금 불폄함을 참으면 되는거였다. 싫어하는 음식도 먹으면 먹을만 했고, 싫은일도 하다보면 할 만 했다. 나는 그렇게 계속 ‘아무거나’에 만족했다. 내가 집을 나온 가장 큰 이유는 주어진 환경에 맞춰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고 싶지 않아서. 내 생각대로 살고 싶어서 집을 나왔는데, 여전히 나는 습관처럼 ‘아무거나’를 선택하고, 아무렇게 살고 있는 나를 반성하며 지금부터 라도 달라 지기로 했다. 제일 먼저 음악을 선곡 했다. 매일 노래를 들으면서 내가 선곡한 노래는 없었다. 나오는 노래가 다 좋아서. 기분에 따라. 날씨에 따라. 아티스트 별로 다 분류가 되어 있어 남들이 선곡 해놓은 앨범을 찾아 듣기만 했었는데 오늘은 나만의 앨범을 만들었다. 그리고 옷장을 정리 했다.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는걸 알지만 버리기 아깝다는 이유로 입었던 옷들을 과감하게 버리고. 점심 메뉴도 ‘아무거나’가 아닌 조금 비싸더라도 먹고 싶은 음식을 먹었다. 매 순간 생각하고. 선택 하는 일은 생각보다 피곤하고. 지출도 많아 졌지만. 나로 사는 기분은 좋았다. 자리가 사람을 바꾼다는 말처럼 매니저가 된 이후 내 삶은 달라졌다.

 자신감이 넘쳤고. 절박함에 언변이 늘고, 매출도 오르고. 월급에 인센티브도 받았다. 기분 탓일까? 나를 함부러 대하는 사람도 없고. 남자 친구도 생겼다. 이제야 남들처럼 연애를 하면서 사람답게 살수 있었다.

 

 손님으로 온 남자와 난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헤어졌다. 3개월의 짧은 만남에 내 삶이 무너졌다. 출근도 못하고 몇일을 앓아 누웠다. 영희가 왜 그러냐고 나를 달래보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밥상을 차려줘도 나는 1주일 꼬박 침대에 누워 울기만 했다. 눈뜬 송장처럼 한달을 보내고 나니 정신이 들었다. 정신이 돌아오자 배가 고팠다. 밥 맛도 느껴졌다. 이제야 살아 있는 기분이 들었지만 갈 곳 없는 현실을 마주 하는건 지옥 이었다. 폐인으로 지낸 시간들이 통편집이 되어 날라가고, 나는 다시 한번 힘을 내려 일자리를 알아 봤지만, 매니저 자리는 없고, 직원으로 일하는건 자존심 상하고, 얼떨결에 보이는 호텔에 이력서를 냈다.

 이름은 김유린. 나이 30세. 아버지는 사업가. 어머니는 대학 교수로 화목하고. 남부럽지 않은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내고, 중국으로 유학가 호텔경영학을 전공하고 현지 호텔에서 근무하다 귀국 했다는 말에 면접의 기회를 얻었다. ‘이 정도 스펙이 있어야 면접이라도 볼수 있는 기회가 있는걸까?’ 어차피 떨어질게 뻔하지만 호기심에 면접을 보러 갔다. 뾰족 구두가 불편 했지만 또각 거리는 소리는 듣기 좋았다. 면접을 보러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정장을 입고 단정한 모습으로 긴장된 모습으로 얼굴 근육을 풀고 있었지만 나는 편하게 앉아 있었다.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앉아 있는 나에게 시선이 집중 되자 저녁에 입으려고 챙겨 온 자켓을 입었지만 뒤에서 수근 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쟤 뭐야? 면접이 아니라 선이라도 보러 왔나봐.”

 오랜만에 느껴보는 비아냥 거리는 눈빛. 키득 거리는 웃음 소리에 나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걸어가 말했다.

  “궁금한거 있음 저한테 물어보세요. 저, 선보러 온거 아니고 면접 보러 왔습니다. 또 질문 있나요?”

 ‘뭐야? 미쳤나봐…….’ 라는 눈빛만 보일뿐 대답은 하지 않았다.

  “뒤에서 수근 거릴거면 안들리게 하든가. 들리게 말할거면 앞에서 말하던가. 면접 보러 왔으면 남 신경 쓰지 마시고 거울이나 보시죠. 화장 떴어요. 그리고 눈화장은 떡칠하는게 아니라 그라데이션 하는 거예요. 찍어 바른다고 다 예뻐지는게 아니란 말이예요.”

 그때 나를 호명하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표정을 미소로 바꾸며 보란 듯 그녀들 사이를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긴 테이블에 네명의 면접관들이 앉아 있었고. 내 옆에 앉은 사람들은 긴장된 자세로 면접관 입을 주시 하고 있었지만 나는 면접관 한명 한명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앉은 사람은 40대 초반으로, 싱글이거나 돌싱으로 보였다. 홀애비 느낌이 나는건 아니었지만 그냥 필이 그랬다. 각 잡힌 셔츠는 세탁소에 맡긴게 분명했다. 혼자 다림질을 했다면 결벽증이 의심 되는 남자였다.

 너무 바르고 깐깐한 사람은 피곤 하니까 패쓰. 두 번째 앉은 사람은 앞머리가 살짝 벗겨진 꼰대 사장 같았다. 50대 중반으로 억지스레 지은 미소로 사람 좋아 보이는척. 집에서도 자상한 아버지일 것 같은 느낌이지만 미간에 생긴 주름으로 보아 평소 짜증을 잘내고 신경질적인 사람 같았다. 세 번째 앉은 사람은 30대 초반으로 가장 젊어 보였다. 어린 나이에 승진이라도 한걸까? 낙하산일까? 아니면 동안? 원래 잘 웃지 않는지 얼굴엔 표정이 없었다. 웃는 모습을 상상 해봐도 무표정이 잘 어울릴 것 같은. 시크한 표정이 매력적으로 보였다. 감정없이 일에만 몰두하는 사람. 일 중독자처럼 보이지만 그 모습을 상상하니 또 섹시해 보였다. 네 번째 면접관은 자존심이 강해 보였다. 쎈 척할뿐 알고 보면 겁쟁이. 술과 여자를 좋아하고. 팔랑귀라 아부에 약한 타입이랄까. 그동안 손님을 상대하면서 터득한 나의 직감이었다. 잘못 봤다고 해도 알게 뭐야. 혼자 생각하고 있는데 네 번째 앉은 면접관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김유린씨?”

  “네? 네. 제가 김유린입니다.”

  “긴장 했어요? 몇 번 불렀는데. 못 들었나봐요?”

  “아뇨. 면접관님이 너무 잘생겨서 감탄중에……. 잠시 정신이 나갔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세 번째 면접관 빼고 모두 웃었다. 아부가 통했는지 기분좋게 내 이력서를 살펴 보며 질물을 이어갔다.

  “남들은 취미가 독서라고 말 하던데, 유린씨는 습관이라구요? 습관처럼 책을 읽는 이유라도 있나요?”

  “책을 좋아하다 보니 습관이 된 것 같습니다. 책 한권을 다 읽으면 좋은 친구를 사귄 기분이예요. 정보도 얻고. 지식도 쌓고. 때론 여행을 함께 떠나기도 하고. 위로도 받으니까요. 바쁜 하루 속에도 잠시 현실을 떠날 수 있는 매력에 책을 좋아 합니다.”

  “취미가 등산인데, 왜 등산을 좋아하죠?”

  “아무 생각없이 산을 오르는 느낌이 좋아요. 평소엔 산책을 하면서 사색을 즐기지만. 산을 오르면 잡념도 사라지고.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무엇보다 정상에 도착해서 먹는 물 맛이 끝내 주거든요.”

  “물 맛을 아는거 보니 진짜 등산을 즐기는 것 같네요. 근데 오늘, 원피스를 입고 온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면접 보러올 때 정장 입고 오란 말을 못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원피스를 입고 왔습니다. 원피스가 문제가 되나요?”

  “문제는 아니지만, 보통 면접은 정장 입는 것이 상식 아닌가요?”

  “전 편견이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면접은 정장이 아닌 자기를 잘 표현할수 있는 옷을 입거나 좋아하는 옷을 입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신있게 좋아하는 옷을 입고 왔다? 뭐 좋네요. 만약 입사하게 된다면 유린씨가 뭘 잘 할수 있는지 각오를 들어 볼수 있을까요?”

  “RD호텔은 중국 관광객은 물론 VIP고객님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 알고 있습니다. 중국에 살면서 중국 문화를 잘 알기에 제가 가진 지식과 친화력으로 위화감 없는 서비스를 제공 할수 있을거라 생각 합니다.”

  “처음에 유린씨 이름을 불렀는데, 못 들은 이유가……. 제 생각이 맞다면 면접관들을 차례로 스캔한 것 같은데 맞나요?”

 세 번째 앉은 면접관이 예리한 표정으로 물었다. 정곡을 찌른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편하게 대답이 나왔다.

  “기분 상했다면 죄송합니다. 그전에 먼저 인사를 했습니다. 인사의 타이밍은 상대방과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가 아니라 눈이 마주쳤을 때 하는거니까요. 면접관님들을 스캔 했다기 보다 첫인상이 어떤지 살펴 보았습니다. 저를 채용할 권한은 면접관님 이지만, 채용되었을 때 거절할 권리는 제게 있는 거잖아요. 면접관님들이 좋은 인재를 찾아 일 하고 싶듯이 저역시 좋은 상사를 모시고 일하고 싶기에 유심히 본 것 같습니다.”

  “대답을 참 잘하는군요. 그럼 마지막 질문 하나 드릴께요. 아주 예쁜 옷이 있는데 유린씨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면 뭐가 문제 일까요?”

  “예쁜옷이 제게 맞지 않는다면 제 몸이 문제겠죠. 살을 빼서 입어야 겠네요. 맞게 입어도 어울리지 않는다면 그건 제 옷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옷에 맞게 성형 할순 없으니까요. 그런데 그 옷의 주인이 꼭 저 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회사에 입사해서 맞지 않으면 노력은 해 보겠으나 어울리지 않으면 퇴사 하겠다? 그렇게 들어도 되겠습니까?”

  “그런 뜻이라면 옷을 리폼해서 입겠습니다. 고인물은 섞고, 예쁜옷도 유행이 지나면 촌스러워 지기 마련입니다. 옷은 맞는데 제게 어울리지 않으면 리폼 하면 되지 않을까요?”

 “수고하셨습니다.”

 면접이 아니라 한바탕 말싸움이라도 하고 나온 기분이었다. 내가 만든 ‘유린’이라는 캐릭터를 연기 하는 기분이랄까. ‘유린’이라는 이름이 익숙하지 않아서 낯설었지만 어차피 끝이라 생각 했는데, 최종 면접에 합격 했다. 장난삼아 본 면접이었고. 합격 하더라도 안하면 그만이라고 생각 했지만 욕심이 생겼다. 호텔에 관한 책은 모조리 다 읽고, 호텔에 숙박하면서 일하는 사람들과 오가는 사람들을 스캔했다. 대충 호텔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떤 고객이 오는지 파악 하고 첫 출근을 했다. 머리는 포니테일 스타일로 묶어 올리고 화장도 달리 했더니 사람이 달라졌다.

 메이크업이 주는 매력은 매일 새로운 얼굴을 만들어 낼수 있다는 것이었다. 불안한 마음을 감추고 잘할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출근 하면서 나의 무대가 펼쳐졌다. ‘유린’이라는 캐릭터로 나는 연기를 시작했다.

 일하는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먼저 말을 걸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친구를 사귀기 위해 제일 먼저 할 일은 말걸기 라는걸! 새학년. 새학기 친구들을 처음 만났을 때 내가 먼저 말 걸어 인사를 했다면 나에게도 친구가 생겼을까? 생각해보니 내가 먼저 말을 건 적은 단 한번도 없었고. 말을 걸어 오는 친구들은 일단 경계 했다. 무슨 의도로 나에게 다가오는지 경계하며 어색하게 대답을 하거나. 투명하게 대답해서 친구가 없었던건 아니었을까? 입사 동기이자 동갑인 수나는 붙임성이 좋은 아이였다. 수나는 내가 마음에 드는지 유난히 나에게 친절했고. 우린 일하는 사이를 넘어 오랜 친구처럼 친해졌다. 수나는 전라남도 해남이 고향이라고 말했다. 우물안 개구리처럼 살고 싶지 않아서 죽어라 공부해서 서울에 와서 부자가 되겠다는 꿈으로 산다고 말했다. 부모님은 욕심없이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가르쳤지만 수나는 그런 부모님을 답답 하다고 말했다. 보란 듯이 성공해서 건물주가 되는 것이 수나의 꿈이라고 했다. 수나는 투룸 빌라에서 룸메이트랑 함께 살면서 이제 취직도 했으니 차곡차곡 돈을 모아서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전셋집으로 이사 갈 거라고 말했다.

  “어느세월에!”

  “6개월 안에.”

 수나는 호텔에서 6개월 근무하면 은행에서 대출을 할수 있기 때문에 지금부터 전셋집을 알아 보고 있다는 말에 이해할수 없지만 ‘어떻게?’라고 묻지도 못했다. 나에게 대출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때나 쓰는 말이니까. 은행은 내 돈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맡기고 찾는 곳일뿐, 다른 업무는 생각 하지 않았다. 나도 대출해서 전셋집을 구했더라도 월세를 아낄수 있었을까. 이천만 원을 최대 금리로 대출 한다고 가정해도 한달 이자가 10만 원도 안될텐데. 월세가 30만 원이니까 매월 20만 원씩 1년이면 이백사십, 10년을 모았다면 이천사백만원을 아낄수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 이었지만 그래도 남의돈 함부로 쓰는거 아니라고, 빚진 인생이 어떻게 빛을 볼수 있겠냐며 빚 때문에 망한 사람 여럿 봤다며. 이자에 이자를 갚느라 사채까지 쓰면서 막장을 달리는 드라마 얘기로 흘러가 결국 한강 다리에서 인생 종 치게 될거라고. 그래서 나는 대출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며. ‘남에게 빚지고 살지 말자!’ 이게 내 생각이고 소신이라는 말에 수나는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그래서 넌 평생 개미처럼 살겠다고? 한달 벌어 한달 생활하면서? 노후도 생각 해야지. 평생 일할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사치하며 쓴 돈이 막장이지. 빚이라고 해서 다 나쁜건 아냐! 안정한 투자를 위한 빚은 좋은 빚이라고 할수 있지. 빚내서 주식 하는것도 아니고, 어차피 살아야 할 전세 보증금이야. 매달 월세 내듯 이자 잘 낼수 있는데 뭐가 문제야? 원금은 벌어서 갚으면 되고, 대출한 돈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보증금으로 남아 있는데. 원금 못 갚아서 한강 가는 일은 없지.”

 나는 불사신처럼 아프지도 죽지도 않을거라 생각 했다. 난 지구별에 떨어진 별똥별이니까. 외계인이 지구에서 사려면 돈이 필요 하고, 돈이 떨어지면 죽는거라 생각했다. 죽지 못해 오늘 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내게 노후따윈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 흔한 보험도 없다는 말에 수나는 보험은 무조건 있어야 된다고 말했다.

  “사람이 평생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해? 아프면 답 없어. 미리미리 보험 들어놔야 병원비 걱정 없지!”

  “아프면 죽어야지!”

 난 진심이었지만 수나는 농담으로 들었다. 웃다가 물었다.

  “너도 기회되면 ‘투자’를 하는건 어때? 연봉 많이 받는 것 보다 돈 버는 기술을 배워서 수익을 내는 것이 부자 되는 지름길이야! 돈은 내가 버는게 아니라 돈이 벌어. 그래서 다들 주식 하고, 땅을 사잖아! 내 친구는 5천만 원으로 3억 5천만 원 하는 아파트를 샀어! 이게 말이 돼? 근데 말이 된다니까!”

 수나 친구는 시집 가려고 모은 돈 5천만 원으로 3억 5천만 원짜리 아파트를 매매 했다고 말했다. 집을 담보로 3억을 대출해서 아파트를 샀다는 말에 그렇게 큰 돈을 은행에서 빌려 주는것도, 어떻게 갚는지도 의아해서 물었다.

  “3억이면 이자가 얼마야? 그걸 다 갚을수 있데? 어떻게 감당 해?”

  “3억에 전세 내주고 대출금 갚아서 낼 이자도 없어. 그냥 남의 돈으로 아파트 사고, 집 값오르면 시세 차익을 얻는거지!”

  “집 값이 안 오르면? 세입자가 나가면 전세금 돌려 줘야 하는데, 그땐 어쩌려고?”

  “다른 세입자 구해서 전세금 내주면 되니까. 문제는 세입자를 못 구하면 낭패인거고. 그냥 그렇게 돈을 묻어 놓으면 땅값은 오르니까. 누군 죽어라 일해도 천만원 모으기 힘든데, 걔는 앉아서 몇천을 버니까 세상 참 불공평 하지 않아?”

  “니 말대로라면 세상 사람들 다 부자 되게? 나도 대출해서 집 사서. 전세 주고 집 값이 오르면 돈 버는 거잖아.”

  “그렇지. 다들 그렇게 돈 벌었지. 생각처럼 된다면……. 그런데 모든 집이 다 좋은건 아니잖아. 세입자를 못구하면 전세금도 못 내주고. 집이 안팔려도 문제고, 그래서 깡통전세 피해자가 생기는 거지.”

 어쩌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누구나 못하는 이유는 그럴 돈이 없거나 배짱이 없는 거겠지. 솔깃 했지만 카드 한 장도 못 만드는 내가 무슨 대출이야! 나에게 ‘대출’은 도서관에서 책 빌릴때나 쓰는 말이지. 난 개미처럼 부지런히. 송충이라 솔잎만 먹겠다는 말에 수나가 말했다.

  “왜 스스로 송충이라고 단정 지어? 인생 긴데. 끝은 아무도 모르는 거야.”

 수나는 부자가 되려면 돈이 없어도 돈에 관심을 가져야 된다고 말했다.

  “관심을 안가져 주는데 돈이 오겠냐?”

 수나 말은 들리지 않고, 아빠가 대학은 꼭 가야 된다고 말했던 말이 귓가에 스쳤다. 대학을 갔더라면 학력을 위조해 거짓 인생을 살지 않아도 되고, 차근 차근 경력을 쌓아 승진을 했더라면 그 월급으로 투자든 뭐든 남들처럼 살 수 있었을 텐데. 후회도 들었지만 그건 모르는 일이었다. 대학 졸업장이 취직을 보장하는것도 아니고. 무엇을 상상해도 답은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고아라는 사실은 변함 없을 테니까. 수나와 얘기를 하면 할수록 거짓말이 늘었다. 하나의 거짓말을 증명하기 위해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내다 보니 이제 정말 유린이가 나인것만 같았다.

 인사과에서 증빙자료를 제출하라는 말에 당황 했지만 공문서 위조가 이렇게 쉬운줄 몰랐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라는걸 새삼 느끼며 나는 완벽하게 유린이로 살고 있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일상속에 느낀 행복도 잠시 학력위조 사건이 터졌다. 유명인은 물론, 일반인들까지 줄줄이 터져 나오자 하루하루가 불안해 졌다.

 그러다 보니 실수도 많아졌다. 점 점 목을 조여오는 듯한 불안감에 사직서를 쓰려고도 했지만 차마 ‘유린’이를 버릴수 없었다. 내가 만든 세상에서 조금 더 행복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바닥을 보이고 말았다. 무조건 내편일 것 같았던 수나는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며 차갑게 돌아섰다. 그렇게 나의 연극은 끝나고, 나의 삶은 또다시 무너졌다. 학벌과 경력이 없어도 일하는데는 문제 없었는데. 그놈의 학벌이 뭐라고……. 그렇게 난 또 우울함에 한없이 가라 앉았다.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리. 버티고 버틴 결과가 이거라니. 부질없는 먼지 같은 인생 에 무슨 희망이 있다고. 열정페이로 내 청춘은 끝났고, 사랑을 받아 본적이 없는 내가 무슨 사랑을 하겠다고 사랑을 했다가 망했고. 앞으로도 내 인생에 사랑은 없을 테고. 생명을 연장하듯 모아둔 돈도 의미 없고, 인간관계는 알면 알수록 어렵고. 휴대폰에 저장된 많은 이름중에 지금 전화해 불러 낼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내가 죽어도 슬퍼할 사람이 없을 테니까. 이대로 눈을 감고 싶었다. 고통없이 죽는 방법은 없겠지만 그 짧은 고통을 참아내면 나는 편해질수 있을까? 누군지도 모르는 부모님이 원망 스러웠다. 죽기 전에 원망이라도 다 쏟아 내고 싶었다. 유서라도 남기고 죽어야 될 것 같아서 습관처럼 일기장을 꺼내 들었다.

 그러다 지난 일기를 보게 되었다. 기억속에 나는 매일 힘들었던 기억 뿐이었지만 일기장엔 행복했던 시간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적어둔 ‘나만의 우울증 극복 매뉴얼’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우울할땐 단계별로 실천하기>

 

 1.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상대방 생각대로 하게 내버려 두기.

  (책임도 너님이!)

 2. 창문 활짝 열고. 물건 반이상 버리며 대청소를 시작하기.

 3. 커피숍 창밖 풍경을 보며 달달한 커피 마시기.

 4. 음악감상. 오직 노래 가사에만 집중하기.

 5. (음악없이) 공원 산책하기.

 6. 아무 버스를 타고 낯선동네를 돌아 다니기.

 7. 음악에 몸을 맡긴채 미친 듯이 몸을 흔들기.

 8. 교회 가서 목사님이랑 상담하기. 자매님들과 수다 나누기.

 9. 절에 가서 조용히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비우고. 끝도 없이 비워내기.

 10. 죽고 싶을땐 머리카락 빡빡 밀어 버리기.

 

 10번 빼고 다 해봤다. 죽을 용기는 있지만 삭발할 용기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살아야 되는 이유를 찾았다. 분명 죽고 싶었는데. 죽을수도 있는데. 이렇게 한순간에 마음이 달라졌다. 매뉴얼대로 하나씩 실천 했다. 창문을 열었을 뿐인데 기분이 나아졌다. 밥을 먹고 나가 걷고 또 걸으며 마음을. 생각을 비워냈더니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이 생겼다. 영희가 나를 보며 말했다.

  “이제 가벼워 졌나보네. 수면위로 올라온게 시체가 아니라 다행이야!”

 

 
작가의 말
 

 빛나는 거짓 이력서로 호텔리어가 된다.

 문제 없이 일을 잘하고 있었지만 학력위조 사건으로 빛나의 무대는 끝이 난다.

 빛나는 궁금하다.

 문제없이 일을 잘하고 있는데. 그깟 학벌이 경력이 중요한걸까?

 학벌과 경력은 거짓일지 몰라도... 일하는 모습은 진짜 인데...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1 10.나로 살겠다. 2022 / 1 / 12 172 0 21295   
10 9. 바람이 분다. 2022 / 1 / 12 175 0 4287   
9 8. 여자아닌 엄마로 사는 삶 2022 / 1 / 12 189 0 12065   
8 7. 일과 사랑 두마리 토끼 2022 / 1 / 12 160 0 14457   
7 6. 미운오리는 백조였다. 2022 / 1 / 12 163 0 16977   
6 5. 리플리 증후군 2022 / 1 / 12 170 0 11866   
5 4. 식구 2022 / 1 / 12 167 0 12790   
4 3. 열정페이 -2 2022 / 1 / 12 166 0 18128   
3 3. 열정페이 -1 2022 / 1 / 12 175 0 16485   
2 2. 사춘기 2022 / 1 / 12 162 0 22901   
1 1. 누군가의 가족이 된다는건 2022 / 1 / 12 252 0 23644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