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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개를 족쳐라
작가 : 날씨가덥네요
작품등록일 : 2021.12.29

조선 제일의 투견 판매처 경산.
노비 개똥은 오늘 이 지옥을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개만도 못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쫓고 쫓기는 숨막히는 추격극이 시작된다.

 
2. 가족
작성일 : 21-12-29 21:57     조회 : 203     추천 : 0     분량 : 3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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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냥개의 처형이 이뤄진 늦은 저녁.

 

  개똥은 힘없는 발걸음으로 노비들이 머무는 숙소의 문을 열었다.

 

  “왜 이리 늦었어?”

 

  촐랑거리는 목소리가 힘없는 개똥을 반겼다. 이제 막 열다섯이 된 철수는 개똥의 절친한 동료이자 가족이었다. 개똥보다 두 살이 어리지만, 웬만한 양반보다 더 영리한 아이라고 개똥은 생각했다.

 

  “처형이 있었어. 그 뒤처리를 하느라 할 일이 늦게 끝났어.”

 

  개똥은 힘없이 말을 내뱉고 구석으로 걸어가 엉덩이를 붙였다.

 

  경산의 노비는 개똥을 포함해 총 다섯이었다. 열일곱을 먹은 개똥이 그들 중 가장 어른이었으며, 이들은 방 하나로 이뤄진 작은 초가집에서 생활했다. 마귀의 본가에서 십리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처형? 그 돌아온 사냥개?”

 

  이미 짐작을 했던 건지 철수의 반응은 의연했다.

 

  “또 못 죽인 거지? 바보 같이?”

 

  반대편 구석에서 이불을 둘둘 말고 있던 송이가 끼어들었다. 철수와 동갑인 송이는 요즘 들어 툭하면 날카로운 말을 내비치곤 했다.

 

  “언니는 오빠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송이의 옆에서 잠자코 앉아있던 선아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경산의 노비들 중 가장 어린 선아는 고작 다섯의 나이로 경산에 들어와 해가 넉 번 바뀔 동안 경산의 고된 노동을 버텼다. 조선 제일의 아홉 먹은 꼬맹이라고 철수가 깝죽대는 말투로 장난을 치곤 했다.

 

  “아까 소리 들었어, 형. 저녁 못 받았지? 여기 형 몫을 좀 남겼어.”

 

  아직 식지 않은 취나물밥이 연잎에 쌓여 개똥의 코앞에 나타났다. 따뜻한 마음씨가 담긴 한 끼를 건넨 건 방석이었다. 방석은 개똥과 한 살 터울이 나는 남동생이었다. 피를 나눈 형제는 아니지만, 개똥과 같은 날 경산에 들어온 동지였다.

 

  “고마워.”

 

  혹독한 공포와 충격에 개똥의 배는 굶주릴 대로 굶주렸었다.

 

  개똥은 연잎에 담긴 취나물밥을 허겁지겁 목구멍으로 넘겼다. 그 모습을 다른 동생들은 묵묵히 지켜봤다. 다들 조금씩 자신의 저녁 몫을 나눈 것이었다.

 

  “오늘 죽은 개가, 말했어. 괴로움을 참았던 게 가장 후회가 된다고.”

 

  급하게 굶주림을 해소한 개똥이 오늘 낮에 있던 일을 이야기했다.

 

  “또 그 바보 같은 소리야? 짐승들이 무슨 말을 해? 참 나.”

 

  철수는 언제나와 같은 반응이었다. 철수는 개똥이 가혹한 노동에 지쳐 병마를 얻었다고 굳게 믿었다. 고작 짖을 줄이나 아는 미물이 자아를 지니고 있다? 철수로서는 콧방귀도 안 나오는 유치한 소리였다.

 

  “설령 그런 말을 한다고 그래도, 무시하면 돼. 그것들은 미물이고 우리는 영장이야. 엄연히 급이 다르다고, 형.”

 

  철수는 꿋꿋한 말투로 개똥의 이야기를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꼭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 얼마 전에 훈련에서 뒤쳐졌던 작은 개가 눈물을 흘리는 걸 봤어. 속이 좋지 않았지만, 그 개의 먹이를 빼앗아야 했어. 나는 그 개한테 많이 미안했어.”

 

  선아의 눈썹이 팔 자를 그렸다.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경산의 종들은 맡은 임무가 동일했다. 훈련에서 뒤쳐진 개에게 형벌을 내리는 일도 모두가 배분하여 맡았다.

 

  “선아야, 그렇게 만물한테 미안하며 살다가는 네 밥그릇 챙기기도 어렵다~ 지난번에 양반들이 심부름 시켰던 노비 봤지? 그 노비에 비하면 우린 훨씬 괜찮은 삶을 사는 거야. 그거 하나 제대로 못해서 쓰겠어?”

 

  선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송이가 입을 열었다.

 

  올해 초, 온 산이 꽁꽁 얼었던 어느 날 한쪽 손이 동상에 퉁퉁 부은 노비 한 명이 경산을 찾아왔다. 겨울이 되면 구마가 오갈 수 있는 저수지 부근 다리를 사용할 수 없어 이렇게 노비를 시켜 경산에 심부름을 보내는 양반이 있었다.

 

  산 좀 타봤다는 심마니도 어려워 한다는 경산의 지리를 글도 모르는 노비 혼자서 등산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한 손이 퉁퉁 부은 노비는 양반의 편지를 마귀에게 전하고 몇 시간 있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딱딱하게 굳은 이름 모를 노비의 사체를 방석과 개똥은 온갖 들짐승이 사는 뒷산에 던져버리고 내려왔다. 딱딱하게 굳은 흙을 파낼 도구도 없었으며, 구태여 파묻는다 한들 들짐승의 밥이 될 운명은 뻔했다.

 

  온갖 가학적인 방법으로 혹사를 당하는 바깥의 노비들보다, 엄격한 규칙 하에 통제되는 경산에서의 삶이 오히려 더 나을 수 있다는 발상은 언젠가부터 송이가 주장하던 내용이었다.

 

  “아무렴. 생각하기 나름이지. 그래서, 형이 그렇게 침울한 이유가 그거 때문이야? 그런 일이 한 두 번 있던 건 아니잖아. 갑자기 그런 말은 왜 꺼내?”

 

  방석이 냉정한 눈빛으로 개똥을 응시했다. 개똥은 그 이성적인 눈초리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탈출? 해방?

 

  갑작스레 가슴 속 내려앉은 소망의 근원을 자기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오래전부터 무의식 속 자신은 그것을 원했던 것이 아닐까?

 

  “형?”

 

  묵묵부답인 개똥이 답답했는지 방석이 커다란 양손으로 개똥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바깥이, 궁금하지 않아?”

 

  툭 튀어나온 개똥의 질문에 다른 아이들 모두 입술을 꾹 다물었다.

 

  “궁금하들, 어쩔 수나 있어?”

 

  송이가 입을 삐죽 내밀고 고개를 돌렸다.

 

  “궁금은 해. 옛날에는 많이 궁금했는데, 지금은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어. 뭘 아는 게 있어야 궁금하기라도 하지, 안 그래?”

 

  철수가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자리에 드러누웠다.

 

  “나는, 궁금해. 나중에 오빠처럼 덩치가 커지면 마귀한테 정식으로 요청할 거야. 내 몸값을 내가 벌어 낼 테니까. 날 풀어달라고!”

 

  웅변하는 발표자처럼 선아가 주먹을 불끈 쥐고 각오를 밝혔다.

 

  “어머, 얘가 미쳤어! 너 마귀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선아의 입을 틀어막으며 송이가 바깥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런 늦은 시각까지 마귀는 간혹 야산을 돌아다니는 경우가 있었다.

 

  “괜찮거든! 그리고 나, 사실 이렇게 모아둔 돈도 있어!”

 

  송이의 손을 뿌리치고 선아가 자신의 버선을 까뒤집더니 금화 하나를 들어 보였다.

 

  “너, 그거 어디서 난 거야?”

 

  철수가 깜짝 놀라 선아에게 바짝 다가섰다. 선아는 조개가 진주를 품듯이 금화를 다시 버선 안으로 숨겼다.

 

  “장을 열었을 때 손님한테 받은 돈이야. 마귀가 그랬잖아? 정해진 값보다 더 비싸게 개를 팔면 남는 돈은 들키지 말라고.”

 

  “아이고 이 화상아! 남겨 먹었다 들키면 어떻게 된 지는 생각 안 한 거야?”

 

  철수의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금화 하나 정도야 어떻게든 변명 가능하겠지. 그보다 시간이 늦었어, 내일 새벽부터 일어나야 돼. 이제 얼마 있지 않아 경산 장을 여는 거 알지?”

 

  방석은 선아의 독단적인 행동이 별로 놀랍지 않은 듯했다.

 

  졸린 육체로 감행하는 새벽의 노동이 얼마나 버거운지 아는 아이들은 하나 둘 자리에 누워 모시 이불을 덮었다.

 

  개똥도 별말 없이 바닥에 등을 붙였다.

 

  방석이 호롱불을 껐고, 짙은 어둠이 몰려왔다.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쉬며 아이들이 잠에 들 때까지도 개똥은 눈을 붙일 수 없었다. 아직도 가슴 속 답답함이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형, 아직 안 자지?”

 

  그때, 방석의 작은 목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응.”

 

  개똥 역시 아주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내일, 형한테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 새벽 일이 끝나고 잠깐 시간 좀 내줘.”

 

  방석은 그 말을 끝으로 더 말을 붙이지 않았다.

 

  무슨 일일까?

 

  궁금증에 가슴이 쿵쾅쿵쾅 뛰면서도 개똥은 왜냐고 물을 수 없었다.

 

  괜스레 아까운 수면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았다.

 

  새벽 작업은 고됐다. 고된 작업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눈을 붙일 필요가 있었다.

 

  개똥의 눈이 어느 순간 스르르 감겼다.

 

  그리고, 기억 저편에 묻어뒀던 강렬한 옛 기억이 스르르 피어났다.

 

  그 기억은 아주 쓰라리고 아픈 상처이며, 흉터였다.

 

  마귀와의 첫만남이 새하얀 옷감 위에 들이부은 먹물처럼 스르륵 개똥의 의식을 먹어 치웠다.

 

  이것은 악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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