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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셀프인생2022
작가 : 행복한라니
작품등록일 : 2022.1.12

셀 프 인 생
태어나 부모님 사랑을 받으며.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내고, 대학까지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자식을 낳고. 자식을 다키운 후에야 내 인생을 찾으려 하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이 주시는 사랑이 당연하지 않다면. 철 없어서 뭘 몰라서 아무것도 안한채 지나버린 시간들. 성인이 되어서 셀프로 살아가는 빛나 얘기를 하고 싶었다. 오늘을 열심히 살다보면 꿈은 이룰수 있다는 희망을 얘기하고 싶었다.

 
1. 누군가의 가족이 된다는건
작성일 : 22-01-12 12:37     조회 : 253     추천 : 0     분량 : 23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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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누군가의 가족이 된다는건

 

  친구들이 ‘고아’라고 놀려서 이름을 바꿔 달라고 떼를 썼다. 하고 많은 이름중에 왜 하필 고아냐고! 내가 아빠가 없어? 엄마가 없어? 왜 ‘고아’냐고 따져 묻자 엄마가 말했다.

  “너, 고아 맞아. 아빠도. 엄마도 없는 아이였으니까.”

 엄마는 나를 어느 집에서 주워 왔다고 말했다. 잠깐 데리고 있다가 고아원에 보내려고 했지만 아빠가 나와 함께 살기를 원해서 나를 키우면서도 내가 고아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내 이름을 ‘고아’라고 지었다는 말에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듣기 싫다는 듯 짜증내며 말했다.

  “이름 바꿔 주기 싫으면 그냥 싫다고 하면 되지. 고아라는 사실은 또 뭐야!”

  “고아야!”

 듣고 싶지 않은데, 엄마는 나를 한참을 빤히 보시더니 결심한 듯 말했다.

  “이젠 때가 된 것 같구나. 우리 이제 그만 헤어지자!”

 이제 겨우 10살인 내가 ‘헤어지자!’ 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황당해 하는 내게 엄마가 이유를 설명 했다. 아빠에게 딴 여자가, 아니 아빠가 첫 사랑에게 돌아 간다기에 엄마도 원래 자리로 돌아 갈거라고 말했다. 그럼 나는? 내 자리는 어디냐고 묻자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버려진 아이가 갈 만한 곳은 고아원 말고 또 없을거 같은데.”

 

  정신을 차렸을땐 고아원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아빠는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아원으로 가는 내내 창밖을 응시 했다. 차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 경사가 심한 오르막길을 올라가자 뒷좌석에 앉은 내 몸이 완전히 뒤로 젖혀 졌다. 덤블링 하듯 차가 뒤로 굴러 떨어져 죽어 버리는 상상을 하는 사이 차는 고아원 앞에 멈췄다. 차를 세운 아빠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 가면 친구들도 많을 거야. 친구랑 사이좋게 지내고 잘 지내야 한다. 아빠가 사정이 있어서 널 키울순 없지만 자주 널 보러 올꺼야!”

  “아뇨. 그럴필요 없어요. 괜히 기대하게 하지 말고 우리 영원히 헤어져요. 우연히 만나도 알은체 하지 마시구요. 이제 제 아빠도 아니잖아요.”

 인사도 없이 차에서 내렸다. 키워준 은혜 보다 날 버리는 원망이 더 컸다. 사무실에서 서류를 작성하는 선생님을 보며 물었다.

  “이름을 바꿀수 있나요? ‘왕빛나’라고 이름을 바꾸고 싶어요.”

  “이미 ‘고아’ 라고 썼는걸. 그리고 니 마음대로 바꿀수 있는게 아니야!”

  “그럼 부르는 이름 만큼이라도 '왕빛나' 라고 불러 주시면 안될까요?”

  “안돼!”

  “그럼. ‘라’를 붙여 주는건요? ‘고아라’로 불러 주세요.”

  “말장난이 취미니? 귀찮게 구는 아이는 딱 질색이란다. 억지 부린다고 안될일이 되진 않아. 필요한 말 아니면 말을 아끼는게 어떠니?”

 선생님은 서류 작성을 마친뒤 표정없는 귀찮은 얼굴로 나를 방으로 안내 했다. 방 안에는 스물명이 넘는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선생님은 간단한 내 소개를 마친뒤 가버렸다. 몇 명 친구들이 다가와 물었다.

  “넌 여기 어떻게 왔어?”

 말할 기분이 아닌데. 질문마저 마음에 들지 않아 투명스럽게 대답했다.

  “니들이랑 같지 않을까. 오고 싶어서 온건 아니니까!”

 주변을 둘러 보니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돼지우리도 아니고. 촌스럽긴 해도 지저분하고 냄새 나는 애들도 없었다. 심한 매질을 당한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몇 명 아이들 몸에 상처는 있었지만 그건 학대가 아니길 바랄 뿐이었다. 이 방에서 제일 키가 큰 아이가 나를 보며 말했다.

  “고아라고 했지? 여기 들어왔으면 인사는 해야지. 자기 소개 해봐!”

 아이들 시선이 나에게 향하자 마지못해 인사를 했다.

  “안녕. 내 이름은 고아지만, ‘왕빛나’라고 불러 줬으면 좋겠어. 그게 어렵다면 ‘고아라’로 부르던지. 반갑지 않지만 잘 지내 보자!”

  “여기 있는 애들이 다 니 친구로 보여? 어디서 반말이야? 그리고 고아면 고아지. 고아라? 왕빛나?는 뭐야? 이름 바꾸면 고아가 아닌게 되니?”

 어디가나 이런 애들은 꼭 있다. 괜히 시비 걸고. 나대는 아이들. 상대하지 않으려 무시하며 구석 자리로 가 앉자 내 앞에 다가와 물었다.

  “야! 너 내 말 씹니? 첫 날부터 죽고 싶어?”

  “‘야!’라고 부를거면 이름은 왜 물어 보는데? 반말 듣기 싫으면 너도 반말 하지 마. 죽고 싶지도 살고 싶지도 않으니까 용건 없으면 건들지 말고 꺼져!”

  “뭐? 이런 또라이가!”

 뭐 이런게 다 있냐는 듯 손이 올라오자 한 아이가 다가와 막으며 말했다.

  “그만해! 첫날이잖아. 차차 적응하겠지. 소란 피우면 괜히 우리만 혼나!”

 고아원 생활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첫날부터 또라이로 찍힌 탓에 얘기할수 있는 친구는 없지만 굳이 친구를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날, 심심해서 인지 내가 만만해서 인지 유독 내 이름으로 장난 치는 재원이가 있었다. 뭐라 놀리건 상대 하지 말자는 듯 늘 피해 버렸지만 오늘은 집요하게 내 앞길을 막으면서 물었다.

  “고아야! 너 어렸을땐 소아였지? 소아가 커서 고아가 된거야?”

  “…….”

  “고아라서 고아원에 온건가?”

  “…….”

 “고아야! 말은 할수 있잖아? 별명이 벙어리야?”

 더 이상 참을수 없다는 듯 주먹을 날리며 말했다.

  “그만 하랬지! 말을 하려면 말이 되는 소리를 하던가. 개짖는 소리보다 더 시끄러워서 더 이상 못들어 주겠네.”

 나의 주먹에 휘청 거리다 넘어진 재원을 보며 피식 웃으며 말했다.

  “무슨 남자애가 힘도 없어? 이제보니 송재원이 아니라 송사리구만!”

  “뭐? 송사리? 내가 제일 싫어 하는 별명을!”

 재원이의 주먹이 날라와 정확히 내 어금니를 강타했다. 너무 아파서 일까. 헛웃음이 나왔다. 정신이 들자 턱 관절이 욱신 거리면서 아픈만큼 화가 치밀어 오르자 분노의 힘을 그대로 재원에게 쏟아 부었다. 재원의 머리를 잡고 몸싸움을 하고 있는데 ‘그만!’ 하라는 선생님 목소리가 들렸다.

  “둘다 그만 하지 못해! 둘다 잘못 했으니까 사과하고 고아는 따라와!”

 선생님은 싸움이 일어나면 이유불문 무조건 둘다 잘 못 했다며 억지로 화해 시켰다. 싸움이 커지면 상황을 물어 보기도 했지만 관심은 없었다. 선생님 앞에선 무조건 사과를 해야 끝난다는걸 알기에 마지못해 사과를 하고 선생님을 따라 갔다.

  “넌 참 운도 없구나. 입양가는 첫날. 꼴이 그게 뭐니? 입양 가면 얌전히 지내. 오늘처럼 말썽 피우다 파양 당하지 말고!”

 고아원에 들어온지 한달만에 입양이라니. 어떤 부모를 아니, 보호자를 만나게 될지 설레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아무 생각없이 사무실로 들어가자 익숙한 얼굴, 아빠가 서 있었다. 아빠는 ‘오리’라는 애칭을 부르며 나를 반갑게 안으려고 했지만 거부 했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아빠를 밀쳐 내며 말했다.

  “왜 이러세요? 징그럽게! 설마 아저씨가 날 입양 하는 거예요?”

  “뭐? 아. 아저씨? 우리 오리 아직 화 나 있구나. 꼴은 또 그게 뭐야?”

 아빠는 미안하다며 상처난 내 얼굴을 어루 만지며 물었다.

  “아빠가 미안하다. 얼굴은 괜찮은 거야? 친구랑 싸웠어?”

 아빠는 이제 다시 헤어지는 일 없을거라며. 친구들에게 인사 하고 가자는 말에 대답했다.

  “그냥 가요. 인사할 친구도 없는걸요!”

 아빠 차 조수석에는 처음 보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새엄마’라고 소개 하자 투명스럽게 인사를 했다. 아줌마 표정도 내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니가 고아구나. 얘기는 많이 들었어. 굳이 엄마라고 부를 필요 없어. 편한대로 불러. 필요한거 있으면 아저씨한테 말하고!”

  “아저씨 아니고 아빤데요.”

 아줌마 표정이 굳어졌다. 아랑곳 하지 않고 물었다.

  “아줌마 이름이 이금화예요?”

  “뭐? 어른에겐 성함이라고 해야지. 첫날부터 이렇게 못배운 티를 내서야……. 근데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아?”

  “전에 살던 엄마가 말해줬어요. 아빠 첫사랑이라면서요.”

 그냥 궁금했다. 아빠의 첫 사랑이 누군지. 이 여자만 아니 었다면 난 아무것도 모른체 아빠랑 엄마랑 살고 있었을 텐데. 아줌마를 보며 말했다.

  “부탁하나만 해도 되요?”

  “초면에 부탁까지? 너 사람 당황스럽게 하는 재주가 있구나. 만나자 마자 부탁이라니, 뭔지 모르지만 듣고 싶지 않구나. 들어줄 생각 없거든!”

  “오늘 제 생일이예요. 그리고 새로운 가족이 생긴 날이기도 하니까 제 소원 하나만 들어 주시면 안되요?”

  “안돼. 생일이 아니라 버려진 날이겠지. 그런날 기념하고 싶니? 그래도 형식적인 축하 파티는 해줘야 하는데. 난 그럴 마음이 없는데. 가식적인 축하를 받는 것 보다 솔직한게 낫지?”

  “축하는 바라지 않아요. 그냥 생일 핑계로 부탁하고 싶어서요. 별거 아니지만 저에겐 정말 중요한 일이거든요. 이름을 바꿔 주세요. 오고아가 아닌 오빛나로 바꿔 주면 안되요? 개명이 힘들다면 저를 부를 때만이라도 빛나라고 불러 주세요.”

 가만히 듣고 있던 아빠가 말했다.

  “또 그 이름 타령이니? 그리고 오늘 생일도 아니잖아. 내가 알기론 12월달 이였던거 같은데. 크리스마스 전……. 몇일 이더라…….”

  “22일요.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오늘 생일 할래요. 저에겐 태어난 날 보다 가족이 생긴 날이 더 의미 있잖아요. 차라리 이름이 없는 ‘무명’이 낫지. ‘고아’라는 이름은 정말 너무 싫어요.”

 금화는 오래전 겨울, 여자 아이를 낳은 기억이 떠올랐다. 아줌마가 생각에 잠긴 사이, 아빠는 왜 하필 ‘빛나’냐며 ‘최오리’가 어떠냐고 물었다. 오리 티셔츠를 입고 아빠에게 삐져 입술을 내밀자 아빠는 귀엽다고 나를 ‘오리’라고 불렀다. ‘고아’라는 이름보다 ‘오리’가 좋아서 아빠가 불러주는 애칭을 좋아 했지만 이름이 되는건 싫다는 말에 아빠는 왜 ‘빛나’가 되고 싶냐고 물었다.

  “빛나고 싶어서. 이름처럼 살게 될 것 같아서 반짝 반짝.”

  “그래. 꼭 빛나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 오빛나! 이름 예쁘네.”

 개명을 해 주겠다는 말에 신이 났다. 아빠는 잠시 차를 세우더니 제과점에서 케이크를 사갖고 왔다. 아줌마는 힐끔 보더니 못마땅한 듯 말했다.

  “생일 파티 하려고?”

  “응. 생일은 아니지만 환영 파티는 해야지!”

 

 아빠의 새로운 집은 전에 살던 집 보다 크고 좋았다. 집으로 들어가자 8살된 여자 아이가 있었다. 아줌마 딸이라고 말했다. 이름은 ‘영미’라며 소개시켜주는 말에 인사를 하자 영미는 싫은 얼굴을 그대로 내비치며 인사도 없이 휙 가 버렸다. 아빠는 집 구경을 시켜주면서 2층 오른쪽 방이 영미 방이고. 왼쪽방이 내 방이라고 말했다. 방안에는 중고 침대와 책상. 그리고 서랍장이 있었다.

  “마음에 드니?”

  “네. 너무 마음에 들어요!”

 창고 같았던 지난 집보다. 고아원이랑 비교하면 나만의 방이 생겼다는 기쁨도 잠시 영미 방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이번에도 난 아빠의 ‘가족’이 될수 없을거라는 느낌적인 느낌. 영미 방은 큰 창문에 하늘 거리는 핑크빛 커텐이 달려 있고. 공주 침대가 놓여 있었다. 파스텔 톤으로 정리된 책장엔 전집들로 책들이 가득 차 있고. 옷장 안에는 매장처럼 옷들이 가지런히 정리 되어 있고, 방 안 이곳 저곳에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꾸며져 있었다. 차별의 아픔은 보너스 인가. 이 집에서의 나의 생활이 눈 앞에 그려 지는 듯 했다. 거실로 내려오자 아빠가 주방으로 들어가며 환영 파티를 하자고 말하자 아줌마는 피곤 하다며 안방으로 들어가고. 영미도 자기 방 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빠는 멋쩍은 듯 나를 보며 말했다.

  “케이크는 먹고 싶을 때 먹는게 좋을 것 같구나!”

 그만 올라가서 쉬라는 말에 ‘아빠라도 축하해 주면 안되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애써 웃으며 케이크를 달라고 말했다.

  “케이크 주세요. 제가 다 먹어도 되죠?”

 나는 케이크를 들고 방 으로 들어와 흘려 내릴 것 같은 눈물을 꾹 참으며 케이크에 초를 꽂았다. 불을 붙이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진짜 생일이 아니라서 어색한건지. 환영받지 못해 슬픈건지. 초라해진 나를 느끼며 노래를 끝까지 부르고 초를 껐다. 그리고 꾸역 꾸역 목구멍으로 케이크를 집어 삼키면서 생각했다.

  ‘다신 케이크 따윈 먹지 않을꺼야!’

 

  영미는 엄마 손을 잡고 등교 했지만 나는 저만치 떨어져 걸었다. 아줌마는 영미를 학교에서 만나더라도 절대 알은체 하지 말라고 말했다. 영미는 예쁜 얼굴은 아니었지만 하얀 피부에 예쁜 옷들을 입어서 누가 보아도 ‘공주과’ 였고. 나는 예쁘지만 까만 피부에 곱슬 거리는 단발 머리. 촌스러운 옷들이 나를 못생기게 보였는지 친구들은 나를 ‘못난이 감자’라고 놀렸다. 남들이 뭐라 하건 신경 쓰지 않았다.

 허름한 옷을 입어도 멋진 옷이라 상상하며 입으면 내겐 멋진 옷이었다. 어울리지 않는 옷은 상상으로 입으면 되지만, 맞지 않는 옷은 불편 했기에 바느질을 배워 수선해서 옷을 입었다. 리폼한 나의 옷이 남들 눈에는 이상한 옷으로 보이겠지만 나는 만족 했다. 그때부터 아이들은 나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고 놀리다가 앨리스 라는 이름도 아까웠는지 ‘이상한 감자’라고 불렀다.

 다들 나의 패션을 의아해 했지만 나에겐 패션이 아니었다. 나에게 옷은 몸을 보호하고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입으면서 불편하지 않게 입는 것이 옷 이였기에 내 눈엔 ‘힙합패션’이 제일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끔 아줌마가 새 옷을 사줄때도 있지만 그럴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난감 했다. 얻어 입은 옷과 별반 다르지 않은 옷을 받고 좋아하는 표정을 지어야 할까? 싫은 티를 내야 할까. 한치수 큰 옷이라 내 몸에 맞지도 않고. 시장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옷들이라 새 옷 같은 빳빳한 느낌도 없고, 한번 세탁하면 금방 너덜 해져 오래 입지도 못했다. 그래서 한번은 감사하다는 말 대신, 다음엔 내 몸에 딱 맞는 정사이즈로 사달라고 말하자 아줌마가 말했다.

  “넌 새 옷을 사줘도 불만이니? 사이즈가 크면 커서 입어!”

 

  짠돌이 아빠에게 돈을 받아 내는 일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용돈이 필요 하다고 하면 언제나 나오는 레파토리가 있었다.

  “니가 돈이 왜 필요해? 뭐하려고? 옷이 없어? 신발이 없어? 밥이 없어? 돈 쓸데가 어디 있다고? 없는 물건이나, 꼭 필요한 것만 얘기해!”

 나에겐 제대로 된 물건은 없지만 남들이 쓰다 버린. 물려준 물건들이 가득 했기에 살 수 있는 물건은 없었고. 꼭 갖고 싶은걸 말해도 아빠 기준에 쓸데없는 물건이면 살 수 없는 물건이었다. 풍선이 갖고 싶어도 터지면 돈 만 날리는 물건이라 살 수 없었고, 모두 다 갖고 있는 미미 인형을 갖고 싶다는 말에는 빌릴수 있는 물건은 빌려 쓰라고 말했다. 영미가 인형을 빌려주지 않자 몰래 갖고 놀았다. 그러다 영미랑 싸우게 되었고, 아빠는 문구점에서 100원 짜리 종이 인형을 사 주며 말했다

  “이거 갖고 놀아. 그리고 영미 인형은 만지지마!”

 투명 상자 속에 있는 미미 인형을 두고, 투명 비닐 봉투안에 묶음으로 들어 있던 종이 한 장을 꺼내 계산해서 주는 아빠를 보면서 궁금했다. 엄마가 차별하는건 이해할수 있지만 영미도 나도 아빠 친 딸은 아닌데, 차별 하는 이유를…….

 

 친구랑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고 싶다며 용돈을 달라고 하자 아빠는 아줌마를 보며 떡볶이를 만들어 주라고 말했다. 아줌마는 기막혀 하며 물었다.

  “니가 무슨 친구가 있어? 떡볶이 만들어 주면 친구가 오긴 오니?”

 친구가 없기에 떡볶이를 먹으면서 친구를 사귀고 싶었는데, 그날이후 나는 갖고 싶은 물건을 사달라고 하거나 용돈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 마늘이랑 밤을 깎아서 돈을 벌고 싶었지만 어린 나에게 일감을 주지 않았다.

 

  늘 준비물을 챙겨가지 못하는 나는 미술시간이 곤욕이었다. 책상을 붙여서 6명이서 함께 만드는 시간이라 짝이랑 책상을 맞대면 나를 싫어하는 눈빛을 그대로 마주해야 하기에 나는 고개도 들지 못하고 책상만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은 나를 스쳐 지나갈때마다 말했다.

  “너 또 준비물 안 챙겨왔니? 다음엔 꼭 챙겨와!”

 언제나 ‘네!’ 라고 대답 했지만 오늘은 대답하지 않았다. 지나치던 선생님은 발길을 멈춰 왜 대답이 없냐고 물었다.

  “늘 준비물 없이 앉아 있는거 아시면서 매번 같은 질문을 하시니까요. 제가 대답 하지 않으면 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반 아이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 되었다. 반항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는지 선생님은 화를 내며 교무실로 따라 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물었다.

  “그래. 매번 왜 준비물을 안챙겨 오는지 그 이유나 들어보자.”

  “엄마가 안 챙겨줘요.”

  “이게 어디서 거짓말을? 엄마가 준비물 사라고 준 돈으로 뭐 했어?”

 대답을 하지 않자 선생님은 교무 전화기를 내 앞에 내밀며 엄마한테 전화 하라고 말했다. 아무렇지 않게 번호를 누르는 모습에 선생님은 당황하며 수화기를 건네 받았다. 이내 아줌마 목소리가 들리자 선생님은 상냥하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빛나 어머님. 저는 빛나 담임인데요…….”

  “네. 근데 무슨 일로? 혹시 사고라도 쳤나요?”

  “그게 아니라 빛나가 준비물을……”

  “사고친거 아니면 됐어요. 그냥 내버려 두세요. 제가 좀 바빠서…….”

 그렇게 끊긴 전화에 선생님은 황당해 하며 물었다.

  “뭐야? 엄마한테 전화 한거 맞아?”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 하자 선생님은 미안했는지 주머니에서 오천 원을 꺼내 주며 말했다.

  “다음 시간에는 이걸로 준비물 사와!”

 나는 돈을 받지 않고 꾸벅 인사를 하고 교실로 들어왔다. 반 아이들이 보고 있었지만 흐르는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다음 수업이 시작 되었지만 눈물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터져 나왔다. 모른척 계속 수업을 하던 선생님도 짜증이 나는지 교실 밖으로 나가라고 말했다. 나는 소각장 옆에 있는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우연히 알게 된 창고 비밀번호로 아지트가 되어 버린 창고에서 나는 소리없이 울었다. 늘 준비물이 없어서 만들기를 못했고. 미술 시간엔 빌린 도화지에 그림은 그렸지만 물감이 없어 색칠을 못했다. 어쩌다 선생님 성화에 옆 친구가 마지못해 빌려준 물감과 붓으로 친구가 쓰지 않는 색으로 색칠을 했을때도 오늘만큼 비참하지 않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렸던 아줌마 목소리와 선생님이 내민 오천 원에 마지막 자존심 마저 무너졌다. 집에선 미운오리로 살더라도 남들 앞에선 귀한 자식은 아니더라도 평범한 딸로 보이고 싶었는데 신경쓰지 말라는 아줌마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 나의 치부를 들킨것만 같았다. 한참을 울다보니 마음이 진정 되었다. ‘새삼 스럽지도 않은일인데. 어차피 될 대로 될 인생인데…….’ 소각장에서 나오다 은혜를 만났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은혜는 반 친구들이 나를 괴롭히고, 장난칠 때 그러지 말라고 나를 지켜주고, 나를 위해 울어준 유일한 친구였다. 은혜는 다른 친구들 눈치에 나와 놀 순 없지만 친구는 되어 주겠다고 말했다. 나를 싫어하지 않는 은혜를 난 좋아했다. 우연히 알게 된 비밀번호로 아지트가 되었단 말에 비밀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은혜가 물었다.

  “별거아냐! 이렇게 자물쇠를 돌리다가 헐거워진 부분에 멈추면 돼. 누르는 자물쇠도 살짝 눌러서 잘 들어 가는것만 누르면 열려! 너도 해 볼래?”

  “난 잘 안되는데……. 난 감이 없나봐. 혹시 도서실 문 도 열수 있어?”

  “아니. 그건 새거라서 잘 안돼. 비밀번호를 많이 누르고. 돌려야 손으로 만졌을 때 헐거워진 부분을 찾을수 있거든!”

 사실 알고 있었지만 도서실은 나만의 공간이고 싶었다. 방과후, 모두 집으로. 학원을 가는데. 갈곳 없는 나는 언제나 도서실로 갔다.

 자물쇠를 열고 들어가서 뒷문으로 나와 자물쇠를 잠그고. 뒷문으로 들어가 뒷문을 잠그고 창 문 밑에 앉아서 책을 보고 있으면 절대 들킬 일이 없었다. 경비 아저씨 는 잠긴 자물쇠만 확인하고 복도를 지나쳤다.

 은혜에게 창고를 들킨 이후 은혜는 학원을 가지 않고 나와 창고에서 보냈다. 이상하게 은혜랑 보내는 시간이 좋지만은 않았다. 걱정도 돼서 물었다.

  “근데, 너 정말 학원 안가고 여기 있어도 되는거야?”

  “엄마가 알면 맞아 죽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너랑 노는게 좋아!”

 학원을 다니고 싶어도 못가는 나는 은혜를 이해할수 없었고, 은혜는 학원도 안가면서 집에 안가는 나를 이해할수 없다는 듯 물었다.

  “여기 있으면 안 무서워? 넌 학원도 안가면서 왜 집에 안가?”

  “그냥……. 여기가 좋아!”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엔 언제나 ‘그냥’이라는 말로 대답을 회피했다.

 집에가면 청소는 물론, 이런저런 잔심부름을 해야 하는게 싫고. 가족과 최대한 마주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얘기는 굳이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은혜가 뜬금없이 물었다.

  “넌 왜 그렇게 살아?”

  “무슨 말이야?”

  “생각없이 사는 것 같아서. 애들이 괴롭혀도 가만히 있고…….”

  “생각이라는거 해도 달라지는게 없으니까. 내 편이 없는 상황에서 싸울수도 없고. 내 감정을 표현하면 미친년이 될게 뻔하고. 그래서 애쓰지 않는 것 뿐야. 내 좌우명이 ‘될대로 되라!’ 거든.”

  “아무것도 안하니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거야. 부딪혀봐! 그러면 달라지지 않을까?”

  “부딪히면 깨지기만 할뿐, 달라지는건 없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래. 사람마다 타고난 모양이 다른데 상대를 봐 가며 부딪혀야지! 난 부딪혀서 아픈 것 보다 그냥 피하는게. 무시하는게 속편해.”

  “니가 무시 하는게 아니라, 무시 당하는 거야! 당하고 사는데 어떻게 속 편할 수 있어? 방어를 하든 발악을 하든 뭐라도 해야지.”

 ‘그러는 넌, 내가 당하는걸 보면서 왜 가만히 있는데? 내 편을 들어 주거나. 도와 줄수도 있는 거잖아. 남 들 앞에서도 당당히 나와 친구 할수도 있잖아? 니가 도와 줄수도 있잖아!’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속으로 삼켰다.

 

  집으로 가는길에 한 남자가 검은 비닐 봉지를 전봇대로 향해 던졌다. 그리고 혼잣말 하듯 말했다. ‘여기서 죽는게 니 운명일꺼야! 운 좋으면 살아 나 보시던지!’ 왠 미친놈이 쓰레기를 투척하고 가는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검은 봉지에서 ‘낑낑’ 거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자 얼른 봉지를 열었더니 새끼 강아지가 나왔다. 힘없이 축져진 상태로 겨우 소리만 내고 있는 강아지를 얼른 품에 안았다. 눈물과 함께 욕설도 나왔다. ‘미친인간. 나쁜인간. 이 개새끼보다 못한인간. 천벌을 받을 인간!’ 태어나 처음 입 밖으로 내 뱉은 욕이었다. 강아지가 마치 나인거 같아 집으로 데려와 우유를 먹이고 한참을 품에 안고 있었다. 집에 들어온 아줌마는 가관이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 개는 뭐야? 설마 키우려는건 아니지?”

  “누가 봉지에 넣어서 버렸어요. 그대로 두면 죽을 것 같아서…….”

  “죽든 말든 니가 무슨 상관인데? 너도 얹혀 사는 주제에 강아지까지 키우겠다고? 2년이나 내 집에 살면서 아직도 주제파악이 안되니?”

 아줌마는 당장 갖다 버리라고 했지만 나는 그럴수 없다고 말했다. 강아지를 내 쫒을거면 나도 같이 내 쫒으라고 말했다. 기막혀 하는 아줌마를 보며 내 방에서 조용히 키우겠다고. 제발 허락해 달라고 사정했다. 영미도 강아지가 마음에 드는지 키우고 싶다고 조르자 아줌마는 영미를 봐서 참아 주겠다고 말했다.

  “니 방에서 조용히 키워. 털 날리거나 시끄러우면 당장 갖다 버린다.”

 강아지 이름은 ‘코코’라고 지었다. 촉촉한 코가 매력적인 코코와 살면서 난 웃음이 많아졌다. 하교후 늘 학교에서 방황하다 집으로 돌아가던 내가 집으로 달려 가기 바쁘자 은혜가 물었다.

  “집에 꿀단지라도 묻어 놨니? 나도 너네집 놀러가도 돼?”

 은혜는 우리집에 놀러 오고 싶어 했지만 늘 안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오늘은 아줌마가 약속이 있다고 늦게 온다는 말에 은혜를 데려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영미는 학원에 가고 없는 시간이라. 은혜에게 신신당부를 하며 말했다.

  “좋아. 대신 잠깐 있다가 빨리 가야 돼. 우리 엄마가 알면 난리 나거든!”

 은혜는 집 구경을 하고 싶어 했지만 나는 내 방으로 데려와 코코를 보여줬다. 은혜도 강아지를 좋아하는지 코코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만 나가라고 말했지만 아쉬운지 조금만 더 보겠다며 나가지 않았다. 이내 문 소리가 들리고 아줌마가 들어오자 놀란 나는 얼른 나가 ‘엄마! 다녀오셨어요?’라고 인사를 했다.

  “뭐 엄. 엄마?”

 은혜가 나와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빛나 친구 은혜예요.”

  “어. 그래 친구가 놀러 왔구나! 근데, 너는……. 피아노 집 딸 아니니?”

  “네? 저를 아세요?”

 망했다. 아줌마가 은혜를 알다니. 영미가 다니는 피아노 학원이 하필 은혜 엄마가 하는 피아노 학원 일줄은……. 은혜도 알아 버렸다. 영미가 내 동생이라는걸. 은혜는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니 동생이 영미였어? 자매인데 그동안 왜 숨겼어? 근데 진짜 신기하다. 자매인데 어떻게 하나도 안 닮을수가 있지? 니 동생은 완전 공주던데!”

  “난……. 난 공주과가 아니거든. 선 머스마 스타일이 나지 뭐. 내꼴이 뭐 어때서. 그냥 취향인거지……. 학원도 내가 가기 싫어서 안가는거고…….”

 대충 얼버 무리며 은혜를 쫒아내듯 보내자, 아줌마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강아지도 모자라 친구까지. 엄마라는 소리도 잘 도 나오는 구나!”

 잔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은혜가 눈치 챘을까? 그게 걱정이었다.

 다음날 아침, 등교 하자마자 은혜의 눈치를 살폈다. 평소와 다름 없는 모습에 안심 했는데 화장실에서 은혜가 내 뒷담화를 하는걸 듣게 되었다.

 

 친구 : 너 빛나랑 친해? 저번에 보니까 학교 끝나고 같이 놀더라?

 은혜 : 내가 미쳤어? 걔랑 왜 놀아? 그냥 고아라서 불쌍해서…….

 친구 : 고아라고?

 은혜 : 응. 몰랐어? 나도 긴가 민가 했었는데, 어제 빛나 집 가서 확실히 알았어. 고아가 맞더라고. 입양 했나봐.

 친구 : 그래서 편들어 주며 울어 준거야?

 은혜 : 내가? 언제? 아, 처음에? 미쳤냐? 내가 걔 때문에 울게. 아침부터 엄마한테 혼나서 짜증나서 울고 싶은데, 애들이 빛나를 괴롭히잖아. 시끄러워서 조용 히 하라고 소리치다 눈물이 난거지. 내가 걔 때문에 왜 우냐?

 친구 : 하긴, 근데. 저번에 가족소개 했을 때 빛나도 가족 소개 했잖아. 부모님 다 계시고 동생까지 있다고……. 연기 진짜 잘한다.

 은혜 : 입양 했으니까 가족은 가족이겠지. 걔 동생이 우리 피아노 다니는데 그러더 라고. 입양한 언니가 있는데 가족이 되고 싶어서 용 쓰는 모습이 아주 가관 이라고. 학교에서도 왕따인데. 불쌍하잖아.

 친구 : 난 그래도 아빠는 친 아빠인줄 알았는데. 아빠랑 똑 닮았잖아?

 은혜 : 그게 바로 페이크지! 누가 아빠랑 찍은 사진을 들고 다니냐? 친아빠도 아닌 데 닮은거 보면 신기하긴 하다.

 친구 : 불쌍하긴 하다. 동생은 공주처럼 다니는데……. 옷은 그렇다 쳐도 준비물은 챙겨 줘야 하는거 아냐? 왜 준비물도 안챙겨 줄까?

 은혜 : 데려온 자식한테 돈 쓰고 싶겠니? 하녀처럼 부려 먹으려고 데려 왔겠지.

  집안일은 빛나가 다 한다고 하더라고.

 친구 : 진짜? 우리가 알던 신데렐라가 여기 있었네.

 은혜 : 신데렐라는 아니지. 신데렐라는 왕자님이라도 만났지. 동화책에선 요정이 있 지만 현실엔 없는데, 빛나가 왕자를 만나겠어?

 

 은혜가 나눈 뒷담화에 충격을 받았다. 날 위해 흘린 눈물이 아니었단 진실보다 더 화가 나는건 내가 고아라서 호기심에 다가와 나를 이용 하려 했던 은혜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부탁했기에 들어 줬을 뿐인데. 난 그동안 은혜의 친구가 아닌 이용 당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코코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코코의 눈가도 촉촉이 젖었다. 코코는 눈으로 나를 위로 했다. ‘울지마. 울지마!’ 그래도 눈물이 멈추지 않자 코코는 어쩔줄 몰라 하며 내 얼굴을 핥았다. 눈물이라도 닦아 주려는 모양이었다. 코코를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에겐 너 밖에 없구나!’

 매일 하던 방 청소를 하지 않고.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엉망이 된 집안꼴을 보며 아줌마가 나를 불렀다.

  “집이 이게 뭐니? 청소 안하고 대체 뭐한거야? 빨리 치우지 못해?”

  “네. 오늘부터 청소하지 않을 거예요. 제가 가정부는 아니잖아요.”

  “뭐? 얘가 오늘 뭘 잘못 먹었나? ‘반항’이라는걸 하려나 본데, 좋은말 할 때 시키는대로 해. 고아원으로 보내 버리기 전에!”

  “협박만 하지 말고 진짜로 고아원에 보내 주세요. 저도 여기서 가정부 노릇하며 밥값 하느니 고아원에 가는게 낫겠어요.”

 평소답지 않은 내 모습에 아줌마도 오기가 생기는지 어떻게 해서든 말을 듣게 하려고 매를 들었지만 나는 가만히 맞고만 있었다. 맞는 이 순간에도 은혜가 나눈 뒷담화만 맴돌았다. ‘고아’라고 낙인 찍혀서 살 바야 차라리 고아원으로 돌아 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도 눈치없는 영미는 평소처럼 숙제를 던져 주며 말했다.

  “너, 우리 엄마한테 대들지마. 이게 미쳐 가지고…….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고 하지만, 넌 지렁이도 못되는거 알지? 조용히 청소하고. 내 숙제나 빨리 해줘. 환경보호에 대해 글짓기 해야 돼! 최우수 상 받을 만큼 최선을 다해서 써야해!”

 언제나 그랬듯 제 할말 만 하고 밖으로 나가는 영미에게 숙제를 던지며 말했다.

  “싫어! 앞으로 니 숙제는 니가 해!”

  “뭐?”

  “싫다고. 앞으로 너랑 상대 하지 않을 테니까. 내 앞에서 꺼져!”

  “뭐? 엄마 얘가 나보고 꺼지래. 완전 미쳤나봐. 고아원 가는게 소원이라는데 그냥 보내버려. 키워준 은혜를 이따위로 갚을거면 당장 우리집에서 나가!”

  “그래! 나가. 나가면 되잖아. 내가 여기 오고 싶어 왔니? 아빠 아니였으면 나도 이 집에 오지 않았어. 넌 뭐가 그렇게 잘났어? 너도 아빠 없잖아. 우리 아빠가 너네 엄마만 만나지 않았어도 너랑 나 이렇게 엮일 일도 없었어. 얹혀 사는건 아줌마랑 너도 마찬 가지 아냐? 아빠가 벌어온 돈으로 사는건 똑같잖아.”

 순간 아줌마의 손바닥이 내 뺨을 강타 했다. ‘짝’소리에 놀란건 영미였다.

  “너 내 뱉으면 다 말이 되는줄 아니? 원래 이런 애였어? 이제야 본색을 드러 내는 거야? 너 진짜 무서운 애구나!”

 그때 아빠가 집으로 들어왔다. 집안꼴도 엉망이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무슨 일이냐고 묻자 아줌마는 별 일 아니라면서 나가자고 말했다. 영미는 아빠에게 쪼르르 달려가 없는 말을 지어냈다.

  “언니가 내 방에 들어와서는 내 물건 다 망가뜨려 놓고. 내가 뭐라하니까 막 때리고 엄마한테도 대들고…….”

 아빠 앞에서만 ‘언니’라고 부르는 영미말에 아빠가 말했다.

  “진짜야? 동생방에 들어가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 그리고 엄마한테 대들다니? 니가 지금 제 정신이야? 당장 엄마한테 잘못 했다고 사과해!”

 입술이 파르르 떨려왔다. 눈에선 분노의 레이저가 쏟아져 나오자 아빠는 뭘 잘했다고 흘겨 보냐며 뭐라 하자 아줌마는 아빠를 말리며 나갔다.

  “그만 해요. 오늘은 집에서 밥 먹긴 힘들 것 같고. 우리 외식하러 가요. 빛나는 지금 밥 먹을 기분 아니라고 하니까 집에 있고.”

 아빠는 나를 노려보며 할말은 많지만 참겠다는 표정으로 밖으로 나가자 아줌마랑 영미도 뒤 따라 나갔다. 혼자 남겨진 나는 억울해서 미칠 것 같았다. 이불을 뒤집어 씌고 한참을 통곡 했다. 얼마나 울었는지. 이젠 머리가 아파서 울 수 조차 없었다. 그러다 잠이 들었고. 아침이 밝았다. 어젯밤 일은 꿈을 꾼 듯 지나가고. 오늘은 아무일 없다는 듯 평온한 아침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눈뜨면 씻고 등교를 했다.

 교실에서 은혜를 보자 또다시 분노가 치밀었다. 복수를 하고 싶단 생각에 은혜가 아빠에게서 받은 지갑을 훔쳤다. 돈이 아니라, 은혜가 소중하게 아끼는 물건을 뺏고 싶었다. 잃어 버린 기분이 어떤지.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훔친 지갑은 도서실 거울 뒤에 붙여 놓았다. 은혜가 지갑을 잃어 버렸다는 말에 반 전체 아이들이 집에 가지 못하고 교실에 남았다. 선생님은 아이들 눈을 감게 하고 물었다.

  “은혜 지갑 갖고 간 사람 손들어. 지금 손 들면 용서 해 줄테니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선생님은 반 아이들 모두 복도로 나가라 하고. 가방 검사를 했다. 그래도 지갑이 나오지 않자. 선생님은 범인이 나올 때 까지 아이들을 교실에 가둬 두었다. 은혜 지갑엔 학원비가 들어 있었다. 그래서 그냥 넘어 갈수 없는지 선생님은 범인을 찾으려 온 교실을 다 뒤져 보았지만 지갑을 찾을수 없자 용의자를 추적하다. 나를 보며 물었다.

  “빛나야! 니가 가져갔니?”

  “아니요.”

  “그래? 그럼 니가 안가져 갔다는 증거를 대봐!”

 대답을 못하자 말했다.

  “가져 갔으면 빨리 갖고와.”

 내 이럴줄 알았다. 범인을 찾지 못하면 내가 범인으로 지목될게 뻔했다.

 은혜도 나를 의심하며 말했다.

  “니가 가져 간거 아냐? 지금 갖고 오면 용서 해줄테니 빨리 돌려줘!”

  “왜 내가 가져 갔다고 생각해?”

  “넌 돈이 없으니까. 내 돈이 탐나는건 당연하잖아.”

 반 아이들 모두 나를 쳐다봤다. 범인을 찾지 못하면 어떻게든 나를 용의자로 몰 것 같아 준비 한게 있었다.

  “돈이 없는건 맞지만 그렇다고 남의 물건을 훔치진 않아. 니가 지갑을 갖고 왔다는 걸 내가 알았니? 오늘 너 책상 근처에 가지도 않았어. 체육시간엔 제일 먼저 운동장에 나갔고, 교실에 들어 올때도 다른 친구들과 같이 들어 왔어. 그런 내가 언제, 어떻게 니 지갑을 가져 간단 말이야?”

 내말에 반 아이들은 당번을 의심했다.

  “문 잠그고 늦게 나온 사람 누구야?”

 당번이 지목되자 억울하다는 듯 알리바이를 만들었고. 아이들은 집에도 학원도 가지 못하고 한참을 교실에 남아 범인을 찾고 있었다. 술렁이는 아이들 말에 말했다.

  “은혜, 니가 쇼하는거 아냐?”

  “뭐? 내가 지금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거야? 내가 왜?”

  “니가 학원비 갖고 싶어서 거짓말 하는것일수도 있잖아. 니가 날 의심하니까 나도 널 의심해 보는거야!”

 혼란스러워 하는 선생님을 보면서 물었다.

  “선생님! 저번에 동식이가 지갑을 잃어 버렸을땐 이렇게 까지 범인을 찾으려고 하지 않으셨잖아요. 제가 물건을 잃어버렸을때도 관리 못한 제 잘못이라고 하셨으면서, 은혜 지갑은 그렇게 중요 한거예요?”

  “뭐?”

  “동식이 지갑은 다른곳에서 잃어버린거라 생각하시고. 제 물건엔 관심도 없으시면서 은혜는 진짜로 지갑을 잃어 버렸다고 생각 하시냐구요?”

 말문이 막힌 선생님이 머뭇 거리자 은혜는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아니예요. 진짜 잃어 버렸어요.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

  “나는 모르지. 중요한건 너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학원도 못가고. 시간을 뺏기고 있다는 거야. 억울하면 경찰에 신고를 해. 선생님이 형사는 아니잖아.”

 반 아이들 모두 집에 보내 달라고 아우성을 지르자 선생님은 아이들을 귀가 시켰다. 집으로 가는길, 내 앞에 은혜가 나타났다.

  “너 정말 내 지갑 안가져갔니?”

  “너 정말 지갑 잃어 버린거 맞니?”

 은혜는 너무도 당당한 내 말투와 평소와 다른 눈빛이 자꾸 의심이 된다며 물었다.

  “우리반에서 너처럼 불쌍한 애가 또 있니? 그냥 솔직히 말해. 나, 너 고아라는거 다 알아. 그거 비밀로 해 줄테니까. 좋은말 할 때 지갑 갖고 와! 그 지갑이 어떤 지갑인데. 우리 아빠가…….”

 ‘고아’라는 말에 이성을 잃은 듯 화를 내며 말했다.

  “비밀? 이미 말해버린 비밀이 무슨 비밀이야? 날 불쌍하게 생각 한다고? 니가 뭔데 날 동정해? 동정 할거면 돈을 주고 해!”

  “뭐? 다 들었다고? 그래서 내 지갑 가져갔니? 니가 안갖고 갔어도 내 지갑 찾아줘. 이건 부탁이야!”

  “내가 찾으면 니 지갑이 나오니? 내가 너에게 잘해준건 니가 ‘친구’라고 말해줬기 때문이야. 근데 이젠 나도 알잖아. 니가 날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데, 내가 왜 니 부탁을 들어 줘야 해? 넌, 내가 불쌍해 보이겠지만 난 엄마 꼭두각시처럼 사는 니가 더 불쌍해. 니가 그렇게 하기 싫어하는거 알면서도 널 위한다는 핑계로 시키는거 보면 엄마가 아니라 계모 같애. 널 괴롭히는 방법도 가지 가지잖아! 너네 아빠는 널 사랑하긴 하니? 집에도 잘 안들어 온다며? 바람난거 아냐? 벌써 딴 살림 차렸을 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내 앞에서 잘난척 하지마!”아빠 얘기에 은혜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아빠는 출장이 많은것 뿐야! 회사 사장인데 바쁜게 당연하지.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지마!”

  “출장을 간건지. 딴 여자랑 살고 있는지 니가 어떻게 알아? 어른들이 하는 말을 다 믿어? 엄마가 딸에게 아빠가 바람나 집 나갔단 말을 하겠니?”

  “니가 뭘 안다고 함부러 떠들어? 그말 당장 취소해! 취소해!”

  “싫어. 너도 니마음대로 지껄였잖아. 사실이든 아니든 그게 뭐가 중요해? 너네 아빠가 집에 안들어 오는건 사실이잖아.”

 분해서 미칠 것 같은 은혜의 표정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완전범죄를 위해 나는 미리 시나리오를 썼다. 일부러 체육 수업이 있는 오늘을 노렸다. 체육시간에 열린 교실 창문을 닫고 잠금 장치는 문구멍에 꽂아 돌리지 않았다. 돌리지 않으면 잠기지 않지만 당번은 닫힌 문과 잠금 고리만 확인 하고 교실문을 잠그고 나갔다. 교실문이 잠기자 나는 창문으로 들어와 은혜의 지갑을 훔쳐 도서실에 숨겨 놓고 운동장으로 갔다. 증거도 증인도 없기에 절대 들키지 않겠지만 용의자로 지목 될거라는건 예상했기에 당당해지려 심장의 담력도 키웠다. 은혜의 자작극으로 몰면 은혜가 분명 가만 있지 않을테고, 싸우게 된다면 공격해야 할 말 까지 다 생각해 두었다. 은혜의 약점을 이용하고 싶지 않았지만 먼저 건드린건 은혜였다.

 도둑질은 했지만 양심의 가책은 없었다. 지갑을 잃어 버리고 속상해 할 은혜를 생각하니 고소하기 까지 했다. 생각지도 못한 큰 돈도 생겼다. 이 돈은 책상 서랍 홈에 숨겨 놓고 비상금처럼 몰래 쓰기로 했다. 이렇게 돈 쓰는 재미가 있을줄이야! 그런데 지갑은 차마 버릴수 없어서 손이 닿지 않는 보일러 실에 숨겨 놓았다.

 

  코코가 보이지 않았다. 집 안을 샅샅이 뒤져도 없고, 동네 한바퀴를 다 뒤져도 찾을수 없었다. 그날 저녁 초췌한 모습으로 들어오자 아줌마는 청소도 안하고 어디 갔다 왔냐고 성화 였다.

  “코코 못 보셨어요? 코코가 없어 졌어요.”

  “아까 환기 시킨다고 문 열어 놨는데. 그때 나갔나 보네.”

 아무렇지 않은 듯 무심하게 대답하는 표정에서 직감적으로 코코의 행방은 아줌마가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아줌마가 갖다 버린건 아니죠? 정말 아줌마가 그런거 아니죠?”

  “갖다 버렸으면 갖다 버렸다고 말하지. 내가 너한테 왜 거짓말을 해? 갖다 버렸으면 니가 어쩔건데. 그깟 개새끼가 뭐라고 이렇게 난리야?”

 좋은 주인을 만나 잘 지내고 있다고 믿으면 마음이 놓이지만 이름 없는 강아지를 누가 데려다 키울까? 길거리를 헤매다 배고파 죽는건 아닌지. 교통사고로 죽는건 아닌지. 코코 걱정에 며칠을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미친 듯이 코코를 찾았다.

 찾지 못할거라는걸 알지만 코코가 없는 방안에 가만히 있는 것 보다 돌아 다녀야 마음이 편했다. 이런 내가 짠해 보였는지 아줌마는 은혜 집에 가보라고 말했다.

 은혜 집으로 뛰어가 초인종을 누르고 은혜를 불렀다.

  “니가 여기 왠일이야?”

  “우리 코코 여기 있지? 제발 한번만 보여줘!”

  “내가 왜? 너네 새엄마가 나 줬어. 이젠 내꺼야!”

  “코코는 물건이 아니야! 돌려 달라고 안할게. 그냥 보기만 할께!”

  “그럼 넌 뭐 해줄건데? 됐다. 내가 거지한테 뭘 바라겠어? 내 지갑 찾아 준다면 생각 해볼게.”

  “니 지갑을 내가 어떻게 알아? 찾을수 있다 생각하니?”

  “그럼, 사과해! 우리 아빠에 대해 함부로 말한거 무릎꿇고 사과해!”

 코코를 생각하며 무릎을 꿇자 은혜가 말했다.

  “그게 다야? 무릎을 꿇었으면 사과를 하고 애원을 해야지.”

  “너네 아빠에 대해 함부로 말한거 사과할게. 미안해……. 제발 보여줘. 잘 있는지만 보고 싶어서 그래!”

  “넌 무릎 꿇는게 참 쉽구나. 하긴, 타고난 거지근성이 어디 가겠니? 미안하지만 코코는 볼수 없을 것 같은데. 우리집에 없거든. 어제 우리 아빠 차에 치여 죽었어. 차가 후진하면 피했어야지. 바보같이 깔려 죽냐? 개나 주인이나 똑같이 멍청해서는……. 이제 그만 가줄래?”

 은혜는 그대로 대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기가막혀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치욕스러운 기분보다 코코가 죽었다는 슬픔이 더 컸다.

 코코를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에 난 며칠을 더 앓아 누웠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우연히 은혜 집 앞에서 코코를 봤다. 코코를 닮은 강아지라 생각 했는데 나를 보며 꼬리를 흔들며 빙그르르 도는 모습에 코코라는걸 알았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 가는 순간 후진 하는 은혜 아빠 차에 코코가 깔렸다. 충격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내 몸은 굳어졌다. 이내 차에서 내린 은혜 아빠는 차를 살펴 보다 짜증스런 얼굴로 코코를 스윽 꺼내더니 그대로 옆집 담장으로 휙 던져 버렸다. 은혜가 차에서 내리자 빨리 차에 타라며 윽박 지르며 이내 시동을 걸어 차는 출발했다. 코코를 던지면서 했던 은혜 아빠의 입모양은 ‘재수없게!’ 였다. 내가 늘 듣던 말이라 눈빛과 입모양만 봐도 알수 있었다. 다른건 생각할 틈이 없었다. 코코만 생각 하며 남의집 담 벼락을 넘었다. 미쳤다. 이 높은곳을 내가 어떻게 올라 왔는지. 가스통과 쓰레기가 쌓인 통로에서 피투성인 코코를 품에 안았다. 비좁은 담벼락 통로를 빠져나와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에 코코를 끌어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놀이터 나무 아래 흙을 파서 코코를 묻었다. 한참을 나무 앞에서 울다가 엉망이 된 옷과 피투성이가 된 다리를 이끌고 집으로 들어왔다. 아줌마가 내 몰골을 보며 말했다.

  “넌 또 꼴이 왜 그래? 참 가지가지 한다.”

 무심히 지나치더니 심상치 않은 내 팔과 다리를 보고는 놀라 달려와 내 몸 여기저기를 살피며 괜찮냐고 물었다. 아줌마는 처음으로 나를 걱정해주는 눈빛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아줌마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코코는 죽었는데,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예요.”

  “코코가 죽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아줌마 때문이라고 원망을 다 쏟아 내고 싶었지만 말없이 방 으로 들어가자 아줌마가 뒤 따라 들어오며 말했다.

  “더럽게 그 꼴로 어디 들어가! 당장 옷 벗고 씻어!”

 아줌마는 처음으로 내 옷을 벗겨 내 몸을 씻겨 주었다. 샤워를 하고 나왔더니 내 몸에 난 상처가 선명하게 더 잘보였다. 보는 사람이 더 아픈지. 아줌마가 약을 발라 주면서 퉁퉁 부은 종아리와 팔을 보더니 병원에 가자고 말했지만 강하게 뿌리쳤다.

 억지로 데려 간다면 아줌마한테 맞아서 이렇게 된거라고 거짓말이라도 할 생각이었다. 코코를 따라 죽고 싶을 만큼 나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아줌마가 말했다.

  ‘그깟 개새끼가 뭐라고…….’

 나는 그 말을 곱씹었다. 언젠가 아줌마도 죽을 만큼 힘든 날이 찾아 오길 바랬다.

 그땐 나도 똑같이 말해 주고 싶었다. ‘그깟일이 뭐라고…….’

 

  새학년이 되어도 반장과 부반장은 늘 정해져 있었다. 누가 반장이 되어도 달라 지는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투표가 아닌 시험 점수로 반장을 뽑겠다고 말했다.

 1등 하는 사람이 반장이 되고. 투표로 뽑힌 사람이 부반장 된다는 말에 귀가 솔깃 해졌다. 조금만 더 공부하면 1등 할 자신이 있었다. 반장이 된다면 아빠도. 아줌마도 나를 인정해주지 않을까. 친구들도 나를 다르게 보지 않을까. 공부는 늘 했지만 성적은 중요하지 않았기에 늘 긴장감 없이 문제도 읽지 않고 대충 답안지를 제출 했지만 이번엔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하고 진심으로 시험을 보고 만점을 맞았다. 처음 맛보는 성취감이었다. 만점자가 없다면 내가 반장이 될 수 있을거라 생각 했는데. 늘 부반장이었던 유라가 반장이 되었고. 늘 반장이었던 민섭이가 부반장이 되었다. 인정할수 없어서. 억울해서 교무실로 달려가 따져 물었지만 돌아 오는 대답은 컨닝 했다는 의심이었다. 컨닝 한적 없다고. 재시험을 본다면 얼마든지 볼수 있다는 말에 선생님은 내 눈을 똑바로 보면서 물었다.

  “좋아. 니가 만점 맞았다고 치고. 반장이 되었다 치자. 그럼 넌 우리반을 위해서 뭘 해줄수 있는데? 남들 다 사오는 간식도 돌리지도 못하면서.”

 간식은 물론, 좋은 교실 환경을 위해 얼마나 돈을 쓸수 있는지에 대해 묻는 듯 했다. 돈이 드는 일은 내가 할수 없는 일이라 대답을 못했다.

  “알았으면 그만 가봐!”

 대답 없이. 인사도 없이 분한 마음을 삼키며 돌아섰다. 하루종일 억울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도서실에서 울분을 삼키다 복도로 걸어 나오다 유라 엄마가 선생님께 돈 봉투를 건네는걸 보게 되었다. 선생님은 얼른 교무수첩에 돈 봉투를 넣고 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투표로 반장이 될수 없었던 유라를 반장 시키기 위해 시험 이라는 핑계로 유라를 반장 시켰다는걸 알게 되었다. 나는 선생님 앞으로 달려가 섰다. 놀란 선생님이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너 뭐야? 아직 집에 안갔어?”

  “저, 다 봤어요! 교무수첩 안에 뭐가 있는지……. 돈 으로 반장 하는 거였으면 진작에 말해 주시지 그랬어요. 그랬다면 노력이란걸 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노력을 보였다면 칭찬 이라도 해주지 그러셨어요? ‘컨닝’ 했다는 모함은 너무 하지 않아요?”

 그리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 달라지는건 없겠지만 선생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려면 알은체를 하고 싶었고, 말하다 보니 마음의 소리도 나와 버렸다. 반장은 못했지만, 아빠한텐 칭찬 받고 싶어 시험지를 보여주자 아빠는 건성으로 보더니 투명스럽게 대답했다.

  “잘했네!”

 아줌마는 믿지 않는 듯 말했다.

  “너 시험지 맞아? 조작한거 아냐? 관심 받고 싶어서 아주 별 짓을 다 하는구나!”

 글짓기 상을 받아 왔을때도 아빠는 모두 다 주는 상 아니냐며 웃어 넘겼다. 그 웃음에 최우수상도 의미 없는 종이 쪼가리가 되어 버렸는데, 이깟 만점 시험지가 대수라고……. 나는 시험지를 찢어 버렸다.

  ‘매번 노력에 배신 당하면서 또 노력이라는걸 한 내가 바보지!’

 

  아빠와 아줌마는 가끔 부부싸움을 했다. 싸움의 이유는 늘 돈이었다.

 이번에도 아빠가 아줌마 몰래 삼촌에게 돈을 준 모양이다. 짠돌이 아빠지만 형제 일이라면 간에 쓸개라도 다 내어주는 아빠가 아줌마는 늘 불만이었다. 나역시 아빠를 이해할수 없지만 피한방울 안 섞인 나와 영미를 먹여 살리는 착한 아빠가 핏줄인 형제에겐 오죽 할까. 나는 두 분 싸움에 관심 없었다. 오늘도 개가 짖는구나! 시끄러운 정도……. 말소리가 들리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 지난 얘기를 꺼내서 굳이 또 싸우는 이유는 뭘까? 돈이 없는것도 아닌데 늘 돈 때문에 싸우는 아빠와 아줌마를 이해할수 없었다. 부부 싸움이 길어지면 불안에 떨던 영미가 내 방 으로 다가와 같이 있어 달라고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면 안아 주고 싶을만큼 짠해 보여서 나가란 말도 못하고 내 방에 있는걸 허락 했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가라며 영미를 밀쳐 내고 방 문을 잠궜다. 전에 살던 엄마랑은 이렇게 싸운적은 없었다. 죽도록 사랑했던 첫사랑과 살기 위해 희자 엄마를 버리고 첫사랑과 재혼 했으면 잘 살아야 하는거 아냐? 사랑 이라는거 참 부질없구나……. 라고 생각하는데, 내 이름이 들렸다. 쫑긋 거리지 않아도 듣고 싶지 않아도 다 들렸다.

  “이제 그만 빛나에게 엄마라고 부르라고 해. 아줌마가 뭐야? 같이 산지가 몇년인데. 꼭 낳아야 엄마야? 키우는 사람도 엄마야! 당신은 그렇게 빛나가 싫어?”

  “싫어. 싫다는데 왜 자꾸 쟤를 감싸고 돌아? 혹시 숨겨둔 친 딸이라도 되는거야?”

  “그럼 좋게! 내 딸이면 내가 당신한테 숨길 이유가 뭐 있어? 남의 자식도 키우는데. 내가 영미보고 아저씨라고 부르라고 하면 좋겠어?”

  “여기서 영미가 왜 나와? 난 그냥 쟤가 싫어.”

  “그럴거면 입양할 때 왜 동의 한거야?”

  “동의? 난 동의 한적 없어. 당신이 10년 동안 키운 정 때문에 힘들어 하면서 쟤 안데려 오면 영미도 받아 줄수 없다고 협박 했잖아. 영미 키우려면 별수 있어? 그래서 입양 했는데. 내가 사랑까지 해줘야해? 빛나를 볼때마다 내 마음이 어떤지 알아? 그냥 기분 나빠. 한쪽 가슴이 아픈것도 싫고. 당신 닮은 모습도 싫고.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이 보일때마다 소름돋게 싫어. 짜증나!”

 아줌마에게 난 미치게 짜증나는 존재 인건가. 나를 미워하는건 알았지만 이 정도 일줄은 몰랐다. 아줌마는 늘 내게 막말을 쏟아 냈지만 이상하게 진심이 아닌 것 같은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 했다. 마음의 소리와 나오는 말이 반대 인 사람. 좋은걸 싫다고 말하는 사람. 그래서 난 아줌마를 미워 하진 않았는데. 이것이 아줌마 진심인걸까? 진심이 뭐든 가족으로 지내려 최선을 다했던 지난 내 노력 부질 없었다.

 언제가는 ‘엄마’라고 부를 날이 올거라 믿었는데. 영미를 키우기 위해 나를 키우고. 아니 봐주고 있다는 말은 충격이었다. 당장이라도 두분의 싸움을 말리며 나를 파양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 할수 없었다. 나만 없으면 되는건가? 침대에 누워 생각

 했다. 나 같은건 왜 태어나서……. 죽을 용기도 없는 나는 이대로 눈뜨지 않기를.

 아침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잠이 들었다. 그러나 어김없이 아침은 오고. 다음날이면 언제나 그랬듯 고요 했다. 무섭게 싸울땐 언제고 아무렇지 않은 듯 아빠와 아줌마를 보면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러다 물로 칼 베기가 될수도 있겠지만…….

 

 
작가의 말
 

 10살까지 친 부모인줄 알고 살았다. 그런데 내가 고아라는 사실을 알게되었을때 빛나는 어땠을까?

 외동딸로 살다가 고아원에서 단체생활 그리고 아빠빼고 낯선 가족들과 가족처럼 지내기 위해 빛나가 선택한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사는 것이었다. 선택하지 않는 것이었다. 노력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중에 빛나는 후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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