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
 1  2  3  4  5  6  >>
 
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개를 족쳐라
작가 : 날씨가덥네요
작품등록일 : 2021.12.29

조선 제일의 투견 판매처 경산.
노비 개똥은 오늘 이 지옥을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개만도 못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쫓고 쫓기는 숨막히는 추격극이 시작된다.

 
7. 그릇
작성일 : 22-01-11 19:23     조회 : 191     추천 : 0     분량 : 4100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이 녀석으로 하겠소!”

 

  오전부터 다수의 방문객이 경산으로 찾아와 거리가 북적이는 장의 첫날.

 

  커다란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나는 이 녀석이 마음에 들었어!”

 

  위험한 눈을 가진 한 남자가 실실 미소를 보이며 자신의 선택을 널리 알렸다.

 

  경산의 장날에는 인기 좋은 품목을 두고 즉석으로 경매가 이뤄지기도 했는데, 경매에서 승리한 사내가 떵떵거리는 일은 흔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쟁취한 상품이 짐승이었을 때의 이야기였다.

 

  “이 아이를 내 노리개로써 데려가겠소!”

 

  훤칠한 체격에 고급 비단으로 제작된 의복을 차려 입은 남자는 송이의 팔목을 꽉 잡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나, 나으리! 저, 저는 이곳의 상품이 아닙니다!”

 

  당황한 송이가 상황을 빠져나가고자 주저리주저리 말을 걸었으나, 남자에게는 소용 없었다.

 

  “하하하, 이 요망한 것아! 내가 누군지 알더냐? 나는 왕족의 피가 섞인 집안의 차남 오돈이다!”

 

  오돈이라는 이름을 들은 다른 방문객들은 남자를 잠시 흘깃하고, 자신들의 용무를 보기 위해 자리를 피했다.

 

  오돈의 뒤에는 무장을 한 부하 세 명이 나란히 있었고, 고작 노비를 위해 의로움을 보일 방문객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요! 나으리!”

 

  이 소동을 일찍이 발견한 철수가 황급히 오돈의 앞으로 몸을 숙여 나타났다.

 

  “뭐야? 이 곳의 종이더냐? 마침 잘 왔구나, 나는 이 계집이 마음에 들었다. 이 년을 내 노리개로 데려가겠어. 원하는 값을 충분히 지불할 터이니, 이 곳의 주인을 불러오너라.”

 

  별의별 진상을 다 만나봤지만, 이런 부류의 진상은 처음이었다.

 

  가뜩이나 개똥과 방석이 아침부터 보이지 않아 방문객을 맞이하고 안내하는 역할을 철수 홀로 하고 있었다.

 

  “곤, 곤란하십니다. 어르신. 이렇게 좋은 날에 어째서 저희 같은 천한 것에게 눈을 돌리시는 지요. 널리고 널린 것이 경산에서 보증하는 조선 제일 가는 투견과 사냥개 아니겠습니까. 별볼 일 없는 것에 지갑을 여는 것 보다 어르신의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을 찾아보심이 어르신의 시간을 귀히 쓰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머리를 꾸벅 숙이며 철수가 최대한 공손한 태도로 나갔다.

 

  그 태도가 모나지 않아 오돈도 극렬했던 흥분이 조금 풀린 듯했다.

 

  오돈의 힘이 꽉 들어간 손이 조금 풀렸고, 송이는 쇠한 농기구의 부품이 떨어지듯 바닥에 쓰러졌다.

 

  “네 말도 일리가 있다만, 나는 돈이 아주 많다. 내 마음에 드는 물건을 구매하고도, 이런 계집 하나 데려가는 것쯤이야 별 손해도 아니지. 확실히 오늘은 장날의 첫날이니 이런저런 고충이 많겠구나. 내 아주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도록 하지.”

 

  오돈은 성군이라도 된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재수는 없었지만, 최악의 상황을 피한 것 같아 철수는 숨을 놓았다.

 

  “네놈들도 이곳에서 도맡아야 할 일이 있을 터이니, 장날이 끝나고 이 계집을 끌고 가는 것으로 하겠다.”

 

  “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르신? 아, 아니 되옵니다! 이 아이도 엄연한 경산의 소유물로…”

 

  “하하, 천한 것이 말이 많구나. 여봐라 이 놈의 이빨을 모조리 뽑아버려라.”

 

  오돈은 눈썹을 찌푸리며 별안간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부하에게 내렸다.

 

  세상에, 아무리 노비라도 그렇지 남의 것을 이리 탐하고 억지를 부리고 심지어 해코지 하려 하디니! 이 오돈이란 작자는 망나니가 틀림 없었다.

 

  오돈의 부하 중 가장 체격이 다부진 자가 천천히 철수에게 다가갔다.

 

  철수는 공포로 파랗게 질린 얼굴로 뒤로 쓰러졌다.

 

  이것들인 제정신이 아니다. 진짜로 미쳤다. 정말로 이빨이든 뭐든 뽑아버릴 게 분명했다.

 

  “지금 내 땅에서 뭐하는 짓거리냐, 이것아!”

 

  그리고 때마침, 이럴 때야 말로 가장 믿음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철수는 안도의 숨을 푹 내뱉고 풀린 다리를 어루만졌다.

 

  마귀다. 마귀가 나타난 이상, 무력으로 송이나 자신이 피해를 볼 일은 없었다.

 

  마귀도 이 장날에 가장 중요한 일손을 둘씩이나 잃고 싶지는 않을 것이었다.

 

  “아, 이 땅의 주인인가?”

 

  본디 정신이 멀쩡한 인간이라면 마귀를 마주치고 조금은 주춤하는 기색을 보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오돈이란 사내는 공포라는 본능을 상실했는지, 오히려 마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마귀는 근처에 있던 방문객들이게 잠시 물러가라는 손짓을 취했고, 싸움 구경 냄새를 기막히게 맡은 몇몇 투견쟁이들은 이 둘을 중심으로 둥글게 원을 만들었다.

 

  “이것 참,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군. 여기는 개를 취급하는 곳이지, 노비를 취급하는 곳이 아냐. 귀한 일손에 손을 대봐, 그 고운 손이 아작나고 싶지 않다면.”

 

  안 그래도 가장 바쁜 장날의 첫날이었으니, 마귀는 여러모로 신경이 날카로웠다.

 

  진상을 대접하며 시간을 빼앗길 바에 폭력으로 내쳐버리는 것이 마귀의 주요한 영업 방식이었다.

 

  “허허, 무서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잘 하는군. 폭력을 휘두르려 한 건 미안하게 생각하네. 하지만, 저 계집 아이를 구매하고 싶다는 의견은 아직 확고해. 얼마면 저 계집을 넘길 텐가, 섭섭하지 않게 주겠네.”

 

  오돈의 이야기에 마귀는 하품을 크게 한 번 벌렸다.

 

  “어이가 없군. 송이 말인가? 저 아이는 경산의 것이야. 앵간한 투견 한 마리 정도는 수준급으로 훈련할 수 있도록 훈련된 녀석이지. 그런 기술을 훈련시키는데 드는 시간과 정성이 똥으로 보이나? 여기 녀석들은 경산의 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 기술을 전수 받는 중이야. 가격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거지. 더 소란 떨지 말고, 썩 꺼져.”

 

  마귀의 강경한 태도에 송이는 선망의 감정을 느꼈다.

 

  역시 우리는 바깥의 평범한 노비와는 달라.

 

  송이는 자부심을 가졌다. 본인이 경산의 일꾼이라는 점이 지금 자랑스러웠다.

 

  “그 불개라는 것과 동등한 가격을 매겨도 말인가?”

 

  “뭐?”

 

  불개라는 단어가 나오자 마귀는 잠시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재밌다는 듯이 웃기 시작했다.

 

  “끌끌, 그래? 불개 한 마리가 얼마나 대단한 값어치를 가지는지 모르는 얼간인가? 그게 아니라면, 그 정도로 이 아이가 마음에 든 겐가?”

 

  불개 이야기에 주변의 투견들이 소란스러워졌다.

 

  “한양에 있는 기와집과 버금가는 금액이라지 않았던가? 그 불개!”

 

  “설령 그 금액에 가져간다고 해도 그것들은 절대 길들이지 못해! 작년에 내가 봤어! 그것들이 참가한 일회성 경기에서 뼈도 못 추리고 날고기는 개새끼들이 아작이 났어!”

 

  “여기 바위산에 멧돼지가 있다지? 그 멧돼지도 쉽사리 여기 못 내려오는 까닭이 있어! 그 불개라는 것들은 개라는 종자를 넘어선 맹수야, 맹수!”

 

  불개에 관한 무성한 소문가 목격담이 쏟아졌다.

 

  마귀에게 있어 불개라는 것은 자신이 만들어낸 최고의 걸작이었다.

 

  여지껏 그 걸작에 가격을 매기려는 이는 없었다.

 

  “마음에 드는 태도야. 좋아, 정말 그 만한 가격을 책정한다면 넘기지 않을 이유가 없지.”

 

  마귀는 흡족한 미소를 띄웠다.

 

  송이는 그 미소를 보며 가슴 속 모든 것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주, 주인 어른. 그, 그것이 무슨…”

 

  송이가 바닥을 기어 마귀에게 다가갔다.

 

  마귀는 누런 이빨을 보이며 송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가야, 네 그릇은 그 정도다. 오히려 그 그릇보다 더한 가치를 인정 받았으니, 기뻐해도 좋다. 혹여 이 상황을 원치 않거든, 네가 직접 네 그릇을 증명해보이면 그만 아니겠느냐? 그렇다면 내 친히 너를 더 거두겠다.”

 

  “어, 어찌 하면 되겠습니까. 소, 소녀는 이곳 경산의 소유가 아니겠나이까.”

 

  송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철수는 동갑내기의 그 치열한 모습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글쎄. 당장 저기 저 정장 셋을 묵사발 내는 것도 괜찮겠구나. 그렇지 않다면, 날붙이로 네 그 고운 얼굴에 상처를 입히는 건 어떻겠느냐? 저 망나니가 널 데려가려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끌끌.”

 

  마귀가 속삭이듯 말을 꺼냈고, 송이는 그 무엇도 따를 수 없었다.

 

  “다시 말하겠다, 아가야. 네 그릇을 증명해. 그럼, 그 그릇에 맞는 운명을 살 것이야.”

 

  그릇과 운명.

 

  마귀의 논리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애초에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마귀는 즉석으로 화지를 꺼내 오돈과 임시 계약을 맺었고, 장이 모두 끝난 이후 송이의 가격을 책정하기 위해 다시 경산에 돌아오기로 약속했다.

 

  만만치 않은 계약금을 먼저 마귀에게 건네는 모습까지 보였다.

 

  마귀는 흡족해 했고, 송이는 망연자실 하여 고개를 떨구었다.

 

  철수는 왜인지 주먹에 힘이 꽉 들어갔다.

 

  자신의 그릇을 깨부수고 싶은 오기가 생겼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2 2-9. 청이. 2022 / 2 / 28 175 0 13936   
21 2-8. 일몰. 2022 / 2 / 28 158 0 4417   
20 2-7. 행운. 2022 / 2 / 28 165 0 3995   
19 2-6. 적이. (1) 2022 / 2 / 28 191 0 4165   
18 2-5. 붕괴. 2022 / 2 / 18 170 0 4200   
17 2-4. 치욕. 2022 / 2 / 18 180 0 3614   
16 2-3. 조우. 2022 / 2 / 18 172 0 4551   
15 2-2. 공포. 2022 / 2 / 5 172 0 3437   
14 2-1. 추격. 2022 / 2 / 5 169 0 3716   
13 13. 불청객. 2022 / 1 / 29 174 0 4252   
12 12. 뒷일. 2022 / 1 / 29 178 0 3669   
11 11. 탈출. 2022 / 1 / 22 170 0 4492   
10 10. 희생. 2022 / 1 / 19 164 0 3303   
9 9. 종이배. 2022 / 1 / 19 168 0 4513   
8 8. 분열 2022 / 1 / 17 175 0 4768   
7 7. 그릇 2022 / 1 / 11 192 0 4100   
6 6. 계획 2022 / 1 / 11 178 0 4287   
5 5. 불개 2022 / 1 / 8 168 0 4190   
4 4. 마귀 2022 / 1 / 3 185 0 4648   
3 3. 암시장 2022 / 1 / 2 183 0 4403   
2 2. 가족 2021 / 12 / 29 198 0 3755   
1 1. 경산 2021 / 12 / 29 292 1 3881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