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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갖고 싶어, 너를
작가 : 해달막
작품등록일 : 2020.8.28

라일락 꽃향기 진하게 퍼지던,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진 어느 날, 사춘기 소년 이든에게 귀여운 친구같았던 여동생, 유진이가 여자로 보이기 시작한다. 도무지 떨쳐버릴 수 없는 남자로서의 본능에 스파크가 튄 이든은 세상에 이유있는 반항을 시작한다. 하지만, 도망쳐 온 서울에서 유진을 오히려 찾는다.
감정은 상대적인 법. 같은 날, 유진의 마음에 이든이 파고들었다. 보스턴까지 멀리 거리를 두고서도 이든을 잊으려 그와 닮은 남자에게 끌리는 아이러니...사랑은 본능일까? 아님, 운명일까?

 
17화. 집으로 가는 길
작성일 : 20-09-30 16:33     조회 : 230     추천 : 0     분량 : 6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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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화. 집으로 가는 길

 

 

 * * *

 서울. 현재

 

 

 집으로 가는 길.

 그리운 사람이 기다리는, 가까워질수록 발걸음 빨라지고 마음이 온순해지는 그 든든한 길.

 첫이란 접두어를 붙이면 무엇에든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다.

 첫인사, 첫여행, 첫눈, 첫사랑. 유진이가 집으로 가는 그 첫 길.

 엄마가 계신 곳, 내가 태어난 곳, 내가 살아갈 곳으로 가는 이 길이 다만 따뜻하기를. 그 곳으로 엄마에게 딸로서 인정받고 싶어 돌아오는 길이다. 아니, 미치도록 그리운 그를 만나고 싶어서다. 윤이든.

 

 유진은 차창을 내렸다. 한강 위 어느 다리를 지나고 있었다. 바닷가 비릿하고 짠 냄새와는 달리 쨍하게 차갑지만 마알간 물냄새가 났다. 어떤 이음새도 없는, 어딘가 끝인지도 알 수 있는 다만 길고 긴 강물의 흐름. 새삼 유진은 자신의 맘 속에도 흐르는 강물을 느낀다. 또한 쉼없이 그리워하는 그 헛헛함의 발원이 궁금해진다.

 한껏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첫 교감이었다. 안녕.

 

 택시에서 내린 지훈과 유진이 고층 아파트로 들어선다.

 그 입구에는 자잘한 꽃들이 맞아주는 대신 태백산맥 깊은 골짜기에 있을 법한 소나무들이 하늘로 솟으며 그 장중한 기품을 그 상서로운 기상을 자랑하고 있다. 콘크리트 건물 사이에 장하게도 제 자리를 찾았다. 부드러운 흙 대신, 모자이크된 화려한 문양의 보드블럭을 밟는다. 왠지 조심스럽다. 반듯하게 정렬된 금을 밟아서는 안 되는 금기사항을 지켜야 할 것 같은 긴장감이 유진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그 움츠러든 작은 어깨를 지훈이 부드럽게 안는다.

 

 “집이야. 괜찮아. 들어가자.”

 

 

 * * *

 

 

 “공항에 나갈 걸 그랬어. 아무리 지훈 오빠가 오지 말라고 했어도. 집에서 기다리는 게 왜 이렇게 초조하지? 설레는 건가?”

 

 희는 코우치에 푹 몸을 던지듯 앉으면서 들뜬 마음을 가라앉힌다.

 

 “외삼촌? 지훈 오빠랑 유진 언니 얼마만에 보는 거예요?”

 “거의 10년쯤 됐나? 그동안 들어온다는 거 오지 말라고 했었으니.”

 “전 생전 아니 생후 처음으로 보는 거예요. 제가 태어나기 전에 외삼촌댁이 외국으로 나가셔서 진짜 외사촌 언니가 존재하는 건 맞나 싶었는데, 드디어 팩트 체크하네요.”

 “무슨, 이메일은 주고 받았던 거 아이가?”

 

 불쑥 끼어드는 강준의 말에는 장난끼가 가득하다.

 

 “아빠는, 그렇긴 해도, 실물 영접이랑 같아? 난 너무 기대돼. 외숙모 닮았으면 얼마나 이쁠까? 게다가 세계가 인정한 동화작가로 컴백. 너무 드라마틱해.”

 “사진도 봤다 아이가? 니 오늘 너무 오버다.”

 “아빠도 오늘 내 말 다 거네. 넘어져서 내 무릎 다 깨졌거든.”

 “아이구야. 우짜노. 마이 아프나? 나도 아프다.”

 

 자꾸만 놀리는 자신에게 새초롬하게 눈 흘기는 희가 강준에겐 너무 귀엽다.

 

 “형님, 정도 로펌에 지훈이가 스카웃 됐다매요. 정도 그놈아가 물욕은 없는데 사람 욕심은 많아갖고 사람은 참 잘 봅니데이. 지훈이를 딱 알아본 거 보믄. 하기사 날 친구로 둔 놈이니까 짜슥 사람 볼 줄 아는 거 맞심더.”

 “다 잘 봐줘서 고맙네.”

 

 강준의 걸죽한 입담에 철수는 미소 짓는다. 거실 창으로 다가선다.

 하루치의 피곤을 담아 스러져 저너머로 기우는 노을이 반갑다. 붉은 빛과 노란 빛이 서로 뒤엉키고 어우러지고 그렇게 가슴 뭉클한 빛으로 생성되고 소멸되고 있다.

 아이들이 온다.

 

 12년 전, 이든이가 질풍처럼 한국으로 떠난버린 날, 넥타이를 당겨 느슨하게 하고서 모든 걸 털어놓고 바로잡았으면 좋았을 일이다.

 하지만 사소한 단추 하나 풀어지는 것 조차 참지 못한 시간이었다. 자신만의 감정이 소중하고 자존심을 지키겠노라는 어리석은 오기로 버티다 여기까지 와 버렸다.

 

 뉴욕 맨해튼. 철수 자신의 인생과 아이들 운명의 변곡점이 시작된 곳.

 30대 젊은 시절, 외교관으로서 UN사무국에 잠시 파견나가 있을 때였다.

 뉴욕에서 이국적 야경에 취하던 날, 맨하탄 어느 바에서 우연히 만난 한 여자. 주인영이었다.

 그때 마신 맨하탄 칵테일이 과했던 평범한 이유로든, 그 여자의 농염한 매력에 갇혀버린 특별한 이유로든 호텔방문까지 데려다 주고 말았다.

 그 곳에서 윤철수의 수컷 본능을 주인영이 깨웠다. 도발이었다. 냉철하고 합리적인 사고의 소유자가 감정에 몰락하는 건 운명이다.

 하지만 취기오른 격앙된 그의 본능을 자신도 놀랄만큼 용케도 잠재우고 그 자리를 벗어났었다. 자신의 기억에서 그 여자를 완전히 지웠다고 여겼다. 유진이가 다섯 살때 주인영이 그 먼 크로아티아로 찾아오기 전까지는.

 

 그 후 혜경의 눈빛과 음성이 차갑게 날이 섰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 의구심을 철수에게 직접 확인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 의심의 고통은 자신을 믿지 않는 대가라고, 혜경의 감정 쓰레기를 고스란히 유진에게 배설하고 있음을 알면서 무책임한 방관을 고수했다. 혜경의 곁에서 남편으로서 최선을 다한다고 스스로 면죄부를 주지만 늘 자책감에 혜경의 앞에서 서성이면서도.

 때늦은 회한에 관자놀이에 힘이 들어간다.

 

 “여보, 이든이한테 연락해봤어? 자기가 유일한 소통창구잖아. 짜슥, 언제까지 아싸로 살거냐구. ”

 “요즘 내 전화도 안받는다. 진짜 바쁜 건지, 거르는 건지, 집에 한 번 오라고 하면 바쁘다고 전화 끊는 게 일이다. 맨날 다른 사람 정신 상담하는 것도 에징간하겠나. 지도 속 시끄럽지 싶다.”

 

 주방에서 식탁을 세팅중인 정민이가 주위를 환기시킨다. 이든의 이름으로.

 정민이네와 철수네가 더 친밀하게 정을 나누고 가까워진 매개자가 이든이었다.

 강준이가 이든의 고등학교 담임이면서 대부를 자처했었고, 정민은 고모이면서 엄마의 빈자리를 따뜻하게 채워나간 덕분이다.

 

 띵동.

 희는 급히 인터폰창을 확인하고서 환호성을 지른다.

 

 “드디어.기어이.”

 

 현관문까지 단숨에 달려가고.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희는 유진을 와락 안는다.

 

 “언니, 환영해. 너무 반갑구, 너무 이뻐.”

 “난 안 보여?”

 

 털털하게 웃음 짓는 지훈. 유진의 낯빛을 살핀다.

 유진이가 환하게 웃는다. 다행이다.

 

 “오빤 덤으로 환영해줄게. 왜 이렇게 다들 멋진 거야?”

 “지훈아, 이젠 어른이다. 유진이는 지금 밖에서 보면 못 알아보겠어.”

 

 정민이가 지훈과 악수하듯 손을 잡았다가, 두 손으로 꼭 감싼다.

 온기가 전해진다. 서로에게.

 

 “언니는 자식 농사 너무 잘 지은 거 아니에요? 큰 아들은 변호사, 둘째는 의사, 막내딸은 세계적 동화작가. 친구로서 더 부러워 돌아가시겠네.”

 “참, 고모는. 얘들이 다 알아서 큰 거 잘 알면서. 나보고 들으라고 하는 거죠? 그냥 숟가락만 얹었다고?”

 

 혜경은 어느새 지훈과 유진의 앞에 서 있다.

 유진이 저도 모르게 혜경에게 안긴다.

 

 “엄마…”

 

 목소리에 물기가 스며있다. 소리 없이 어깨가 들썩인다.

 

 “잘 왔어. 유진아. 너무 보고싶었어. 정말 장해. 우리 딸.”

 

 하지만 선뜻 유진을 꼭 안지는 못한다. 기대와 마음과는 달리 몸이 반응하지 않는다.

 마음 속의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나 자신이 달라지지 않으면. 혜경은 숱하게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고 달래보지만 늘 제자리 걸음임을 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무런 죄도 없는 유진만을 탓하게 되는 자신의 치졸함에 자책하고 힐난해보지만 그 순간 뿐이다.

 

 “어머니. 저희 돌아왔어요.”

 “얼굴 보니까 너무 좋다.”

 “아버지.”

 

 지훈은 거실 창가에 서 있는 철수에게 예의 바른 목례를 한다.

 

 “그래. 오느라 고생 많았다.”

 

 이 말 한마디로 망태기처럼 자신의 맘을 쓸어 담는 걸 지훈은 잘 안다. 굳이 눈 맞추고 손 맞잡아 그동안의 속말을 풀어놓지 않아도 충분히 챙겨 주는 마중이다. 지난 시간 동안 애씀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마음의 표현이다.

 

 “이든 오빠만 왔으면 완전체인데.”

 

 희가 샐쭉대지만 아쉬움이 얼굴에 가득이다.

 

 “주인공이 되고 싶은 갑지. 기다려보자.먼 데서도 온 애들 배고프겠구마는. 형님도 배 안고픕니꺼?”

 “자, 다들 밥 먹읍시다. 언니랑 내 음식 솜씨 다들 아실테고. 유진아, 지훈아, 얼른 와서 앉어. ”

 

 정민은 식탁 의자를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장난스럽게 가리킨다.

 식탁 위 음식은 잔칫집 같은 분위기를 최고조로 올린다.

 

 “엄마, 소문난 잔치집 아닌가? 근데 먹을 게 너무 많은데?”

 

 희는 자리에 앉자마자 갈비 한 점을 맨 손으로 냉큼 집어든다.

 찰싹. 정민은 희의 손등을 치면서 나무란다.

 

 “에이그, 어린애야? 말 만한 처자가. 어른들 자리에 안기도 전에.”

 “어,쏘 쏘리요.제가 요즘 단 것만 만들고 먹다 보니까, 찐음식에 넋을 잃었네요.”

 “괜찮아. 나는 희가 이렇게 쾌활하고 밝은 게 너무 좋더라.”

 “땡큐 소 머치. 외숙모 밖에 없다니까요.”

 

 정민은 식탁에 정갈한 크림빛 자기 국그릇을 하나씩 올린다. 달걀 지단과 얇게 찢은 양짓머리살, 그리고 김을 고명으로 정성스럽게 올린 만둣국이다.

 

 “내가 억씨기 좋아하는 만둣국이네. 뜨끈한 게 몸도 데피고 마음도 데피고.”

 

 강준이 어린아이 마냥 신이 났다.

 

 “아빠는 거의 만둣국에 길들여지신거지. 거의 매일 아침 먹다 보면 물린 만도 한데. 대단하셔. 울 아빠의 만둣국 외길 인생.”

 

 말간 육수에 탐스럽게 주름 잡힌 반달이 서로 꼬리를 물고 둥글게 말려 있는 만두를 보기만 해도 벌써 속내가 든든해진다고 유진은 생각했다.

 

 “언니, 처음 먹어 보는 거야? 뉴욕이나 보스턴에선 안 먹어봤어?”

 “기회가 없었어.”

 “윤정민 여사표 만두는 미쉘링 스타 세 개급인데. 유진 언니, 오자 마자 입맛 레벨 업됐네.”

 “잘 먹겠습니다.”

 

 지훈은 한결 편안해진 듯 하다.

 

 “만두 유래 알아? 만두의 역사.”

 

 사뭇 진지하게 철수가 말을 거든다.

 

 “모릅니더. 뭔데예?”

 “제갈량이 남만 정벌 때 사람 머리로 토지신한테 제사 지내야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했다지. 그런데 염소, 돼지 고기를 소를 넣어서 사람 머리 모양으로 만들어서 제사를 지냈어. 그게 만두야.”

 “제갈량은 이겼답니까?”

 

 볼이 미어지게 복스럽게 먹던 강준은 묻는다.

 

 “그럼.”

 “이야, 대단한 음식이네. 아닌 게 아니라 밤 새워 만두 빚으면 가족 간의 화목도 이루어지고 복도 온다고 안합니까? 그래서 설음식이고. ”

 “내 깊은 뜻이 이제야 빛을 발하네. 보람있어.”

 

 정민은 어깨를 으쓱인다.

 

 “오빠, 정도네 아저씨 로펌에 간다며?”

 “어. 고맙게도 날 불러주시네.”

 “거기, 시욱이 오빠도 있는데. 변리사야.”

 “시욱이?”

 “강시욱. 정도 아저씨 아들. 잘 부탁해. 내가 내조를 해야 하는 입장이라서.”

 

 희의 갑작스런 연애 공개에 지훈은 익숙치가 않다.

 

 “니 시욱이 보기만 해도 너무 헤벌쭉이더라. 그래도 튕기는 맛이 연애의 별민데.”

 “아빠는, 내가 농구공이야? 내가 어떻게 해도 오빠는 내가 귀엽대.”

 “쟤는 정도씨 와이프 베이커리에 취직하려고 파티쉐된 얘야. 미래의 시어머니한테 점수 따야 한다고. 세상 설레발은 혼자서 다 치구선.”

 “전에 희가 인스타에 올린 빵이랑 초코릿 사진 보니까 최고던데요.”

 “고마워,언니. 근데 엄마는 딴지가 너무 초지일관이야.”

 “대체 시욱이가 왜 좋은 거야?”

 

 정민은 시크하게 묻는다.

 

 “음, 굳이 말하자면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는 그에게로 가서 꽃이 되었다. 처음으로 진짜 내 이름으로 불러준 사람이 시욱이 오빠 밖에 없었거든. 다들 윤희라고 하는데, 오빠는 희야, 이렇게 불렀었어. 전율이 돋더라니까. 이윤이 성씨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이윤을 남기는 장사치가 떠올려지잖아.”

 “이강준의 이, 윤정민의 윤. 우리 이윤 가문은 양성평등에 공정한 사회실현을 몸소 실천하는 기다.”

 “당연지사를 저렇게 생색내기도 힘들거야.”

 

 정민과 강준은 쿵짝이 잘 어울린다. 어디서나 어떤 대화에서든.

 

 

 * * *

 

 

 잔잔한 바람보단 세찬 훈훈한 바람이 더 안성맞춤이다. 멀리서 싹트는 미물의 풋내랄지 땅에서 연하게 오르는 향기로운 훈김이랄지, 그렇게 봄날의 저녁에는 독특하게 마음을 더 가벼워지게 하는 바람이 분다.

 

 희가 가르쳐 준 주소, 이든의 집 앞에 유진이 서 있다. 유진이가 서울에서 혼자 하는 첫 외출이다. 머뭇거리고 주저하다가 겨우 벨을 누른다.

 공허한 벨 소리.

 다시 누를 용기가 생기질 않는다. 지금 집에 있을 리가 만무하지만 이렇게라도 그에게 가까이 와 보고 싶었다. 기대어 편히 쉴 수 있는 무량한 그의 다순 어깨가 그리웠다.

 오피스텔 입구 기둥 뒤에 이든이 서 있다.

 십 여 분 전에 오피스텔로 들어가는 유진의 뒷모습을 보았다. 차마 유진을 불러 세우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이 서성이고 있다.

 유리문을 통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것이 보인다. 유진이다.

 환하고 밝은 미소를 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래로 향한 시선에 슬픔이 보인다.

 

 

 이든은 유진의 뒤를 조용히 따른다.

 유진은 그냥 걷는다. 한 템포 늦춰서 안단테의 걸음으로.

 속내로만 말을 건넨다.

 

 [이쁘다. 형이 잘 해줬나보다.]

 [이든 오빠, 내가 오빠를 보면 알아볼 수 있을까?]

 [보고싶었어…]

 [아직도 날 싫어하는 건 아니지?]

 [보고 싶다. 유진아…]

 

 아이들이 놀다 집으로 돌아간 텅 빈 놀이터가 나타났다.

 그네에 앉는 유진. 삐걱거리며 흔들리는 그네 소리가 어둑해진 정적을 파고든다.

 

 한없이 자애로웠던 엄마가 돌연 가시 돋힌 서러운 말로 자신에게 생채기를 냈었다.

 돌아서 보면 언제나 뒷 편에서 환하게 웃어주던 둘째 오빠, 이든도 언제부터인가 자신을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아마도 그 날, 소나기가 청량하게 내린 그 날, 자신의 마음을 오빠가 눈치챘을 지도.

 유진은 자신의 존재 그 자체가 원죄라고 여겼다. 그 원죄의 밑바닥에서 엄마를, 이든을 더 그리워하며 속으로 용서를 바랐다.

 자신의 마음 속에 쏟아지던 사랑과 그리움을 혼자서 글로서 달래고 위로하던, 그 절실한 바람을 어른이 되어서도 동화로 써낼 수 밖에 없었다. 어린시절의 기억을 행복했다고 윤색하면서.

 혼자만의 주홍글씨처럼 새겨둔 마음, 이든에게로 향하는 여자로서의 설렘을 운명처럼 아직도 거역하지 못하고 있다.

 

 유진은 우두커니 어둠을 응시하다가 고개를 떨군다.

 그녀의 등이 조금 떨린다. 울고 있다. 숨 죽여. 유진이가.

 열 걸음 뒤 나무 둥치 곁에서 지켜보던 이든은 한달음에 달려가 유진을 안아주고 싶었다. 가슴에 자욱한 뭔가가 일어나는데도 기어이 참아내고 있다. 유진을 바라본다. 꼭 다치도록 돼 있는 걸 알면서도 용기 내어 바라본다. 어쨌든 이 바라봄도 없다면 정말 무가 되어 버릴 것 같으니까.

 걷잡을 수 없을 것만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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