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아이돌 15화: 꿀물 원샷
나의 장장, 1년의 타임워프 역사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원래대로면 내가 다쳤어야 할 자리에서 제이가 다치자, 제이의 집에가 만나게 된 제이의 형. 흠… 근데 제이가 안 다쳐도 우리 멤버들이 제이 집에 올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닌가…? 제이가 안 와서 아주머니 아저씨가 우릴 다 초대한 건가? 아니면, 제이가 있었으면 조쉬 형이 그 시간에 내려와서 나랑 만나지 않았다던가.. 그럴 수도 있었겠다. 무튼, 뭔가의 단서를 찾았다.
제이의 형도 우리 회사를 거쳐 다른 회사로 3년이나 연습생 생활을 한 이력이 있고 무엇보다 더 신기한 건 남진혁이 내게 싱가폴 투자자들에 연결한 사실까지 알고있었다. 분명 형은 이번 나의 타임워프 미션에 중요한 사람인 거다. 문제는….
“안녕, 일어났니?”
“어 형.., 아침부터 뭐해요?”
“콜드브류가 마시고 싶어서 내리고 있어.”
“….콜드브류 마시려면 며칠 걸려요. 나가서 사오는 게 빠를 거에요.”
“오 그러니? 좋은 거 알려줘서 고마워. 후후.”
그 사람이 이렇게 실이 없다는 거다. 조쉬 형은 지인짜 특이한 사람이었다. 나도 대한민국에 끼 있는 애들이란 애들은 다 모인 이쪽 짬빠에서 구른 게 햇수로는 7년차인데 이렇게까지 특이한 사람은 처음볼 정도다.
“얘들아, 인사 드려.”
“감사했습니다!! 주신 건 가서 잘 먹을게요. 제이한테도 꼭 전하구요.”
“그래, 얘들아 잘 가고. 봐서 정말 반가웠다! 열심히 활동하고, 한국에서 또 봐.”
우리는 오늘 저녁 비행기로 한국으로 가야하는 일정이기에 아침부터 서둘러 나오니 팬티 바람에 로브만 걸치고 나와 2층 발코니에서 베이글을 씹으며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는 조쉬 형. 다들 나와서 인사하길 바빴는데 진짜 참 여러가지로 4차원, 아니 8차원은 되어 보였다.
“궁금한 거 있으면 연락해.”
이러면서 번호는 줘놓고 내 번호는 받긴 싫다 그런다. 진짜 황당한 형이다. 로멘스가 없다나..
그리고 정말 이 형이 황당했던 건…., 저녁에 엘에이엑스 공항에 가 대한항공 라운지에 들어가니 형이 앉아있었다. 마치, 약속을 하고 만난 사람처럼 우리를 보고. 응. 왔니? 하는 건 또 무슨 황당한 소리세요.
“제이가 엉뚱한 줄 알았더니 조쉬형이랑 비교해서는 째바리도 안되네.”
우리에게 인사하는 게 너무하도록 자연스러운 조쉬형을 마주치자 민호가 내 뒤에 대고 속삭였다. 하. 이 사람이, 앞으로 내가 남진혁의 비밀인지 비린지 알 수 없는 어떤 걸 파헤치는 데에 정말 필요한 사람이라는 거지, 타임워프야.…
이왕 이렇게 된거 우리 팀은 형과 함께 이동하기로 했다. 제이의 가족이면 우리한테도 중요한 사람이니까. 그리고 형이 특이하긴 해도 솔직히 좀 이상하게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벌써 우리 팀 멤버들은 형형 하며 따르고 있었으니까.
“현진아.”
“아 네 형.”
“너도 말 놔.”
무턱대고? 갑자기? 진짜 나사하나 빠진 것 같은 얼굴이다. 근데 웃긴 건 진짜 천진하다는 거다. 결국 픽 하고 웃어 버렸다. 무장 해제다, 이제.
“알았어 조쉬 형.”
“나 한국 이름 있어. 그걸로 불러.”
“그래? 뭔데?”
“박명수.”
“음…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진짜야. 민증 보여줘?”
“형이 왜 민증이 있어요?”
“나 전라남도 목포 출신인데.ㅎㅎ”
…정말, 얘기의 어디까지가 진짜고 농담인 건지, 밑도 끝도 없는 사람이다. 이 쯤되니 어제 저녁에 내게 와 그런 비밀스러운 사실을 알고 있다고 알려준 사람이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제도 형 장난친 건 아니겠지 설마.., 그럼 거의 무당수준이지.
* * *
한국에 도착해선 우리는 곧장 숙소에 가 짐만 놓고선 제이가 있는 병실로 향했다. 물론 조쉬.. 아니 명수 형도 함께였고.
“제이야!!!!!”
병원에 도착하니 제이는 이렇게 칭칭 다리에 기브스를 한 채로 누워있었다. 아이고 이 작고 소중한 자식아! 왜 찍덕한테 밀려가지고는.. 아니 원래대로면 내가 뻗어있을 자리였지만 에잉,.. 이 녀석아!
“기념품 사왔어. 초코렛이랑, 이거 너가 부탁했던 어벤저스 피규어.”
멤버들에 둘러쌓여 행복해하던 제이는, 어느덧 맨 마지막으로 들어온 명수형을 마주한다.
“오, 형!!”
“와썹 브로.”
감격의 포옹. 제이가 특히 눈물까지 글썽이며 반가워하길래 정말 오랜만인가 보다 했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명수 형은. 거의 두달에 한번꼴로 한국에 온다고 했다. 정말 이 집안, 종잡을 수가 없다.
“형, 나 무대 못 섰어. 진짜 서고 싶었는데.”
그래도, 가족은 가족인가 보다. 우리한텐 자기 진짜 괜찮다고 거기 또 가면 된다고 오히려 우리를 안심시키더니. 제이는 제 형을 보자마자 눈물을 글썽이며 투정을 부렸다. 그래, 제이는 이제 아직 열일곱. 한창 응석 부릴 나이니까.
“그러게. 형이 대신 무대 서줄 걸… 생각도 못했어. 미안해.”
농담인가 싶어 멤버들은 다 웃음을 터트렸는데. 이 사람 표정을 보면 완전 진심이다. 하여튼…
그렇게 웃기고도 따듯했던 병문안을 마치고, 매니저형들은 우리를 태우고 숙소로 향했다. 나는, 명수형에게 어디에서 지내냐 물었고 형은 서울에 집이 있어 그 쪽에서 움직인다고 답했다. 사실 형만 괜찮으면 숙소에 불러 어제 했던 이야기를 이어 하고 싶었는데. 형도 형대로 너무 바빴고 나도 오자마자 바로 스케줄을 가야 하는 입장이라 시간을 내는 것도 여간 쉽지 않았다.
“전화로는 좀 그렇고. 만났으면 좋겠는데.”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형이 혹시 우리 숙소 와주면 안돼?”
“흐음.. 생각해볼게. 나 남자들 많은 집 가면 좀 힘들어서…”
“형네 집도 남자밖에 없잖아?!”
또 장난인 줄 알았더니 웃음기 하나 없다. 정말 종잡을 수가 없다. 그래서 더 좋아진다 형이.
*
정말 어렵게 시간을 냈다. 스케줄을 다 뛰고 녹음까지 맞춰놓고서 겨우 얻은 저녁 약속 시간. 물론, 상대가 제이의 형이라고 하니 보내준 동식이 형이다.
명수 형은 숙소로 직접 차를 가지고 와 나를 픽업했다. 이 형, 무슨 사업을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아직 형도 어린 나이인데 차가 삐까뻔쩍하다. 이 동네 참~ 그렇네.
“형 차 좋다.”
“응. 48개월 할부로 샀어.ㅎㅎ”
“하하하하. 진짜 웃기는 형이야.”
“몇시까지 들어가야 한다고?”
“11시까진 가야돼요.”
스윽 시간을 보는 명수형. 8시.
“세시간 밖에 못 보네. 아쉽다..”
“형 그런데 무슨 일 해?”
“나 양말 팔아.ㅎㅎ”
“진짜?”
“응. 여름엔 맥주 팔다가, 요즘은 양말 팔아. 점점 추워지잖아.”
아, 이 형은 하는 말마다 농담인 건지 아닌 건지 알 수가 없어. 나는 고개를 가로 젓다 이내 웃어버린다. 형이랑 있으면 마음이 편하긴 하다.
형이 데려온 곳은 서울 시내가 다 보이는 북한산 산악 드라이브 코스였다. 형은 올라오기 전, 편의점에 들러 뜨거운 꿀물 두개를 사왔다. 내가 나는 얼죽아라 차가운 거 마시겠다고 해도 아무 말도 안하고 자기 맘대로 이걸로 결제했다. 속는 셈 치고 차를 대고 나와 그 뜨거운 꿀물을 받아서 탁 열어 마셔보니, 차가운 공기에 서울 하늘은 보이고. 저기 저 시티스케이프까지 함께 어우러지는 게 제법 운치 있었다.
“오. 이게 또 이런 맛이 있네.”
“후후.”
“형. 형도 혹시 티엠에 있을 때 그런 선배들 봤어? 나처럼 투자하는 사람들한테 연락하고 밥도 먹어주는 그런 연예인들.”
“응, 봤지. 수두룩하게. 이쪽에선 꽤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잖아.”
“진짜?”
“응. 그게 뭐 그렇게 나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해. 회사 입장에서는 도덕적으론 걸릴 거 없는 일 진행하면서 투자금도 받고. 가수 입장에서는 버프도 생기고, 또 재벌 인맥도 생기는 거니까.”
“… 뭐 얘기하기 나름인 게 그게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런 인위적인 만남.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거든.”
“글쎄… 그럼 자연스럽게 만나면 되는 거야?”
와, 이럴 땐 또 날카롭네.
“형. 나 아직 형에 대해선 잘 몰라. 그래도 우리 약속한대로, 내가 알게 된 거 다 말해주면 형도 알고 있는 거 다 알려준다고 했으니까. 그거 꼭 지켜요.”
“응. 나 아이큐 180이야…. 거짓말도 안해.”
아이큐와 거짓말의 상관관계는 도저히 모르겠지만 이제 형이 하는 말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도록 한다.
나는 그 간의 일들을 설명했다. 물론, 믿어주지 않을 거니까 나에게 타임워프가 일어나는 건 쏙 빼고. 그리고 솔직히 이게 내 능력이라기엔, 내가 시간을 직접 돌린 적도 없어서 말하기도 뭐하다.
내가 데뷔일정이 확실히 픽스 된 후로 갑자기 사람 취급을 하기 시작한 남진혁의 태도부터, 형이 알고 잇는 싱가폴 투자자 이야기, 그리고 백수현을 괴롭히기 시작한 남진혁, 또 그 남진혁이 수현을 괴롭히는 이유까지.
하나 하나 다 상세하게 전한다. 가만히 듣고있던 명수형은 내 얘기가 끝나자 마시고 있던 꿀물을 쭉 들이켜 비워냈다.
“…..”
“내 얘기 다 이해 돼요?”
“응.”
의외로 충격을 받았을까, 명수형은 사뭇 진지해졌다.
“무슨 생각해?”
“꿀물…. 한병 더 사올 걸.”
아이, 참~~ 형!
“농담이야. 남진혁은 어린 애가 참 여전하네.”
“형, 진혁이랑도 알아요?”
“알지. 걔 나한테 양말 팔아달라고 한번 왔었어.ㅎㅎ”
“? 그게 무슨 말이에요?”
“같이 사업하자고…”
“형 진짜 양말 사업해요?”
“하하. 양말도 팔지. 근데 그것보단 난 클럽도 운영하거든.”
“의외네.”
“거기 보면 가끔 약 팔러오는 애들이 있어.”
“…… .”
“그리고 약은 죽어도 안하는데 어디서 판다고 알려주는 사람들도 있거든. 물론 돈 때문이 아니라 그거 사는 사람들 지위보고 친해지려고.”
“네.”
“그 중 하나가 남진혁이야.”
“…!”
…이거, 생각보다 남진혁이 뒤에서 하는 짓꺼리들의 사이즈가 훨씬 더 큰 것 같다.
“그리고, 걔 중국 쪽 스폰이랑 아이돌 연습생 소개해주는 브로커. 포주 같은 일도 하고싶어 하더라.”
“….형은 어떻게 알게 됐어?”
“일 하다 보면 알게 되는 나쁜일들도 있더라구.ㅎㅎ”
“….다 사실이에요?”
“내가 거짓말을 왜해, 아이큐 180인데.”
하고 씨익 웃는다.
아니, 형 말이 맞다면 남진혁은 벌써 그렇게 나쁜 일들에 물이 들었다는 건가. 아니, 이게 물든 정도인가. 그 이상으로 활개를 치고 다닌다는 건데. 대한민국 최고의 아이돌 멤버가 말이야?! 그리고, 약은 또 뭔데. 도대체 이 자식이 하고싶은 일이 뭐길래 이렇게까지 추악해진 건지 데뷔한 것만으로도 감사할 다름인 나로썬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형. .. 그럼 나 뭐 하나만 물어볼게.”
“응.”
“나 어떻게 해야지 백수현 이 일에서 빠지게 할 수 있을까.”
“으음.. 그건 차차 생각해 봐야지.”
“…. .”
“그런데 현진아.”
“응.”
“너 백수현 정말 좋아하는 구나?”
하고 씨익 웃는데, 나는 형 앞에선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그리고 왠지 믿음이 가는 사람이니까 피하지 않고 같이 미소로 화답한다.
“응. 정말 좋아해, 백수현.”
“오호.”
“그래서, 걔가 힘든 거 보고싶지 않아. 어렵게 하게 된 데뷔인데. 꼭 성공하는 거 보고싶기도 하고.”
“너는?”
“나 뭐?”
“너도 성공하고 싶니?”
이 형 질문은 참 날카롭고 이상하다니까.
“응. 당연하지. 나도 할거야 성공. 그래서 백수현도 지킬거고, 남진혁이 하는 일도 못하게 할거야.”
나는 형이 방금 했던 것 처럼 나머지 꿀물을 원샷해버린다. 형은 그런 나를 보면서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