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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맹하게
작가 : 강이안
작품등록일 : 2020.11.9

'문 여는 자'의 2권입니다. 글의 흐름 안에서 조금 더 박진감 있게 그려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재미나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행복하세요.

 
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맹하게 10
작성일 : 21-01-11 10:44     조회 : 141     추천 : 0     분량 : 3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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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민호는 은근 은지가 걱정이다. 얼마나 놀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물론 엄청 반가워할 것이다. 일단 놀라고 그 다음에 반가워하겠지. 그 모습을 상상하며 입가에 웃음을 올린다. 옥탑방 바깥에는 못쓰게 된 책상, 소소한 가재도구, 몇 가지 짐들이 널브러졌다. 자주 왔었는데 이제야 그 모습이 제대로 보인다. 문이 활짝 열려 안에서 움직이는 은지의 모습이 눈에 그대로 들어온다. 머리를 뒤로 바짝 묶어 올리고 그 위로 모자를 눌러 썼다. 부산스럽게 몸을 놀리며 땀을 많이 흘리고 있다. 목덜미 아래로 줄줄 흘러내릴 정도다. 빗자루로 바닥을 훔쳐서 모인 것들을 쓰레받기에 담고 그것을 쓰레기봉투 안으로 밀어 넣는다. 걸레를 들어 창틀과 문짝 구석에 쌓인 먼지를 닦아낸다. 청소랑 원수진 사람 같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인 양 집중해서 닦고 또 닦는다. 팔을 들어 목을 타고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숨을 내쉰다. 입과 코로 거칠게 뿜어낸다. 격렬한 체력훈련을 마치고 진이 빠져버린 운동선수랑 다름없다. 잠시 숨을 고르려 멈춰 바깥을 보다 민호와 눈이 마주친다.

  “민호 왔어?”

  민호는 나쁜 짓 하다 들킨 사람처럼 쭈뼛, 거린다.

  “은지야.”

  이름만 불러놓고 다음 말을 어떻게 꺼낼지 모른다. 은지가 뒷말을 기다리며 가만히 응시한다. 연한 갈색을 띄는 눈동자가 동그랗다.

  “그게, 말야.”

  “응?”

  “음.”

  민호가 한 번 더 뜸을 들이자 더 이상 참지 못하겠는지 은지가 다가선다.

  “뭔데 그렇게 주저해? 나한테 잘못한 거 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 민재, 민재를 만났어.”

  “민재?”

  은지가 눈을 끔뻑인다.

  “저기, 갈라지는 골목 어귀에서 서성이고 있더라고.”

  이어서 은지는 뒤에서 계단을 밟고 올라오는 민재를 발견한다.

  “민재야!”

  민호를 지나쳐 달려가더니 좁은 계단 위에서 민재를 끌어안고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 고개를 묻은 채 단단히 부둥켜안았다. 민재가 조심스레 은지의 어깨를 토닥이자 겨우 얼굴을 든다.

  “괜찮아? 어디 다친 데 없어?”

  “트럭에 치였던 것까지 기억나는데, 정신 차리고 일어나 보니까 누나랑 형은 어디로 가버렸고 그 트럭도 안 보였어요.”

  “그래? 정말 괜찮은 거지?”

  은지가 민재를 훑어본다. 찢어진 상처나 피를 흘린 흔적이 없고 옷도 말끔하게 입고 있던 그대로다.

  “저기, 은지야. 우리 계단에서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자.”

  “그래, 그래.”

  미소 지으며 민재를 앞세우는 은지의 눈가가 젖었다.

  “뭐하고 있었어?”

  “청소했어. 간만에 대청소.”

  대청소라는 단어와 함께 은지가 민재를 본다. 마치 너 때문에 그랬다는 듯이.

  “아직 제대로 끝내지 못했어. 여러분, 지저분해도 이해해주세요.”

  방으로 들어서 민호와 민재가 자리를 잡고 앉자 은지가 마실 것을 내온다.

  “우와, 수정과다.”

  민재는 컵을 들어 맛나게 들이킨다. 민호도 따라 한 모금 마신다. 향이 아주 진하고 알싸하다.

  “직접 만들었어?”

  “아니, 만들 줄 몰라. 목사님이랑 같이 사니까 이런 게 좋아. 좋은 음식들이 선물로 들어오면 나도 덩달아 얻어먹게 돼.”

  아직까지 은지는 민재가 옆에 있는 게 믿기지 않는지 수정과를 마시는 민재를 빤히 바라본다. 컵 바닥이 보일 만치 마시고 난 후 민재가 컵을 내려놓자 은지가 더 마실래, 라며 묻는다. 민재는 그런 은지를 향해 고개를 젓는다.

  “아뇨, 그만 마실래요. 수정과 되게 맛있어요.”

  “그래.”

  눈이 민재에게서 떠나질 않는다.

  “정말 괜찮지?”

  “괜찮아요. 지금 아무렇지도 않아요.”

  은지가 재차 묻자 민재는 씩씩하게 양팔을 흔들며 강조한다.

  “골목에서 우리 기다렸어?”

  “네. 집에 다시 가봤는데 아무도 없었어요. 초인종을 눌러도 대답이 없고. 뒤로 가서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봤거든요.”

  “그런데?”

  “집이 비었어요.”

  “비었어?”

  “안에 아무것도 없었어요. 소파도 없고 텔레비전도 안 보이고.”

  민호와 은지는 달리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다.

  “그랬구나.”

  은지가 민호를 향해 눈짓을 한다.

  “민재야, 잠깐 여기 있어. 누나랑 민호 형이랑 밖에 내다놓은 거 정리할 테니까.”

  “저도 도울게요.”

  “그, 그럴래? 그럼, 너는 안에 있는 것들 정리해줘. 보기 좋게.”

  “네에.”

  아주 힘이 넘치게 대답한다. 민재가 무엇부터 옮길지 주위를 둘러보는 동안 민호와 은지는 함께 밖으로 나온다. 위로 쌓아올린 짐들을 가리개 삼아 뒤로 돌아간다.

  “이제 어쩐다?”

  “바로 밑에 교회강당이 있잖아.”

  “그건 나도 알지.”

  은지의 말에 별로 힘이 없다. 안색이 파리하다.

  “내가 민재 부모님 만나게 해주자고 고집 피웠잖아. 그랬는데 그 아줌마 얼굴 봤지. 내가 무슨 짓을 했나 싶더라.”

  말을 하는 얼굴 위로 죄책감이 슬쩍, 떠오른다. 민호는 은지를 비난할 생각이 없다. 좋은 의도로 한 일이었으니까.

  “그럼 이러자.”

  “어떻게?”

  “민재 부모님 이사 간 곳 내가 알아볼게.”

  “정말?”

  “집 주소 찾아내는 거 상미 누나가 잘 하더라. 한 번 부탁해보지 뭐.”

  “상미 언니한테? 그래도 돼?”

  “말이나 꺼내볼게.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야.”

  “어떤 문제?”

  “무작정 부모님이랑 만나게 할 수는 없잖아.”

  “그거야…….”

  “아니면 네가 무당이 한 번 더 되던가.”

  “뭐어?”

  은지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주름이 잡힌다. 잠시 생각에 빠진 듯하다 지었던 주름을 편다.

  “아니지. 까짓 거 못할 게 뭐 있어. 해야 된다면 할게.”

  “그래, 해보자. 해보고 아니면 그땐 어쩔 수 없고.”

  안에서 민재가 부산하게 움직인다. 가끔씩 밖으로 나와 물건을 집어 안으로 들여놓기도 한다. 은지는 민재 곁으로 가서 함께 물건을 들여놓기 시작한다. 민호는 밖에 있던 큰 물건들을 하나씩 옮긴다. 물건들이 하나 둘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대충 짐정리가 끝나갈 때쯤 민호는 짝, 소리가 나도록 박수를 친다.

  “치워놓으니까 보기 좋은데. 우리 짜장면 시켜먹을까? 원래 이사나 청소 후에는 짜, 장, 면이지.”

  민재가 좋다며 반복해서 응답한다. 은지가 웃는 얼굴로 전화를 걸기 위해 휴대폰을 찾아 헤맨다. 휴대폰을 찾은 다음엔 중국집 연락처가 적힌 스티커를 찾아 헤맨다. 물건 정리 좀 잘하지 맨날 그렇게 뭘 찾아 헤매단고 핀잔을 주는 민호의 말에 주먹으로 답하면서. 민호는 은지에게 맞아도 별로 아프지 않은 내색이다. 민재를 보는 눈에 흐뭇한 빛이 가득하다. 휴대폰으로 음식을 주문하는 은지의 얼굴에도 모처럼 밝은 빛이 떠올랐다. 마치 오랫동안 헤어져 지냈던 혈육을 만나 무척이나 반가운 것처럼.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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