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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El Tango de Lady Evil
작가 : 아사찬빈
작품등록일 : 2020.1.7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피해자의 이야기

 
제47화 <회귀>
작성일 : 20-12-09 23:23     조회 : 316     추천 : 0     분량 : 3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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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똑]

 

 누군가의 노크 소리에 선잠을 뒤척이던 유진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들어오세요.”

 

 임 비서였다.

 

 “몸은 좀 괜찮니?”

 “뭐... 그냥 그래요.”

 “계속 안 좋아서 큰일이네. 회장님이 부르시는데, 갈 수 있겠어?”

 “가야죠.”

 

 유진은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손으로 빗어 내리며 침대를 빠져나왔다.

 마치 호텔로 다시 돌아온 듯, 방은 새하얀 색이었다. 오피스텔에 살며 한동안 만지작거리던 TV와 컴퓨터는 다시 자취를 감추었다. 아마 휴대폰도 어느 옷의 주머니에 꽂힌 채 처박혀 있을 것이다.

 

 “의원님과는 화해했니?”

 

 바닥에 떨어진 후드 점퍼를 집어들던 유진에게 임 비서가 스쳐가듯 물었다.

 

 “화해라뇨?”

 “아니, 그냥. 일전에 보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길래.”

 “아, 그거...”

 

 유진은 심드렁한 얼굴로 점퍼의 집업을 올렸다.

 

 “제가 물 쏟았다가 혼났죠, 뭐.”

 “... 물?”

 “원래 의원님, 잔소리 많으시잖아요.”

 

 무언가를 더 물어보려던 임 비서가 이내 포기한 듯 입을 다물었다. 성혁과 유진 사이에 있었던 일을 떠보려고 했는데, 마냥 어리던 유진도 어느새 머리가 익은 모양이다. 저렇게 말을 돌려버리니 방법이 없었다. 더 캐려고 하다가는 괜히 말싸움만 일게 될 것이다.

 

 임 비서는 자연스레 문을 열고 유진을 에스코트했다. 역시나 익숙한 듯 임 비서에 이끌려 방을 나가던 유진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임 비서의 주변을 스윽 흘겨봤다.

 

 “어디서 이상한 걸 많이 붙여 오셨네요?”

 “뭐?”

 “시간 나면 밖에 가서 백화점이라도 한 바퀴 돌고 오세요. 비서님은 보기와 다르게 기가 약하셔서 그거 그냥 두면 큰일 나요.”

 

 

 

 

 늘 앉아있던 좌식 탁자 위에는 경자가 아끼는 다기들과 함께 하얀 유골함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거기엔 보란 듯이 강경식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가, 많이 놀랐지? 옆에서 듣던 나도 황당할 지경이었는데, 너는 오죽했을까.”

 

 경자는 유골함을 유진 앞으로 스윽 밀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하늘이 도왔는지, 이 할미가 전국 팔도를 다 수소문해서 이렇게 도로 찾아왔지 뭐니. 천만다행이지, 천만다행.”

 “아... 감사합니다.”

 

 유진은 두 손으로 유골함을 자기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렇지만 딱히 반갑거나 고마운 표정은 아니었다. 경자가 그런 유진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그런데 무슨 일 있누? 표정이 어찌 이리 안 좋아?”

 

 경자의 물음에 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녜요. 별일 없어요. 근데... 이러지 않으셔도 됐는데.”

 “응?”

 

 톡톡.

 유진의 손가락이 유골함에 두드렸다. 그를 본 경자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이거, 아버지 진짜 유골함 아닌 새 유골함인 거 같은데... 아무 흔적도 안 느껴지는 걸 보니까요.”

 “너, 능력 사라졌다 하지 않았니?”

 

 유진이 씨익 웃으며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봐요. 그냥 한동안 컨디션이 좀 안 좋았던 거 같아요.”

 “그럼 다시 회복이 된 게야?”

 “조금 흐릿하기는 하지만... 네.”

 

 유진의 말에 경자가 유진의 손을 덥썩 잡고는 반색을 표했다.

 

 “아유, 그거 참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기뻐해주시니 좋네요.”

 “그럼 기쁘고 말고.”

 

 경자는 활짝 웃으며 유진의 손을 쓰다듬었다. 누가 보면 마치 다 큰 손주를 결혼이라도 시키는 줄 알 정도였다.

 방 한 쪽에 서있던 임 비서는 그런 모습을 심드렁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임 비서에게 다가왔다.

 

 “임 비서님, 잠깐...”

 

 임 비서는 머릿 속으로 방 안의 상황을 대략 짚어봤다. 유골함이 가짜라는 걸 유진이 알아챈 것은 예상치 못했던 것이지만, 그 외에 다른 폭탄거리는 없을 터였다. 임 비서는 조용히 방 밖으로 나갔다.

 

 “너도 내 나이 되어보면 알 게다. 사람이 늙는다는 건 단지 나이만은 먹는 것이 아니야. 있던 능력이 하나하나 사라지는 게 어찌나 슬픈지. 예전에는 쉬이 하던 것들도 이제는 낑낑대어야 겨우 이뤄지고, 예전에는 척척 보던 것들도 이제는 침침하니 안 보이는 것이, 아가, 늙어간다는 게 그리 슬픈 거란다.”

 “그래도 할머니는 그만큼 더 대단해지셨잖아요. 앉은 자리에서 모든 걸 다 아시고.”

 “그럼 어쩌니. 없어진 능력을 지혜와 통찰로라도 때워야 늙은 쭈구렁탱이가 되어서도 사람들이 ‘아, 저 늙은이가 그래도 아직 밥값은 하는구나~’ 생각하고 챙겨주지 않겠누?”

 

 경자의 거침없는 말솜씨에 유진이 활짝 웃었다.

 

 “그래서 기쁜 거란다, 아가. 가지고 있던 능력이 사라진다는 건 참 슬픈 거야. 사람이 변한다는 거거든. 그러니 사라진 줄 알았던 능력을 다시 찾았다는 게 기쁘지 않겠니?”

 “맞아요. 사람은 변치 않아야 하는 거니까.”

 “그렇고말고. 더욱이 이 능력은 너와 나를 더 끈끈하게 이어준 그런 능력이 아니냐.”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거기다 너의 특별함이기도 하고 말이야.”

 “그렇죠.”

 

 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경자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그럴수록 마음 한 편엔 씁쓸함이 더해갔다.

 

 앉은 자리에서 누군가의 과거와 현재를 보고 미래를 알 수 있다는 것. 경자는 그토록 칭찬하고 반기는 그의 능력이었지만, 정작 유진은 알 수 없었다. 이 능력이 과연 축복인지, 저주인지.

 하지만 이것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지금 자신에게 이 능력은 자신을 더욱 옭아매는 올가미 같은 것이라는 걸. 지금 당장 자신의 눈을 가릴 정도로 뿌연, 저 많은 영들을 보고 있자면 말이다.

 아마도 수 년에 걸쳐 얽히고 얽혔을 저 영들. 대체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자신이 왜 이러한 능력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수연이 사라지고 경자에 손에 이끌려 온 이곳에서 울다 지쳐 쓰러졌고, 생사를 오갈 정도의 고열에 시달린 뒤 나타난 능력이었다.

 어쩌면 정신병일지도 모른다.

 호적도 없이 아버지라는 가느다란 끈 하나로 세상과 이어져 있던 어린 시절. 아버지마저 사라진 상황에 나타난 수연은 세상과 유진을 연결해주는 또 다른 끈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는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천사 누나가 아닌, 무서운 할머니와 아저씨들이 자신을 둘러쌌던 그 날. 아무리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고 아무리 따뜻하게 안아준들, 세상에 혼자 버려진 듯한 좌절과 절망은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이 모든 건, 그러한 절망 속에서 어떻게든 새로운 끈을 찾고 싶어 스스로가 만들어낸 환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지난 15년 동안 유진에게 세상을 조금이나마 알려준 것은, 책도 TV도 아닌 그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다시 수연을 만났다. 그리고 수연을 통해 세상을 다시 배워갈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그 순간, 자신의 능력이 사라진 것은 더 이상 세상과 자신을 이을 환상 속의 끈이 필요 없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능력이 사라졌을 때, 두려우면서도 조금은 기뻤던 것 같다. 이제 허공에 덩그러니 홀로 버려진 아이가 아니라, 남들처럼 평범하게 땅을 밟고 다니며 세상 속에 녹아든 사람이 되었다는 안도감이었달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또다시 어떤 감정이 속에서 울컥하고 치밀어 올랐다. 자신을 두고 뛰쳐나가던 수연의 뒷모습이 떠오른 탓이었다.

 15년 전에도, 지금도. 그렇게 도망치듯 자신을 떠나버릴 거라면 왜 처음부터 내게 다가온 걸까? 원수의 자식이라는 나에게 무엇을 바랬던 걸까? 그래놓고 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떠나버린 걸까? 차라리 복수라도 하고 원망이라도 퍼부었다면 오히려 자신은 반겼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조차 없었다.

 

 누나는 혹시... 내가 죽기를 바랬던 걸까...?

 

 “아가, 괜찮니?”

 “네?”

 “설마 우니?”

 “아...”

 

 유진은 서둘러 눈물을 훔쳤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밀려왔던 모양이다.

 

 그때였다. 밖에 나갔던 임 비서가 급히 노크를 하며 들어왔다.

 

 “회장님.”

 

 경자의 대답이 있기도 전에 임 비서는 경자의 귀에 대고 무엇인가를 속삭였다.

 

 “어디서? 호텔에서?”

 “네.”

 “둘이서만?”

 “네.”

 “알았어. 내 나가보지.”

 

 경자의 표정은 자못 심각했다.

 

 “간만에 오순도순 이야기나 나눠 보려했더니, 그것도 쉽지가 않네.”

 “아녜요. 급한 일이신 것 같은데...”

 “그래. 그럼 유진아. 오늘은 아무 생각하지 말고 푸욱 쉬렴.”

 “네.”

 

 경자는 서둘러 방을 나섰다.

 

 유진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때, 무엇인가가 유진의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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