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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셀프인생2022
작가 : 행복한라니
작품등록일 : 2022.1.12

셀 프 인 생
태어나 부모님 사랑을 받으며.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내고, 대학까지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자식을 낳고. 자식을 다키운 후에야 내 인생을 찾으려 하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이 주시는 사랑이 당연하지 않다면. 철 없어서 뭘 몰라서 아무것도 안한채 지나버린 시간들. 성인이 되어서 셀프로 살아가는 빛나 얘기를 하고 싶었다. 오늘을 열심히 살다보면 꿈은 이룰수 있다는 희망을 얘기하고 싶었다.

 
2. 사춘기
작성일 : 22-01-12 13:06     조회 : 162     추천 : 0     분량 : 22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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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사춘기.

 

  초등학교때부터 친구가 없었던 나는 중학교에 가면 새로운 친구를 사귈수 있을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나를 아는 친구보다 나를 모르는 친구가 더 많을 테니까. 처음으로 입어본 새 교복에 기분까지 새로웠다.

 새학기. 새사람이 되어 새롭게 시작하려 했던 다짐이 입학 첫날 무너졌다. 다들 처음 보는 친구일텐데. 원래부터 친구였던 것처럼 삼삼오오 친해진 친구들 틈에 다가갈 용기가 없었다. 나에게 다가오는 친구도 없었다. 새삼스런 일도 아닌데 괜히 어색하고 민망해서 책을 펼쳤다. 책을 보지 않으면 책상에 엎드리거나. 그렇게 1주일이 지나갈 무렴 송이가 다가와 점심을 같이 먹자고 말했다. 얼떨결에 의자를 갖고 송이 옆에 앉았다.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말을 하려 했지만 통성명이 전부였다.

 송이와 친구들이 주고 받는 대화속에 내가 낄 자리는 없었다. 어렵게 말을 꺼내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렇게 매일 밥 만 같이 먹는다는 것이 불편 했지만 혼자 먹는 밥 보단 좋았다. 남들 눈에는 왕따로 보이지 않을 테니까. 송이가 말했다.

  “너네엄마 요리 진짜 잘하나봐. 반찬이 다 맛있어!”

  “이거 다 내가 만든건데.”

  “니가 만든거라고? 정말? 요리사가 되는게 꿈이야?”

  “요리사는 무슨, 밥은 먹고 살아야 하니까. 기왕 먹는 밥. 맛있게 먹으려고 요리 하다 보니 실력이 늘었어. 물론, 학원에서 배우기도 했지만!”

 가족들이 먹다 남은 밥을 먹는 기분은 더러웠고 맛도 없었다. 그래서 혼자라도 맛있게 먹어 보려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이것저것 만들어 먹었더니 아줌마는 내가 요리를 좋아하는 것 같다며 요리학원에 보냈다. 자연스레 집에서 요리를 하게 되면서 어느새 집안일과 밥은 내 담당이 되어 버렸다. 아빠도 내가 밥 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한식 자격증이 있다는 말에 송이가 말했다.

  “부럽다. 자격증도 있고……. 매일 맛있는 음식 먹으면 행복 하겠다.”

 송이가 말하는 ‘맛있는 행복’을 알지 못해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 했다.

 친구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책방에서 만화책을 빌렸다. 만화책은 좋아 했지만 여전히 나는 그들과 함께 섞이지 못했다. 송이랑 매일 같이 밥을 먹어도 우정은 조금도 쌓이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나는 은혜랑 같은 반이 되었다. 1년 내내 알은체 안하며, 마주쳐도 못본척 하며 지냈는데. 매일 한 교실에서 얼굴을 보는 것이 곤욕이었다. 은혜를 보면 왜 나는 작아 지는지. 다시 초등학생이 된 듯 했다. 그래도 애써 외면 하며 모른체 잘 지내 왔는데, 어느날 갑자기 나에게 다가와 큰소리로 말했다.

  “내 CD 내놔. 그동안 널 의심하면서 모른척 했지만 플레이어 까지 가져 간건 너무 하지 않아? 당장 갖고간 CD플레이어와 CD 내놔!”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내가 뭘 가져 갔다고 그래?”

  “시치미 떼지마. 사물함에 넣어둔 물건, 너 아니면 누가 가져가? 사물함 열쇠 열 수 있는 사람, 여기 너 말고 또 있어?”

 은혜는 내일 아침까지 가져간 물건을 제자리에 넣어두지 않으면 내 비밀을 다 폭로 하겠다고 말했다. 고아라는 사실을 말해버릴 모양이다. 하굣길에 은혜를 붙잡고 맹세코 난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지만 은혜는 믿지 않았다. 다음날 은혜는 복도 가운데 벽과 교실에 대자보를 붙여 놓았다.

 ‘2학년 8반 오빛나를 조심하세요!’라는 제목으로 내가 고아원에서 입양된 사실과, 비밀 번호가 있는 자물쇠는 쉽게 열수 있는 도둑년이라고 적혀 있었다. 대자보는 찢어 버렸지만 이미 소문은 퍼졌고, 사물함에서 물건을 잃어버린 친구들은 나를 찾아와 갖고 간 물건을 내놓으라며 성화 였다. 도둑년으로 욕을 먹는 것 보다 ‘고아’라는 사실을 말한건 참을수 없어 은혜 앞으로 다가가 대자보를 던지며 말했다.

  “당장 사과해! 이거, 니 장난이라고. 거짓말이라고 당장 해명해!”

  “사과는 잘못한 사람이 하는 거야. 가져간 물건 돌려주면서 사과를 해도 모자랄 판에 어디서 큰 소리야? 억울하면 니가 아니라는 증거를 대 봐? 고아를 고아라고 하는데. 그게 사과 할 일이야? 가진게 없는 니가 할수 있는 일이 도둑질 말고 또 있어?”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도끼가 있다면 은혜를 찍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지만 내가 할수 있는건 저주를 퍼 붓는 거였다.

  “물건을 잃어 버려서 화난 마음에, 화풀이 할 대상이 나라는건 알겠지만 이건 너무 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래. 나 부모 없어. 그러는 넌 언제까지 부모가 니 옆에 있을거라 생각해? 내일이라도 당장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면 너도 고아가 되는거야! 말이 씨가 되는거 알지? 너도 고아가 된다면 알겠지. 내가 받은 수모. 이 더러운 기분……. 너도 꼭 느껴 보길 바래. 평생 널 저주 할테니까. 넌 정말 나쁜 년이야!”

 그냥 해본 말에 코코가 아빠 차에 치여 죽은 이후 은혜는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을 무서워 했다. 은혜는 가려는 나를 붙잡고 방금 한 말 사과 하라고 말했다.

  “사과? 사과는 잘못 한 사람이 하는거라며? 내 입 갖고 말도 못하니? 니 말대로 내가 할수 있는게 말뿐이라서……. 난 널 영원히 저주 할꺼야!”

  “당장 취소해! 기분 더러운 그말. 당장 취소하라고. 아니라고 해!”

  “무릎꿇고 애원이라도 해봐. 내가 네게 무릎꿇고 애원 했던것처럼…….”

 은혜는 계속 내가 한 말을 취소하고. 침을 세 번 뱉으라고 말했다. 그래야 재수가 떨어 진다고 믿는지. 계속 취소 하라고 말하다가 안되겠는지 사과를 하면서 말했다.

  “그래. 미안해. 나부터 사과할게. 됐지? 그러니까 너도 그말 취소해!”

  “그게 사과 하는거니? 사과하면 뭐가 달라 지는데? 내가 취소하면 뭐가 달라져?”

 그날이후 나는 송이와 함께 밥도 먹지 못하게 되었다. 전교생이 나를 ‘도둑년’으로 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날, 한 친구가 호들갑을 떨며 교실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야! 야! 빅뉴스! 은혜 부모님 돌아가셨데. 교통사고로…….”

 그말에 반 아이들 모두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친구가 말했다.

  “오. 소름! 빛나의 저주가 이뤄졌어. 야! 쟤 건들지마. 우리도 저주 하는거 아냐?”

 은혜 부모님이 돌아 가셨다는 말에 마치 내가 죽인 것처럼 죄책감이 밀려왔다. 홧김에 말한것뿐, 정말 저주 한적도. 그렇게 바란적도 없는데. 은혜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 졌다. 장례식을 끝낸 은혜가 등교했다.

 그동안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모른척 했다. 신경 쓰고 싶지 않아 종일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엎드려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려는데 은혜가 나를 붙잡고 원망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그말 취소하라고 그랬지.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부모를 잃은 심정은 모르지만. 부모가 없는 마음은 누구보다 잘 아니까. 같이 울어 주고 싶었다. 위로 해 주고 싶었지만 내 입에선 마음과 다른 말이 나왔다.

  “나 때문에 뭐? 내가 널 고아로 만들었니? 뭐가 나 때문이라는 거야?”

 은혜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나를 붙잡고 말했다.

  “니가 그렇게 저주만 하지 않았어도……. 악담만 퍼붓지 않았어도……. 침뱉고 그말 취소만 했어도 우리 부모님 돌아가시지 않았을거야.”

  “그냥 홧김에 한 말이었어. 저주 한적 없어. 저주라면 죽은 코코의 저주겠지. 나랑 행복하게 살수 있었는데. 너 때문에……. 그렇게 남탓 하면 니 마음이 편하니?”

  “뭐?”

  “말이 씨가 된다는 말 무서워 하면서 왜 넌 함부로 말해? 항상 시작은 니가 먼저 했어. 너도 이제 알겠네. 부모가 없는 삶이 어떤건지.”

 아빠와 함께 한 추억도. 물건도 없다는 말을 하면서 엉엉 우는 은혜 모습을 뒤로 하고 집으로 가는데. 아빠를 추억할 물건이 없다는 말에 은혜 지갑이 떠올랐다. 아직 보일러실에 있을텐데. 지갑을 돌려줄까? 말까? 한참을 생각하다 은혜의 사물함에 메모와 함께 지갑을 넣어 두었다.

  -영원한 슬픔은 없어. 지나갈 슬픔을 붙잡고 슬퍼하기 보다 다가올 내일을 생각했음 좋겠어. 부모가 없다고 해서 세상 끝난건 아니니까!-

 

  난 친구는 없지만 외롭지 않았다. 나에겐 나만의 세상이 있었다. 수업시간엔 선생님이 나를 봐주진 않지만 선생님과 나만 존재 하는 것처럼 수업을 하고, 쉬는 시간엔 수업 내용을 정리 했다. 점심시간엔 책을 읽거나 문제집을 풀고, 집에서는 독학으로 중국어 공부를 했다. 중국어를 공부하는 이유는 남들이 잘 모르니까. 다들 영어는 하니까, 나는 남들이 알아 듣지 못하는 중국어로 무시해주고 싶었다. 다른곳에 신경 쓰지 않으려 나의 하루는 늘 음악을 듣거나. 책을 보거나. 잠을 자면서 상상은 늘 했지만 앞날에 대한 ‘생각’이란건 하지 않고 살았다.

 나의 평온한 하루를 방해 하는건 언제나 일진이라고 불리는 아이들이었다. 초등학교땐 반응하지 않으면 재미 없다며 괴롭히지 않았지만 지금은 무시 하냐며 더 괴롭혔다. 이것이 학교폭력의 시작이라는걸 몰랐다. 동네북 마냥 여기서 치이고. 저기서 치이는 존재로 버티다 선생님께 도움을 청했지만 달라지는건 없었다. 선생님이 해줄수 있는 최선의 말은 ‘장난치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였다. 이게 장난으로 보이는 걸까. 선생님 한테 일렀다는 이유로 일진들은 나를 더 심하게 때리기 시작했다. 이러다 맞아 죽을 것 같았다. 어차피 살고 싶지 않은 인생이지만 맞아 죽고 싶지는 않았다. 일진의 손을 막으며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소리쳤다.

  “하지마! 제발 나 좀 내버려둬. 이러지 말라고!”

 일진들은 내 말투를 따라하며 재밌다는 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러지 말라고? 뭘 이러지마. 우리가 뭘 어쨌는데. 이러지 말라고 하면 난 꼭 이러고 싶더라!”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들고 있던 나무 막대로 내 등을 내려쳤다. 엎어지면서 기억도 사라졌다. 언제나 정신이 들면 통증이 느껴 졌지만 이번엔 충격에 비해 통증이 덜 했다. 바로 일어나면 안될 것 같아 엎드려 있는데 한 친구가 말했다.

  “야! 너무 세게 내려 친거 아냐? 그러다 진짜 일 나면 어떡해?”

  “일은 무슨, 이정도로 안죽어! 병신은 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뭐 괜찮아. 우린 미자(미성년자)잖아. 반성문 쓰고, 좀 피곤해질뿐 문제없어!”

 꿈틀 되며 일어나는 나를 보며 말했다.

  “봐, 멀쩡하잖아.”

 8명이 몰려 다니면서 자기들이 뭐라도 되는 것 마냥 하고 싶은대로 살고 있는 일진들을 보며 처음엔 불쌍했다. 부모 잘못 만나서, 아직은 성숙하지 못해서 이런 행동을 하는줄 알았다. 하지만 정말 불쌍한건 나 였다. 이런 불쌍한 애들 기분에 늘 밟히는건 나니까. 이럴땐 적당히 맞다 기절한 듯 몸에 힘을 빼고 누워 있으면 상황은 빨리 종료 되었다. 오늘은 미동도 없이 뻗어 있는 나의 리액션에 조금은 놀랬는지 일진들은 그냥 돌아갔다. 몸에 상처가 나고. 온몸이 욱신 거려도 뼈는 멀쩡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일진들은 내 앞에 나타났다. 문득 그런생각이 들었다. 맞아서 죽는다면 다행이지만. 잘못 맞아서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된다면? 그건 생각할수 없는 비극이란 생각에 더 이상 일진들에게 당하고만 있을수 없었다. 비장한 표정으로 힘주어 말했다.

  “때릴만큼 때렸으면 이제 그만 하지. 이젠 내가 너희들 죽여 버릴수도 있으니까! 죽고 싶으면 꺼져!”

 젠장! 말이 잘못 나왔다. 일진들은 재밌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죽고 싶으면 꺼지라고? 죽기 싫은데? 그럼 여기 있어도 되냐? 어제 머리를 맞은것도 아닌데 이게 돌았나!”

 순간 나는 머리를 피하면서 옆으로 비켜 섰다. ‘돌았나?’ 다음엔 언제나 손이 날라 오니까. 반사적으로 몸을 피할수 있었다. 허공에 손짓을 한 일진 아이는 무서운 표정으로 내 어깨를 잡아 끌며 따라 오라고 말했다.

  “놔! 내 발로 갈테니까.”

 일진의 손을 뿌리치며 강하게 나가는 내 모습에 조금 놀란 눈치였지만 재밌다는 듯 화장실로 들어 갔다. 화장실에 있던 아이들이 모두 자리를 피하고, 나와 일진들만 남았다. 나를 구석으로 몰아 넣으며 말했다.

  “하도 맞아서 벌써 치매가 온거야? 우리가 누군지 몰라? 내가 아까 똥을 사서 기분이 좋으니까, 오늘은 용서 해줄게. 니가 내 똥을 먹는다면!”

 일진들은 나를 변기통 바닥으로 끌고가 무릎을 꿇게 했다. 일진들로 둘러 싸여 좁은 화장실을 벗어 날수는 없을 것 같았다. 빨리 똥을 먹으라며 발로 밟아되자 나는 손으로 똥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앞에 있는 아이 입안에 손을 집어 넣었다. 손에 묻은 똥으로 일진들 얼굴에 비벼대자 모두 더러워 비명을 지르는 사이 나는 일진들이 들고 있던 방망이를 뺏었다.

  “내가 분명 경고 했지. 건들지 말라고! 니들만 촉법인줄 아니? 나도 촉법이거든. 난 부모도 없고. 꿈도 없고. 니들 죽여도 난 정당방위야! 시작은 니들이 먼저 했고, 난 살기 위해 니들을 죽여야만 하니까!”

 일진들이 서 있는 자세를 보며 어디를 쳐야 할지 계산을 하다 적당히 방망이를 휘둘렀다. 방망이에 맞은 아이들이 화장실 바닥에 쓰러졌다.

 생각 같아선 마구 휘두르고 싶었지만 크게 다친다면 일도 커질 것 같아 힘 조절 하느라 힘들었다. 그리고 애꿎은 화장실 문을 세게 내려치며 쓰러져 있는 일진들을 향해 말했다.

  “다음에 그냥 칼로 죽여 버릴꺼야! 니들한테 맞아서 병신 되느니 니들 죽이고 감옥 가는게 더 나을 테니까!”

 다음날, 나에게 맞은 아이가 깁스를 하고 나타나 억울한 듯 가만 두지 않겠다며 협박을 하자 나는 조용히 녹음기를 들려 주며 말했다.

  “내가 했다는 증거 있어? 사람들이 니들 말 들어 줄 것 같애? 거기다 이걸 들으면 과연 누구 말을 믿어 줄까? 내가 그랬다 쳐도 난 정당방위라니까!”

 그날이후 일진들은 나를 ‘미친년’이라 부르며 상대하지 않았다.

 

  중3이 되었다. 은혜랑 또 같은 반이 되었다. 늘 그랬듯 외면 했는데, 점심시간에 은혜가 다가와 앉으며 말했다.

  “나랑 같이 점심 먹자!”

 호의로 다가왔지만 불편한 얼굴로 대답했다.

  “우리가 밥 먹을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불편해. 혼자 먹을래!”

  “그럼 혼자 먹어. 난 니 앞에서 먹을 테니까!”

  “뭐하는 거야? 무슨 속셈이야? 괴롭히는 방법도 가지가지구나!”

 한참을 말없이 밥을 먹고, 도시락 뚜껑을 닫으려고 할 때 은혜가 말했다.

  “미안해. 좀 뻔뻔한거 같은데. 나랑 친구하자!”

  “친구? 나 그런거 필요 없는데. 나 책봐야 해……. 가줘!”

  “그럼 같이 책 봐. 나도 옆에서 책 볼게.”

  “왜 이래? 친구하자고 하는 이유가 뭔데? 목적이 뭐냐고?”

  “친구 하자는데 이유가 어딨어? 목적이 있어야 해?”

  “응. 넌 목적이 있어야 친구 하는 애잖아. 뭘 원하는지 말해. 그럼 친구는 못해도 들어는 줄게.”

  “이유를 되자면 미안하니까. 목적을 말하라면 너랑 친해지고 싶어서. 이젠 너랑 나 같은 처지 아냐? 부모 없는 고아끼리 잘해보자는 데 문제있어? 근데 왜 지금 이냐고? 지금 내가 철이 들었나 보지!”

  “다른 친구를 사귀는건 어때? 난 혼자가 좋아.”

  “지갑 돌려 줘서 고마웠어.”

  “오해하지마. 니 지갑……. 우연히 주웠어. 그때 돌려 주고 싶었는데……. 니가 날 도둑년이라 확신 할까봐 돌려주지 못했어.”

 도둑이 제발 저리 듯 묻지도 않은 대답을 더듬 거리며 말하자 은혜는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지갑을 보면서 아빠가 곁에 있다는 생각에 조금 덜 외로웠다며. 지난 일은 다 잊고 싶다고 말했다. 은혜는 진심으로 내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 손을 잡았다.

 은혜는 이모랑 함께 살고 있었다. 성인이 될 때까지 이모 집에서 살아야 하는 현실이 감옥이라 말하면서 굶기거나 때리진 않지만 엄마의 재산을 이모가 쓰기 위해 볼모로 잡혀 있는 기분이라며 한탄 하며 말했다.

  “내가 애도 아니고 돈만 있으면 살지. 보호자 그딴게 왜 필요 한건데!”

  “그래도 곁에 어른이 있으면 좋잖아. 그래도 핏줄인데!”

  “엄마랑 핏줄이지. 나랑 무슨 정이 있다고……. 그 피 조금 섞였다고 남보다 못한 사람을 친척이라 부르며 같이 살아야 해?”

 은혜는 ‘이모’얘기만 나오면 흥분을 했고. 나와 단둘이 살고 싶다는 제안을 수없이 했다.

  “나, 이모 집에서 나오면 나랑 같이 살자. 너도 스물살 되면 독립하고 싶어 했잖아? 나 돈 많은거 알지? 너 하나쯤 내가 먹여 살릴 수 있어!”

  “니가 뭔데 날 먹여 살려? 돈 자랑하는 거야? 나는 스물살이 되면 더 이상 누군가에게 빚지고 살고 싶지 않아. 내 힘으로 살고 싶어.”

 은혜의 학교 생활은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공부만 했다. 그리고 같이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자고 약속 했지만 막판에 여상을 가겠다고 말했다.

  “미쳤어? 성적이 안되는 것도 아니고. 왜 여상을 가겠다는 거야? 최고 고등학교에 갈수 있잖아. 여상 가려고 여태 공부 한거 아니잖아?”

  “공부는 시간 떼우려고 한 것 뿐이야. 난 돈 벌어야 하니까. 여상을 가는게 맞는 것 같애. 빨리 취직해서 벗어 나고 싶어!”

  “나도 돈 벌려고 공부 하는거야. 그러니까 나랑 같이 최고 고등학교 가자! 대체 뭐가 문젠데?”

  “돈이 문제지! 공부는 아무나 해? 그냥 해? 돈이 있어야 하는거 아냐? 최고 고등학교 가면 대학 등록금이 뚝 떨어져? 공부 잘한다고 누가 일 시켜줘? 기술이 있어야 취직하지. 넌 꿈 꾸며 공부할수 있지만 나는 꿈 꾸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고!”

 은혜는 말문이 막히자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내. 내가 빌려주면 되잖아. 그깟 등록금 얼마나 된다고!”

  “그놈의 돈자랑은……. 빌려 주는건 고마운데 난 갚지 못할 거야. 갚지 못할 돈은 빌리는게 아니라고 우리 아빠가 말했어. 무슨일을 하건 내가 감당할수 있는 선에서 하라고.”

  “너 힘으로 사는것도 좋지만. 힘이 부족하면 빌리는것도 방법이라는걸 왜 몰라?”

  “솔직히 니가 돈지랄 할때마다 내 기분이 얼마나 처량한지 아니? 얻어 먹는것도 하루 이틀이지.”

  “친구끼리 나눌수 있는 거잖아. 많이 가진 사람이 나누는거지. 난 너에게 바라는건 마음 뿐이야. 니 마음에 난 위로를 받으니까.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냥 우리 함께 하는 시간이 즐거우면 되는거 아냐?”

  “그래. 너는 즐겁겠지, 너랑 비교 당하는 내 기분은 더럽거든. 너랑 나 부모가 없는건 같지만 넌 친척이라도……. 돈이라도 있지만 나는 지구에 떨어진 별똥별 같은 존재라고! 아무것도 없다고!”

 눈물이 입을 막았다. 열등감에 꼬였다는걸 알지만 어쩔수 없었다. 은혜는 황당하다는 듯 ‘너 아직도 초딩이니?’라고 묻고 싶은 얼굴이었지만 말을 아끼며 말했다.

  “그래. 니 인생이니까……. 그래도 연락은 자주 할거지?”

 

 나의 선택을 후회한건 고등학교에 입학해 1주일이 지났을 때였다. 교복을 입고 지나가다 ‘꼴통학교’라는 말을 들었다. 흘려 들었지만 자주 듣다 보니. 아니 학교를 다니면서 알게 되었다. 왜 꼴통이라 하는지……. 매일 1시간 지옥 버스를 타고 산을 오르듯 언덕을 오르면 철문으로 된 교문 앞에 서면 나의 인권과 자유는 박탈 당하고. 복장검사와 가방검사를 해야만 교실로 들어 갈수 있었다.

 수업 종이 울리면 과목별로 선생님이 들어오시지만 수업은 하지 않았다. 모든 과목이 책만 읽다 끝나고, 칠판에 필기만 하다 수업이 끝났다. 체육은 운동장 다섯바퀴를 뛰고, 공을 갖고 놀면 수업이 끝났다. 날씨가 더우면 덥다고 그늘에서 쉬고, 비오면 교실에서 쉬었다. 전산 선생님은 더 가관이었다. 선생님도 잘 모르는지, 참고서 그대로 하나. 하나 따라 하다 원하는 값이 안나오면 학생에게 되물었다. 자격증이 있는 친구가 알려주다 결국 수업은 자격증이 있는 친구가 하고 있었다. 이런 학교에서 내가 뭘 배울수 있을까? 이럴줄 알았으면 은혜랑 같이 ‘최고 고등학교’에 가서 컴퓨터 학원을 따로 다닐걸 그랬다. 나의 바램은 조용히 학교 생활을 하는 거였지만 일진들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중학교 때와 달리 더 무서워진 아이들. 인정사정 없이 맞았다. 그러다 나도 다 죽여 버릴 듯 무섭게 일진들에게 덤벼 든 이후로 나를 건드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조용히 학교 생활을 하던 어느날, 일진들이 소희를 괴롭히는걸 보게 되었다. 한두번은 모른척 했지만 소희에게 자꾸 시선이 갔다. 소희를 보면 왠지 나를 보는 듯 했다. 표정 없는 얼굴로 시선은 늘 바닥을 보며 걸었고. 축 처진 어깨와 굳은 표정으로 일진들의 괴롭힘에 대꾸 없이 묵묵히 다 받아 주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오늘은 일진중 한명이 소희 머리카락을 가위로 싹둑 잘랐다. 반 아이들만 놀라 비명을 지를뿐, 소희는 반응하지 않으려 애쓰는 얼굴 이었다. 일진 6명이서 소희를 화장실로 끌고 나갔다. 일진들은 화장실 벽으로 소희를 몰아 넣고는 한쪽 손에는 가위를 들고 말했다.

  “야! 내가 어제 나오라고 했지? 왜 안나와? 죽고 싶어? 돈 있어? 없으면 남자라도 만나라고 했잖아. 약속 다 잡아 놨는데 안나오면 어떡하냐?”

 일진들이 소희를 때리려고 하자 소리를 지르며 다가갔다.

  “그만해!”

  “넌 뭐야? 친개는 좀 빠져! 니가 짖을때가 아냐! 왜, 너도 남자 필요해?”

 나는 재빨리 일진 손에 들린 가위를 뺏어 굵고 괴상한 소리를 질렀다.

 ‘으아와악’ 소리를 지르며 목도 돌려보고 어깨도 돌리면서 일진들을 향해 말했다.

  “그래. 나 친개다! 짖기만 하겠냐? 오늘 다 물어 버릴테니까 기회 줄 때 비켜라!”

  “뭐?”

  “좋은말 할 때 내 친구 소희 건들지 말고 꺼지라고!”

  “야, 그냥 가자. 미친년은 상대 하지 마. 쟤 완전 똘아이야!”

 일진들은 소희를 지켜 보겠다는 협박을 하고 나갔다. 소희를 보며 괜찮냐고 물어 보고 싶었지만 모른척 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교실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소희가 내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고. 고마워. 친. 친구라고 해줘서. 미. 미안한데 부탁하나만 해도 될까?”

 소희는 하굣길에 같이 가 달라고 말했다. 분명 일진들이 기다리고 있을거란 말에 알겠다고 말했다. 아니다 다를까. 교문앞에 일진들이 소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희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내 등뒤로 바짝 붙었다. 그러자 일진 무리중 한명이 말했다.

  “우린 소희한테 볼 일 있는데, 넌 좀 빠져 줄래?”

  “소희는 니들한테 볼 일 없는 것 같은데. 니들이 좀 빠져 줄래?”

 일진중 한명이 또 폭력을 휘둘렀다. 이 타임에 손이 올라 오는건 본능적으로 아는지 저절로 몸이 피해졌다.

  “아놔, 또 스트레칭 하게 만드네!”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방어자세를 취하자 일진중 한명이 주변을 살피다 어떻게 할수 없다는 듯 그냥 가버렸다. 소희가 고맙다고 말했다.

  “고맙긴, 친구끼리…….”

  “친구 라는말 참 좋다. 근데 우리가 언제부터 친구였어?”

  “같은 반이잖아. 친구 싫으면 동창이라고 할까?”

  “아니. 나, 정말 니 친구가 되고 싶어서.”

  “친구 하면 되지. 자격증 따야 하는것도 아닌데.”

 소희는 피식 웃으며 내 옆에 딱 붙어 있을거라고 말했다.

  “너 질척 거리는 스타일 이었어? 벌써부터 피곤해지는데. 그래도 좋다. 친구! 근데 화장실에서 일진 애들이 했던 말이 뭐야?”

  “아. 그거 원조교제……. 무서운 애들이야!”

  “원조 교제? 그게 뭔데?”

  “돈 받고 남자랑 하는거. 오늘 너 아니었으면 걔네들 한테 끌려가서 무슨 일을 당했을지 몰라. 돈이 없으면 몸이라도 팔라며…….”

 돈을 받고 교제 하는 애들이 있는건 알지만. 원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여자가 여자한테 그런짓을 할 수가 있는지. 흥분을 하며 말했다.

  “이건 괴롭힘을 넘어 범죄잖아. 경찰에 신고 해야지.”

  “신고하면 뭐가 달라져? 기껏해야 화장실 청소에 사회봉사 수준일걸. 그럼 걔들이 날 살려 줄 것 같아?”

 소희는 더 큰 보복이 무서워 신고도 못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똑같이 갚아줘야 공평하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나라 법은 가해자에겐 관대하고 피해자에겐 왜 바보 같이 당해서 일처리 하게 만드냐고 짜증을 내는 것 같다며 흥분한 목소리로 진지하게 말하자 소희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근데, 일진들이 왜 널 친개라고 불러? 넌 쟤들이 무섭지 않니?”

  “무섭지. 무서우니까 괴상한 소리를 지르는거야! 이상하게 소리를 지르면 조금은 용기가 생기거든. 지나가는 누군가가 봐줄것만 같고……. 맞고만 있을수 없어서 누구 한명이라도 물고 늘어 졌더니 그때부터 친개라 부르더라. 미친개……. 온몸으로 발악하다 보니 때리는 맛도 없고, 피곤한지 건들지 않더라고. 너도 미친년이 되어 보는건 어때?”

  “내가 미친년이 될수 있을까?”

  “그럼. 사람은 누구나 가슴속에 미친년 하나씩은 품고 살아. 남들 시선 때문에 잘 나오지 않지만. 미친년을 이길수 있는 사람은 없을걸!”

  “너처럼 남들 시선 안쓰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그냥 회피하는 거지 뭐. 솔직히 너를 언제까지 도와 줄수 있을지 몰라. 내가 없을땐 너도 싸워야 될거 같은데. 솔직히 맞아 죽으면 다행이지만 병신되면 끔찍하지 않아? 난 그래서 내가 죽여 버리는게 더 낫겠더라고. 진심으로. 쟤네들 우르르 몰려 다니면서 자기들이 뭐라도 되는 것 마냥 떠들어 되지만 별거 없어. 진짜 무서운 애들은 따로 있어.”

  “누군데?”

  “나.”

  “뭐? 너? 니가 왜 무서워?”

  “가진게 없으니까. 잃을 것도 없고. 어떻게 살든 오늘만 버티는 사람에겐 내일이 무섭지 않거든.”

 

 젠장. 교문앞에 서고 보니 명찰이 보이지 않았다. 뛰어 오느라 떨어진 모양이다. 주임 선생님은 복장 불량과 3분 지각이라며 지휘봉으로 머리를 툭툭 때리며 말했다.

  “정신 상태가 빠졌지? 시간 개념 없지? 전쟁터에 나온 학생이 명찰도 안들고 와? 등교 할 자세가 안되어 있는 머리로 무슨 공부를 하겠다고……. 니네 엄마는 뭐하는 사람인데, 애가 늦잠 자는데 깨우지도 않아?”

 오늘 처음 지각을 했다. 열심히 뛰었지만 3분 늦었다는 이유로 이런 모욕적인 말을 들어야 하는건가? 그것도 모자라 오리걸음으로 운동장 세바퀴를 돌았다. 내 뱉지 못할 욕을 속으로 삼키며 운동장을 돌면서 생각 했다. 이럴줄 알았다면 나도 다른 아이들 처럼 밖에서 기다렸다가 1교시 시작하기 전에 들어 오는건데. 오리걸음에 대한 분풀이로 교육청 홈페이지에 장문의 글을 남겼다.

 

 제목 : 학교라는 감옥

  매일 지옥철을 타고 들어선 교문 앞에는 학생주임 선생이 계신다.

 가방. 두발. 복장검사를 마친 아이들은 교실에 들어가고. 하나라도 걸린 아이들은 온갖 모욕적인 말과 벌을 받아야만 교실에 들어 갈수 있다.

 수업 종이 울리고 시간표대로 선생이 들어와 수업을 하지만

 수업을 하는 선생도 공부 하는 학생도 없다.

 학생은 딴 짓을 하는데

 선생은 혼자 수업을 해 보지만 말을 제대로 못해 듣는 귀가 피곤하다.

 말대신 학생들에게 필기만 시키는 선생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컴퓨터 수업은 더 가관이다.

 책 보고 따라 하는것도 못해서 자격증이 있는 아이에게 수업을 맡긴다.

 어떻게 선생이 되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런 곳에 공부를 하겠다고 온 내 잘못인걸까?

 이럴거면 집에서 책 읽고, 필사하고, 컴퓨터 학원을 다니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지만, 그 잘난 졸업장을 받기 위해 참을 수밖에.

 능력 없는 선생이 잘하는 일은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본인 기분에 따라 일관성 없이 불량한 학생을 잡아 내

 개. 돼지 잡듯이 발로 차고 때린다.

 이건 훈육이 아니라 폭행이다.

 그렇게 맞은 아이들은 힘없는 아이들을 괴롭히면서

 아이들은 학교 폭력에 멍들어 간다.

 피해 학생이 선생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선생은 최선을 다해 말한다.

 “친구랑 사이좋게 지내!”

 우리 학교엔 선생 아닌 변태도 있다.

  학생의 복장이 불량하다며 은근슬쩍 학생의 몸을 만진다.

 머릿결을 스쳐 목덜미를 만지거나

 귓볼을 잡아 당기거나, 팔뚝 안쪽 살을 꼬집는다.

 치마가 짧다며 허벅지를 손으로 쿡쿡 찌르기도 하고.

 오리걸음으로 운동장을 돌게 한다.

 짧은 교복 치마로 오리걸음을 시키면서 선생은 무슨 생각을 할까?

  여긴 학교가 아니라 붕어빵 틀 이다.

 선생은 학생들을 붕어빵 틀에 넣어 관리. 감독. 지도하려 하고

 말 잘듣는 붕어는 예쁜 붕어빵이 되지만

 그렇지 않은 붕어는 처참하게 부숴진다.

 우린 붕어가 아닌데.

 나는 학교를 다니고 싶다.

 그곳엔 실력과 인성을 갖춘 선생님이 계셨으면 한다.

 선생이 아닌 선생님이 계시는 학교에서

 감옥 아닌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어려운 일일까?

 

 이틀후, 학교는 발칵 뒤집어 졌다. 교장은 반 마다 들어가서는 글 쓴 범인이 누군지 당장 나오라며. 화를 가라 앉히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어떤 또라이가 글 썼어? 그렇게 공부가 하고 싶었으면 인문계를 가야지. 왜 여기와서 난리야? 자기가 공부 못하는걸 왜 선생 탓을 해? 니들이 학생의 본분만 잘 지키면 복장검사를 왜 해? PC방에 갔으면 게임이나 할것이지. 왜 교육청에다 헛 소리야? 대체 어떤 년이야! 당장 나오지 못해!”

 그렇게 교장의 화풀이가 끝나자 학생 주임 선생님도 들어와 잡히면 죽여 버리겠다는 표정으로 분노를 표출하다 유난히 짧은 치마를 입은 다희에게 다가가 물었다.

  “야! 너지?”

  “저 아닌데요!”

  “아니긴 뭐가 아냐! 딱 봐도 너구만!”

 선생은 다희를 발로 차 버렸다. 넘어진 다희를 보며 더 때릴수도 없고. 분이 안 풀리는 듯 책상을 한번 더 걷어 차 버린 후에야 나가 버렸다.

 IP추적을 했다는 생각에 나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다희에겐 미안 했지만 다희에게 맞은적이 있어서 이렇게 퉁 치는걸로 혼자 생각 했다.

 

 남들이 말하는 고3병은 여기 없었다. 시험문제와 답을 알려줘도 아이들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꼴통학교’ 였다. 전교 1등은 언제나 나였다. ‘전교1등 미친년’ 그게 내 별명이었다. 이렇게 ‘미친년’으로 졸업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이번 학교 축제땐 나도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축제는 나와 상관없는 그들만의 축제였지만 이번엔 나도 즐기고 싶어 오디션을 보고 축제 당일, 가창력을 뽐낼수 있는 발라드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사람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처음 받아보는 시선과 박수에 당황 스러웠다. 가창력 상까지 받게 되자 나를 아는 아이들의 수군거림이 들리는 듯 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다음날, 미라가 내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

  “너, 나 좀 보자!”

 일진 아이들과 우르르 몰려 오지 않고, 혼자와서 따로 보자는 말에 겁이 났지만 태연한척 미라를 따라 화장실로 갔다.

  “야! 너 노래 좀 하드라! 근데 미친개는 나대지 말았어야지! 니가 감히 내 상을 가로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미라의 손바닥이 내 머리에 강하게 꽂혔다. 미라는 매년 가창력 상을 받아왔다. 그런데 올해는 나 때문에 망쳤다며 화풀이를 하려는 미라를 보며 말했다.

  “꼴에 가수가 되는게 꿈인가봐?”

  “뭐?”

  “내 꿈은 가수가 아닌데, 넌 가수가 되고 싶은가봐? 일진 주제에 꿈도 야무지네. 가수 뺨치는 실력을 가졌으면 뭐해? 인성이 바닥인데. 니가 일진이라는걸 알고도 좋아해줄 팬이 있을까?”

 미라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손이 올라 오자, 그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꿈이 있으면 방황하지 말고 착하게 살아. 책 잡힐 과거 만들지 말고!”

 한방 먹인 기분이 들었지만 이내 한방 맞은 기분이 들었다. 나에게 춤과 노래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살고자 하는 몸부림에 불과 했다. 현실을 잊기 위해서 책을 펼쳤고. 미칠 것 같아서 춤을 추고. 답답해서 노래를 부른 것 뿐, 꿈은 아니었다.

 

  졸업을 앞둔 어느날, 소희가 그림을 선물 했다. 두 소녀가 하트를 나눠 가진채 걸어 가는 그림을 소희가 그렸다고 말했다.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그림을 보며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정도면 미대를 가야 하는거 아니야?”

  “미대는 무슨…….”

 소희는 화가가 꿈이었지만 긴 터널을 걸어 가야 하는 꿈이라 시작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터널 끝에 화가가 된다고 해도 밥벌이도 못할텐데. 꿈은 잘때나 꾸고, 현실을 봐야 된다는 말에 물었다.

  “근데, 왜 하필 간호과야?”

  “기술을 배워 취직 하려고 여상 왔지만 학교에서 배운건 없고, 공장에서 기계처럼 일하고 싶지도 않고, 엄마가 취직이 보장되는 간호과에 간다면 등록금을 준다고 해서……. 공순이 보단 간호사가 낫잖아!”

 대학을 갈수 있다면, 엄마랑 싸워서라도 가고 싶은 과를 갔으면 좋겠다는 말에 소희는 굳이 싸우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매사에 우유부단하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지 않는 소희라는걸 알지만 이건 아니라고 말했다.

  “다른건 몰라도, 내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은 내가 하는거야! 엄마가 니 인생을 사는것도 아니고. 맞지 않는 일을 하려면 너도 버티기 힘들거야!”

 소희는 체념한 듯 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미 다 끝난 얘기야. 그림은 그냥 그리면 되지, 근데 넌 왜 대학 안가? 전교 1등이 대학 안가면 누가 가?”

  “꼴통 학교에서 전교 1등이 뭐 대수야? 대학 갈 생각이었다면 이딴 학교에 오지도 않았어. 난 등록금 낼 돈 도 없고, 집을 나가는게 내 목표라서. 일단 집 나가서 돈부터 벌려고!”

 씁쓸한 내 표정에 소희도 진지하게 말했다.

  “‘대출’은 도서관에서만 하지 말고, 학자금 대출을 이용하는건 어때? 실은 나도 대출로 가는거야! 대학가서 알바해서 갚으면 되지. 너야 말로 니 자신에게 솔직해져봐. 너도 대학 가고 싶잖아. 너도 잘하는게 있잖아. 그런데 왜 넌 꿈조차 꾸지 않는건데?”

  “꿈이 없으니까. 잘하는것도 없고. 잘 때 악몽이나 안꾸면 다행이게?”

 웃으며 말을 돌렸지만. 이내 씁쓸한 미소로 말을 이었다.

  “고아한테 누가 돈을 빌려 주겠어? 내 주제에 대학은 무슨……. 난 그냥 스물살 성인이 되어 자유의 몸이 되는 것 만으로도 만족해. 학교에서. 집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으니까.”

 소희는 나의 글 쓰는 재능이 아깝다는 말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글 쓰는 재주는 무슨, 그냥 끄적이는 거지.”

  “에이. 그냥 끄적이는데 글짓기 상은 다 휩쓸어 가냐? 무엇보다 니가 글 쓸 때 행복해 보여. 작가가 되어 보는건 어때?”

  “작가는 무슨…….”

 어렸을 때부터 글짓기 상은 늘 받았지만 그걸 재능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글 쓰는 친구들이 없으니 그나마 좀 길게 많이 쓴 내가 받는거라 생각 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말 할 일이 없으니. 글이라도 쓰는 거였다.

 소희는 나의 재능을 안타까워 했지만 나는 소희의 재능을 안타까워 했다.

 이집을 나갈 타이밍을 보고 있는데, 아빠가 대학은 어디 갈거냐고 물었다.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당황 스러웠다. 준비물 값도 주지 않던 짠돌이 아빠가 대학에 보내줄거라곤 생각 못했다. 대학에 가지 않겠다는 말에 아빠가 말했다.

  “전교 1등이 대학을 왜 안가? 남들 다 가는 대학, 너 혼자 안가면 어떻게 살려고 그래? 대학 졸업장 없으면 사람 취급도 못 받아!”

 아빠는 못배운 한이 얼마나 큰지 아냐며. 대학은 무조건 가야 된다며 역정을 내셨다. 어차피 난 이집을 나갈거라. 굳이 싸울 필요 없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은혜는 서울대 법학과에 합격 했다. 내 소식을 묻는 은혜에겐 무작정 서울에 갈 계획이라고 말 못하고, 울산에 있는 공장에 취직 되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은혜를 자주 만나면 좋겠지만 그냥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와 다른 은혜가 부담스러워 피하려는 나와 달리 은혜는 졸업 선물로 휴대폰을 선물 해 주면서 자주 연락하자고 말했다. 부담스러워 거절하고 싶었지만 나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라 선물을 받으면서 말했다.

  “너 대학가면 공부하기도 바쁠텐데……. 무슨 연락을 얼마나 한다고, 휴대폰 요금은 내가 매달 입금 해줄게. 고마워!”

 

  아빠가 대학 등록금 250만 원을 주면서 말했다.

  “대학가서 열심히 공부 해야 된다. 장학금으로 학교 다니면 더 좋고!”

 ‘장학금’이라는 말에 나의 무지함에 탄식했다. 장학금을 받고 학교를 다닐수 있다는걸 알았다면 은혜랑 같은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공부만 했을텐데. 그랬다면 나의 학창시절은 학교폭력으로 얼룩지지 않았을텐데. 지금이라도 대학에 가고 싶은 마음이 일었지만 아무렇게 적어낸 대학에 진학하고 싶진 않았다. 그동안 전단지 알바로 번 돈이랑 등록금을 합쳐 그동안 감사 했다는 인사와 함께 나를 찾지 말아 달라는 메모를 남기고 집을 떠났다. ‘가출이라 쓰고, 독립이라 읽는다.’ 후련함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이젠 정말 자유다! 출소한 기분이 이런걸까. 살면서 죄는 짓지 않기로 다짐 했다. 자유가 없는 감옥은 지옥일 테니까. 서울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지난 시간들이 풍경과 함께 흩어졌다. 잠시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벌써 서울 터미널에 도착했다. 비몽사몽으로 일어나 버스에서 내렸다. 낯선 도시 풍경에 공기마저 적응되지 않는 밤. 어디를 가야 할지 한참을 길 잃은 아이처럼 주변을 두리번 거리자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다가와 물었다.

  “학생 집 나왔어? 어디 갈데는 있어?”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지만 일단 모르는 사람은 피하고 볼 일이었다. 돈이 든 가방을 움켜 쥐고 도망치듯 지나가는 택시를 타고 동대문 쇼핑몰 앞으로 가 달라고 말했다. 아는곳이 거기 뿐이었다. 깜깜한 밤이었지만 쇼핑몰 불빛이 밝아 조금은 덜 외로웠다. 배가 고파 눈에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 갔다.

  “어서오세요. 혼자 오셨어요?”

  “네.”

 혼자라는 말에 아줌마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물었다.

  “뭐 드릴까?”

 쳐다보는 눈빛, 존대도 아니고 반말도 아닌 기분 나쁜 말투에 투명하게 된장째개를 주문하자 무시하는 말투로 대답했다.

  “그건 점심메뉴고, 지금은 고기 밖에 안되는데.”

 ‘돈 없으면 빨리 나가!’라는 말로 들렸다.

 “그럼, 삼겹살 주세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줌마는 주방을 보며 외쳤다.

  “여기, 삼겹 3인분!”

  “저. 저기요. 삼겹살 1인분 인데요…….”

  “삼겹살 1인분이 어딨어? 기본 3인분이지. 추가는 1인분 되고……. 어떻게? 줘? 말어?”

  “주. 주세요.”

 왜 기본이 3인분인지 이해할수 없지만 따져 묻진 못했다. 내 돈 주고 먹으면서 왜 위축되는 건지. 이내 반찬과 함께 삽겹살 세줄이 불판에 올려졌다. 이게 3인분일까? 생각보다 많지 않은 양이었다. 삼겹살과 함께 된장찌개에 밥 한그릇을 비워내자 포만감에 기분이 좋아졌다. 배가 부르자 피곤이 몰려왔다. 가까운 찜질방을 찾다가 반짝이는 간판이 이끄는 모텔 안으로 들어갔다. 첫 독립을 노숙하듯 바닥에서 자고 싶지 않았다. 건물은 오래 되었지만 방 안은 고양이 캐릭터로 꾸며져 있는 소녀스런 방이 마음에 들었다. 욕실에서 반신욕을 하고 나와 침대에 누웠다. 티브를 보면서 행복을 느꼈다. 금방이라도 잠이 들것 같았지만 이 행복을 좀 더 누리고 싶었다. 5만 원이나 주고 들어온 방인데 본전은 뽑아야지. 컴퓨터를 하고. 영화를 보다가 새벽 늦게 잠이 들었다. 다음날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다. 퇴실 시간이라 나가라는 성화에 욕조에서 한번 더 씻어 보지도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지금 시간은 오후 3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근처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고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던 미용실부터 갔다. 곱슬 거리는 머리카락을 폈을 뿐인데 촌스런 얼굴이 사라졌다. 그리고 시장에서 내 몸에 맞는 옷을 몇 벌 사고, 갖고 있던 옷은 모두 버렸다. 오늘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거리를 걸었다. 기분이 좋아서 나도 모르게 빙글빙글 돌면서 뛰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 봤지만 웃음이 나왔다. 지나가는 고등학생 한 명이 대놓고 말했다.

  “쟤 뭐야? 미쳤나봐…….”

 나는 교복입은 고등학생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나? 쟤 아니고 너보다 언니 같은데. 그리고 미친거 아니고 기분이 좋은거야! 살면서 너도 이런 기분 느껴 볼 날이 있을거야. 행운을 빌어!”

  “뭐래는 거야? 진짜 미쳤나봐. 가자!”

 집을 구하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이대역에서 내렸다. 대학가 근처에 살고 싶었다. 부동산 안으로 들어 가자 할아버지 두 분이서 바둑을 두다 나를 위아래로 스캔하듯 보더니 물었다.

  “방 구하려고?”

  “네.”

  “얼마나 있는데?”

  “삼백만 원 정도 있는데……. 제일 싼 방으로 보여주세요.”

 할아버지는 그걸론 텍도 없다며 눈길도 주지 않고 바둑을 계속 두면서 보증금 오백은 있어야 된다며 내가 가진 돈으론 고시원이나. 딴데 가서 알아보라는 말에 고개를 숙이고 나왔다.

 오백이라……. 한숨이 절로 나왔다. 고시원은 어디서 알아 봐야 하는걸까? 그때 20대 초반의 젊은 남자가 말을 걸었다.

  “저기요?”

  “네?”

  “혹시, 방 구하세요?”

  “네. 그런데요?”

  “제가 좋은방 하나 있는데 한번 보실래요?”

  “아뇨……. 전 고시원을……. 아니, 괜찮아요.”

 모르는 사람에게 굳이 고시원 얘기는 할 필요 없을 것 같아 발길을 돌리는데 남자는 보증금 없이 월세를 일시불로 내면 옥탑방에 살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 해졌다. 이내 의심스러웠지만 남자는 일단 방부터 보고 생각해보라는 말에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에 남자를 따라 갔다. 남자를 따라 가면서도 의심의 눈초리는 풀지 않았다. 정말 그런 방이 있을까? 사기꾼은 아닐까? 방 보여 준다는 핑계로 납치 하려는건 아닐까? 오만 상상을 하며 걷고 있는데 전봇대 앞에 설치되어 있는 CCTV를 지나 빨간 벽돌로 된 오래된 집 앞에 섰다. 남자는 대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가 옆에 놓여진 작은 화분 밑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면서 말했다.

  “여기예요. 밤에 평상에 앉아서 밥이나 치맥 먹으면 고급 레스토랑 안부러워요.”

 평상을 물끄러미 보다 방 안으로 들어갔다.

  “빈 방이 아니네요.”

  “방 주인 나타나면 처분하고 가려구요. 필요하면 이거 그대로 다 써도 되구요.”

  “네?”

  “제가 유학을 가게 되서 이 짐들을 다 갖고 갈수가 없거든요.”

 방은 하나였지만 부엌과 분리되어 있는 구조가 마음에 들었다. 남자 방 치곤 쾌나 깔끔했다. 방도 마음에 들고 다 좋지만 보증금이 없다는 것이 의아해서 물었다.

  “그런데 왜 보증금이 없어요?”

  “보증금은 계약 기간 끝나면 집 주인한테 제가 받으면 되니까요, 아직 계약 기간이 남아서 방을 빼면 중개비를 부담해야 해서, 보증금이 급한것도 아니고. 유학갔다 돌아오면 제가 이 방을 계속 쓰고 싶어서 저 대신 월세만 내고 6개월만 사실 분을 구하고 있어요.”

 묘하게 설득 당했다. 월세 180만 원을 주면서 물었다.

  “그런데 영수증 같은건 없나요? 일종의 계약서 같은거요.”

  “무. 무슨 계약서요?

  “제가 옥탑방에서 6개월 산다는 계약서는 있어야 될 것 같아서요.”

 남자는 깔깔 웃으며 말했다.

  “정식 계약이 아닌데 그런게 있겠어요? 제가 돈 받고 나중에 무단침입으로 신고할까봐 그래요? 정 원하시면 하나 써 드릴께요.”

 남자는 책꽂이에서 연습장 하나를 찢어 뭔가를 적어 내게 보여줬다.

 

  -월세 계약서-

 나 김동수는 옥탑방을 오빛나 님에게 6개월 동안 임대해주며

 6개월 월세 180만 원을 일시불로 받았습니다.

 6개월 전까지 오빛나 님에게 방을 빼라고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어길시 월세 2배를 지불하겠습니다. 김동수 <싸인>

 

 별거 아닌 이 어설픈 종이 한 장에 마음이 놓였다. 방 안에 있는 침대와 책상. 주방도구도 당분간 사용할 생각이었다. 건축과 책과 남자가 사용하던 이불만 정리해서 밖에다 내놓고. 시장에서 핑크색 이불을 사 왔다.

 남의 방에 있는 것처럼 낯설었지만 내 물건들이 없어서라고 생각했다.

 세탁기가 화장실 안에 있어서 샤워가 불편 하지만 넓은 방이 마음에 들었다. 이만한 집을 구한건 내겐 행운이었다. 그동안 쓴 일기장은 판도라 상자에 고이 넣어두고 새로운 일기장을 펼쳤다.

 

 2002년 3월 15일,

 내 방이 생겼다. 목표가 생겼다. 계획이 생겼다.

 지금까지는 주어진 환경에 맞춰 살았던 나지만

 오늘부턴 내 생각대로 사는거다.

 내일부터 행복하기만 하는 거야!

 

 일기장을 덮고, 이력서를 쓰려고 하는데 고졸 학력을 쓰고 나니 더 이상 써 내려 갈수가 없었다. 한식 자격증을 여기에 쓰는게 맞는걸까. 글쓰기 라면 막힘없이 써 내려갔던 나였는데. 자기소개서는 한줄도 쓰지 못했다. 성장과정을 어떻게 써야 할까? 골통학교 졸업이 나의 현 주소였다. 자 소설이라도 멋지게 쓰고 싶지만 들통 났을 때 감당할 자신이 없기에 평범하게 썼더니 뻔하고도 별 볼일 없는 이력서가 완성 되었다.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한 스물살에게 경력이 있다는 게 이상하지.’ 이력서를 접어놓고 자리에 누웠다.

 내일을 생각해본적이 언제 였던가. 늘 눈물로 지새운 밤, 눈을 감을 때 마다 기도 했었다. 이대로 눈 뜨지 않기를……. 아침이 오지 않기를. 그런데 지금은 내일이 기다려졌다. 어떤 날들이 펼쳐질까. 설레임에 한참을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려 하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쿵쾅 문 두드리는 소리에 심장도 쿵쾅 댔다. 아빠가 벌써 날 찾은걸까? 그럴리 없다는 생각에 조심스레 누구냐고 물었다.

  “그건 내가 할말 이고, 당신 누구야? 누군데 남의 집에서 뭐하는 거야?”

 집을 잘못 찾아온 취객이라 생각 했다. 문을 열어 설명하려 하는데 남자는 여행용 가방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와 핑크색 이불을 보면서 할말을 잃은 표정으로 말했다.

  “남의 집에서 지금 뭐하는 거야?”

 황당하고 화난 표정으로 여긴 내 집이라고 당당하게 말하자 남자는 월세 계약서를 보여주며 자신의 집이라는걸 증명했다. 남자는 여기 어떻게 들어 왔냐고 물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사기 당한걸 인지 했지만 이대로 나갈순 없었다. 남자는 내 물건을 밖으로 내던지면서. 밖에 있던 이불과 건축과 책을 들고 들어오면서 말했다.

  “안나가고 뭐해? 경찰 부르기 전에 꺼져!”

 남자는 나를 문 밖으로 밀쳐 내고는 꽝. 문을 닫았다. 내 물건과 함께 바닥에 내팽겨진 나는 한참동안 주저앉아 있었다. 그리고 주섬주섬 물건들을 챙겨 옥상 한 구석에 모아두고. 중요한 물건만 챙겨 계단을 내려갔다. 어디를 가야 할지 멍하니 걷고 있는데 비가 보슬보슬 내리기 시작했다. 내 눈에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느낄순 없었다. 몸도 마음도 축축 해져 몸이 무거워 졌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주저 앉아 눕고 싶지만 내 발은 찜질방 간판을 보며 불빛을 따라 가고 있었다. 찜질복으로 대충 갈아 입고 구석 자리로 들어가 눈을 감았다. ‘내가 그럼 그렇지. 내 주제에 무슨 내일이 있다고. 내일이 안왔으면. 이대로 죽어 버렸으면…….’ 잠시 눈을 감은 것 같은데 여기저기서 웅성 거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누군가가 나를 흔들어 깨웠지만 눈이 떠지지 않았다.

  “이봐요? 학생? 괜찮아요? 정신 좀 차려봐요.”

 귀도 열려 있고. 생각이라는것도 하고 있는것 같은데. 내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몸은 젖어 있고, 들것에 실려 어디론가 가고 있다는것만 느껴질뿐. 정신을 차려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 손목에는 링거 바늘이 꽂혀 있었다. 정신이 들자 제일 먼저 돈이 든 가방을 확인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간호사가 다가와 이름과 보호자 연락처를 물었다. 말 못하는 사람처럼 대답을 하지 않자 간호사는 종이를 내밀었다.

 이름과 주민번호. 주소. 연락처를 묻는 종이에 고개를 돌려 누웠다. 간호사는 짜증을 내며 보호자를 찾았지만 나는 실언증 걸린 사람처럼 멍한 얼굴로 먼 산만 쳐다 보자 지친다는 듯 간호사는 가버렸다.

 인적사항을 말하면 집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망갈 기회를 엿보다 옆 침대에서 환자를 간호하는 모습에 시선이 멈췄다. 난 아파도 아프단 말 못하고 늘 혼자 아파 했었는데……. 지금도 많이 아프지만 병원은 커녕 길바닥에서도 쉴수 없었다. 간호사가 보이지 않는 틈에 재빨리 링거를 빼고 밖으로 나갔다. 무작정 경찰서 앞까지 왔지만 신고도 못했다. 내 이름으로 접수를 하게되면 집으로 돌아가야 할 수도 있고, 은혜에게 부탁 하고 싶었지만 한심한 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월세 계약서를 확인 했더라면……. 이런 말도 안되는 종이 쪼가리를 믿고 돈을 준 내 잘못이지. 300만 원에서 99만 원이 남은 지갑을 보니 허탈함에 헛웃음이 나왔다. 아빠가 주신돈은 원래 계획에 없던 돈이라 생각하면 억울할 것도 없었다.

 
작가의 말
 

 왕따라도 괜찮아. 나를 귀찮게 하는 사람만 없다면...

 현실이 힘들기에 도망치고 싶었다. 그래서 빛나는 춤과 노래를 부르며 스트레스를 풀고

 나만의 세상에서 책을 읽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데 폭력을 가한다면.

 빛나는 살고 싶지 않은 인생이라 이대로 맞아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지만

 맞아 병신되고 싶지는 않다. 모른척. 무시가 답은 아니다.

 니들만 촉법이냐? 나도 촉법이다. 그리고 나는 정당 방위다.

 대충 아무거나 선택하던 버릇이 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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