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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맹하게
작가 : 강이안
작품등록일 : 2020.11.9

'문 여는 자'의 2권입니다. 글의 흐름 안에서 조금 더 박진감 있게 그려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재미나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행복하세요.

 
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맹하게 11
작성일 : 21-01-18 07:51     조회 : 141     추천 : 0     분량 : 3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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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태영과 영수만 안으로 들어서고 나머지는 밖에서 기다린다. 여덟 명이 한꺼번에 모여 있기는 비좁은 골목이라 두세 명씩 뭉쳐 서로 거리를 둔 채 서성인다. 골목 사이사이로 허연 증기가 흘러나오고 근처에 식당이 있는지 음식냄새가 진동을 한다.

  “맛있는 냄새가 나네. 뭐지? 순대나 족발 같기도 하고. 튀김냄새도 난다.”

  “재욱이 너는 코만 발달했어. 발도 코처럼 잘 놀리면 좋을 텐데.”

  크큭. 작게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에 따라 대화가 이어진다.

  “근데 이상하지 않아? 우리 아무것도 못 먹은 지 꽤 됐는데 배가 안 고파.”

  “많이 놀래서 그런가? 우리가 무슨 짓을 했는지 잊진 않았지?”

  “어차피 이렇게 된 거잖아. 별다른 뾰족한 수도 없었고.”

  “도대체 어쩌다 우리가 여기 있는 거지? 시합장 가는 길이었잖아?”

  밑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태영과 영수가 있는 3층까지 전해지진 않는다. 3층 창 아래엔 전당포라는 파란색 글자가 크게 인쇄된 간판이 달려있다. 입구를 지나치면 두꺼운 쇠창살이 쳐져 안과 밖의 경계를 만든다. 그 쇠창살 가운데 작게 자리한 유리막을 통해 고객과 상인이 서로 마주볼 수 있다. 유리막 밑자리에 작은 공간이 열려 있어 겨우 손 하나 정도 드나들 틈을 두고 물건이 오갈 수 있도록 했다. 안에는 뾰족한 턱이 매섭게 보이는 남자가 앉았다. 머리가 절반 벗겨지고 눈에 돋보기를 걸쳤다. 팔짱을 낀 채 태영과 영수를 보며 야릇한 미소를 짓는다. 그의 시선이 그들이 입고 있는 운동복을 향했다 내미는 물건을 향해 옮겨간다.

  “보아하니 운동하는 학생들 같은데 어찌 이런 데를 왔누?”

  태영은 그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한다.

  “이거 얼마나 주실 거예요?”

  “물건을 제대로 봐야 알지.”

  팔짱을 풀고 돋보기를 들춰가며 건네받은 물건을 자세히 관찰한다.

  “전부 새 것들 같은데 어디서 구했어?”

  침묵이 흐른 후 영수가 어렵게 말을 꺼낸다.

  “음, 저, 경품 당첨 됐어요.”

  “이렇게 한꺼번에?”

  “아, 그러니까, 다른 친구들 것도 가지고 왔어요.”

  남자는 그다지 그 말을 신용하지 않는 표정이다.

  “얼마나요? 아니면 다른 데 가보구요.”

  태영이 다급히 덧붙인다.

  “학생 성격 급하기는. 잠깐 내 따져보고.”

  남자는 느린 동작으로 계산기를 꺼내 셈을 한다. 태영과 영수는 처음에 제시받은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흥정을 하는 동안 가격이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반복한다.

  “이 이상은 못 줘. 나도 먹고 살아야지.”

  자신을 보는 영수에게 태영이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그렇게 하죠. 돈 주세요.”

  남자가 천천히 돈을 세서 넘기는 시간이 태영과 영수에게는 사뭇 길게 느껴졌는지 초조한 기색이 점점 얼굴 위로 번진다. 돈을 받자마자 황급히 아래로 내려온다. 두 사람을 발견한 다른 아이들이 모여든다.

  “돈 받았어?”

  “어. 생각보다 얼마 안 쳐주더라. 어차피 차비만 있으면 되니까 그냥 돈 받아왔어.”

  “저기, 우리 그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는데 뭐라도 좀 사 먹자.”

  “인간아, 집에 가서 먹어.”

  웅성거리는 아이들 사이에서 태영이 받아든 돈을 보여준다. 다들 태영의 손에 눈길을 주는데 그들만 거기에 있는 게 아니었다. 골목을 지나가던 건장한 네 명의 남자들의 눈에도 돈뭉치가 들어온다. 무슨 유니폼이라도 되는지 동일하게 검은색 가죽 재킷을 걸치고 있다. 하의는 제각각이다. 미끌 거리는 가죽바지, 체크무늬 칠보바지, 눈에 확 띄는 형광색 바지를 걸친 자도 있다.

  “어이, 얘들아. 너네들 거기서 뭐하냐?”

  “예?”

  남자들이 가까이 오자 아이들 얼굴 위로 경계의 빛이 떠오른다. 태영이 손에 들었던 돈을 빠르게 뒤로 감추며 물러난다.

  “오늘이 주말도 아니고 학교 갈 시간에 여기서 왜 빈둥거려? 보아하니 운동부 애들 같은데 어느 학교야?”

  영수가 대답한다.

  “왜 그러시는데요? 저희가 어느 학교든 무슨 상관이세요?”

  턱에 살짝 생채기가 나 있는 남자가 피식, 하고 김빠진 소리로 웃는다.

  “하아, 그 놈. 예의가 없네. 어른이 물으면 공손히 대답해야지. 너희들 무슨 나쁜 짓하고 있지는 않나 선도 중이잖아.”

  “우리 아무 짓도 안 했는데요.”

  재찬이 주저하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태영과 가장 가까이 있던 남자가 태영을 가리킨다.

  “너, 그 손에 든 것 내놔 봐.”

  “그건 왜요?”

  “보아하니 돈이 꽤 많던데. 어디서 났어? 훔친 거 아냐?”

  그 옆의 남자가 대답한다.

  “아님 주웠거나.”

  흐흐흐. 네 남자가 거의 동시에 웃음을 터뜨린다.

  “훔췄든 주웠든 경찰서 갖다 줘야지. 애들이 그런 큰 돈 가지고 있으면 쓰나.”

  “저쪽은 넷이지만 우린 열 명이야. 우리 숫자가 더 많아.”

  광규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 태영에게 건넨 말이었지만 남자들도 그 말을 놓치지 않는다.

  “숫자가 많으면 어쩔 건데?”

  가장 벽에 가깝게 있던 남자가 광규의 머리를 잡더니 벽으로 밀어붙인다. 벽에 머리를 부딪친 광규가 넘어지자 아이들은 서로 가깝게 모여든다. 아직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고 있던 가장 덩치가 큰 남자가 방금 광규를 잡았던 자의 어깨를 툭, 건드린다.

  “애들 놀라게 그러냐. 돈만 건네받고 조용히 가자. 애들아, 어서 넘겨라.”

  어렵사리 재유가 광규를 일으킨다. 광규는 일어서고 나서도 어지러운지 비틀거린다. 태영이 영수의 뒤로 가 손에 돈을 쥐어준다.

  “어쩌려고?”

  “나, 그거 또 할 수 있나 해보려고.”

  영수는 여차하면 바로 도망갈 수 있게 뒤로 몇 걸음 뗀다. 태영이 다른 아이들을 지나쳐 앞으로 나선다. 자신을 노려보는 태영을 앞의 남자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마주한다.

  “하, 요즘 애들 참.”

  미처 반응할 사이를 주지 않고 남자가 주먹으로 태영의 볼을 때린다. 생각지 못한 충격에 태영이 한쪽으로 휘청거리고 뒤이어 남자가 왼쪽 허벅지를 노리고 다리를 올린다. 그렇지만 허공만 가를 뿐이다. 땅에 반동을 주고 튀어 오른 태영은 남자의 머리 위를 지나쳐 올라가며 오른발로 내리친다. 정수리를 그대로 맞은 남자는 앞으로 거꾸러진다. 태영은 넘어진 남자의 키를 훌쩍 넘어서 올랐다가 내려오더니 자신이 한 일에 흥분해서 벌게진 얼굴로 다른 아이들을 돌아본다. 뒤로 다가오는 다른 남자들은 보지 못한 채. 태영이 상대방을 쓰러뜨리자 다들 신이 나서 환호성을 지르다 남자들이 태영에게 다가가는 걸 알아차린다. 덕남이 가장 먼저 나서 그대로 돌진한다. 생각지 못한 속도로 빠르게 달려들자 그 남자가 그대로 걸려 덕남과 같이 멀찍이 날아가서 벽에 부딪힌다. 태영에게 머리를 맞은 남자가 힘겹게 균형을 잡으려 애쓰며 상체를 세우는데 정확히 목을 노리고 슛하는 자세로 광규가 발길질을 한다. 비스듬히 세웠던 몸은 그대로 앞으로 무너지더니 완전히 뻗어버린다.

  태영이 돌아서 남은 두 명의 남자와 맞선다. 이제 그들은 상당히 조심하며 거리를 둔다. 아이들은 그 주위로 둘러서서 압박을 가한다. 덕남에게 태클을 당했던 남자도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부딪혔던 벽에는 금이 가고 끄트머리가 부서져 내린다. 덕남은 누워있는 남자와 부서진 벽을 보며 자신이 한 일에 감탄하는 중이다. 아이들이 조금씩 다가올수록 두 남자는 뒤로 물러난다. 덩치 큰 남자가 옆을 향해 작게 속삭인다.

  “가자.”

  “그냥 뜨자고?”

  “그냥 가, 임마!”

  돌아서서 뛰기 시작하자 옆의 남자도 누워있는 다른 두 사람을 슬쩍, 넘겨보다 뛰기 시작한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아이들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우와! 우리가 이겼다!”

  “아자!”

  그 사이에서 동준이 나서더니 흥분한 다른 아이들을 제지한다.

  “조용히 해!”

  순식간에 모두 입을 다문다.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

  동준이 누워있는 남자들을 가리킨다. 뒤로 떨어져있던 영수가 아이들을 재촉한다.

  “일단 여기서 피하자. 빨리.”

  영수가 가장 앞서고 다른 아이들이 뒤따른다. 맨 뒤에는 태영과 광규, 광규를 부축하는 재유가 남았다. 누워있는 두 남자는 아이들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 일어날 줄을 모른다. 의식이 멀리까지 날아간 것 같다. 돌아오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릴 정도로.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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