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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개를 족쳐라
작가 : 날씨가덥네요
작품등록일 : 2021.12.29

조선 제일의 투견 판매처 경산.
노비 개똥은 오늘 이 지옥을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개만도 못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쫓고 쫓기는 숨막히는 추격극이 시작된다.

 
1. 경산
작성일 : 21-12-29 01:29     조회 : 292     추천 : 1     분량 : 3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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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제일의 사냥터가 어딘지 아시오?”

 

  술과 도박에 취해 하루하루를 버티는 거렁뱅이들은 모두 아는 질문이다.

 

  위 질문을 다음과 같이 바꿔도 그 답은 같다.

 

  “조선 제일의 투견장이 어딘지 아시오?”

 

  조선 제일의 투견과 사냥개를 취급하는 곳.

 

  알 만한 사람들은 그곳을 경산이라 불렀다.

 

  경산이 정확히 어는 곳에 위치했고, 그곳을 가기 위한 첩경을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경산을 실제로 방문하는 주요 고객은 거액의 자산가이거나, 은밀한 취미를 숨기고 사는 관료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얼굴이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혐오했고, 경산에 다른 고객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명했다.

 

  그 덕에 경산은 조선이 국경의 문을 열고 양인들의 문물을 받아들일 때까지도 은밀하고 신비스러운 공간으로 구전됐다.

 

  뚝 부러진 엿가락처럼 날카로운 산맥이 줄줄이 늘어선 산골짜기.

 

  흡사 황천의 감옥과 죄수를 연상시키는 쇠창살과 분노에 찬 개들.

 

  주둥이부터 꼬리 끝까지 근육으로 뒤덮인 도사견을 개미 가지고 놀 듯이 한다는 경산의 주인.

 

  투견쟁이들 사이에서는 이 모든 가설을 두고 참이냐 거짓이냐 입다툼을 하는 것이 최고의 술안주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 어딘가에서는 그저 술안주로 소비될 이 화제거리가 어느 누군가에게는 지독하고 뜨거운 현생이었다.

 

  -

 

  “개똥아, 개똥아!”

 

  뜨거운 한여름, 대낮부터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는 개똥의 귓속을 휘저었다.

 

  “내 말 듣고 있냐? 으이? 개똥아?”

 

  걸걸한 대장부의 목소리. 하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은 여자였다.

 

  어떤 짐승의 것인지 모를 가죽을 온몸에 칭칭 감은 중년의 여성은 굳은살과 흉터가 곳곳에 박힌 손에 기다란 채찍을 쥐고 있었다.

 

  6척이 넘는 신장, 웬만한 남정네들 넙적다리를 두어 개 정도 합친 듯한 팔뚝, 인생의 풍파와 고난을 그대로 짓이긴 듯한 험상궂은 인상까지.

 

  그녀의 모습은 참으로 기이했다.

 

  이 기이한 여성의 정체를 숨겨 무엇하리.

 

  우락부락한 이 중년의 여성이 바로 조선 제일의 투견장이자 사냥터를 홀로 운영하는 주인, 마귀였다.

 

  “도, 도무지 못 하겠습니다. 정, 정말 못 하겠습니다.”

 

  마귀의 앞에서 두 다리를 덜덜 떨고 있던 청년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눈빛이었다.

 

  청년의 이름은 개똥. 마귀의 아래에서 경산의 온갖 잡일을 도맡는 종이었다.

 

  “개똥아, 너는 이 경산이 만만하더냐?”

 

  굴곡진 광대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쓰윽 닦아내며 마귀가 개똥의 눈을 응시했다. 눈곱만큼의 자비도 존재하지 않는 탁한 눈동자는 개똥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

 

  “아, 아닙니다!”

 

  개똥의 두 다리와 함께 치악까지 덜덜 떨렸다.

 

  개똥은 땅에 떨어뜨렸던 긴 몽둥이를 다시 집어 들었다. 그리고 마귀에게서 등을 돌려 바닥에 쓰러져 낑낑대는 한 생명체를 간신히 바라봤다.

 

  “네가 빨리 끝내지 않으면, 그만큼 더 저것이 고생하는 거야. 알겄어?”

 

  낑낑대는 생명체의 정체는 이빨이 빠지고 노쇠한 사냥개였다. 사냥개의 앞발과 뒷다리는 끔찍하게 짓이겨져 있었고, 사냥개는 으르렁거리면서도 피를 토하고 있었다. 굳이 손을 쓰지 않더라도 시간만 두면 목숨을 잃는 것은 금세였다.

 

  하지만, 마귀는 개똥을 재촉했다.

 

  마귀는 개똥이 손에 쥔 몽둥이로 어서 사냥개의 부질 없는 목숨을 결딴내기를 원했다.

 

  그런 마귀의 심정을 개똥 역시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이 일을 수행하지 못하면 오늘 저녁은 굶주려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개똥은 몽둥이를 휘두를 수 없었다.

 

  그것은 개똥에게 있어 저주와도 같은 능력 때문이었다.

 

  눈을 마주치면, 목소리가 들린다.

 

  눈을 마주치는 순간, 그 어느 짐승이든 개똥은 그것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들과 소통이 가능했다. 소통이 가능한 그 순간, 개똥은 그것들을 단순한 소모품이나 놀이기구로 여길 수 없었다.

 

  “어서!”

 

  마귀가 울퉁불퉁한 치열 사이로 침을 튀기며 외쳤고, 개똥은 깜짝 놀라 앞으로 몇 걸음을 더 걸어갔다. 바로 코앞에 다 죽어가는 사냥개가 있었고, 개똥은 어쩔 수 없이 그것과 눈을 마주쳤다.

 

  ‘죽일테면, 어서 죽여.’

 

  사냥개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 씁쓸한 의지가 개똥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어, 어떻게 그래요. 저, 저는 못해요.’

 

  개똥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전했다. 그 목소리에 사냥개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어댔다.

 

  ‘흐흐흐, 어이가 없군. 이봐, 노비. 지금 네가 어떤 힘이라도 쥐고 있는 상황인 줄 아는 거야? 내 목숨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위치라고 생각해? 너 따위 노예가?’

 

  사냥개의 목소리에는 울분이 가득했다.

 

  ‘착각하지 마.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이곳의 노예야. 나는 조금 더 빨리 쓸모가 사라졌을 뿐이고, 언젠가는 네놈도 내 꼴을 면치 못하겠지. 어서 저 마귀가 시키는 대로 몸을 움직여, 이 노비 새끼야.”

 

  비아냥거리는 사냥개의 폭언에도 개똥은 쉽사리 몸을 움직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개똥은 이 사냥개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뻔히 알았다.

 

  온몸이 황토색인 사냥개는 다른 사냥개들에 비해 능력과 체격은 발군이었으나, 그 색깔이 야밤 사냥에 적합하지 않아 명망 있는 사냥꾼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결국 어정쩡하게 사냥을 즐기던 한 양반에게 거래되었는데, 채 보름도 지나지 않아 이빨과 앞다리가 상해 반품됐다.

 

  양반은 사냥개의 턱힘을 기르겠다는 명목으로 거북이 등딱지를 깨부수는 훈련을 강제했고, 절벽에 가까운 경사에서 사냥을 강행했다. 사냥개의 이빨은 성치 못했고, 사냥개는 절벽에서 굴러 떨어져 앞발이 부러졌다. 사냥은 대실패로 끝났고, 불만 가득한 양반은 사냥개를 반품하고 새로운 사냥개를 골라 가져갔다.

 

  양반의 처사가 저급했던 것이 사실이나, 마귀는 조금이라도 경산의 명성에 금이 가게 한 사냥개를 가만 두는 법이 없었다.

 

  아무리 가혹한 환경에 놓였거늘, 고작 보름밖에 버티지 못하고 돌아온 사냥개에게 마귀가 내리는 형벌은 사지를 찢는 벌이었다.

 

  마귀는 개를 죽이기 위해 만든 형벌장에 사냥개를 끌고 가 괴물 같은 악력으로 사냥개의 사지를 꽉 잡고 비틀었다.

 

  우두둑, 하고 고목이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고 사냥개는 비명을 질렀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짓이겨진 사지로 사냥개가 바닥에 털썩 떨어졌고, 마귀는 그 마무리를 친히 행할 생각이 없었다. 마귀는 옆에서 구역질을 하며 괴로움에 찬 개똥에게 강제로 몽둥이를 쥐였고, 그 후는 지금과 같았다.

 

  이 얼마나 헛된 생애란 말인가!

 

  무엇을 위해 이 생명은 태어났고, 무엇을 위해 그 고된 경산의 훈련을 받고도 이 꼴로 바닥에 주저앉은 것인가!

 

  개똥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먹먹한 가슴에서 증기가 올라왔다. 그 증기가 눈망울에 맺혀 물방울이 됐다. 눈물이 뚝뚝 아래로 떨어졌다.

 

  그 모습을 목격한 사냥개는 잠시 말을 멈췄다. 말없이 눈물만 흘리는 개똥을 잠자코 응시하다가 질문을 던졌다.

 

  ‘괴롭나?’

 

  그 물음에 개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제일 후회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

 

  사냥개의 눈에는 더 이상 독기가 없었다.

 

  ‘괴로움을 참았다는 것이야.’

 

  그것은 이름 없는 사냥개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저벅저벅, 개똥의 곁으로 어느새 다가온 마귀가 한쪽 발은 높이 들고 사냥개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수박이 터지는 듯한 굉음이 울렸고, 수박 속보다 더 빨갛고 진득한 잔해가 주변을 더럽혔다.

 

  “오늘도 실패로구나. 개들 밥 줄 시간이 다 됐다. 뒷처리는 깔끔하게 하고 나오거라.”

 

  일말의 거리낌이나 동정도 없이 마귀는 기계처럼 움직였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형벌장을 나갔다. 아직도 공포감과 충격에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 없던 개똥은 뒤로 자빠져서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봤다.

 

  개똥은 너무나도 괴로웠다.

 

  개똥은 살면서 배웠다, 괴로움은 참는 것 외엔 답이 없다고.

 

  그러나, 생애의 마지막에서 그것이 가장 큰 후회로 남는다면 이 괴로움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경산을 탈출하고 싶다.

 

  개똥의 마음 속에 작고 깊은 소망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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