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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달빛이 그린 나라
작가 : 서늘솔길
작품등록일 : 2021.2.15

신개념 설렘 가득 첫사랑 로맨스!!!
어린 시절의 상처를 치유하는 상처치유 로맨스!!!
그리고,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엿 볼수 있는 가슴아픈 이야기!!!

17세기 우리나라역사에 실제로 존재했던 조선 제 16대 임금 인조의 아들인 소현세자와 그의 부인 세자빈 강 씨(강빈)의 삶과 사랑을 소설 속 가상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이 소설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소현세자와 강빈 부부를 삶과 그들이 하고자 했던 꿈을 이야기 하는 동시에 그 시대에 사람들이 격은 고통, 삶을 들여다본다.

*이 소설은 실제 역사 속 인물을 모티브 한 소설로 실제 역사 속에 등장하는 인물, 사건 등과 많이 차이가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제1화-가을 밤 달빛 아래
작성일 : 21-02-16 11:51     조회 : 255     추천 : 0     분량 : 16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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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군이 폐위 된지 8년,

 

 8년이라는 세월은 강물과 같았고 문조 치하의 조선은 절벽위의 흔들다리처럼 아슬아슬하고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공포의 나날들이었다.

 

 즉위 초, 유배를 갔던 유성군을 따르던 북인 유정훈, 김정찬 등 열 명이 유성군을 다시 복위시키기 위해 난을 일으켰다.

 

 이들은 황해도에서 시작해 5일 만에 한양을 발 빠르게 점령했다.

 

 병조판서 정의영이 이끄는 금군들에 의해 진압되고 말았다.

 

 결국, 이 난으로 난을 일으켰던 자들은 참수되었고 문조는 이 명분으로 유성군에게도 죄를 물으려고 했다. 하지만 조정신료들의 반대로 또 다시 넘어 갈 수밖에 없었다.

 

 유성군을 죽일 기회를 또 한 번 놓친 문조.

 

 그는 유성군을 살려두자는 조정신료의 뜻을 받아드리는 대신 유성군 아들 질에게 사약을 내려 난을 일으킨 죄를 묻겠다고 했다.

 

 조정신료들은 논의 끝에 이를 반대하지 않았고 아들 질을 사사함으로 북인이 주도한 유성군 복위 운동은 마무리가 되었다.

 

 

 ***

 난이 종결된 후 3년 뒤.

 

 왕실의 큰 어른인 대왕대비 김 씨가 창경궁에서 쉰네 살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대왕대비 김 씨는 열여섯 어린 나이에 유성군과 덕성군(문조)의 아버지인 선종의 계비가 되었다.

 

 유성군 보다 다섯 살 많았다.

 

 그녀는 일찍이 생모를 잃은 유성군과 덕성군을 친자식처럼 아끼고 보살폈다. 특히, 장자인 유성군은 아꼈다.

 

 하지만 이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녀가 열여덟 살이 되던 해에 그녀는 선종의 적통왕자인 대군 의를 출산했다.

 

 그리고 3년 뒤, 선종은 유성군이 학문이 높고 효성이 깊으며 서출이지만 장자라는 이유로 그를 세자로 책봉을 했다. 이후, 중전 김 씨는 유성군은 경계했다.

 

 후궁의 소생이지만 세자로 책봉된 유성군, 장자는 아니지만 적통왕자인 대군 의.

 

 이는 훗날, 궐 안에서 벌어질 풍파를 예고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걸 알기에 대군의 생모인 중전 김 씨는 항상 불안과 초조함, 두려움과 함께 살얼음판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 후 3년 뒤에 선종이 승하하였고 선종이 승하하자마자 대비 김 씨가 걷고 있던 살얼음판은 쉽게 깨져 버렸다.

 

 의를 눈에 가시처럼 여기던 북인들은 역모를 꾸며 그것을 의에게 뒤집어 씌웠고 유성군은 그것을 알면서도 외면했다.

 

 결국, 유성군은 고작 아홉 살인 어린 의를 사사시켰다.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대비의 억장이 무너졌다. 그녀는 숨이 막히고 매일 밤마다 커다란 못하나가 그녀를 찔러댔다.

 

 이는 유성군과 북인에 대한 원망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거기다 대비 김 씨는 그저 대군을 낳았는 이유만으로 서궁으로 쫓겨났다.

 

 그렇게 그녀는 23년 동안 서궁에서 아무런 희망도 꿈도 없이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산송장처럼 지냈다.

 

 그리고 23년 뒤 덕성군이 반정을 일으켜 유성군을 폐위시키려고 하자 서인들의 설득으로 의지를 내려 유성군을 폐위시켰다. 하지만 유성군이 폐위됐다고 대왕대비 김 씨가 가지고 있었던 23년 동안 맺힌 한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유성군으로 인해 아들을 잃었는데 겨우 유배를 가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는 소리를 들은 대왕대비 김 씨는 자기 분을 못 이겨 쓰러졌고 결국, 화병(火病)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녀의 죽음으로 사람들은 안타까워했다.

 

 대왕대비의 죽음으로 조선은 슬픔에 빠졌다.

 

 

 ***

 대왕대비 김 씨가 승하한지 6개월 뒤 여름.

 

 도성에 커다란 태풍이 몰아쳤다.

 

 그로 인해 많은 사상자가 생겨났고 곡간이 물에 잠겨 남아 있는 식량 또한 없어 굶어 죽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거기다 역병까지 돌아 도성은 눈물과 암흑의 중심이 되어버렸다.

 

 이를 지켜 본 문조는 이를 기회삼아 사람들에게 임금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문조는 구휼미를 내려 굶주린 사람들에게 곡식 등을 나누어 주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사람들은 문조를 향해 따가운 시선을 보냈다.

 

 건원릉(健元陵 : 경기도 구리시에 위치한 태조 이성계의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사람들이 입은 닫고 있지만 분명 자신을 향해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을 문조는 느꼈다.

 

 ***

 사실은 이러했다.

 

 포도대장 김자영이 호조판서 이승복과 좌의정 윤선호를 꼬드겨 문조가 사람들에게 내린 구휼미들을 임금의 눈을 가리고 중간에서 가로채 자신들의 곡간으로 신주단지를 모시듯 귀하게 데리고 갔다.

 

 특히, 김자영은 명나라에서 황제가 문조에게 준 귀한 명나라 황실 비단과 내탕고(內帑庫 : 조선시대 임금의 재산을 모아두는 곳)로 들어가야 할 것들을 자신의 집 깊은 곳으로 몰래 빼돌렸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들이 문조의 귀에 들어갈까 김자영은 사람들에게 문조가 개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구휼미를 빼돌려 종친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거짓 소문을 퍼트렸다.

 

 이러한 소문들은 사람들 사이에 마치 사실처럼 퍼져갔고 사람들은 문조와 왕실에 대한 신뢰가 깨져버렸고 당연히 문조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안 좋은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을 모르는 문조는 사람들이 임금을 기만한다며 김자영에게 하소연 하였고 김자영은 자신이 저지른 만행들을 덮기 위해 사람들이 아직도 유성군을 임금으로 섬긴다며 문조와 사람들 사이를 이간질 하였다.

 

 김자영의 이 같은 이간질에 넘어간 문조는 그를 앞세워 사람들을 역모의 죄를 묻겠다며 사람들을 탄압시켰다.

 

 그리고 내려졌던 구휼미 또한 중단시켰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원성을 높아져만 갔다.

 

 하지만 임금의 총애를 믿고 기고만장한 김자영 때문에 사람들은 불만이 있어도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불만을 입 밖으로 꺼내려 할 때마다 임금의 신뢰를 받은 김자영이 임금의 허가도 없이 독단적으로 불만이 가득한 사람들을 처단해버렸기 때문.

 

 그 때문에 사람들은 불만이 있어도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입 밖으로 꺼낼 수도 없이 숨을 죽이고 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사람들이 굶어 죽는 일은 일상화 되었다.

 

 그렇게 조선은 유성군의 말대로 점점 쇠퇴하고 먹구름이 끼고 황폐해져갔다.

 

 

 ***

 문조8년 어느 가을날.

 

 사람들은 평상시처럼 저잣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저잣거리에는 한 달을 굶어 쌀을 훔쳐서 도망가는 자들, 눈이 보이지 않아 사람들에게 조롱을 당하는 자, 며칠을 먹지 못해 뼈가 보일 정도로 서있는 아이들 등이 있었다.

 

 멀쩡하고 평범한 사람들도 있기는 있었지만 그 수는 소수에 불과했다.

 

 “간택령이오!”

 

 간택령이 떨어졌다.

 

 문조의 맏아들인 왕세자 이문의 가례를 위해 세자빈 간택을 시작하니 열한 살부터 열아홉 살이 되는 사대부집 처자들은 처녀단자를 넣으라는 명이였다.

 

 “그게 뭔가?”

 

 간택령이 내려지자 관심을 갖는 사람들.

 

 “왕세자의 혼기가차 왕세자빈을 간택하고자 하니 사대부집 여식은 처녀단자를 넣으라고 쓰여 있네.”

 

 “어이구, 세자저하께서 드디어 가례를 올린다니 경사네. 경사.”

 

 “맞아, 경사네.”

 

 이렇게 왕세자의 혼인이 경사라며 반기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경사는 무슨, 세자인지 세제인지 뭐 시기가 가례를 올리든 말든 우리랑 무슨 상관이래. 그런다고 우리 먹고사는데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데.”

 

 “그건 그래.”

 

 또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왕실이 왕세자의 가례보다 자신들을 먹고 사는데 신경 좀 써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그들이었다.

 

 그래서 왕세자빈의 간택령이 반갑지도 기쁘지도 않고 세자빈을 간택을 하던 하지 않던 상관도 없었다.

 

 

 ***

 궐 안 동궁전.

 

 이번 가례를 치러야 하는 주인공 열아홉 살 세자이문(李門)이 손톱을 물어뜯으며 동궁전 바닥을 좌우로 마치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쿵쿵거리고 있었다.

 

 “저하, 이러다 동궁전 바닥이 내려앉겠습니다. 그러니 차분히 자리에 앉고 차분히 계시옵소서.”

 

 정신없게 돌아다니는 문을 진정시키는 동궁전 내관 한으뜸.

 

 “내가 지금 차분하게 생겼느냐?”

 

 으뜸의 말에 문은 괜히 짜증을 부렸다.

 

 “그렇게 안절부절 한다고 해서 해결 될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제발, 제발 차분히 앉아서 생각을 정리하십시오, 저하.”

 

 “이씨...”

 

 문은 으뜸을 째려봤다.

 

 으뜸은 겁을 먹고 고개를 숙였다.

 

 지금 머릿속이 복잡한데 으뜸까지 떠드니 괜스레 열이 올라오는 문.

 

 “아무래도 안 되겠다. 중궁전으로 가 마마를 뵈어야겠다.”

 

 “그게 중궁전에 가신다고 하여 해결 될 일인지. 그러다 중전마마께 꾸중만 들으십니다.”

 

 “그럼, 이대로 가만히 있으랴? 가서 뭐라도 해봐야지. 어서 가자!”

 

 “저, 저하.”

 

 문은 으뜸의 만류에도 밖으로 나갔다.

 

 으뜸의 만류를 무시한 채 문은 동궁전 밖으로 가볍게 아무런 생각 없이 나왔다.

 

 그런데 막상 대조전(大造殿 : 왕비가 머무는 전각)으로 향하려고 하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긴장이 돼서 가을인데도 이마에 식은땀도 흘렀다.

 

 문의 어머니 현의왕후 권 씨는 한없이 인자롭지만 동시에 한없이 단호하면서 무섭고 냉철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문과 사이가 서먹했다.

 

 하지만 가서 자신의 입장을 당당히 말을 해야 하기에 강한 마음을 먹고 발을 어렵게 떼어 대조전으로 걸어갔다.

 

 

 ***

 문이 무거운 발로 겨우겨우 대조전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중전마마께서는 안에 계시는가?”

 

 문이 조상궁에게 물었다.

 

 “예, 세자저하.”

 

 “고해주시게.”

 

 “예.”

 

 조상궁이 안으로 들어가자 문은 이마에 흐르고 있는 땀을 닦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중전마마, 세자저하께서 오셨사옵니다.”

 

 “세자가? 들라 이르라.”

 

 현의왕후 권 씨의 허락에 문은 대조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어머니인 현의왕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중전마마.”

 

 “그래, 이 시간에 무슨 일이...”

 

 “중전마마 세자빈 간택을 거두어주십시오. 중전마마, 제발요.”

 

 문은 어머니에게 징징거렸다.

 

 아들의 철없는 모습에 현의왕후는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세자! 지금 어딜 와서 떼를 쓰는 것이야!”

 

 현의왕후가 문을 꾸짖었다.

 

 “...”

 

 “지금 세자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떼를 쓰며 징징거리는 것입니까!”

 

 “송구, 송구하옵니다.”

 

 어머니의 꾸짖음에 문은 개미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아홉 살 먹은 어린아이도 아니고 이 시간에 중궁전까지 와서 징징거리면서 하는 말이 간택을 미뤄달라고? 철이 없어도 이리 없을 수가.”

 

 “송구하옵니다.”

 

 “그래, 왜 간택을 미루어 달라는 것입니까? 전에도 세자께서 부탁하여 간택을 미뤘습니다. 근데 이번에도 미뤄 달라? 이유라도 들어봅시다.”

 

 “그것이, 저는 아직 혼인할 생각이 없습니다.”

 

 “쯪쯪쯪, 아직도 이리도 철이 없는 소리를 하다니. 겨우 혼인 할 생각이 없어서 미뤄 달리는 것입니까? 세자, 아니 문아 왕실 혼인은 그것도 왕세자인 네 혼인은 네가 싫다고 해서 그냥 넘어 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네가 혼인을 해야 왕실이 번영하고 안정을 되찾는다. 그걸 모르느냐?”

 

 “압니다. 하오나...”

 

 “그래, 네 말대로 아직 혼인을 할 생각이 없어서 겨우 그런 이유 때문에 이번 간택도 미루자 치자 네 나이 몇이냐? 열아홉이다. 이미 가례를 올릴 나이가 한참 지났어. 그럼, 대체 언제 혼인을 하겠다는 것이냐?”

 

 “...”

 

 현의왕후의 물음에 답이 없어진 문.

 

 “겨우 그런 이유라면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그만 물러가거라.”

 

 “중, 중전마마.”

 

 “어허!”

 

 현의왕후는 단호했다.

 

 어머니의 단호함에 문은 힘이 빠졌다.

 

 문이 배우자를 두기 싫어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문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인 문조와 어머니인 현의왕후가 다투는 모습을 자주 목격을 했다.

 

 

 아버지 문조는 자식들보다 권력에 욕심과 관심이 많아 큰아버지(유성군) 눈 밖에 난 무능한 종친이었고 그런 남편의 모습에 그의 어머니 현의왕후는 문조를 매일 구박하고 한심한 종친이라고 면박을 줬다.

 

 두 사람은 매일 타인들의 눈과 귀들을 신경 쓰지 않고 밤이고 낮이고 가릴 것이 없이 목소리를 높여가며 다투었다.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목격한 문의 마음속에는 상처가 생겨버렸다.

 

 그래서 그런 상처와 기억 때문에 혼인을 미루고 싶었다.

 

 아니 아예 혼인하기가 싫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기에 최대한 미룰 수 있을 때 까지 미루어 보자는 심보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도 더 이상 안 되는 문은 마음이 찹찹해졌다.

 

 

 ***

 문이 중궁전 밖으로 나왔다.

 

 기운이 빠지고 앞날이 막막했다.

 

 하늘은 맑고 쨍쨍한데 자신 앞날은 어두우니.

 

 “저하께서 이 시간에 중궁전까지 어쩐 일이 십니까?”

 

 밖으로 나오자 문이 문조 후궁이자 문의 이복동생 순월군 이경(順月君 李景)의 생모인 소의 권 씨(소의(昭儀): 내명부 정 2품 후궁)와 마주했다.

 

 소의 권 씨는 문을 보고 친절하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아무 일도 아닙니다. 중전마마께 부탁드릴 것이 있어 온 것이니 소의께서는 볼일보고 가시지요. 그런, 저는 이만.”

 

 반면, 문은 소의 권 씨에게 냉대했다.

 

 “예, 저하. 살펴가소서.”

 

 문은 찹찹한 마음으로 풀이 죽은 뒷모습으로 동궁전으로 돌아갔다.

 

 동궁전으로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친절한 미소를 짓던 소의 권 씨의 눈빛이 싸늘하게 바뀌면서 또 다른 얼굴을 내비췄다.

 

 

 ***

 동궁전.

 

 돌아온 문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두 팔을 상에 올리고 두 손을 턱에 대며 찹찹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푹푹 내뱉었다.

 

 “세자저하, 공주마마께서 오셨사옵니다.”

 

 “모셔라.”

 

 문의 누나 덕순(悳淳)이 왔다는 말에 문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누나를 맞이했다.

 

 덕순이 안으로 들어오자 그녀는 풀이 죽은 문을 보고서 으뜸에게 소리 없이 ‘무슨 일이냐?’라고 물었다.

 

 으뜸은 덕순의 물음에 손짓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덕순은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님이 여긴 어인 일이십니까?”

 

 “왜 긴요. 제가 못 올 때라도 왔나요. 우리 사랑스럽고 귀여운 내 아우 우리 세자저하 보고 싶어서 왔지요.”

 

 “아이...그만하십시오. 토할 것 같습니다.”

 

 덕순의 말에 문은 질색을 했다.

 

 “표정이 어두운 것을 보니 혼인하기 싫어 세자빈 간택을 미뤄 달라고 어마마마께 징징거리면서 때를 썼는데 오히려 어마마마의 역정만 사서 혼이 나셨군요.”

 

 “그걸 어찌 아셨습니까? 혹시, 누님 관상도 보십니까?”

 

 “뭐래니.”

 

 “아!”

 

 덕순은 문의 얼토당토한 말에 손으로 동생의 머리를‘탁’크게 소리가 나게 때렸다.

 

 문은 맞은 곳을 비벼댔다.

 

 “바보 멍충이.”

 

 “아픕니다. 아니, 세자의 머리를 그리 막 때려도 됩니까?”

 

 “세자면 뭐? 나를 역모 죄로 쫓아낼 것이냐? 세자의 입에서 관상은 무슨, 왜 아예 신 내림 받았냐고 그러지.”

 

 “쳇.”

 

 “한내관이 손짓으로 다 말했다.”

 

 문은 옆에 있던 으뜸을 째려봤다.

 

 그리고 입모양으로 ‘너 이씨’라고 하는 문.

 

 으뜸은 시선을 딴 곳으로 옮기며 문의 따가운 눈빛을 피했다.

 

 “으뜸이를 그리 째려보지 말거라. 한내관은 내 물음에 답을 한 것이니. 혼인하기 싫으냐?”

 

 덕순은 문이 혼인하기 싫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그 이유 또한 알고 있었다.

 

 덕순 또한 문과 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기에.

 

 “어떻게 방도가 없겠습니까?”

 

 “왕실을 위해 혼인 결국 해야 한다. 너는 세자이니.”

 

 “압니다.”

 

 “그럼, 언제하든 결국해야하는데. 혹시, 마음에 두고 있는 여인이 있느냐?”

 

 “없습니다. 맨날 천 날 궐 안에만 있는데. 근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십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저절로 혼인을 할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거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네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그 돌덩이들도 가라앉게 될 것이다. 어차피 해야 될 혼인이라면 마음에도 없는 사람이랑 하기 보다는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혼인이 더 좋지 않으냐?”

 

 “...”

 

 문은 덕순의 말에 어차피 해야 될 혼인이라면 차라리 사랑하는 여인과 하는 것이 더 났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그런 혼인을 하겠습니다. 근데, 그런 사람을 어디서 찾습니까?”

 

 “그거야, 네가 찾아 봐야지. 네가 사랑하는 사람을 네가 찾아봐야지.”

 

 “...”

 

 문은 사랑하는 사람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몰랐다.

 

 “그럼, 누님께서 그런 여인을 소개 시켜주시면 안 됩니까?”

 

 “야, 내 주변에 있는 아이들 중에서 너를 좋아할 만한 아이가 있을 것...아니다. 그래, 있을 수도 있겠다.”

 

 덕순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번뜩 자신의 벚들 중 문을 좋아한다고 했던 어떤 아이가 스쳐지나갔다.

 

 “그래, 그 아이는 널 좋아한다. 아니 분명 나한테 널 좋아한다고 연모하는 것 같다고 그 아이 입으로 들었어.”

 

 “그게 누굽니까?”

 

 문은 그게 누군지 몹시 궁금해졌다.

 

 그런데 덕순은 그 아이가 누군지 말을 해주지 않고 능글맞게 웃기만 한다.

 

 누나의 반응에 궁금증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문.

 

 “한내관. 한내관? 야, 한으뜸!”

 

 으뜸을 부르는 덕순.

 

 그런데 으뜸이 답을 하지 않는다.

 

 소리를 지르는 덕순.

 

 “예? 예, 마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깜짝 놀라는 으뜸.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 것이야? 멍하니 있지 말고 지필묵을 좀 가져 오거라.”

 

 으뜸이 지필묵을 준비하자 덕순은 서찰을 써내려갔다.

 

 그리고 다 쓴 서찰을 덕순은 봉투에 넣었다.

 

 “밖에 복실이 있느냐?”

 

 “예, 마마.”

 

 “잠시만 안으로 들어오너라.”

 

 동궁전 나인 박복실이 안으로 들어왔다.

 

 “예, 공주마마 부르셨사옵니까?”

 

 “이걸 병조판서 정의영의 여식 정한빛에게 전해주거라. 그리고 그 아이가 다 읽으면 은혜당으로 데리고 오도록 해라.”

 

 복실은 덕순이 시키는 대로 편지를 받고 곧 바로 정의영의 집으로 향했다.

 

 “누님, 병조판서 정의영의 여식이라면 그 못 생긴 정한빛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그 아이가 어릴 적 제게 분명 세자저하를 연모한다고 했습니다. 뭐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에이, 설마요. 누님이 잘 못 들으신 것이 아니고요?”

 

 “제가 잘 못 들었는지 아닌지는 그 아이를 한 번 직접보고 말씀하시지요.”

 

 문은 덕순의 말에 갸우뚱했다.

 

 누나 덕순의 말을 믿지 못했다.

 

 싫어하고 원망하면 원망했지 한빛이 자신을 좋아할 리가 없는데 말이다.

 

 한빛은 덕순의 어린 시절부터 같이 공부하고 놀던 덕순의 가장 절친한 벚이다.

 

 나이는 문과 같다.

 

 문은 어릴 적 한빛을 ‘못난이’, ‘주근깨 애기씨’라고 놀려댔다.

 

 유일하게 그녀에게만 놀려댔다.

 

 그래서 문은 한빛이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빛이 자신을 연모하고 있다고 한다.

 

 문이 누나의 말을 못 믿는 건 당연했다.

 

 

 ***

 정의영의 집.

 

 어떤 한 여인이 마루에 나와 서책을 보면서 미소를 짓고 있다.

 

 그 여인은 복실에게 서찰을 받을 정의영의 외동딸 정한빛.

 

 한빛은 오른손에는 서책을 들고 왼손은 자신의 입과 눈을 번갈아 갖다 대며 서책을 보면서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한빛이 읽고 있는 서책의 제목은 「조선 연애사의 모든 것, 한양 편」이라는 저잣거리에서 유행하는 연애 소설이었다.

 

 “어우, 참.”

 

 한빛은 혼자서 책을 보면서 쑥스러워하며 감탄을 연발했다.

 

 그녀는 뒤에서 누가 오는지도 모르고.

 

 “아씨!”

 

 “어우, 깜짝아!”

 

 한빛을 놀래킨 사람은 집안 가노(家奴)이자 한빛의 벚인 최은금.

 

 은금은 한빛의 반응을 보고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실실 웃었다.

 

 은금 때문에 한빛은 당황하며 읽고 있던 서책을 재빠르게 덮고 뒤로 숨겼다.

 

 “뭘 하고 계셨습니까?”

 

 은금은 장난스러운 말투로 한빛에게 물었다.

 

 “도, 독서중이잖아.”

 

 말을 더듬는 한빛.

 

 그런 한빛이 더 수상한 은금.

 

 “무슨 서책을 읽고 계셨는데 당황하십니까? 뭐 이상한 야설 같은 거라도...”

 

 “아니거든! 그냥. 그냥 여기저기서 떠도는 얘기를 그 뭐냐 함축해서 여차저차해서 만든 그거야. 어, 그래. 하. 하. 하.”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저잣거리에 인기 있는 소설책이라고.”

 

 “재밌어요? 그럼, 같이 좀 읽어요.”

 

 “아이, 됐어. 재미없어.”

 

 한빛은 재미없다는 핑계를 대며 서책을 뒤로 숨겼다.

 

 은금은 개구쟁이 같은 눈빛으로 한빛을 간질여 폈다.

 

 “아, 하지마. 간지럽다고. 하지마.”

 

 “그러니깐 같이 좀 보자고.”

 

 “싫어, 네 돈으로 사서 봐.”

 

 한빛이 서책을 줄 때까지 그녀의 약점을 공략하는 은금.

 

 한빛은 웃으면서도 끝까지 책을 숨겼다.

 

 

 ***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복실이 밖에서 대문을‘쾅쾅쾅’하고 두드렸다.

 

 “뉘십니까?”

 

 정의영의 집 또 다른 가노인 행랑아범 강일이 문을 열어줬다.

 

 강일은 문을 열고 복실을 발견하고 누구냐고 물었다.

 

 “여기가 병판대감의 댁이 맞습니까?”

 

 “그렇소.”

 

 “저는 공주마마 명으로 궐에서 나온 나인입니다. 공주마마께서 이 댁 아씨께 서찰을 전달하라고 하셔서. 혹, 안에 계십니까?”

 

 “공주마마께서 우리 아씨께 말입니까? 예, 지금 계시기는 합니다. 잠시만 기다리시구려. 아니지,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들어와 저를 따라오십시오.”

 

 강일은 복실을 한빛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복실은 집안으로 들어가 강일을 따라갔다.

 

 

 ***

 강일은 복실과 함께 한빛의 방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강일이 온 줄도 모르고 장난을 치며 웃고 떠들고 있는 한빛과 은금.

 

 “아씨.”

 

 강일이 공손하게 한빛을 불렀다.

 

 “무슨 일입니까?”

 

 한빛의 눈에는 얼마나 웃었는지 눈물이 고여 있었다.

 

 눈물을 닦고 은금과 함께 강일에게 다가가는 한빛.

 

 “궐에서 항아님(궁녀를 부르는 말)이 오셨습니다.”

 

 “항아님이요?”

 

 복실을 위아래로 보는 한빛.

 

 “아씨를 보러오셨다고 합니다.”

 

 “저를요? 아버지가 아니고요?”

 

 강일은 두 사람이 얘기할 수 있게 스스로 물러갔다.

 

 “궐에서 오셨다고요? 어느 처소의 나인이십니까? 그보다 저를 왜 찾아오신 겁니까?”

 

 “예, 저는 공주마마 명으로 궐에서 나온‘박복실’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공주마마께서 이 서찰을 전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씨께서 서찰을 다 읽으시면 아씨를 궐 안에 있는 은혜당으로 모시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복실은 한빛에게 덕순이 쓴 서찰을 꺼내 전달했다.

 

 한빛은 복실에게서 받은 덕순의 서찰을 펴서 읽었다.

 

 서찰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한빛은 보거라. 그동안 잘 있었느냐? 너를 본지 꽤 오래되었구나. 갑자기 이리 서찰을 전하여 놀랐을 것이다. 다름이 아니라 날씨도 쌀쌀해 하고 해서 네가 외로울 것 같아 어떤 한 사내를 소개시켜주고 싶어 이리 서찰을 보낸다. 그러니 나를 생각해서라도 네게 서찰을 가지고 온 박나인과 함께 입궐하여 은혜당에 있는 큰 은 행 나무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으라. 내 그 사내와 함께 은혜당으로 갈 것이니.」

 

 

 서찰의 내용을 다 읽은 한빛은 덕순이 왜 갑자기 이런 서찰을 보내는지 이해가 되지 않으며 당황스러웠다.

 

 그러면서도 그 사내가 누군지 그녀는 무척이나 궁금했다.

 

 한빛은 어찌해야 될지 고민이 되었다.

 

 잠시 고민을 하던 한빛은 덕순의 얼굴을 본지도 꽤 오래되기도 하고 소개시켜준다는 사내의 얼굴이나 보자는 마음에 복실에게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잠시 준비를 방에서 준비를 하겠다고 양해를 구한 뒤 방안으로 들어가는데.

 

 한빛이 들어 갈 때 은금도 같이 따라 들어갔다.

 

 “아씨, 궐에 들어가십니까?”

 

 “그래.”

 

 은금의 물음에 방안에서 거울을 보며 머리를 단장하면서 덤덤하게 대답하는 한빛.

 

 “덕순아씨, 아니 공주마마님께서 왜 아씨를 궐 안으로 부르셨습니까?”

 

 “잠깐 얘기 좀 하자고 그러신다.”

 

 이때다 싶어 아까의 간지럽게 한 복수를 하는 한빛.

 

 그녀가 더 궁금하도록 두리뭉실하게 대답해 주는데.

 

 “무슨 애기인데요?”

 

 “그야 모르지.”

 

 “혼자 가십니까? 아니면 밖에 있는 항아님하고 같이 가십니까?”

 

 “당연히 박나인하고 같이 가지. 근데, 그건 왜 묻는 것이냐?”

 

 “아니, 그냥 물어봤습니다.”

 

 “왜 이래?”

 

 은금은 한빛 옆에서 몸을 배배꼬았다.

 

 자신도 궐에 가고 싶다는 뜻이다.

 

 그런 은금의 행동이 한빛은 징그러웠다.

 

 “혹시, 밖에 계신 항아님하고 가시기 불편하고 심심하시면 같이 가드릴 수 있어요. 어떻게 같이 가드릴까요?”

 

 은금은 눈을 깜빡거리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자기도 궐 구경하고 싶다는 말을 빙빙 돌리며 한빛의 핑계를 대는데.

 

 “하하. 싫어.”

 

 복수를 제대로 하는 한빛.

 

 한빛은 친절하게 웃다가 단호하게 거절한다.

 

 한빛의 단호함에 삐져서 입술을 내미는 은금.

 

 한빛은 삐진 은금을 보며 살짝 미안해하며 마음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뭐 겨우 그것 같고 삐지고 그래. 장난 한번 친 것 가지고.”

 

 “정말요?”

 

 “그래, 같이 가자.”

 

 같이 가자는 한빛의 한마디에 은금은 삐져있던 마음이 스르르 풀렸다.

 

 “다시는 그런 장난 치지마세요. 사람 상처받게.”

 

 “알았어. 미안해.”

 

 사과를 하는 한빛.

 

 

 ***

 한빛이 은금과 함께 방에서 나왔다.

 

 한빛은 복실과 함께 가마가 있는 대문 쪽으로 향했다.

 은금 또한 한빛을 따라 가려는데 마루에 아까 한빛이 읽던 서책이 눈에 띄었다.

 

 은금은 마루에 있는 그 서책을 펴서 읽었다.

 

 “어머! 세상에 웬일이니? 입 맞추는 것뿐이 안 나와! 어우, 정말 겨우 이거 보고 그랬던 거야? 이거 얼마주고 샀어?”

 

 한빛이 읽던 책을 펴보던 은금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책을 덮었다.

 

 그녀는 덮은 서책을 마루 한 구석에 밀어버리고 한빛을 따라갔다.

 

 

 ***

 한빛을 태운 가마는 돈화문(敦化門 : 창덕궁 정문)까지 도착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돈화문에 도착하자 복실이 재빠르게 가마 앞으로 가서 잠시 가마를 세웠다.

 

 그리고 은금을 보면서 말했다.

 

 “너는 여기까지.”

 

 “예? 저 말입니까?”

 

 은금은 두 귀를 의심했다.

 

 “그래, 너는 여기서 아씨를 기다리고 있어라.”

 

 복실의 말에 은금은 당황스러웠다.

 

 “무슨 일이오?”

 

 가마 안에 있는 한빛이 창을 열고 물었다.

 

 “송구하오나 아씨의 가노는 궐 안으로 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

 

 복실은 한빛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니, 왜요?”

 

 “궁인 이외에는 궐 안으로 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 그게 법도입니다. 아씨께서는 궁인은 아니지만 공주마마께서 부르셔서 온 것이니 어쩔 수 없지만 저 아이는...”

 

 복실의 말에 한빛은 은금을 쳐다봤다.

 

 한빛과 은금은 눈을 마주쳤다.

 

 은금은 한빛에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알았습니다.”

 

 한빛은 법도라 하니 달리 방도가 없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복실의 말을 따랐다.

 

 그리고 울상을 하고 있는 은금을 타일렀다.

 

 은금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란 것을 알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 갑시다.”

 

 가마꾼들은 복실의 말에 따라 한빛을 태우고 궐 안으로 들어갔다.

 

 

 ***

 한빛을 태운 가마는 인정전과 후원을 지나 궐 깊숙이 있는 은혜당 정문에 도착했다.

 

 한빛은 가마에서 내렸다.

 

 “저쪽이 은혜당입니다.”

 

 한빛은 복실의 안내에 은혜당으로 들어갔다.

 

 은혜당으로 들어온 한빛은 은혜당의 풍경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입이 벌어질 만큼 아름다웠다.

 

 중심에 있는 든든하게 버티고 서 있는 커다란 은행나무에서 떨어진 노란색은행잎들이 은혜당 바닥을 채웠고 은혜당 전각지붕 위에는 은행잎과 더불어 전각 뒤에 있는 단풍나무 잎들이 떨어져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낙엽들이 섞여 있었다.

 

 하늘에는 맑고 흠집하나 없는 깔끔한 구름이 두둥실 떠다녔으며 새들의 소리만 들려왔다.

 

 그야말로 가을의 표본이었다.

 

 한빛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을풍경이었다.

 

 그녀는 가을풍경에 빨려가듯이 은혜당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은행의 지독한 냄새가 한빛의 코를 찔렀지만 은행냄새는 그녀에게는 중요치 않았다.

 

 

 ***

 같은 시각.

 

 문 또한 은혜당에 도착을 했다.

 

 문은 다른 궁인들 없이 으뜸만 데리고 심호흡을 크게 하고 은혜당 안으로 들어갔다.

 

 은혜당에 들어 온 문은 먼발치에서 걸어 다니는 한빛을 발견하고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한빛은 문이 온 줄도 모르고 은혜당을 걸어 다니며 그 모습들을 눈동자에 세세히 담았다.

 

 그러던 중 바람을 타고 날아온 주황색 단풍잎 하나가 한빛의 머리에 떨어졌다.

 

 한빛은 머리위로 손을 올려 잡으려는데 따뜻한 손이 단풍잎과 함께 잡혔다.

 

 손의 주인은 다름 아닌 문이었다.

 

 한빛은 뒤를 돌아 손의 주인이 문이라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고는 점점 얼굴이 어두워졌다.

 

 반면, 문은 한빛의 모습을 보고 순간 흠칫했다.

 

 한빛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얼굴에 전각지붕위에 있는 붉은색 단풍잎이 되어버렸다.

 

 “세자저하 아니십니까?”

 

 한빛은 문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눈살을 찌푸리는 한빛.

 

 “어, 아니 그래. 아니 그렇소.”

 

 “저하께서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설, 설마 공주마마께서.”

 

 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주마마께서 장난이 심해지셨네요.”

 

 “왜, 왜 그러시오?”

 

 “몰라서 그러십니까?”

 

 “그렇소. 아니, 누님 말을 듣자 하니 그대가 나를 연모한다고...”

 

 “예?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닙니다, 절대 아닐 겁니다.”

 

 한빛은 아니라고 딱 단호하게 부정했다.

 

 “아니, 아니면 아닌 거지 뭘 그렇게 딱 잘라서 말하는 겁니까?”

 

 한빛의 단호함에 문은 무안해졌다.

 

 “뭔가 오해가 있었나 봅니다. 지금은 아닙니다. 절대로 아닐 겁니다. 저는 그만 가보겠습니다.”

 

 한빛은 문을 지나치고 은혜당을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나가려는 그녀의 팔을 붙잡는 문.

 

 “놓으십시오.”

 

 “왜 그러는지 말은 해주고가야 될 것 아닙니까?”

 

 “정말, 정말 몰라서 그러십니까? 세자저하가 싫어서 그럽니다. 저는 저하를 보면 어릴 적 생각이 나서 보고 싶지가 않습니다. 어릴 적 사가에 계실 때 틈만 나면 저를 ‘주근깨 애기씨’, ‘못난이’라고 놀리셔서 저하가 싫습니다. 그때 워낙 많이 놀리셔서 그때의 그 추억이 저하를 보면 새록새록 떠올라서 싫습니다. 그게 이유입니다. 그만 가보겠습니다.”

 

 “...”

 

 문은 한빛에 말에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말에 그는 슬며시 그녀의 팔을 놓았다.

 

 문은 그 자리에 얼음이 되어 버렸다.

 

 

 ***

 은혜당 밖으로 나온 한빛은 은혜당 앞에 있던 복실 앞으로 갔다.

 

 “공주마마께 박나인께서 똑똑히 전해 주십시오. 다시는, 다시는 이런 일로 저를 부르지 말라고요. 알겠습니까?”

 

 “예.”

 

 한빛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마도 타지 않고 궐 밖을 나갔다.

 

 얼음이 되었던 문은 은혜당을 나가 궐 밖을 나가려는 한빛을 또 한 번 붙잡으려 했지만 한빛의 그림자까지 이미 사라진 뒤였다.

 

 문은 한빛을 붙잡지 못한 채 터덜터덜 동궁전으로 돌아갔다.

 

 

 ***

 동궁전으로 돌아온 문.

 

 문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문은 심란한지 손에 들려있는 단풍잎을 빙그르르 돌리며 한빛이 했던 말과 함께 그녀와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한빛을 놀려대며 그녀가 받았을 상처는 생각지도 못했던 그 시절.

 

 “내가 그렇게 상처를 줬나...”

 

 그 시절을 떠올리며 문은 한빛에 대한 후회와 미안함이 몰려왔다.

 

 문은 심란했다.

 

 “저하, 괜찮으십니까?”

 

 으뜸이 물었다.

 

 “아니다, 아무것도.”

 

 “저하, 너무 우울해 하지 마십시오. 뭐 살면서 여인에게 차이는 일은 흔한 일입니다. 싸가지가 없고 나이를 열아홉이나 먹어놓고 철이 없으면 아무리 세자저하라도 차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저하 같은 인물을...”

 

 으뜸은 순간 선을 넘는 자신을 알아차리고 스스로 입을 막았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문이 그를 뜨거운 눈빛으로 째려보고 있었다.

 

 “소, 송구하옵니다.”

 

 으뜸은 문과의 시선을 피하고 가렵지도 않은 목을 긁적거렸다.

 

 “저하, 그 마음이 무거울 때는 궐 밖에서 바깥바람을 쐬시는 것이 최곱니다. 잠시 궐 밖을 나가시는 것이 어떠하십니까?”

 

 이 서늘한 상황을 무마하러 바람 쐬는 것을 제안을 하는 으뜸.

 

 다행히 심란한 마음을 달래고자 으뜸에 제안을 받아드리는 문.

 

 두 사람은 옷을 가라 입고 궐 밖으로 나갔다.

 

 

 ***

 궐 밖에서는 한빛이 가마꾼들을 보내고 속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누르고자 은금과 저녁노을이 질 때까지 계속 거리를 돌아다녔다.

 

 두 사람은 걷고 또 걸어 한양에서 유명한 매화나무 거리까지 갔다.

 

 그리고 그 거리를 멀리서 보고 잠시 걸음을 멈추는 한빛.

 

 그 매화나무 거리는 어릴 적 은금과 자주 놀던 곳이며 한빛이 문을 처음 만났던 곳이다.

 

 그곳을 보며 잠시 생각에 빠지다 한 쪽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한빛.

 

 한빛이 걸음을 멈추자 은금 또한 걷고 있던 걸음을 멈췄다.

 

 “아씨, 왜 그러십니까?”

 

 “...”

 

 생각에 빠진 한빛은 은금의 물음이 들리지 않았다.

 

 “야, 정한빛!”

 

 은금은 더 큰 소리로 한빛을 불렀다.

 

 “어? 어. 가자.”

 

 한빛은 그제 서야 은금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그리고 두 사람은 가던 길을 다시 걸어갔다.

 

 

 ***

 저녁노을이 완벽히 사라지고 환한 보름달이 뜬 밤이 되었다.

 

 목적지 없이 밤공기를 마시며 걷고 있었던 한빛과 은금, 두 사람은 어느새 ‘애정교(愛情橋)’라는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아씨, 우리 잠시 여기 서서 소원을 빌며 안 됩니까?”

 

 “소원? 갑자기 웬 소원?”

 

 “저 빌고 싶은 소원이 있어서 그래요. 그러니깐 같이 가서 빌어요, 예? 아씨.”

 

 “싫어, 내가 왜 너하고. 너 혼자 빌어 나 저 앞에 있을게.”

 

 예부터 애정교에는 가을밤 보름달빛아래에 달의 기운을 마시며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었다.

 

 특히, 사랑과 관련한 소원을 빌면 찰떡같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다.

 

 다리의 전설을 알기에 소원이 있는 은금이 한빛에게 소원을 빌자고 부탁을 했다.

 

 하지만 한빛은 사랑하지도 않은 은금과 함께 소원을 빌기에 너무 거북스러웠다.

 

 “아이, 저를 위해서 같이 빌어요. 심심한데. 아씨. 아니면 옆에만 있어주세요.”

 

 은금은 한빛의 팔짱을 끼며 애교를 부렸다.

 

 은금의 애교에 한빛은 못이기는 척하고 같이 빌어주기로 했다.

 

 “근데, 무슨 소원?”

 

 “그게.”

 

 은금이 쑥스럽게 웃었다. 그저 웃기만 했다.

 

 “뭐, 저번에 봤던 널 구해준 파란 비단옷에 검은색 갓을 쓴 그 이름 모를 사내랑 사랑하게 해달라는 소원?”

 

 은금은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은금은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빌었고 한빛은 달을 보면서 하염없이 미소만 지었다.

 

 두 사람이 소원을 빌고 있을 때, 맞은편에서 궐 밖을 나왔던 문과 으뜸 또한 다리 위를 건너고 있었다.

 

 으뜸과 함께 궐 밖을 나와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다 우연히 으뜸과 함께 애정교를 건너는 문.

 

 그 순간, 맞은편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낮에 보았던 한빛이었다.

 

 오직 그녀만이 그의 눈에 보였다.

 

 애정교에는 어린아이, 부부, 젊은 연인들, 노인들 가릴 것이 없이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거나 소원을 빌고 있었다.

 

 근데, 문의 눈에는 이상하게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 한빛의 얼굴만 보였다.

 

 달을 보고 미소를 짓고 있는 한빛만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달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한빛의 모습을 보고 문의 심장이 주체 없이 두근두근하고 콩닥콩닥하고 막 뛰기 시작했다.

 

 생에 처음 느끼는 감정들이었다.

 

 한빛의 모습은 자신이 어릴 적 놀리던 모습 그대로였는데 한빛의 모습을 보고 문은 자신이 왜 이러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한빛을 보며 같이 미소를 지어버리는 문.

 

 “저하, 세자저하.”

 

 자신을 부르는 으뜸도 보이지 않았다.

 

 으뜸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문의 눈에는 그저 가을밤 보름달빛 아래에 달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한빛만 보였다.

 

 가을밤 달빛아래에 애정교위에 문은 자신과 한빛만이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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