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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명탐정 이원희의 단편과 사건수첩
작가 : 미스테리
작품등록일 : 2020.8.24

소녀탐정 이원희가 겪은 각종 단편사건들과 그녀의 사생활을 모두 공개한다. 사건수첩과 단편소설 형식으로...!!

장편도 연재하겠지만 그건 길어서 우선 단편을 올리기로 한다!!~~

 
[중단편] 오해 때문에 파멸당한 사나이 (전편)
작성일 : 20-10-30 05:23     조회 : 452     추천 : 0     분량 : 19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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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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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조 시대의 간신배 윤원형은 조선 명종 때의 소문난 악당이자 간사한 신하로서, 이조 중기의 부를 몽땅 자기의 호주머니에 틀어넣고 당시 조선을 세계제일로 부패하게 만든 원흉이었다. 그가 이 정도로 無所不爲(무소불위)의 권세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임금이 아직 미성년이어서 대왕대비가 대신 국가의 정치를 맡고 있었는데 그녀가 바로 그의 누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그의 누이가 죽고, 임금도 어른이 되어 직접 정치를 하게 되자 세상이 달라졌다. 급기야 어느 날, 참다못한 임금은 외삼촌인 원형에게 죄를 물어 전 재산을 몰수하고 강원도 영월 땅으로 귀양을 가게 하였다.

 그러나, 외숙인 그는 그래도 임금이 언젠가는 다시 자신을 불러주겠지 하면서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어려운 생활을 버티고 있었는데...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장을 보러 수십리 길을 걸어 읍내 장터에 나갔을 때 마침 그를 잘 알고 지내던 관아의 통인이 다가와 그에게 한 마디 하기를...

 [대감, 큰일났소! 금부도사가 지금 대감과 부인에게 사약을 내리기 위해 멀리 서울에서 찾아와 지금 동구 밖 주막에 여장을 풀었다오. 아마 내일이면 거기 도착할 거요. 내가 조금 전에 동구 밖 주막에 들렀다가 그것을 보았소! 틀림없이 중죄인에게 사약을 내리기 위해 오는 길이라고 금부도사가 하는 소릴 들었다니까요.]

 이런 증언을 하는 것이었다.

 [하이고! 이젠 끝장이로구나! 이 일을 어쩔꼬?]

 원형은 올 것이 왔구나 하면서, 당장 수십 리 길을 도로 내쳐 걸어 집까지 돌아와서는 아내인 난정에게 이와 같이 밝혔다.

 [이 일을 어쩌면 좋소? 여보, 금부도사가 우릴 죽이려고 사약사발을 받쳐들고 지금 동구 밖 주막에 묵고 있다 하오!]

 [난 몰라요. 어차피 죽을 바엔... 차리리 내 손으로...]

 그녀는 당장 그 자리에서 은장도를 빼어 목을 찌르고 자살하고 말았다. 원형은 하도 기가 막혀 아내 난정의 시체 앞에서 통곡하다가, 그날 밤이 채 지나기 전에 기둥에 목을 매고 같이 지옥행이 되고 말았는데...

 그러나, 금부도사는 날이 밝았는데도 오지 않았으니...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전혀 상관없는 다른 죄인을 잡으러 가는 도사였다고 한다.

 사람이란 죄를 지으면, 은근히 켕겨 전혀 자신과 상관이 없는 일에까지 지레 짐작으로 연관하여 결국 자신의 인생을 망치고 마는 것일까? [죄짓고는 못산다] 라는 속담이 이래서 나온 것일 것이다. 이번 장에서는 그런 사나이의 일화를 일본을 배경으로 하여 한편의 단편 스토리로 엮어 보았다.

 

 

 

 내가 그 소름끼치는 뉴스를 들은 것은 어느 초가을, 아직 한여름의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9월초의 어느 날 저녁이었다.

 그 날, 나는 바로 어제로 잡지사에 밀린 원고를 다 쓰고는 모처럼 홀가분한 기분으로 응접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아빠! 아빠! 나 좀 봐줘.'

 어느 새, 이제 막 말을 배운 내 귀여운 외동딸인 노에미가 아장아장 걸어 다가와서 나에게 달라붙었다. 올해 꼭 세 살, 출판사 사장인 무라자키 사장님의 외딸인 하나꼬와 결혼해서 낳은 딸이었다.

 요즘 내가 원고 때문에 너무 바빠 아기를 봐주지 않았더니, 오랜만에 내가 응접실에 나와 있으니 어린양을 피우며 나에게 다가온 것이었다. 나는 내 아기가 너무 귀여워 번쩍 안고는 공중에 쳐들고 놀렸다.

 "까꿍! 우리 여자아기 까꿍!"

 내가 아기를 쳐들고 놀리자, 아기가 까르르 웃었다. 즐거운 모양이었다.

 "여보, 애기 거칠게 다루면 안돼요. 이리 주세요!"

 어느 새, 아내가 부엌에서 나와 아기를 넘겨받았다. 딸은 엄마 품으로 옮겨 안기며, 다시금 이쁘고 해맑게 웃었다.

 "원고 다 쓰셨어요?"

 "음. 다 썼소!"

 "잘 되셨네요. 그럼 우리 내일 저녁에는 외식이라도 하러 가요!"

 "그럴까?"

 "그래요. 여보, 마침 며칠간은 할 일도 없잖아요? 우리 애기 바람도 좀 쏘일 겸..."

 "그럽시다. 그럼 내일 저녁에는 우리 세 식구 다 스카이라운지에 가서..."

 "고마워요. 여보!"

 아내가 내 등뒤에서 나를 가볍게 얼싸 안는다.

 "아빠, 아빠..."

 내 무릎 위로 옮겨 앉은 아기가 나를 부른다.

 나는 내 옆에 서 있는 아내와 아기를 보고, 무척 행복하다는 기분을 느꼈다. 내가 한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가정은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물론 지금이야 내가 부자이고 누가 보아도 남들이 부러워할 사회적 신분을 얻고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지만, 이것은 극히 최근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으로부터 한 십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찢어지게 가난해서 세끼 풀칠하는 일이 큰일이었던 것이다. 내가 베스트셀러 작가, 그것도 추리소설의 대가로서 이름을 얻게 된 것은 불과 7년여 전,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너무 가난했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부터 7년 전 우연히 막 일본에 불기 시작한 전자출판 붐에 편승하여 전자북을 이용해 내 작품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당연히 출판계 사람들과 접촉이 많아졌고 급기야 내 작품이 전자출판 분야에서 공모한 문예전에서 당선되자 나는 삽시간에 무명 작가에서 밀리언셀러 작가로서 일어나게 된 것이었다.

 그러던 중, 나는 업무상 내 작품을 연재하겠다는 명망있는 출판사 사장님의 딸과 몇 차례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그러는 사이에 우리 둘의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져서 지금으로부터 5년 전에 마침내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던 것이다.

 글자 그대로, 나는 맨 주먹으로 시작하여 여기까지 온 정말 인간승리 그 자체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쨌건, 나는 늦발에 대기만성형으로 부와 명예를 잡은 프로작가가 되었고 지금도 나의 인기는 끊임없이 상승 중이다.

 내가 7년 전, 나를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어준 그 소설의 이름은 바로 [벽속의 여인]! 에드가 엘런 포우의 추리소설인 [검은 고양이]를 본따 지은 트릭을 주제로 한 작품이었다.

 

 어떤 가난한 화가가, 재벌집 외동딸과 사랑에 빠졌는데 정말 우연히 남자는 화가 공모전에서 자신의 작품이 금상을 받게 되어 얼마 안가 갑부가 되고, 정 반대로 여자는 갑부였으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그로 인한 쇼크로 심장마비에 걸려 별세하자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고 만다는 줄거리다.

 이렇게 되자, 잠깐 사이에 양지가 음지되고 음지가 양지된다는 식으로 하루아침에 두 사람의 처지는 정 반대로 뒤바뀌고 말았다. 갑부였던 여자가 거지가 되자, 정 반대로 거지였다가 하루아침에 갑부가 된 남자는 여자가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이제 나올 것도 없는 여자와 굳이 결혼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는 그때쯤 돈이 많고 명성도 있는 여류 유명인사와 새롭게 선을 보고 있던 처지라 더욱 그녀가 싫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를 의도적으로 자꾸 멀리 하였는데...

 그러던 중, 남자의 마음을 알아차린 여자가 참다 못하여 남자를 찾아와서 자신과 결혼해주지 않으면 당장 그를 [혼인빙자 간음죄]로 고소하겠다고 협박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남자는 한번 잘못 건드렸다가 호되게 당하는구나 하고 골머리를 썩는데... 이제 거지나 다를 바 없는 저 여자와 지금 나와 사귀고 있는 새 애인인 료오코를 저울질해 보자 주저없이 그녀는 위로 푹 올라가 버렸다.

 결국, 그는 참다못해 무서운 결심을 하고 만다. 모처럼 손에 넣은 부귀와 명예를 지키는 방법은 그 여자를 세상에서 영원히 없애버리는 방법뿐...

 남자는 여자를 유인하여 급기야 어딘가에서 살해해 버리고 만다. 그리고, 시체를 마침 새로 짓고 있던 자기 화랑건물의 아직 마르지 않은 건물벽의 시멘트 거푸집 속에 넣고 감쪽같이 굳혀 버렸다. 이 여자는 이미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형제도 없는 외동딸이니까 이렇게 처치해버리면 아무도 모를 거라고 여기고는 말이다.

 그 뒤, 여자를 이렇게 감쪽같이 처치해버리고는 남자는 한 십년 정도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나름대로는 행복하게 살았는데...

 그런데, 그 뒤가 문제였다. 어느 해 대지진 때, 지진으로 인해 자신의 화랑 건물이 무너지자 그 안에 있던 죽은 여자의 백골이 벽 속에서 쏟아져 나왔고...

 이 일로 당장 경찰이 파견되어 이 문제를 수사하게 되었다. 경찰은 이 시체가 당근 10년 전쯤에 죽은 여자의 시신이라고 판정을 내렸고...

 그때, 시체가 끼고 있던 반지가 단서가 되고 만다. 반지는 썩는 물건이 아니어서, 오랜 세월 벽 속에다 두어도 부패하지 않고 그대로였던 것이다.

 그 반지는, 지금은 화랑 주인이 된 그 남자가 십년도 더 전에, 여자가 갑부였을 당시 그녀의 환심을 사려고 자신의 손가락에 끼고 있던 어머니의 유물을 전해 준 것이었다. 그때, 여자를 죽이고 그녀의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려고 했어도 손을 꽉 쥐고 있어서 뺄 수가 없어 그냥 두었는데, 그것이 커다란 단서가 되고 말 줄이야.

 그 반지에 남아 있던 머릿글자로 그 여자가 십년 전에 행방불명된 남자의 애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결국 남자는 하루아침에 살인범으로 붙잡히고 만다.

 남자는 사형집행 하루 전, 감옥 안에서 이렇게 한탄한다.

 [그녀가 내게 목이 졸려 죽는 순간, 내가 준 반지를 빼지 못하게 손을 꼭 쥐었던 것이 우연이 아니라, 십년 후든 언제든 자신이 발견되었을 때 다잉메시지를 남기기 위해 그랬던 것이었구나...]

 

 이것이 내가 쓴 추리소설, [벽속의 여자] 소설의 줄거리였다.

 내가 이렇게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회상에 잠겨 있을 때, 돌연 내 뒤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마침 그때 텔레비전에서는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다.

 [다음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제 오후, 오사카에서 재개발 지구의 ** 동의 철거 작업 중 신원불명의 여자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경찰은 이 시체가 매장된 지 한 7년 전후가 된 것으로 보고 수사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수사본부는 우선 이 사체의 신원과 인상복원에 치중하기로...]

 그런 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나는 그 소리에, 나도 모르게 뭔가를 느끼고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서 텔레비전 화면을 주목하였다. 내가 주목했을 때, 그 현장배경을 보여주는 화면은 이미 지나가고 보이지 않았지만 수사본부를 보여주는 화면에서 해설 방송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으므로 나는 틀림없이 내가 뉴스를 잘못 들은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틀림없다. 오사카 ** 지구라면, 내가 알고 있던 그 곳이 틀림없다. 더구나, 내 추측을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이런 해설이 같이 들려왔다.

 [경찰은 뼈만 남은 이 사체에서 현대인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대량의 방부제 성분과 최신기술로 이를 치료받은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여자시체가 살해된 뒤 암매장된 것으로 보인다고 단정하고 시체의 신원을 밝혀낸 뒤 원한이나 치정 관계를 배경으로 조사를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럼 다음 뉴스는...]

 나는 그 보도를 듣고 흡사 찬물을 끼얹은 듯이 하얗게 얼어 버렸다.

 "아니? 여보! 왜 그래요?"

 내가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내가 옆에서 나를 부르며 물어보았다.

 "아니, 저런 끔찍한 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서... 난 저런 게 소설이나 만화 속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줄 알았더니, 실제로 있는 모양이지?"

 "참, 당신도... 별 걸 가지고 다 그러시네요. 그나저나 여보, 내일 저녁약속은 꼭 지키시는 거죠?"

 "아, 그럼..."

 "고마워요. 여보..."

 아내는 나에게 가볍게 키스를 해주고는 아기를 안고 건넌방으로 갔다. 어느 덧 아기가 내 품에 안겨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물론, 조금 전에 내가 아내에게 했던 핑계는 다 거짓이었다. 정작, 내가 조금 전의 그 뉴스를 보고 경천동지할 정도로 놀란데에는 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내 운명이 송두리채 걸려있는 위험한 상황이... 나는 안락의자에 몸을 기댄 채, 지긋이 눈을 감고 지금으로부터 강산이 바뀔 정도의 세월 전을 생각해보았다.

 그때의 그 기억이 내 뇌리 속에서 새록새록 꿈꾸는 듯이 되살아났다. 비록 그 꿈이란 게, 다시는 꾸고 싶지 않은 악몽이었지만...

 

 부잣집 외동딸인 이케다 유호를 내가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1년 전, 그때는 내가 아직 무명 소설가로서 고전하고 있던 20대 중반의 청년 시절이었다. 나는 당시 오사카에서 살고 있었다. 나는 동경에서 일찌기 명문대학 국문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나왔으나, 집안이 신통찮아 크게 비빌만한 연줄도 없어서 글재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출세하지 못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누구든지 사회에 대해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다 인정하는 바겠지만, 이 사회라는데는 실력만 있다고 성공하는데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일단 그 실력을 발휘할 발판이 될 배경이 있어야지, 그저 단순히 실력만 있어서는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이다.

 세상에 다시없을 질 좋은 옥(玉)도 누가 캐다가 갈고 닦아줬을 때 정말 보석으로서의 가치가 생기는 것이지, 그저 산속 깊숙이 지하자원으로 그냥 묻혀만 있어서는 그저 보통 돌멩이일 뿐인 것이다. 인간도 이와 같아서, 누가 캐다가 써주는 사람이 있어야지 그저 자기만 실력이 있어서는 아무 쓸데도 없다. 실력은 등용된 뒤의 문제일 뿐이지, 누가 써주기 이전에는 실력이 있어도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다.

 실상 현실의 사회에서, 실력은 어디까지나 부차원적인 문제일 뿐이지 주차원적인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실력있는 자가 잘 산다.]라는 격언이, 알고 보면 말짱 사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그때 이미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당시의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로서, 써주는데를 찾지 못해 푹푹 썩고 있던 인재였던 것이다.

 그러던 중, 유호가 나에게 접근해왔다. 그녀는 오사카 유지의 외동딸로서, 비록 머리는 아주 좋았으나 공부하기를 딱 싫어해서 대학도 못간 여자였다. 하지만 미모는 빼어나서, 지방 텔레비전 방송국 프로듀서를 어떻게 구워 삻아 용케 방송국 모델까지 하고 있는 여자였다. 하긴, 거기에는 그녀의 막강한 아버지의 돈과 뒷빽도 어느 정도 작용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런 그녀가 비록 가난하지만, 머리가 좋고 좋은 대학을 나온 인텔리인 나에게 접근해온 것은 어쩌면 필연인지도 몰랐다. 그녀는 어떻게 해서 나와 만난 뒤, 나에게 한때 적잖은 경제적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녀는 가끔 내 자취방에 와서 같이 자고 가기도 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틈만 나면 뭐라도 사먹으라고 적잖은 돈을 내놓고 가기도 했다.

 비록 내가 몸을 파는 콜보이가 된 기분이었지만, 이미 그녀와 나는 결혼약속을 한 뒤였고 또 나는 당시 워낙 돈이 없어 라면을 주식으로 하다시피 했던 때인지라 그런 것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때, 나는 별다른 수입원이 없어서 이 여자가 주는 적잖은 돈이 나의 유일한 생명줄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돈으로 나는 배가 고프고 영양이 부족할 때 바깥의 포장마차에서 우동이라도 사 먹을 수 있었으니까...

 나는 이렇게 유호와 몇 년간 사귀고 있었다.

 

 그러기를 무려 3년여, 나는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고 마침내 출세를 하게 되었다.

 때마침 우리 일본에 80년대 말부터 서서히 불기 시작한 컴퓨터 통신과 인터넷의 바람이 출판계에도 대 지각변동을 일으켜, 내 원고가 빛을 볼 기회가 오고 만 것이다.

 이전에는, 출판에서 출세하는 길이라고는 등단심사를 거쳐 심사위원들의 눈에 들어야만 한다는 담합 아닌 담합이 아니고서는 문필가로서 출세한다는 것이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시대가 바뀌어 인터넷이 보편화되자 이제 나 같은 소설가의 등용의 길은 훨씬 넓어졌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나는 우연히 한 명망 있는 컴퓨터 통신 공모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방송국과 인터넷에서 매스컴을 타게 되었다.

 그러자, 한번 매스컴을 탄 그 뒤에는 글자 그대로 내 팔자가 탄탄대로였다. 내가 가만히만 있어도 일본 각처의 출판사에서 출판 제의가 들어왔고 나는 가만히만 있어도 그들이 경쟁적으로 돈을 갖다 바치지 못해 안달이었다.

 더구나, 나는 운도 좋아서 그때 마침 그런 출판사 측에다 우연히 한 권 써 주었던 추리소설이 문학공모 대전 때보다도 더 활기를 띄어, 급기야 일년도 안되는 사이에 밀리언셀러 부문에 들어갔던 것이다. 이렇게 나의 인기가 급상승하자, 여기에는 정말 나 자신도 놀라고 말았다.

 물론 여기엔 내 자신이 뛰어난 실력을 가졌다는 점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인터넷에서 개최한 최초의 문학대상을 탄 이름이 알려진 간판 작가의 작품이기만 하다면 무조건 좋은 작품이라고 긍정의 색안경을 끼고 사보려고 하는 이 나라의 몰지각한 국민들의 의식 탓이었을 것이다.

 그 전에는 내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을 썼어도 눈 하나도 깜짝 않던 사람들이, 내가 문학대상이라는 간판을 하나 따니까 대충대충 써도 무조건 내 책을 사서 보았던 일이 그것을 입증했던 것이다. 나는 그 때 실력보다는 어디까지나 배경으로 작품이 평가받는 이 나라 상업적 문학의 모순점을 깨닫고는, 쓴웃음을 지었었다.

 어쨌든, 모순이건 뭐건 나는 여기에서 삶의 전기를 얻었고, 바로 이 사건이 나의 인생을 그때까지의 급전직하에서 하루아침에 쾌속상승시키는 인생의 교차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란 상황이 달라지면 마음이 바뀌는 것일까? 내가 막 문학대상에서 입상하고 여러 출판사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아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을 때, 나에게는 커다란 문제가 하나 생겼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귀고 있던 애인 이케다 유호였다.

 이제 나는 유명인사가 되었고, 이제 더 이상 저 여자의 경제적 도움을 받을 필요도 없다고 여기게 되자 나는 어제까지만 해도 나에게 과분한 여자라고 여겼던 그녀가 돌연 같잖게 여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그 상황에서는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내가 그녀에게 과분한 여자라고 여겼던 것은 당시 내가 그녀에게 빌붙어 밥을 얻어먹고 살다시피 하던 거지였기 때문이었다. 단지 경제적, 배경적인 문제만 제외한다면, 나는 인간적으로는 결코 유호에 뒤떨어지는 남자가 아니었다. 내가 개인 대 개인으로 보면, 그녀보다 뭐가 빠져? 인물이 빠져? 학벌이 빠져? 지능이 빠져? 운동신경이 빠져? 그렇다고 뭐가 빠져?

 따지고 보면 유호가 나보다 나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단지 아버지 잘 만난 덕에, 공적 아닌 공적 탓에 얻었다는 귀속지위 뿐이었다. 그녀는 사실 얼굴도 이쁜 편이 아니었고, 머리도 나빠 대학도 못 나왔으며, 또 무엇보다도 부잣집에서 외동딸로 태어나 떠받들어주는 환경에서만 자라서 버릇이 없고 안하무인이었다.

 툭하면 깽판을 부리고, 무조건 남자라면 자신의 비위를 맞추고 자신의 억지와 심청을 받아주어야만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여자였다. 마치, 이 세상의 중심이 자기이고 세상이 자기를 위해 존재하는 줄로 착각하는 그런 여자였던 것이다.

 이런 여자에게, 어떤 남자가 진정한 사랑을 느낄 수 있겠는가?

 비록 나는 얼마 전까지는 이 여자에게 적잖은 돈을 얻어 쓰면서 그것으로 연명하다시피 했던 처지였으므로, 어쨌든 돈을 얻어쓰는 마당에 이런 정도의 횡포는 참아야 한다는 의무의식이 그녀를 나에게 과분한 여자라고 느끼게 착각하게 만들었으나, 상황이 달라져서 이제 경제적으로도 하나 그녀에게 꿀릴 것 없게 된 이 마당에서는 그 동안 참고 살아왔던 나의 감정이 나 자신을 부추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그 유호와의 갈라짐을 결심하게 만드는 중대한 결정타가 된 사건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내가 쓴 추리소설 [벽속의 여자]가 대히트를 쳐 반년도 남짓 하는 사이에 밀리언셀러에 들어가자, 그 추리소설을 내신 출판사의 무라자끼 사장님께서 나에게 자신의 딸과 선을 보라고 한 것이다.

 나는 마지못해 그녀와 만났는데, 나는 그녀를 만난 순간 한눈에 반해 버렸다. 다소곳한 표정에 태도하며, 예의바른 행동하며... 미모도 꽤 빼어났다. 아마 그 사장님이 딸 교육 하나는 잘 시켜놓았던 모양이다. 소개를 듣자하니, 그녀는 나와 같은 명문대학 출신이었다.

 앞에서 설명한대로와 같이 못 생기고 버릇없고, 머리도 나쁜데다 이기적인 유호 따위와는 아예 잽도 안되게 훌륭한 여자였던 것이다. 나는 순간, 이 여자를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여자 자신도 마음에 들었지만, 무엇보다도 장차 출판계에서 잘 나가는 작가로 계속 뻗어나가려면 출판계의 거장이신 사장님의 사위가 되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나는 그 날, 굳게 결심하고 오사카에 내려와 내 결심을 알리는 편지를 쓰고 그간 고마웠다는 사례로 적잖은 액수의 수표까지 한 장 끊어 같이 보내준 뒤 서둘러 방을 빼고 도망치다시피 동경으로 이사했다. 만약 직접 만나 헤어지자고 하면, 그녀는 절대 승낙하지 않고 악착같이 더욱 들러붙을 것임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 알고 있었다. 그녀의 그 찰거머리같은 진득한 집착과 끈질김을... 만나면 더욱 일이 꼬일 것임을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새로 이사가는 곳의 주소도 알리지 않고 서둘러 도망가다시피 했던 것인데...

 

 그 뒤, 나는 이 동경으로 올라온 후, 다시 한편 더 쓴 후속작도 대히트를 치고 그야말로 나의 인생은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내가 동경에 올라온 지 한 서너 달쯤 지났을까?

 어느 날 밤중, 내 집 아파트에서 초인종 소리가 나길래 나는 쓰다 만 원고를 놓아두고 인터폰을 들었다.

 [누구세요?]

 [누구긴? 나야! 배신자!]

 나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섬칫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대문을 열었다. 얼른 문을 열지 않으면 더 큰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을 열자, 유호가 무척 노한 듯한 인상을 쓰며 내 집안으로 들어왔다.

 "아니? 여긴 웬 일이야? 어떻게 내 집을 알았지?"

 나는 어이가 없어서 못마땅한 투로 물었으나, 그녀는 단 한 마디로 잘라 밝혔다.

 "흥. 당신은 이제 유명인사잖아? 집 위치를 감추기가 그리 쉬울 줄 알아? 당신이 거래하는 출판사 직원에게 돈 좀 주면서 물었더니 금새 가르쳐주더군."

 "..."

 아차,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이런 약은 계집... 어떻게 한담? 이 여자가 오사카에서 여기까지 직접 올라온 것을 보면, 필시 뭔가 결단을 내려고 찾아온 것이 확실한데...

 "난 아버지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혀 밝히지 않고 나 혼자 운전해서 여기 찾아온 거야! 당신하고의 관계에 어떻게는 결정을 내리려고 말이야!"

 그녀는 나에게 다짜고짜로 이처럼 선포하였다. 그 소리를 듣고, 나는 이것 정말 큰일이 났구나 싶었다.

 나는 어쨌건, 여기서 이 여자를 정리해두지 않으면 더 큰 일이 벌어지겠다고 생각해서 강하게 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봐! 유호, 잠깐 말 좀 하자!"

 "해 봐!"

 그녀는 그러면서 다짜고짜로 내 침실로 들어오더니 옷을 벗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 여자, 이 판에서까지 섹스를 하자고 하는 건가? 나는 이미 그녀에게 정나미 뚝 떨어졌었지만, 이렇게까지 밝히는 것을 보니 더욱 밥맛이 없었다. 나는 그녀가 옷을 벗는 것을 말렸다.

 "이봐! 유호, 옷 입어!"

 "왜? 우리가 처음 이랬던 사이야? 항상 집에서 만나면 이랬잖아?"

 나는 더 이상 미뤘다간 안된다고 생각하여, 급기야 그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밝혔다.

 "이봐, 이제 우린 만나서는 안돼! 난 당신과 결혼하지 않을 거야! 실은, 나도 이미 약혼녀가 있어. 내가 거래하고 있는 출판사의 사장님 딸이지. 난 그녀와 결혼할 거야! 바로 며칠 전에 약혼식도 치렀어. 올 가을에 결혼식 올릴 거야!"

 "뭐, 뭐야? 이 가증한... 나라는 애인이 있으면서 다른 여자와 약혼을? 용서 못해!"

 유호는 옷을 벗다 말고, 화를 버럭 내면서 얼굴이 울그락푸르락해지더니 나에게 확 달려들어 내 뺨을 후려갈겼다.

 "이 비열한 자식!"

 이러는 그녀의 무례한 태도에는 나라고 이젠 도저히 참을 수만은 없었다. 나는 급기야 화가 나서, 그녀에게 막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 년이... 누구에게 손찌검이야?"

 "뭐? 이 년? 너 말 다 했어?"

 "그래! 다 했다. 이 망할 년아! 어이그, 이걸 그냥 여자만 아니면 그저 이 자리애서 안 죽을 만큼 패주겠는데... 날더러 뭐 비열한 자식이라구? 비열한 건 바로 네 년이야! 이 썩을 년아!"

 "뭐, 뭐야? 썩을 년? 나에게 그딴 소리를?"

 "너라고 그딴 소리 못할 게 뭐냐?"

 "이, 이게..."

 "뭐? 이게? 남자에게 한다는 소리 좀 들어봐! 이 계집애!"

 나는 드디어 참다못해, 화를 버럭 내면서 유호에게 그간 꾹꾹 눌러 참았던 말을 다 털어놓고 말았다. 그녀를 무섭게 째려보면서...

 "야! 이제 나도 맞는 소리 좀 하고 살자! 그간은 네가 내 목구멍 쥐고 있어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랍시고 할말 못하고 살았었는데, 이제 나도 하고 싶은 말, 맞는 말 좀 하고 살자! 솔직히 내가 언제 네 애인이었냐? 숫제 네 남자하인이었지. 애인이라면서 툭하면 네 멋대로만 하고 횡포부리고, 철부지같이 억지만 부리고 자기 억지 안 받아주면 막 울고 깽판부리고... 아냐. 내가 하인이었대도 그렇게는 못했겠다. 네가 그러고도 내 애인이었다고 할거야? 나도 정말 그간 입이 근질거려서 혼났다. 너한테 이런 소리하지 못해서 말이야. 솔직히 말해서 어떻게 내가 4년간이나 너의 그 횡포 참고 살았는지, 내가 지금 생각해도 나 자신이 신기해 죽겠다."

 "뭐? 뭐라구?"

 "뭐라구는 뭐가 얼어죽을 뭐라구야? 이 년아! 아버지 잘 만났다는 감투 아닌 감투가 그렇게 네가 내세울 거였냐? 넌 잘 태어났다는 것만 빼면, 정말 아무 짝에도 필요 없는 인간쓰레기야! 솔직히 내가 너보다 못한 게 뭐냐? 네가 지역유지이자 백만장자의 딸만 아니었다면, 내 주변에는 얼씬도 못했을 여자가 바로 너라고! 큰길 가로막고 물어봐! 누가 손해보는 결혼하겠냐고? 네가 백만장자의 딸이라는 사실만 모른다면, 다 내가 잘못 짝을 잘못 찾았다고 할걸."

 나는 화가 난 나머지, 그녀의 모멸을 파는 소리를 마구 내뱉었다.

 하긴, 그것은 분명 어김없는 사실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틀린 소리 한 것도 없잖은가? 이 망할 년, 제 아버지 위세 등에 업고 나같은 서민들을 그간 발바닥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고 멸시했던 것을 생각하면...

 따지고 보면, 지금 이 말대로 내가 처음 그녀에게 정나미가 뚝 떨어지게 된 동기는 조금 전에 내가 밝힌 대로 그녀의 제멋대로의 성격 탓이었던 것이다.

 내가 그렇게까지 따지면서 화를 버럭 내자, 그 여자는 이젠 도저히 내 마음을 돌려놓을 방법이 없다고 여겼는지 급기야 이렇게 최후통첩을 하고야 말았다. 옷을 도로 챙겨 입으면서...

 "좋아! 미쓰노 당신, 나에게 그렇게 나왔지? 내가 순순히 물러날 줄 알고? 나 이 길로 당신 약혼녀의 집에 찾아가서 깽판 부릴 거야! 나와 사이를 방해놓지 말라고... 흥, 내가 찾아가 소동을 피우면 당신 약혼녀도 당신과 결혼을 다시 생각해보지 않으면 안될걸? 더구나, 만약 그래도 당신이 그녀와 헤어지지 않는다면, 난 당신을 혼인빙자 간음죄로 고소할 거야!"

 "뭐야?"

 나는 그때, 소스라치게 놀랐었다.

 "이제 막 밀리언셀러 작가가 된 유명작가, 전 애인을 팽개친 끝에 혼인빙자 간음죄로 고소 당하고 감방행! 이런 사생활에 문제가 있는 작가를 독자들이 계속 사랑해줄까? 아니, 혼인빙자 간음죄는 한 2년 살아야 할 테니 아마 당신이 감옥살고 나올 때면 당신은 도로 무명작가가 되어 있을걸? 독자들은 잡혀 들어간 작가를 2년씩이나 기다려 줄만큼 관대하지는 못해! 아니, 그보다도 전과자의 원고를 어느 출판사가 사 주려고나 할까? 두고 봐! 어차피 내가 못 먹을 떡이라면 남이 대신 먹게 놔두진 않아! 당신, 감옥에 들어갈 생각하라구!"

 아뿔싸! 나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머리를 탁 치고야 말았다. 아직 그런 방법이 남아 있었구나. 저 독사 같은 계집, 내 인생을 끝까지 훼방놓을 생각이다. 혼인빙자간음죄라니? 나는 너무 억울했다. 솔직히, 간음은커녕 오히려 간음 당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내 쪽이었다. 처음 만나서 우리가 관계를 가졌을 때도 내가 술 취해 있을 때, 그녀가 다가와 나를 호텔 방에 끌고 가다시피 해서 같이 잔 것이니까... 그때도 나는 밑에 깔려 있었다.

 하지만, 누가 그것을 믿어 줄 것 같은가? 여자가 남자에게 겁탈했다고 해봐야 그게 씨가 먹힐 것 같은가? 나도 그쯤은 알고 있었다.

 "닌 그럼 가겠어! 그럼 머잖은 미래에 감방 갈 각오나 해두라구!"

 유호의 냉혹한 장담이 내 귓속을 아프게 파고 들어왔다. 저 냉혈동물 같은 여자, 정말 한다면 할 여자다. 난 무려 4년간이나 그녀와 동거를 해왔기에 그녀의 성품을 잘 안다.

 정말 저 여자는 자기가 차지 못할 남자는 차라리 감옥에 보내버릴 여자인 것이다. 그녀는 그토록이나 잔인하고 집요한 성격이었다.

 유호가 나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막 집을 나서려는 순간, 나는 그때 뭔가 내 마음 깊은 심연에서 나에게 뭐라 꾸짖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결론은 오직 하나 뿐이다. 유호를 죽여 버려라! 저따위 더러운 계집 때문에 네 고생한 인생을 다 날리고 감옥 구경까지 할래? 기회는 지금 뿐이다. 이때를 놓치면 기회도 없어!]

 이런 목소리였다. 조금 지난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그것은 바로 내 마음속에 악마가 나를 꼬이는 소리였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그때 그 상황만은, 설령 그것이 악마의 목소리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어도 그 말에 따르는 도리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 內的(내적)인 목소리가 내 심장에 사무치게 전해지는 찰나, 나도 모르게 막 집을 나서려는 유호에게 뒤에서 확 덮쳐들어 그녀를 꽉 붙들고서 두 손으로 목을 졸랐다. 거의 반사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나는 본시 팔힘이 셌다. 대학 시절에 동아리 모임이서 럭비를 했기에... 그런 내가 거의 반사적인 행동으로 달려들어 마구 목을 조르기 시작하자, 삽시간에 유호는 목이 졸려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녀가 완전히 축 늘어지자, 나는 그때서야 제 정신으로 돌아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내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에...

 나는 축 늘어진 유호를 뒤흔들어 보았으나, 그녀는 이미 숨이 끊어진 후였다.

 [어쩌나? 내가 드디어 살인까지 저질렀구나!]

 나는 내가 저지른 엄청난 결과에, 힘이 쭉 빠져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다 틀렸어. 어렸을 적부터 일류 소설가가 되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작품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하고 피나는 노력을 해서, 이제 겨우 그 꿈을 이루었는데 그 꿈도 이젠 다 끝이야.]

 나는 너무도 허탈했다.

 [으이구, 이 썩을 년, 내가 이 따위 년하고 애당초 관계를 가졌던 것이 내 최대의 실수였어. 정말 내가 배가 고파서 한때 실성했었지. 굶는 한이 있어도 이런 더러운 년이 주는 돈은 받지 말고 사귀지도 말았어야 했던 건데... 그게 이렇게 비싼 대가로 돌아올 줄이야!]

 나는 한없이 한탄했으나, 이윽고 시간이 조금 지나 이 아파트에는 나 자신과 그 죽어있는 그녀밖에는 없다는 사실과 이 아파트 복도에는 아직 감시카메라가 없다는 사실이 떠오르자, 이내 이런 묘안이 떠올랐다. 냉정해지면 누구나 떠오르는 생각 말이다.

 [아니, 잠깐! 이 계집은 죽어 마땅한 인간쓰레기야! 악당이라구... 사실 도덕적으로 따지면, 이런 것은 조금도 죄가 아니야! 이런 년을 오래 살려두면, 나 말고도 다른 많은 사람들이 이 여자의 횡포에 눈물 흘릴 거라구! 잘 죽였어. 암. 그렇고 말고... 그런데, 문제는 이제부터네. 아무리 인간쓰레기라고 사람을 죽였는데 처벌이 안 따를 수가 없잖아?

 참. 이거야 원... 조그만 멸치건 거대한 백상어건 똑같은 물고기라고 같은 가격을 물리는 이 나라 법도 확실히 문제가 있어. 사람이 곁만 사람이라고 다 같은 사람인 줄 알고 있으니... 개보다 더한 이런 년도 인간으로 쳐줘야 하나? 아무리 보아도 이까짓 사람 같지도 않은 계집년 하나 죽이고는 개 값 제대로 물긴 너무나 억울해! 내가 지금껏 피땀으로 쌓아온 지위를 이 더러운 년 때문에 빼앗길 수는 없지. 뭐 죄를 벗어날 방법이 없을까? 그래! 그러고 보니, 이 계집이 아까 나한테 자신이 여기 찾아온 지는 아버지는 물론 아무도 모른다고 자기 입으로 말했겠다? 좋은 수가 있다.]

 내 머릿속에 짐짓 좋은 꾀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은 바로 불과 반년도 채 전에 막 히트를 쳐 나에게 많은 돈을 벌게 해주었던 내 신작 추리소설, [벽 속의 여자]의 스토리에서 흘러나온 힌트였다.

 [그래! 그러고 보니, 내가 이 동경으로 올라오기 직전인 몇 개월 전, 이 여자의 고향인 오사카 시 외곽에서 이 년의 아버지인 이케다 씨가 회사건물을 교외로 이전한다면서 막 기초공사를 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어. 그게 정확히 한 석달여 전, 지금쯤이라면 아마 한창 건설공사가 진행중일 거야! 이 계집의 시체를 그 공사장의 벽 속에 묻어 버리면 돼! 지금이라면 거푸집이 한창 올라가고 거기다 시멘트를 부어 굳히고 있는 때일 테니, 거기다 묻어버리면 아무도 모를 거야!]

 나는 애써 그런 묘안을 생각해냈던 것이다. 그래, 바로 그거다. 내가 추리소설 속에서 지어냈던 트릭을 한번 그대로 써보자.

 그때, 나는 내가 막 동경으로 올라오기 직전에 지금 오사카에 살고 있던 그 유호의 아버지 이케다 씨가 시내에 작은 군소업체처럼 흩어져 있는 공장과 사무실을 다 한곳에 모으는 편이 보기도 좋고, 운영자금도 적게 먹힌다면서 교외에 토지를 사서 사무실과 공장을 그리 옮긴다고 막 건설공사를 시작했던 기억이 났던 것이다.

 나는 그 결심을 하고는 그 이튿날 아침, 그녀의 시체를 차에 실어 즉시 오사카로 향했다.

 그리고, 오사카에 도착하여 그녀 아버지가 짓고 있던 회사건물 근처에 도착하여 상황을 살폈다. 예상대로였다. 이제 공사는 반쯤 끝난 상황이었고, 한창 공사가 진행되며 거푸집이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이 이상적이라고 믿고, 일단 그 공사장 가까운 곳에 차를 세우고는 밤이 되어 공사하는 사람들이 돌아가길 기다렸다.

 이윽고 밤이 되어, 자정도 지났다. 모든 것이 다 고요히 잠든 새벽 2시쯤... 나는 서둘러 공사장 가까이 가서 차를 세우고 그녀의 시체를 트렁크에서 끌어내어 공사장 위로 올라갔다. 사람이 죽으면 무겁다더니... 그 말이 과연 거짓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녀의 시체가 무척 무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명색이 대학때 럭비를 했던 나다. 그까짓 것 옮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시체를 번쩍 안고는 마침 건물 뼈대를 만드는 철근 콘크리트를 굳히는 거푸집 가까이로 갔다. 그리고, 가장 외진 곳에 있는 거푸집 속으로 그녀의 시체를 집어 던져 버렸다. 그리고는 약간의 시멘트를 반죽해 부어넣어 그녀 시체를 덮어버려서 전혀 그 위에 흔적이 남지 않게 했다.

 이제는 안심이다. 내일이면 다 굳어진 시멘트 위에 또 다시 레미콘이 와서 대량의 시멘트를 부어 굳혀 버릴 테니, 이 거푸집 안에 든 그녀의 시체는 천년 만년 들킬 염려가 없어진 것이다. 시멘트와 함께 영원히 이 안에 굳어 버릴 테니까... 자기 아버지가 경영하는 회사 건물의 벽 속에 암장된 채...

 물론 나는 그녀를 철근 콘크리트 기둥을 만드는 시멘트를 지금 한창 굳히는 거푸집 안으로 던지기 전에, 혹시 나중에라도 단서를 남가지 않기 위해 그녀의 목걸이와 반지도 빼고 옷도 팬티 한 장 남기지 않고 홀랑 벗겨 알몸을 만든 뒤 집어던졌다. 나중에 시체가 발견되면, 소지품이나 입고 있는 옷 등으로 신원이 발각될 수도 있는 문제니까...

 나는 내가 썼던 내 소설, [벽속의 여자]의 트릭의 허실을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그와 똑같은 우(愚)는 범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나는 그 날 밤, 그렇게 전 애인이었던 유호의 암매장을 마치고는 누가 볼세라 서둘러 그 공사장을 빠져 나와 동경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차를 몰고...

 그리고 나서는, 그녀의 차는 몰래 중국으로 차를 밀수출하는 업체에 헐값으로 팔아 버렸다. 그녀의 차는 국산이 아닌 영국제 재규어였으니까, 한번 해외로 팔려나가면 흔적도 없을 것이다. 그것을 보면 누구나 영국에서 들여온 줄 알지 일본에서 들여온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테니까... 더구나, 그 밀수업자도 내가 훔친 차라는 것을 알고 있음인지 별로 자세한 것은 묻지 않고 그 차를 사 주었다. 어차피 뒤가 구리기는 마찬가지니까, 이럴 경우 사는 쪽이나 파는 쪽이나 서로의 사생활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밀수업체의 기본원칙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렇게 해서, 그녀가 타고 왔던 차도 감쪽같이 처분해버리고 그녀의 모든 흔적을 감쪽같이 지워버리는데 성공하였다.

 

 그 후 몇 달이 지난 후, 나는 어느 일간지에 실린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광고를 볼 수 있었다.

 그 광고에는 아니나다를까 유호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 그녀 아버지가 돌연 딸이 행방불명되자 돈을 들여 일본 유력 일간지에까지 찾는 광고를 낸 것이 틀림없었다.

 그나저나, 난 그 광고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 아버지가 내가 있는 곳에 딸이 찾아간 뒤에 행방불명되었다면 당근 그 사람이나 경찰이 나를 찾아와 그녀의 행방이나 상황을 물어보았어야 할 텐데, 그러지는 않는 것을 보니 그 계집이 나를 찾아온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는 증언이 사실임은 확실했다. 하긴, 평상시에도 워낙 제 맘 내키는 대로 나다니길 좋아하는 여자였으니 그녀 아버지도 그녀 행선지를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겠지.

 어쨌든, 이 광고가 얼마동안 신문지상에 나돌다가 이윽고 서서히 사리지기 시작하자 나는 완전범죄에 성공했다고 자신했다. 하긴 그런데 감춘 시체를 누가 찾겠는가? 어리석은 유호의 아버지, 그는 과연 알고 있을까? 자신의 외동딸이 바로 당신 회사의 새롭게 지은 건물의 벽속에 깊숙이 묻혀 있다는 사실을...

 그 후, 나는 계속 출세가도를 달려 마침내 약혼녀와 결혼했고, 그 이듬해엔 천사같이 예쁜 딸도 하나 얻게 되었다. 나는 너무나 행복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인기 소설가로서, 또한 착하고 아름다운 아내와 귀여운 여자아기와 함께 살아왔던 것이다. 이것이 나의 지나간 사연이었다.

 

 그런데, 오늘 뜻밖에 바로 그 여자의 시체가 발각나다니...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나는 일단 서둘러, 오사카의 내가 전에 살던 10년 전의 보금자리로 떠나기로 했다.

 '틀림없어. 그 문제의 오사카 지구가 재개발되면서 지은 지 불과 7년밖에 되지 않은 그 회사도 같이 헐리게 된 거야! 그래서 그 안에 묻혀 있던 유호의 시체도 같이 발각난 거고... 그나저나 이 일을 어쩐다? 그 시체가 유호라는 발각날 가능성이 있으면? 설마... 이미 그 시체는 백골만 남아 있을 텐데 그 시체가 발각났다 해도 그 정체가 유호인지 알 수가 있으려고... 더구나 그녀가 살해 당시 나를 만나러 온다고 하지도 않았으니, 나와의 연결고리를 찾기도 어려울 것이고... 가만 모르는 체 하고 있을까? 아냐. 이러다 갑자기 경찰이 내 앞에 나타나서 수갑이 철컥 채워지는 사태가 벌어질 지도 몰라. 어쨌든 수수방관할 수는 없다. 거기 가서 자세한 사실을 알아봐야 해! 전후 상황을 깨닫고서 대책을 세워야 할거야.'

 나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 나에게는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있다. 많은 재산과 지위도 있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내가 7년 전에 저지른 그 죄가 드러나기라도 하는 날이면...? 생각하기도 싫다. 아직 살인의 공소시효인 15년까지는 남은 날이 지나간 날보다 더 많이 남아있다.

 그리고 설령 공소시효가 지났다 해도, 내가 과거에 사람을 죽인 살인자라는 것이 발각나면 나는 그것으로 끝장인 것이다. 구속이 안되어도 명예를 잃으면, 나 같은 공인의 입장으로서는 차라리 구속형보다도 더 치명타이니까...

 나는 내 무릎에 앉아 재롱을 떨고 있는 귀여운 아기를 보면서, 이 어린것을 위해서라도 이 모든 행복을 빼앗길 수는 없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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