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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작아지는 소녀
작가 : Me문물
작품등록일 : 2020.9.29

정신없이 돌아가는 차가운 챗바퀴 속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걷기 시작한다.
.
"루나. 제 이름은 루나에요."
...
(미계약작)E-mail: lukegirl001005@naver.com

 
1부 56화 모순
작성일 : 21-08-24 19:56     조회 : 279     추천 : 0     분량 : 4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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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특히나 넌 여자니까 더 많이.

 네가 키도 크고 건강하긴 하지만, 비슷한 체형의 남자를 힘으로 이길 수 있을 거로 생각하니?”

 “….”

 

 처음에는 욱하고 화가 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반박을 할 수 없는 말이다.

 그런데, 뭘까?

 이유 없이 오한이 등을 타고 훅 들어온다.

 

 “무력으로 이길 수 없다면 다른 힘을 가져야 해.

 그런데 그 힘을 가지기 위해선 재능과 노력만 있어선 안 돼. 다른 여러 가지 요소가 동반된다고.”

 “….”

 “두세 번만 더 말하면 만 번째 이야기하는 거야.

 제발, 널 걱정하는 엄마 생각도 해줘.”

 

 모두 자식을 생각해주는 말이다.

 아줌마는 제 자식을 걱정했다.

 분명 고된 일과를 마치고 집에 와서 옷도 갈아입지 않고 있었으리라.

 주름진 까만 스커트와 땀에 젖은 와이셔츠의 등 부분이 그걸 증명하고 있다.

 기다리는 동안 떠올렸던 황당하고 허탈할 정도로 어이없는 무수히 많은 망상과.

 어디 가서 밥은 챙겨먹었을지.

 그런 사소한 부분부터 시작했을 크고 작은 걱정은 화로 분출되고 있다.

 그래, 아마도 자식을 걱정하는 엄마라면 이게 정상이다. 맞아….

 

 근데 묘하게 거슬리는 이 이유는-.

 

 “이번에 성적이 떨어진 거로 몇 번 이야기 했다고 큰 부담으로 여기진 않았으면 좋겠어.”

 “…부담.”

 

 아.

 이거였구나. 위화감의 정체가.

 하하.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설마 그런 건 아니지?

 루나야, 이번엔 성적 떨어지면 안 돼.”

 

 정안이가 부엌에서 밥을 제대로 삼키지 못하고 쓰러졌던 때가 떠올랐다.

 그 때 참 작고 여리다 생각했는데.

 엄마한테 사랑받고 싶어 하는 애가 왜 이리 새파랗게 질렸을까-.

 

 -이번엔 아줌마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네.

 

 “만약 떨어져서 도시 쪽으로 가지 못하면 넌, 넌.”

 

 가지 못하면?

 

 “엄마처럼 살아야 하잖아.

 지금은 중요한 시기니까 다른 건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다른 쪽으로 새다가 정작 해야 할걸 놓칠까봐 걱정 돼.”

 “다른 쪽이라는 게 뭔데요?”

 “학생 신분일 때 해선 안 되는 것들이지.”

 “하.”

 “근데 지금 말대꾸하는 거야, 엄마 말하는데?

 너 진짜 엄마한테 못하는 소리가-.”

 

 커다란 소음이 바로 앞에서 울린다.

 아줌마가 하는 모든 말들이 소음 그 자체다.

 

 귀에서 피날 것 같아.

 

 “….”

 “뭐니, 그 반응은?”

 “저 이만 들어가 볼게요.”

 “루나야?”

 “퇴근하고 기다리느라 많이 피곤하셨을 텐데, 푹 주무세요.”

 

 그대로 뒤로 돌아 2층으로 향했다.

 더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루나야. 루나. 이루나.

 뒤에서 아줌마가 이름을 부르든 말든 몸은 발을 따라 움직였다.

 겉은 무미건조한 표정을 유지했지만,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루나야!”

 

 아줌마가 손을 잡으며 이름을 불렀다.

 루나. 이루나.

 이름을 부르는 몇 마디에 간신히 억누르고 있던 분노가 빠르게 목구멍까지 타고 올라왔다.

 

 “엄마 말 아직 안 끝났어.”

 “쉬고 싶어요.”

 

 아줌마가 다른 손으로 팔을 잡고 끌어당겼다.

 

 “엄마랑 약속해. 다른 길 안 새겠다고.”

 “어머니, 쉬고 싶어요.”

 

 말을 하면서도 몸은 점점 저쪽으로 끌려갔다.

 안 가보겠다고 버텨도 발은 질질 끌었다.

 아줌마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립스틱이 진하게 발린 붉은 입술은 화장이 반쯤 벗겨졌고.

 그 바람에 안쪽의 거무죽죽한 색이 그대로 드러났다.

 커다란 눈이 제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온몸이 덜덜 떨렸다.

 차가운 손에 잡혔는데 몸에 붙어 있는 손이 더 차갑다.

 어디로 시선을 두어야 할지 몰라 눈알을 굴렸다.

 저 눈으로 제 몸을 훑어 생각까지 본다는 생각이 들자 아예 고개를 돌렸다.

 몸이 당장이라도 뒤로 넘어갈 것처럼 위태로웠다.

 

 침 넘어가는 소리.

 식도로 내려가며 보일 것 같은 작은 목젖.

 다시 저 눈과 마주치면 뭐든 인정해야 한다.

 그런 생각이 끊임없이 흘러들어왔다.

 

 “솔직히, 지금 네가 왜 쉬고 싶다는 건지 모르겠구나.”

 “그게 집에 온 사람한테 할 소리예요?”

 “네가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나?

 안 되겠다. 너 엄마랑 다시 이야기 좀 해야겠다.”

 “놔요.”

 

 제 방으로 끌고 들어가려 하자 잡은 손을 강하게 뿌리쳤다.

 아줌마는 당황한 듯 손을 매만지며 한 발자국 물러섰다.

 서 있는 자리가 현관 앞이었다.

 

 “진짜 자기 생각밖에 안 하시네요.”

 

 그 말이 끝나자 아줌마는 손으로 제 눈을 덮고 깔깔거렸다.

 제 자식이 예의 없게 이런 소리를 하니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그조차 허벅지에 딱 붙는 검정 스커트 때문에 다소곳한 자세가 돼버렸다.

 아줌마는 곧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너야말로 네 생각만 한다?”

 

 무슨, 웃겨 정말.

 급하게 던지는 말이 같잖게 들린다.

 억누른 화는 배에서 위로 올라가겠다고 속에서 팔팔 끓는다.

 

 “나이는 먹고 몸은 커지는데 생각하는 건 애처럼 생각하고.

 아이고, 다 내 죄야 내 죄.

 잘한다, 잘한다. 칭찬만 하니까 자기가 최고인 줄 알아! 아이고-.”

 

 급기야 앞에서 대놓고 가슴을 퉁퉁 치며 통곡한다.

 눈물이라도 좀 흘리고 말을 하든가.

 

 “네가 널 얼마나 걱정했는지 얼마나 아니?

 갑자기 얘가 왜 사라졌지, 혹시 납치라도 당한 건 아닐까?

 하루만 더 안 오면 파출소에 신고할 생각으로 있었단 말이다.”

 “네, 그러셨을 것 같아요…근데.”

 

 실오라기 같은 이성이 잠깐 뇌를 붙잡았다.

 곧 놓쳐버려서 의미는 없었지만.

 

 “…진짜로 자식 생각하긴 했어요?”

 

 벌컹벌컹 거리던 가슴이 잠깐 작아졌다 커졌다.

 앵앵거리던 복도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제 가슴을 치던 손도 멈췄다.

 바닥을 찌르던 아줌마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심장 소리는 여전히 크게 들렸다.

 사람은 둘인데 존재하는 건 하나인 것 같다.

 

 “이루나. 말 똑바로 해.”

 “뭘 똑바로 해요?

 당신 자식 생각하기는 하냐고요.”

 “이루나!”

 

 두 손이 이쪽으로 올라와 양 어깨를 강하게 짓눌렀다.

 잡을 새도 없이 그대로 벽에 등을 박았다.

 

 “악!”

 “너-.”

 

 아줌마의 흐느끼는 목소리가 가슴 아래서 들린다.

 듣다 보니 분필 소리 같아서 양손으로 귀를 막고 싶은 욕구가 올라왔다.

 

 “네가, 네가 진짜 내 자식이야?”

 

 그렇게 말하자 초점 없이 흐릿하던 눈이 절로 아줌마에게 향했다.

 아까는 소리만 내더니 이번엔 진짜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아니요.

 근데 진짜 자식은…저도 모르죠, 아주머니.

 

 입을 열었지만, 그 말을 내뱉진 못했다.

 그 순간 목을 조르던 과거 아줌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직까지는 깨끗한 식도 아래서 뭔가가 올라온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이죠. 저는 어머니 딸이에요.”

 “근데 왜 그렇게 쳐다봐.

 엄마를 보는데, 왜 그렇게 하찮다는 것처럼 보냐고!”

 “…그게.”

 “엄마가 하찮아? 거슬려? 꼴도 보기 싫어?”

 “아니, 그러니까-악!”

 

 어깨를 누르는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간다.

 저 나름의 참는다고 한 거지만 오히려 그 감정이 온몸에 느껴졌다.

 

 “엄마가 아주 그냥 싫지?

 제발 죽어버렸으면 좋겠지? 어? 어어?”

 

 쿵쾅대는 심장 소리.

 귓가에서 윙윙거리는 공기.

 비명 같은 소음.

 수많은 모기가 날갯짓을 하며 온몸을 덮친 것 같다.

 

 도망치고 싶어.

 그래, 차라리 이 순간만큼은 모기가 되고 싶어.

 피를 빠는 모기는 날개와 듣기 싫은 소리가 있잖아?

 손에 짓눌려 몸이 터져 죽더라도 이 상황에서 묶일 필요는 없을 거야!

 

 그렇게 생각한다고 모기가 될 수 있을 리가.

 대신 모기소리 만큼이나 귀를 울리는 소음이 자리하고 있다.

 

 “엄마도 이런 엄마가 싫어. 엄마는-.”

 “힘들어요.”

 “…뭐?”

 “아까부터 쉬고 싶다고 이야기했어요.

 근데 어머니는 제 입장은 생각도 안 하시면서 어머니의 처지를 생각해주시길 바라는 건가요?”

 “루나야.”

 “벌써 네 번째 말씀드리는 거지만, 쉬고 싶어요.

 이만 놔주세요.”

 “이루나!”

 

 뿌리치려 하자 비명 같은 고함이 복도 전체를 울렸다.

 꾹 누르고 있어 아주 작아졌다고 생각한 불이 다시 타오르는 듯했다.

 고개를 돌려 아줌마를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어머니, 제 방까지 따라오시면….”

 

 죽여 버릴 거예요.

 

 “…다시는 얼굴 안 봐요.”

 

 양심과 도덕은 있던 것일까?

 차마 그 말까지 내뱉을 순 없었다.

 붙잡고 있던 아줌마의 손을 손으로 풀어버리고 걸어갔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힐끔 뒤를 돌아봤다.

 아줌마는 벽으로 밀어 버렸던 그 자리서 멍청하게 벽을 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아마 조금만 더 늦었으면 감정이 이성을 이기고 튀어나왔을 것이다.

 …이미 다른 말로 튀어나온 것 같지만.

 그 수습을 할 생각은 없다.

 내일도 아침은 차려져 있을 테고 다시 대화는 할 테니까.

 

 2층으로 올라가자 어두스름하게 나마 팻말이 달린 방이 보였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닫고 침대 위로 풀썩 쓰러졌다.

 침대는 통통 소리를 내며 진동이 작게 일다 곧 멈췄다.

 

 “후. 여태까지 어떻게 버틴 거니.

 정안이도, 너도.”

 

 깜깜한 방에서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말을 내뱉는다.

 시간이 좀 지나니 눈이 어둠에 익숙해졌다.

 

 “아, 이런 거에 익숙해지면 안 되는데.”

 

 제 자식을 보호하며 척을 치던 그 얼굴.

 이번엔 자식을 훈육한답시고 다시 화를 냈다.

 여태 저 얼굴만 보면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는데.

 아줌마의 말에 화가 나면서도 지나치게 차분했다.

 

 자신의 자식을 생각하는 모습.

 멋대로 외박을 하고 돌아와 화가 난 어머니.

 구속하거나 과한 보호를 하는 경향이 있어도 어머니니까.

 

 물론 심장도 빠르게 뛰고 앞에서 화를 내는 이 사람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그녀가 무서워 눈을 피할까 봐 손톱으로 다른 손을 세게 누르며 정신을 붙들었다.

 다리는 후들후들 떨어 까딱하다간 스스로 쓰러질 듯했다.

 그런데도 상황을 볼 수 있었다.

 손을 뻗어 몸을 만져도 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았다.

 

 자식이 된 입장이라 목이 졸리진 않으리라-.

 그런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제 손으로 이 목을 조른다 해도 상관없었다.

 설령 다친 데 없냐고 다정하게 껴안아도 별 느낌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당황했고 화가 났다.

 점점 말에서 묘하게 드러나는 자신의 욕망과 소유욕.

 당신의 야망을 실현할 가능성이 작아지는 걸 아는지 확신 받고 싶어 하고.

 자식의 의견을 들으려는 듯 질문을 던졌지만, 결과적으로는 자기 할 말만 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 차분함이 무너져 내렸다.

 

 진짜 내 어머니도 이런 사람이었을까?

 불안한 생각이 순간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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