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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맹하게
작가 : 강이안
작품등록일 : 2020.11.9

'문 여는 자'의 2권입니다. 글의 흐름 안에서 조금 더 박진감 있게 그려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재미나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행복하세요.

 
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맹하게 2
작성일 : 20-11-16 09:33     조회 : 149     추천 : 0     분량 : 5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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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민재와 함께 걷는 은지와 민호의 얼굴에 여러 가지 감정이 섞여 나타난다. 놀이공원에서 기분 좋은 시간을 함께 보낸 후의 만족감, 즐겁게 노래를 흥얼거리는 민재를 보는 안타까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곤란함이 엿보인다. 교회로 가는 골목길로 들어서다 민재가 멈춰 건너편을 바라본다. 은지가 그런 민재를 따라 발걸음을 멈추고 앞에서 걸어가던 민호가 뒤돌아본다.

  “민재야, 왜?”

  “우리 집 가려면 이 길로 가야 해요.”

  은지는 민재와 민호를 번갈아 본다. 민호가 은지를 지나쳐 민재 앞으로 다가간다.

  “집으로 가는 길 확실히 맞아? 가다가 길 잃어버릴 수도 있어. 이쪽으로 가면 쉽게 집 찾아주실······.”

  민호가 미처 말을 다 끝맺기 전에 은지가 팔을 잡는다.

  “나랑 얘기 좀 해.”

  “응?”

  가만히 바라보는 민재의 시선을 뒤로 한 채 은지와 민호가 멀어진다.

  “우리가 민재를 데리고 교회에 가서 문을 열면 천사들이 바로 저쪽으로 데려가겠지?”

  “그게 우리가 할 일이잖아? 천사들이 영들을 데려가도록 돕는 것.”

  은지가 민재를 바라보며 슬픈 눈을 한다.

  “그 전에 잠깐만, ······, 민재가 부모님 얼굴이라도 보게 해주면 안 될까?”

  “무슨 소리야. 민재 부모님은 어쩔 건데. 민재를 보고 얼마나 놀라실지 생각해봤어?”

  “그렇지만, 이렇게 보내면 민재가 너무 불쌍하지 않아?”

  이번엔 민호가 민재가 본다. 불안한 눈으로 민재가 마주본다. 은지가 고개를 반쯤 숙인 채 오른발로 바닥을 긁는다.

  “부모라는 존재에 대해 네 마음이 어떤지 이해는 하지만 감정적이 되는 건 좋지 않다고 봐.”

  은지가 갑자기 고개를 홱, 돌린다. 굳어버린 그녀의 인상에 민호가 당황한다.

  “무슨 말 하는지 알겠는데 이해한다고 쉽게 얘기는 마. 너는 그 마음 평생 모를 테니까.”

  자신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민재 앞으로 간 은지가 허리를 숙인다.

  “민재야, 잘못하다 길 잃어버리면 시간만 낭비할 수 있어. 저리로 가면 길 잘 아는 분들이 민재네 집 찾을 수 있게 도와주실 거야. 그렇게 안 할래?”

  “저기 신호등 건너서 아파트 단지 지나면 바로에요. 잘 찾을 수 있는데.”

  민호가 은지의 등 뒤로 다가온다.

 “그래? 그럼 가보고 못 찾으면 다시 이리로 오는 거야?”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민재와 민호가 앞서고 은지가 뒤에서 발을 맞춘다. 신호등을 다 건널 때까지 아무도 말이 없다.

  “여기 아파트 단지 지나면 바로야?”

  “저기 골목 지나서 그 다음이요.”

  부지런히 걸어가는 민재를 뒤따르는 민호가 은지를 뒤돌아본다. 은지는 말없이 그들을 따라 골목으로 접어든다.

  “여기 맞아요! 여기!”

  붉은 벽돌로 지어진 3층 빌라가 골목 한쪽에 자리한다.

  “맨 아래층이 우리 집이에요. 계단 오를 필요 없어 좋아요.”

  헤헤. 웃음을 머금으며 빌라의 입구를 지나 문 앞에 이른다. 초인종을 눌러대는 손이 재빠르다. 행복해하는 민재를 기분 좋게 바라보며 민호가 은지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데 새초롬한 은지의 얼굴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자신을 보는 민호의 눈을 슬쩍 피해버린다.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되는 벨 소리에도 대답이 없다.

  “집에 아무도 없나 보다.”

  “이상하다. 엄마는 항상 집에 있는데.”

  “장을 봐야 하고 사람 만날 일도 있고 그러실 텐데 집에만 계시진 않겠지.”

  금세 시무룩해진 민재를 가운데 두고 민호와 은지가 주위를 둘러본다. 사람 두 명이 겨우 지나갈 폭으로 계단이 자리하고 각 층마다 좁은 문 두 개가 양쪽에서 마주한다. 은지가 계단을 올려다보다 시선을 내렸을 때 양손에 물건이 담긴 비닐봉지를 힘겹게 들고 입구를 들어서는 여자를 발견한다.

  “누, 구, 세요? 여기 볼 일 있어요?”

  “네? 아, 안녕하세요?”

  은지가 여자에게 말을 건네려는 찰나, 여자는 그런 은지의 등 뒤에 있던 민재를 발견한다. 잠시 눈이 머물렀을까. 눈동자가 갑작스레 커지더니 입을 벌리며 힘겹게 꺽, 꺽, 거리는 소리를 낸다.

  “어, 어, 억. 민재, 민재 아니냐?”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여자를 민재도 알아본다. 여자는 반갑게 반색을 하다 그것도 잠시, 경악하며 고함을 내지른다. 여자의 행동에 민재는 겁을 먹고 민호 뒤로 숨는다.

  “어떻게 네가 여기 있는 거야?! 너는 사고로······.”

  겁에 질린 민재를 보며 은지가 여자를 진정시키려 애쓴다.

  “잠깐만요. 그게 사정이 있어서······.”

  “당신들은 뭐야? 죽은 애랑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죽은 애라는 말에 민재가 곤혹스럽게 여자를 쳐다보고 그런 민재의 손을 민호가 쥔다. 민재는 손을 떨쳐내며 여자를 향해 다가선다.

  “아줌마, 내가 왜 죽어요?”

  바로 앞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민재의 얼굴이 무슨 흉악한 것이라도 되는 양 여자는 기가 질려 숨을 멈춘다. 툭. 손에 든 비닐봉지가 바닥 위로 떨어지고 여자는 뒤로 돌아서서 달리기 시작한다. 입구를 나와 오른쪽으로 접어들며 고함을 질러댄다.

  “아아악! 귀신이다! 귀신!”

  여자가 있는 힘껏 뛰어나가자 남아있던 세 사람은 예상치 못해 당황한다. 민호가 은지를 보고 뭐라 하려는데 민재가 여자를 따라 뛰쳐나간다.

  “아줌마! 잠깐만요! 아줌마! 엄마 어디 있어요?”

  민재가 여자를 따라 오른쪽으로 돌아나가자 은지가 그 뒤에서 따라서 뛰기 시작한다.

  “민재야!”

  이번엔 민호가 은지를 부를 차례다.

  “은지야! 잠깐만, 은지야!”

  민호가 은지를 찾으려고 돌아섰을 때 이미 뒷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갔지?”

  민호가 속력을 붙여 골목 끝으로 뛰어가자 왼쪽으로 뻗어난 길 멀찍이서 민재의 이름을 부르며 달리는 은지가 보인다. 민호는 그 방향으로 달음박질친다. 충격을 받은 여자가 정신없이 달려가는 방향에는 작은 골목시장이 들어서 있다. 좌판이 깔린 곳을 지나는데 미처 발 디딜 곳을 골라가며 뛸 여유가 없다. 먼저 도라지가 놓인 좌판이 발에 채이고 이어서 해삼과 멍게, 각종 생선이 튀어 오른다. 갑작스런 이방인의 침입에 상인들은 처음엔 무슨 일인가 하고 바라보다 고함을 지르기 시작한다.

  “이봐! 이게 무슨 짓이야!”

  “저 여자가 미쳤나!”

  여자를 따라 민재가 지나가고 은지가 시장을 지나칠 즈음엔 각종 욕설이 난무하고 앞서 뛰어가는 여자를 향해 물건을 집어던지는 사람도 있다. 민호가 지나칠 땐 화난 상인들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지나가야 할 정도다. 사이가 벌어졌던 거리를 따라잡으려 민호가 속력을 내서 골목을 뛰어가자 육교를 건너 건너편으로 넘어가는 여자가 보인다. 민재는 아직 육교 위에서 여자를 따르고 있고 은지는 이제 위로 올라가는 중이다.

  “은지야! 민재야!”

  민호는 이름을 불러대며 육교 밑으로 뛰어간다. 은지가 민재를 향해 질러대는 소리가 들리지만 민재에게는 닿지 않아 보인다. 민재는 주저하지 않고 계속 달린다. 앞에서 달려가던 여자가 육교를 건너서 그 앞에 자리한 중학교 입구를 지나친다. 때마침 수업을 끝내고 아이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여자에겐 아이들이 안중에 없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앞으로 질주하는 여자의 기세에 아이들이 옆으로 비켜선다. 그들 중 붙어서 걷던 두 명은 여자를 보지 못한 채로 부딪혀 옆으로 넘어진다. 여자는 부딪힌 충격에 휘청거렸지만 넘어지지 않고 비틀거리다 다시 균형을 잡아 앞으로 달려 나간다. 넘어진 아이 중 한 명은 많이 놀랐는지 울음을 터뜨리고 주변으로 다른 아이들이 몰려든다. 그들과 친해보는 아이가 미친 여자라며 욕을 해대자 다른 아이들이 거든다. 그 옆으로 민재가 다가와서 주변을 둘러보며 지나친다. 뒤이어 은지가 뛰어가는 게 보이자 이제 아이들은 궁금한 얼굴을 한다.

  “뭐지? 경찰한테 쫓기는 거야?”

  “말도 안 돼. 쟤랑 저 여자가 경찰이라고?”

  민호가 나타나자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민호를 위해 길을 터준다. 자신 앞으로 아이들이 길을 만들어주자 한순간 민호는 주춤한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머뭇거릴 여유는 없어 바로 속력을 낸다. 산발한 머리에 어느새 신발 한 짝은 잃어버렸는지 왼발에만 신발을 걸친 채 여자는 숨을 몰아쉬며 뛴다. 학교를 지나 아파트가 빼곡하게 들어 선 주택가를 지난다. 민재는 전혀 지치지 않는지 속력을 그대로 유지해 조금씩 여자와 거리를 좁히는 중이다. 그 뒤의 은지는 점점 처지고 있다. 민호가 은지를 거의 다 따라잡을 즈음 은지는 멀어져가는 민재를 향해 다급히 불러댄다.

  “민재야, 거기 멈춰 봐! 잠깐만 기다려, 민재야!”

  민재는 뒤쪽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민호가 은지 바로 뒤까지 왔다.

  “은지야! 잠깐만, 은지야!”

  민호가 은지의 어깨를 붙잡자 놀란 표정으로 돌아본다. 다리에선 힘이 빠져 거의 걷듯이 느려졌다. 여자는 민호와 은지에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가버리고 민재도 곧 시야에서 사라진다. 조밀하게 붙어있는 집들 사이 자리한 놀이터를 돌아나가자 꽤 넓은 부지를 차지하는 공원이 나온다. 여자는 주저하지 않고 공원 안으로 들어선다. 신발을 신지 않은 발에 신겨진 양말에는 금방 풀물이 든다. 잔디가 깔린 곳을 지나자 걷기 좋게 바닥이 골라진 길이 나왔다 이어서 흙과 자갈이 놓인 공터가 모습을 드러낸다. 철창을 사이에 두고 그 옆으로 바로 차도가 붙어있다. 여자는 철창 앞으로 와서 더 이상 어떻게 나아갈지 몰라 잠시 숨을 고르며 멈춘다. 얼굴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려 어깨와 가슴을 적신다. 땀방울이 맺혀있는 눈꺼풀에서 땀을 떨쳐내기 위해 눈을 깜빡이며 허리를 숙이다 바로 앞에 와있는 민재를 발견한다. 여자는 기가 질려 조금씩 뒤로 뒷걸음질 친다. 하아, 하아. 힘겹게 목으로 침을 넘겨대는 여자와 달리 민재는 전혀 지쳐 보이지 않는다.

  “아줌마.”

  민재는 여자가 내보이는 경계심을 알아차렸는지 조심히 움직인다.

  “저기, 엄마는요?”

  멈춰있던 여자는 민재가 발을 움직여 한 발짝 더 가까워지자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선다. 그리고 민재 뒤로 다가오는 민호와 은지를 본다. 여자가 돌아서 철창 사이에 자리한 쪽문을 향해 뛴다. 그리로 나가면 바로 차도 옆 인도로 이어진다. ‘이제 더는 못 뛰어’라는 민호의 말소리가 들린다. 은지도 달릴 힘은 남아있지 않다. 민재만이 여자를 따라 뛴다.

  “민재야, 거기 서 봐! 민재야, 잠깐만!”

  안타깝게 은지가 민재를 부른다. 자신의 이름이 귀에 닿았는지 민재가 살짝 뒤돌아본다. 여자는 인도로 들어서다 그만 뛰던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차도까지 나아간다. 그 도로로 들어서던 트럭이 갑작스레 튀어나온 여자를 발견하고 급하게 방향을 튼다. 뒤를 돌아보며 뛰어가던 민재는 트럭의 옆면에 그대로 부딪힌다. 트럭은 바퀴가 심하게 짓이기는 소리를 내며 급정거를 하지만 이미 늦었다. 민재는 그대로 부딪혔다 튕겨져 나가며 주변으로 피를 뿌린다.

  “민재야!”

  은지의 고함소리가 길게 이어진다. 앞의 여자는 그 와중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더니 금세 시야에서 사라진다. 트럭에서 내려온 운전자가 퍼렇게 질린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며 차에 치인 사람을 찾고 있다. 은지는 놀란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아 버리고, 민호는 그런 은지를 부축해서 내려놓고 민재를 찾기 위해 트럭 운전사에게 다가간다. 다리가 후들거리는지 걸음이 불안정하다. 목을 타고 내리는 땀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민호의 모습도 은지처럼 금방 바닥에 주저앉을 것처럼 보인다. 누가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털썩, 하며. 가쁘게 차올라 오는 숨을 어떻게든 가라앉히려 노력한다. 힘이 빠져 낮아진 음정으로 반복해서 같은 이름을 입에서 뱉어낸다. 민재야. 민재야. 민재야.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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